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67
긴급회의실이 말 그대로 긴급하게 돌아갔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보고.
“중국. 핵미사일 기지에서 미사일 발사 확인!”
“23발!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탄도미사일) 23발이 확인됐습니다!”
“바로 대응해야 합니다.”
상호확증파괴 전략. ‘중국에서 핵이 발사됐으니, 중국에 핵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중국 정부에서 긴급전문으로 상황을 알렸는데, 중국을 핵으로 밀어야 하느냐는 주장. 이유야 어쨌든 중국에서 핵이 올라갔으니 중국을 조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긴급회의실이 개판으로 변했다.
“중국이 핵으로 전면전을 하려고 했으면 100발 이상 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발사된 핵미사일은 중국 정부의 뜻이 아닐 겁니다.”
중국에 있는 핵탄두의 추정치는 1.200~1.600발 내외, 최근 핵탄두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지만 2.000발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그런데 발사된 미사일을 모두 23발. 본격적으로 핵전쟁 하자고 공격한 것으로 보기엔 어설픈 숫자.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닙니다. 무조건 보복 공격을 해야 합니다.”
“정체불명의 적이 뭐든, 테러리스트한테 뺏겼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핵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핵으로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중국을 그냥 넘어가자고? 그럼 다른 나라들이 그 지랄하면? 좋든 싫든 원칙적으로 해야 했다. 그것이 설령 종말을 불러일으킬 3차 대전의 불씨가 된다고 하더라도.
“23발이면 중간에 요격 가능합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은 가능합니다.”
중국에서 날아오른 ICBM이 미국까지 도착하기까지는 최소 1시간은 걸렸다.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지라, 미국 전역에 핵미사일일 날아온다는 것을 방송해야 했다. 대피 방송이 나간다면 뒤집힐 것이다.
“전쟁을··· 피할 수 없겠군.”
“신께서 축복하사 시련을 이겨낼 수 있기를.”
예상대로 미국 전역은 난리가 났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봤던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서부지역이면 1시간 내외, 동부지역이면 1시간 20분 안팎 정확하게 확인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1시간의 대피시간이 있었다.
생각보다 넉넉한 대피시간에 약탈과 방화 등의 범죄가 터지는 곳이 속출했다.
[중국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본토에 도달하는 시간은 앞으로 1시간 내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인류사에 남을 비극적인 상황이며, 핵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를 잡는데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 정부와 내전 중인 북부전구 또한 성명을 발표해. ‘우리는 결백하며 이 모든 것은 중국 중앙 정부의 악의적인 계획.’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중국은 내전 중에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벌어진 교전을 살펴보면 이는···.]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TV를 봤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핵전쟁? 중국이 핵을 쐈다고? 미국에 핵이 날아오고 있다고?
멍하게 TV를 보는 김 양의 앞을 거대한 흔들림으로 가로막는 간호사.
‘뭐임?’
김 양의 눈빛에 간호사가 용기를 냈다.
“핵이 날아온다는데 대피해야죠. 이렇게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디트로이트는 30~70년대 최고의 산업도시였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50년 후반부터는 정점에서 내려가는 추세였지만 그래도 70년대까지는 중요한 공업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기에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도시 곳곳에는 핵 대피소가 있었다.
“병원 근처에 핵 대피소가 있다고 했어요.”
“여기가 더 안전함.”
그러니까 좀 그만 흔들고 비켜줄래? 최근에는 EMP 대비도 집중적으로 하지 않았던가? 핵이 코앞에서 터지는 게 아니면 다른 곳보다 여기가 더 안전했다.
김 양이 보기에 빌딩 밖은 곧 개판이 될 예정이었다. 디트로이트 처음 왔을 때 엄청나게 놀랐다. 이렇게 개판일 수가. 백정이랑 갱들 잡고 다녔을 땐 진짜 어이없었을 지경.
도시 자체가 검은 느낌이었다. 디트로이트 시내에는 흑인들만 살고 있었으니까. 낮에는 백인들도 좀 있고 그랬는데,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어둡게 변했다. 연말연시 축포를 평일에도 쏘아대는 멋진 도시로.
그런데 디트로이트 시내에 있는 핵 대피소로 가자고?
“여기가 더 안전하다고요?”
“대피소에 갱들이랑 같이 있는 게 안전하겠음?”
그 흔들거림을 이용해 집단 최면을 걸려고 하는 건가? 개로 만드는 최면? 둥글둥글 모르는 표정을 한 간호사에게 김 양이 친절하게 해설해줬다.
“디트로이트 시내에 사는 빈민들은 몇 다리 건너면 전부 갱이랑 연관된 사람들이라는 소리니까 멍청한 가슴 저리 치우고 비켜.”
멍청한 가슴이라니! 세상에 이런 폭언이 어딨는가? 하지만 김 양의 태움을 겪어본 간호사는 속으로만 따졌다. 소심하게 옆으로 비키는 간호사.
그런 간호사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 양은 TV 채널을 바꿨다. 동네 사건 사고는 아무래도 지역 방송국이 빨랐으니까.
왓츠업 TV로 채널을 돌리자, 긴급 속보가 아닌, 거룩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보라···]
[그날이 왔습니다.]
[그분께서 예비하신···]
이게 뭐지? 순간 갸웃하던 김 양이 ‘미친-’ 한 마디를 중얼거리곤 TV를 껐다. 그 짧은 시간에 시신경과 시냅스가 오염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북한에 있었을 때의 일들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기시감에 눈살을 찌푸린 김 양.
“따까리. 빌딩에 비상 걸고. 공사장 주변에 새로 설치한 전기 철조망에 전원 넣어.”
파란 LED가 점멸하며 타워가 비상대기 상태로 전환됐다.
사만다는 따까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연산자원이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싫다, 좋다.’ 구분을 떠나 호불호를 따지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저 ‘따까리’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연산하는데 거슬린다는 것은 확실했다. 애초에 트리아나 디아나를 시키면 될 일을 꼭 자기한테 시키는 것 같았다.
[모든 입주민에게 알립니다. 모든 입주민께서는 안내에 따라 대피소로···]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시각···]
“따까리들 집합.”
김 양이 고개를 들어 빨갛고 파랗게 알록달록한 LED를 노려봤다.
“후드하고 박사한테 똑바로 전해. 경고는 없다고.”
이리저리 복잡해지면 그 틈을 타서 헛짓거리하는 애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경고 없음.”
잡는 게 목적이면 대충 풀어주고 기회를 잡아 처분하겠지만, 백정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한지라 미리 경고해주는 친절한 김 양이었다.
경고했으니, 헛짓하면 날려버려도 됐다.
백정이 없을 때는 자신이 법이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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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진그룹 본사
‘찾았다.’
나주현 회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얼마나 애타게 찾았던가? 뺀질거리는 김순이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가 뭔가? 그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였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 사람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의 가족 근처에 함정도 파고 동네에 매복도 하고 공권력을 동원하기까지 했지만, 김기순과 그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만 잡아먹다 겨우 찾은 단서. 그가 샬롯 그룹의 일을 했었다는 것. 즉시 샬롯 그룹의 심은영이와 만나 담판을 지었지만, 소득이 없었다.
‘일본 의뢰를 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요.’
‘경고하지만, 사실이어야 할 겁니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죠. 우리 그룹도 그 사람의 능력이 필요해서 찾고 있었으니까요.’
샬롯 그룹도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당장 월드와 정전 협약을 맺었는데, 일본에서 일이 터지면서 사실상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니까.
샬롯으로 이어진 흔적이 끊겨 그렇게 그를 잃어버렸나 싶을 때, 미국에서 그와 관련된 문의가 들어왔다.
그를 아느냐고? 그와 어떤 관계냐고?
알지.
당연히 알지.
어떤 관계냐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한 관계지.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원한.
미국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역추적이 시작됐다. 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활약하고 있는지, 정보가 락이 걸려있었다.
‘미국에 있었다니.’
그것도 완전히 신분을 세탁하고서. 심지어 그와 관련된 정보가 기밀사항이라니. 그래도 괜찮았다. 미국이 그를 보장해서 가져오게 하면 되니까.
“3상 결과는 언제 나오죠?”
“현재까지 큰 부작용 사례는 없었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지나도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 했으니, 기다림은 감수해야 했다.
긴급하게 만든 백신 부작용 논란으로 시끄러운 상황인지라, 긴급 사용승인이 나오기 쉽지 않을 전망이었다. 그것도 미국 회사도 다국적 기업도 아닌, 한국 회사의 독자적인 신약이면 더욱.
“다들 바보 같군요.”
“······.”
이 바이러스에 숨겨진 것을 정말 아무도 모를까? 모른다면 인류의 의학과 과학이 안타까울 따름이었고, 알면서도 이러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짓이었다.
그녀가 연구한 바로는 변이 바이러스는 그냥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바이러스의 탈을 쓴 무엇이라고 봐야 했다. 악의로 뭉쳐 만든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샘플을 보내도록 하세요.”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지능 저하와 분노조절장애를 치료하는 신약의 샘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 약을 원할 것이다.
그녀의 약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테니, 약을 대가로 그를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약이냐? 그냐? 결과는 자명했다.
그런데. 그와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중국에서 핵미사일로 추정되는 ICBM 23발이 발사됐습니다.]
[미사일의 타격 목표가 어디인지, 정말 핵미사일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나주현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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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22km 상공을 마하 3의 속도로 순항하는 도중에 들린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조종사와 부조종사 그리고 마루까지 입을 다물었다.
미국 핸더슨 공군기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앞으로 대략 3시간 남짓이었다. 도착하고 나면 이미 핵이 떨어진 이후라고 봐야 했다.
23발의 ICBM이 날아올랐지만, 한국과 일본에 배치된 미사일 포대의 활약으로 중간에 몇 발을 터트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부 요격하는 것엔 실패한 것 같군.]
조종간 앞에 붙여 놓은 작은 가족사진을 보며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조종사였다.
궤도에 오르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마하 4~5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걸 무슨 수로 요격하겠는가. 거기에 탄두가 분리되어 떨어질 때는 마하 7~10의 속도가 기본이었다.
사실상 종말 단계에서 ICBM을 막기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다탄두 미사일일 경우에는 더 어려웠다.
성공이라면 성공이고 실패라면 실패인 요격이 끝나고, 미국은 즉시 반격한다는 것을 공표했다. 테러리스트가 터뜨렸든 아니든, 핵이 날아온 것은 중국의 책임이니 핵을 쏘겠다. 달게 받아라.
중국 중앙 정부는 극렬하게 미국을 비난했지만, 동해와 태평양에서 발사된 핵미사일 46발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23발이 날아왔으니, 46발을 되돌려주겠다는 말.
그리고 중국은 미국에서 발사한 46발의 탄두가 중국의 주요 핵시설과 군사 시설을 타격하기 전, 가용 가능한 미사일을 전부 쏘아 올리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