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76화 (276/280)

러스트 [RUST]-276

마루는 소리가 나지 않게, 완강기 줄을 붙잡고 미끄러지듯 외벽을 내려갔다.

화르르륵!

타오르는 불꽃의 벽을 뛰어넘어, 가볍게 착지한 마루가 좌우를 살폈다. 감염자들은 아주 느리게 한 걸음씩 움직이거나 마네킹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은신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우면 알아채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둔하네. 일본에 있던 것들과는 다른가?’

코로나의 특징이 빠른 변이라고 하더니, 변종의 변이가 생겼을지도 몰랐다. 5감 가운데 시각이나 후각, 촉각이 약해지는 쪽으로 변한 것이라면 이쪽이 유리한 거니까.

마루의 시선이 향한 저 끝을 향했다. 외곽 부분이 흔들리는 모습. 느릿하게 움직이는 감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민첩한 동작. 식인병에 걸린 자들이 감염자를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르륵 외곽으로 이동한 뒤 건물 2층으로 뛰어올랐다. 리퍼 슈트가 고양잇과 동물처럼 소리를 죽였기에 가능한 움직임. 외곽 식인병에 걸린 자들이 뚜렷하게 보였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분노에 찼을 때의 움직임과 비슷하지만, 거기에 본능이 가미된 느낌.

‘분노가 아닌, 식욕?’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식욕이 분명했다. 어이없는 것은 식욕에 몸부림치면서도 머리를 파묻고 살을 탐하지 않는다는 점. 한입 크게 물고 다른 먹잇감을 찾는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감염시키려고 하는 건가?’

이성의 번뜩임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기들 숫자를 불리려는 행동이었다. 변종에 감염된 자들이 식인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씨발.’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던 감염자들이 식인병자들에게 물리자 전신을 떨어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길지 않은 시간 물고기가 펄떡이는 것처럼 사지를 펄떡대던 자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5월 초순이 지나 중순, 쌀쌀함이 물러간 자리에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크아아아아아

크으으으으으

식인병은 변종 바이러스에게 영향을 주고, 변종 바이러스는 식인병에 영향을 주는 기괴한 장면. 펄떡이고 뒤틀리는 물결이 점차 사방으로 퍼지는 모습.

콕콕 찌르는 듯한 감각.

‘피할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후읍-

깊게 호흡을 가다듬은 마루가 살의를 일으켰다.

‘최대한 죽인다.’

피어오른 살기에 반응하는 것들. 바글바글한 벌레 가운데 살충제라도 던져 넣은 것처럼 화들짝 도망치는 것들 사이로, 식욕과 분노가 뒤섞인 것들이 비척비척 마루를 향해 다가섰다.

콰직-

건물 외벽에 금이 쫙 퍼지며, 칼을 뽑은 마루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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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건너. 김 양은 찝찝한 것들 숫자를 하나씩 줄이고 있었다.

백정 뒤를 봐주기로 했는데, 뭔 건물 2층으로 올라가더니 움직이지 않고 있네? 하염없이 백정 등판만 바라고 있기도 뭐하고. 숫자나 줄여야지. 응.

‘세상이 왜 이러는 거니?’

행복하게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도와주지를 않았다. 기계적으로 탄창을 갈고 자세를 바꾼 김 양이 목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퉁- 퉁 퉁!

엑소슈트가 있어서 편하게 앉아 쏴도 되고, 서서쏴도 되니까 망정이지, 계속 엎드려 쏴만 했으면 힘들었을 거다.

툭- 퉁 툭!

한 번에 서넛씩 머리통을 날렸는데도 이것들이 정말 많았다. 아니, 많아지는 건가? 찝찝하게 계속 늘어나는 모습에 김 양은 눈살을 찌푸렸다.

[3호 따까리. 저것들 뭐임?]

연구 전문이라고 했으니까 대충 정보가 있지 않겠어? 김 양의 질문에 트리아가 대답했다.

[샘플이 필요합니다.]

[무슨 샘플?]

[식인병과 변종 바이러스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려면 샘플이 필요합니다.]

[그거 근본은 중국 바이러스든 일본 바이러스든 그거 아님?]

그러니까 일본에서 가져온 자료랑 기존 연구 합하면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겠어? 근데 그건 입 닦고 새로 샘플이 필요하다? 이게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하네.

[3호기. 똑바로 안 함?]

[···확인하려면 샘플이 필요합니다.]

좋아. 인공지능 년이 뻔히 알아들으면서 이런단 말이지? 김 양은 바로 마루를 찾았다. 스코프에 기괴한 광경이 보였다.

은신하고 있을 테니, 안 보여야 했는데 보였다. 그러니까 핏덩어리가 칼춤을 추는 모습. 잠깐 숫자 줄이고 있었더니, 잠깐 사이에 저러고 있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칼날이 한 바퀴 돌자, 붉은 실선을 따라서 절단되는 것들. 뻣뻣하게 굳은 움직임으로 필사적으로 백정을 향해 다가섰지만, 썰릴 뿐이었다.

그 광경을 감상하던, 김 양이 한숨 쉬어 간다 싶을 때 냉큼 말했다.

[3호기가 그거 샘플 필요하다고 함.]

[··· 3호기? 트리아?]

[일본에서 가져온 자료는 날로 먹고, 바이러스 상관관계 알고 싶으면 신선한 샘플을 가져오라고 했음.]

[그래?]

마루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트리아는 열심히 연구했는데 갑자기 처분되는 일들이 왜 생기는지 연산할 수 있게 됐다. 연구도 중요했지만, 기능 정지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학습했다.

[4.2인치 박격포 아직 그대로 있지? 소이탄 넣어서 외곽부터 때려.]

[소이탄은 많지 않은데 괜찮겠음?]

[소이탄은 또 만들면 되니까 아끼지 말고 뿌려.]

[알겠음.]

김 양이 요원들을 대동해 4.2인치 박격포를 날렸다. 폭발과 함께 하얀 백린 연기가 사방을 태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끄으으으으아!

박격포가 터지는 틈을 타 몸을 뺀 마루가 빌딩으로 돌아왔다.

“이것들 어때?”

철근 콘크리트도 가볍게 자르는 이클립스인데도 저항감이 느껴졌다. 살과 뼈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외양은 인간인데 인간 같지 않았다. 칼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중화제 꽂고 난리가 아니었을 거다.

김 양의 생각도 비슷했다. 변종 바이러스 감염된 초기 애들은 12.7mm에 산산조각이 났다면, 찝찝한 것들은 대가리를 맞춰도 박살이 나지 않았다. 죽기는 했지만, 확실히 틀렸다.

“일본에서 돌아다니던 변종? 그 정도보다 더 단단한 느낌?”

마루도 끄덕였다. 이클립스로 베는데 저항감이 있다는 건, 확실히 변종보다 윗급이라는 소리였으니까.

분노 조절장애가 발현된 감염자가 변종이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에 뇌와 심장을 먹어야 한다는 제한 조건도 있었고.

그런 제한 조건이 있어, 기갑병이나 엑소슈트와 싸울 정도의 변종 인간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식인병에 걸린 것들이 감염자를 물어서 변이가 일어나면? 순식간에 변종급이 됐다. 시간과 변이 제한을 뛰어넘는다는 소리.

다시 말해 기갑병이라든지 엑소슈트로 무장한 병력과 맨몸으로 대거리 가능한 변종들이 쏟아진다는 의미였다.

“대충 7.62mm 아래는 통하지 않을 것 같고.”

“7.62mm도 안 통함. 12.7mm 철갑탄이 기본.”

변종처럼 크기가 커진 것도 아닌데, 거대 늑대나 고양이, 곰 같은 괴수들과 방어력이 비슷하다고 한다면? 사람 크기인데 장갑차 방어력 가진 괴물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소이탄 계열이 먹혀서 그나마 다행인가?”

“고폭소이철갑탄도 먹힘.”

“그건 너무 비싸잖아. CS탄이 먹히면 편한데 어쩔지 모르겠네. 바로 샘플 잡아올 테니까 방역시설 준비해둬.”

잠시 휴식을 취한 마루가 순식간에 팔다리 없는 샘플을 가져왔다.

연구원들과 인공지능은 샘플을 분석하고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를 규합해 약식 보고서를 올렸다.

[식인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분노 조절장애를 일으키는 변이 바이러스, 동물을 괴수처럼 만드는 바이러스와 유사점이 많다.]

[바이러스의 원형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지만, 여러 바이러스가 조합된 흔적이 있음.]

[유전자 분석 결과. 이제까지 발표된 바 없는 특이한 조합으로 이뤄진 부분이 있음.]

[이 특이한 조합 부분을 추출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에서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한 시신을 관리한 정황이 있음.]

“저번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특수한 성분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이야?”

마루의 질문에 디아나가 답했다.

[일본에서 만든 신종 마약, 전투자극제의 핵심 성분입니다. 시체에서 뽑은 바이러스 추출물이 그 성분입니다.“

“확실한 이야기야?”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와 연구 결과를 비교한 결과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랬던 건가? 버서커 폴이든 크리스털이든 신체능력 향상 효과에 반비례한 부작용이 있었다. 뇌에 치명적인 부작용. 그걸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비슷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걸려 분노 조절장애가 된 자들도 점차 이성을 잃고 나중에는 기억까지 잃어 치매와 비슷한 상태가 됐으니까.

중화제도 그렇고 어쩌면 급속 치료제도 바이러스나 특수 물질과 연관됐을지 몰랐다.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치고. 샘플로 잡아온 놈들은 정체가 뭐야?”

[변이 바이러스의 변종에 감염된 것으로 보입니다.]

“변이의 변종?”

예상했지만 결과를 들으니, 정말 어이없었다.

이게 다 초기 바이러스 하나에서 시작된 지랄이라니.

[그렇습니다.]

“식인병 걸린 놈들 약점은 뭐지? 놈들에게도 CS 탄이 먹히나?”

[CS 탄은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변종 괴수들을 피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게 CS 탄이었다. CS 탄으로 변종 괴수들 막고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CS 탄이 먹히지 않는다면···.

‘난리 났네.’

지금이야 식인병 걸린 것들의 숫자가 많지 않지만, 비말 감염까지 되는 판국이니 급격하게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변종급 스펙을 가진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CS 탄이 잘 먹히지 않는다? 변이 괴수들까지 걸린다면? CS 탄이 먹히지 않는 변종 괴수의 탄생이었다.

“하나도 먹히지 않나? 전혀?”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 담배 냄새를 맡았을 때 보이는 반응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냄새난다고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인상 한 번 쓰고 마는 사람이 있으니까. 개체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난다는 비유라면 미묘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CS 탄만 믿고 있기는 힘들다는 소리.

‘EMP 고장을 수리한다고 해도, 항공전력은 끝났다고 봐야겠군.’

당장 시체들을 처리하고 있는 새 떼를 생각하면 그랬다.

“식인병과 변이 바이러스 변종과의 관계 연구 자료를 공개하도록 해.”

CS 탄 믿고 삽질하는 건 막아야 했다.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면 핵으로 해결하려고 할 테니까. 그건 피하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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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바이러스에서 시작된 사회 붕괴가 핵전쟁과 식인병, 식량난으로 뚜렷해졌다.

처음에는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사태로 위태위태한 경제였는데,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인 미국과 중국이 전쟁하면서 절단 났다.

경제가 쓰러지자 치안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부터 치안이 무너졌다. 대체로 다민족, 다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울타리는 경제였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지자, 남은 것은 갈등뿐. 인종갈등 종교갈등을 시작으로 치안이 박살 나는 나라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계엄과 쿠데타, 내전이 터지기 시작했고, 그걸 피해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표출해 잡으려고 한 결과였다.

잔인한 5월. 마루가 변이 바이러스와 식인병에 대한 연구 결과를 뿌렸음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핵을 주고받은 지 한 달하고도 보름 만에 중국은 7개로 쪼개졌다. 미국은 중국의 분열을 믿지 않았다.

일본을 보라. 대재난 이후 중앙 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지방 정부만 돌리는 모습을. 모든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이 아니던가?

7개로 쪼개진 중국은 전부 자기들에겐 잘못이 없다고 하고 있었다. 기존 정권의 책임이지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는 말에 미합중국은 군대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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