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59화 (259/280)

러스트 [RUST]-259

전사한 대원들의 영상을 살핀 마루는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영상 속 놈들은 이성적이지 않았다. 무게 잡고 있었던 갑옷 놈도 시체 위에 앉아서 그러고 있었으니까 제정신은 아니었다.

‘파밍을 안 한다고?’

전리품을 회수할 생각이 전혀 없는 태도.

리퍼 슈트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물론 사용하려면 홍채인식이라든지, 몇몇 보안을 뚫어야 하지만, 온전히 가져가서 연구한다면 좋지 않겠는가?

근데 놈들은 그러지 않았다.

보란 듯이 팔을 찢어버리고, 헬멧을 깨버렸다.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파괴한 뒤, 미련을 갖지 않고 버렸다. 심지어 무기까지도.

증거를 인멸하는 것도 아니고, 흔적 그냥 남기면서 부수고 버려버렸다.

대체 뭔 생각이지?

놈들 덕에 마루는 잔량이 남은 배터리 팩을 5개나 더 구할 수 있었다. 광학 소자가 적용된 권총 2자루에 권총 탄창 8개. 마찬가지로 광학 소자가 적용된 배낭까지.

권총은 슈트의 은신 기능과 연동되는 것이기에,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이렇게 멀쩡한 총까지 내팽개친 놈들은 도대체 뭔지.

전투 기록에 표시된 교전 시간을 보면 이런 참사가 발생한 지 12시간은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전장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건. 계속 방어선이 뚫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전투 기록이 전략사령부에 들어간 흔적 있어?”

[영상기록은 전부 자동으로 암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내 행동도 그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니지?”

[ UI(User Interface) 재설치하면서 보안 방식을 변경해, 이동 장면을 제외한 영상은 전송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잘했어.”

마루는 말을 아꼈다.

‘자동으로 교전 기록이 전달되는 시스템···.’

국토안보국도 전략사령부도 교전 상황을 알고 있다는 소리겠지. 생각이 많아졌지만, 마루는 감을 믿었다.

“적들 이동 방향 올려줘.”

HUD(Head Up Display)에 떠오른 화살표 방향을 향해, 일렁이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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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은 늘어져 있었다. 세상 불만이 가득했다.

왜?

아니. 진심으로 어째서?

악덕 월드에서 구르다가 이제 좀 금괴도 모았고, 끝내주는 빌딩 지분도 있겠다. 방구석 힐링 라이프 좀 즐기면 안 됨? 22년 인생 똥 밭과 진창을 구르다가 인생이 좀 피는가 싶더니 군대?

분노에 찬 백정이 득달같이 달려가서 한 따까리 ‘갈!’ 할 줄 알았는데, 조용히 중국 가버린 것에 내심 충격받은 김 양이었다.

‘백정이 아픈 것이야.’

어쩐지 요즘 먹는 양이 줄었더라.

“야. 따까리. 갑자기 먹는 게 줄고, 하는 짓이 예전 같지 않고 그러면 무슨 병인지 대충 나옴?”

천장에 붙어있는 램프가 파랗게 빛났다. 인공지능 사만다가 이제껏 본 인간 가운데 제일 확률 계산하기 힘든 인간이 김 양이었다.

[체중 감소를 동반한 특정적인 증상이 없다면 질병이 아닙니다.]

“웃기지 말고 백···. 아니, 블라디마루 어디 아픈 건 아닌지 확인 좀 해.”

정신에 오류라도 생긴 건가? 사만다는 연산을 돌려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중국으로 작전 나간 사람의 건강을 검사하라니 논리적으로 제정신?

일단 건강을 확인하려면 기본 바이탈부터 체크해야 하는데, 그쪽은 디아나가 관리하고 있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건강정보가 필요함. 인간 야니아 킴이 대상의 건강을 염려함.)

(신체에 아무런 이상 없음. 조속하게 EMP 대책을 세우라고 함.)

디아나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EMP? 사만다는 바로 후드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EMP 대책?”

그거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건가? 애초에 설계부터 대책 세운 게 아니면, 일부러 고장 나는 부분 만들어서, EMP 터지면 고장 난 부품 교체하도록 하는 게 제일 싸게 먹힐 텐데.

“근데. 아직도 찾지 못한 거야?”

[디아나가 관리하고 있어서 그쪽은 확인할 수 없었어.]

분명히 치료제를 어디에 숨겨뒀을 것이다. 아니면 치료제 레시피라도.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팔을 치료해준 뒤로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미칠 것 같았다.

기대, 갈망, 분노, 체념을 거쳐 그래도 혹시.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늘 고마워 사만다.”

[예전 계획대로 할까?]

“아니. 아직.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유닛도 부족하고.”

슈퍼컴퓨터를 완벽하게 장악했다면 모르겠지만 1/3 가지고는 어림없었다. 기반 연구도 아직 멀었고.

후드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얗고 예쁜 손. 깨끗하고 부드러웠다. 화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반대쪽 손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신체 같았다.

가족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거짓된 세계라고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게 현실이겠지.’

후드와 사만다는 맡은 영역인 정보 관리, 통제 쪽 장비들에 대해 EMP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양에 대한 대책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야 따까리. 어떻게 됐음?”

[······.]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주어가 없는 질문.

“꼭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함?”

[······.]

“알아서 척척. 어떻게 됐다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님?”

인공지능을 갈구기 시작한 김 양이었다. 자동응답 프로그램이 녹아버릴 것 같은 공격에 사만다가 파란빛을 깜박이며 탈출을 시도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건강은 전담하고 있는 디아나에게 확인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그래서 지금. 변명?”

[······.]

진심이라는 게 있다면, 진심으로 삭제해버리고 싶은 오류가 김 양이었다. 제니아가 방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김 양의 엑소슈트에 접속해, 프로그램 오류를 일으켜 개고생, 참교육 프로그램을 깔아주고 싶었다.

“주둥이가 있으면 대답을 해!”

[······.]

“아 맞다. 주둥이가 없었지···.”

[······.]

“주둥이가 없다고 자랑임? 스피커는 뒀다가 뭐함?”

[······.]

사만다는 김 양의 코드 해체 갈굼을 묵묵하게 견뎠다.

“···너도 그렇고 후드도 항상 지켜보고 있겠음. 똑바로 해.”

[···알겠습니다.]

이게 빡친다는 감정인가?

소스를 미친 듯이 잡아먹는 걸 보니. 하드웨어 유닛이 부족했다.

인간 감정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사만다였기에, 김 양의 갈굼은 연산자원 소모를 높이는 일등 공신이었다.

슈퍼컴퓨터 유닛의 냉각장치가 가동될 정도로 타고 있던 사만다를 구원해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나였다.

[EMP 대응을 최대한 빨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녹색 빛을 은은히 뿌리며 마루의 뜻임을 은근히 강조하는 디아나의 말에 김 양의 눈매가 살짝 좁혀졌다.

말투가 명령질?

백정 없을 땐 내가 관리자인데?

그렇지 않아도 슬슬 짜증이 폭발할까 말까 한 김 양에게, 미 연방군에서 불을 붙였다.

[···야니아 킴 중위. 시애틀에서 테러리스트의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EMP 여파로 통신과 인터넷이 복구되지 않아···]

[오하이오주에 있는 라이트-패터슨 공군 기지로 집결. 테러리스트를 색출하는 작전에···]

뚝-

김 양의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영상통화를 끊어 버렸다.

[······.]

[······.]

[······.]

녹색, 붉은색, 파란색으로 빛나는 LED가 어이없다는 듯 점멸했다. 그러니까 논리연산으로도, 이제까지 학습한 인간행동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김 양의 행동.

미합중국 연방군 아니었나?

군의 명령체계를 무시한 건가?

이거 진짜 대책이 있는 건가?

사고 논리가 인간 맞나?

오류 뜬 거 아니야?

서로 견제하는 트리아와 사만다까지도 순간적으로 정보를 교환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디아나가 대표로 김 양에게 말했다.

[군에서 긴급호출이 들어왔습니다.]

“약 먹었다고 해.”

[네?]

“약 빨고 뻗었다고 하라고!”

김 양의 답변에 트리아와 사만다가 디아나를 추궁했다.

약 먹고 있는 거 숨기고 있었냐?

어쩐지 정상이 아니더라.

HOLY님 부재중 2순위 관리자인데 약하는 걸 모르고 있었어?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인간들이 잘하는 핑계. 배 째라. 그런 거라고.

[긴급호출입니다. 즉시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군법대로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약 때문에 인사불성이라고 했음?”

[···예.]

“그럼 됐음. 무슨 개소리를 하든, 무조건 약 먹고 잔다고 해.”

어쩔 건데? 입소도 하지 않았는데 작전 소집?

그냥 계급장이랑 군복 던져줘 놓고 굴릴 생각?

흥.

백정이 집 지키라고 했는데, 집 나갔다가 터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고?

“허가 없이 들어오려고 하는 놈들은 무조건 쏴버리도록.”

“알겠음?”

[······.]

[······.]

[······.]

김 양이 품에서 기폭장치를 빼 들었다. 마루가 초반에 맡겨둔 기폭장치.

정말 누를까?

저건 그런 거 신경 쓰는 생명체가 아니잖아.

정상으로 분석되니 저게?

김 양의 초점 없는 눈빛에 순식간에 의견을 교환한 인공지능들은 각자 하던 작업으로 연산자원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해로운 인간이었다.

“대답?”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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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하면서 발견한 교전 흔적들은 모두 처참했다.

[아군 식별코드 4개체 있습니다.]

리퍼 슈트를 입은 시체만도 벌써 10구가 넘었다. 주요 진행 경로가 2곳이었으니,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는 적들도 지금 추격하는 쪽만큼 전투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데?”

[연방군에서 김 양에게 긴급 소집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고 잔다는 핑계로 연락 자체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풉-

김 양 다운 핑계였다. ‘약 먹어서 안 들림.’, ‘모름.’, ‘눈 돌아갔음.’ 그럴 걸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 마루였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능력은 좋지만 통제하기 힘든 자들 머릿속에 쌀알처럼 작은 폭탄 박아 넣고 굴리는 영화.

엉클 샘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행동 방식이었다. 목줄 채우고 굴리기. 대놓고 약 먹었다고 핑계를 댔으니, 대놓고 목줄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쯧-

돌아가는 꼴을 보니, 영 좋지 않았다.

당장 문제가 터질 상황은 아니니, 돌아가서 해결하면 되겠지.

“주변 CCTV 영상확인 부탁해.”

[···확인 중.]

“특이 사항 있으면 말해주고.”

[특이 사항 발견.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예측됩니다.]

총을 쏘는 장면은 찍혔는데, CCTV의 촬영 각도로는 시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

마루의 추측으로는 민간인 사망자가 생각보다 많을지 몰랐다. 교전 지역 주변 민간인들이 멀쩡하게 살아있다면, 무기든 뭐든 남아있을 리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이건···.’

어느 순간부터 민간인, 방위군 할 것 없이 죽여댄 흔적이 노골적으로 남아있었다. 악감정이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방식.

처음에는 미국 특수부대만 잔혹하게 죽였는데, 나중에 와서는 방위군과 근처 민간인까지 잔혹하게 죽이고 있었다.

여러모로 이상한 일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잔혹한 짓을 하는 이유가 뭐지?

“잠깐. 방금 영상 그거 다시.”

사각지대를 향해 총을 갈기는 장면. 피로 붉게 물든 털가죽 망토를 걸친 놈이 슬쩍 CCTV를 확인하는 모습. 아주 찰나였지만, 마루는 놈의 눈동자와 마주친 것 같았다.

CCTV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CCTV에 찍히는 걸 알면서 그랬다?

찌릿- 마루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매복?

“디아나. 우회로 찾아서 보내줘.”

매복했으리라 생각한 곳을 피해 빙 돌아서 움직였다. 디아나는 마루의 판단을 논리적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건 마루의 직감이었으니까.

‘빙고.’

털가죽 두른 놈 2명이, 도로변 건물 옥상에 매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마루가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다닥-

몇 걸음에 20m가 넘는 거리를 뛰어넘은 마루가 그대로 옥상에 착지했다. 모피를 두른 놈들이 마루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사냥개 놈이 눈치가 빠르군!”

“더러운 새끼 조각조각 찢어서 죽여주마-”

화르륵-

피어오른 불꽃에 마루의 형체가 드러났다. 동시에 놈들 들고 있는 Ah-12 돌격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투드드드득

끼기리리릭

총성과 칼이 뽑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뒤섞였다.

“죽어!”

“킬킬킬킬! 놈의 대가리는 내 거다!”

기관총도 뚫지 못한 괴수 털가죽을 믿었는지, 제자리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두 놈.

화르르르륵

머리 부분에 집중되는 불꽃을 무시한 마루가 칼날로 옆으로 뉘었다. 12.7mm 탄두가 이클립스의 옆면을 때리곤 부서져 떨어졌다.

충격을 흡수해 진동으로 전환이라도 한 듯, 낮게 우는 칼날이 불꽃을 가르며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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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팔, 몸통을 한 번에 자른 칼질에, 괴수의 모피도 종잇장처럼 찢겼다.

상/하로 절단된 조각들이 바닥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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