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박싱데이를 앞두고 전반기를 마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화제는 도깨비팀이 되어버린 소튼이었다.
1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승리하고 아스널, 첼시에도 승리하면서 승점을 쌓으면서도, 이번에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강한 울버햄튼이나 최하위에 처져 있는 번리FC에 지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빛이 난 건 총 18라운드까지 치러진 현재 14번의 선발출전과 1번의 교체출전을 하며 19골을 넣고 있는 인수였다.
선발로 나온 매 경기에서 골을 넣고 있었고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38분에 교체되어 들어온 후 바로 동점골을 성공시켜 시티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패배하지 않게 만들었다.
인수의 활약이 눈부실수록 박싱데이가 끝나고 1월에 열리는 겨울 이적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월 11일이 지나면 18세가 되는 만큼 유럽 어느 리그를 가서도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으며 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더 발전할 가능성까지 생각한다면 유스 이적금 경신은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기에 인수의 다음 팀이 벌써부터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특히 가장 적극적인 곳은 프리메라리가의 양 날개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였다.
리그앙의 가장 큰 돈줄인 파리 생제르맹 FC도 물망에 있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보다 아래급이라 취급받는 리그에 갈 확률은 높지 않았다.
물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어느 팀에게든 다 열려있었기에 런던에 있는 랭커리지의 사무실은 유럽 명문구단 관계자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2037년 12월 26일 박싱데이에 리그 19라운드 토트넘과의 경기가 열렸다.
전반기에 선발출전하여 1골을 넣긴 했지만 팀이 3:2로 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결승골은 인수의 패스미스가 원인이 되어 역습으로 내준 골이었기에 경기에 들어가는 인수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진짜 이번 시장에서 이적 안 할 거야?”
인수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본 에디는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이미 인수에게 몇 번을 들었던 말이었지만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문과 인터넷 뉴스에 인수의 이적 기사가 빠진 적이 없었기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응. 이번 시즌은 세인트에서 마무리하려고.”
인수 역시 아직은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 아니었기에 에디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에이전트인 랭커리지는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하는 것을 추천했지만 인수는 단호하게 이번 시즌을 소튼에서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랭커리지는 인수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9월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이달의 선수로 선정된 인수였다.
그 후 11월에 다시 한번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며 최연소로 한 시즌에 두 번의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런 시즌을 보내고 있는 만큼 이번 시즌 한 번 더 이달의 선수로 선정된다면 애슐리 영에 이어 두 번째로 한 시즌에 세 번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전반기에만 19골을 몰아넣으며 20팀 기준 최다 득점자인 모하메드 살라의 32골은 물론이고, 22개팀이 뛰며 34골을 넣은 앤드루 콜과 앨런 시어러의 득점기록을 노릴 수도 있었다.
물론 언론에서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이 확신하고 있었기에 크게 주목은 받고 있지 못했지만.
“얼굴 펴. 이번 토트넘전에는 나도 선발로 나가잖아.”
지난 토트넘전에 에디는 체력관리를 이유로 선발은 물론이고 교체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었다.
랄라나가 추구하는 축구 자체가 체력 소모가 큰 만큼 경기의 비중은 개의치 않고 주전 선수라고 하더라도 쉬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코치의 말이 있으면 교체명단에서까지 제외하면서 확실하게 쉬게 했다.
그런 이유로 인수 역시 3경기나 명단에 오르지 않았고 에디 역시 4경기나 명단에서 빠지면서 한 경기 한 경기에 모든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물론 지난여름 휴식기에 받았던 훈련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 오늘은 이기자고.”
“당연한 소리 하고 있어.”
***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2037-38 프리미어리그입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소튼 TV의 필립입니다. 오늘도 옆에는 조지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필립이 말한 대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번 시즌입니다. 보통 전반기가 지나고 박싱데이가 지나면 선두권과 하위권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변수가 몇 가지 발생했습니다. 세인트를 이야기하면서 도깨비팀이라고 하지만 하나 더 지난 2035-36시즌 강등당하고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승강한 울버햄튼 역시 만만치 않은 도깨비팀이 되고 있습니다. 세인트가 맨유, 아스널, 첼시에게 이기고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비겼지만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번리에게는 졌단 말이죠. 울버햄튼 역시 순위는 낮지만 토트넘에게 승리를 거두고 아스널과 시티에게 무승부를 거두면서 1위부터 8위까지 승점 5점 이내로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하위권도 15위부터 20위까지 승점 3점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누가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고 누가 강등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시즌입니다.”
“길게 이야기하셨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라는 말씀이시죠. 그에 비해 세인트의 전반기는 어떻게 보시나요?”
필립은 조지에게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릴 시간을 주며 소튼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세인트는 전반기에 8승 5무 6패를 기록하며 10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 비해 낮은 순위에 승점이긴 하지만 팬들은 오히려 보는 재미가 생긴 축구라며 좋아하고 있죠. 스피드를 살린 패스공격을 하며 선수들의 결정력을 믿는 축구죠. 실제로 하인스 선수가 전반기에 19골을 넣고 있으며 주전 스트라이커인 코룸 선수가 11골, 후퍼 선수가 8골, 에디 선수가 6골을 집어넣으며 득점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반면 양 윙백의 오버래핑이 많아지며 실점도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소튼과 경기하면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은 아니라는 거죠.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선수들을 적절하게 로테이션을 돌려주면서 부상과 체력방전을 방지하고 있는데, 대신 출전하고 있는 2군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군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이 돌아가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보존해주고 있는데 오늘은 주전 선수들이 모두 출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실점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골문을 튼튼하게 지키고 있는 볼, 세인트의 든든한 센터백 듀오인 파바르와 비크, 윙백에는 토트넘의 윙을 경계해서인지 힐턴과 아자르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공격적으로 나설 때는 힐튼 대신 다이어가 선발로 많이 나오긴 했지만 토트넘의 윙어들 때문에 수비적인 힐턴이 나온 것 같습니다. 미드필더진에는 톰슨, 바우만, 하인스, 에디, 후퍼가 나서고 최전방에 코룸이 원탑으로 나서게 됩니다.”
“세인트의 미드필더진의 득점력을 보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톰슨이 1골, 바우만이 2골, 하인스가 19골, 에디가 6골, 후퍼가 8골이죠. 세인트가 전반기에 기록한 61골 중 36골을 미드필더진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세인트의 미드필더진의 득점을 기대해봐야겠군요. 세인트의 선축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
“하인스.”
코룸은 오프사이드 트랙을 깨며 침투하자 토트넘의 수비진이 흔들렸지만 인수의 패스는 코룸이 아닌 후퍼를 선택했다.
“땡스.”
후퍼는 토트넘의 수비진을 흔들어준 코룸에게 감사하며 논스톱으로 슛을 쐈다.
전반에만 3개의 슛을 했지만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던 후퍼는 이번엔 제대로 발등에 닿은 공의 느낌에 골을 직감했지만 이번에도 날아오른 토트넘의 골키퍼에게 막히고 말았다.
“왜 나한테만 골을 안 주는 건데.”
후반도 30분을 지나고 있는 시점. 전광판스코어는 5:4로 소튼이 한 점 앞서고 있는 중이었다.
코룸이 2골, 인수가 1골, 에디가 1골, 후반에 교체되어 들어온 다이어가 1골을 기록했다.
선취점과 추가점을 토트넘이 성공시켰지만 끝까지 파고드는 소튼의 선수들을 막지 못한 결과였다.
“네가 정확하게 차면 되잖아. 골키퍼가 막지 못하는 곳으로 차라고.”
코룸은 자신에게 왔으면 이번 시즌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후퍼의 머리카락을 우격다짐으로 흩트렸다.
“골대 구석으로 들어가는 공이었다고요. 막은 골키퍼가 미친 거죠.”
토트넘의 골키퍼도 토트넘 이적 후 최다실점을 하는 중이었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 시즌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된 만큼 소튼에게 5점을 실점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상태였다.
“골키퍼가 막았으니까 네가 잘 못 찬 거지. 그럴 거면 나한테 다시 넘겼어야지.”
후퍼도 공을 차기 전 코룸이 완벽한 위치를 잡았던 것을 보았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토트넘의 골키퍼는 공을 굴려주며 아직 전방에 있는 선수들이 정비하기 전에 미드필더진까지 빠르게 연결했다.
소튼의 수비진도 후반 30분이 지나고 있었지만 아직 지치지 않았다는 듯 3명의 수비가 공을 잡은 선수를 압박해 들어갔다.
미드필더진에서 전방으로 패스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간 공을 전방으로 한 번에 띄웠다.
이미 그런 식으로 2골을 헌납한 소튼이었기에 이번에는 헤더경쟁에서 이겨내고 리바운드된 공을 잡은 톰슨은 바우만에게 공을 연결했다.
바우만은 좌측에서 파고드는 에디에게 공을 넘겼고 에디는 골라인을 넘어가려는 공을 슬라이딩 태클로 잡아냈다.
에디는 수비가 붙기 전에 마구잡이로 크로스를 올렸다.
에디가 올린 공은 골대에서 멀어져 떴고 헤더를 준비하던 선수들은 그 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디의 공이 떨어진 곳에는 어느새 인수가 들어와 있었고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걷어찼다.
후반 38분이 넘어갈 때 터진 추가골은 토트넘 선수들의 기세를 무너뜨렸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
“이번 시즌 벌서 21골째를 기록하며 득점 선두로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솔직히 경기를 하다 보니 21골이나 넣고 있었네요. 득점 선두보다는 재미있는 경기를 하며 관중들과 팬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토트넘과 경기가 끝난 후 MOM으로 선정된 인수는 이제는 익숙해진 인터뷰장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9라운드 토트넘과의 원정에서 3:2로 아깝게 패하고 난 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6:4로 이겼는데 경기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신다면요.”
“9라운드 토트넘과의 원정에서 휴식을 위하여 에디가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에디가 다가오더니 이번 경기에는 자신이 선발로 나가니 반드시 이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약속을 지켜준 에디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난 9월과 11월에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12월 이달의 선수에도 후보로 올랐는데요. 이번에도 선정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스폰서분들이 선정한 전문가분들을 잘 몰라서요. 혹시 아신다면 저에게 투표해 달라고 해주시겠어요?”
인수가 기자들을 돌아보며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치자 기자들이 웃으며 그러겠다는 대답을 했다.
인수가 12월에도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지만 1경기를 결정한 데다 시티의 투투가 5경기에서 8골을 몰아넣으며 5연승을 이끌었기에 인수의 수상 가능성은 낮았다.
“대표팀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 선발출장하며 삼사자 군단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내년 6월에 열리는 월드컵에 선발된 자신이 있으십니까?”
“아마 감독님께서 저를 잘 보셨다면 선발하시겠죠. 아니 꼭 뛰고 싶으니 선발해 주십시오. 지금 제가 득점 1위인데 선발하시겠죠? 아마?”
기자들은 인수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며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며 최근 가장 뜨거운 선수인 인수를 뽑지 않으면 누굴 뽑느냐는 농담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마 팬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겨울 이적시장이 열립니다. 어디로 이적하실 생각입니까?”
인수는 기자의 물음에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기자들을 둘러보고 천천히 대답했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번 시즌은 세인트에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그럼.”
인수는 기자들이 계속해서 잡았지만 인터뷰장을 빠져나간 후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