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01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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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이거 맞아?”
소튼과 울버햄튼의 25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중계를 준비하던 캐스터가 투덜거렸다.
“내년에도 계약하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JK에서 임명된 필단장은 소튼에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중계진의 전면 교체였다.
스포츠매니지먼트의 산실인 미국에서 편파중계를 도입해 그게 알맞은 중계진을 포진시켰다.
높은 중계권료 때문에 홈경기의 중계권만 샀지만 그 효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처음 편파중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소튼의 팬이지만 추락한 팀 성적에 대한 분노가 편파중계에 맞추어 털어내고 있었다.
그런 중계진의 계약은 모두 팀이 관리하고 있었기에 중계진은 필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16살짜리 선수를 띄우라니 애가 나와서 뭘 할 수 있다고.”
“중계를 준비하면서 유스의 자료를 받았는데 엄청나더구먼.”
“유스는 유스일 뿐이지. 더블A에서 잘한다고 메이저와서 잘하는 놈 거의 못 봤잖아. 특별한 놈 말고는.”
“어쩔 수 없잖아. 우리는 경기나 준비하자고.”
중계진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에 경기장에 입장하는 소튼의 팬들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인스를 벌써 1군에 그것도 선발로 출전시킨다고?”
“아무리 유스에서 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빠르잖아. 더군다나 오늘 경기는 늑대놈들하고 붙는다고. 늑대놈들한테는 이겨야 강등을 면하지 않겠어?”
현재 강등권을 형성하고 있는 팀은 번리, 브렌트포드, 브라이튼, 울버햄튼, 소튼이었다.
물론 번리 위의 웨스트햄이나 왓퍼드도 강등당할 위험이 있었지만 하위권과는 승점 10점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도대체 미국에서 온 놈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당장 감독부터 바꿔야 하는데.”
“감독보다 구단을 산 놈들이 문제지. 그놈들을 대변하는 필이란 놈부터 쫓아내야 돼.”
“하인스가 선발출전을 한다고 해서 보러 오긴 했는데 다치지는 않겠지? 너무 이른데.”
“나도 하인스가 선발로 나온다고 해서 오긴 했지. 유스에서 워낙 잘하고 있었잖아.”
소튼의 축구팬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은 U-18이었다. 2군도 하부리그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기에 무패의 U-18을 많이 시청했었다.
그렇기에 하인스와 에디, 존 등 U-18의 주전들이 잘 커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지켜보면 알겠지.”
소튼의 팬들은 걱정하는 맘 반, 기대하는 맘 반의 심정으로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스타디움의 VIP룸에는 긴장된 표정이 가득한 인수의 가족이 초대되어 있었다.
물론 특별히 휴업을 결정한 에디의 아버지인 폴까지.
“VIP룸이 좋긴 하군요. 매년 구입한 시즌권으로 메리스에 많이 와봤지만 VIP룸은 처음이네요.”
폴은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장만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는 인수의 가족을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소튼 16세 3일의 하인스를 선발로 출전시킨다=
=소튼의 꼼수인가. 최연소 출전기록을 경신하는 하인스=
=소튼의 무리수인가. 16세 3일의 선수를 선발로=
영국의 언론들은 소튼이 라인업을 발표하자 인터넷으로 속보를 내보냈다.
그 덕에 같은 시간 맨체스터 더비가 열려 관심이 없었던 경기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인수는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라운드로 이어지는 통로에 섰다.
“긴장하지 마. 연습 때 나한테 주던 대로만 패스해줘.”
코룸은 흥분한 표정으로 서있던 인수의 어깨를 잡았다.
처음 인수가 연습장에 들어왔을 때 이번 시즌이 끝나는 대로 이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리그앙의 하위권팀인 클레이몽에서 뛰다 프리미어리그인 소튼에 영입될 때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강등이 확실한 소튼에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욱이 제대로 된 선수 영입도 없이 어린 아이를 내보내며 침몰하는 소튼에 미련도 없었다.
다만 인수의 패스를 받기 전에는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시즌에 내 골이 겨우 9골이야. 리그앙에서 27골을 넣었던 내가 말이야. 네 패스라면 내가 골을 더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거든.”
“긴장한 거 아니에요. 그냥 흥분이 되네요. 어렸을 적 선수들의 손을 잡고 메리스에 들어갔을 때 꼭 여기서 뛰고 싶었거든요. 내가 첫 번째 찬스에서는 반드시 패스할게요.”
코룸은 인수의 대답을 듣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이 코룸, 이제는 코흘리개를 데리고 축구하는 거야?”
울버햄튼의 공격수인 브루스가 조롱 거렸다.
“너보다 더 잘 해. 이번에도 지지 말고 경기에나 집중하지.”
울버햄튼과는 전반기 10라운드에 만났었다.
소튼이 기록한 2승 5무 중 승리한 한 경기가 울버햄튼과의 경기였다.
그때 2골을 넣어 MOM으로 선정된 선수가 코룸이었기에 상대의 도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우리가 이기길 원하는 사람이 85프로가 넘는다던데.”
유럽의 스포츠는 도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모든 경기에 승무패를 걸 수 있었고 실시간 속보도 내보내고 있었다.
“오늘 우는 사람들이 많겠네요. 늑대 눈퉁이가 푸르게 될 테니까.”
인수는 상대의 조롱을 참지 않았다.
참아봐야 호구로 보는 이가 더 많았다.
“그래? 네 눈을 머리색하고 맞춰주지. 기대해.”
브루스는 주심이 공을 들고 그라운드로 향하자 아이의 손을 잡고 웃는 표정으로 나섰다.
일방적인 경기가 전반 초반 내내 이어졌다. 선 굵은 경기를 추구하는 울버햄튼답게 최후방 수비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소튼의 진영에 포진해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 상대선수가 침입하면 마크하는 것뿐이었다.
“앞으로 나가. 빌리, 마크 앞으로 나가란 말이야.”
캐러거는 전반 15분이 지나는 동안 전방으로 이어지는 않는 패스가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쉽지 않는 경기가 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지 못했다.
소튼의 수비수들은 패널티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급하게 처리하기 일쑤였고 20분 만에 처음으로 수비수가 처리한 공이 인수의 발에 안착했다.
“세인트의 선수들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개들의 공격이 거세기는 하지만 위험지역에서 밀어내야죠. 일방적으로 밀리면 안됩니다.”
편파해설의 캐스터를 맡고 있던 도미닉은 처절하게 중계했다.
울버햄튼의 별명인 늑대를 개로 바꿔 부르면서 일방적으로 응원해 보지만 경기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고 파브르. 급하게 걷어냅니다. 공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니 하인스선수 공을 잡습니다.”
“선수가 없던 빈 지역으로 걷어내지는 공이었는데 하인스선수가 따라가 공을 따냅니다. 상당히 빠르네요.”
“하인스선수가 빠르다기보다 위치선정이 좋았어요. 그러나 줄 곳이 보이지 않아요. 세인트의 선수들이 앞으로 나가 하인스선수가 패스할 곳을 만들어 주어야해요.”
캐스터와 해설자가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소튼의 선수들보다 울버햄튼의 선수들의 반응이 빨랐다.
센터서클까지 나와 있던 세 명의 수비수는 침투할 소튼의 선수들에 대비해 이미 물러나기 시작했고 미드필더들이 인수를 둘러싸기 위해 다가왔다.
“코룸 앞으로 달려요.”
인수는 좌측에 머물러 있던 코룸에게 전하며 상대 수비를 피해 앞으로 달려갔다.
아직 둘러싸이기 전이었기에 빈공간이 많이 보였지만 아직 패스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붙어 붙으라고.”
울버햄튼의 골키퍼는 미드필드진을 제치고 자유롭게 달려오는 인수를 보고 수비수들의 위치를 변경했다.
자신의 진영에는 인수와 최전방 스트라이커인 코룸만이 있을 뿐 다른 선수들은 이제야 넘어오고 있었기에 여유롭게 지시할 수 있었다.
“꼬마야 나하고 놀아야지.”
급하게 달려오는 코룸은 그린에게 맡기고 인수를 맡기 위해 달려온 블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체를 숙였다.
말로는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기본에 충실한 수비자세였다.
블링은 인수가 자신의 발 사이를 보는 눈빛을 느끼고 급하게 닫았지만 이미 공은 다리 사이를 지나고 꼬마 역시 자신을 피해 왼쪽으로 돌아나가고 있었다.
“지나갈게요.”
“어딜.”
인수가 놀리듯 자신을 피해가자 자신의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안 블링은 몸으로라도 막기 위해 왼쪽을 향해 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어깨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인스선수 블링의 다리 사이로 알을 깠어요. 블링도 자세를 낮추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알을 까고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앞에는 코룸이 달리고 있고 코룸을 두 명의 수비가 따라가고 있어 골키퍼가 급하게 자세를 잡습니다.”
“아직 급하지 않아요.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하인스선수 침착해야해요.”
인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울버햄튼의 수비수를 보고 골대를 향해 발을 크게 휘둘렀다.
누가 보더라도 슛을 쏘려는 자세였기에 그린은 몸을 날려 슛 방향을 막았지만 공은 가볍게 떠서 코룸의 앞으로 떨어졌다.
“어 뭔가요? 빗맞았나요?”
“아닙니다. 하인스선수 슛을 쏜 것이 아니라 코룸선수에게 패스를 했습니다. 절묘한 컨트롤로 아웃사이드로 공을 돌려놨습니다.”
“코룸선수 슛. 골. 골. 골. 코룸선수 골을 기록합니다.”
“마무리능력은 있는 코룸선수입니다. 하인스선수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슛을 해 골을 기록합니다.”
“홀리 쉣. 내가 뭘 본거야?”
“하인스가 잘못 찬 공이 어떻게 코룸앞으로 갔지. 와 운도 좋아.”
“다시보기 없나? 전광판에 리플레이를 틀어줘.”
“소튼 TV에가면 중계해준다고 했어. 핸드폰으로 봐.”
관중석에서도 환호와 감탄사가 터지고 누군가가 소튼 TV를 언급하자 너도 나도 전부 핸드폰을 꺼내 소튼 TV로 연결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보시죠. 파브르가 급하게 공을 걷어냅니다. 그 공을 하인스가 뛰어가 잡았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바로 울버햄튼 진영으로 달려갑니다. 울버햄튼 미드필드진들이 하인스선수에게 달려들어 보지만 이미 울버햄튼 진영으로 넘어간 후죠. 울버햄튼의 센터백인 블링이 자세를 낮추어 다가서는데 하인스선수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블링의 발 사이로 알을 깝니다. 그 속도 그대로 지나가는데 블링선수는 몸으로라도 막기 위해 던졌지만 이미 지나간 후입니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보죠.”
소튼 TV의 캐스터와 해설진을 리플레이를 조절하며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분명 하인스선수 몸과 발의 방향은 골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발을 휘둘러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의 왼쪽 아래를 건들었습니다. 슛인 줄 알고 그린이 몸을 날려 슛코스를 막아보지만 슛이 아니라 패스였습니다. 그 패스를 받은 코룸선수가 논스톱으로 골인시킵니다.”
“여기 보시면 코룸선수는 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이 오자마자 슛을 하죠. 이건 하인스선수가 패스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선수 호흡을 맞출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패스와 슛이 가능한지 경기가 끝나면 물어봐야겠네요.”
“좋았어. 믿고 있었어.”
코룸은 골이 들어가자 특유의 슬라이딩 세리머니 대신 인수에게 다가와 헤드락을 걸었다.
“아파요. 아파.”
인수는 갑자가 코룸이 헤드락을 걸자 급하게 벗어났다.
“목돌아가는 줄 알았잖아요.”
“이뻐서 그렇지. 설마 했는데 정말 패스할 줄이야.”
“약속했잖아요.”
코룸도 그대로 슛으로 이어갈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인수의 말이 떠올랐고 공에 집중하고 있어서 논스톱 슛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공을 잡고 한 박자 늦었더라면 슛찬스가 사라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넌 미친놈이야. 거기서 약속대로 패스를 주다니.”
“사실 수비가 몸을 날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슛코스를 절묘하게 막겠더라고요. 나보다는 코룸이 더 프리인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여튼 넌 미친놈이야.”
코룸과 인수는 소튼의 진영으로 돌아가며 골의 여운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