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73
자동포탑이 연사하는 소리가 방음을 뚫고 식당을 파고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젠장. 난 두 조각밖에 못 먹었다고.”
“지금 밥이 문제냐?”
보안 요원들이 식사하다 말고 밖으로 내달렸다. 두툼한 돈가스 조각을 한입에 씹어먹은 마루도 일어서며 말했다.
“장비 챙겨서 갈 테니까 먼저 가.”
끄덕. 엑소슈트를 입은 채 밥을 먹던 김 양이 먼저 외벽으로 향했다.
감염자들 써는 데, 딱히 필요한 장비가···. 있었나? 그냥 칼로 썰면 되는 거 아님?
끼융끼융-
외벽에 올라보니 난장판이었다.
붉게 물든 하늘 하래, 검은 바다가 들끓는 것 같은 모습.
아우성도, 괴성도 아니었다.
그 모든 본능적인 소리가 뒤섞인 끔찍한 소음을 배경으로 꿈틀거리는 고깃덩이들의 몸부림.
투다다다닥!
투둥투둥투둥!
기관총과 기관포가 맹렬하게 불꽃을 쏘아냈다. 총탄과 포탄이 감염자들을 꿰뚫고 분쇄하고 있는 광경.
삽시간에 수백이 지워졌지만, 그 뒤로 수천이 몰려왔다. 수천이 피곤죽이 된 공터로 수만이 모여들고 있는 상황.
김 양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좀···.’
불길했다. 기관포에 맞은 감염자와 그 주변이 가루가 됨에도 불길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주변 영상 올려.]
엑소슈트 헬멧에 타워 동서남북 영상이 떠올랐다.
4면을 에워싼 끝없는 공격에 하나둘씩 총열을 갈기 시작하는 기관총들. 기관포도 홀짝으로 구분해, 발사와 냉각을 교대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총소리와 기관포 소리가 빌딩가를 타고 고층 건물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그 총성과 포성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이 블라디 아크 타워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놈들이 달라붙습니다!”
열심히 기관총을 갈겨대던 요원이 김 양을 향해 외쳤다.
“크래모어. 크레모어를 격발해야 합니다.”
포화를 뚫은 놈들이 성벽에 달라붙어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뒤엉켜 고기로 된 경사로를 만드는 모습에 요원들이 수류탄을 던졌다.
쾅!
폭음과 함께 몇 명이 날아갔다. 동그랗게 뚫린 수류탄 터진 구멍. 수류탄이 터지면서 생긴 동그란 생긴 빈자리가 삽시간에 싱싱한 감염자들로 채워졌다.
[1번 라인. 크레모어 격발]
김 양의 말에 외벽에 설치한 크레모어가 폭발했다. 외벽에 달라붙어 고기 사다리 만들던 감염자들이 한 번에 피곤죽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뢰 작동!]
전자식으로 제어하고 있던 지뢰가 작동하자마자, 연쇄적으로 폭발이 시작됐다.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시체들, 공중으로 솟아올라 폭발하는 지뢰들이 삽시간에 피바다를 만들었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숫자의 폭력 앞에서는 무의미해 보였다.
“지금은 총이나 폭탄보다 화염방사기가 좋을 것 같은데?”
리퍼 슈트를 입은 마루가 언제 왔는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겠음? 연기가 시야를 가릴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도 그랬잖아.”
[일본? 아-]
“그래. 저것들 불길 뚫고 건너오지 못했던 거. 화염방사기 준비!”
인공지능이 화염방사기 포탑을 움직였다.
“외벽 라인을 따라서 길게. 방사!”
푸화아아아아악!
화르르륵! 화아아악!
네이팜으로 만든 불길이 점차 이어져,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전신이 조각나도 달려들던 감염자들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는 뛰어들지 못했다.
“YES!”
“그렇지!”
“됐어!”
외벽에 올라선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바글바글 괴성을 지르며 불길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는 감염자들을 향해 마루가 선물을 준비했다.
“4.2인치 박격포 있죠? 그거 씁시다.”
네이팜 불길이 감염자들을 막는 동안, 4.2인치 박격포가 설치됐다. 동서남북 방향마다 7문, 8문씩 자리 잡은 4.2인치 박격포에서 굵직한 포탄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전부 합해 고작 30문이었지만, 박격포의 화력은 막강했다.
네이팜 불꽃으로 접근을 막고, 30~40mm 기관포로 중장거리를 다지고, 박격포로 한 번씩 쌓인 물량을 흩어버리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안정적인 방어 라인이 잡혔다.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지금부터 교대로 휴식하죠.”
짧은 시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죽였지만, 답이 없을 정도로 많은 수가 남아있었다.
“디아나. 이쪽 상공에서 사진 찍고 있는 인공위성이 있을 텐데, 그 자료 확보할 수 없을까?”
[강력한 보안이 걸려있습니다. 흔적이 남는데 괜찮으십니까?]
“이 상황에서 흔적은 무슨. 일단 우회할 수 있는···. 아니다. 이쪽이면 전문가를 시키는 게 좋겠다. 사만다.”
[네.]
“들었지? 인공위성 자료가 필요해.”
정찰 드론을 날리면 새들이 반응했다. 정찰 드론을 공격하는 것. 새들을 자극하지 않고 현재 상황을 확인하려면 인공위성이 제일이었다.
[흔적이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최대한 우회해서 자료를 확보해줘. 가능하다면, 쓸만한 위성 하나 납치하면 좋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자료 뺄 수 있으면 빼고.”
[···알겠습니다.]
뭔가 시키는 게 많은 마루였지만 어쩌겠는가? 사만다는 후드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확보한 것은 디트로이트 인근을 촬영한 위성 사진.
간혹 모닥불로 보이는 불빛이 있을 뿐, 전반적으로 깜깜한 모습의 야간 사진과 뚜렷하게 감염자들이 모인 주간 사진이었다.
“디트로이트 인근에 생긴 감염자들은 거의 전부 이쪽에 있다고 봐야겠는데.”
[저쪽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애들은 뭐임? 갱단?]
블라디 아크 타워에서 광역 어그로를 끄는 동안, 오토바이를 고친 갱들이 좋다고 약탈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오죽 많이 털고 다녔으면 위성 사진에 번쩍이는 금괴가 찍힐 정도일까.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금은 갱단이 빨고 있네.]
김 양은 분노했다. 이 고생하면서 막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한 놈들이 내 금을 털어가?
“이대로 숫자를 줄여가면 무리하지 않아도 일주일? 늦어도 열흘쯤이면 대충 정리가 될 것 같다.”
총탄과 포탄. 거기에 박격포탄까지 쏟아붓고 있는지라, 인공위성에 찍힌 감염자들 무리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정리하고 나면 갱단부터 족침?]
김 양은 금을 건드린 것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위성 사진은 전략사령부도 그렇고 다른 기관 애들도 보고 있을 텐데. 우리가 모조리 정리한 거 알면 진짜 귀찮게 하지 않겠냐?”
[그럼 어떻게 하려고?]
“다 잡지 말고 분산시켜야지. 교차로 인근이라든지, 고속도로 근처라든지 철로 쪽으로 흩어 놓게.”
[갱은?]
감염자든 변종이든 됐고 갱은? 김 양의 목소리가 스산했다.
“한 5~6천씩 뭉텅이로 흩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방어벽 역할도 될 거고. 귀찮은 애들 한 번 걸러줄 거고 그럴 테니까. 그쪽으로 계획을 잡아보자.”
[갱단은?]
흩어 놓든 모아 놓든 좋은데 갱은?
“일단 이쪽부터 정리하고 난 뒤에, 튀기든지 지지고 볶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김 양은 금을 가져간 새끼들을 조지겠다는 일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쪽은 확실히 사만다와 후드가 빨랐다. 인공위성을 공유하는 데 성공했고,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을 뽑아왔다.
“난리 났네. 텍사스가 분리독립을 선언했어. 거기에 분리독립을 선언한 주만 벌써 5곳이야.”
버몬트, 텍사스, 뉴햄프셔, 캘리포니아, 하와이를 시작으로 추가로 분리움직임을 보이는 곳만 7곳에 이르렀다. 합하면 무려 12개 주였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11개 주가 남부연합을 구성했었으니, 12개 주면 남북전쟁 당시보다도 많은 주가 분리 독립하겠다는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는 무슨 깡으로 분리 독립하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초토화된 서부지역의 중심인 캘리포니아가 분리 독립하겠다는 주장을 했다기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여신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수호하는 전쟁의 여신.]
[서부의 희망. 여신의 깃발 아래. 자유를 쟁취하자.]
캘리포니아에 대단한 초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휘능력도 탁월해서 적은 숫자의 자경단으로 변종들을 때려잡고, 갱단이고 카르텔이고 말 그대로 분쇄하고 있는 모양.
[민주주의를 암살하려는 연방정부. 과연 연방정부가 제정신인가?]
[텍사스의 아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 연방정부의 행태.]
텍사스 쪽은 분리독립 주장한 사람이 버지니아 출신 인물인지라, 암살 대비를 단단하게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암살부대를 투입하는 악수를 둬서, 연방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찍어 버렸다.
[본토가 하와이를 버렸다.]
[아무런 지원도 없고 재건의 움직임도 없는 이유는?]
하와이는 핵 맞았는데 본토에서 아무런 지원이 없자, 그냥 돌아 버린 것 같았다.
버몬트와 뉴햄프셔는 진작부터 귀족정치 물러가라 했던 동네인지라. 이참에 연방 탈퇴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하긴.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했지.”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접선거가 아니라,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였으니까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분리독립을 선언한 주들은 완전히 관계를 끊자는 소리가 아니었다. 각기 독립 국가를 결성한 뒤, 동맹을 맺어 경제, 군사적인 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주요 인프라가 박살 난 지금. 어느 주부터 재건할 것인가? 어느 주에 먼저 투자할 것인가? 이것만으로도 갈등은 넘쳐날 상황.
차라리 각기 분리 독립해서 알아서 재건하고 방어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인지라 일리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일리가 있건 없건, 연방정부는 그런 주장을 인정할 수 없었다. 중국과 전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무려 12개 주에서 분리독립이니, 연방 해체니, 이딴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인정할까?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중국 전선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면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내전을 하는 건 아닙니다.]
연방군의 주력은 중국 전선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이걸 회군하는 건 병신 짓이었다. 최소한 중국 공산당의 숨통은 끊어 놓고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핵이 터지고 최소 보름, 그나마 안전하게 작전하려면 100~120일 뒤에 들어가는 게 좋다는 것을 앎에도, 바로 연합특수부대를 밀어 넣어 원전을 장악하고, 상하이 생명공학 실험실 공략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해서 5만이라는 미군과 20만에 육박하는 한국군을 동원했다. 이제 남은 건 승리의 깃발을 꽂는 건데 여기서 퇴각? 여기서 병력을 뺀다? 적에게 기사회생의 시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방정부는 중국 전선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 같고. 한국은 전쟁 특수인가?”
한국군과 미군의 보급을 감당하기 위해, 군수공장이 들어섰고 24시간 보급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속에 이상한 정보가 하나 끼어있었다.
[여기 이것 보셈.]
김 양이 찾은 정보.
“하마루의 신변을 양도하면, 변이 바이러스 부작용을 치료하는 치료제의 레시피를 넘기겠다? 뭐야 이건?”
[여기 있었음.]
질병통제센터에서 연방정부로 올린 자료 속에 있었다. 한국의 오진그룹에서 질병통제센터를 통해 미 연방정부에 전달한 거래 내용.
‘내 약혼자 찾아줘. 내 약혼자 찾아서 돌려주면, 진짜 중요한 레시피 넘겨줄 게. 이 레시피 있으면 말 안 듣는 애들 목줄이 될 수 있지 않겠어?’
중국과의 핵전쟁 때문에 통제되고 있던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제의 등장은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었다.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 확산추세가 심상치 않은 지금. 이런 제안을 받은 연방정부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미친.”
마루는 나주현의 생각에 기가 질렸다. 이렇게 중요한 레시피를 자신과 바꾸겠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김기순은 잡히지 않은 것 같음.]
김 양의 말대로, 기순이를 잡았으면 그 이야기까지 나왔을 텐데,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기순이는 잘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루와 김 양이 자료들을 훑어보는데 디아나가 변동 상황을 전해왔다.
[감염자들의 공격성이 줄어들었습니다.]
디아나가 보낸 영상 속의 감염자들은 눈에 띄게 활동성이 줄어들어 있었다. 물이 끓어 오르는 것처럼 들끓던 움직임이 확연하게 잠잠해진 모습.
“박격포 사격중지, 일단 전부 사격중지.”
기관총과 기관포, 박격포가 일시에 잠잠해졌다. 포성이 끊기자,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이상 징후.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정말 느릿했다. 일본 도난병원에서 봤던 움직임.
“라인 따라서 화염방사기만.”
화염방사기가 피워올린 불꽃의 벽 건너, 느릿하게 배회하는 감염자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전략사령부의 인공지능이 정보교환을 요청했습니다.]
[국토안보국의 인공지능이 정보교환을 요청했습니다.]
?
?
?
[질병통제센터의 인공지능이 정보교환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정보만 교환하자?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