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63
긴급 비상회의.
1급이라는 건 국가안보에 긴급한 위협이 닥친 상황이라는 말.
덴 브라운 과장은 환자복에 링거를 꽂은 채로 회의에 참석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찍은 영상이 사실이라면.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그는 그냥 이상하다 싶어 찍었겠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리퍼 슈트를 입은 특수부대가 3팀이나 참혹하게 죽은 영상. 문제는 그렇게 당한 팀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라는 것.
“베이징에 침투한 북부전구 초인들이 일본인이라고 했지요?”
“시신 훼손이라. 미쳤군요.”
“단순한 훼손이 아닌 고문의 흔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 3번 선제공격을 했음에도 한 명도 사살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세 팀이나 잡히는 동안, 적을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는 게 정상인가?
“···확실히. 적들이 본국에 잠입해 테러 활동을 시작한다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생기겠군요.”
“최정예 특수부대가 그렇게 당할 줄이야.”
리퍼 슈트에 최신형 총화기, 그걸 활용하는 대원은 최정예 대원 덧붙여 전투자극제(약물)까지. 현재 미합중국이 사용할 수 있는 최상위 자원을 총동원한 특수부대가 손도 쓰지 못하고 전멸한 사건.
“일본 관동지역에서 확보한 능력자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다양한 능력자들이 생기거나, 변화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 일본에서 발생하는 신체 강화 능력자들은 평균적으로 성인 남성의 2~3배 정도라는 것. 간혹 특이 능력자들이 있었지만, 고속 재생, 분해성 타액과 같이 생물학적인 범주에서 가능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베이징에서 마주친 적들은 아니었다.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한 무시무시한 전투력. 화염계 능력자로 보이는 특수한 능력.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보여준 신체 변이까지. 의학, 생물학, 유전공학 등 기존의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능력이었다.
“중국군을 일본에서 쓸어 버렸으니, 차근차근 살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상을 벗어난 적들이야 언제든 있었으니까요.”
한반도 남북전쟁(6.25), 베트남전, 아프간전만 보더라도 그랬다. 예상 밖의 적들, 예측을 벗어난 전장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정황을 담은 교전 영상이 전략사령부를 비롯한 군에 전달됐음에도, 적들의 능력이 심상치 않음에도, 군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덴 브라운 과장은 이 부분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작전에는 보안이 생명입니다.”
“지금 상황이 단순한 보안 문제로 보입니까?”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한 일 아닙니까?”
“보안이 생명이라면서, 여기저기 제약사, 군수 기업 사람들과는 꽤 빈번하게 만나셨더군요.”
“···전장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춘 요구사항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로비를 받고 정보를 숨겼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로비를 받고 정보를 풀었다는 말입니까?”
“로비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정보를 숨겼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거 아닙니까?”
“국가안보가 달린 작전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정보 통제를 했다는 겁니까?”
국토안보국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군의 힘을 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국토안보국에서 관리하는 블라디마루 칼린과 그 일행을 가로채겠다고 일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 정도 되는 초인을 군부가 관리한다면 앞으로 무슨 짓을 하겠는가?
MK울트라 프로그램 지랄 났던 거 떠올려봐라. 버지니아와 군부가 짜고 치다가 초대형 스캔들 터질 뻔하지 않았던가. 군부와 제약회사의 합작도 마찬가지였다. 전역 군인들과 빈민들에게 행해진 대규모 매독균 실험.
지금 일본에서 데려온 신체 강화자들과 격리수용을 하고 있는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들도 군부에서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감추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믿을 수 있겠나?
“미합중국을 위해서 헌신하는 군을 모욕하는 것이오!”
중장의 강한 반발에도 덴 브라운 과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비상시 당연히 군이 가진 권한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했지만, 덴 브라운이 판단하기엔 군이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지금 그 발언은 빌리언 모라 장군이 군을 대표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군과 같은 상명하복 조직에서는 개인의 잘못이 전체의 명예나 체면과 연결되기는 경우가 잦았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의 뒤를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빌리언 모라 장군은 그런 특성을 이용해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덴 브라운 과장은 그걸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지금 네가 물어뜯는 건 군의 명예를 짓밟는 거다.’
‘그럼 당신의 개 짓거리는 군 전체가 동의한 일이었다는 거냐?’
회의실에 있는 다른 군인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보안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핵과 관련된 작전입니다. 핵전쟁이 터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정보를 통제하는 건 명백해 월권 행동입니다.”
“작전 시에는 작전 책임자에게 모든 권한이 있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 권한에 작전 상황을 은폐하고, 피해를 숨기는 것까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군을 의심하는 겁니까?”
“말 돌리지 마십시오. 장군. 장군은 군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며, 미합중국 연방군 그 자체도 아닙니다. 국토안보국은 군을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니라, 빌리언 모라 장군 당신을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긴급회의 도중에 발생한 사상 초유의 사태. 정보기관 과장이 육군 장군을 대놓고 받아버린 상황에 침묵이 흘렀다.
“긴급명령을 발동해, 빌리언 모라 장군이 숨기고 있는 모든 자료를 즉시 제출하도록 하는 것을 건의합니다.”
“현재 군 작전은 극비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안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전이 유출될 위험이 있는 자료의 제출은 미합중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입니다.”
투표가 시작됐다.
“작전과 관계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관련자들을 전부 소환한다.”
“빌리언 모라 중장의 명령권을 회수한다.”
베이징 작전을 총괄한 별 셋 장군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소환됐다. 빌리언 모라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이 회의실로 들어오면서 회의장은 뒤집혔다.
현대전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정보의 은폐나 교란은 전술,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최소한 긴급회의에서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빌리언 모라 장군은 정보를 은폐하고 있었다. 숨긴 이유가 정말 보안 때문인지, 미합중국의 국익을 위함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베이징에서 확보한 정보의 은폐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략과 전술을 모조리 폐기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지원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까?”
“북부전구가 일본인 초인들을 용병으로 쓰고 있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 않습니까?”
“원점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일본 관동지방에서 중국 북부전구의 병력 35~40%가량 깎아 먹었다. 중국 전체의 병력 40%를 차지하고 있는 북부전구의 실질적인 전투력을 절반가량 날려 버린 것이었다.
이는 중국 전체의 전투력을 100이라고 봤을 때, 최소 20은 날려 버린 쾌거였다. 이후, 중국 중앙 정부는 북부전구의 지휘부를 숙청하려고 했고, 북부전구는 이에 반발 내전이 벌어졌다.
버지니아는 이런 상황에서 북부전구를 지원했다. 미국이 북부전구의 전투력을 박살 내, 내전이 어이없이 일찍 끝나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길게 오래 내전이 벌어지는 것. 나중에는 북부전구가 독립하고 그 여파로 중국이 여럿으로 쪼개질 수 있도록 공작하는 게 버지니아의 할 일이었다.
북부전구가 중국에서 독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핵 억지력이었다. 버지니아는 북부전구와 비공식적으로 연합해. 핵시설의 확보, 핵 보안 카드의 확보를 노렸다.
빌리언 모라 장군을 비롯한 일부 강경파 군인들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중국을 날려 버릴 계획을 세웠다. 핵 보안 카드를 확보하거나 폐기한 뒤, 중국을 날려 버리자고. 겸사겸사 일본 초인이라는 것들도 같이.
적의 대가리를 따고 일본 초인이랍시고 설치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초인이 필요했다. 그게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집착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중국 중앙 정부가 이걸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상황을 전부 알고 있었다고요?”
“중국과 일본과 닿았다는 의혹이 있는 자들을 전부 감시하고 있는데 말입니까?”
“한국과 대만, 동남아 쪽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친중파, 친일파가 넘치는 한국과 대만이었다. 한국과 대만에 끈이 닿은 자들이 이쪽으로 정보를 보내고, 한국과 대만에서 중국과 일본에 정보를 전달했다면? 동남아 국가의 상류층도 마찬가지였다. 중국계 화교 아니면 친일세력이었으니까.
“중국이 이쪽 계획을 전부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지 그것부터 다시 생각해 보죠.”
“그것도 그렇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낸 자료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변이 바이러스 창궐을 막겠다는 명분. 베이징에 침투한 적들과 교전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장소가 완전히 봉쇄됐다.
바이러스 창궐로 봉쇄했다는 지역으로 다량의 물자가 이송되는 정황이 인공위성을 통해 파악됐지만, 도시를 봉쇄했으니 많은 물자가 필요한 것이 당연했기에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낸 영상 자료에 따르자면 도시를 봉쇄하다시피 해놓고는 지하에서 거대한 쇼핑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시국에 쇼핑몰? 있던 쇼핑몰도 문 닫을 상황에서? 그것도 사실상 지하 도시급으로?
부랴부랴 정보를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상하이를 비롯해 우한, 텐진, 베이징 등 주요 도시가 봉쇄됐고, 봉쇄됐을 때마다 다량의 물자가 이동된 것이 확인됐다.
“쇼핑몰이 핵 방공호 시설을 위장한 것이라면.”
“위장이 아니라 핵 방공호를 겸할 수 있게 만든 것이겠죠.”
변하는 건 없었다. 전염병 사태를 이용해서 대규모 공사를 했고, 그 공사가 핵전쟁 대비 공사였다는 건 사실이니까.
전염병이 퍼진 순간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중국은 핵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회의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핵 보안 코드가 베이징에 침투한 자에게 넘어가, 핵미사일이 발사됐다고 가정하면···.”
미합중국은 핵미사일을 발사한 중국에 핵 보복을 해야 하는가? 내전 중에 핵 코드를 뺏겼을 뿐인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핵 보복에 들어가면, 중국과 러시아도 핵을 쏠 것이다. 사방에서 핵이 날아다니고 3차 대전이 터지겠지.
그러니까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은 핵을 처맞고 인내할 것인가? 아니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핵을 쏜 중국에 핵을 꽂아 버릴 것인가.
미합중국이 이번 기회를 통해 중국을 밟고 찢으려 한다는 것을 중국이 알고 있었다면, 어쩌면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이라면, 중국 정부의 마지막 계획은 무엇일까?
“핵 보안 코드를 일부러 넘길 가능성도 있군요.”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도 명분을 쌓고 증인과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불안한 기운이 회의장에 퍼지는 가운데, 빌리언 모라가 흐흐- 낮게 웃었다.
갈 길을 모르고 헤매는 양 떼를 보라. 정보를 숨긴 이유가 뭐냐고? 이럴 줄 알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노렸을지 모른다고? 어쩌란 말인가? 작전참모부에서는 그런 시나리오도 가지고 있었다.
피해를 최소화할 해결 방법? 있다.
핵 보안 코드를 확보 폐기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 고위층을 모조리 도륙 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베이징에 들어가 적 초인들과 중국 지도부까지 싹 쓸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핵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참 군인. 미합중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할 수 있는 병사만 있다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장군님···.”
“···기다리게.”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빌리언 모라는 깍지를 끼고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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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르르릉-
낮은 짐승 소리와 함께 목이 잘린 놈이 쓰러져 버둥거렸다. 닭도 아니면서 목이 잘렸는데도 한참을 몸부림치는 몸뚱이. 붉게 치솟은 피가 순식간에 검붉게 변색하는 것은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제일 짜증 나는 것은 추격전이 아니라 갑자기 술래잡기가 되고 있다는 점.
“이것들 장난치는 거지?”
[CCTV 자료가 실시간으로 삭제되고 있습니다.]
CCTV에 잡힌 영상을 바탕으로 추적하고 있었는데, 놈들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었다.
“해킹당한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뭐야?”
[데이터 센터에 저쪽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중앙데이터 센터에 있는 놈이 자료를 지우고 있다는 의미. 디아나가 블랙박스를 해킹해 이렇게 저렇게 추적하고 있지만, 효율이 달랐다. 인터넷 연동 블랙박스를 다 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베이징 방어부대와 이것들 사이에 교전한 흔적이 없다는 것은 너무 이상했다. 지하 쇼핑몰에서부터 교전 흔적에는 미군 특수부대 시체만 있었다.
“방어군은 완전히 뚫린 건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꼴꼴꼴
마루는 휘발유와 등유를 섞은 기름을 꿈틀거리는 시체에 뿌리고선 불을 붙였다. 활활 불에 타면서도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잡쳤다.
놈들의 능력이라면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가도 충분히 뚫고 갈 수 있을 텐데. 이틀 넘게 빙빙 돌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주력은 이미 중국 고위층과 주석이 있는 곳을 공격한 것 아니야?”
[아직 그런 정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기는 한데. 그냥 무시하고 갈까?
놈들이 워낙 이상한 놈들이라 싹 잡아버리려고 했더니, 숨바꼭질이다.
[국토안보국과 전략사령부, 버지니아의 연락입니다.]
“국토안보국부터 연결해줘.”
요양병원 환자복을 입은 덴 브라운이 영상에 떠올랐다.
“몸은 괜찮은 겁니까?”
마루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은 덴 브라운 과장이 입을 열었다.
[···핵 보안 코드의 폐기를 최우선으로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