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66
블랙버드를 닮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날렵하게 생긴 기체가 텅 빈 활주로에 착륙했다.
“엔진 시동 끄지 말라고 해.”
[전달했습니다.]
위이이이이잉-
낮은 엔진음과 함께 서서히 선회하는 비행기를 향해 내달리는 마루.
“문 열어!”
비행기가 정지하기도 전 활주로를 내달려 뛰어올라 타자마자 외쳤다.
“중국놈들이 이걸 나포하려고 합니다.”
[예? 나포라니요.]
마루를 향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 목소리. 비공식적으로 도와달라고 해서 왔고, 한차례 왕복했을 때도 문제없었는데 갑자기 나포라니?
“지금 당장 최고 속도로 중국을 벗어나야 합니다.”
[도착하면 보고하라···]
조종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마루가 끊었다.
“어이 이봐. 활주로 저기 안 보여?”
활주로 끝에 보이는 잔해들. 토막 난 대공포, 이리저리 썰린 지대공 미사일 차량이 보였다.
[저게 무슨···]
미사일이나 폭탄이 터져 파괴된 게 아닌지라 이질적인 광경. 연기도 나지 않았고 불길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저렇게 된 거지?
모형? 가짜? 가짜로 저런 걸 만들 이유가 있나? 무기 특유의 묵직함이 남아있는 파편은 저 조각들이 진짜 대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의 흔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지대공 미사일과 대공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놈들이 언제 알아차릴지 몰랐다. 보고하고 자시고 할 틈을 주지 않고 썰어서 시간을 벌었는데, 여기서 미적이다가 미사일 처맞고 끝은 사양이었다.
그런 마루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종사는 선뜻 출발하지 않았다.
“야- 빨리 안 가?”
마루의 말이 짧아졌다. 차갑게 식은 짜증이 살기로 서서히 변했다. 서늘한 분위기가 조종실을 채우기 시작하자, 조종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일단 떠! 이륙하라고!!”
숨쉬기 불편해졌는지, 헛기침하던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일단 이륙했다.
[미확인 기체에 경고한다. 즉시 착륙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전략기가 활주로를 이륙하자마자, 관제탑에서 착륙하라는 교신이 떴다.
[즉시 기수를 돌려 착륙하라. 그렇지 않으면 격추하겠다.]
“무시하고 달려!”
기이이이잉-
기수를 올려 속도를 높이는 순간, 경보음이 요란하게 터졌다.
삐-----
[레이저 조준?]
삐삐삐삐삐삐-
[미친놈들이 진짜 쐈어!]
[플레어!!!]
지상에서 발사된 4발의 미사일이 하늘을 향했다.
2발의 미사일이 플레어에 걸렸지만, 시차를 두고 쏘아진 2발의 미사일을 플레어를 피해 날아들었다.
[부스터!!!]
뒤로 쭉 밀려나는 감각.
엄청난 중력 가속도에 마루는 간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하 1.5 언저리에서 시작된 미사일과 검독수리의 레이스가 순식간에 마하 3에 달할 정도까지 치솟았다.
잠시 뒤, 45도 각도로 날아오른 검독수리를 뒤쫓던 미사일이 추진력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미친. 미사일이 따라잡지 못하고 떨어졌다고?’
미사일을 뿌리쳤음에도 계속 불안한 느낌.
‘이거 날아가다가 갑자기 또 뭔 일 생기는 건가?’
마루는 진지하게 비상탈출 방법이 적힌 곳을 노려봤다.
[고도 22km 도달, 목적지까지 순항.]
[그리고···.]
조종사는 잠시 말을 아꼈다. 활주로에서 느낀 건 살의였으니까. 조금 말을 고른 조종사가 자신이 명령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계급부터 박고 시작하면 될까?
[블라디마루 칼린 대위는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비행기에 탔는데도 불안하다 싶은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이래서였나? 마루가 조용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처음 출발했던 해리슨 공군기지로 갑시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보면, 내가 미쳐서 날뛰기 직전이라고 하세요.”
그 뭐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PTSD로 적아 구분하지 못하고 전부 썰어 버릴 기세라고.
사나운 기운이 슬슬 피어오르자, 조종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중국 영공과 북한 영공을 통과한 비행기가 홋카이도 상공을 거쳐 미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은 아직도 화산 때문에 그런가?”
[대형 화산이 동시에 분화한 여파로 항공운항이 정상화되기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홋카이도 방향으로 간다는 말에 일본이 떠오른 질문이었다.
[화산재와 먼지의 영향으로 관동지역과 규슈지역은 당분간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단층대가 강한 압력을 받아···]
판이 흔들린 일본에서는 계속해서 재난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을 하던 디아나가 속보를 전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중국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형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베이징 중국 중앙 정부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며···]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지방 정부에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SNS를 통해 사고 소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조금 잦아들었던 불안감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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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비상회의실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베이징 중국 중앙 정부와의 핫라인이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핵 보안 코드를 확보 폐기하기 위해 베이징에 침투시킨 특수부대와의 연결도 끊겼다.
“중앙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당한 겁니까?”
“확실하지 않습니다.”
핵 보안 코드에 관한 최신 정보를 보낸 자는 블라디마루 칼린 하나. 문제는 그가 보낸 정보대로라면 핵 보안 코드는 유실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
“중국 정부든 북부전구든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즉시 선제공격을 해야 합니다.”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이든 북부전구든 공멸을 원하겠습니까?”
핵 보안 코드 폐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중국 북부전구는 비공식적으로 일본 관동지역을 두고 교전한 군벌이었다. 극비작전으로 북부전구의 병력과 보조인력을 합해 20만이 넘는 인력을 태워버렸다.
힘의 공백이 생기자, 북부전구 지배층을 숙청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던 중국 중앙 정부가 움직였고 이는 내전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버지니아는 하던 대로, 양측을 부추기고 힘이 모자라는 북부전구을 음지에서 도와줬다.
조기경보기와 인공위성을 통해 중국 정부군의 움직임을 알려주기도 했고, 중국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인공위성을 고장 내기도 했으며, 북부전구가 러시아 올리가르히와 연계하는 것도 묵인했다.
그 결과 전력의 40%가 날아간 북부전구가 중앙 정부에서 동원한 남부전구, 동부전구의 병력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미국이 원하는 그림은 중국의 내전이 길어진 끝에, 각 지방 정부들이 경제난을 견디지 못하고 쪼개지는 것이었다. ‘많아진 중국.’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원하는 청사진이었다.
“북부전구가 베이징에 침투시킨 초인들이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전부 일본인이겠습니까?”
“북부전구 그러니까 중국인 초인들은 거의 전부 전멸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중국군 초인들은 중국군을 몰살한 비밀 작전에 휘말려 거의 전멸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북부전구에서 베이징에 침투시킨 초인 부대는 일본인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럼 그 끔찍한 고문 살해 현장은? 미군 특수부대를 죽인 자들이 일본인 초인들이라는 이야기. 악의 넘치는 행동으로 보아, 일본에 떨어진 핵에 대한 보복일 가능성은?
“블라디마루 칼린은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반일 감정이 강한 나라의 출신이 하는 말을 100% 믿어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전체 영상을 보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보낸 영상만으로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이 어디 출신이든 지금은 미합중국에 충성하기로 서약한 미국 시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수많은 장병을 구한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한국계라고 넘겨짚는 것은 옳지 못한 판단입니다.”
마루가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려고 필요한 영상만 보냈던 것이, 신뢰성 문제로 변했다.
“신일본 연합의 수장이 직접 베이징에 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정식적인 정치 단체도 아니고 초인들 몇 명이 모인 테러 단체입니다.”
“테러 단체가 핵 보안 코드를 손에 쥐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테러 단체로 보입니까?”
“블라디마루 칼린이 보낸 교전 영상을 보면, 중국군이 천안문 광장 일부 지역을 완전히 박살 냈습니다. 아무리 초인이라고 하더라도 살아서 도주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생사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핵 보안 코드가 유실됐고. 이젠 사고가 일어나도 책임 소재를 따지기 힘들어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 다들 감정을 가라앉히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합시다.”
객관적으로 봐야 했다. 지금 이곳에서의 결정이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몰랐다.
핵 보안 코드의 유실로 인한 책임 소재가 불확실해졌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잠깐의 휴식 이후 다시 회의가 시작됐다.
“중국의 핵시설을 공격해야 합니다.”
어차피 중국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었다.
내전을 이용해 중국이 쪼개지도록 유도하고 있었으니까. 전면전까지 1년이나 2년 정도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핵시설 공격에 동의합니다. 다만, 우리가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북부전구를 이용해서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앙 정부가 북부전구에 핵을 사용할 조짐이 보인다는 정보를 흘리면 북부전구에서 알아서 대응하리라. 그때 슬쩍 도와주면 그만이었다. 북부전구가 중국의 핵시설을 공격할 때, 살짝 껴서 더 많은 핵시설을 노리면 됐고.
“북부전구를 이용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우리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북부전구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 줄 알고 북부전구만 바라보고 있단 말입니까? 선제공격해야 합니다.”
“미쳤습니까? 선제공격은 핵전쟁을 하겠다는 소립니다.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서로 본토에 미사일만 주고받아도. 경제는 끝장입니다.”
“그 경제는 이미 변이 바이러스 때 끝났어요. 차라리 전쟁 특수로 돌리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속보입니다. 중국 남동부 해안가에 있는 원전에서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 앞에 서류철이 놓였다.
“이런 개자식들이!”
서류를 읽던 한 사람이 분노했다.
“이건···.”
“이래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공격해야 합니다.”
20년 전. 숙청을 피하고자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의 장군이, 중국의 세계전략이라는 기밀문서를 가지고 왔다.
그 안에 담긴 내용. 전염병을 창궐시켜, 서방 세계의 경제력을 무너뜨린다. 서방의 전투력은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전염병을 이용해 서방의 전투력을 갉아먹는다.
전면전을 억제하기 위해 핵전력을 꾸준히 확충한다. 그래도 전면전의 위협이 고조되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퇴각하게 유도한다. 어떻게?
미국을 쫓아내는 방법이 바로 원전 사고였다. 원전에서 터진 방사능이 오키나와, 한반도 서부지역, 대만을 휩쓰는데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엉덩이 깔고 앉아 방사능을 맞고 있을까?
당시에는 거의 음모론 취급을 받고 묻혔다. 세계화 시대, 전염병의 창궐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니까.
세계의 경제가 하나로 묶인 상황에서 전염병 창궐로 경제가 무너지면,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 중인 중국의 타격이 제일 클 것 아닌가? 제 살 깎아 먹기 전략이라고? 미쳤나?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놓고 보니, 공교롭게도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다. 당시에 음모론이니, 편집증적 망상이니, 말도 안 된다는 취급을 받은 이야기들이 전부 현실화되고 있었다.
“현재 사고 원자로에 심각한 과부하가 걸렸고. 3~4일을 넘기지 못해 폭발할 것으로 보인답니다.”
“원전 관리를 맡은 프랑스 원전회사에서 보내온 정보와 일치합니다.”
“중국이 SNS와 뉴스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예전이라면 검열했을 겁니다.”
“이유부터 웃기는 소리입니다. 변종 따개비 때문에 원전 냉각계통에 문제가 생겼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방사능이 하필 이 시기에? 놈들이 미국을 노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조금 있으면 6월입니다. 여름이면 바람이 대륙으로 붑니다. 지금 방사능이 터지면 제일 피해를 보는 나라가 중국이란 말입니다.”
“음모론에서도 해상원전을 만들어 해상원전사고를 유도한다고 했지, 해안가에 있는 원전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중앙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핵 보안 코드를 뺏기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부터 의도적으로 원전 사고 정보를 풀어 미군이 퇴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라는 주장.
사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노린 방사능 공격으로 지금이라도 빨리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강경론에,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선제공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반미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전략사령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당장 방사능전과 생화학전에 대응 가능한 스트라이커 부대를 한반도와 오키나와에 급파하고, 기존에 있던 병력을 일본 관동지역으로 보내, 관동지역의 변종들을 쓸어 버려야 합니다. 이후 핵전쟁 대비 프로토콜을 실시해야 합니다.”
“관동지역을 이용해 초인 병사들을 양성하자는 소리군요. 핵전쟁이 일어나리라 판단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현재 내전 중인 중국을 선제공격하자는 안건에 대해서 군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선제공격하는 것이라면, 핵시설을 포함한 300개의 군사 시설을 동시에 타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전을 각오해야 합니다. 미합중국 연방군은 연방정부와 의회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잠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공격에 대한 안건으로 투표를···.”
“중국 정부에서 긴급전문입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핵시설을 장악.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웅성거렸던 긴급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