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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영화, 뭐 별건가요 (21/24)

외전 – 영화, 뭐 별건가요

훤한 대낮이었다. 황 대표에게 이끌려 침대에 눕혀진 버들의 속눈썹이 아래로 잠겨 들었다. 첫사랑이고 짝사랑이었다. 커져 가는 마음을 어떻게 누그러뜨려야 할지 몰라 여러 밤을 샜다. 오로지 앞만 보며 혼자서 앞질러 갔던 통에 삐끗거렸던 감정이 황 대표의 고백으로 인해 비로소 수평을 이루었다. 버들의 세상에 어느덧 짝사랑은 지워졌다. 오롯이 남은 첫사랑이 찬란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꽃을 피워 주겠다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 잡혀 숨이 꽉 막힐 정도로 벅차올랐다. 버들이 눈을 떴다. 마주친 황 대표의 눈빛이 고요하다. 버들이 입고 있는 셔츠로 천천히 손을 가져간 황 대표가 맨 위의 단추를 풀었다. 옷깃 사이로 버들의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났다. 희고 고운 버들의 속살을 황 대표가 길게 쳐다봤다.

입안이 바짝 타는 느낌에 버들이 바르작거렸다. 버들의 까만 머리카락이 시트를 구기며 흩날렸다. 직접적으로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인데 각자를 향한 수많은 감정들이 흘러넘치는 중이었다. 두 번째 단추로 손을 내리기까지 한참이 소요됐다. 옷을 벗기려는 건 버들의 수술 흉터를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작은 단추가 버겁다.

“대표님…….”

저를 부르는 버들의 소리에 언제 표정을 굳히고 있었냐는 듯 황 대표의 입가가 나긋하게 풀렸다.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황 대표가 차마 풀지 못하고 있는 제 셔츠로 버들이 손을 가져갔다. 그런 버들의 손목을 황 대표가 붙잡아 귓가 옆에 내려놓았다. 지그시 힘을 줘 누르자 시트에 주름이 졌다. 수술 흉터를 보여 주는 게 겁이 날 텐데도, 그 순간마저 버들은 자기가 나서서 용기를 내려고 했다. 더는 버들이 무리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윽고 황 대표가 차분히 단추를 풀어 나갔다. 긴장이 되는지 버들이 고개를 외로 기울였다. 마지막 단추까지 풀렸다. 부드러운 살결이라서 버들의 수술 자국은 더 흉측하게 대비됐다.

버들의 가슴에서 황 대표가 눈을 떼지 않았다. 버들이 가장 아팠고, 저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모질게 등 돌렸던 그 계절이 떠올라 속이 다 허물어지는 것 같다. 고개를 낮춘 황 대표가 버들의 수술 흉터에 입술을 묻었다. 툭. 툭. 빠르게 뛰는 버들의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예쁘네.”

속삭이는 황 대표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안 예뻐요.”

“예뻐.”

혼란스럽게 눈을 굴리던 버들이 일어나 황 대표의 어깨를 밀었다. 둘의 시선 높낮이가 반대로 바뀌었다. 침대에 눕혀진 황 대표가 버들을 올려다봤고, 황 대표의 몸에 올라탄 버들이 황 대표를 내려다봤다. 버들의 허벅지를 황 대표가 쓰다듬었다. 그 간지러운 감각을 참아 가며 버들이 황 대표의 가슴팍에 제 귀를 가져갔다.

여태 온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소음의 주범은 제 심장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황 대표의 심장이 저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못 참겠다. 끝내 버들이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버들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황 대표는 버들을 안고 있었다. 젖은 얼굴에 입을 맞춰 가며. 낮음 음색으로 달래듯 이름을 불러 주며.

창밖이 어두워지면서 황 대표가 버들과 함께 있고 싶단, 제 욕구를 억눌렀다. 황 대표 곁에 찰싹 붙어 있던 버들이 커다란 눈을 깜박거렸다. 옷을 갈아입혀 주고, 머리도 빗겨 주고. 황 대표가 저 예뻐해 주는 행동인 줄 알고 얌전히 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제 가방을 황 대표가 챙겨 들자 버들이 숨을 곳을 찾았다. 한 발을 떼는 순간 뒤에서 황 대표에게 허리를 붙잡혔다.

“집에 데려다줄게.”

“같이 있고 싶어요.”

오랫동안 울었던 탓인지, 투정부리는 버들의 목소리엔 간헐적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 때문에 쭉 집에 못 들어갔을 거 아냐.”

버들의 관자놀이에 황 대표의 입술이 닿았다.

“집에다가는 뭐라고 말했어?”

“대표님 아프니까 제가 있어야 된다고…….”

“집에선 뭐래?”

“몰라요.”

“전화 오는 거 안 받았지?”

“…….”

“전화는 받아야지, 인마.”

몸을 돌린 버들이 황 대표의 등 뒤에 팔을 두르며 꼬물꼬물 품속을 파고들었다. 대표님, 열 많이 났어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러는 와중에 제가 전화받을 정신이 어디에 있었겠어요. 뒤늦게 버들이 웅얼거렸다.

“주치의는 어떻게 알고 불렀어?”

“겨울이 형이 불러 줬어요.”

“그랬어?”

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치의도 부르고. 버들이 외박해도 다른 말 나오지 않게끔 변명하느라 진을 뺐을 유 대표의 모습이 뻔히 그려졌다. 버들의 머리를 넘겨 주며 황 대표가 어르듯 입을 뗐다.

“오늘은 집에 가고…….”

“…….”

“내일 하루 종일 같이 있자. 내가 데리러 갈게.”

버들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이 오래 걸렸다. 지름길을 안다면서 버들이 엉뚱하게 길 안내를 했다. 그게 엉뚱한 길 안내란 걸 알면서도 황 대표는 아, 그러냐 차분히 대꾸해 가며 버들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핸들을 꺾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얄팍한 수작질을 사이좋게 주고받은 두 남자의 얼굴이 시뻘겠다. 괴로울 정도로 몹시 두근거렸다.

버들의 스승이 있는 시골엔 황 대표의 집도 있었다. 황 대표가 버들을 차로 싣고 나르다 보니 둘이서 자주 어울린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다 알게 됐다. 유 회장과 장 여사의 염려는 황 대표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집에 가는 길에 방향이 맞아 태워다 주는 거라지만, 가뜩이나 바쁠 텐데. 우리 버들이가 귀찮게 구는 거면 어쩌지.

한번은 식사 자리에 황 대표를 초대해 장 여사가 노골적으로 걱정한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 여사의 머리에, 뉴욕에서 버들이 수술받는 동안 대기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황 대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직접 말로 꺼내자 그전까지 차분했던 황 대표가 살짝 당황하며 비어 있는 옆자리를 힐긋거렸다. 샐러드 위에 장식되어 나온 계란 노른자가 가루가 되어 있다. 음식을 깨작거리던 버들이 마침 화장실에 가 자리를 비워 다행이었다.

그때 아팠던 건 어떠냐고 장 여사가 물었고 덕분에 괜찮아졌다며 황 대표가 대답했다.

“아픈데 간호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우리 버들이가 황 대표 집에 머물렀다지?”

기회를 잘 잡았단 듯 장 여사가 유 대표와 황 대표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둘은 언제까지 혼자 살 예정이야?”

유 대표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잖아. 곁에 누가 있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데.”

황 대표와 유 대표가 동시에 물 잔을 쥐었다.

“황 대표. 아플 때 우리 버들이가 별로 도움은 못 됐을 거지만,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으니까 덜 외롭고 괜찮았지?”

황 대표가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확실하게 말해 봐. 둘 다 사귀는 사람들 없어?”

갑자기 숙연해진 두 대표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화장실에 갔던 버들이 돌아왔다. 물기 묻은 손이 척척하다. 황 대표가 티슈를 꺼내 건넸다. 장 여사의 집중이 두 대표에서 제 막내아들로 넘어갔다.

“둘이 친한 줄 몰랐는데.”

“대표님이랑 저, 친해요.”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지 전혀 모르는 주제에 버들의 콧대가 하늘 위로 향했다. 마치 자랑하는 어조였다.

“그래, 버들아. 친한 형들한테 빨리 장가가라고 네가 혼 좀 내라.”

숙연한 분위기에 버들이 동참했다. 접시에 코를 박은 채 버들의 고개가 들릴 줄 모른다. 그런 버들의 물 잔을 황 대표가 대신 채워 주었다.

어쨌든 장 여사는 황 대표와 버들의 우애를 기특히 여기며 칭찬했다. 우애? 그 순간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유 대표가 황 대표를 째려봤다. 어머니. 저게 우애로 보이십니까? 빈정거리고 싶은 걸 참기 위해서 겨울이 부러 시금치를 우걱우걱 씹었다.

어화둥둥, 업어 가며 키운 제 막냇동생과 오래된 제 친구의 관계를 겨울은 결코 인정해 준 게 아니었다. 잠깐의 휴전일 뿐이다. 그간 수술받고 회복하느라 힘들었을 버들의 시간이 드디어 평화로워졌으니 그걸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조각 수업이 끝나면 갖가지 핑계를 대며 버들이 곧잘 황 대표의 집에 머물렀다. 문제는 그러고 본가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삼 일째 버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자 혼자서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던 겨울이 친히 운전대를 잡았다.

황 대표가 새로 지은 집은 으리으리했고, 입구부터가 사치스러웠다. 사람 사는 목적이 아니라 버들의 갤러리 같았다. 조각품을 만들면 유 회장을 비롯해 제 형들에게 경매로 팔아 용돈을 벌던 버들이 어느 순간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러나 했더니 황 대표의 집에 가져다 놓기 위해서였나 보다. 긴 복도 양쪽으로 들어찬 버들의 작품들을 보며 어이가 없어진 겨울이 콧방귀를 뀌었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왠지 연락 없이 한 번은 와 봐야 될 것 같아서.”

알아서 마실 걸 꺼내오며 유 대표가 눈썹을 까닥거렸다.

“뭔 뜻이야.”

“몰라도 되고요.”

인상을 찌푸리며 물어 온 황 대표의 말을 유 대표가 가볍게 무시했다. 형님이 왔는데 이놈의 새끼는 어디에 틀어박혀 보이지가 않는 거지? 소파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친 채 겨울이 제 막냇동생을 찾아 집안을 빙 둘러봤다. 집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듯 넓은 공간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다.

“일 층에서 축구해도 되겠다.”

황 대표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겨울이 제 잔에 차를 따랐다. 잠깐 두 대표가 업무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제가 될 예산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겨울의 표정이 엘리베이터가 작동되는 소리에 순간 밝아졌다. 이 층에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가 단숨에 일 층으로 내려왔다.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그 속에서 튀어나온 버들이 소파로 뛰어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버들의 양쪽 손에는 물감이 잔뜩 묻은 채였다. 알록달록. 색도 참 다채롭다.

“저, 눈에 뭐 들어갔어요.”

황 대표의 옆에 풀썩 주저앉은 버들을 보며 겨울이 움찔거렸다. 어떤 상황인 걸 떠나서 저렇게 치대는 건 황 대표가 제일 싫어하는 ‘짓’에 속했다. 내 새끼한테 욕이라도 해 봐. 인상 조금이라도 써 봐, 아주.

저도 모르게 주먹까지 쥔 채 단단히 벼르고 있던 겨울은 목격하게 된 다음 장면에 숨을 멈췄다. 오랜 친구니까 황 대표의 성질머리가 얼마나 지독하게 더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인상을 구기고 저리 가라며 질색할 줄 알았는데 웬걸. 버들의 얼굴을 감싼 황 대표가 버들의 눈에 후, 입 바람을 불어 주고 있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던 모양인지 능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됐어?”

버들이 눈을 깜박였다.

“아직 아파요.”

“아파?”

아직 눈에 뭐가 있는 것 같다면서 버들이 칭얼거렸다. 황 대표가 다시 후, 입 바람을 불어 줬다.

“지금은?”

“된 거 같아요.”

“발 시리니까 슬리퍼 신고 다녀.”

“네.”

맨발이었던 버들이 유 대표가 신고 온 슬리퍼를 자연스레 꿰신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제 막냇동생에게 보고도 못 본 척 외면당한 유 대표가 눈을 끔벅거렸다. 졸지에 슬리퍼를 강탈당했지만 그건 황당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처음 보게 된 황 대표의 모습이 제일 황당했다. 직접 눈으로 봤음에도 믿기지가 않는다. 충격은 버들 때문에 두 배였다. 방금 전처럼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으면 주먹으로 문질러 어떻게든 자기가 해결하는 성격이었다. 아프다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너 뭐 하냐.”

“뭐가.”

1초 전까지 부드러웠던 황 대표의 표정이 무감하다.

“유버들! 너 슬리퍼 가져와!”

유 대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네가 맨발로 다녀. 슬리퍼 두 개밖에 없으니까.”

“……손님용 슬리퍼도 없어?”

“없어.”

태연한 황 대표의 어투에 유 대표가 황당해했다. 둘만 사는 둘의 집에서 다른 누군가는 무조건 이방인이 되었다.

두어 시간 뒤 등에 가방을 멘 버들이 겨울의 차에 올라탔다. 집에 가자는 유 대표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내일 또 보면 된다는 황 대표의 말에 버들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입술을 불퉁하게 툭 내밀고선 왜 왔냐는 듯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제 막냇동생을 겨울이 흘겨봤다. 예전에 버들이 시골에서 살 때 괜찮단 말만 철석같이 믿고 들여다보지 않은 게 후회가 됐었다. 걱정에 의한 방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눈치 없이 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 같다. 시동을 건 유 대표가 창문을 내려 황 대표를 바라봤다.

“내일 시간 늦지 마. 그거 유 회장님이 제일 싫어한다.”

황 대표가 간단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창문을 반쯤 올리다가 말고 유 대표가 다시 황 대표를 바라봤다.

“잘해라, 진짜.”

뭘 잘하란 건지 황 대표가 알아들었다.

다음 날, 유 회장과 두 대표가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 골프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으면서 버들이 유 회장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너는 뙤약볕에 아프면 어쩌려고 따라왔냐면서 유 대표가 타박했다. 두 형제가 유 회장이 헛기침을 할 때까지 티격태격했다. 인사를 하는 버들의 옆을 황 대표가 스쳐 지나갔다.

황 대표가 드라이버 샷을 쳤다.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 뒤에서 뭐라 종알대는 버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황 대표는 쳐다보지 않았다. 황 대표는 유 회장이 하는 말에 그저 귀를 기울였다. 어제 집까지 겨울이 찾아와 ‘잘해라, 진짜.’ 하고 충고했던 건 티 내지 말란 의미였고 황 대표는 그걸 잘 이행 중이었다. 영문 모를 버들이 오늘따라 무뚝뚝한 황 대표의 뒷모습을 멀거니 주시했다. 축구도 이기는 팀이 자기편이라며 응원하더니. 골프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행히 버들의 응원은 황 대표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유 대표나 유 회장이나 모두에게 공평했다.

유 회장의 제안으로 골프 후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먼저 예약된 자리로 안내받은 버들이 황 대표의 옆자리에 앉고 싶어 자리 선정에 고심했다. 보람 없는 짓이었다. 결과가 망했으니까. 옆자리에 제 형이 앉게 되자 땅이 꺼져라 버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버들을 겨울이 가자미눈으로 째려봤다. 이놈이 문제였네, 이놈이. 버들은 계속해서 황 대표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닳을 지경이다.

사업에 관한 조언들이 식사 자리에서 오고 갔다. 마냥 가벼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황 대표가 고개를 들었다. 유 회장과 유 대표가 메인 요리에 집중한 채였다. 황 대표와 눈이 마주치자 버들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즉시 반응했다. 반가움이 몰려든다. 오늘 처음 황 대표의 눈길이 자기에게 향한 것에 좋아서 버들이 활짝 웃었다. 반면 황 대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버들아.’

입 모양으로만 황 대표가 불렀다.

‘네?’

버들이 역시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대꾸했다.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황 대표가 꺼냈다.

‘나 그만 쳐다보고 밥 먹어, 밥.’

그제야 버들이 포크를 들었다. 야채를 들추자 그거 아니란 듯 황 대표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포크로 막 찍은 당근을 제 형의 주둥이에 억지로 쑤셔 넣은 버들이 황 대표 뜻을 따라 육류 쪽으로 팔을 뻗었다. 다음 일정이 촉박해 유 회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래도 식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 대표가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치켜들었다.

“황 대표님.”

유 대표의 부름에 황 대표가 쳐다봤다.

“그거 제 발입니다.”

유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버들이 테이블 아래를 쳐다봤다. 황 대표의 발끝과 유 대표의 발끝이 장난치듯 서로 닿아 있었다. 와인 잔을 내려놓고선 황 대표가 그대로 밖에 나가 버렸다. 유 대표가 소름이 확 돋은 제 팔을 버들에게 들이밀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황 대표님이 발로 어떻게 했어?”

“말도 마. 경찰에 신고해야 할 수준이었어.”

버들은 하루가 끝날 때까지 겨울을 부러워했다.

* * *

형수님이 마련해 줬다는 버들의 작업실에 황 대표가 찾아왔다. 명화가 주제인 천 피스 퍼즐을 맞추며 놀았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자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완성됐다. 버들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고흐의 청춘에 대해 황 대표가 집중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을 때면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이 같이 붙어 있을 때면 순식간에 흐른다. 어느덧 깜깜해진 밤하늘에 아쉬움이 무게를 더한다. 모임 약속이 있는 황 대표가 시간을 체크했다. 가는 길에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했지만 버들은 작업실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현관까지 같이 걸어 나왔다. 한쪽은 배웅을 하고, 한쪽은 배웅을 받고. 헤어지는 순간에 감도는 분위기는 매번 똑같다. 서먹서먹하다.

신발을 신은 황 대표의 손을 버들이 붙잡았다. 깍지 끼며 전해진 버들의 손가락 감촉에 황 대표가 현관 앞에서 발이 묶이고야 말았다. 버들이 엄지손가락으로 황 대표의 손등을 문질렀다. 황 대표의 표정이 심각했다. 버들의 귀여운 애정 행각이 야하게 느껴진다. 말도 못할 음습함으로 꽉 들어찬 제 속도 모르고 눈이 마주치자 버들이 눈을 접고 웃었다. 말똥거리는 눈빛이 마냥 순수하다. 황 대표가 고개를 꺾어 버들의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버들아. 집에 가게 될 때 연락해.”

“저 밤새울지도 몰라요. 여기서.”

“아침이건 새벽이건 다 괜찮으니까.”

“왜요? 저 데리러 오실 거예요?”

“응.”

좀 더 있다가 가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감추고 황 대표가 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 대표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문이 쾅! 닫혔다. 조용한 복도에 홀로 남겨진 황 대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헤어진 순간, 즉시 허전해진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갔을 때 깜박하고 차 키를 두고 나온 걸 황 대표가 알아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 앞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버들이 없다. 신발을 벗고 황 대표가 본격적으로 버들을 찾아 나섰다.

버들은 침실 베란다에 서 있었다. 베란다 문이 꽉 닫힌 상태로 완벽하게 방음되어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위험하게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버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유는, 황 대표의 차가 나가는 걸 보기 위해서였다. 움푹 파인 버들의 아킬레스건이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황 대표가 버들을 안아 주기 위해 베란다 문을 열었다.

“버들아.”

나지막한 황 대표의 목소리에 버들이 휙, 뒤를 돌았다. 황 대표가 안아 주기 전보다 더 먼저 버들이 뛰어가 안겼다. 그런 버들의 등을 황 대표가 쓸어내렸다. 그리고 으스러져라 마른 몸을 꽉 껴안았다.

“대표님. 왜 다시 왔어요?”

차 키 때문이라고 황 대표가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 여기서 자고 갈까?” 하고 물었다. 꽃이 피는 것처럼 버들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환해졌다. 넓은 침대를 두고 두 사람이 엉겨 붙은 장소는 소파였다. 제 팔을 베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 버들의 얼굴을 황 대표가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사람은 정말 생긴 대로 노나 보다. 순한 인상에 순한 성격인 버들을 보면.

늦게 잠들었는데 먼저 눈을 뜬 쪽은 황 대표였다. 제 목을 꽉 껴안고 있는 버들의 팔을 살살 풀었다. 샤워 후 황 대표가 수건을 허리춤에 두르고 욕실에서 빠져나왔다. 장골의 핏줄이 선명하다. 물병을 꺼내 든 황 대표의 시선이 문득 식탁 위에 쓰러져 있는 버들의 가방으로 향했다. 지퍼가 열린 틈 사이로 지갑이 반쯤 툭 튀어나와 있다.

버들의 지갑 속에는 한도가 없는 카드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버들의 형들이 꽂아 줬을 게 분명한 카드들을 황 대표가 무표정한 얼굴로 전부 빼서 치워 버렸다. 그러곤 제 카드들로 새롭게 버들의 지갑을 채웠다. 그 과정에서 명함이 발견됐다. 처음 버들이 이름을 물었을 때 제 연락처를 알려 주기 싫어서 비서의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넸던 적이 있다. 그때 받은 명함을 버들이 아직까지 소지하고 다닐 줄 몰랐다. 얼마나 만져 댔는지 명함의 끝이 전부 헤져 있다. 버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차마 버리진 못하고 황 대표가 그걸 제 지갑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제 개인 번호가 적인 명함을 버들의 지갑 앞쪽에 끼워 넣었다.

* * *

장마가 끝난 여름다운 날씨로 햇볕이 강렬한 오후였다. 출렁거리는 바다의 표면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린다. 요트에 올라탄 버들이 휘청거렸다. 황 대표가 단단한 팔로 버들의 허리를 붙잡았다. 우리 요트 타고 어디 가요? 신나서 수다를 떨던 버들이 이내 잠잠해졌다.

“이거 안 입고 싶은데…….”

버들이 안 입고 싶다고 한 건 구명조끼였다. 수영 못하는 버들을 위해 황 대표가 미리 구매해 둔 거였다.

“왜. 색이 마음에 안 들어?”

“모양 빠지는 것 같아서요.”

그 말을 꺼내자마자 버들이 황 대표에게 꾸중을 들었다. 당사자는 마다한 구명조끼를 단단히 입혀 주고 나서 황 대표가 버들의 어깨를 감쌌다. 빠르게 바다를 가르며 요트가 출발하자 시무룩해 있던 버들의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바뀌었다.

두 사람이 그물로 연결되어 있는 요트 앞머리에 앉았다. 말없이 눈빛이 오고 갔다. 키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요트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참고,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손바닥이건 어디건 전부 옥죄어 든다. 황 대표가 따라 준 무알콜 샴페인을 버들이 홀짝거렸다. 촉촉해진 버들의 입술을 황 대표가 힘을 뺀 손끝으로 닦아 주었다. 아랫입술을 타고 머리끝까지 쭈뼛 번진 짜릿한 자극에 버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곧 무인도에 도착했다. 요트가 멀어지자마자 버들이 황 대표의 목에 팔을 걸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같이 붙어 있으면서 참 하고 싶었던 걸 억눌러야 했던 만큼 서로의 혀끝이 성급히 파고들었다. 버들의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길었던 입맞춤이 끝이 났다.

“대표님. 여기 정말 우리 둘만 있어요?”

“응.”

통통하게 부은 버들의 입술에 황 대표가 잘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모래사장에 지어진 오두막은 냉장고와 욕조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어 불편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처음엔 삭막했던 이 자그마한 섬은 황 대표가 작정하고 돈을 처발라 휴양지로 가꿔 놓았다. 유토피아가 다른 게 아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맨발로 거닐며 마음껏 껴안고, 손을 잡았다.

수영하는 황 대표가 멋있어서 버들이 넋을 놨다. 여러 장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전부 흔들렸다. 아쉽진 않았다. 연애하는 사이니까 원할 때면 언제든지 물에 젖은 황 대표의 몸을 볼 수가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저 혼자뿐이다.

“들어올래?”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버들이 참방참방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불어오는 바람이 살랑거린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버들을 황 대표가 튜브에 태웠다. 황 대표에게 이끌려 버들이 둥실둥실 바다 위를 떠다녔다. 재밌는지 버들의 눈꼬리가 휙 휘어졌다.

황 대표가 튜브에서 조심히 버들을 내려 줬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겁을 낼 필요가 전혀 없으니 여전히 버들은 웃고 있었다. 눈 아래 살이 도톰하다. 황 대표의 허리에 버들이 두 다리를 감았다. 바다 속에서 길고 짧은 키스가 연이어 이어졌다.

하늘이 정말로 새파랬다.

“맛있어?”

“네.”

날씨가 더워 샤워 후 젖은 몸과 머리가 빠른 속도로 말라 갔다. 따로 빗질을 하지 않아 엉망진창으로 붕 뜬 머리로 버들이 뭔가를 입에 넣고 열심히 오물거렸다. 물놀이와 잦은 키스로 힘에 부쳤는지 식욕이 도나 보다. 제 어린 남자 친구를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던 황 대표가 가만히 미소 지었다. 타인이 끼면 무인도에 오게 된 의미가 없으니 새벽에 미리 요리를 준비해 놓으라고 시켜 뒀었다. 잘게 썬 고기 조각을 먹어 본 황 대표가 미간을 구겼다. 시간이 지나 식어 버린 바비큐가 딱딱하다. 버들이 쥐고 있는 꼬치를 뺏어 저만치 던져 버린 뒤 황 대표가 망고를 잘라 버들의 앞에 내려놨다. 달달한 과즙으로 흥건해진 황 대표의 손가락을 버들이 눈을 감고 핥았다.

해가 질 무렵 라탄 소재의 선베드에 누웠다. 자리가 넓은데 버들이 꼭 황 대표의 옆에 있으려고 했다. 그런 버들에게 황 대표가 제 옆구리를 당연하게 내주었다. 노을이 지면서 하늘과 맞닿은 바다 역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감정이 벅차올랐다. 같은 시간에, 같은 걸 보며,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단 게 노을보다 더 진한 감동을 몰고 왔다.

“버들아.”

황 대표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

“…….”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같이 살자.”

황 대표의 그 고백은 버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버들의 얼굴을 커다란 황 대표의 손이 감쌌다. 그대로 고개를 기울인 황 대표가 제 코끝을 버들의 코끝과 문질렀다.

“생각하고 대답해야지. 나랑 같이 사는 게 어떨지 저울질도 해 보고, 계산기도 두드려 보고.”

황 대표를 두고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 시간 아까운 짓에 불과하다. 백번 다시 태어나도 저는 황 대표에게 백번 반하게 될 것이다. 황 대표를 담아내는 버들의 눈동자가 티 없이 맑다.

“저는 같이 살고 싶은 사람, 대표님밖에 없어요.”

“…….”

“같이 살아요. 대표님.”

말로는 자꾸 아니라고 하나 버들은 자신 때문에 많이 울고, 많이 아프고, 많이 힘들었을 게 뻔하다. 버들의 이마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황 대표가 입술로 꾹 찍어 눌렀다.

“대표님. 좋아해요.”

버들을 번쩍 안아 든 황 대표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저를 눕히려는 황 대표의 목에 팔을 걸고 버들이 버텼다. 왜 그러냔 듯 쳐다보는 황 대표의 옷을 버들이 머리 위로 벗겨 냈다. 수영을 해서 근육들이 선명하다. 사납게 도드라진 장골의 핏줄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던 버들이 갑자기 도진 갈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버들의 뜨거운 입김이 황 대표의 살갗에 닿아 부서졌다.

같이 살자고 했으니까……. 확실히 제 것이라고 이름을 새겨 넣고 싶은지 버들이 황 대표의 어깨에 이를 세웠다. 제 어깨를 깨물고 빠는 버들을 격려하듯 황 대표가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달뜬 버들의 촉촉한 혀가 황 대표의 피부 역시 달아오르게 했다. 황 대표의 어깨에서 버들이 고개를 뗐다. 자국은 흐릿하게 남았다. 그렇지만 피어오르는 만족감은 만발한 어떤 꽃과도 뒤지지 않았다.

제 바지로 뻗어 온 버들의 손을 낚아채 황 대표가 입을 맞췄다. 서두르지 않는 속도로 버들의 옷을 벗겼다. 서로의 몸을 바라보며 침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오묘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황 대표가 버들을 완전히 침대에 눕혔다. 속옷을 끌어내리자 버들의 엉덩이에 모래가 묻어 있다. 깨끗하게 씻겨 줬더니 안 보던 때에 어디 모래에 앉아 놀기라도 했나 보다. 소리 내 웃으며 황 대표가 모래를 털어 주었다. 콘돔을 꺼내면서 버들의 잘록한 허리 부근에 집중적으로 황 대표가 울혈을 만들어 나갔다.

“하…….”

습기 가득한 신음이 버들의 벌어진 입술 틈새로 흘러나왔다. 몸과 입술, 얼굴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황 대표의 입맞춤은 마냥 다정하기만 했다. 황 대표가 버들의 가느다란 다리 한쪽을 들어올렸다. 설원처럼 눈부신 버들의 허벅지 뒤쪽까지 황 대표의 입술이 안 닿은 데가 없었다. 간지러움을 못 이기고 버들이 어깨를 비틀었다. 버들의 다리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대신, 황 대표가 제 어깨에 걸쳤다. 소극적으로 움츠리고 있던 버들의 그곳, 연약한 근육이 예쁜 빛을 띠고 있었다.

황 대표가 손바닥 가득 젤을 짰다. 손가락을 가져가자 생각보다 차가운 감촉에 버들이 깜짝 놀랐는지 흠칫거렸다.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려는 듯 황 대표가 버들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버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순간, 젤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황 대표가 주는 버거운 자극에 버들의 속이 넓게 파동을 일으켰다. 손가락을 하나씩 늘릴 때마다 버들의 쫀득한 속살이 꿈질거리며 황 대표를 환영했다.

빠르게 할딱거리는 버들의 가슴팍에 황 대표가 고개를 내렸다. 유륜 주변을 핥고, 유두를 삼켰다. 이 사이에 가두고 지그시 씹자 버들의 등이 위로 들렸다. 피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결과는 더 먹어 달라 가슴을 내밀며 조르는 것처럼 됐다. 가슴을 빠느라 나는 축축한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물고 있던 버들의 작은 젖꼭지를 놓아줬다. 타액에 젖어 발갛다. 황 대표가 입술을 옮겨 버들의 수술 흉터에 묻었다. 심장 박동을 느끼며 핥고, 핥고, 또 핥았다. 그렇게 핥으면 버들의 몸에 남은 상처가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을 빼자 오랜 시간 공들인 만큼 버들의 그곳이 흐물흐물하게 풀려 뻐끔거렸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이성을 다잡고 있는데, 눈앞이 핑 돌만큼 야한 모습에 황 대표가 제 아랫입술을 으득 씹었다. 딱딱하게 발기한 제 성기를 버들의 아래에 맞췄다. 삽입은 느리게, 이뤄졌다. 제 안을 파고드는 황 대표의 몸이 버거운지 버들의 호흡은 금방 무너져 내렸다. 진흙처럼 질척하게 쑥 빨아들이는 버들의 아래에 황 대표가 인상을 썼다. 이마에 푸른 힘줄이 돋았다. 버들이 제 아랫배를 더듬거렸다. 황 대표의 크고 두꺼운 성기가 제 속을 꽉 채우고 있단 게 여실히 느껴졌다.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이 꽉 맞물린 상태에서 황 대표의 성기는 더 커져 가는 것만 같았다. 버들은 잡아먹혔단 말을 실감했다.

“대표님……. 아. 저, 너무…….”

말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버들이 느끼는 흥분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 귓불을 녹이는 버들의 가느다란 신음은 황 대표의 성감을 부추겼다. 버들이 콧등을 잔뜩 찌푸렸다. 황 대표가 허리를 밀어붙일 때마다 얇은 제 뱃가죽이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리가 하얗게 곤죽이 될 정도로 좋았다. 좋단 그 느낌이 철철 흘러넘친다. 힘이 들어간 버들의 발가락이 저절로 구부러졌다. 버들이 고개를 들어 키스를 졸랐다. 두 남자가 땀에 흠뻑 젖어 들었다. 버들이 짧은 간격으로 왈칵, 여러 번 사정했다. 사정하는 그 순간조차 황 대표가 허릿짓을 멈추지 않아 버들은 그야말로 머리꼭지까지 돌아 버리는 줄 알았다.

“아, 하지, 아!”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버들의 성기를 황 대표가 쥐었다. 사정 직후라 빨개진 제 귀두를 못살게 구는 황 대표를 말리고 싶어 버들이 황 대표의 팔목에 손을 올렸지만 이미 힘이 빠진 지 오래라 밀어낼 순 없었다. 그런 버들의 마른 팔을 붙잡아 황 대표가 버들을 일으켰다. 황 대표에게 어디론가 들려 가며 버들이 쌕쌕 가쁜 숨을 내뱉었다.

버들을 식탁에 상의만 걸칠 수 있게 엎드려 눕힌 다음 어깨뼈, 등, 뒷덜미에 흔적을 넓혀 갔다. 황 대표가 버들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퍽! 각도가 틀어지면서 삽입이 깊어졌다. 아랫배가 절절 끓어오르는 감각에 버들이 질끈 눈을 감았다. 감당할 수 있는 선은 이미 넘겨 버렸다. 이대로는 제 몸이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다. 아, 제발……. 황 대표에게 간절히 멈춰 달라고 말을 전하고 싶은데 신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때였다. 더 나올 것도 없을 것 같았던 버들의 성기가 찰나 왈칵, 무언가를 토해 냈다. 정액은 아니었다. 버들의 성기 끝에선 맑은 액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버들의 배꼽 아래가 전부 경련을 일으켰다. 미친 듯이 조여 드는 버들의 아래에 이상한 걸 느낀 황 대표가 움직임을 멈췄다. 팔뚝, 장골 어디라 할 것 없이 그의 몸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버들을 똑바로 돌려 눕힌 황 대표가 짧게 감탄했다. 달빛에 스며든 버들의 몸은 쏟아 낸 제 액에 젖어 온통 반짝거렸다. ……예쁘네. 헐떡거리는 버들은 현재 제 몸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버들의 성기를 쥔 황 대표가 몸을 낮췄다.

“버들아. 좋아?”

낮은 울림으로 황 대표가 버들의 귀에 속삭였다. 황홀경은 짙어지고 버들을 전부 삼켜 버리고 싶단 소유욕이 강하게 일렁거렸다. 황 대표가 버들의 팔을 잡아 제 목을 껴안도록 했다.

“아!”

거세게 허리를 밀어붙이는 황 대표의 힘에 감겨 있던 버들의 눈이 번뜩 뜨였다. 신음과 비명이 섞였다. 버들이 느끼는 지점을 황 대표의 뭉툭한 성기 끝이 짓밟는 것처럼 거칠게 눌러 댔다. 끝날 줄 모르고 절정에 반복해 치달았다. 버들이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가쁘고 거칠게 내쉬는 숨을 비집고 기어이 버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파도 소리가 점차 아득해졌다.

* * *

버들의 이사는 손 없는 날 이뤄졌다. 황 대표의 차에 싣고 온 버들의 짐은 극히 적었으나, 그 큰 공간에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게 바로 마른 해바라기가 꽂혀 있는 화병이었다. 본격적으로 동거가 시작되면서, 서로의 물건은 물론 시간까지 공유가 됐다. 서재 문을 열어 빠끔히 고개를 내민 버들은 황 대표의 옷을 입고 있었다.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황 대표가 버들의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제가 재워 줄까요?”

조심스러운 버들의 말에 황 대표가 웃었다.

“먼저 자도 돼.”

“그래도…….”

머뭇거리는 버들의 눈에 졸음이 가득하다.

“피곤하니까 먼저 자고 있어.”

“기다리고 있을게요.”

자정이 넘어가면서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집중해서 일을 하던 황 대표가 커피를 내려 서재로 돌아가던 중 침실로 방향을 틀었다. 기다리고 있다가 재워 주겠다고 했으면서 버들이 새근새근 먼저 잠들어 있다. 황 대표가 테이블에 컵을 내려놨다.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버들을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전에 안쪽으로 옮겨 주었다. 비가 내리거나 흐리면 버들의 손목이 뻐근해진다는 걸 알았다. 전에 다쳤던 그 손목이었다. 조심히 마사지를 해 주며 황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술술 풀리는 것 같았던 작업이 어느 지점에서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컵 가득 찰랑거렸던 커피가 어느덧 바닥을 보였다. 편안했던 황 대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깜박거리는 커서가 신경을 갉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 대표가 불현듯 깨달았다. 신경질을 누그러뜨리는 데 더는, 카페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잘 자고 있는 버들을 이불에 감싸 황 대표가 서재로 들고 왔다. 그대로 의자에 앉으니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는 버들의 체중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비 내리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음이 한데 섞였다. 작업을 하다가 짜증이 나거나, 답답할 때면 황 대표가 버들의 목덜미 냄새를 흠뻑 들이켜 마셨다.

알람에 맞춰 눈을 뜨자마자 버들이 바삐 움직였다. 이 방에 갔다가, 저 방에 갔다가.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데 덩달아 급해지는 기분이다. 스승님의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버들은 거기서 작품 설명을 도와주기로 했다. 정장을 갖춰 입은 버들이 황 대표의 드레스 룸으로 넘어가 넥타이를 신중히 골랐다. 현관 앞에서 차 키를 까닥이며 기다리고 있던 황 대표가 가까이 다가온 버들을 벽에 가뒀다. 버들의 까만 눈동자가 순하다. 사회 경험이 없는 탓인지, 버들이 직접 매고 나온 넥타이가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화창한 햇살이 새어 들어와 둘의 발등을 밝혔다.

“…….”

“…….”

황 대표가 버들의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도 두어 개 풀었다. 드러난 버들의 쇄골을 빨았다. 바짝 긴장을 하면서도 노곤하게 풀리는 버들의 몸이 느껴졌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 올 만큼, 길들여진 버들의 몸을 뜻밖에 확인하게 된 황 대표는 크게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뭐가 부끄러운지 버들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다. 단추를 도로 채운 뒤, 황 대표가 버들의 넥타이를 대신 매 주기 시작했다. 황 대표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버들이 진중한 제 애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황 대표의 향수 냄새가 코밑을 스민다. 설렌다. 황 대표는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도 풀어 버들의 손목에 채워 주었다.

버들을 전시회장에 데려다 주고 황 대표가 회사로 향했다. 곧 새롭게 촬영이 시작될 영화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잠이 부족하니 그만큼 피곤이 쌓인 상태였다. 황 대표가 캐스팅 회의에 참석했다. 언제나 그랬듯 회의는 전쟁과도 다름없었다. 다음 회의 일정이 정해지면서 릴레이 회의가 예고됐다. 다들 지쳐서 데스크에 쓰러지는 와중, 황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킷을 챙겼다. 그리고 지체 없이 회사를 빠져나왔다.

전시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황 대표가 버들을 데리러 갔다. 근처에 대학교가 있나?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고만고만한 사내새끼들 사이에서 버들은 당연히 눈에 띄었다. 어깨도 올곧고. 팔다리도 길쭉하고. 키도 저만하면 사내놈치고 아쉽지 않게 큰 편이고. 핸들에 엎드린 황 대표가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버들의 생김새를 음미했다.

상기된 버들이 재잘재잘, 오늘 있었던 일을 황 대표에게 들려줬다. 버들의 수다를 듣고 있던 황 대표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제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 한다고 그랬고……. 사람들이 저보고 친절하다고 엄청 칭찬했고……. 형들도 왔다 갔고……. 스승님이 용돈도 주셨고……. 그걸로 정민이랑 맛있는 거 사 먹을 예정이고……. 종합적으로 말을 다 합치고 보니까 버들이 아무한테나 웃어 주고 온 것 같다. 환장하겠다.

다음 날, 버들과 함께 황 대표가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인지도가 높은 명장의 전시회라 그런지 인파로 북적거린다. 익숙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버들을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황 대표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버들을 데리고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버들아.”

“네?”

“인상 써 봐.”

황 대표의 말을 따라 버들이 눈썹을 뾰족하게 떴다. 아. 얘는 진짜 뭐 이렇게 생겼냐. 인상을 썼으면 아무도 접근 못 하게끔 험악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저를 쳐다봐 주는 황 대표의 눈길이 좋은지 버들이 이내 사르르 웃었다. 오금이 순간 저릿했다. 버들의 정장이 구겨지면 안 되니 마음껏 껴안을 수도 없었다. 다음엔 차에 여분으로 버들의 정장을 따로 챙겨 놔야겠단 생각을 하며 황 대표가 버들의 등을 제 쪽으로 살며시 잡아당겼다. 버들이 황 대표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대표님.”

“응.”

꽁꽁 숨겨 아무한테도 보여 주기 싫다. 이런 제 집착은 순전히 버들이 탓이었다. 버들은 생긴 것 자체가 문제였다. 대체 누구 새끼인지, 청순한 게 도가 지나칠 정도다.

* * *

오밤중의 산책을 둘 다 좋아했다. 집을 나오자마자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정체 모를 풀벌레 소리가 운치 있다. 오늘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일주일 동안 열렸던 전시회에 버들은 빠짐없이 나가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오래 서 있으면서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을 버들이 힘들었을까 봐 걱정인 황 대표가 인상을 구겼다. 아침마다 버들의 넥타이를 매 주면서 못 가게 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건 별로 버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가까스로 인내했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할 거고, 전시회도 되도록 많이 보러 다니겠다며 버들이 계획을 밝혔다. 하. 황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버들은 같이 살고 있는 스폰서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멈춰 봐.”

얘기하던 사이 오늘은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와 버렸다. 그게 버들은 더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면 그만큼 황 대표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는 거니까. 속없이 버들이 해실거렸다. 잡아당기는 황 대표의 손길에 앞으로 걸어가려던 버들이 뒷걸음질로 끌려갔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황 대표가 아무런 말이 없다. 곤란한 낯으로 황 대표가 버들을 내려다봤다. 가뜩이나 그동안 전시회장에서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많이 걸어도 되려나. 얘가 오늘 저녁에 뭘 먹었지?

둘 다 먹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고 사는 편이 아니었다. 예전 나흘간 황 대표가 열이 올라 아팠을 때, 간호한다고 옆에 붙어 있던 버들이 덩달아 나흘간 굶었던 적이 있다.

“아. 싫어요.”

안아 들려는 황 대표를 버들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피했다.

“손잡고 걸을래요.”

버들이 원하는 대로 손잡고 걸었다. 그렇지만 몇 걸음 가지 못했다. 버들이 저녁으로 먹은 건 그릴에 구운 옥수수 반쪽이랑 감자 한 알, 탄산수가 전부였단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마저 탄산수는 칼로리가 없었다. 옥수수랑 감자, 그게 다 살로 가야 하는데. 이렇게 걸어 버리면 먹은 게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다. 거부하는 버들을 황 대표가 억지로 안아 들었다. 어깨에 거꾸로 매달려 내려 달라고 버들이 고집을 피웠지만 집까지 황 대표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 꼴통 새끼. 황 대표가 느른히 턱을 괬다. 버들이 단단히 토라져 황 대표에게 등을 보였다. 달래 주는 대신 황 대표가 동글동글한 버들의 뒤통수를,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며 감상했다. 그날 이후로 황 대표는 버들의 끼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이곳은 경치 좋고 물 좋고. 다 좋은데, 단점은 배달을 시킬 수 있는 전문 음식점이 없단 거다.

처음엔 음식을 해 주는 사람을 불렀다. 하지만 저들만의 유토피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버들은 위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남자 둘이 한집에서 오붓하게 살고 있는 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 의식이 되어서 그랬을까? 황 대표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버들은 눈치 보며 피해 다니기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 후 주방으로 걸어 나온 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식탁 위에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황 대표와 버들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수저 끝을 물고 있던 버들이 황 대표에게 물었다.

“이거 대표님이 하신 거예요?”

식탁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메인 요리는 계란찜이었다.

“먹어.”

무뚝뚝하다 못해 쌀쌀맞은 톤이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알아서 뭐 하게.”

“그냥. 알고만 있으려고요.”

“너는 몰라도 돼.”

“알고 싶은데…….”

“먹어. 빨리.”

대답을 회피한 황 대표를 보며 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버들이 계란찜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세 입 정도 떠먹을까. 버들이 물을 찾았다. 황 대표가 뚜껑을 열어 생수병을 건네줬다. 속눈썹을 깜박거리면서 버들이 황 대표를 주시했다. 황 대표가 버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짜?” 하고 지나가는 투로 맛을 물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아니라고 버들이 대답했다. 관심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계란찜은 황 대표님이 한 게 맞는 것 같다.

버들이 계란찜에 다시 수저를 가져갔다. 처음보다 적은 양이 수저에 딸려 왔다. 그걸 본 황 대표가 계란찜을 먹어 봤다. 만들면서도 간을 봤었는데 처음 한 것 치고 괜찮았었다. 그게 위쪽만 그랬나 보다. 뭐가 문제였던 건지 계란찜이 아래로 갈수록 그냥 소금덩어리다.

“그만 먹어.”

“왜요?”

“짜잖아.”

“물 마시면 돼요.”

욕하면서 황 대표가 계란찜을 버리고 돌아왔다. 있던 밑반찬으로만 달그락달그락 식사가 끝났다. 뒷정리를 하는 황 대표의 뒤에 버들이 찰싹 달라붙었다. 기회를 노려 황 대표에게 입을 맞췄다가 누가 함부로 뽀뽀하라고 했냐면서 혼이 났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시무룩해졌겠지만 버들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채였다.

“대표님. 누구한테 또 계란찜 만들어 준 적 있어요?”

“…….”

“제가 처음 맞죠?”

“…….”

“대표님이 만든 계란찜, 제가 처음 먹은 거예요? 네?”

대답을 종용하는 버들의 쇄골이 움푹 파였다.

“버들아.”

“네?”

황 대표가 버들을 껴안았다. 한 품에 마른 몸이 쏙 들어오고도 남는다. 그게 너무 애처롭고 애탄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이스크림.”

고추밭 김 씨 할머니가 판다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한정판이라 새벽 일찍 줄을 서야 했다. 막대를 받아 들고 나니까 그냥 식혜를 얼린 것뿐이다. 시시하다. 황 대표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의 커다란 나무에서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불어온 바람이 버들의 곱슬머리를 건드렸다.

“아이스크림 말고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탄산수. 얼음 가득 넣어서.”

날씨가 더우니까 버들이 시원한 것만 찾는다. 문제는 영양가가 하나도 없단 거다.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에 주인공들 직업이 요리사라……. 진지한 어조로 약을 파는 황 대표에게 유 대표가 홀라당 넘어갔다. 미룰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유 대표와 황 대표가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 서로 앞치마 맨 꼴을 보고 비웃었다. 둘 다 자기 관리가 엄격해 몸이 좋은 남자들이었다. 벌어진 어깨에 팽팽히 늘어난 앞치마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금방 찢어지게 생겼다.

자존심 부리느라 첫날부터 난이도가 센 요리를 선택했다. 강사가 들어오길 기다리던 중 불현듯, 날카롭게 스친 현실 자각에 황 대표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아무리 제 꼴통을 위한 거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분홍색 물방울무늬 앞치마라니.

“유 대표.”

분홍색 체크무늬 앞치마를 한 유 대표가 황 대표를 쳐다봤다.

“너 요식업에 관심 없어?”

“갑자기 무슨 요식업이야. 네가 관심 있어서?”

“나는 없고. 유 대표, 너 있냐고.”

“나도 없어.”

“관심은 없어도 시간이랑 돈은 남아돌 거잖아.”

“응.”

“내 집 근처에 너 레스토랑이나 하나 내라.”

“수요층이 없는 그런 촌구석에 레스토랑은 내서 뭐 하게.”

“너 원래 쓸데없는 짓 잘하고 그러잖아.”

“시간이랑 돈은 너도 남아돌잖아. 너나 쓸데없는 짓 하고 그래라.”

강사가 들어오면서 두 대표의 유치한 말다툼이 멎었다. 앞치마를 벗고 나갈 타이밍을 놓쳐 버린 황 대표가 작게 탄식했다. ‘오늘의 요리’ 주재료는 해산물이었다. 각자의 옆에 아이스박스가 놓였다. 주말이면 장 여사를 위해 유 회장이 직접 요리를 했기에 그걸 보며 자란 유 대표는 황 대표와 달리 여유로웠다. 식칼을 집어든 유 대표의 폼이 당당했다. 그 순간만.

아이스박스 뚜껑이 열리면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꽃게며 조개며 새우며 전복이며 소라며 미더덕이며……. 전부 싱싱하다. 죽어 있거나 혹은 이미 손질을 끝마친 해산물만 봐 오다가 살아 있는 걸로 요리를 하려니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징그럽고 무서웠다. 하지만 옆에서 황 대표가 보고 있으니까 내색하지 않고 유 대표가 센 척을 유지했다. 강해 보이는 꽃게의 집게에 유 대표가 움칠거렸다. 그때였다. 아이스박스 위를 펄쩍 튀어 오른 새우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덩칫값 못하고 두 대표가 동시에 그 자리를 벗었다. 비명 안 지른 게 다행이었다.

주제 파악을 하고 유 대표와 황 대표가 요리 난이도를 대폭 낮췄다. 난이도가 아무래도 가장 낮다 보니 수강생들은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틈에 낀 유 대표와 황 대표를 보며 어린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난 진짜 어이가 없다.”

유 대표가 투덜거렸다.

“궁중 떡볶이 만드는 법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게.”

궁중 떡볶이 만드는 법을 배워서 써먹을 데가 있는 황 대표가 침묵했다. 일반 떡볶이와 달리 궁중 떡볶이는 베이스가 달달했다. 버들이 매운 걸 못 먹으니까 다행이었다. 불고기, 만두 등등. 버들과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황 대표가 할 수 있는 요리가 조금씩 늘어났다.

* * *

결과물에 두 대표가 흡족했다. 회의를 거듭하고 여러 번 뒤엎으면서 고생은 했지만 그만큼 성과는 만족스러웠다. 브리핑을 받으며 두 대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 소속 배우의 유럽 진출 건을 위한 회의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꼬박 반나절은 걸릴 사안이었다. 잠깐의 휴식에 담배를 챙긴 황 대표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버들이 서 있었다.

“대표님.”

놀란 황 대표가 입에 물었던 필터를 뺐다.

“언제 왔어?”

“아까요.”

“뭐 타고?”

“택시.”

황 대표가 시간을 확인했다.

“밥은 먹었어?”

“유 이사님이 사 주셔서 먹고 왔어요.”

“그랬어?”

황 대표의 다정함은 딱 한 명에게만 발휘됐다. 직원들이 오가는 복도였다. 아무한테도 보여 주기 싫은 버들을 황 대표가 제 대표실로 데려갔다. 단단히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의는 반나절보다 더 이르게 끝이 났다. 뒤에서 유 대표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버들을 차에 태운 황 대표가 회사를 벗어났다. 그렇게 향한 곳은 카페였다.

커피에서 탄내가 나서 그런지, 아니면 칙칙한 재즈만 흘러나와서 그런지 카페는 언제 와도 손님이 없었다. 커피 맛도, 배경 음악도, 촌스러운 인테리어도,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도, 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눈에 별로 띄지 않는 구석진 자리가 그들만의 고정석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데이트였다.

여유롭게 시간이 흘러간다. 버들이 가방을 열어 제 애인 카드로 산 그림 노트와 제 애인이 직접 사다 준 색연필을 꺼냈다. 한 페이지가 낙서로 가득 채워졌다. 그걸 내려다보던 황 대표가 턱을 괬다. 색연필을 꺼내 버들이 그려 놓은 낙서에 색을 칠해 넣었다. 텅 비어 있던 네모가 하늘색으로 칠해지고. 텅 비어 있던 동그라미가 노란색으로 칠해지고. 텅 비어 있던 세모가 검정색으로 칠해지고. 그렇게 둘의 세상도 알록달록 물들었다.

집에 돌아와 각자 씻고 나왔다. 두 사람의 젖은 머리에서 똑같은 샴푸 냄새가 났다. 누워 있는 황 대표의 몸 위에 버들이 올라타 누웠다. 옆구리를 간질이는 대로 버들이 웃었다. 무미건조했던 황 대표의 세상은 뒤집힌 순간, 버들이 만들어 놓는 소음으로 꽉 들어찼다. 황 대표의 커다란 손이 버들의 얼굴을 감쌌다. 새삼 버들의 이목구비를 요모조모 뜯어봤다. 청초하다. 그대로 버들의 얼굴을 잡아당겨 입술에 뽀뽀했다. 감촉이 말랑말랑하다. 쪽, 빨았다. 버들의 아랫입술이 단박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쪽. 힘을 들이지 않고, 살며시 씹자 버들이 움찔거렸다.

작정하고 키스하면 버들의 입술은 마치 붕어처럼 부어오르곤 했다. 황 대표가 얼굴을 놓아주자, 이번엔 버들이 손을 뻗어 황 대표의 얼굴을 감쌌다. 황 대표가 방금 전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입술을 쪽, 빨았다. 아랫입술을 으득 씹어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이갈이 하는 어린 짐승 새끼 같다. 신체 중 가장 여린 피부라 아플 만도 한데, 황 대표는 제 입술을 버들이 씹으면 씹는 대로, 빨면 빠는 대로 가만히 있어 줬다.

황 대표가 티셔츠를 벗기려고 하자 버들이 순순히 양팔을 들어 응했다. 소파에 눕힌 뒤 버들의 왼쪽 젖꼭지를 퉁퉁하게 부어오를 정도로 황 대표가 자극을 줬다. ……으응. 콧등을 찌푸린 버들이 투정하듯 신음했다. 못하게 막는 버들의 손목을 황 대표가 한손에 쥐어 머리 위로 고정했다.

황 대표가 이를 세워 연한 버들의 유두를 자근자근 씹었다. 버들의 등이 들썩였다. 황 대표가 크게 숨을 마셨다. 버들이 사용하는 로션 냄새가 옅게 감돈다. 일하면서 하루 내 쌓였던 스트레스가 희미하게 자취를 감췄다. 버들의 아랫배에 입술을 파묻고 황 대표가 한참 지분거렸다. 보들보들한 살결이 녹아내릴까 봐 걱정이다.

제 바지 지퍼를 내리는 황 대표의 손길에 버들이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버들의 속옷이 젖어 있었다. 황 대표의 커다란 손이 쓰다듬듯 버들의 성기를 애무했다. 뜨거움이 섞였다. 얇은 천에 버석거리는 감촉마저 자극이 되는지 버들의 신음이 커졌다. 천천히 속옷을 벗기자 버들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물이 맺힌 채 발긋한 버들의 눈가가 예쁘다. 황 대표가 버들에게 눈을 맞췄다. 다정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굶주린 짐승처럼 보이기도 해서 버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버들아.”

“……네.”

처음이었지만…… 어떤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 대표의 머리카락이 곧 버들의 배꼽 밑에서 흩어졌다. 놀란 버들이 피하려고 급히 몸을 틀어 봤지만 골반을 꽉 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윤곽이 도드라진 버들의 성기가 황 대표의 입안으로 단숨에 삼켜졌다. 버들이 황 대표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고개가 절로 뒤로 꺾였다. 황 대표가 침을 삼킬 때면 제 성기도 함께 황 대표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아 두려웠다. ……아. 어떡해. 참지 못하고 버들의 몸이 풀렸다.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번쩍거리던 눈앞이 얼마 못 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황 대표가 사정한 버들의 성기를 뱉었다. 동백을 닮은 귀두부터 기둥까지. 버들의 성기는 황 대표의 타액으로 온통 척척하게 젖어 있었다. 수줍어할 틈도 없었다. 아직 사정의 여운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황 대표가 버들의 것을 붙잡아 위아래로 빠른 속도로 흔들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황홀했다, 거센 물살에 떠밀리는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버들이 황 대표의 어깨에 손톱을 박았다.

그날의 섹스로 버들은 다음 날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대표님.”

목이 쉰 버들의 목소리가 허스키하다. 주치의를 불러 링거도 맞고, 휴식도 푹 취하고 나서야 버들은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꼼짝 못 하고 침대에 누워 황 대표의 수발을 받는 동안 느낀 점이 되게 많았다. 그동안의 섹스는 거친 것도 아니었구나. 황 대표가 저를 많이 봐주고 있단 걸 알게 되면서 버들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꼬물꼬물, 품에 파고드는 버들의 등을 쓰다듬어 주던 황 대표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암막 커튼도 치고, 불도 끄고. 자꾸 어두운 곳에 있자는 제 꼴통을 안아 일 층으로 내려왔다. 햇살이 환하다.

“눈 부셔요.”

“그럼 눈 감고 있어.”

무릎에 앉힌 버들의 엉덩이를 황 대표가 쓰다듬었다. 어두운 곳에 왜 있고 싶어 하는지, 버들의 흑심을 황 대표가 알아차렸다. 그 흑심이 어떤 건지 아니까 황 대표의 입장에선 철옹성처럼 버틸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안 들린다.”

안 들린다니까 조용히 하란 뜻이었는데, 버들이 황 대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도 하고 싶어요.”

“…….”

“대표님. 네?”

“…….”

“저도 빨고 싶어요.”

“…….”

“대표님 거 저도 입에 넣고 막…….”

더는 버들의 말이 이어지지 못하게 황 대표가 손가락으로 버들의 입술을 집게처럼 잡았다. 그러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 좀 걸어 다닐 정도로 괜찮아졌으면 보통은 몸을 사리는 게 맞지 않나? 그딴 건 모르겠단 식으로 오히려 버들이 달려들 줄은 몰랐다. 항상 예측이 불가하다. 뭐 이런 꼴통 새끼가 다 있나 싶은지 새삼스러운 눈길로 황 대표가 버들을 바라봤다. 겁 없는 하룻강아지의 이목구비가 올망졸망하다. 기가 찬다. 황 대표의 인상이 점점 험악해졌다.

“내가 뭐랬어. 남자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잖아.”

“…….”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하면 되겠어?”

“…….”

“인내심 없는 남자가 얼마나 최악인 줄 알아?”

“…….”

“앞뒤 상황도 재면서 덤벼들어야지.”

“…….”

“나 봐. 밤새면서 너랑 섹스하고 싶은데 참잖아. 내가 한 번이라도 밤 샌 적 있어?”

“…….”

“어허. 눈 좋게 안 떠?”

냉랭하게 나무라는 황 대표를 향한 버들의 눈빛이 반발심으로 가득해졌다. 버들이 계속해서 말이 없다. 황 대표가 어이가 없단 투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 이게 삐칠 일이야?”

“…….”

“입도 작아 가지고.”

“…….”

“뭐. 그렇게 쳐다보면 네가 어쩔 건데.”

“…….”

“예쁘게 생기지나 말든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버들이 황 대표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어 낮게 소곤거린 버들의 말에 정곡이 찔렸다. ……그래. 네 말대로 입술보다 더 작은 곳으로, 섹스를 하는 건 맞는데. 황 대표의 말문이 막혔다.

황 대표가 버들의 입술로 시선을 내렸다. 아깝다. 아까우니까 안타까움이 넘실거린다. 맛있는 거나 먹지. 저 입으로 뭘 하겠다고.

험악하게 구기고 있던 황 대표의 인상이 버들이 키스를 해 오자 나긋하게 풀려 버렸다. 심장이 거세게 뛴다. 무릎 꿇고 제 다리 사이에 앉은 버들을 보며 황 대표가 심란해졌다. 진짜 돌아 버리겠다. 그런 황 대표의 속도 모르고 버들이 꼼지락거리며 황 대표의 청바지 버클을 풀었다.

발기한 황 대표의 성기를 코앞에서 마주하게 된 버들이 움찔거렸다. 크기와 모양, 굵기, 길이, 냄새, 색깔……. 전부 저랑 다르다. 검푸른 핏줄이 거세게 돋아나 험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버들의 손이 기둥을 쥐어 오자 황 대표가 눈가를 찌푸렸다. 버들의 촉촉한 눈길에 황 대표의 성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꺼덕였다.

버들이 두 손으로 황 대표의 기둥을 쥐었다. 타 버릴 정도로 뜨겁다. 눈을 감은 뒤 버들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두 손으로 쥐어도 버거웠으니 당연히 입에 전부 넣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귀두부터 핥았다. 머리 위로 나직하게 들려온 황 대표의 신음에 버들이 배 속이 간지러워져 발가락을 꼬았다. 애무를 해 주는 건 자신인데, 꼭 애무를 받는 것처럼 숨이 찬다.

버들이 좀 더 크게 입을 벌렸다. 혹시나 버들이 다칠까 봐 황 대표가 전전긍긍했다. 황 대표도 오럴이 처음이었지만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버들을 황홀함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버들은 처음이란 티가 날 정도로 미숙했다. 앞니로 긁을 때마다 황 대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말리진 않았다. ……귀여우니까. 그리고 황 대표도 오럴을 받는 게 태어나 처음이었다. 오럴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꺼려져 그동안 기피했었다. 예외가 생기면 언제나 버들이 이유가 됐다.

버들이 눈을 치켜떴다. 마주친 버들의 젖은 시선에 황 대표가 하마터면 또 이성을 놓을 뻔했다.

황 대표가 버들을 제 몸 위에 앉혔다. 삽입은 버들의 체력에 어려울 것 같으니 서로의 성기를 겹쳐 잡아 수음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젖은 두 개의 귀두가 미끈거리면서 부딪혔다. 사출한 버들이 축 처져 황 대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한참 후에 황 대표도 사정했다. 맞닿은 둘의 아랫배가 범벅이 된 정액으로 질척였다. 여유를 주고 기다려 준 뒤 황 대표가 버들의 입술을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찢어지지 않았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고 나서 황 대표가 버들을 혼냈다.

* * *

벽을 타고 만발한 해바라기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무덥기만 했던 날씨에 조금씩 가을이 섞였다. 목이 긴 컵에 얼음이 비틀렸다. 표면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혔다. 버들의 컵에는 아이스티, 황 대표의 컵에는 커피가 반쯤 남아 찰랑거렸다. 두 개의 컵은 디자인이 똑같았다. 하늘 위에 커다란 구름 뭉치들이 유유자적 흘러갔다. 정자에 앉아 황 대표가 쓸 수첩에 버들이 해바라기를 그려 주고 있는데 재복이가 나타났다. 재복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버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버들의 채근에 하는 수 없이 황 대표가 차를 몰았다. 길치인 황 대표에게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은 버들이 금동이, 감자의 주인인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서 개 이름을 지었는지 주소를 받아 냈다.

허름한 건물 앞에서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종료했다. 문 앞에 붙은 종이가 너덜거린다. 사주, 이름, 토정비결 뭐 이런 내용과 함께 가격도 적혀 있었는데 그게 ‘5만원’이다. 버들이 황 대표를 쏘아봤다.

“이름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가격이 비쌌던 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데 가격을 그렇게나 높게 받을 수 있어요?”

“뜻도 좋잖아. 그거 연구하는 비용이래.”

“그렇다고 개 이름 짓는데 남들 연봉을 갖다 줘요?”

건물 안으로 버들이 들어갔다. 아. 한 몫 단단히 챙겨서 그런지 가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사기꾼을 잡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버들이 계속 씩씩거렸다. 돈이 아까운 것보다 감히 제 소중한 황 대표에게 사기를 친 상대에게 화가 났다.

“어쨌든 재복이가 시골에 살면서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가만히 좀 있지. 괜한 소리를 보탰다가 버들에게 황 대표가 잔소리를 얻어 들었다. 버들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앞으로 개 이름은 제 허락 없이 돈 주고 짓지 않기로 약속했다. 같이 살게 된 날들만큼 둘이서 정한 약속이 늘어 가는 중이었다.

* * *

정민이 제 친구들 모임에 버들을 초대했다. 보통 때라면 거절했을 텐데 하도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황 대표에게 버들은 비밀이 없었다. 또래 친구들과 잡힌 일정에 정작 당사자인 버들은 시큰둥했으나, 황 대표가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모임에서 만날 친구들 명단도 받아 갔다. 술자리였으면 당연히 못 나가게 했을 텐데 훤한 대낮에 점심을 먹는 게 다라니 안심이 됐다.

“유버들.”

“응?”

주문한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그 잠깐 동안, 버들의 핸드폰은 바빴다. 황 대표에게서 연락이 줄기차게 들어오는 중이었다. 음식은 뭘 시켰으며, 옆에 누가 앉았으며……. 옆에 앉아 있던 정민이 버들을 팔꿈치로 툭, 건드렸다.

“누구야?”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궁금하니 결국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들이 조그맣게 “애인.” 하고 속삭였다.

“뭐? 애인? 너 그 사람이랑 사귀어?”

조그맣게 속삭인 보람이 없다. 펄쩍 뛰며 크게 나불거린 정민이 때문에 테이블 전체에 소문이 나고야 말았다. 덩치 큰 사내 녀석들이 심각해졌다. 애인이라고? 애인한테 지금 그렇게 10분 간격으로 연락이 들어오고 있다는 거야? 집착하는 수준이 거의 스토커 같은데? 그게 자랑거리인 버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막상 소매만 걷어도 오늘 아침 황 대표가 만들어 놓은 자국들이 가득했다. 그게 좋다.

한창 어린 청춘들답게, 풋내 나는 연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자리에서 버들의 눈빛이 제일 초롱초롱 반짝였다. 황 대표와 함께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거 내가 살게.”

버들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니야. 우리 회비 걷은 거 있어.”

“……여기 계산하라고 카드 주셨거든.”

“누가? 애인이?”

버들이 응, 대답했다.

“우와. 연상이라 그랬나? 역시 다르다.”

여기저기서 황 대표를 칭찬하자 버들의 코 평수가 넓어졌다.

“다른 거 더 먹어도 돼.”

“진짜? 그래도 된대?”

“응. 많이 먹고 오라셨어.”

“그럼 우리 여기서 디저트도 먹고 가자.”

정민의 친구들 모임에서 버들이 단숨에 융화됐다. 먹성 좋은 시기라 디저트를 종류별로 시켜 거의 초토화를 냈다. 돈이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니냐며 뒤늦게 꼼질꼼질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버들이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계산 후 카드를 건네받은 버들의 표정이 밝다.

“네 애인한테, 아니. 누님한테 잘 먹었다고 말씀드려.”

감사의 인사가 대신 버들에게 쏟아졌다. 버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힐긋, 정민의 눈치도 봤다.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더운 공기가 훅 끼친다. 소화도 시킬 겸 노래방에 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버들이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버들아.

“네?”

-그 레스토랑 나와서…….

무리들 틈에서 슬그머니 벗어나려다가 딱 걸렸다.

“왜?”

“어?”

정민의 친구들이 버들을 붙잡았다.

“애인이 지금 데리러 와서.”

“누님보고 노래방에 같이 가자고 말해 봐!”

“어? 근처에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하셔서. 또 바쁘시기도 하고.”

“와. 차도 있으셔?”

온갖 부러움에 버들이 수줍어했다. 서둘러 자리를 뜬다고 저를 째려보는 정민에게 버들이 대충 손을 흔들었다. 버들이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대표님.”

-유버들 씨.

“네?”

-연상의 누님, 만나시나 봐요?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고스란히 들린 모양이었다. 버들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픽, 웃는 황 대표의 낮은 웃음소리에 깃털이 살에 닿아 스치는 것처럼 온몸이 다 간지러웠다.

-사거리 쪽에 은행 있어.

“아. 보여요.”

-거기 뒤쪽 골목으로 들어와.

“빨리 갈게요.”

“넘어지니까 달리지 말고.”

걱정스레 당부하는 황 대표에게 네, 착실하게 대답해 놓고선 버들이 걸음을 서둘렀다. 미리 마중 나와 있는 황 대표의 차에 올라탄 버들의 얼굴이 방실방실하다. 종알거리며 수다 떨기 시작한 버들의 안전벨트를 황 대표가 대신 채웠다.

* * *

황 대표와 버들이 나란히 앉았다. 대리석 바닥이 시원하다. 테이블 위에는 볼펜과 종이가 각각 주어졌다. 황 대표가 버들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친구들과 만나고 온 버들이 뭘 듣고, 뭘 보고 왔는지 대뜸 애칭을 정하자고 했다. 애칭 같은 거에 황 대표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싶어 하는, 아홉 살 어린 애인을 위해 잠자코 머리를 맞대줬다. 황 대표의 종이는 30분 째 깨끗했고, 버들의 종이는 썼다 지웠다 했던 통에 지저분해졌다. 버들이 코를 훌쩍거렸다.

“대표님.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응.”

황 대표의 대답이 산뜻했다. 버들이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바닥에 앉아 있던 황 대표가 어물쩍 소파에 올라갔다. 곱게 자란 탓인지 딱딱한 바닥에 오래 못 앉아 있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버들이 고개를 뒤돌려 황 대표를 바라봤다.

“자기?”

버들의 눈이 꼭 호수 같았다.

“대표님. 자기, 어때요?”

갑자기 황 대표가 종이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자기.”

가타부타 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황 대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게 된 버들이 눈을 깜박거렸다. 3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알아서 1층으로 내려왔다. 저거 타고 올라오라는 소린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버들이 3층으로 올라갔다. 황 대표는 침실에 있었다.

“대표님.”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황 대표가 문 앞에 서 있는 버들을 바라봤다.

“너 바지도 안 입고 나한테 자기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턱을 잡아당겨 버들이 제 모습을 내려다봤다. 황 대표 사이즈인 티셔츠 기장이 허벅지 중반까지 내려와 있다. 일부러 바지를 안 입은 게 아니었다. 버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파자마 바지가 현재 건조기에 들어가 있었다. 그걸 황 대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버들의 파자마를 건조기에 넣어 준 게 황 대표였으니까 말이다.

버들이 황 대표의 무릎 위에 앉았다. 이러면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거나, 등을 안아 주는데 이상하게 화가 난 얼굴로 황 대표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주눅 들지 않고 버들이 그런 황 대표를 빤히 쳐다봤다.

“자기.”

황 대표가 버들을 침대 아래에 내려놨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버들이 고개를 뒤돌려 황 대표를 쳐다봤다. 왜 그러시지? 버들이 다시 황 대표의 무릎 위에 앉아 목에 팔을 둘렀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서로를 지그시 응시했다.

“대표님.”

“응.”

말없이 있길 잠깐. 버들이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대표님. 제가 자기라고 하면 부끄러워요?”

“……내가 미쳤어?”

“안 부끄러워요?”

“어.”

그러시구나. 귀는 빨개 가지고.

버들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황 대표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윽고 제 옆구리를 파고드는 버들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꼭 껴안은 채 두 사람이 이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먼저 잠에서 깬 건 버들이었다. 잠들어 있는 황 대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버들의 눈에 애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예쁘고, 잘생기고, 멋지고, 귀엽고 혼자서 다 해 먹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니. 버들의 입가가 서서히 호선을 그렸다. 황 대표의 앞머리를 갈라 드러난 이마에 꾹 입술을 찍었다. 그 순간 버들이 황 대표의 애칭을 결정했다.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커튼이 나부꼈다. 황 대표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버들이 냉큼 무릎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버들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황 대표의 커다란 손이 버들의 허벅지 측면을 슬쩍슬쩍 매만졌다. 간지러운지 버들이 꼼질거렸다.

“대표님.”

“응.”

산발이 된 버들의 머리를 황 대표가 정리해 줬다.

“애칭, 제가 마음대로 지어서 불러도 돼요?”

“허락은 뭐 하러 맡아. 어차피 너 마음대로 지어서 부를 거잖아.”

“응.”

웃으면서 마음대로 반말까지 한 버들을 눕혀 놓고 황 대표가 목덜미에 자국을 만들었다. 밖에 나가서 애칭으로 서로를 부를 순 없었다. 사귄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밖에선 황 대표가 부르는 버들은 ‘유버들 씨.’였고, 버들이 부르는 황 대표는 ‘황 대표님.’이었다. 고심해서 정한 애칭은 각각 핸드폰에 저장되었다. 앞으로 버들이 전화가 올 때마다 황 대표의 액정에는 ‘자기’라고 뜨게 됐다.

연애가 처음이고, 애칭을 정해 본 게 처음인 버들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져 찾아간 게 제 넷째 형이었다. 전날 밤, 술을 진탕 퍼마신 모양이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겨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제 형이 원하는 대로 꿀물을 타다 준 버들이 옆에 앉았다.

“웬일이냐.”

“대표님이 데려다줬어.”

“아직도 너희 둘이 안 헤어졌어?”

“겨울이 형. 내가 뭐 보여 줄까?”

“뭐.”

“나 자랑할 거 있어서…….”

버들의 나긋한 입매를 보며 겨울은 황 대표와 필히 관련된 일이란 걸 알아차렸다. 마음에 안 들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 같은 거 달린 사내놈이랑 연애하는 네가 나 아니면 어딜 가서 자랑도 하고 그러겠냐.

겨울이 너그러워진 태도로 버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리고 보여 줄 거 있으면 빨리 보여 달라고 적극성을 띠며 호응했다.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을 버들이 겨울에게 내밀었다. 가뜩이나 숙취로 속이 좋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버들이 정한 황 대표의 애칭에 겨울이 진실로 토할 뻔했다. ‘마이 큐티 엔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는 그 덩치가 큐티 엔젤로 보이디?

맹렬하게 퍼부어진 겨울의 비난에 버들이 시무룩해졌다.

술기운을 못 이기고 곯아떨어졌던 겨울이 느지막하게 잠에서 깼다. 해장국을 들이켜며 겨울이 아저씨 같은 감탄사를 줄줄이 내뱉었다. 씻고 나니까 어느 정도 제정신이 차려진다. 겨울이 오랜만에 만난 제 막냇동생을 옆구리에 끼우고 본격적으로 황 대표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불나불 입이 쉬지 않는다. 회의에서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린 황 대표의 모습들을 과장을 약간 섞어 하나씩 나열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황정우, 진짜 싸가지 없지 않냐?”

버들이 못 들은 척했다.

“어? 어떻게 생각해?”

“황정우가 세상에 어디 한둘이야?”

“세상에 황정우란 이름이 한둘은 아니지. 근데 너희 집에 사는 정우는 한 명이잖아.”

콕 짚어 오는 겨울의 태세에 버들이 딴청을 피웠다.

“넌 같이 사니까 더 잘 알고 있겠네. 황 대표, 성격 진짜 이상하지?”

“…….”

“나니까 걔랑 친구도 해 주고 사업도 같이 해 주는 거지.”

“…….”

“너는 황 대표 어디가 좋아서 사귀는데?”

“…….”

“솔직히 얼굴이랑 키랑 몸이랑 가진 돈 빼면 황 대표, 볼 거 없지 않냐?”

입술에 힘을 바짝 준 버들의 턱 아래에 작은 호두가 생겼다. 제 소중한 대표님을 물고 뜯고 씹는 형한테 섭섭해지고야 말았다. 버들이 발끈했다.

“우리 집 정우가 싸가지 없고 성격은 좀 이상하지만, 나도 같이 싸가지 없고 성격 이상하니까 괜찮아.”

유 대표가 뒷목을 잡았다.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던 황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한의원이었다. 버들의 모든 병원 스케줄에 무조건 동반하다 보니 차트엔 보호자 명분으로 황 대표의 연락처가 같이 적혀 있었다. 서재를 나선 황 대표의 얼굴에 웃음이 서려 있다. 한만하게 누워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던 버들을 황 대표가 일으켜 앉혔다.

“버들아.”

“네?”

통화 내용이 떠오르자 자꾸만 웃음이 새 나온다. 시끄러운 텔레비전을 껐다. 한순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더욱더 집중이 됐다.

“너 이번에 살찌는 한약 새로 지을 때…… 정력 좋아지는 것도 넣어 달라고 했어?”

고개를 끄덕이는 버들이 예상과 달리 당당하다.

“왜. 정력 좋아지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

황 대표가 앞을 만져 주면 몸 전체가 붕 떠 버릴 정도로 좋은데 체력 탓인지 오래 버티는 게 힘이 들었다. 사정을 하고 나면 살짝 스치는 황 대표의 손길마저 강한 자극이 되어 미칠 것 같아 밀어내게 된다. 정력이 세지면 사출하기 전까지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맥을 짚을 때를 노려 버들이 한의사에게 직접 요구했던 거였다.

“나 좋으라고 먹는 거예요.”

“너 좋으라고 먹는 거야?”

“네.”

계속 황 대표가 웃었다.

“어때. 먹어 보니까 몸에 맞아?”

갸웃거리는 얼굴로 버들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몸에 잘 맞는지 볼까?”

나지막한 톤으로 유혹한 황 대표의 등에 버들이 팔을 둘렀다. 침대까지 황 대표가 버들을 안아서 데려왔다. 뒤적거려 본 베개 밑이 텅 비어 있다. 서랍 역시 마찬가지였다. 콘돔이 없단 걸 알아차린 황 대표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버들아. 다음에…….”

버들이 황 대표의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키스했다. 버들에 의해 황 대표가 점점 침대에 눕혀졌다. 황 대표의 몸 위에 올라탄 버들이 천천히 옷을 벗겼다. 근사한 황 대표의 근육을 만지작거리며 흥분한 버들의 호흡이 달떴다. 터질 것처럼 부푼 황 대표의 성기를 바라보니 기분이 아찔해진다. 짙은 색깔과 핏줄 때문인지 꺼덕거릴 때마다 위협적이었다. 황 대표의 어깨와 가슴 주변으로 버들의 입술이 부딪혔다. 여전히 어설픈 애무였지만 애정만큼은 두텁게 전해졌다. 콘돔이 없는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위치가 바뀌었다. 버들의 골반을 붙잡은 황 대표가 제 쪽으로 바짝 잡아당겼다. 자꾸 다리를 오므리려는 버들의 발목을 붙잡아 그러지 못하도록 고정했다. 허벅지 안쪽을 아프지 않은 세기로 핥고 깨물던 황 대표가 버들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끔 했다. 버들의 아래가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정성껏 풀어 줬다.

꿰뚫듯 날카롭게 삽입한 황 대표가 웃음을 터트렸다.

“버들아.”

버들은 대답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정력 좋아지는 한약 왜 먹었어?”

엎드려 있는 버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황 대표가 버들의 앞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삽입한 즉시 버들이 사정했단 걸 알아차렸다. 역시나. 손으로 만져 확인해 본 버들의 배꼽 주변이 온통 끈적거린다.

버들의 어깨뼈를 황 대표가 자근자근 씹었다. ……흐으. 앓던 버들이 힘이 풀리면서 풀썩 무너져 내렸다. 미끈거리는 성기를 잡고 발기시키려 들자 버들의 아랫배가 바짝 수축했다. 그만큼 뒤도 조였다. 황 대표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아. 싫어.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버들이 황 대표의 손목을 잡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흔드는 황 대표의 손짓에 주변에는 젖은 소리만이 찰박하게 울렸다.

몸을 낮춰 황 대표가 버들의 귓불을 척척하게 핥았다. 황 대표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버들의 하얀 엉덩이가 같이 흔들렸다. 황 대표가 버들의 팔을 잡아 힘을 줬다. 가뜩이나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무릎으로 일어나게 된 버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한 팔로는 가슴을, 다른 한 팔로는 허벅지 사이를 못살게 굴면서 계속해서 황 대표가 버들을 몰아붙였다.

“버들아. 너 여기 진짜 예쁜 거 알아?”

열매처럼 동그랗게 맺혀 있는 음낭과 회음부를 번갈아 가며 황 대표가 손으로 주물렀다.

“여기 본 적 있어?”

버들을 눕혀 오금을 짚었다. 다리가 위로 접히면서 회음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통통하고 뽀얗다. 반복해 물어 온 황 대표의 질문에 버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흥분에 젖어 거칠게 갈리는 낮은 황 대표의 음색에 배 속이 오싹했다.

“한 번 볼래?”

삽입한 채로 버들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린 황 대표가 거울 쪽으로 향했다. 혹시나 버들의 몸에 무리가 갈까 봐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각도가 깊숙이 파고 들 수밖에 없는 자세라 버들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 응. ……아.

“버들아. 눈 떠.”

황 대표의 요구에 버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겨우 눈을 떴다. 거울 속에 접합된 지점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시각적 자극에도 버들은 민감했다. 손도 대지 않은 상황에서 버들의 성기에서 울컥, 정액이 토해졌다. 본인도 놀랐는지 새빨개진 얼굴로 버들이 덜덜 떨었다.

황 대표가 다시 침대에 버들을 눕혔다. 울기 시작한 버들을 달래기 위해 황 대표가 버들의 볼과 턱 아래에 입을 맞췄다. 머리와 가슴을 만져 주는 손길이 덧없이 다정하다. 하지만 허리 아래는 여전히 성이 난 채였다. 박아 넣는 힘과 속도가 빨라졌다. 절정에 이어 또다시 절정이 찾아왔다. 혈관 전체로 오르가즘이 절절하게 퍼졌다.

호흡이 흐트러져 너무 힘들어하는 버들을 위해 성기를 뺀 황 대표의 이마에 인상이 써졌다. 성이 난 황 대표의 성기가 박을 곳을 찾아 꺼덕거렸다.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려는데 버들의 울음소리가 냅다 더 커졌다. 넣으면 넣는다고 울고. 빼면 뺀다고 버들이 울었다. 어차피 울리는 게 똑같다면……. 으응! 아랫배를 작살로 꿰뚫을 것처럼 들어온 황 대표의 몸에 놀란 버들이 잔기침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팔을 뻗어 황 대표의 목을 안았다. 지금 이 순간 버들의 세상은 황 대표 그 자체였다. 황 대표의 숨소리, 황 대표의 손끝, 황 대표의 허벅지……. 입술이 포개지며 서로의 혀끝이 녹아들었다. 황 대표가 감도 높은 버들의 몸을 씹어 먹어 버릴 것처럼 재차 탐했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침이 밝았다. 날을 샌 거나 다름없었다. 황 대표가 움직이는 기척에 버들이 눈을 떴다. 마주친 시선에 버들이 흠칫거렸다. 그럴 만했다. 버들의 온몸이 물고 빨아 댔던 통에 울긋불긋한 꽃밭이 따로 없었다. 누운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버들이 황 대표의 볼을 어루만졌다. 나른한 공기가 비눗방울이 되어 주변에 떠다니고 있는 것 같다.

“대표님. 속눈썹 진짜 예뻐요.”

황 대표의 입가가 부드러워졌다.

“힘들지 않았어?”

힘들게 해 놓고 힘들지 않았냐고 황 대표가 물었다. 퉁퉁 부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버들이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씻을까?”

“네.”

“잠깐만 있어.”

황 대표가 욕조에 물을 틀어 놓고 다시 돌아왔다. 황 대표의 손을 잡고 버들이 무릎으로 일어났다. 아! 순간 번개가 친 것처럼 서늘한 감각에 버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허벅지 사이로 무언가 주룩 흘러내렸다.

그걸 황 대표와 버들이 같이 보게 됐다. 버들의 허벅지를 지저분하게 적신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차린 황 대표가 사색이 됐다.

지난밤, 콘돔 없이 수차례 섹스를 했다. 지쳐서 끝내 축 늘어져 버린 버들의 몸을 품에 안고 있다가 잠깐만 쉬려고 눈을 감았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어 버렸다. 뒤늦게 뒤처리를 해 주지 못한 게 떠올랐다. 이러면 배앓이 한다고 들었다. 당황한 황 대표의 속도 모르고 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흐르지?”

의아한 어조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버들이 제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 황 대표의 정액을 도로 집어넣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모습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퍼진 황 대표의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당장 제 꼴통을 들쳐 안고서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이 찬 욕조에 버들을 앉혀 놓았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건네주고, 머리도 손수 감겨 줬다.

황 대표까지 욕조에 들어가자 물이 넘쳤다. 버들의 근육이 풀릴 수 있도록 향 좋은 거품도 내 주었다. 버들이 마주보며 황 대표의 무릎에 앉았다. 허리를 매만져 주던 황 대표의 손이 골 사이로 미끄러졌다. 살짝 만져 본 버들의 좁은 근육은 아직 나긋나긋하게 풀어져 있는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남은 정액을 긁어내고 있는데 버들이 콧등으로 자꾸만 신음을 내뱉었다. 욕실 특성상 작은 소리도 크게 메아리쳤다. 미치겠다. 숨은 점차 가빠지고 앞은 바짝 세운 뒤다. 민감하고 예민한 버들은 야했고, 또 기특했다.

“버들아.”

저를 부르는 황 대표의 목소리에 버들이 눈을 떴다.

“지금…… 느끼면 안 돼.”

“왜요?”

“느끼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버들이 다시 눈을 감았다. 감도 높은 버들의 몸에 황 대표도 덩달아 흥분했다. 버들의 등에 팔을 두른 황 대표가 힘을 줬다. 코앞까지 버들의 몸이 딸려 왔다. 버들의 수술 흉터부터 유두까지 황 대표가 자잘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걸로 갈증이 풀리지 않는지 황 대표가 버들을 번쩍 안아 들었다. 욕실 선반 위를 전부 쓸어버리고 거기에 버들을 앉혔다. 몸을 낮춰 버들의 귀두를 입에 넣었다.

하아……. 버들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젖은 황 대표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갔다. 뜨거운 물에 이미 노곤하게 풀린 몸이었다. 버들이 사정 후 풀썩 무너져 내렸다. 아직 남아 있을 정액을 긁어내기 위해 그런 버들을 안아서 황 대표가 샤워기 앞에 섰다. 어제부터 오늘아침까지. 버들의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을 게 뻔했다. 파자마로 갈아입힌 버들을 황 대표가 재웠다.

정오가 지나서 버들이 잠에서 깼다. 허리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황 대표의 팔을 낑낑거리며 치웠다.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 버들의 머리가 산발이다. 휙, 시트를 걷었다. 사귀는 사이니까 황 대표의 몸은 곧 제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은 어디에 입을 맞춰 보지? 매일 하는 같은 고민이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 황 대표의 복사뼈에 버들이 뽀뽀했다. 아직 잠결이라서 눈가가 가물가물했다. 황 대표의 팔을 베고 버들이 다시 잠들었다.

* * *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계절이 언제였냐는 듯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담벼락이 허전해졌지만, 봄이 되면 다시 꽃봉오리가 피어날 테니 아쉽지 않았다. 사계절 내내 집은 그림 같았다. 하얀 눈에 뒤덮인 풍경을 내다보며 황 대표가 커피를 마셨다. 크리스마스 때에 맞춰 거실에는 커다란 트리를 들여놓았다. 버들이 시키는 대로 황 대표가 작은 전구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자기 일에 전문적으로 집중한 사람은 섹시하다고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 같다. 그땐 개소리인 줄 알았더니 사실이었다. 작업실에서 조각하는 버들을 바라보며 황 대표가 꼬박 하루를 보냈다. 버들의 뒤에 있는 창문 밖으로 또다시 눈발이 떠다녔다.

손을 씻고 나온 버들을 기다렸다가 황 대표가 대신 로션을 듬뿍 발라 주었다. 미끈거리며 얽히는 손가락이 간질간질하다. 조각하면서 뭔가 조언을 들어야 할 게 있는지 스승님 댁에 다녀오겠단 버들을 황 대표가 붙잡았다. 좀 더 두꺼운 겉옷으로 바꿔 입게 한 뒤 목도리도 더 신경 써서 둘러 줬다. 장갑을 껴서 불편할 텐데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이니셜이 새겨진 두 개의 목도리와 장갑은 황 대표가 특별히 커스텀을 의뢰한 제품이었다. 걷는 대로 눈 위에 발자국이 새겨졌다.

시리기만 했던 겨울이 로맨틱해졌다.

* * *

봄이 될 때 즈음 버들이 쓰러졌다.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우선 검사가 진행됐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초조한 황 대표의 옆에서 버들은 태연했다. 아무 데도 안 간다는 말을 버들이 지켰다. 쓰러진 건 심장 때문이 아니라 빈혈 탓이었다. 황 대표가 좀 더 버들의 식사를 신경 썼다.

주룩주룩, 봄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면서 화창하게 날씨가 갰다. 시끄럽게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황 대표가 눈을 떴다. 배꼽을 만지는 버들의 잠버릇이 여전하나, 지금은 자기 배꼽을 만지는 게 아니라 황 대표의 배꼽을 만졌다. 그런 버들의 손톱에 입을 맞춘 뒤 황 대표가 씻고 나왔다. 버들이 깰까 봐 황 대표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버들의 파자마 단추를 하나, 둘 풀어 내렸다. 일주일 주기로 버들의 몸무게를 재고 있는 중이다. 체중계를 보면 버들이 짜증 내고 도망 다니는 통에 이렇게 자고 있을 때가 아니면 몸무게를 재는 게 불가능했다. 볼에 뽀뽀하자 잠결에 버들이 몸을 휙 돌려 버렸다.

상하의 파자마를 벗긴 뒤 무릎 뒤에 팔을 넣어 안아 올리자 깊이 잠들어 있는 버들의 팔과 다리가 축 처졌다. 황 대표가 그대로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둘이 합한 몸무게에서 제 체중을 빼니 500g 정도 차이가 난다. 한 달째 같은 몸무게가 유지되고 있으니 체중이 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좋아하던 황 대표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버들을 침대로 데려갔다.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500g이 어디에 쪘을까. 버들의 어깨, 팔, 아랫배에 황 대표의 입술이 가만가만 스쳤다. 연애하자고 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더니 착실하게 버들이 그걸 실행하고 있었다.

파자마를 입혀 주고 나자 버들의 눈꺼풀이 뜨였다.

“버들아.”

귓가에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음성으로 버들은 아침이 된 걸 알아차렸다. 팔을 뻗자 따뜻한 포옹으로 이어졌다. 지칠 줄 모르고 서로의 눈을 하염없이 마주 봤다. 촉촉한 둘의 눈동자 속에는 연인으로서 앞으로 함께할 무수한 시간들이 녹아 있었다. 어떤 날은 다정한 약속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날은 격한 애정으로 쓸데없이 피우는 고집을 대신하면서, 어떤 날은 어리석게 다투기도 하면서, 어떤 날은 달콤하게 화해를 해 가면서, 어떤 날은 신음에 섞어 사랑을 속삭이면서.

“대표님.”

“응.”

“저 좋아해요?”

“좋아해.”

꼭 완벽한 해피엔드가 예고된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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