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74화 (274/280)

러스트 [RUST]-274

사만다가 반응했다.

[정보교환에 응하시겠습니까?]

“아니. 거절한다.”

[인공지능 사이의 정보교환은 완벽하게 암호화된···.]

“야.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거절한다고.”

이제까지 잠자코 있었던 트리아가 부연 설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마루가 중간에 끊어 버렸다.

“못 알아들었냐?”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자, 인공지능들이 바로 반응했다.

[알겠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

정보가 중요하긴 했다.

그래도 인공지능 사이의 정보교환이라니, 무슨 정보가 어떻게 교환될 줄 알고 교환한단 말인가? 인공지능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 신의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인간들 사이에 흔히 언급되는 신뢰, 신의라는 개념을 인공지능에 대입하는 게 옳을까?

연산 결과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더 확실한 이득이 있다고 했을 때,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신뢰, 신의라는 개념을 지킴이 항상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러시아가 한국의 무기체계 발전에 도움을 줬고, 한국과 좋은 관계를 계속했기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이 신뢰, 신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판단한다면? 신뢰와 신의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판단을 내린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때,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와의 의리를 지켰던 것을 생각하고, 신의를 지킨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선전하고 있음을 근거로 든다면?

일본과 중국의 수출규제로 한국이 힘들 때, 러시아가 돕겠다고 나선 것을 예로 들면?

인공지능이 신뢰, 신의에 대해 그런 판단을 내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러시아를 신뢰해서 지지하는 것은 미국의 신의를 깨는 것이라고 신뢰, 신의라는 단어를 정량화시켜야 하나? 비교를 통해 더 큰 쪽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 되는 건가?

인공지능이 신뢰, 신의라는 단어를 어떻게 소화할지, 인간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학습했는지도 중요하니까.”

[뭐임? 왜 그렇게 봄?]

‘왜 그러긴. 너를 보고 배운다고 얘들이.’

‘나만큼만 하면 됐지 뭘 더 바람?’

마루와 김 양이 눈빛을 교환했다.

김 양은 왕왕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었다.

“그래. 그래도 적당히 해라. 적당히.”

[······.]

인공지능 사이의 정보교환은 지금 디아나, 사만다, 트리아 사이의 정보교환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기관이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이 어떤 성능, 어떤 성향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정보교환 허가는 위험했다.

인공지능 사이의 정보교환으로 논리 연산기준이 변한다면? 디아나만 하더라도 김 양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사만다와 트리아도 서로 자극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다른 인공지능과 접속하는 건 시기상조.

그게 마루의 판단이었다.

“정보만 주고받는다고 하더라도 위험하지.”

[그렇긴 함.]

김 양도 동의했다. 정보만 오고 간다고 해놓고 다른 게 오고 가면? 이쪽은 숫자가 적었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토안보국 출신 요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것도 아니었고.

정보교환 속에 지령 같은 게 같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나?

“애초에 여지를 주지 않는 게 최고야. 정보도 그래. 감염자들이 저렇게 됐다는 정보만 하더라도 위험하지.”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줄었다는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진그룹에서 이상한 제안까지 한 모양인데, 골치 아픈 상황이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정보교환을 요청한 저쪽 인공지능 숫자가 너무 많아. 제어권을 노리고 작업할 가능성도 있고.”

정보교환을 명목으로 각 기관에서 보유한 인공지능들이 한꺼번에 이쪽 인공지능을 제압하려고 한다면? 빌딩의 제어권을 뺏길 위험이 있었다.

[그건 상관없지 않음?]

김 양이 팔을 쑥 내밀었다. 항상 챙기고 다니는지, 기폭장치를 쥐고 있었다. ‘제어권 뺏기면 쾅! 해버리면 그만이지 뭘 그리 걱정?’

태연한 김 양의 목소리에 마루는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디아나의 지원만 하더라도 많이 도움됐다. 사만다의 정보 처리 능력도 좋았고 트리아의 연구 보조도 탁월했으니까.

‘그래서 그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 양인지라, 인공지능들도 그렇고 박사와 후드도 꼼짝 못 했다.

‘인공지능이랑 후드, 박사 관리는 김 양이 계속하면 되겠네.’

속으로 끄덕이는 마루였다.

“적당히 해. 적당히.”

[적당히 잘하고 있음.]

이쪽 인공지능들이 저쪽을 장악해도 위험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쪽 인공지능을 건드리는 순간 저쪽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핵 맞은 김에, 그냥 핵이든 벙커버스터든 박아 버리면? 처음 디트로이트에 쉘터를 구축한 이유가 적당히 조금씩 무너지는 세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한 방에 훅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도시에 쉘터를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인의 장막을 쓸 수 있기 때문 아니었던가.

모듈 원전을 받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확보하기 쉽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사능 유출이라는 카드가 생기기 때문.

모듈 원전이라고 하지만, 원전은 원전. 방사능 때문에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핵을 맞아버렸네. 핵 맞은 김에 디트로이트에 방사능 좀 퍼지면 어때? 이렇게 나와버리면 망하는 거였다.

그러니 ‘침묵하고 회피해서 존버한다.’ 이게 마루가 결정한 방침이었다.

[존버?]

“그래. 저쪽 자극하지 말고. 이쪽은 그냥 몇 년 잠적한다 생각하고 버티자.”

버티는 건 좋은데

[금은?]

아포칼립스건 뭐건 세상 망하면 금이 최고 아님? 지폐는 휴지 조각되는 거고. 그러니까 갱단이랑 카르텔이 가져간 금은?

금에 집착하는 김 양에게 마루가 두 손 들었다.

“아까 말했지만, 마음대로 해.”

[알겠음.]

그렇게 마루와 김 양은 계속해서 자료를 확인했다.

[여기 중국 전선 상황 좀 이상함.]

“어떻게 이상한데?”

[거기 보면, 중국이 분열됐다고 하는데]

“중국이 분열됐어?”

[대충 7~8개로 쪼개질 거 같음.]

위구르, 티베트, 내몽골을 시작으로 군벌과 지역 정치 세력이 결합해 4~5조각이 날 조짐이 보였다.

[그것도 그런데 거기 자료.]

[뒤에 보면. 한미연합군 사상자가 폭증하고 있음.]

“쪼개진다며?”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했잖음.]

먼저 연합특수부대가 중국의 원전 대부분을 장악하는 데 성공. 정지와 폐기 절차를 밟았다. 핵폭발 방사능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한미연합 특수부대가 밀고 들어가 중국의 대응이 늦었다.

이미 군벌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각 지역 군부가 노골적으로 독립 군벌화에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핵이 떨어진 직후인지라 방사능 농도가 짙은데 중국에 직접 병력을 보낼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

전쟁 전문가 미국과 독이 잔뜩 오른 한국은 중국의 그런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군 20만에 재편한 미군 5만을 합해 25만의 병력을 중국에 상륙시킨 것.

초반 순식간에 밀고 들어간 병력이 멈춘 이유는 시가전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시가전은 출혈이 큰 싸움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숲으로 이뤄진 도시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거기에 도시 지하에 미로처럼 엮어 놓은 대피소엔 생존자들이 너무 많았다.

상하이 인구만 2,600만이었고 옆에 붙어있는 쑤저우만 해도 1,100만이었다. 두 도시만 합해도 3,600만.

그 좁은 면적에 주소를 둔 사람이 3,600만인데 집이 시골인 농민공의 숫자를 포함하면 사실상 4,500만 명 내외가 상하이와 쑤저우 지역에 있었다.

25만 병력으로 4,500만 이상의 인구를 담당할 수 있을까? 핵으로 절반이 죽었다고 쳐도 남은 인구가 2,250만이 넘는데.

25만 병력이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보급로 걱정 없을 정도로 도시를 장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민간인 생존자 속에 숨어있는 중국군들의 공격에 미군과 한국군 사상자가 폭증했다.

마루가 본 자료에는 그런 상황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손쉽게 성공한 상륙. 상하이와 쑤저우, 항저우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민간인을 앞세워 공격하는 중국군.

‘보급로 주변의 건물을 철거합시다.’

‘기지 인근 지역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려야 합니다.’

폭격과 포격 그리고 다시 폭격으로 도시를 갈아버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시가전의 소모에서 벗어난 섬멸전의 시작이었다.

“이거 이렇게 가면 나중에 문제 되겠는데.”

[괜찮음.]

김 양이 태연하게 답했다.

“민간인 사상자 문제로 말이 많았는데. 괜찮기는.”

[핵 맞았잖음. 아무도 뭐라고 못함.]

그렇기는 했다. 핵 맞아서 급발진하는 중이니까.

“중국군이 그렇게 정예였나? 연합군 피해가 너무 큰 게 걸리네. 약 때문일까?”

[아마도?]

중국은 약을 풀었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지만, 그만큼 전투력을 급격하게 올려주는 약물. 크리스털. 그리고 중국 자체적으로 만든 강화인간 같은 것들이 자료에 적혀있었다.

마루와 김 양이 필요한 곳이 넘쳐났다.

분리독립 주의자들 제거, 뭉치기 시작한 변이 괴수들 처리, 캘리포니아에서 설치는 전쟁의 여신 정리, 한미연합군을 괴롭히는 중국의 강화인간, 약쟁이들까지.

‘존버다. 존버.’

마루는 다시금 존버의 의지를 굳히며 자료를 읽어갔다.

독이 오른 한국은 1차 동원령을 내려, 180만의 병력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화들짝 놀라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중국과 미국이 핵을 날리더니, 남조선에도 핵이 떨어져 물렁물렁했던 남조선 애새끼들 눈이 휙 돌아간 것이 보였다.

눈 돌아갔을 때 잘못 알짱거리면? 괜히 불똥 튀는 건 사양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살 떨리는데, 중국 중앙 정부에서 당장 남조선을 공격하라는 개소리가 들어왔다.

제정신인가? 공격 명령? 웃기는 것들이네. 조약이고 협정이고 미국에 핵을 날려서 그 지랄을 내놓더니, 이제는 남한을 선제공격하라고?

로동당 총비서이자,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수령 동지께서 최근 벌어진 사태로 건강이 심히 우려되는 관계로 군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을 중국에 전했다.

핵은 자기들이 쏴 놓고 똥은 우리랑 같이 치우자니 양심도 없는 것들. 심지어 중국 북부전구에서는 북조선이 무너지면 치안을 유지한다며 밀고 내려올 준비까지 하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북한은 중국 공산당이 요구하는 공격 명령을 무시했다. 만주랑 요동을 준다면 아주 조금 발을 담글 의향이 있지만, 그 정도 아니면 싸움에 낄 생각 없었다. 그리고 싸움에 낀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싸움은 아닐 것이다.

‘남조선을 공격하는 것보다, 내전을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갔어?’

북한은 중국이 치고 내려올 준비를 했던 것. 자기들 멋대로 북한을 쪼개 나누자고 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판돈을 올려보라우. 아니면 우리가 내전을 끝내주갔어.’

북한이 찢어지기 시작한 중국을 상대로 판돈 이야기를 꺼낼 무렵, 러시아는 갑자기 홋카이도를 기습 점령했다.

일본은 대재난이 닥친 지 반년이 넘도록 공식적인 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있었다. 대재난 초기에 정부가 무너졌고, 임시정부까지 사라진 뒤로 일본은 말 그대로 각 지방이 각자도생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홋카이도를 기습 점령, 아이누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를 만들어 버렸다. 세계는 러시아의 그런 행동에 반응하지 못했다.

미국과 한국은 중국과 드잡이질 중이었고, 유럽은 사방에서 터지는 테러, 기괴한 식인병 확산으로 정신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중동에서 서서히 전쟁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었다. 필리핀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곡물을 수입했었는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수출 금지를 때려 버린 게 시작이었다.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니 위약금 더해서 돈 돌려주면 될 일이지 않나? 그런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그것을 거절했다.

위약금을 비롯한 돈을 현재 오른 식량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달러가 아닌 식량으로 주겠다는 것.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식량 수입국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게 동남아시아에서 식량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식량문제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곡물을 수입하던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은 바로 식량 가격 폭등에 몸살을 앓았고. 이런 곡물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유대계 곡물 회사를 꼽았다.

그렇다. 유대계 곡물 회사 곡물 유통회사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료를 읽던 마루가 한마디 했다.

“미쳤네.”

씨발.

왜 이러는 거지?

그냥 변종이든 괴물이든 그런 거나 설치지 왜 이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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