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그거.
“…이게 왜?”
- 말이 너무 야해. 우리부터 방까지 다 야해. 네가 말해서 더 야해.
정말 엄청난 말을 들은 사람처럼 심각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차정한을 보니 웃음이 났다. 앞에 있었으면 꼭 안고 머리를 헝클이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이상한 소리 하니까 끊을래.”
- 진짜 너무한다. 야해서 야하다고 한 건데 이상한 소리래.
심각한 표정을 푼 차정한이 화면 속에서 씩 웃었다. 웃는 게 너무 예뻐서 캡처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 아, 진짜 어이없다. 이제 겨우 하루 지나다니. 우리 유현이 열흘은 못 본 것 같은데.
“빨리 지나면 좋겠어.”
- 키스하고 싶어.
“…….”
- 안고 싶고, 만지고 싶어.
“…며칠만 참아. 나도 참을게.”
- 뭘 참을 건데?
다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묻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다 알면서도 괜히 오늘은 화면 속에 있는 차정한에게 다 맞춰 주고 싶었다.
“너만 하고 싶은 거 아니거든. 나도 다 하고 싶어.”
- …….
“키스하고 싶고… 너랑 안고 싶고, 너 만지고 싶어.”
- …….
“나도 너 올 때까지 참을 테니까 너도 참아. 만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 내가 뭘 하고 싶은 줄 알고. 말한 건 진짜 가벼운 예만 든 건데.
“뭐든 다 해. 네가 하고 싶은 거… 나도 하고 싶은 거니까.”
화면 속 장난기가 사라진 차정한이 베개를 하나 들어 그 위로 얼굴을 푹 파묻었다가 들었다.
- 유현아.
“응?”
- 사랑해. 너 진짜 너무 예뻐.
“…갑자기…….”
- 내가 자꾸 말하면 질릴까 봐 진짜 참다가 말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네가 너무 예뻐서 너 볼 때마다 말하고 싶어.
“…참지 마.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에 질려. 그것도… 네가 말하는 건데.”
- 그럼 나 말하고 싶을 때마다 계속 말해도 돼?
나를 향한 그 눈빛이, 또 목소리가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자꾸 잠이 왔다. 나는 기대고 있던 몸을 아래로 내려 비어 있는 차정한의 자리를 보고 누워 화면 속 나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따로 있지만 꼭 같이 있는 것처럼 좋았다.
- 사랑해. 사랑해, 유현아.
나의 세상은 온통 사랑이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말, 또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차정한이 소리 내는 사랑으로 물들었다.
차정한은 내가 잠들 때까지 내게 사랑을 속삭였다. 사소한 이야기에 많이 웃고, 또 순식간에 그리워져 잠시 서로 화면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시 사랑을 소리 냈다.
온통 사랑에 파묻힌 밤. 그 밤 안에는 외로움이 없었다.
#86
?
?
처음 사흘은 영상 통화를 하며 버텼지만, 나도 그렇고 차정한도 그렇고 화면으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나흘째 밤에도 한 시간 정도 얼굴을 보며 통화했다.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화면에 한 번씩 입을 맞추고 통화를 마쳤다. 휴대폰을 내리자 오늘도 비어 있는 차정한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
그동안에도 이렇게 떨어져 지내야 할 때가 몇 번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버텼던 걸까. 꽉 막고 있던 마음이 터져 사랑에 흠뻑 젖어 버리니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차정한의 베개를 당겨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어?”
갑자기 다시 울리는 진동에 얼른 베개 밑에 깔린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차정한과도 통화를 했고,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화면에 보이는 차정한 이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심장이 조여 들었다. 영상 통화가 아니라 그냥 걸려온 전화에 나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정한아, 무슨 일 있어?”
- 도저히 그냥 못 자겠어.”
영상 통화를 할 때보다 더 귓속으로 깊게 파고드는 목소리에 괜히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괜히 아까보다 부끄러운 기분에 이불 끝자락을 손끝으로 당겼다.
- 진짜 미치겠어. 너랑 닿고 싶어.
“이제 진짜 며칠만 있으면 되잖아….”
- 일주일이 이렇게 긴지 처음 알았어. 하…. 침대야? 이불 속에 있어?
“…응. 소파에 있다가 들어 왔어. 날이 조금 풀렸는지 이불이 좀 더워.”
- 더워서 얼굴도 뜨거워?
차정한의 목소리에 홀린 듯 내 뺨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확실히 손도 뜨겁고 얼굴도 열이 올라 조금 뜨거웠다.
“…응. 뜨거워.”
- 다른 데도 뜨겁겠다.
무엇보다도 차정한의 목소리가 가장 뜨거웠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파고들어 온몸 구석구석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체온을 높이는 것은 이불이 아니라 차정한의 목소리였다.
- 또 어디가 뜨거워?
“…모르겠어.”
- 만지기 부끄러워?
“…응.”
- 그럼 내가 만져 볼게. 눈 감아 봐.
목소리일 뿐인데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귓가에서 시작해 내 모든 것을 점령한 차정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감각이 그 목소리를 향해 예민하게 몰려들었다.
- 나 지금 네 셔츠 안에 손 넣었어. 손 델 것 같아. 왜 이렇게 뜨거워? 이불 때문에 그런 거 맞아?
“…응. 이불 때문에…….”
손이 차정한의 목소리를 따라 티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차정한의 말처럼 몸은 아까보다도 훨씬 더 뜨거워져 있었다.
- 흥분한 거 아니야? 벌써 젖꼭지가 이렇게 섰는데.
노골적인 말에 머릿속에 담겨 있던 것들이 뭉그러졌다. 나는 손을 조금 더 위로 올려 흥분에 솟은 유두를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아…….”
- 이렇게 손가락으로 집고 비틀면 더 좋아하지.
차정한의 목소리는 그의 손이 되어 내 몸으로 닿아왔다.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내 옷 안으로 들어와 몸을 쓰다듬고, 손끝으로 유두를 집어 비트는 감각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다. 생각은 달뜬 감각에 녹아 곤죽이 되었고, 내 손은 차정한의 손이 되어 멈추지 않았다.
- 빨고 싶어.
노골적인 말을 지나치게 근사한 목소리로 소리 낸 차정한의 긴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가 내 유두 빠는 상상을 하며 손을 움직였다. 뜨거운 혀가 유두 위를 덮고 문지르다가 입술이 빨아들일 때면 늘 허리가 비틀렸다.
“아… 흣….”
- 바지 속도 뜨겁겠다. 만져 줄게.
유두를 매만지던 손이 목소리에 끌려 내려가 바지 속으로 들어갔다. 속옷 위를 덮으니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다.
- 겉으로만 이렇게 만져 줄까?
“…하으……. 넣어도 돼….”
- 속옷 앞에 젖었어, 유현아. 벌써 흘리는 거야?
“아니… 흣, 아니야…….”
- 나도 아플 만큼 섰어. 하…. 네 목소리 진짜 야해. 같이 만져 줘.
목소리가 만든 장면 속에서 내 성기를 쥔 차정한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나는 손을 뻗어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차정한의 잔뜩 발기한 성기를 쥐었다. 단단한 기둥을 쓸고, 귀두를 매만졌다. 속옷이 불편했는지 아래로 조금 끌어 내린 차정한이 다시 내 성기를 쥐었다.
“하으… 응, 아……. 좋아….”
- 하…. 유현아. 더, 더 빠르게 만져 줘.
내 성기를 쥔 내 손은 이미 차정한의 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 손을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달아오른 감각이 발끝까지 도달한 순간 온몸에서 동시에 터졌다.
“정한아……. 하으, 으응…!”
- …아…!
허리가 떨리고 손이 젖었다. 쾌감의 지배로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귓가에서 차정한의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 유현아. 나 진짜 너 만지고 싶어.
숨을 어느 정도 고른 뒤에야 차정한과 통화하며 자위했다는 걸 알았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젖은 손을 휴지로 닦으며 조금 부끄러워졌다. 한 번도 통화로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나도. 나도 하고 싶어….”
씻어야 하는데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들려오는 차정한의 목소리와 쾌감의 여운 때문인지 자꾸만 눈이 감기고 몸에서 힘이 빠졌다. 내가 뭐라고 답을 하는지도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잠에 빠지는 길목에서 차정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들었는데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맺히지 않았다. 나는 뭐라고 겨우 입을 벌렸다가 다물며 그대로 잠들었다. 그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통화하며 같이 자위했던 게 너무 강렬했던 걸까. 아니면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꿈속에서 차정한과 마주했다.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차정한이 어깨 위로 턱을 올리고 내 귓가와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닿고 싶어 죽을 것 같았던 진짜 차정한이 나를 안고 비비자 너무 좋아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어깨 위에서 입술이 맞물리고, 한참이나 혀를 마주 머금었다. 혀끝만 겨우 닿아 문질려도 좋아서 한 번씩 작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으면 차정한은 그것까지 다 먹고 싶은 사람처럼 조금 거칠게 파고들어 깊게 헤집었다. 뒤로 완전히 밀착한 몸의 단단함과 그 체온이 좋아 나는 자꾸만 내 허리를 끌어안은 그의 팔을 매만졌다.
차정한은 나를 안은 채 손을 바지 안으로 넣었다. 그런 차정한을 따라 나도 손을 뒤로 해서 그의 바지 안으로 넣었다. 그가 속옷 위로 내 성기를 만지면 나도 속옷 위로 만지고, 속옷 안으로 손을 넣으면 나도 따라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꿈인 걸 알아 그런지 행동이 조금 더 대담해졌다. 나는 흘러나오는 소리를 숨기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차정한은 그런 내 귀에 입술을 대고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우습게도 나는 차정한이 부르는 내 이름에 흥분하고, 사정했다. 온몸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쾌감으로 변해 탁 터지며 퍼졌다. 나는 차정한의 팔을 잡은 채 제발 넣어 달라고 애원했다. 꿈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자면서도… 아, 그렇게 다 느껴져?”
차정한의 목소리가 꼭 현실처럼 닿아왔다. 내가 지금까지 꿨던 꿈 중 가장 선명해서 조금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귓가에 녹아드는 목소리도, 또 뺨에 닿는 입술의 감촉도 너무 진짜 같았다.
“유현아, 나 왔는데.”
왔다고? 어디를? 꿈에? 지금까지 꿈에 나온 차정한이 꿈에 찾아왔다고 소리 내서 말한 적도 없었기에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반듯하게 돌려 눕히는 손에 천장을 보고 누워 반쯤 깨서 돌아가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 사이 차정한은 내 속옷과 바지를 허벅지 아래까지만 내리고 그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아…!”
갑자기 성기를 감싸는 뜨겁고 축축한 느낌에 허리가 비틀렸다. 이렇게 생생한 꿈이 또 있을까. 나는 손을 내려 분명하게 잡히는 차정한의 머리칼을 쥐었다. 입술이 닿고, 혀가 성기를 문지르고 지날 때마다 감긴 눈 속의 어둠이 마구 흔들렸다. 허리에서 퍼지는 찌릿한 감각과 묘한 저릿함은 꿈이라기에는 너무 날 것이었다.
나는 상체를 살짝 들고 다리 사이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차정한에게 닿았는데 내가 진짜 몸을 움직이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꿈 같은데 도대체 이 생생한 느낌은 뭘까. 나는 혀를 내밀어 내 성기 끝을 핥는 차정한을 보다가 다시 무너지듯 몸을 내렸다.
“…하으…… 응….”
이제는 귓가에 내가 내는 진짜 소리가 닿았다.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정말 내가 내는 소리 같았다. 바지와 속옷을 무릎 아래까지 더 내린 차정한이 내 다리를 들어 올리고 깊은 곳을 혀로 헤집었다. 고개를 저을 때마다 머리칼이 시트에 문질리는 느낌이 나고, 차정한의 머리를 밀어내다가 누르는 힘도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축축하고 물컹한 것이 힘있게 안을 확 찌르고 들어가는 순간 눈을 떴다.
“…하아… 하…….”
어두워 무엇도 보이지 않는데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아직 일주일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차정한이 그리워 별 꿈을 다 꿨다. 비밀 같은 거 만들지 않기로 했는데 이건 차정한에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꿈에서 있었던 일로 가빠진 숨을 길게 뱉었다.
“…흣!”
꿈에서 느껴지는 줄 알았던 축축한 쾌감이 느릿하게 아래를 파고들었다. 찔렀다가 빠지고, 또 찔렀다가 빠지는 느낌에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다리를 오므리면 마주 닿아야 하는데 허벅지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누군가가 있었다. 힘이 들어갔다가 물컹댔다가 하는 것이 깊은 곳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다시 숨이 가빠졌다. 허리로 확 힘이 들어가고 비틀린 순간 다시 사정했다.
“아… 흐으, 응… 하으읏….”
쾌감이 너무 짙게 온몸을 뒤흔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혀가 빠져나가고 그대로 허벅지 안쪽에 입 맞추는 누군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었다.
“…하아… 언제, 언제 왔어.”
확인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가 차정한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숨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고, 머리칼만 만져도 차정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손 하나를 더 내려 내 다리 사이에 있는 그의 얼굴을 잡아 위로 살짝 올렸다. 올라오라는 내 의미를 알았는지 그대로 몸을 덮으며 올라온 차정한이 내 뺨과 목덜미에 마구 입 맞췄다.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 전화로 버틸 수가 있어야지.”
“뭐 타고 왔어? 차 없잖아.”
“다른 배우 차 빌렸어.”
“아…. 몇 시야 지금?”
“네 시 좀 넘었을걸. 여덟 시 반에는 출발해야 해. 점심때 촬영이라.”
차정한이 무리해서 여기 온 것을 알지만, 굳이 힘들게 뭐하러 왔냐, 며칠만 더 참지 그랬냐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보려고 잠을 포기하며 새벽을 달려 여기까지 온 그를 만지고, 안기에도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을 옆으로 뻗어 스탠드를 켰다. 아주 약한 불빛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차정한의 얼굴에 너무 좋아 자꾸 웃음만 났다.
“혼자 잔다고 엄청 야하게 하고 자네. 지유현.”
“…내가?”
“셔츠 올라가서 허리 다 보이던데.”
“아…. 아까 그랬나 봐.”
“아까? 아까 언제.”
“…우리 통화할 때.”
“그때 뭘 했는데?”
“…알면서 또.”
“몰라서 그래. 운전 너무 빡세게 하고 와서 기억이 안 나. 아까 우리 통화하면서 뭐 했어, 유현아. 뭘 했는데 그렇게 흐트러졌어.”
짓궂게 놀리는 말에 어깨를 밀자 차정한이 밀린 것보다 몇 배는 더 가깝게 몸을 붙였다. 나는 흐트러진 그의 앞머리를 매만졌다. 차정한이 그런 내 손목을 부드럽게 쥐고 손바닥에 입술을 묻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 손보다 좋았어?”
손바닥과 입술 사이에 갇힌 목소리가 웅웅댔다. 차마 말로 할 용기는 없어 고개를 가로젓자 차정한이 내 손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가 놓았다.
“…네 목소리가 좋았어. 꼭 네가 만져 주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어.”
“나 잘 왔지.”
“응. 잘 왔어. 봐서 너무 좋아.”
“너 보니까 살 것 같아. 유현아, 나 이제 진짜 너랑 떨어져서 못 살겠어. 잠도 안 오고, 머리도 아프고…….”
“아팠어?”
“응. 내려갈 때부터 여기 오기 전까지 계속.”
“아파서 어떡해…. 촬영 힘들었지.”
아팠다는 말을 들으니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마를 괜히 만져 보고, 얼굴 여기저기를 만져 보는데 차정한이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꼭 봄처럼 예쁜 웃음이었다. 차정한은 웃는 게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나 변탠가. 네가 걱정해 주니까 왜 이렇게 좋지. 머리 잘 아팠다 싶은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 컨디션 안 좋으면 꼭 머리 아프고 그랬잖아. 약은 먹었어? 계속 먹은 거 아니야? 약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너 걱정할까 봐 하루에 한두 번만 먹었어. 진짜 아플 때.”
“…이제 다시 같이 다닐 수 있으니까 며칠만 참아.”
“응. 앞으로 매니저님이라고 깍듯하게 모셔야겠다. 올해는 팀장급에 내년에는 실장급이면 뭐야, 실장님이랑 이제 맞먹는 거네. 와, 나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내가 계속 잘해서 자리 유지해야 너랑 같이할 수 있는 거잖아.”
“아마도…?”
“너 다른 새끼랑 다니는 거 절대 못 봐. 내일부터 진짜 인생 연기 한다.”
차정한과 얘기할 때면 의식의 흐름을 따라 대화 주제가 자주 바뀌었다. 머리가 아팠다는 말에서 인생 연기를 펼치겠다는 다짐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차정한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게 좋아서 뭐든 다 좋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사서 질투하는 차정한도, 또 그런 차정한의 질투가 좋은 나도.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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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기 전에 집에 있는 약 줄게. 하나만 먹어도 오래 가니까 먹어야 하면 저거 먹어.”
“…걱정하는 거 왜 이렇게 야하지.”
“…변태 맞네.”
“어쩔 수 없어. 야해서 야하다는데 그게 변태면 그냥 변태해야지.”
뻔뻔하게 말한 차정한이 몸을 살짝 움직여 내 발목에 걸친 속옷과 바지를 완전히 벗겨 침대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발목을 살짝 쥐었다가 놓으며 손을 올려 내 셔츠 안으로 넣었다. 발목처럼 허리도 살짝 쥐었다가 놓은 손이 조금 더 안으로 올라가 유두 위를 매만졌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볼록해져 움직이는 걸 보니 다리가 저절로 오므라들었다.
“…아…….”
“내가 얼마나 빨고 싶었는데.”
돌리지 않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정한은 그대로 티셔츠 안으로 머리를 넣으며 들어갔다. 손이 들어갔던 때보다 더 볼록해진 옷 안에서 차정한이 유두 빠는 소리만 울렸다. 빨고 싶다는 말을 들으며 내가 만졌던 때와는 확실히 비교할 수도 없게 다른 느낌이었다. 혀가 닿고, 위를 짓누른 채 문지르다가 아프지 않게 깨무는 느낌이 그대로 온몸을 매만졌다. 발목을 핥는 것 같기도 하고, 허리를 핥는 것 같기도 했다. 온몸을 간지럽게 문지르는 것 같은 느낌에 감각이 확 열리는 것 같았다.
“하으… 아, 응…….”
한참을 머금다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움직인 차정한이 혀로 살살 건드리기 시작했다. 배에 고인 묘한 감각이 다리 사이로 내려와 맺혔다. 성기를 전혀 만지지도 않았는데 차정한이 유두를 머금는 것만으로 다시 열이 고이고 힘이 들어갔다. 나는 불룩 솟은 셔츠 위로 차정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 보고 싶어.”
내 말을 들은 차정한이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왔다. 셔츠 목을 늘리며 쑥 나온 차정한이 웃으며 입술을 겹쳤다. 나는 그런 차정한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매만지며 내내 하고 싶었던 만큼 입 맞췄다. 깊게 맞물리는 것도 좋고, 살짝 닿아 같이 웃는 입 모양이 되는 것도 좋았다.
한참을 키스하다가 아래로 다시 쑥 빠져나간 차정한이 내 몸 양옆으로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세워 나를 내려보았다. 두근댈 만큼 시선을 떼지 않은 차정한이 그대로 셔츠를 한 번에 벗어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단단한 차정한의 몸을 보니 괜히 입술이 마르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버클 푸는 소리에 다시 그의 손을 보다가 문득 머릿속에 맺히는 생각에 손이 차정한을 향해 움직이려다 말고, 또 움직이려다 마는 것을 반복했다. 차정한은 그런 내 손을 한 번 보고 시선을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게….”
“응? 뭔데. 말해 봐. 괜찮아.”
“…해 줄까?”
겨우 소리로 나간 말은 앞뒤가 다 잘린 것이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나를 보는 차정한에게 나는 뭔가 더 설명을 해야만 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너는 나 해 줬잖아. 나도 너 해 주고 싶어서. 잘하진 못하겠지만….”
“…….”
“내가 잘 못 할 것 같아서 해 달라고 안 하는 거야?”
“잠깐…. 잠깐만. 잠깐 그러니까 지금 그거… 그 입으로 말하는 거야?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싶어서. 아니면 내가 진짜 변태라 그렇게 해석하는 거야?”
“…그거 맞아.”
내 대답에 차정한이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심각한 상황처럼 입을 막은 채 잠시 있던 차정한이 정말 심각한 얼굴로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앉았다.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걸 막 시켜. 아니, 네가 해 주면 나 진짜 죽을… 아, 씨발…. 상상했어.”
차정한이 다시 손을 말아 입에 댔다. 뭔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내가 해서 몹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살짝 내려가 보이는 속옷 안에서 차정한의 것이 더 발기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말만 했는데도 흥분하는 차정한이 어쩐지 사랑스러워서 나는 입을 가린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하고 싶어, 나도.”
“…….”
“너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어.”
“…여기서 더 기분 좋으면 진짜 나 미친놈 될지도 몰라.”
“되면 어때.”
“…….”
“그래도 너잖아.”
나와 마주한 얼굴에 보이는 뜨거움이 좋았다. 네가 했으니 나도 해 주겠다는 식의 흐름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지금은 생각이 닿았고, 그걸 행동으로까지 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은 차정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몸을 아래로 내렸다. 내가 납작 엎드리듯 숙이고 속옷 위로 얼굴을 내리자 차정한이 긴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의 바지를 더 아래로 내리고 볼록한 속옷 위를 손으로 감쌌다. 다시 머리 위로 떨림 섞인 긴 숨이 쏟아졌다.
“…….”
“…….”
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정적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차정한과 눈을 맞췄다. 느릿하게 감겼다가 뜨이는 눈에 정말 숨이 턱 막혔다. 내게 고압적으로 굴지는 않지만, 차정한의 눈은 가끔 고압적인 사람의 것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나는 내게 몰두한 차정한을 보다가 그의 속옷 안에서 성기를 꺼냈다.
안에 어떻게 갇혀 있었던 건지 꺼내자마자 내 얼굴을 친 성기에 놀라 고개를 조금 뒤로 뺐다.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라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유현아, 힘들면 안 해도 돼.”
“할래. 하고 싶어.”
두 손으로 차정한의 것을 쥐고 잔뜩 발기한 끝에 살짝 입을 맞췄다. 입술이 눌리자 차정한이 낮은 숨을 내뱉었다. 나는 다시 한번 입 맞추고 입술을 벌려 귀두를 머금었다. 겨우 끝만 머금었을 뿐인데도 입안을 꽉 채운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금 더 입을 벌려 차정한의 것을 머금을 수 있을 만큼만 물었다.
“아…….”
길게 늘어지며 흐르는 차정한의 낮은 신음에 내 아랫배에도 쾌감이 고였다. 그 얼굴이 보고 싶어 성기를 문 채 시선을 들자 차정한이 나를 내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목을 찌르기 직전까지 들어온 차정한의 성기를 혀로 살살 문질렀다. 차정한이 내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며 물었다가 빼고, 또 끝을 핥고, 빨 때마다 나도 똑같이 그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다리가 오므라들고, 발끝이 뻣뻣해졌다.
“하…. 유현아, 씨발, 진짜 아….”
목구멍이 찔릴 정도로 깊게 물었다가 고개를 뒤로 빼고, 또 깊게 입에 넣자 차정한의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로 확 파고들었다. 거칠지는 않은데 손가락에 힘이 단단히 들어갔다. 나는 내 머리칼을 헤집다가 내가 깊게 물면 힘이 들어가 움켜쥐는 느낌에 흥분했다. 진짜 이상한 건 내가 아닐까 싶을 만큼 흥분하는 포인트가 조금 낯설었다.
“…아, 진짜 못 참겠어. 그만, 하…. 유현아, 이제 됐어. 너 그러다… 아, 묻어.”
차정한이 달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제 그만 고개를 들라고, 그 정도면 됐다고 흥분 섞인 숨을 내쉬며 말했지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달래는 그의 손길과 반대로 조금 더 깊게 차정한의 성기를 물었다. 차정한은 그대로 짧은 숨을 내뱉으며 사정했다. 입속으로 터져 나오는 게 낯설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뺀 순간 얼굴로 뜨거움이 확 튀었다.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지유현 너 진짜…. 하…. 말도 안 듣고.”
거친 숨을 내쉬는 차정한의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엎드리고 있던 몸을 세우며 눈을 떴다. 차정한은 내 입 앞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꼭 아가들한테 입에 든 걸 뱉으라고 할 때 하는 그런 행동 같았다. 입에 든 정액을 손에 뱉으라고 댔다는 걸 알지만, 나는 또 반대로 입에 든 것을 삼켰다. 내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리자 차정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