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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둥근 달 (23/24)

휘영청, 둥근 달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황 대표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들어간 지 꽤 되었으니 지금쯤 나올 때가 됐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침 타이밍 좋게 달칵, 욕실 문이 열렸다. 시야를 방해하는 후덥지근한 수증기와 함께 달콤한 꽃향기가 밀려든다. 뜨거운 물에 씻어서인지 마른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른한 기운을 내는 버들을 한 팔로 빠르게 낚아챈 황 대표는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평소 시간 낭비하는 걸 가장 질색하는 능력 있는 남자가 욕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몇 분을 기다렸다가 행한 일이란, 제 애인의 얼굴에 조심조심 로션을 발라 주는 거였다. 그의 본래 성질머리가 어떤지 아는 최측근이 목격했다면 기함을 토하고도 남았을 거다. 실제 사례가 발생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버들이 데리고. 괜찮지?」

황 대표는 이른 퇴근 후 버들을 데리고 근교에 나가 저녁 먹잔 유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 안 되는 이유를 유 대표가 물었다.

「집에서 할 거 있어.」

「급한 거 아니면 나중으로 미뤄.」

「급한 거야.」

「그게 뭔데?」

제 친구를 향해 슬쩍 보낸 황 대표의 눈길은 지극히 건조했다.

「버들이 손톱 깎아 줘야 돼.」

차 키를 챙겨 든 황 대표가 무심히 읊은 말에, 뭐 못 들은 말을 들은 것처럼 경악에 찬 유 대표가 입을 가렸다.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 후 유 대표는 퇴근 때가 다가오면 사색이 되어 한동안 황 대표를 피해 다녔었다.

시간 낭비하는 걸 질색하는 황 대표지만 버들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뭐가 됐든 중요한 일정으로 들어간다. 버들이 혼자 충분히 해낼 수 있단 걸 알지만,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고 싶다.

행여나 이런 제 행동에 오해가 생길까봐 덧붙이는 말인데 그는 유 대표가 하는 것처럼 맥락 없는 과잉보호를 하는 게 결단코 아니었다. 버들의 손톱 상태를 일주일에 한 번 확인하고 깎아 주는 건 반드시 필요에 의한 감시라고 할 수 있다.

유 대표에게 물었을 때 여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데, 간혹 과할 정도로 자신의 손톱을 바짝 깎아 버리는 버들을 보며 황 대표는 자신이 날카롭게 퍼부었던 힐난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버들의 손끝이 아플 정도로 붉어지는 걸 방지해야 할 책임이 제게는 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황 대표는 눈을 찡긋찡긋 찌푸리며 제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알아차리곤 버들을 번쩍 들어 아예 화장대 위에 앉혀 버렸다. 버들의 다리 사이에 단단한 몸이 파고든다. 이로써 도망칠 수 있는 길목을 완전히 차단당한 셈이다. 그게 불만인지 조그맣게 탄식을 내뱉은 버들의 턱 끝을 황 대표가 들어 올렸다. 은은하게 맡아지는 황 대표의 스킨향이 좋아 버들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버들은 아팠던 어렸을 적, 병원에서 제 넷째 형에게 배운 ‘터프한 남자들이 스킨 바르는 법’에 크나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스킨이건 로션이건 손바닥에 덜어 세수하듯 아주 그냥 벅벅 문질러 버린다. 그럼 여린 살결이 빨갛게 달아오르는데 그걸 보고 버들은 매우 뿌듯해했고, 황 대표는 걱정이 됐다.

심장 문제로 입원이 잦았던 데다 면역력까지 약해 당시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버들의 세상은 가족을 중심으로 성벽이 세워졌다. 안정적이면서 폐쇄적이었단 의미다. 또래 아이들과 원만한 교우 관계가 형성되었더라면 습득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한 기회가 극히 적었다.

그러다 보니 버들은 형들이 일부러 놀리려고 꺼낸 농담이나, 검사에 지쳐 병실에서 늘어진 막냇동생을 위로한답시고 유 대표가 ‘터프한 남자는 말이지.’란 주제로 가르쳐 준 허무맹랑한 것들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다. 자기 결혼식에 와 줄 하객도 가족 말고는 없을 거라고 체념하던 버들의 조그마한 세상은 첫사랑을 통해 예쁘게 넓혀지고 있다.

“…….”

“…….”

버들의 말랑말랑한 볼에 황 대표의 손가락이 둥근 원을 그리며 로션을 꼼꼼하게 발라 주었다. 드디어 화장대에서 내려올 수 있게 된 버들이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그런 버들의 뒤를 황 대표가 선선히 따라 걸었다. 기대가 만발한 버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황 대표와 맞게 되는 명절을 제가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유는 바로 커플 한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사이즈만 다를 뿐 디자인과 색이 모두 똑같은 한복 두 벌이 나란히 걸려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새로 맞춘 것이다. 황 대표가 셔츠를 벗었다. 선명하게 갈라진 등 근육을 힐끔거리던 버들이 대체 뭐에 부끄러워진 것인지 갑자기 제 한복을 주섬주섬 챙기고선 옆방으로 숨어들었다.

먼저 한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황 대표가 버들을 찾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이제 막 버선을 신기 시작한 버들이 흠칫거렸다. 가늘고 긴 맨다리에 신겨진 버선이 색정적인 상상을 유발한다.

버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었다. 저고리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저고리는 어느 틈에 황 대표의 손에 가 있었다. 황 대표가 턱을 까닥였다. 그 의미대로 버들이 거리를 좁혀 다가갔다. 속도가 느린 제 어린 애인을 위해 황 대표가 어깨 뒤로 저고리를 넘겨 착의를 도와주었다. 옆구리를 슬쩍 문지르는 등 사리사욕을 충분히 채우면서 말이다.

서로를 마주 봤다. 예고 없이 제게 꽂힌 황 대표의 눈웃음에 버들은 문득 발바닥이 간지러워 버선을 벗어 버리고 싶어졌다. 붉어진 뺨을 감추기 위해 요리조리 부산히 움직이는 버들에게서 황 대표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른다.

이번 선택도 옳았다. 뭘 구매하든지 간에 제 어린 남자 친구한테 맞추면 결과가 만족스럽다. 파스텔 빛깔이 버들의 흰 피부와 잘 어울린다. 입술도 더욱 붉어 보이고.

과거에 태어났어도 버들은 무척 예뻤을 거다. 해바라기 한 송이와 함께 제 앞에 불쑥 나타나 연모해요, 사모해요, 고백했을 어린 도령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고 제가 모진 언성으로 내치거나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그럼에도 씩씩한 제 꼴통은 포기하지 않고 아등바등 담장도 넘었을 테지.

“너 담장은 넘지 마라. 다쳐.”

뭔 소리인가 싶은지 버들이 큰 눈을 슴벅거렸다.

“대표님. 새신랑 같아요.”

“너도 새신랑 같아.”

새신랑 둘이서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이 푸릇하다. 하얗게 덩어리 진 큰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간다. 돌연 멈춰 선 버들이 황 대표를 올려다봤다. 눈썹이 제법 다부지다.

“오늘 밤, 약속한 거 잊으시면 안 돼요.”

황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걸어가며 약속한 게 있다. 바로 황 대표 옷고름을 버들이 푸는 건데 그 약속 때문에 버들은 한복 입는 명절을 달력에 체크까지 해 가며 기다린 것이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버들이 소매를 쭉쭉 걷어 올렸다. 황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추석이니 둘이서 간단하게 송편만 만들어 먹을 예정이었으나 어제부로 냉장고가 가득하게 찼다. 마을에서 가장 어린 버들과 황 대표를 위해 어르신들이 손 크게 음식을 보내왔다. 잡채, 갈비, 전, 튀김은 물론이고 나물도 종류별로 다양하다. 답례로 황 대표가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최고급 한우를 선물했다.

버들이 식탁 위에 송편 재료를 주르륵 나열했다. 멥쌀가루, 멥쌀가루에 섞어 색을 낼 석류 가루, 단호박 가루, 쑥 가루, 소에 넣을 통깨, 꿀, 소금……. 자신이 따로 적어 온 조리법을 슬쩍 꺼내 커닝하는 동안 단 한 번의 막힘없이 알아서 척척 잘하는 버들에게 황 대표는 신기하단 듯 물었다.

“송편 만들어 본 적 있어?”

“네. 많아요.”

유 회장이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버들을 포함해 그 집 여섯 형제들은 고스란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제가 뜨거운 물을 조금씩 넣을 테니까 반죽하시면 돼요.”

“응.”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버들의 세 끼를 전적으로 도맡게 되어 할 수 있는 요리 가짓수가 늘었다고 생각했건만 버들의 앞에선 미미한 수준이다. 요리로 자만을 떠는 건, 살아 있는 전복을 여태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다는 유 대표 앞에서만 그래야겠다.

버들이 멥쌀가루에 조금씩 뜨거운 물을 나눠 넣으면, 황 대표가 시키는 대로 반죽했다. 석류 가루가 섞인 반죽 색이 변했다. 버들은 분홍색이 된 반죽을 뜯어 소를 넣고 빚었다. 동그랗게 모양이 잡히자 이쑤시개로 가운데를 눌러 길쭉하게 홈을 냈다.

“대표님. 이거 보세요.”

결과물을 손바닥에 올려 얼른 황 대표에게 보여줬다.

“이거 복숭아예요.”

“너 엉덩이 같은데.”

“…….”

버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카락에 미처 가려지지 못한 볼이 발긋하다.

“…….”

“…….”

버들을 따라 황 대표도 반죽을 뜯었다. 소를 넣고 빚는 과정에서 반죽이 다 찢어져 엉망이 됐다. 망한 송편을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반죽을 뜯었다. 시행과 착오가 번갈아 가며 쌓인다. 얇게도 해 보고, 두껍게도 해 보지만 대체 뭐가 문제인지 결국엔 소가 삐죽이 터져 나와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황 대표의 커다란 손에 눌려 빚어지는 송편은 난처할 지경이었고, 손재주가 좋은 버들이 빚은 송편은 감탄이 나올 만큼 앙증맞다.

“이거 다 버려야겠다.”

황 대표가 인상을 썼다.

“왜요?”

“못났잖아.”

버들이 작게 웃었다.

“괜찮아요. 대표님이 만든 건 제가 다 먹을 거예요.”

휙 휘어진 눈가가 유순하다.

버들은 다시 야무진 손길로 동글동글,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송편은 안중에도 없고 황 대표가 버들에게 집중했다. 버들의 체형이야말로 곡선으로만 이뤄진 것 같다. 엉덩이도 둥글고, 어깨 끝도 둥글고, 콧방울도 둥글고, 귓불도 둥글고, 속눈썹도 둥글게 휘듯 말려 있고.

황 대표는 허리를 낮춰 버들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도가 지나친 청순함은 문제다. 버들의 사회성을 길러 주고 싶은데 반대로 저만 볼 수 있게 감춰 두고 싶어지니.

버들의 입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니 신경이 바짝 선다. 뜯은 반죽을 바로 빚지 않고 버들에게 보여 줬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네.”

“소는 이 정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덜어 내세요.”

“됐어?”

“너무 덜었어요.”

“지금은?”

“으음.”

코끝에 하얀 가루가 묻은 것도 모르고 버들이 진지하다.

“네. 적당해요.”

남자 친구랑 커플 한복을 입고 송편 빚는 경험은 둘 다 처음이었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 황 대표의 입매가 온화해졌다. 버들에게 일일이 허락 맡아 가며 만든 건 그나마 송편처럼 생겼다.

송편이 쪄지는 동안 뒷정리를 했다. 넌 가만히 있으라는 황 대표의 말을 듣지 않고 버들이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이제 다 된 거야?”

“참기름 발라야 돼요.”

그렇게 윤기가 도는 송편이 완성됐다. 같이 손을 씻고 나와 식탁에 앉았다. 황 대표가 버들의 소매를 다시 바르게 내려 주었다. 제일 예쁜 송편을 골라 황 대표에게 먹여 준 버들이 황 대표의 턱 근육이 움직이는 걸 초조하게 응시했다. 송편을 삼킨 황 대표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맛있네.”

“……맛있어요?”

잘못 들은 거일 수도 있으니 버들이 작게 되물었다.

“응.”

그제야 버들은 모든 긴장을 놓았다.

황 대표는 자신이 제일 처음으로 빚은 송편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걸 먹으려고 하는 버들을 급히 만류했다.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결과물을 찾아 버들에게 먹여 줬다. 원래는 요리 선생을 불러다 미리 송편 빚는 걸 연습해 볼 작정이었으나 요 근래 회의와 야근이 잦았던 탓에 도통 짬이 나지 않았다.

“……맛없지?”

“맛있어요.”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송편이 고소하다. 잡채를 데우고, 전도 몇 개 곁들여 식사했다. 얼마 먹지도 않았으면서 버들이 금방 배부르다며 식탁에 엎드려 버린다. 양치 후 햇살을 받으며 티타임을 가졌다. 버들은 뜨거운 찻잔을 조심히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 황 대표가 버들을 위해 준비한 꽃차는 카페인이 없는 금화규 차다.

“그래서 제가 겨울이 형 방학 숙제 대신 해 준 적 많아요. 특히 포스터 그리기 이런 거.”

구겨진 버들의 한복 어깨선을 정리해 주며 황 대표가 언짢게 인상을 썼다.

“힘들게 뭐 하러 해 줬어.”

“재밌었어요. 제가 바탕 칠하면 형이 포스터 글귀 칠하고. 둘이 하니까 숙제 금방 끝났어요.”

“대가는 받았어?”

“네. 숙제 대신 해 주면 겨울이 형이 저 밖에 데려가 줬어요.”

집에만 있는 제 막냇동생이 안쓰러워 겨울은 숙제를 핑계로 한 번씩 밖에 데려가 줬고 가족들에게 들켜 호되게 야단을 맞곤 했었다. 물론 겨울은 혼낸다고 기죽어 할 성미가 아니었다. 겉으로만 반성하는 척했다. 자신 때문에 혼이 난 게 미안해 시무룩한 버들의 앞에서 능글맞게 굴어 뽀뽀를 받았고, 카드를 빼앗기면 실컷 곤란한 척 연기하다가 학교에 가서 단짝인 황정우 지갑을 같이 썼었다. 유겨울은 제대로 난놈이었던 거다. 물론 황정우 역시 난놈이었기에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때 유 대표는 몇 살이었는데?”

“열세 살이요.”

그럼 초등학교 6학년이란 소리다.

“그럼 네가…….”

버들이 찻잔을 내려놓고 황 대표의 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네 살이었겠네.”

황 대표도 찻잔을 내려놨다. 문득 눈앞이 시커멓게 암전되었다가 돌아왔다.

“…….”

“…….”

말을 잃은 황 대표를 버들이 멀뚱멀뚱 쳐다봤다. 까만 눈동자가 천진하다.

유 대표와 저는 동갑이니까……. 저 열세 살 때에도 버들은 고작 네 살이었단 소리다. 저는 교복 입고 중학교 입학했을 해에 꼬물꼬물 촉감 놀이나 하고 있었을 버들을 상기하자 갑자기 천하의 나쁜 새끼가 된 것 같다.

아. 천하의 나쁜 새끼인 게 틀린 말은 아니다.

“대표님.”

버들이 제 무릎과 황 대표의 무릎이 맞닿도록 했다. 덕분에 황 대표는 많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버들이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황 대표의 허벅지를 도도독 건드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이 리드미컬하게 차례로 움직였다. 황 대표가 버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순간에 황 대표의 무릎에 앉게 된 버들이 놀란 기색이다. 고개를 비튼 황 대표가 키스해 왔다. 질끈 눈을 감으며 움츠러든 버들이 황 대표의 어깨를 살며시 짚었다. 버들의 뒤통수를 감싼 큰 손이 목덜미로 내려왔다.

“아…….”

버들이 움칠거렸다. 감미로운 황 대표의 혀가 제 혀를 축축하게 휘감아 올렸다. 입천장을 훑고, 혀끝을 비비고. 느릿느릿 움직이던 혀가 곧 노골적으로 달아올랐다. 고개 각도를 바꾸며 황 대표가 버들의 허리를 감쌌다.

부딪히는 몸짓에 한복이 사각거렸다. 아랫배가 맞닿았다. 명주 밖으로 서로의 몸이 입체적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제 엉덩이 아래에서 윤곽이 또렷한 황 대표의 성기를 느낀 버들이 격한 숨을 내려놓았다. 더는 못 참겠는지 황 대표가 버들을 안아 들었다.

“지금 우리…….”

숨을 한번 삼키며 버들이 마저 말을 이었다.

“우리, 옷고름 풀러 가는 거예요?”

“응.”

황 대표의 어깨에 턱을 올린 버들의 시선이 계단 창밖을 향했다. 하늘을 배경 삼은 정원이 알록달록 꽃으로 만발했다.

대낮의 정사다.

침실에 들어선 황 대표는 조심스레 버들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버들은 혹여 수술한 제 심장이 잘못된 건 아닐까 덜컥 걱정이 됐다. 빠른 속도로 팔딱팔딱 뛰어 대는 심장 때문에 빗장뼈가 욱신거릴 정도다.

황 대표가 버들의 곁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긴장한 버들이 손끝을 떨었다. 황 대표의 옷고름 끝을 잡아당기는 걸로 매듭은 쉽게 풀렸다. 이어 안쪽을 여몄던 단추를 떼어 낸 버들이 황 대표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박동하고 있는 그의 심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안도하자마자 불안했던 기류가 삽시간에 설렘으로 바꿔 물든다.

황 대표도 버들의 저고리를 풀어헤쳤다. 뒤로 눕히려던 그때였다. 버들이 더 빨랐다. 황 대표를 눕히고 버들이 그 위에 올라탔다. 황 대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쩔쩔매는 버들과 달리 황 대표는 여유로웠다.

“이제 어쩌려고?”

버들의 허벅지 측면을 은근하게 쓸어내렸다. 움찔움찔 떠는 몸의 진동이 가냘프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저고리가 스르륵, 버들의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

“…….”

벗기다가 만 저고리를 겨우 걸친 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버들은 순간 입 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천이 비틀어지면서 슬쩍 유두가 보였다. 그걸 만지려고 뻗어 온 황 대표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목에 두른 버들이 자세를 낮췄다.

서로의 입술이 비스듬히 포개졌다. 황 대표는 정말 키스를 잘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팔다리가 녹진해진다. 버들이 황 대표의 성감대인 귓불을 핥았다. 황 대표가 찰나 눈썹을 우그러뜨렸다.

버들은 조금씩 고개를 아래로 가져갔다. 목덜미를 훑고 내려와 깊이 파인 쇄골에 얼굴을 묻었다. 수영으로 오랫동안 단련된 남자의 근육이 거칠게 다가온다. 버들은 잠시 허리를 세웠다가 다시 고개를 낮췄다. 그대로 입 안에 머금은 게 황 대표의 가슴이다.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발가락을 꼬물거린 버들은 황 대표가 제게 해 주었던 것처럼 혀를 내밀었다. 돌기, 유륜 그리고 그 주변까지 잘게 키스를 퍼부었다. 저는 여기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싸 버리는데 황 대표는 가슴을 통해 야릇함을 별로 느끼지 않는단 걸 안다. 애인의 성감대를 탐색하는 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관능적인 시간이다.

복근을 타고 쪽, 쪽, 쪽, 서두르지 않게 입술을 아래로 옮겼다. 달달 떨리는 손끝이 황 대표의 바지를 살짝 벗겼다. 굵게 도드라진 장골이 야릇하다. 현재 제 혀가 뜨거운 건지, 황 대표의 살이 뜨거운 건지 헷갈린다.

버들은 묵직한 무게감의 성기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의 좆이 꼭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사납게 꺼떡거린다. 허기져 독 오른 위험한 뱀 같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버들은 불거져 나온 핏줄대로 천천히 기둥을 핥아 올렸다. 살며시 혀를 쓰다가 마침내 매끈하고 두툼한 귀두를 입 속에 넣어 빨았다. 하. 나른한 표정 위로 인상을 덧씌우고, 낮게 한번 들썩인 황 대표의 뒤통수가 베개에 편히 파묻혔다. 축축하고 달달한 버들의 입 안 점막이 머릿속을 저리게 만들었다.

흥분되는 것과 별개로 버들의 오럴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전체를 삼키기엔 무리가 있어 최선을 다한 게 간신히 반만 물었을 뿐이고 그마저도 벅차 하며 가끔 이를 세우기도 한다. 그런 버들의 애무는 황 대표에게 어떤 의미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목구멍 끝까지 좆을 처박고 싶다, 순간순간 들이닥치는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제 뜻대로 했다간 애가 다친다. 버들의 입가가 찢어지지 않게끔 신중히 버들을 통제해야 했고, 그는 어떤 식으로 버들을 통제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생채기 났던 입 안에 연고를 발라 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버들의 성감대는 입 안에도 존재한다. 볼 안쪽을 선단으로 힘을 줘 긁어 주자 버들이 입 속에 담았던 걸 뱉어 내며 가쁜 숨을 나눠 쉬었다.

“으응…….”

하늘하늘하게 풀린 눈으로 음란한 액을 흘리는 황 대표의 좆을 바라보던 버들이 제 뺨에 음경 전체를 비비적거렸다. 약에 취한 것처럼 멍한 얼굴이 야한 행위를 자각 없이 저지른다. 좋아……. 이거 좋아요. 대표님……. 넣을래요. 넣고 싶어요. 넣을 거예요. 불분명한 발음이 간곡했다.

문득 들어 올린 고개에 황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그가 저를 탐닉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음산하면서도 고아한 동공이 저를 비추는 것에 버들은 하나로 특정 지을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에 휩싸여 발기했다. 고통을 앞두고 느껴지는 두려움마저 지금은 저를 발화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오직 코어 힘으로 상체를 일으킨 황 대표는 버들의 등을 감싸 단박에 자세를 바꾸었다. 황 대표의 위에 있다가 한순간 아래에 깔리게 된 버들의 예쁜 눈가가 붉다.

“아.”

턱을 치켜들고 버들은 애끓는 신음을 토했다. 긴장한 버들을 달래고자 황 대표가 버들의 얼굴 여기저기 입술을 찍어 눌렀다. 굳어 있던 버들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눈을 마주치고 웃어 주던 황 대표가 주저하지 않고 버들의 젖꼭지를 삼켰다.

“……흣!”

황 대표의 혀가 자꾸만 여린 살점을 자극해 오는 것에 버들은 눈을 꾹 감았다.

“여기 핥아 주는 거 좋아?”

대답을 못하고 버들이 잇새로 끙끙댔다.

“아…….”

버들의 성감대는 전부 황 대표가 발굴한 것이다. 바짝 단단해져 존재감을 과시하는 조그마한 돌기가 귀엽다. 코끝으로 지분거리다가 앞니로 질깃질깃 씹어 버리자 버들의 신음이 한층 커졌다.

황 대표의 혀끝에 휘감긴 버들의 유두가 무력하게 휩쓸렸다. 연약한 살갗은 어느덧 진한 붉은 빛을 띠었다. 다시 키스하며 황 대표가 서두를 것 없단 듯 느리게 버들의 바지를 벗겼다.

곤두선 좆을 쓱 매만져 확인한 손바닥이 물기로 번들번들하다. 그걸 굳이 버들에게 보여 줬다. 쑥스러움에 버들의 피부가 화드득 불탔다.

“하, 아……. 으응.”

황 대표는 버들의 무릎을 잡아 벌려 아래를 드러나게 했다. 깔끔한 성미라 오럴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꺼리던 남자가 혓바닥을 내밀어 달보드레한 회음을 진득하게 핥아 올리는데 거리낌이 없다. 발정한 아이의 살 냄새에 환장할 지경이다. 허벅지 안쪽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놓았다. 하얀 나신에 울혈이 범벅으로 새겨지는 동안 공중으로 띄워진 연분홍 발가락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황 대표의 얼굴은 털이 없어 순한 버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한참이나 배회했다. 남자인 버들이 남자인 저를 좋다고 따라다닌다는 것 자체를 혐오했던 그 시기에조차,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속옷을 들쳐 포슬포슬하게 녹아 있는 살덩이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만지기까지 했었다. 그때는 거북하단 언사로 일갈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제 성격상 거북하지 않았기에 같은 성별의 좆을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버들의 성기가 황 대표의 입 안에 서서히 잠식당했다. 버들은 뜨거운 혀와 입천장에 밀착돼 빈틈없이 갇혀 버린 감각이 너무 좋아 뇌가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화상을 입어도 괜찮다. 대상이 황정우라면 기꺼이 그러길 원한다.

황 대표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뿌리까지 삼켰다가 귀두까지 뱉었을 때 황 대표의 타액과 버들의 몸에서 나온 물이 섞여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선뜩한 느낌에 오금 뒤로 소름이 돋았다.

버들은 애꿎게 시트를 잡아 비틀었다. 황 대표는 갈라진 귀두를 머금고 입술을 가운데로 모았다. 쭉, 빨아들이는 소리가 천장까지 닿았다. 꾹 감겨져 있던 버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파리하면서 날카롭게 관통한 감정은 낯선 처절함이었다. 아아! 버들이 고개를 외로 돌렸다.

“……아, 그만. 대표님.”

쌀 것 같은 버들이 호소했다.

“흐응……. 앗!”

가차 없이 황 대표가 버들의 좆을 뿌리까지 삼켰다. 깊다. 하나밖에 없는 제 생식기가 황 대표의 목구멍 뒤로 넘어가 버리진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 등줄기가 파드득 떨린다. 질퍽한 소음이 온몸을 점령한다.

버들은 급박함에 쫓기듯 시트를 놓고 황 대표의 머리카락을 어지러뜨렸다. 버들의 긴 속눈썹에 눈물이 맺혔다. 보통 제가 이 정도로 벅차하면 너그러이 풀어 주곤 했던 황 대표가 더 집요하게 몸을 범한다. 버들의 허벅지 뒤쪽이 불쌍할 지경으로 바르르 경련했다.

“아읏, 아……. 읏, 아!”

벗어나려 비트는 허리를 붙잡아 고정한 황 대표가 좀 더 빠르게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표님! ……아, 아, 흐응! 하.”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다. 황 대표와의 섹스는 매번 오르가슴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걷잡을 수 없게 치닫는 흥분은 처음이다. 머리칼이 쭈뼛 선다. 기묘하고, 이상하고, 두렵다. 황 대표의 입술이 버들의 기둥을 죽 잡아당기며 빨았다.

“아, 대표님! 안 돼요…….”

황 대표가 붙잡고 있던 버들의 허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마치 허리를 움직여 보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애무이자 행위였다. 버들의 관자놀이를 긋고 눈물이 떨어졌다. 머리꼭지까지 달아오른 절정이 절절하게 끓는다. 좋으면서 괴롭고 괴로우면서 황홀하다.

헐떡대던 버들이 시트를 누르고 발가락을 세웠다. 황 대표는 여전히 여유를 주지 않고 제 체온을 높였다. 눈을 뜨나 감으나 불꽃이 탁탁 튄다. 제 허리를 강하게 붙들고 있는 황 대표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린 버들은 완전히 이성을 놓아 버렸다.

황 대표의 고갯짓에 버들이 허리를 약하게 들썩거렸다. 잘했단 듯 황 대표가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가 손에 힘을 풀었다. 처음이라 엉성했다. 그걸 다 알아주는 것처럼 황 대표가 움직임을 도왔다.

윽! 배꼽 주변이 딱딱해질 정도로 힘이 쏠린다. 미치겠다.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소중한 황 대표의 입 안에 제 성기를 들락날락하도록 얕게, 겨우,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던 버들이 등줄기를 휘었다. 곧 정상에 도달했다.

왈칵 뿜어진 정액 양이 많다. 그걸 몽땅 삼킨 황 대표가 작정한 듯 목구멍을 확 조였다. 버들의 입이 벌어져 다물어질지 모른다. 한계의 끝까지 몰렸던 만큼 여운 역시 지나치게 산란한다. 버들이 몸을 심하게 떨었다.

“…….”

“…….”

제 어린 애인을 내려다보는 황 대표의 눈빛이 나른히 감겼다가 뜨였다. 직전까지 제 입 속에 잠겨있던 버들의 성기는 고작 한 번의 사출로 발기가 풀려 말랑말랑하다. 큰 손이 버들의 마른 몸을 진정시키려 상냥히 매만졌다.

황 대표는 저고리에서 버들의 팔을 한쪽씩 꺼냈다. 나체에 달랑 버선만 신고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버들의 모습이 외설스럽다. 하아. 하아. 버들의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다.

“이리 와.”

좀 괜찮아졌을 무렵 버들이 엉엉 울었다. 아이처럼 커다랗게 소리 내며 눈물을 흘렸다. 서러움이 전해진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처박는, 처음 겪어 본 그 기묘한 흥분이 참 많이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황 대표가 놀란 버들을 안아 토닥였다.

“오늘은…….”

황 대표의 뒷말을 버들이 알아차렸다.

“할 거예요.”

눈물을 비벼 닦으며 버들이 종알댔다. 울음 때문에 발음이 엉성했다.

보기 좋아 그대로 놔둘까 했던 버선이지만 답답할 수 있으니 버들의 발에서 벗겨 준 그가 베개 밑에 손을 넣었다. 있어야 할 게 잡히지 않는다. 침대 옆 서랍도 텅 비어 있다. 콘돔을 없애 버린 범인이 훌쩍거렸다. ……하. 한숨이 나온다. 예쁘게 생겨서 못하는 짓이 없다. 아까워서 혼내지도 못하겠고.

버들은 잠시 멍한 틈을 타 황 대표의 어깨를 잡아 뒤로 쓰러뜨렸다. 쉬이 가시지 않는 흥분과 울음의 여운으로 버들의 호흡은 여전히 불규칙했다.

“안에다…… 싸 주세요.”

화가 난 듯 황 대표가 눈썹을 비틀었다.

“너 배 아파. 그럼.”

한 번도 아픈 적 없던데. 작게 꿍얼거리며 버들이 눈물 젖은 눈가를 비볐다. 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겠어. 엄하게 꾸중하던 황 대표의 눈빛이 탁, 풀렸다.

“얼굴로 올라와.”

황 대표가 버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얼굴로 왜 올라오라는 거지? 황 대표가 잡아끄는 대로 버들은 무릎을 세워 주춤주춤 기어갔다.

“아!”

황 대표는 제 눈앞에 온 버들의 엉덩이를 벌려 혀로 쑤셨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좁은 근육을 무참히 애무당한 버들이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숨이 턱 막히는 와중에 손가락까지 가세해 구멍을 살살 비집고 파고든다.

“대표님. 그만……. 아. 흐, 앗! 안 돼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데 그럼 황 대표가 다칠 수 있으니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버들은 앞쪽의 침대 헤드를 붙잡았다. 불룩 튀어나온 손가락 관절이 힘이 들어가는 만큼 하얗게 질렸다. 가는 목덜미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척추를 타고 훑었다.

황 대표가 미소 지었다. 벅차하면서도 버들의 신음이 달큼하다. 나긋나긋 뒤가 완전히 풀리고 나서야 황 대표는 집요히 굴었던 손가락과 입술을 물렸다. 그제야 버들은 가쁜 숨을 고를 수가 있었다.

앉은 채 서로를 마주 보며 황 대표가 축축한 버들의 볼을 닦아 줬다. 눈물 때문에 무거워진 속눈썹이 축 처진다. 버들이 황 대표의 어깨를 눌렀다. 순순히 뒤로 쓰러지며 황 대표가 물었다.

“할 수 있겠어?”

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잡아.”

황 대표는 손을 잡아 제 위에서 중심 잡는 버들을 도왔다.

“아…….”

버들의 목이 뒤로 꺾였다. 현기증에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힘들어도 황 대표의 좆을 품기 위해 허리를 조금씩, 조금씩 낮추는 걸 멈추지 않았다. 좁은 근육이 빠듯하게 벌어지고 마침내 귀두가 관통되었을 때 버들과 황 대표는 동시에 신음을 터트렸다.

“버들아.”

“제, 제가…….”

자기가 주도하겠단 버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속도로는 좆 전체를 삽입하기까지 한나절이 걸리게 생겼다. 도 닦는 심정으로 황 대표가 눈을 감았다. 그의 귀가 붉다. 아득한 시간이 지난다. 어느덧 여린 몸에 반쯤 파고든 제 성기를 확인하며 황 대표가 눈살을 좁혔다.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흥분을 자제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

비록 오래 걸리긴 했어도 버들은 기특하게 혼자서 황 대표의 좆을 끝까지 품었다. 살가죽을 팽창시킬 듯이 안을 장악한 황 대표의 좆을 느낀 버들은 서둘러 제 아랫배를 끌어안았다. 적응될 때까지 시간을 들인 버들이 황 대표의 가슴 사이를 팔로 짚었다. 그러곤 엉덩이를 아주 조금 들었다가 콩 놓았다.

하아……. 귀엽기는 한데. 황 대표의 억누른 신음이 갈라졌다. 갈급증이 인다.

황 대표가 선사하는 섹스가 땅바닥을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거센 폭우와 같다면, 버들이 선사하는 섹스는 부슬비를 닮아 간질간질하다. 힘이 드나 보다. 한동안 떨기만 하던 버들이 위아래가 아닌 앞뒤로 몸을 쓱 움직였다. 보드라운 엉덩이 주변으로 황 대표의 체모가 까끌까끌하게 비벼지는 것에 화들짝 놀란 버들이 움찔거리며 속을 조였다.

황 대표는 벌겋게 손자국이 난 버들의 가는 허리를 붙잡았다. 엉덩이를 들게끔 하더니 아래로 내려올 땐 버들의 몸이 앞쪽으로 살짝 기울어지게끔 능숙히 유도했다.

하! 찰나 흐려진 정신에 버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긴박한 숨을 삼켰다. 버들이 느끼는 지점을 황 대표가 정확하게 노렸다. 쫄깃한 내부의 탄성이 황 대표의 좆을 꽈배기처럼 쥐어짜듯 꼬아 물고 압박했다. 황 대표는 체중을 실어 깊게 흘러드는 성감에 괴롭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버들은 황 대표의 가르침을 곧잘 따랐다.

“아, 응, 아…….”

마른 입술을 축여 줄 오아시스를 찾아 황 대표에게 쓰러져 키스했다. 단단한 황 대표의 가슴팍에 과실처럼 붉어진 버들의 유두가 뭉개졌다. 혀를 내주며 황 대표가 은밀히 버들의 등을 감싸 못 움직이게 고정했다. 천천히 무릎을 세우고 참았던 만큼 거칠게 버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버들이 내지른 신음은 몽땅 황 대표의 목으로 배어들었다. 위태롭게 바깥까지 밀려나온 버들의 촉촉한 속살이 완강한 힘에 다시 안쪽까지 쑤셔지길 잇따랐다.

버들을 안은 채 황 대표가 일어나 앉았다. 땀에 젖어 이마를 어지럽힌 곱실한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 후, 버들을 천천히 뒤로 눕혔다. 제 위로 올라탄 황 대표를 응시하는 버들의 시선이 꼭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하다. 황 대표가 버들의 가는 손목을 결박하는 것처럼 한데 모아 들어 올렸다. 드러난 팔 안쪽이 연하다. 울긋불긋한 흔적이 난무하게 새겨졌다.

“으음.”

입술만을 쓰는 입맞춤이 다정하게 버들을 녹였다.

“버들아.”

낮은 음성이 귓불로 침윤했다.

“대표님…….”

할 말 있어 보인다. 버들을 위해 황 대표가 모든 행위를 중단했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몸과 이어져 있는 버들의 속살이 흠뻑 젖어 발씬거리는데 아무리 황 대표라도 움직임을 가만 멈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을 뻗어 버들이 황 대표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애무할 땐 봐주지 않으면서, 삽입한 이후부터는 무조건 제 페이스에 맞춰 조절을 한다.

험하게 굴다가 멈추고. 험하게 굴다가 멈추고. 험하게 굴다가 멈춰 저를 살핀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귀하게 다뤄 준다. 물론 저는 그렇게 페이스를 조절해 줘도 힘들기는 한데……. 저 힘든 것보다 자제력이 강한 이 남자가, 우아하기 그지없는 이 남자가 저 때문에 흐트러진 모습이 궁금하다.

간신히 끌어모은 힘으로 버들이 두 다리를 들어 황 대표의 허리에 감았다. 발목을 걸어 자신을 옭은 버들을 황 대표가 묵묵히 내려다봤다. 땀에 젖은 이마와 긴 속눈썹이 놀라울 만큼 육감적이라 버들은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수술을 마치고 황 대표와 단둘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저는 조금 숨이 차도 괜찮을 거란 걸 제 애인에게 알려 주고 싶다.

버들이 허리를 들썩였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황 대표의 장골에 핏줄이 선명해졌다.

뭐라고 하려는 황 대표의 말을 버들이 입맞춤으로 막았다. 버들의 울먹거림 속에서 결심이 느껴진다.

황 대표가 버들의 한쪽 골반을 급히 쥐고 천천히 입술을 떼어 냈다. 지그시 들어간 힘에 잡힌 골반이 아팠으나 버들이 다시금 허리를 들썩였다. 마음대로 해 주세요. 참지 말아요. 사분거리는 버들의 엉덩이에 황 대표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항상 황 대표가 버들을 몰아갔던 섹스건만, 이번엔 버들이 황 대표를 몰아가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 가파른 호흡만이 들어차길 한참이다.

정말 마음대로 해도 돼? 눈빛이 묻는다. 네.

정말 참지 않아도 돼? 눈빛이 대답한다. 네.

매서움을 예견하는 것도 모르고 황 대표를 올려다보는 버들의 젖은 눈동자가 순종적이다.

육중한 상체를 일으킨 황 대표는 버들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했다. 팔다리에 좀체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거의 뻗어 버릴 기세다. 하얀 시트에 버들이 뺨을 비볐다. 조금이라도 편히 있을 수 있게 황 대표가 버들의 품에 풍만한 베개를 안겼다. 그걸 끌어안으며 버들이 하느작거렸다. 등 뒤로 들려오는 작은 황 대표의 신음에 침이 고인다.

황 대표가 제 좆 위치에 맞춰 가는 허리를 붙들어 강제로 세웠다. 퍽! 감도가 높고 유연한 몸은 수축 또한 아찔할 정도였다. 버들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마음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실낱같이 남아 있던 여유가 사랑한단 버들의 속살거림에 증발하고야 말았다. 욕지거리와 함께 이성의 끈을 스스로 잘라 버렸다. 황 대표로선 드문 일이었다.

격정적인 움직임에 버들의 몸이 속절없이 흔들린다.

* * *

잠에서 깨니 한밤중이다. 미등을 켜둬 침실이 완전히 어둡지 않았다. 언제 잠든 거지. 몸을 일으키니 현기증이 핑 돌아 버들은 잠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울었던 흔적이 역력한 눈가를 무의식중에 만진 버들은 따끔거림에 소스라졌다. 황 대표의 고른 숨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온다. 버들이 황 대표의 이마를 짚고 제 이마의 체온과 비교했다. 황 대표가 알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 지을 걱정을 버들은 하고 있었다. 섹스하고 나면 저만큼 대표님도 힘들까? 아플까? 

어린 애인을 원 없이 탐한 황 대표의 안색은 윤기가 돌아 좋기만 했다.

엉덩이를 더듬거린 손이 미끈거리다. 저 배앓이할까 봐 정사 후 곧바로 들쳐 안아 씻겨 주고 연고를 찾아 발라 줬을 황 대표가 훤히 그려진다. 숨을 푸, 몰아 내쉰 버들이 자신의 볼을 감쌌다. 볼살에 밀려 입술이 튀어나왔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물론 좋아서. 제가 좋았던 만큼, 황 대표님도 좋았을 거다.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드레스 룸까지 갈 필요가 없겠다. 황 대표의 티셔츠가 옆에 떨어져 있다. 황 대표가 입혀 놓은 제 옷을 꾸물꾸물 벗어 버리고, 버들이 황 대표의 티셔츠를 주워 머리통에 뒤집어썼다.

늠름한 체격을 지닌 황 대표의 옷을 입으면 제 몸도 덩달아 커진 착각을 받는다. 그게 바로 버들이 사이즈가 맞지 않은 황 대표의 옷을 부러 입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티셔츠의 어깨선이 팔꿈치에 닿을 것처럼 내려와 볼품없었지만 모른 척 무시했다. 황 대표님 옷 입었으니까 내 몸도 큰 거야.

버들은 휘영청, 뜬 달과 함께 온통 제 소유인 남자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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