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53
쿵- 쿵-
“문 여십시오. 검문검색 불응 시 연행합니다.”
쿵- 쿵-
“문 뜯어!”
3번 이후, 기다림은 없었다.
즉시 문을 빠개고 들어온 병사들이 외쳤다.
“엎드려!”
“고개 숙여. 무릎 꿇어!”
먼저 들어온 3명이 유 이사를 겨누고, 뒤이어 들어온 2명이 문 뒤쪽과 좌우를 살피는 모습.
‘훈련이 잘됐네?’
유 이사는 총구를 앞에 두고 샐죽 웃었다.
어린 여자가 카우보이처럼 건 벨트를 차고 설렁설렁 웃고 있는 모습에 살짝 긴장이 풀린 병사가 좌우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얘 미성년 같은데?”
“이 상황에서 웃어? 약했나?"
작게 속닥이는 소리 뒤에, 총구를 내리지 않은 병장이 말했다.
“허리에 있는 총. 진짜 총인가?”
“······.”
대답 대신 히죽- 미소 짓는 여자. 병장은 미소가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리볼버라니, 그것도 색이 이상했다. 검푸른색? 장난감 총이라고 하기엔 묵직해 보이고, 그렇다고 실제 총이라고 보기엔 색도, 총를 차고 있는 행색도 코스프레 같았다.
“신분증 있나?”
병장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순간, 유 이사의 늘어진 홀스터에서 총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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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도 넘지 않는 순간에 발사된 5발의 탄환이 5명의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목젖, 눈알, 경동맥을 씹어버린 45구경 철갑탄이 연약한 살을 헤집고 미소 지었다.
투다다다다닥!
조금 드러난 목젖을 꿰뚫린 병장이 뒤로 넘어가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의미 없었다.
철퍼덕- 풀썩-
병장의 뒤를 보조하고 있던 2명의 병사는 비척비척 뒷걸음질하다 엎어졌다. 눈알을 꿰뚫고 들어간 철갑탄이 방탄모 안쪽에서 튕기는 소리를 냈을 뿐, 방아쇠도 당겨보지 못했다.
끅-끄으으으-
흐으윽-으윽-
좌우로 벌어져 주변을 살피던 2명의 명사는 각각 왼쪽과 오른쪽 경동맥을 붙잡고 서서히 죽어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살고 싶다는 애원과 본능을 담고.
버둥거리던 몸짓이 서서히 무너질 즈음. 유 이사는 담담하게 재장전했다. 무심하게 떨어진 탄피가 바닥을 구르다 질척하게 번지는 핏물에 닿아 멈췄다.
툭- 대충 발끝으로 시체를 밀어, 주 방위군의 무장 상태를 확인하는 유 이사. 거의 전신에 방탄복을 두르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모습. 발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
‘주 방위군인데 짱짱하네?’
주 방위군이면 2진 아니었나? 전신을 꽁꽁 싸맨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피곤해질 것 같았다.
정보가 없었다. EMP 여파로 라디오, TV, 인터넷, 휴대폰 전부 나가버린 터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이제 확실한 사실이 생겼다. 이렇게 완전무장한 병력이 외곽을 돌며 모텔이든 호텔이든 뒤지고 다닌다는 것. 그러니까 미국이 엉클 샘 시절로 회귀했다는 걸까?
눈이 돌아간 미군이라···
어쩐지 계속 미국에 오고 싶더라.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유 이사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하-아-
EMP가 터졌으니, 미국 본토가 공격당한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미쳐 날뛰겠지?
휴대폰과 인터넷, 전부 먹통. 군인들이 장착한 전술카메라 말고는 증거 자료도 영상도 없을 테니. 피바다가 만들어지겠네. 저 멀리 들리는 총성이 그녀의 질문에 응답했다.
기대와 흥분으로 차올랐다. 미군이었다. 그것도 눈이 돌아간 미군. 멀리서 터진 폭음과 총성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유 이사를 애타게 찾는 것 같았다.
그 애타는 부름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는 발걸음.
'아니지. 아니야. 아직.'
두 다리를 멈춰 세운 그녀가 호흡을 골랐다.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진정시킨 유 이사가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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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분노했다.
감히 빌딩에 손을 대려고 해?
백정이 군대 가면, 그동안 이 빌딩은 내 것이지.
지금도 내 지분이 20%는 되지 않나? 최소한.
근데 감히 여기에 족발을 들이밀었다고?
누군가?
어떤 놈인가?
12.7mm로 대가리를 폭죽처럼 터뜨려도 그딴 소리를 내는지 보고 싶은데.
마루를 힐끗 쳐다봤다.
실실 웃는 백정의 표정엔 살기가 등등했다. ‘군대?’, ‘5년이라고?’ 중얼거릴 때마다 뭔가 뭉클뭉클 솟아났다가 들어갔다가 하는 느낌인 걸 보니, 제대로 빡친 게 분명했다.
“좋아- 그렇게 나오겠단 말이지···.”
김 양은 마루의 중얼거림에 일단 한 걸음 살며시 떨어졌다. 서늘한 느낌이 살살 드는 것이, 좀 더 떨어져야 하나?
“디아나. 공사장 인근으로 해서 철조망 치고, 지뢰랑 크레모아 매설하라고 해.”
[지뢰와 크레모아 매설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설치하지 않고 있었다. 지뢰나 크레모아 터지면 거의 90% 인명사고였다. 극성스러운 언론에 사진이라도 박히면 국제적으로 팔리는 꼴이라 피하려고 했다.
이래저래 엮이고 더러워질 위험이 있어, 어지간하면 그냥 있으려고 했는데 아니었다.
“됐어. 내 땅에 내가 지뢰를 매설하겠다는데 어쩔 거야? 소송하라고 해. 철조망 넘어온 새끼가 죽겠다고 들어와 놓고 소송? 여긴 미국이야.”
“그래도 좀.”
“뭐가? 얼굴 팔리는 거? HOLY 광고도 나간 판에 됐어. 설치하라고 해.”
이미 버린 몸이었다. HOLY 하신 그분이 된 판국에 뭘 더 팔 게 있겠나?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갱단과 범죄자들에게 빌딩이 넘어갔으면 어쩌려고 했나? 빌딩을 놈들이 모듈 원전 과부하 일으켜서 더티 밤처럼 써버렸으면? 비상 서버센터에서 정보 빼갔으면?
그냥 갱단도 아니었다. 드럼통 박격포에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놈들이었다. 심지어 숫자도 2,000명이 넘었다.
그걸 자동 포탑과 국토안보국 요원 수십 명으로 막았으면 정말 잘 막은 거 아닌가?
바리바리 두 손 무겁게 선물 싸 들고 감사인사 박아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 군대에 처박고 빌딩 뺏겠다고?
“적당히 맞춰주면서 알아서 수그리고 살았더니, 군대에 들어가라? 조용조용 서로 돕고 살자고 했더니, 5년 동안 뺑이쳐라? 심지어 내 빌딩을 정부에서 관리하겠다고? 그놈의 정부가 없어지면 누가 관리하겠다고 하려나?”
“···정부 없애려고? 진짜?”
빌딩 노린 놈들 잡는 건 좋지만, 그냥 통째로 다 없애려고? 백정 스케일에 화들짝 놀란 김 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정이 정부나 의회에 들어가서 그거로 ‘살!’ 해버리면 아재랑 할아범들 심장마비로 승천할 거 같으니까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하- 내가 썰어 버린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있어도 망할 거 같으니까 그렇지.”
“왜?”
지금 잘하고 있는 거 같은데.
TV 뉴스에서 군대가 EMP 터진 도시를 탈탈 털고 있었다. 잡히면 사돈의 팔촌을 넘어서 걔들 나라까지 쑥밭을 만들어 버릴 상황인데, 갑자기 망한다고?
“지금이야 압도적인 화력으로 폭격 때려 박고, 기갑사단, 기계화 사단 밀어 넣어서 갈아버리고 있지만,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애들은 어떻게 하고? 분노로 강제 수용한 사람들 말이야. 거기 분명히 변종으로 변해 버린 애들도 있을 텐데.”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처음에는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기지만, 이후 치매 증상. 좀비처럼 변한다. 공기로도 감염되고 물리거나 손톱에 긁히면 높은 확률로 확실히 감염됐다.
그런 애들이 EMP로 전기 철조망 터진 틈을 타 사방으로 퍼질 거다. 주 방위군이나 연방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5.56mm로는 택도 없는 애들이.
“기계화 사단이 밀어버리면 되지 않음?”
“되지. 근데 기계화 사단이고 병력이고 전부 도시에 들어가서 폭동 때려잡고 치안 유지하고 있잖아.”
“아- 그럼. 늦겠네.”
“늦지.”
“폭격은?”
“그것도 조만간 끝이야.”
지금이야 눈이 돌아가서 CS탄 뿌려가며 폭격기에 전투기, 헬기 모조리 동원했지만, 벌써 며칠이 지났다. 비전투 손실도 꾸준하게 늘고 있을 거고. 언제까지 그럴까? 육군이 지상 검문 대충 끝낼 때쯤 항공지원도 끝날 것이다.
그럼 두들겨 맞고 있던 변종 괴수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조금씩 조여오던 인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늘에서 공격하던 것들도 사라졌다면?
머리가 좋아진 괴물들이 그냥 산이고 숲이고 박혀 있다가, 다시 얌전히 포위당해 죽어주길 바라는 건 웃기지 않나?
그러니까 공세가 뜸해지면 변이 괴수들이 날뛸 거다. 서부 산지를 시작으로 로키산맥은 거의 마경이 될 테고,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도 마찬가지가 되겠지.
그쪽 도로를 타고 인근 전부 지랄 터지는 거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정리가 끝날 즈음엔 변이 바이러스로 개판이 될 테고.
마루의 예측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TV에서는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EMP로 파괴된 통신망 복구가 늦어지는 가운데, 자연보호 구역과 휴양림 인근 도로에서 연이은 사망사고가 벌어졌습니다.]
[먹이 사슬이 변하면서, 사슴을 비롯한 초식동물들의 이동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사슴을 먹이로 삼는 육식동물도 같이 이동했다는 말씀이시군요.]
[···자연보호 구역, 휴양림을 인근 도로를 이용하시는 운전자분들은 중간에 멈추거나 차에서 내리지 마시고··· 방어수단과 긴급구조용 신호탄을 휴대하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
“저거 변이 괴수가 공격한 거 아님? 늑대나 곰, 코요테 같은 거.”
“그렇겠지.”
‘근데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음?’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대답했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데 말하겠냐? 폭발에 EMP에 난리인데, 거기에 변이 괴수까지 설친다고 하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겠냐.”
“저번에 뉴투브에 나왔었잖음? 사냥꾼들 라이브로 죽었는데?”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라고 해도. 공식적으로 보도하는 건 또 다르지. 그때 영상은 전부 통제했고 그랬으니까.”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던 유럽 주둔 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해, 유럽 각국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군의 철수는 유럽의 안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동일본 지역에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는 미군도 철수를 결정한 가운데···]
[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 철수··· 괌과 하와이, 주한 미군의 주둔 병력이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군사적 행보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면서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평화로운 동아시아 질서에 위협되는 행동으로··· 911테러 직후 미국이 보였던 폭력적인 행동을 다시금 반복하는 행위이며···]
[중국 당국은 중국, 러시아, 북조선 3국 동맹을 추진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마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중국 애들이 미군 문제만 나오면 발광하는 건 항상 있던 일이었으니까 그냥 넘긴다지만, 일본이 조금 걸렸다.
‘일본에서 병력을 빼는 건 좀 이상하네. 꿀 발라 놓은 것처럼 달려들더니, 게다가 중국 북부전구 쪽이랑 교전 중인데.’
이제까지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갑자기 철수라니. 말만 철수고 일본에 있던 군을 주한 미군 쪽으로 보내려는 건가? 그래서 중국이 저렇게 발광인 거고.
그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당장 미군 애들이 일본에서 나가면 나쁠 게 없는 거 같은데. 일본에 남은 꿀 중국이 모조리 독차지하면 되는 거니까. 근데 왜 저러지?
신분 문제로 전화를 다시 건, 덴 브라운 과장이 마루의 이야기를 듣고 운을 뗐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한 것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일본 쪽은 결정이 났습니다.]
일본은 결정이 났다?
흠-
“범인은 찾았고요?”
[···중국과 러시아가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 위력의 EMP 기술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으니까요.]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들이 미국에 EMP 박을 이유가 없었다. 근데 국가가 관여했다고 보기에는 이게 또 미묘했다.
전면전을 노렸다면 지금처럼 혼란한 틈을 타서, 미국 주요 도시 전체를 한 번에 털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서부지역 4개 도시만 먼저 터뜨렸다는 점이 이상했다.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지라, 연방정부에서도 계속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었다.
중국이나 러시아산 EMP탄을 입수한 테러 단체의 소행이다. 그러니까 그 정도 선을 잡고 대응하면 될 일이다.
아니다. 이건 테러 단체의 소행이 아닌, 적국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전면전을 준비해야 한다. EMP탄이 애들 장난인가? 그걸 넘겨줬다는 것 자체가 놈들의 공격이라고 봐야 한다.
전면전을 준비한다는 건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미였다.
중국에서 전해온 정보도 복잡했다.
중국 정부가 EMP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정황이 들어왔다. 중국 정부에서는 북부전구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첩보도 있었고.
황당한 소리였다. 그러니까 미국으로 따지면 주 정부가 주 방위군 동원해서 어느 나라를 공격했는데, 연방정부랑 연방군은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게 납득가나?
북부전구를 일종의 군벌로 생각하고 북부전구가 범인이라고 가정한 뒤, 대책을 세우는 쪽.
북부 전구 탓은 공산당 특유의 시간 벌이용 기만책일 뿐이고 바로 전면전을 준비, 중국을 응징해야 한다는 사람.
어쩌면 전부 러시아의 음모일지 모르며, 이 상황을 러시아가 이용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EMP가 어떻게 유입됐는지 따라가다 보면 신일본 연합과 연관됐다는 소리에.
범인이 누구든 어떤 나라이든 무조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그리고 난 결론.
일단 일본 관동지역부터 날려 버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눈이 돌아간 미합중국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