소설리스트

러스트-252화 (252/280)

러스트 [RUST]-252

군부를 시작으로 중국계의 배제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미제가 중국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중국계를 배제한다니요.”

대륙횡단 철도를 비롯한 서부지역 개척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중국인을, 중국인의 피와 땀을 이렇게 무시한단 말인가?

간자(間者) 때문이라고? 스파이는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었다. 간첩만 골라잡든지, 관련자의 사돈에 팔촌까지 모조리 배제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못된 짓인가?

15억 중국인을 배제한다는 것은 곧 동양인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중국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입니다!”

“지금 미제가 하는 짓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바이러스 사태로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 이제 사태가 좀 진정되려나 싶었더니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미친 상황이 됐다.

언젠가는 미국과 자웅을 겨뤄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을 잡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재난이 터지면서 이렇게 엉켜버렸다.

“지금 이게 인종차별로 끝날 문제 같습니까?”

“중국계 기업인과 정치인에게까지 화살이 겨눠지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었다. 미국에 있는 심어 놓은 뿌리들이 미친 듯이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가 마지막 경고였다. 중국에 연락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게’ 됐으니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북부전구가 아니면 누가 그랬겠습니까?”

“룽씨 가문 후계자가 죽어서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주석이 손을 들었다. 그 넓은 회의장이 주석의 손짓 하나에 잠잠해졌다. 숙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가족의 복수를 하겠다고 중원을 불태울 생각을 해?

‘아니지. 아니야.’

단순한 놈이었다면 룽씨 가문의 가주가 되지 못했을 것. 그렇다면 놈이 왜 그랬을까? 주석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리고 내린 결론.

‘숙청에 대한 정보가 샜다.’

주석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룽씨 가주가 중국을 판돈으로 걸어버린 것이다. 숙청할 테면 해라 우리는 내전 간다. 미제를 앞에 두고 자신 있으면 해보든가?

‘어떻게 할까.’

주석이 조용히 손을 내리자, 다시 사방에서 삼삼오오 소리가 커졌다.

“북부전구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남부전구와 동부전구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강하게 압력을 가해, 내분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떨까요?”

“안됩니다. 내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전이 될 겁니다.”

“내전을 무서워해서 중국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반동분자를 그냥 두자는 말이오!”

“내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미제가 중국을 노리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중요하지 않나!”

“내전이 터진다고 미제가 그냥 넘어갈 것 같나? 미제 놈들은 이번 기회를 노려서 중화를 짓밟으려고 할 게 분명해.”

길고 긴 토의 끝에 상황은 이렇게 정리됐다.

북부전구의 룽씨 가문에게 책임을 물어 내전을 불사하고 공개 숙청을 할 것인가?

북부전구와 내전에 돌입하면 중국의 전력이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떨어진다. 그걸 감수하고 내전을 할 경우, 승냥이 같은 미제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가?

내전으로 제 살을 깎아 먹었는데, 미제가 전력이 박살 난 중국을 노린다면 그때는 핵밖에 답이 없었다.

“그래도 핵이 있으니 중화를 노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라크에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ICBM만 있었어도 공격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차피 핵이 있는데 우리가 제 살 깎아 먹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반동분자 룽씨 가문을 그냥 두잔 말이오?”

“일본에서 미제와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계속 소모되면 세가 꺾이겠지요.”

“룽씨를 몰아낸다고 해도. 그 자리에 앉은 자가 또 룽씨 가문처럼 나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잘라내도 문제입니다. 룽 가문이 북부전구를 지배한 지 80년이 넘었어요. 그 뿌리를 뽑고 다른 것을 심으면 자라는 데 10년은 더 걸릴 겁니다.”

중국은 중앙집중적 정부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역 토호들은 공산당과 결합해 공고한 지역 권력이 강성한 이중적인 권력 구조.

다시 말해 중앙에서 강한 권력을 가진 자는, 지역적인 지지기반도 강한 구조. 그 수장을 숙청한다는 것은 지역적인 지지기반까지 숙청해야 한다는 이야기

제일 좋은 것은 이인자 또는 삼인자가 배신하도록 유도해 자기들끼리 힘을 빼게 한 뒤, 모조리 쓸어 버리는 것인데. 공작이 실패하면 더욱 똘똘 뭉쳐 대항할 것이니 쉽지 않았다.

주석이 손을 들자, 웅성거리던 회의장이 침묵에 빠졌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미제의 반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세계에 알리도록 합니다.”

“EMP 테러는 중국 정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세계에 전합니다.”

미제가 하는 짓을 중국이 알 듯, 이 회의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는지 미제도 알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주석은 바글바글 모여있는 자들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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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은 중국계를 배제하는 범위를 넓혔다.

중국계 경영자라든지, 중국계 자본 비중이 높은 회사는 세무조사의 대상이 됐고, 끝없는 소송의 물결에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미쳤습니다. 이건 미쳤다고요. 지난주에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안전진단 때문에 나왔습니다.”

“아이고. 여기 소방법 위반하셨네요. 저쪽은 바이러스 방역 문제가 있고요.”

“······.”

학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계 교수의 논문은 재검토. 문제 있으면 학위 박탈, 연구내용 조금이라도 유출한 정황이 있으면 일단 연행.

“실험자료를 이메일에 첨부했더군요. 누구에게 보내신 거죠?”

“이번에 실험한 결과를 해석하는 데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해서···”

“꼭 중국 대학에 있는 전문가였어야만 합니까?”

“지인이 그쪽 분야 최고의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메일을 보낸 흔적을 지운 이유는 뭡니까?”

“··· 보안 때문에.”

“일단 같이 가시죠. 여기 구속 영장 있습니다.”

“변호사. 내 변호사를···”

처음에는 교수, 다음에는 유학생들이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여러 가지 사유로 비자 연장이 거부됐고, 미국을 떠나야 했다.

미국에서 떠나는 것도 힘들었다. 버드 스트라이크로 항공편이 없으니 배편으로 나가야 했지만, 미 서부지역은 사실상 봉쇄상태나 다름없었다. EMP의 여파로 여객선도 운항 불가능했으니까.

갈 수 있는 곳은,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가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유럽은 아직 버드 스트라이크가 없으니,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방법뿐이었다.

TV에서는 일주일 넘게 EMP 폭탄에 대한 뉴스가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본래 이랬던가?

[2001년 무역센터 테러 당시에도, 관련 주제가 한 달이 넘게 메인 뉴스였습니다.]

“그런가?”

[···리칭 교수는 하버드에서 분자생물학 연구자료를 중국으로 보낸 혐의를 받고 있으며···]

[중국인 유학생들 대부분이 강화된 유학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 대규모 휴학, 퇴학 사태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역 경제와 대학교 재정에 악영향을 주는 정책입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미국 학생들이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줄어들면 줄어든 만큼 혜택이 감소할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언제는 중국인 유학생이 있어서 대학이 돌아갔습니까? 중국인 유학생들이 가져온 돈으로 돈 잔치를 하는 건 학교 측이지요. 혜택이 뭐가 있습니까? 학업환경만 엉망이 되고 있지. 여기가 미국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니까요.]

[유학 정책에 대해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정책들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의적인 인종차별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과거 911테러 직후, 미국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죄가 없는 중동인이라도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연행했었으며···]

[국가안보를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민주주의적인 행동인지, 심히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중국이 저런 말을 하니까 참 느낌이 이상해진 마루가 피식피식- 웃고 말았다.

[덴 브라운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 돌려줘.”

[덴 브라운입니다. 지금 상황이 좀 심각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계속 강조하더군요. 혹시 중국이 연관됐습니까?”

중국계 기업과 기업인, 교수, 유학생까지 저러는 걸 보면. 이례적이긴 했다. 자본주의 미국에서 돈 되는 고객님을 쫓아내는 꼴이었으니까. 테러와 중국이 연관된 건가?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과 중국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넘겼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계뿐 아니라 일본계에도 칼날이 드리워질 전망입니다.]

그러니까 ‘블라디마루 당신도 일본계잖아. 사태가 심각하다고.’ 이렇게 경고해주는 건가? 마루는 그렇게 이해했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일본계를 배제해야 한다는 논의 과정에서 블라디마루 빌딩이 언급됐습니다.]

“예?”

일본계 배제랑 내 빌딩이 무슨 상관? 내 명의로 된 빌딩을 어쩌겠다는 건가? 사유재산 기본인 자본주의 미국에서?

[빌딩에 있는 슈퍼컴퓨터와 모듈 원전의 보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해당 빌딩을 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

“어떤 새···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지금 장난치나? 그 개고생을 해서 건물주가 됐더니, 그걸 날로 먹으려고 해?

진짜 테러 함가야 하나? 테러(terror)의 뜻이 공포라던데, 공포가 뭔지 제대로 모르니까 그러는 거 같지? 마루가 섬뜩하게 미소 지었다.

[···군에서는 해병대나 육군으로 5년간 복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군대? 그러니까 군대 들어오면 문제없게 해주겠다는 말인가요?”

보안이 문제면, 국토안보국 요원으로 하지 어째서?

군대에서 명령이니 어쩌니 하면서 그냥 굴리겠다고 그러는 건가?

마루의 미소가 짙어졌다.

빌어먹을 월드 새끼들 때문에 일본인 신분으로 바꿔서 추적을 끊었더니.

‘하- 진짜 열 받게 하네. 아- 잠깐.’

이젠 출신 드러내도 되지 않나? 월드고 나발이고, 상황이 이런데 어쩔 건가?

월드 그룹 산하 PMC나 시큐리티 부서는 서울, 부산, 일본에서 70% 가까이 증발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지간한 놈들이 떼로 몰려와도 가뿐하게 썰 자신이 있었다.

‘그냥 까도 될 것 같은데?’

초짜였을 때나 월드 새끼들 추적이 무서웠지, 이젠 놈들이 여기 오면 ‘정당방위’ 해버리면 될 것 아닌가?

세상도 개판이 될 각인데. 군대 5년 끌려가거나, 멀쩡한 빌딩 뺏겨 분노로 칼질하고 다니는 것보다 출신의 비밀을 시원하게 까발리는 게 좋아 보였다.

“아.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마루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저 한국인입니다.”

[···예?]

갑자기 무슨 소리?

“본명 하마루. 한국인. 병장 전역. 군대 다녀왔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군번 알려 드릴 테니까 확인해 보세요.]

[아니··· 잠시만.]

덴 브라운 과장은 갑자기 마루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민등록번호에 군번까지 있다고 하니까 당황했다. 버지니아에서 시민권 만들었는데, 이거 버지니아 쪽 애들이 그렇게 한 건가?

[···일단 사실 확인을 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뭐.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이랑, 살던 집 주소 같은 것도 한 번에 보내드릴 테니까 확인해 보세요.”

[······.]

마루의 입대 환영식을 준비하겠다던 군부 인사, 빌딩을 털도 뽑지 않고 먹겠다고 입맛 다시던 얼굴이 떠오른 덴 브라운 과장이었다.

“그리고 절 군대 보내자고 했던 사람이랑, 여기 건물 정부에서 관리하자고 했던 사람들 이름만 좀 알려주세요. 나중에라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건 조금 어렵겠습니다. 그럼 미스 킴도 한국인입니까?]

마루의 표정을 보니, 알려주면 안 됐다.

“성을 왜 킴으로 했겠습니까? 한국사람이고요.”

[······.]

“파티라도 열 테니까, 그분들 초대해 주시면 좋고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마루는 디아나를 불렀다.

“어떤 놈이 날 군대로 끌고 가려고 했는지, 어떤 새끼가 날로 먹으려고 했는지 찾을 수 있겠어?”

[모든 회의기록 보안등급이 최고 단계로 올라가, 해킹하면 기록이 남을 확률이 높습니다. 진행할까요?]

“기록이 남는다는 건, 역추적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은 말고.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준비만 해둬.”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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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외곽 숙박업소.

유 이사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시애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지내던 해커와 접선, 그를 통해, ‘회춘’에 눈이 먼 놈들을 찾아, 납탄을 든든하게 박아 넣어 줄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더럽게 꼬여 버렸다.

EMP 때문에 휴대폰이 나갔고, 노획한 은신 장비도 터졌다. 은신 장비라도 굴러갔으면, 편했을 텐데. 그나마 CCTV가 먹통이라 이동 흔적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다행인가?

며칠이 지났지만, 전기, 가스, 수도, 통신, 인터넷, 전화, 교통까지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다.

문득 멀리서 들리는 소리.

저벅저벅- 척-척-

군화?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허리춤에 찬 콜트 파이선에 가만히 손을 얹은 유 이사의 귓가에 거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쿵- 쿵-

“주 방위군입니다. 검문검색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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