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43)

차정한이 그동안 찍은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다가 배우 차정한과 인간 차정한의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미리 대답을 준비하라고 대본에 있던 질문이기는 하지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차정한을 보니 이제 정말 내가 걱정할 게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불안정했고, 너무나도 잘 흔들리던 차정한은 없었다. 늘 함께하던 내가 있어야 마음을 기대고 버티던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약하던 차정한이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길고 긴 성장통이었을까. 그걸 이겨내고 이렇게 성장한 차정한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느새 인터뷰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저희 문화의 시선은 이렇게 끝날 때마다 모신 분에게 있어 가장 화제가 되는 질문을 하나씩 드리고는 하는데요. 알고 계신가요?”

“네. 미리 절대 알려 주시지 않아서 긴장하고 가야 한다는 말도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하하, 저희가 그렇게 곤란한 질문을 드리지는 않는데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앵커가 말한 것처럼 ‘문화의 시선’은 대본에도 없는 질문을 마지막에 하기로 유명했다. 어떤 배우는 당황해서 얼버무리다가 끝나기도 했고, 또 어떤 소설가는 횡설수설하다가 시간을 다 쓰기도 했다. 우리도 차정한에게 주어질 그 마지막 질문이 뭘지 참 많이 고민하다가 그냥 즐기기로 했다. 당황하든 실수하든 그게 또 생방송의 묘미이자 인간미 아니겠냐며 차정한은 오히려 대담하게 굴었다.

“차정한 씨에게는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을 하면서 그동안 차정한 씨의 인터뷰를 아주 많이 찾아보았는데요. 그때마다 꼭 들어가 있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뭔지 아시겠나요?”

“음…. 아, 네. 알 것 같습니다.”

차정한은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기울이다가 이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 역시 질문을 듣지도 않았는데 앵커의 말만 들어도 어떤 질문인지 알 것 같았다.

“차정한 씨는 사랑과 우정,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질문에 늘 아주 단호히 우정을 고르시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인터뷰할 때마다 그 질문이 꼭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단호하게 우정을 골랐나요? 고민이라도 조금 할 걸 그랬나 봅니다.”

차정한의 답에 앵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얼굴로 차정한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차정한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싶었다. 물론 사랑 안에 우정도 들어 있는 거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고 해서 그 안에 우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차정한이 우정이라고 또 대답할지, 아니면 생각이 바뀌어 사랑이라고 대답할지 궁금했다.

만약 단호히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팬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차정한이 연애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추측이 마구 쏟아질 게 분명했다. 그걸 생각하면 그냥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우정이라고 하면 좋겠는데, 차정한이 그렇게 안전한 길을 갈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준비했습니다. 과연 오늘은 어떤 답을 하실까요? 오늘도 우정일까요? 아니면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대답이 나올까요?”

차정한은 진행자와 마주 보고 웃음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그의 얼굴에 곤란함이 비쳤지만, 만들어진 감정이었다.

“문화의 시선이 소중한 인연으로 모신 배우 차정한 씨에게 전하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랑과 우정, 차정한 씨의 선택은요?”

“음….”

차정한이 예의상 고민하는 얼굴로 진행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세트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차정한이 고민하느라 시선을 돌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정확하게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사이에는 그 무엇도 걸리는 게 없었다. 차정한이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 순간 그의 대답을 알았다.

사랑과 우정.

차정한의 대답은 나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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