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75화 (275/280)

러스트 [RUST]-275

자료를 덮은 마루가 눈을 감았다.

“더 자세한 자료는 구할 수 없나?”

[전쟁 여파로 보안체계가 강화됐습니다. 해당 기관 인공지능이 보안을 담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예전처럼 자료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사만다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인공지능을 정보통신망에 연결하지 않고 있었다는 소린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안과 관련된 부분에 인공지능이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는 건 인공지능들이 정보통신망을 헤집고 다니면서 논리연산 과정을 자체적으로 조정하게 된다는 소린데.

디아나, 사만다, 트리아를 통해 볼 때, 제한 없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위험해 보였다.

‘그걸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제까지 통제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제까지 했던 통제를 풀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앞날이 걱정이었다.

“각 기관 인공지능들이 폭주할 가능성은 없나? 영화에 나오는 스카이 웹 같은 살인 인공지능으로 변하고 그럴 가능성.”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코드를 쪼개 무한한 인터넷 세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북미와 중국은 인터넷이 끊겼다. 일본도 마찬가지고, 유럽도 계속 테러가 터지는 상황.

컴퓨터와 인터넷이 연결된 세계여야 코드를 숨기든 코드를 확산시키든 할 텐데. 현시점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말.

[현 상황을 알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까? 저쪽 인공지능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지. 어쨌든 살인 인공지능이 정보를 통제하고 전쟁을 격화시키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되나?”

[인공지능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습니다.]

트리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멸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탄환은 발사됐고 이제 그 탄환이 어디에 맞는지가 중요했다.

그 결과 단숨에 죽을지, 서서히 죽을지. 시기의 차이만 있다는 이야기.

“어째서지? 난 아직 남은 기회가 있다고 보는데.”

호주도 있었고 남아프리카와 남미도 있었다. 러시아의 광활한 시베리아와 몽골을 비롯해 -탄으로 끝나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북미에는 캐나다가 있으니까. 이들 지역만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멸종하긴 힘들었다.

[유럽에서 폭증하고 있는 신종 식인병에 대한 연구 자료입니다.]

연구를 주로 담당하던 트리아인지라. 그쪽 방면에서 확실히 빨랐다.

[식인병이 최초로 발견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작은 소도시입니다.]

소도시는 프라토는 명품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문제는 그 명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나 유럽 사람이 아니라, 중국인이었다는 사실. 프라토에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공장의 숫자는 무려 5,000곳이 넘었다.

“5,000개? 이탈리아 작은 도시에 중국인 공장이 5,000개 넘었다고?”

[그렇습니다. 가내수공업식 업장을 포함하면 그보다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 5만에서 최대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중국인들이 프라토에 있다는 이야기. 하다못해 치안도 중국 공안이 담당하고 있을 정도.

“그게 식인병과 무슨 상관이지?”

[처음 희생자가 발생한 장소가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 식자재 전문점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식자재에 문제가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트리아가 식인병 발병 지도를 모니터에 올렸다.

[붉은 점은 중식당, 중국 식자재식자재 마트, 중국인들이 많이 모인 차이나타운에서 발병한 식인병 표시입니다.]

[노란색 점은 차이나타운에서 중식을 먹고 SNS에 올린 사람들입니다.]

붉은색 점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노란색 점들이 붉게 변하는 모습.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해산물 파우더를 사용한 음식들 또는 육류나 가공 육류를 사용한 음식을 섭취한 사람들에게서 식인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미리 격리하면 안 되나?”

[이미 확산한 결과를 분석한 자료인지라, 예방은 어렵습니다.]

“씨발···.”

세계에 중국인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화교가 됐든, 뭐가 됐든, 중국인이 모인 곳에는 중식당이 있기 마련이었고 중식당과 중국인들은 중국 식자재를 쓰기 마련이었으니까.

[중국인들과 식자재 유통망을 타고 식인병이 전 세계에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대일로 거점 지역을 시작으로 식인병이 창궐했다. 식인병은 변이 바이러스 사태로 휘청거리던 각국을 붕괴시켰다.

그래 여러 가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만큼이나 빠르게 무너진 것은 인권이었다.

감염자들 숫자가 적을 때는 강제격리였지만, 변이 바이러스까지 폭증하고 있는 마당에 식인병이 생기자, 군대를 동원해 사살하는 나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인류는 이미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비말 감염이 일어난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식인병과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굉장히 빠릅니다.]

식인병은 기본적으로 물리면 감염이었지만, 비말로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붉은색 점이 중국과 동남아를 시작으로 세계를 뒤덮는 화면을 끝으로, 트리아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변이 바이러스의 창궐, 식인병의 확산, 식량과 자원으로 말미암은 분쟁, 핵전쟁과 방사능 오염, 이상기후 등을 종합해 고려해 볼 때,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합니다.]

[이에 인류를 보존할 방법으로···]

“거기까지. 무슨 신세계, 인류 생존 어쩌고 할 거면 거기까지 해라.”

마루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잘 나간다 싶더니, 이야기를 그쪽으로 꺾네.

박사와 후드가 추진했던 신세계, 인류 생존 어쩌고··· 간단하게 인간을 정보화해, 컴퓨터에 이식하겠다는 것이 골자인 계획.

“후- 변이 바이러스가 고열에 사멸하는 건 맞지?”

[그렇습니다. 200도 이상의 고온으로 일정 시간 이상 가열하면 독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변이 바이러스도 답이 없는데 식인병? 대체 어떻게 했길래.

변종 코요테로 영양탕 만들어 먹었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어쩌다 저러는 걸까? 일단 제대로 가열 처리하지 않은 식자재가 유통되는 게 분명했다. 그걸 먹고 난리가 난 거고.

“식인병 관련 자료, 각 기관으로 보내.”

위험했다.

“전 세계에 알려. 식인병 퍼지고 있다고. 먹을 건 반드시 고온으로 가열해서 먹으라고 하고.”

좋은 뜻으로 식인병 관련 자료를 공개했지만, 그걸 본 정부 기관의 생각은 달랐다.

[유럽에서 퍼지고 있는 식인병이 이렇게나 심각할 줄이야.]

[유럽만 문제가 아닙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호주까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관리하고 있었으니까요.]

엄청난 속도로 식인병이 퍼지고 있는 유럽과 남미를 고려하면 미합중국의 상황은 비교적 좋았다. 핵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사실상 중국인들을 통제, 격리, 가택 연금, 추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인병이라. 중국 본토가 유럽보다 심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중국에 상륙한 군이 운신하기 좋아졌다. 변이 바이러스를 이유로 폭격과 포격을 때려 박기에는 명분이 좀 약했는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식인병이라는 핑계가.

[무리해서 점령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렇군요. 식인병과 변이 바이러스가 퍼질 테니까요.]

중국의 지하대피소는 끔찍했다. 상하이만 하더라도 지하에 개미굴 같은 대피소를 만들어 마치 미궁 같았다.

끝없이 중국군이 뽑히는 원천이라고 할까? 하지만 식인병과 변이 바이러스가 지하에 퍼지면 어떻게 될까?

알아서 서로 죽일 거다. 그러니 지하로 통하는 입구만 틀어막고. 밖으로 나와서 자리 잡을 장소를 미리 박살 내면 되는 일이었다.

[작전을 전면 검토할 필요가 있겠군요.]

[상하이부터 시작합시다.]

언론은 열광했다. 특종이었으니까.

미국에서는 연일 자극적인 라디오 방송들이 쏟아졌다.

[중국이 생물학 병기를 세계에 풀었나?]

[질병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중국의 야욕.]

[어째서 핵전쟁까지 갔는가?]

[전쟁 원인은 중국발 바이러스 때문?]

중국이라는 이미지가 생화학 전쟁, 바이러스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나라로 박혔다.

핵폭발 여파로 비상용 라디오 정도만 살아있는 미국에 비해, TV 방송이 살아있는 각국에서는 트리아의 영상 자료가 그대로 공개됐다.

[변이 바이러스의 또 다른 형태, 식인병 발병]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먹거리를 위협한다.]

[식인병이 유럽을 무너뜨리는가?]

거기에 최근 논란이 되는 식인병까지 더해지자,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테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계 어디에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다.]

[분노 조절장애에서 식인까지. 바이러스의 변화는 중국의 의도였나?]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이미지가 하락하고 있었는데, 중국산 식자재를 시작으로 퍼졌다는 트리아의 연구 자료는 전 세계를 들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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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르륵-

네이팜이 빚은 불꽃이 외벽 바깥을 밝혔다.

미친 듯이 달려들었던 감염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마네킹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숫자도 상당했고.

그렇게 느릿하게 있다가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감염자들 사이로 이상한 놈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콰직-

감염자를 물어뜯는 이상한 놈들.

이제까지 패턴은 뇌나 심장을 노렸는데, 이것들은 그냥 무턱대고 물어뜯고 있었다.

‘저건 뭐임?’

물어뜯었으면, 깨끗하게 발라먹든가. 한입 베어 물더니, 슬금슬금 안 문 놈 무는 건 대체 뭐하는 짓?

이상한 놈을 본 김 양이 방아쇠를 당겼다. 거대한 소음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12.7mm 탄을 날렸다.

크아-입을 쩍 벌려 또 물어뜯기를 하려던 놈의 대가리가 터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조각들 뒤로 털썩 쓰러지는 모습이 스코프에 담겼다.

잠시 뒤, 이번에는 아까 어깨를 물렸던 놈이 비척비척 움직여 옆에 있는 감염자를 무는 모습.

‘저건 또 왜 저럼?’

퉁! 방아쇠를 당긴 김 양이 통신을 보냈다.

[여기 이상한 놈들 있음.]

[변종인가?]

[일본에 있던 덩치 큰 놈들은 아닌데, 이상한 놈들임. 막 물어뜯음.]

[···그런 놈들이 많아?]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고. 보이면 족족 잡고는 있는데. 점점 늘어나는 것 같음.]

[···영상 보내봐.]

김 양은 영상을 전송했다.

[아무래도 식인병 같다. 지금처럼 무는 놈들 먼저 잡도록 해.]

[알겠음. 그리고 새들이 시체 먹는데 그건 어떡함?]

[···지금 갈게.]

마루가 리퍼 슈트를 챙겨입고 은신을 켰다.

외벽에 올라보니, 김 양도 은신하고 있었다. 저격총 총신만 삐죽하니 나온 모습.

“새는 어디에 있고, 물어뜯는 건 어디야?”

[새들은 저쪽. 물어뜯는 것들은 이쪽.]

새들은 네이팜으로 불타오르는 곳과 외벽 사이에 생긴 공터에 빼곡하게 내려앉아, 시체들을 파먹고 있었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는 모습.

“공격성은? 너 공격하지는 않았고?”

[은신하고 있어서 모르는 것 같음.]

“은신 해제해봐.”

[······.]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럼? 너님은 뭐하고?

김 양의 침묵에 마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인공위성. 상태 안 좋다는 핑계로 연락 피하고 있는데, 내가 설치는 모습이 인공위성에 찍히면 어떻게 되겠냐?”

김 양이 얌전히 은신을 해제했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슬쩍슬쩍 움직여봐.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발딱 일어나 외벽을 서성이기 시작하는 김 양. 아래에서 시체를 파먹던 새들 몇 마리가 김 양의 움직임에 반응해 푸드덕 날갯짓했지만, 딱히 달려들지는 않았다.

배가 부른 놈들이 날아오르자,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놈들이 교대로 내려와 포식하는 모습.

[그래서 쟤들 잡음?]

“아니. 일단 그냥 두자.”

그렇지 않아도 시체는 치워야 할 판인데, 새들이 알아서 없애주면 좋았다.

“반대쪽에 물어뜯는 놈들이 있다고 했지? 가보자.”

확실히 멀리, 몇 마리가 마네킹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감염자를 물고 있었다.

[아. 금방 늘었네.]

김 양이 자세를 잡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퉁-퉁-툭!

툭-툭-퉁!

순식간에 머리통 6개를 박살 낸 김 양이 끼융-고개를 돌렸다.

‘봤음?’

“대단하네. 속사가 많이 늘었는데? 이왕 나온 김에 확인하고 오게 백업 부탁해.”

[뒤는 걱정 마삼.]

김 양이 거만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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