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65화 (265/280)

러스트 [RUST]-265

가다마 키리코는 은신 장비 속에서 감춘 핵 보안 코드집을 다시 고쳐 잡았다. 두툼한 파일 속 완벽하게 코팅된 종이에 적힌 코드엔 종말이 담겨있었다.

작전은 완벽했다. 미국의 개입도 예상대로였고, 중국군의 대응도 예상대로였다. 다만 마지막에 인민대회장에서 핵 보안 코드를 빼내는 과정이 너무 쉽게 넘어간 게 조금 걸렸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하지만, 사상자 1명도 없이 2만 가까운 병력이 방어하고 있는 천안문을 이렇게 쉽게 뚫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안했다.

‘어쨌든 상관없어.’

핵 보안 코드가 진짜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북부전구에 있는 핵시설과 서부전구 그러니까 위구르 지역에 있는 핵시설에는 이미 대원들이 침투해 있었으니까.

비활성화된 핵탄두라도 상관없었다.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날아오르면 미합중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게 텅 빈 깡통 미사일이기를 손잡고 기도할까? 아니면 조국을 짓밟았듯 응징할까?

전 세계에 핵이 난무하게 된다면 제일 안전한 곳은 일본이었다. 더 부술 게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규슈는 아소 화산을 비롯한 9개의 화산이 터져 끝장이 났다. 시코쿠는 쓰나미로 절단 났고, 관동지역은 끝장난 지 오래. 홋카이도 그 동네에 핵을 쏴서 뭘 하겠나?

그렇기에.

그러므로.

전 세계가 타오를 핵의 불꽃 아래, 가장 안전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될 것이고, 제일 처음 휩쓸릴 곳은 조선반도가 될 것이다.

‘박쥐년이 모국을 버리고 좋을 줄 알았나?’

샬롯년. 네년이 도망친 반도는 불타오를 것이다. 기괴한 미소를 지은 가다마 키리코가 폭파 스위치를 눌렀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옹기종기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던 중국군이 바닥의 얼룩으로 변했다.

폭탄이 터지면서 한쪽에 쌓여있던 백린탄이 같이 터지면서 죽음의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시리도록 하얀 연기 속에서 찢어지는 절규가 이어졌다.

키리코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것들도 비명을 지르는구나. 또 아쉬웠다. 미국놈들이 피눈물 흘리는 것도 봤어야 하는데.

키리코와 그의 경호원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중국 새끼들이 쌓아 놓은 물자들이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처절한 비명처럼 끝없는 폭발이 이어졌다. 지상에 강림한 지옥. 은신 장치를 장비한 초인들이 투명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얀 죽음의 연기가 길을 열고, 불타오르는 네이팜의 불꽃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더러운 귀축들은 서로를 향해 핵을 쏠 것이고. 이제 폐허에서 부활한 초인의 나라 일본은 세계를···.

크어어억!

허윽!

후방에서 조금 떨어져 호위하던 두 사람이 거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은신 장비 중이라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사토! 구로타아아하윽-”

키리코 바로 뒤에서 그녀를 호위하던 경호원의 외침이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변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한 걸음이라도 더 나가는 것.

죽을지언정 후회하지 않으리. 벚꽃처럼. 키리코는 자폭장치를 쥐고 뛰었다. 이제야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하이쿠의 의미를 조금은 알 법했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바라옵기는··· 키리코의 생각이 끊겼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전신에 쥐가 난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크흐읍··· 이···.”

파르르르릇- 몸속에 받아들인 신께서 분노하고 있었다. 쥐어짜지는 공간의 압박을 벗어나기라고 할 것처럼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신과 결합하는 느낌. 어떤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갇히고 찢기고 불타오르고 그 끝에 보인 기억. 칼을 들고 싸우는 모습.

어디서 봤지?

할아버지가 오니라고 했었던.

그 남자.

이 기운. 죽음의 기운.

그래 이건 그 오니의 기운이었다.

신의 원수. 할아버지의 원수. 그리고 지금은.

끼에에에엣

키리코는 전신에 뼈가 사라진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급격한 움직임에 뻣뻣한 은신 장비가 깨져나갔다. 파지지직- 광학 소자가 깨지며 군데군데 터져버리는 은신 장비 속에서 키리코가 뒤를 향했다.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음과 동시에 쏘아낸 그녀.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며 5m 넘게 떨어진 공간을 찔렀다.

크르르르-

짙은 연기 건너 짐승의 으르릉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쏘아 보냈던 칼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예민해진 감각이 맹렬하게 죽음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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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쓰러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은 심장마비로 죽었고, 강한 자들은 숨을 쉬기 위해 필사적으로 헐떡였다.

짙은 연기 건너 느껴지는 더러움. 리퍼 슈트 헬멧으로 모든 공기가 정화되고 있음에도 질기디질긴 것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순간 정면에서 폭증하는 살기에 마루는 칼을 휘둘렀다. 울퉁불퉁한 칼날이 육식 동물처럼 으르렁거렸다.

뾰족하게 쏘아진 일본도가 절반으로 뜯겼다. 일본도를 붙잡은 팔이 고무줄처럼 짙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마루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덕분에 당분간 오징어, 낙지, 문어는 쳐다보지 않게 생겼다.

‘이것들이 어디에 있을까?’

방금 살기와 칼날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던 마루가 바닥을 박차고 훌쩍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열 감지 모드.”

HUD의 영상이 변하며 열감지 영상이 떠올랐다. 5~6m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잡힌 영상. 파랗게 차가운 바닥과는 조금 다른 하늘색 덩어리가 넷.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칼날의 발톱을 세운 마루가 짙은 연기 속을 뚫었다.

공중에서의 습격 그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공격.

하지만 키리코의 몸에 녹아든 그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키리코였으니까. 위기를 감지한 그녀의 허리가 역으로 90도로 꺾였다가 다시 횡으로 120도로 돌아갔다.

전신이 탄력 넘치는 고무줄이라도 된 것처럼 휘리릭- 소리와 함께 튕겨 오른 키리코의 팔엔 반쯤 씹어 먹힌 일본도가 들려있었다.

하늘로부터 내려친 수직의 공격을,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으로 피한 키리코의 반격에 마루는 간단히 대응했다.

크르르르---

마루의 칼질에 반절 남은 키리코의 일본도가 손잡이만 남았다.

피잉- 공기를 뚫고 날아온 칼 손잡이를 고개를 옆으로 까닥해 피한 마루가 짙은 연기 안으로 달려들려는 순간, 마루의 다리를 노리는 무언가.

정면을 뚫으려던 칼날이 역으로 회전하며 다리 아랫부분으로 동그랗게 훑었다. 은신 장비가 찢어지며 팔뚝이 잘린 사내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아가씨 피하십시오!”

외치자마자 이빨로 물어 뽑은 안전핀. 팅-하는 클립 튀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마루가 사내를 걷어찼다. 강력한 발차기에 니은 자처럼 허리가 접힌 남자가 연기 너머로 날아가, 폭음으로 변했다.

“구로타!!!”

타다다다당

Ash-12.7mm 돌격기관총의 총구가 총알을 뿜었다.

은신 장비로 숨긴 채 마루를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마루는 칼날을 비스듬히 눕혀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대는 것으로 가볍게 막았다. 12.7mm 총탄이 가진 막대한 충격에너지를 흡수한 이클립스가 울어댔다.

충격에너지를 진동으로 전환, 증폭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칼날을 타고 피어오른 아지랑이 같은 파동.

마루를 시뻘겋게 달아오른 총구가 있는 공간을 향해, 아지랑이를 밀어 넣었다.

끼이이이잉-

치과 스케일링 소리 같은 높은음과 함께 두툼한 12.7mm 돌격기관단총이 썰렸다. 총신이 잘리며 총을 잡고 있던 팔뚝이 절단됐다.

칠판을 긁는 칼날의 소음. 검붉게 피어나는 혈흔이 일직선으로 쭉 벌어졌다. 은신 장비와 두툼한 괴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가 쪼개지며 내용물이 아래로 쏟아졌다.

끄아아아압!

비명이 아니라 기합.

잘리지 않은 손가락으로 잡아당긴 안전핀이 클립의 목줄을 풀었다.

팅-하고 튀어 오른 클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마루의 칼질이 이어졌다.

‘질긴 것들.’

마루는 방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놈들 세로로 쪼개도 한참을 버둥거리는 것들 아니던가? 목을 잘라도 몸뚱이가 버둥거리는 놈들인데 상/하체로 분리됐다고 얌전히 죽을 리가.

확실히 보내려고 했는데, 놈이 조금 빨랐다. 사선으로 자르고 지나간 칼끝을 돌려 다시 수평으로 자르는 순간 안전핀이 뽑히고 클립이 튀었다.

1초

휙- 사선으로 베고 지나간 칼끝이 수평으로 방향을 바꿔 다시 지나갔다.

2초

수평으로 지나간 칼끝을 따라 몸을 회전시킨 마루가 다리를 뻗어 조각조각 무너지는 시체를 걷어찼다. 부채꼴로 흩어지는 조각들

3초

콰콰쾅!!!

조각을 냈음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연쇄폭발이 터졌다.

“저기다!”

“쏴!”

“통째로 날려버려!”

“박격포!”

40mm 대공포로 폭발이 일어난 근처를 전부 갈겨버리는 중국군. 박격포를 비롯한 폭탄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얗게 낀 연기가 뿌연 먼지와 파편으로 누렇게 변했다.

폭발의 열기로 얼룩덜룩해진 영상. 놈들의 흔적을 열감지 영상으로 찾을 수 없었다. 주변 전체를 뒤집는 포격이라 안으로 들어가 확인할 수도 없었고.

“씨바아알!”

마루는 혈압이 올랐다. 다 잡았는데 중국이 초를 쳤다.

공격헬기가 주변에 로켓탄을 뿌려댔다. 박격포탄이 터지고 40mm 대공포가 훑고 지나간 곳은 말 그대로 폐허였다.

포격에 휘말려서 죽었을까? 아니면 탈출했을까? 어느 쪽이든 100% 확신할 수 없었다.

“디아나! 인근 CCTV는 아직?”

[CCTV 전원을 물리적으로 차단해서 해킹할 수 없습니다.]

중국 놈들 무슨 생각이지? 인근 CCTV 최대한 돌려서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어?

놈들이 저기서 살아서 도망쳤다면? 놓쳤다면?

“한국에 대기하고 있는 신형 전략기 호출해.”

“지금 당장!”

[호출했습니다.]

“지금 영상. 덴 브라운 과장에게 보내.”

“내용은 코드를 탈취한 것으로 보이는 적과 교전. 4명 가운데 2명 사살. 중국군 대응으로 적 생사확인 불가능. 추격 불가능. 전략기로 퇴각한다.”

[보냈습니다.]

“탈출 중이라 연락받지 못한다고 해.”

마루의 감각은 빨리 중국에서 벗어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불길했던 그 느낌이 점점 더 커졌다. 어디를 둘러봐도 진창인 것만 같은 기분.

[도착 예정시간은 현재 시각을 기준으로 24분 뒤입니다.]

공항을 향해 마루는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천안문 광장에서 공항까지 직선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직선으로 쭉 뻗은 텅 빈 도로가 부산스러웠다.

처음에는 없었던 바리케이드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트럭과 장갑차를 타고 모이는 병력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북부전구 초인들이 밀고 들어오고 있는 건가? 공항 상황은 어때?”

[CCTV로는 확인 불가능합니다. 통신 감청으로는 문제없습니다.]

텅 빈 공항 활주로는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조용했다. 착륙했을 때는 멀리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었으니까.

[도착 예정시간 5분 남았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마루가 숨을 살짝 골랐다.

“다른 문제는 없지?”

[국토안보국에서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10분 뒤에 연락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무조건 비행기 타고 뜬 뒤에 연락할 생각이었다. 일단 미국으로 돌아간 뒤, 부상을 핑계로 빌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공항 방위대에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착륙하는 항공기를 나포하라는 명령입니다.]

“뭐?”

이 새끼들이 미쳤나? 핵 보안 카드 문제가 터졌으니, 막 가겠다는 건가?

[생포할 것. 항공기 원형을 유지할 것.]

[비행기가 착륙하면,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로 위협해 나포할 계획입니다.]

활주로 옆으로 HQ-7 계열로 보이는 지대공 미사일 발사 차량과 40mm 대공포 차량이 진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개 씨-”

마루가 지대공 미사일 차량과 40mm 대공포 차량을 향해 칼을 뽑아들었다.

크르르르르---

분노한 살기가 활주로 끝에 자리 잡기 시작한 자들을 덮쳤다.

“흐으어어억-”

“크으으어억-”

뭐라 한마디 남기기도 전에 죽음이 닥쳤다.

차량 밖에 있던 병사들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멀쩡하게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심장 어림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 숨을 쉬지 못해 컥컥 질식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

“우와아악-”

“맙소사!”

장갑차량 속에서 심장마비를 피한 자들은 실시간으로 참치처럼 해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게 있던 40mm 대공포가 절단되는 모습. HQ-7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가 세 토막이 나는 장면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 악마-”

“귀신이닷-”

공포에 질리다 못해 차량 밖으로 뛰쳐나온 자들은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부들부들 파랗게 질려 죽어가는 모습. 안에 있으면 통째로 썰린다. 밖으로 나가도 죽는다.

투다다다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기관총을 쏴댔지만, 의미 없는 발버둥이 수직으로 쪼개졌을 뿐.

곧이어 죽음으로 청소한 활주로에 검은 독수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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