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70
블라디 아크 타워 앞 공터.
처음 시작은 몇 명의 무장한 갱들이었다.
약탈하겠다고 와서 봤더니, 이건 좀. 아니었다.
“컨테이너라며?”
“눈이 삐었냐? 이게 무슨 컨테이너야.”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한 성벽이었다.
“그냥 벽이 아니잖아.”
“이걸 어떻게 뚫자고.”
좋다고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높은 벽에 놀랐다. 소문으로 들었지만 10m가 훌쩍 넘는 벽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거기에 붉은 레이저를 빛내는 자동 포탑까지.
“그러고 보니 저번에 갱단 하나가 갈려 나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맞아. 2천 명인가 죽었다고 하던데?”
“2천?”
“반 이상 약쟁이들이랑 그런 애들이라고는 하더라.”
“그래도 그렇지 2천이 갈렸는데 털자고?”
“이거 그냥 들이받기는 좀···.”
갱들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m가 넘는 벽도 그렇고 그 위에 삐죽삐죽 삐져나온 총구와 포구도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즉석에서 현수막과 팻말이 만들어졌다.
[우리도 살고 싶다!]
[회개하라! 굶주리는 형제자매를 외면하는 자들아!]
[생존권을 보장하라!]
[Black Lives Matter!]
[백인들만 아크 타워에 있는 더러운 세상!]
[블라디 타워는 누구의 고혈을 뽑아 만든 천국인가!]
처음에는 수백 명 전후로 모였던 공터가 순식간에 천 단위로 늘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굶주리긴. 간나 새끼들이 어디서.”
김 양은 분노했다. 굶어보지도 않은 것들이 굶주림을 논해? 그것도 내 앞에서? 핵이라도 맞았으면 모를까, 디트로이트는 핵도 거른 동네였다. 앞마당에서 뭔 짓을 하든 상관없는데, 굶었다고 기어오르는 건 아니지.
“쟤들. 넘어오면 쏴.”
융통성 3단계 디아나가, 김 양의 명령을 다시 확인했다.
[비무장한 사람들이 넘어와도 쏩니까?]
“비무장은 무슨. 넘어오면 쏴.”
종간나 새끼들. 세금을 나한테 줬나? 생존권은 미합중국에 달라고 해야지, 왜 여기서 지랄이니? 쟤들은 존재 자체가 무기였다. 응.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나자, 수천이었던 사람들이 만 단위가 넘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왔다가, ‘저 타워에 물품 쌓여있다.’는 소리에 죽치고 앉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
와글와글 웅성웅성 간혹가다 허공에 총을 쏘는 사람들까지 주변이 사람들로 빽빽하게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카페, 편의점, 식당은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숫자가 늘어나자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지만, 김 양은 강경했다. ‘넘어오면 쏜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소방서에서 사다리차 끌고 진입하려다가 40mm 기관포에 떡이 되는 걸 본 뒤에야. 현수막과 푯말을 흔드는 평화(?) 집회가 이어졌다.
그렇게 미국에 핵이 떨어지고 3일째가 지나갈 무렵, 군용 통신망을 이용한 교신이 왔다. 김 양의 방침은 간단명료했다.
[전략사령부에서 비상신호입니다.]
“됐음. 우리도 비상임.”
[해병대 본부에서 긴급전문입니다.]
“씹으셈. 우리도 긴급임.”
[국토안보국에서 온 연락입니다.]
“됐으니까. 무조건 다 거르삼. 중요한 일이면 직접 오겠지.”
저 사람들 뚫고 오면 올 수 있으면 오든지.
김 양은 군대의 분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와도 절대 문 열어주지 않을 테다. EMP 맞아서 문 고장 났다고 해야지.
헬기 타고 옥상에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문 안 열어줌이 기본 방침이었다.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말고.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
핵이 떨어지고 통신도 끊기자, 들어 올 때 인연 끊고 들어오겠다고 계약한 애들 가운데서도 부모님 찾고, 애인 부르짖고, 전처가 데려간 자식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김 양의 해별 방법은 간단했다.
“그래? 뛰어내리라고 해.”
문을 왜 열어줌? 완강기 타고 내려갔다가, 그거 붙잡고 기어 올라오겠다는 애들 생기면? 쏘라고? 왜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있겠음. 그냥 나가고 싶은 놈들이 쿨하게 뛰어내리면 되는 일을.
[높이가 10m가 넘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 한 번에 보러 갈 수 있으니까 잘됐네.”
3단계 융통성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김 양이었기에 디아나는 열심히 연산했다.
핵이 떨어진 지 5일이 지나자, 아크 타워 밖에 모인 군중은 말 그대로 7~8만은 될 법한 기세였다. 40mm 기관포에 박살 난 잔해 옆에서, 평화(?)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어쩐지 점점 흉험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난장판 가운데 디트로이트 강을 따라 작은 요트가 움직였다.
‘이건 또 무슨 개판이래.’
밀워키에서 배 타고 집에 왔더니, 앞마당이고 뒷마당이고 죄 터져버린 모습에 마루는 어이없었다.
“디아나.”
[-칙- 근거리 무선통신 연결됐습니다.]
“그래. 별일 없지?”
[······.]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연산을 돌릴 수밖에 없는 디아나였다. 그 연산지연을 괜찮다는 의미로 이해한 마루.
디아나와 연결됐다는 소리는 빌딩이 건재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마루는 쫄렸던 마음이 살짝 풀렸다.
“저기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와 인근에 사는 빈민들로 추정됩니다.]
빈민 함유 77%, 갱향 첨가 66%라는 미묘한 비율.
“야. 둘이 합하면 100%가 넘잖아.”
[본래 그런 겁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 뛰어내려서 만날 수 있는 거죠.]
디아나가 뭔가 이해하기 힘든 농담 비슷한 것을 했다. 피식- 진짜 많이 컸네? 마루가 웃고 말았다.
“그래서. 총소리 들어보니까 다들 무장한 거 같은데. 저기 저렇게 그냥 둬도 괜찮은 건가? 경찰은 뭐하고?”
[경찰과 소방관을 비롯한 공공서비스 종사자들은 도시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렇게 빨리 포기해 버렸다고?
망했다고 해도 디트로이트는 미시건 주에서 제일 큰 도시였다. 그런데 핵이 터지고 고작 4일이 지났을 뿐인데 행정부에서 도시를 포기해 버렸단다. 심지어 디트로이트에는 핵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주 정부가 디트로이트를 버린 거야?”
[미시건 주의 주도 랜싱에 핵이 떨어져, 주 정부가 사라졌습니다.]
“핵이 떨어질 때까지 피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주 정부 관료들이 대피하지 않았어?”
[대피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핵폭발 이후 변이 괴물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 뭔··· 어떤 괴물이야?”
[정찰 드론으로 확인한 현장에는 다량의 혈흔과 새의 깃털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번에 본 그런 새떼들이 작심하고 노렸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는? 변이 바이러스 사태 통제하고, 치안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온 애들 있잖아. 주 방위군이 있었는데 안 보이네?”
[대도시에는 핵 공격의 위험이 크다는 판단하에 퇴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렇습니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치안 유지를 위해 순찰하던 주 방위군도 없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관은 도망쳤고.
자리 잡을 때 이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았지만, 이게 또 진짜 되다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결과적으로 근처에 군대 없음. 경찰은 없음. 행정력도 없음.
“지금 상황이랑 중국은 어떻게 됐는지 들어온 소식 있어?”
[긴급 방송에 따르면 예상보다 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300발 가운데 거의 60발 가까이 요격에 성공했다고 한다. 거기에 사거리가 짧은 순항미사일과 중장거리 미사일을 제외하면 실제로 미국에 떨어진 핵은 100발 이하라고 했다.
안타까운 점은 요격에 실패한 미사일 가운데 다탄두 미사일에 10발 이상 있었다는 것이었다. 3~10개로 분리되는 다탄두 핵이 뿌려지면서, 생각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핵이 떨어졌다고 한다.
[즉시, 추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한미군, 주일미군에 핵을 쏜 순간, 돌이킬 수 없었다.
주한미군이든 주일미군이든 민간인이 많은 곳에 군기지가 있었다. 정밀 폭격이 아니라면 막대한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이라는 이야기. 그런 곳에 냅다 핵을 꽂았으니, 미국 또한 그냥 핵을 박아 버릴 명분이 됐다.
중국이 막 나간다지만, 안타깝게도 진짜로 막 나가면 답 없는 나라가 미합중국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확보한 자료도 열 받는데, 그것도 모자라 EMP 테러와 변이 바이러스 공격까지 중국과 연결됐다는 심증이 넘치는 상황에서 미친 것들이 핵까지 쏘네. 블라디마루의 보고를 들어보니까, 자기들은 핵전쟁 대비했다고 막 나가는 거였어?
핵에 진심인 나라가 미합중국과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거기에다 대고 핵을 쐈으니, 진심을 보여줄 수밖에.
중국으로 날려 보낸 미사일은 600발에 육박했지만, 그 가운데 실제로 핵탄두가 들어있는 핵은 400발이었다. 200발은 더미.
먼저 도달한 더미 미사일이 중국의 방어체계를 소모 시킨 뒤, 핵탄두가 탑재된 미사일이 떨어졌다.
“바로 추가 공격을 한다고? 미 서부지역에 있던 군대가 증발했다고 하던데?”
주한미군, 주일미군을 비롯해 괌과 하와이에 있는 미군도 막대한 피해를 봤을 텐데 무슨 병력으로.
[한국군을 주축으로 중국 공격을 시작한다는 계획입니다.]
한국도 눈이 돌아갔다고 한다. 졸지에 평택과 대구가 날아갔고, 부산에 떨어지는 핵은 막았지만, 고고도에서 터지도록 세팅한 핵은 막지 못해 EMP에 당했다고 한다.
황해 인근 원전 사고로 방사능 유출 어쩌고 하더니, 느닷없이 핵에 맞은 한국은 말 그대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2차례에 걸친 미국의 핵 보복과 내전으로 중국 육군 전력 50% 이상이 날아간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의 중국 본토 상륙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봐야 했다.
디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요트가 블라디 아크 타워 인근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다!”
“오- 요트-”
“Ye-Yo-”
선착장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걸신처럼 요트로 몰려들었다.
‘미친.’
은신한 마루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훌쩍 뛰어넘으며 고개를 저었다. 많다 했는데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은신이 의미 없어질 지경.
근처에 있는 가로수와 가로등을 이용해 바글바글한 인파를 뚫고 들어온 마루를 김 양의 엑소슈트가 반겼다.
[왔음?]
======
======
유럽연합은 매일 발표했다.
‘그래도 대화로 해결해야.’
‘아이고 핵이라니. 이걸 어쩌나.’
‘이성을 찾고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열심히 성명을 냈지만, 속으로는. ‘힘내라. 힘.’, ‘이기는 편 우리 편.’ 이러고 있었다. 1차, 2차 대전의 여파로 신대륙으로 넘어간 패권이 다시 찾을 기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깡패 러시아가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러시아 다짐육 전문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했고, 고기 방패 폴란드가 있었기에 비교적 여유로운 유럽연합이었다.
심지어 기회도 좋았다. 미국이 자국에 터진 테러 때문에 유럽 주둔 미군을 대거 본국으로 소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과 핵전쟁이 터졌다.
이건 꿀이었다. 2차 대전 폐허를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이 빨았던 꿀을 이젠 유럽연합이 빨 차례였으니까. 심지어 전후 중국 재건까지 생각하면 꿀이 2배였다.
유럽연합이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을 무렵.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지길 기대하고 고대하던 또 하나의 세력은 매우 기쁜 나머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유럽에서 잔치를 열었다.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
“알라!”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
런던과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불꽃잔치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작은 도시 프라토.
딸랑-
종소리와 함께, 떡진 머리에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사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중국 식료품 전문점 주인인 천(陳)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위안화는 안 돼.”
“에이. 돈 가져왔다고.”
사내가 주머니에서 유로 지폐를 꺼내자, 사장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펴졌다.
명품의 생산지로 유명한 이 프라토에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공장의 숫자는 무려 5,000곳이 넘었다.
바이러스 여파로 연이 닿는 사람들이 프라토로 몰려들어, 불법노동자를 포함한 중국인의 숫자가 7만은 넘으리라 추정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중국 식료품점은 제법 호황이었다.
“그거 있지. 저번에 가져간 것. 새우 가루랑 육포”
“있기야 있지, 근데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아니 뭔 살 때마다 가격이 올라.”
“소식 못 들었어?”
“무슨 소식?”
“미제랑 제대로 한 판 붙었다고 하더라. 뉴스 좀 보고 살아라.”
“미제랑 붙었다고? 허.”
“그래서 당분간 수입 물량이 없어. 다 가격이 오를 거야.”
“에이 그래도 그렇지. 그래서 얼마인데?”
사장 보여준 가격표를 보곤 개기름 사내가 발끈 화를 냈다.
“이 빌어먹을 자라 새끼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배?”
“비싸면 안 사면 그만 아닌가? 욕을 해? 자라? 나가 새끼야. 안 팔아!”
욕설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몸싸움을 시작했다. 점점 거칠어지던 몸싸움의 끝에, 개기름 사내가 주인의 팔뚝을 깨물었다.
“끄아아악! 이 미친 새끼가!”
“공안! 공안 부른다!”
크지지지지- 생살을 파고드는 이빨에 주인이 고래고래 비명 질렀다.
“공안 부른다고 새끼야!”
크직!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가며 피가 철철 흘렀다.
“으아아아악! 너 씨발. 공···.”
한 움큼 떨어져 나간 팔뚝을 부여잡고, 소리 지르던 주인장의 눈동자에 들어온 사내의 모습. 어쩐지 풀린 눈동자로, 물어뜯은 살점을 질겅질겅 씹는 이질적인 모습.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