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6)

Episode 1. Romantic?

1-1.

“베일리 대위가 지휘한 팀의 공로가 크다고 들었네. 앞으로도 제국 수호를 위해 힘써주게.”

“과찬이십니다.”

단테 베일리 대위는 칼로 잰 듯 완벽히 각이 잡힌 자세로 축하 인사를 받았다.

황제의 대리인이 작전 완료와 무사 귀환에 대한 치하의 말을 전한 뒤엔, 국방성 쪽 인물들의 공치사가 이어졌다. 수고한 제국군 장병들을 격려하는 윗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형식적이었다.

단테는 이마 앞에 깍듯이 손날을 세우며 흘끗 시간을 확인했다.

높으신 분들은 일개 대대의 포상 연회에 오래 머무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특수부대 SAG 소속 대위 단테 베일리가 약 열 번째 악수를 받고 왼팔의 완장을 두드려졌을 즈음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단테는 이름 모를 의원님의 등 뒤에서 미심쩍은 미소를 지은 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최고참 부사관인 로건은 벌써 목을 조인 넥타이를 풀고 있었다. 다들 성미에 맞지도 않는 얌전을 떠느라 고생이 많았다.

“당분간은 제도에서 마음 놓고 푹 쉬게. 먼 타지에서 고생 많았네.”

“감사합니다.”

또 한 명이 단테의 경례를 받고 지나갔다. 방금 전의 사람이 마지막이었는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그는 넓은 홀 안을 둘러보았다. 시커먼 군복을 벗고 어색한 정복을 차려입은 팀원들도 함께 주변을 훑었다.

얼추 보기에 이제 셔츠와 타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만 남았다. 눈이 마주친 옆 중대의 팀장 리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다들 가셨냐?”

“예, 그렇습니다!”

한데 뭉친 대답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다들 제도로 돌아왔다고 풀려서는, 기대에 찬 표정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건 단테도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만큼은 무전과 수신호 없이도 팀원들이 눈빛으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단테는 딱딱한 표정을 지우고 입술 끝을 시원스럽게 밀어 올렸다. 높은 분들 앞에서 만들어낸 ‘베일리 대위’의 얼굴 대신 평소의 시원시원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 그럼.”

팀원들의 시선이 단테의 얼굴로 모였다.

“ODA-133(ODA : Operation Detachment Alpha, 특수부대 1개 중대(팀)). 술 가져와. 시작하자.”

우와아아! 조금 전보다 더 큰 탄성이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단테는 갑갑한 정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목과 손목을 죄던 단추를 풀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는 엄살을 떨며 팀원들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풀었다.

팀원들 모두 작전지에서 긴장 상태로 술 한 방울 없는 3개월간의 금욕기간을 보냈다. 다들 고상 떨며 깨작깨작 홀짝홀짝거리는 파티에는 흥미가 없었다.

옷차림이 털털해지기 무섭게 단테의 앞에 커다란 술통이 놓였다. 막내 하사 둘이서 힘자랑을 하며 들고 온 통은 들어가서 목욕을 해도 될 만큼 커다랬다.

작전이 끝나고 며칠 쉬었더니 힘이 남아도나. 단테는 어이없이 웃었다.

“먹고 죽으라고?”

“오늘 같은 날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까. 잔 대신 수통 가득 담아드리면 되겠습니까?”

“무슨 하극상을 이렇게 무섭게 해. 통수 칠 거면 국경 넘기 전에 쳤어야지. 여기서 죽으면 보상금도 안 나와.”

상관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 수 있는 건 여타 부대보다 위계가 약한 특수부대 고유의 분위기도 있지만, 사석에선 얼마든지 편하게 대하는 걸 허락하는 팀장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단테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씨익 웃었다. “자자, 잔들 채워!” 커다란 군인들이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신나 소리를 질렀다.

“팀장님, 한마디 하시죠.”

“건배사 한 번 멋있게 해주십시오!”

“건배사는 무슨, 그냥 마시지.”

“저희가 또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허…….”

단테와 가장 가까운 둘이 양팔을 하나씩 잡고 몸을 들어 올렸다. 얼결에 의자 위에 올라선 그가 “야, 너희….” 하고 눈을 흘겼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단테는 한숨을 내쉬고 그를 제외한 열한 명, 아니. 이번 달까지는 열두 명인 그의 팀원들을 보았다.

국경에서 지저분한 군복을 입고 있던 녀석들이 연회랍시고 저마다 멀끔히 꾸미고 온 모습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다들 3개월간 고생 많았다. 부족한 상관 따라와 줘서 고맙고, 큰 부상 없이 무사히 돌아와 줘서 더 고맙다.”

“우우, 저희 철수할 때도 그 말 하셨습니다!”

“야, 사관학교 합숙 훈련 때부터 썼던 레퍼토리를 여태 쓰고 있냐!”

저쪽에서 리온이 커다랗게 외쳤다. 사관학교 동기이자, 10년을 함께해 이 자리까지 온 바로 옆 중대의 팀장이었다. 단테는 참 우정에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는 것으로 화답했다.

“열심히 살아 돌아왔으니 하루쯤은 마시다 죽어 봐야지. 내게 주는 술은 다 받을 테니 얼마든 찾아오도록. 쌓인 게 있다면 오늘 마음껏 풀어라. 이상.”

“예!”

“예,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부딪친 잔들이 쭉 들이켜졌다. 순식간에 잔의 바닥이 뒤집혀 위로 솟았다. 단테 역시 버겁게 따른 잔을 다 비웠다. 이런 자리에서 몸을 뺄 정도로 재미없는 상관은 아니었다.

이쪽을 향해 환호 소리를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고아 새끼.”

이런 적대감 또한. 그러나 단테는 어렴풋이 들려온 그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어느 쪽이든 그는 자신의 팀원들만 재미있다면 상관없었다.

막 의자에서 내려가던 차에 시선이 팀의 가장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다른 팀원들을 따라 우물쭈물 잔을 비우는 남자가 보였다. 덩치는 군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만큼 커다란 게, 하는 짓은 영락없는 새끼 강아지였다.

화사한 금발을 가진 남자는 팀에서 가장 키가 컸지만, 반대로 가장 어렸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배시시 웃었다. 얼핏 차갑고 딱딱해 보이던 인상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어휴, 귀여운 놈.

단테도 속절없이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의 볼 끝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사이 질 수 없다며 다른 팀 팀장들도 하나씩 테이블이나 난간에 올랐다.

단테 베일리의 팀은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시끌벅적한 밤의 시작이었다.

* * *

단테가 선명한 금발과 연녹색 눈동자를 가진 후배를 처음 마주한 건 6개월 전, 작은 사진을 통해서였다.

뭐…… 하러 이렇게 잘 생겼지?

딱딱한 표정으로, 서류 위에 적당히 인쇄된 작은 사진인데도 외모가 눈에 띄었다.

아까울 정도로 쓸데없이 잘생겼다는 감상은 진심이었다. 이 사진을 보는 단테가 회사의 면접관이었다면 이 남자는 몹시 유리한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테 베일리 대위는 면접관이 아닌 SAG(제국 제1특수무장부대의 별칭)의 팀장이고, 이 서류는 제국군 장교의 군인사법을 따라 단테가 앞으로 반년간 사수를 맡게 된 사관학교 졸업생의 정보였다.

막 졸업한 어린 예비 소위들은 대개 제도와 가깝거나 편한 부대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게 단테 베일리, 척박한 환경의 특수부대 팀장이 임관 후 한 번도 사수를 맡지 못한 이유였다.

그러나 올해에는 놀랍게도 단테의 밑에 귀여운 후배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최초로 SAG, 즉 험하디험한 특수부대에 있는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 자원한 기특한 후배의 신상 정보였다.

그러나 단테는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헤인스워즈?”

서류에 적힌 글씨를 눈에 담을수록 단테의 표정에 의아함이 더해졌다.

결국 그는 두어 장 정도 넘긴 서류를 도로 덮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굳이 이 각박한 곳을 자원한 게 누군가 싶었는데…….

“앤지, 큰일 났어.”

“뭡니까?”

부팀장 안젤라 해리스 중위가 랩탑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제 훈련에서 눈을 다쳤나 봐.”

“세 시간 동안 과녁 다 뚫으시던 거 봤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야. 헛것이 보여.”

안젤라가 단테의 손에 들린 서류를 흘끔 보았다.

“라파엘 헤인스워즈라고 보이십니까?”

“여기까지 공문서가 잘못 날아왔을 리는 없으니 내 눈이 잘못된 거겠지? 병가 신청 좀 부탁해.”

“팀장님의 시력은 건재합니다. 또, 지금 같은 시기에 휴가 내시면 댁으로 쫓아갈 겁니다.”

단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아는 헤인스워즈가 맞는 거지?”

“존경하는 사령관 각하를 말씀하시는지, 이번에 3선 되신 제도지사님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헤인스워즈가 맞을 겁니다.”

“아…….”

라파엘 헤인스워즈. 막 사관학교를 나온 23살 어린애의 이름은 몰라도 헤인스워즈라는 성을 모를 수는 없었다. 단테의 상관의, 상관의, 상관…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나타날 육군참모총장의 이름이었다.

마른세수가 절로 나왔다. 태생부터 출세가도를 향하는 레드카펫 위에서 시작한 도련님이 왜 굳이 특수부대를, 그것도 자신의 부사수로 오려 하는지 모르겠다. 평화로운 부대에서 수습 기간을 보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각하께선 자제분들을 엄하게 키우신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집안에서 특수군에 가 빡세게 구르고 오라고 등 떠민 게 아닌가 싶은데요.”

“차라리 에프런 팀이 낫지 않겠어? 헤인스워즈면 귀족이나 다름없잖아.”

“출신으로 사람을 차별하시면 안 됩니다.”

“억울해 비명횡사할 말이네.”

출신으로 차별하지 말라니, 사관학교에서부터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단테가 수없이 당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단테는 이 일을 승인한 안젤라를 향해 보란 듯이 뾰족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안젤라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참고로 저는 반대했습니다. 저희 팀과는 상성이 절대 안 맞는다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결론이 난걸.”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대해 주지 그랬어.”

“연약한 중위인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선배.”

이럴 때만 연약하고 이럴 때만 선배라고 하지……. 안젤라의 어깨가 위로 으쓱였다.

“훈련 성적과 피지컬은 꽤 괜찮은 것 같던데요? 그리고 뭐… 소문엔 착하답니다.”

“앤지, 그거 알아? 데릭슨 에프런도 우리 기수에 천사 선배라고 소문났었어. 물론 있는 집 애들 사이에서.”

“으……, 아까 한 말 취소해도 됩니까?”

“응. 받아줄게.”

단테는 헤인스워즈의 신상 정보를 심란하게 넘겨보았다. 한번 배정된 결과가 쉽게 바뀔 리 없단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테는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하는 물음에 라파엘 헤인스워즈의 정보가 담긴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데릭슨 새끼한테 배정되면 아주 춤을 출 텐데.”

그라면 ‘헤인스워즈’를 사령관 각하가 오신 것처럼 반년 동안 극진히 모실 것이다. 단테는 그런 데에는 흥미도, 재능도 없었다.

어느 부대나 귀하게 자란 신입은 곤란하지만, 생사를 오가는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군은 더욱 그러했다. 부족함 없는 자리에서 충만하게 길러온 용기와 의지는 실전에 있어 독이었다.

바짝 붙어 가르친다 해도 다음 작전까지 기본은 챙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대기조에 배치시키고 위험한 훈련은 빠지게 한다고 해도 역시 골치 아픈 존재였다. 먹힐진 모르겠지만 안 되겠단 말이라도 꺼내 볼 생각이었다.

복도를 걷던 단테는 정면에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이마를 살짝 덮은 화사한 금발 아래 연둣빛 눈동자와 긴 콧날이 날카로운 조화를 이뤘다. 새하얀 피부 탓인지 다물린 입술이 더 붉어 보였다.

와, 잘생겼네.

단테는 그에게 든 기시감의 이유를 깨달았다. 명화 속 천사가 튀어나온 것 같은 화사한 금발, 선명한 색채를 가진 눈동자, 뚜렷한 이목구비는 전통적인 제국식 미인의 조건을 모아놓은 모습이었다.

얼굴선이 가는 탓에 미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키가 제법 큰 편이었다. 어디서 작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한 단테보다도 반 뼘 정도는 컸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단테는 그의 왼쪽 가슴으로 시선을 내렸다.

유심히 살핀 명찰 위에는 R. 헤인스워즈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베일리 대위님이십니까?”

단테와 마찬가지로 그도 명찰에 시선이 가 있었다.

단테는 기시감의 정확한 이유를 깨달았다. 잘생겨서가 아니라,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 인쇄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사진도 ‘군인이 뭐 이렇게 곱상하게 생겼나’ 하는 감상이 들었는데, 사진이 실물을 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또, 무기질적인 사진에 찍힌 표정보다도 실물이 훨씬 차가운 인상이었다.

단테는 그와 세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사수를 맡는 걸 거절하기 전에 미리 본인에게 언질을 주는 게 나을 테니 차라리 잘되었다. 보통 성격이 아닐 것 같은 얼굴을 보아하니 더욱이 그랬다.

“안녕하십니까!”

단테가 뭐라 말을 꺼내려던 찰나, 바로 앞에서 우렁찬 인사가 터져 나왔다.

헤인스워즈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이마 앞에 손날을 세웠다. 끝이 올라간 서늘한 눈가가 순식간에 동그랗게 변했다. 흰 뺨이 끝에서부터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단테는 북풍이 몰아치던 하늘에 해님이 방긋 떠오르듯 바뀐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국 제1사관학교 71기 라파엘 헤인스워즈. N812년 8월 13일부로 통합 특수전사령부 제1특수무장부대 단테 베일리 대위님 휘하에서 6개월간의 수습 활동을 명받았습니다.”

타이밍도 어떻게 이리 잘 맞는지, 그 순간 햇빛을 가리던 구름이 지나가고 화사한 금발 위에 조명처럼 빛이 쏟아져 내렸다. 단테가 말없이 그를 보고만 있자 연녹색 눈동자가 긴장으로 흔들렸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혹 실수한 것이 없나 제가 한 말을 되짚어보는 표정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는 앳된 티가 남아 있었고, 미숙한 감정 역시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단테는 라파엘에 대한 첫인상을 정정했다.

그런 뒤, 마찬가지로 손끝을 세워 이마 앞에 대고 인사를 받았다. 반대쪽 손으로는 사수를 바꿔 달라 요청할 생각으로 들고 가던 서류를 등 뒤로 숨겼다.

단테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에게 일말의 정도 주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라파엘처럼 요령 없고, 미숙한 후배에겐 한없이 약했다.

“만나서 반갑다, 헤인스워즈 소위. 시간 괜찮으면 잠시 이야기 좀 하다 갈까.”

“……예!”

단테는 해가 하나 더 떴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환해지는 모습을 또 한 번 목격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의 사수, 단테 베일리의 표정이 완전히 풀렸다.

* * *

라파엘 헤인스워즈는 결국 단테의 밑에서 6개월간의 험난한 수습 기간을 보냈다. 심지어 마지막 3개월 동안은 국경 밖의 작전지로 함께 가, 척박한 장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다.

동시에 그는 1년 차 하사와 함께 부대의 막내들이 할 잡무도 맡았다. 특수부대는 일반 병사 없이 하사 이상의 간부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팀장인 단테가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다곤 해도, 같은 기수 동기 중 가장 험한 수습 기간을 치렀을 것이다.

반년을 기특하게 꿋꿋이 버텨낸 대가로 라파엘은 이 자리에 팀과 함께 서 있었다.

어딜 가나 단체의 막내는 선배들의 좋은 타깃이었다. 특히 라파엘 헤인스워즈 같이 물렁물렁해 놀려먹기 좋은 녀석이면 더더욱 그랬다.

단테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외모와 헤인스워즈라는 이름에 선입견을 가졌던 팀원들도 수습 배정을 받고 한 달이 지날 즈음에는 그에게 툭툭 장난도 걸 수 있게 되었다.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데다가, 그런 면을 단테에게 사정없이 놀림당하고 장난을 당하는 모습이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대 안에서 단테의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그 뒤에는 꼭,

‘티, 팀장님……!’

하는 억울함 가득 담긴 부름이 이어졌다. 팀원들이 이번 작전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와, 적응 다 된 줄 알았는데, 저 자식 무표정으로 쳐다보면 아직도 좀 오싹해.’라고 말하면 열 중 여덟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포함되지 않는 두 명은 중대장 단테와 최고참 부사관 로건 뿐이었다.

특히 단테는 가끔 라파엘을 볼 때면 어린 시절 기르던 커다란 강아지가 떠올랐다.

덩치가 커서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무서워했지만, 알고 보면 사람을 잘 따르고 자기보다 작은 동물들이 덤벼도 이빨 한 번 제대로 못 세우던 순한 녀석이었다.

그 강아지 이름이 뭐였더라. 해피였나, 글래드였나…….

“팀장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 녀석과 똑 닮았던 건 확실했다.

그리고 순둥이 후배 해피는 또 어디서 얻어맞고 왔는지 울상이었다. 단테는 당장 해피에게 마주 달려가려 했지만, 그도 술이 한참 들어간 후라 바닥을 딛는 순간 시야가 덜컹거렸다.

“누가 우리 애 때렸어?”

“로건 상사님입니다. 혼내주세요…….”

라파엘은 덩치를 구겨 자신보다 작은 단테의 품 안으로 끙끙 들어갔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해피. 단테가 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만취한 팀장과 그보다 더 취한 막내가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은 귀하디귀한 장면이건만, 다른 팀원들 모두 그와 비슷하게 취기가 올라 카메라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꼬인 혀로 내일이면 기억에서 사라질 대화를 나누며 낄낄 웃기만 했다.

“팀장님, 사시일… 저도, 술 한 잔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해피, 아니, 우리 귀여운 헤인스워즈 소위가 주는 술이면 또 받아야지.”

빈 술잔이 앞으로 턱 내밀어졌다. 라파엘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호기롭게 술을 따라주겠다 선언했는데 두 손에 들린 건 술이 아닌 장식용 꽃 한 송이였다.

라파엘이 꽃을 보며 취기가 오른 눈을 끔뻑였다. 긴 금색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였다. 꽃은 술병처럼 기울여 잔에 대어도 술이 나오지 않았다.

“어…….”

라파엘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낮게 신음했다. 내리깐 눈에, 젖은 채로 살짝 벌어진 입술, 발갛게 달아오른 뺨. 단테는 오랜만에 처음 라파엘을 만났을 때의 감상을 떠올렸다.

와, 우리 막내 진짜 잘생겼다.

팀원 중 라파엘만은 말쑥한 옷차림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복을 벗고, 취해 나른해진 얼굴로 서 있으니까 더…….

손에 들린 영문 모를 꽃을 보며 라파엘이 붓으로 그린듯한 눈썹을 구부렸다.

“왜 꽃이 있을까요. 술이 없습니다. 분명 가져왔는데, 없습니다……. 부팀장님이 팀장님께서 좋아하시는 술이라 하셨는데…….”

“술 이름이 뭐였는데?”

“이름, 이…….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말은 사정없이 더듬으면서, 말투만은 우아한 제도식 억양 그대로였다. 보아하니 팀원들이 또 순진한 막내를 놀린 게 틀림없었다.

단테는 술잔을 치우고 웃으며 등이나 한 번 더 두드려줬다. 그리고 라파엘을 제가 앉아 있던 의자 쪽으로 당겼다.

“그만 마시고 여기 앉아서 쉬다가 와. 헤인스워즈, 너는 오늘 너무 취한 모습 보여도 안 좋아.”

“…….”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SAG 소속 군인들이며, 라파엘은 팀뿐만 아니라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어렸다. 수습을 마치고 어느 부대로 배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술에 취해 실수를 한 일화가 생겨 좋을 것은 없었다.

라파엘이 애꿎은 꽃대를 꼭 쥐었다. 큰 키와 체격에 맞지 않게 온순하고 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녀석이었다.

단테는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었다. 휴가가 끝나면 소대장을 달 텐데 이래서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파엘과 지내며 그의 사수를 맡길 잘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자니 아주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사수의 의리로 이건 비밀로 해주지.”

단테의 손끝이 탐스러운 꽃잎을 툭 두드렸다. 시원시원한 미소가 입가에 올라왔다.

그는 라파엘을 두고 파병의 묵은 때를 마저 소독해줄 알코올을 찾아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그러나 팔을 붙잡은 손 때문에 다시 뒤를 돌아봐야 했다.

꽃을 든 손이 단테를 잡았다. 팔꿈치 근처에서 라파엘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노란 꽃잎이 살랑였다.

“팀장님.”

“왜.”

“…….”

고개 숙인 채 내뱉는 숨이 떨렸다.

“제가, 많이 부족한데도 계속 이끌어주셔서…….”

“…….”

“죄송하고, 또 정말 감사합니다. 베일리 대위님을, 상관으로서도……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좋아, 아니, 존경한다고…… 술을 한 잔 따라드리며,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그랬어. 고맙다.”

“그런데, 흐, 저는 또 바보같이 굴고…….”

“…….”

중간에 이상한 흐느낌 소리가 끼어 있었다. 단테의 팔에 얹어진 손도 술기운이라기엔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풍랑을 맞은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설마… 너 울어?”

허리를 굽혀 라파엘의 얼굴을 살폈다가 단테는 손으로 입가를 가려야 했다. 곤란함과 감탄이 반씩 섞인 표현이었다.

라파엘의 속눈썹을 애처롭게 적신 눈물이 뽀얀 뺨을 타고 툭 흘러내렸다.

헤인스워즈 부부는 아들이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왜 말리지 않았을까. 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정치를 했어야 했다. 선거 벽보에 이 얼굴이 붙어 있다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더라도 홀린 듯 그에게 표를 던질 게 분명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

“…….”

“아니, 왜 이런 일로 울어. 뚝.”

우는 주사는 군인에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몹시 라파엘다운 주사이긴 했다.

단테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손등으로 대충 얼굴을 닦아줬다. 봄날의 클로버 같은 연두색 눈동자가 물기로 촉촉하게 젖어 반짝였다.

후……. 정치인도 아까웠다. 모델이나 배우를 했어야 했다.

어쨌든 라파엘은 정치 대신 사관학교를 졸업해 단테의 아래에 있었다. 그러므로 단테는 그를 챙길 의무가 있었다.

“안 되겠다. 너 너무 많이 취했다. 일어날 수 있겠냐?”

“예…….”

어깨를 감싸 당기자 그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조심.”

단테가 휘청이는 라파엘의 가슴 앞을 받쳤다. 자신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준 팔을 보고 라파엘의 귀 끝이 화르륵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는 살포시 단테의 팔을 끌어안아 몸을 기댔다. 취해 있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접촉 면적이 지나치게 넓었다.

라파엘은 상체를 잔뜩 밀착시킨 그대로 단테를 따라 종종걸음을 옮겼다. 헤헤……, 귓가에 조금 전까지 훌쩍이던 녀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이가 없어 돌아본 단테는 제 어깨에 웅크려 기댄 채 젖은 눈동자를 사르르 접은 얼굴과 마주했다.

순간 그는 20년도 더 된 과거의 어떤 날, 해피와 함께 노을을 보며 산책하던 추억을 떠올렸다. 차이가 있다면 어린 소년과 순박한 강아지가 아니라 만취한 부하와 상관이라는 것과, 목적지가 태양빛이 사라지는 산허리가 아닌 연회장 옆의 게스트 룸이라는 것이었다.

단테는 일부러 복도 깊숙이 위치한 방을 찾았다. 연회장과 가까운 방은 조금 있으면 술 취한 인원들이 들이닥쳐 벌써 자느냐며 깽판을 부릴 것이다.

“팀장님, 주무시려고 하십니까?”

“응. 자야지.”

나 말고 네가. 주어는 자연스럽게 생략했다.

“그러면… 저 방이 좋습니다. 팀장님.”

라파엘이 복도의 가장 끝에서 한 칸 떨어진 문을 가리켰다. 단테는 그가 고른 방으로 라파엘을 부축해 갔다. 불을 켜자 일반 룸의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방이 나타났다. 시설도 다른 방보다 조금 더 좋았다.

“이 방은 어떻게 알았냐?”

“부모님과, 파티에 참여했을 때…, 졸리다고 하면 이 방에 데려다주고 가셨습니다.”

“아아.”

제도의 이름 있는 호텔에 딸린 연회장이니 헤인스워즈 가의 외아들이라면 적어도 단테보다는 많이 와 봤을 것이다. 단테는 라파엘을 마저 부축해 방 중앙의 침대로 갔다.

“이만 자라. 밖에 더 있다가 괜히 실수하지 말고.”

“…….”

“사수의 의리로 비밀로 해준 거지, 팀원들 앞에서 울었으면 전역까지 놀림 받았을 거다. 다음 달이면 완장 찰 텐데 무게도 잡을 줄 알아야지.”

거기다 이 정도로 만취했다면 저도 모르게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음 날 일찍 도망쳤냐는 타박 몇 마디를 듣는 게 나았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라파엘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무게 잡으라니까. 외모와 행동이 도저히 일치가 되질 않는 녀석이었다.

“됐으니 눕기나 해라.”

“팀장님이 서 계신데…….”

“이불 덮고 눕는다. 실시.”

“실시…….”

커다란 덩치가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하여간 귀여운 새끼. 단테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걸렸다.

“자라. 상관 명령이야.”

“팀장님.”

라파엘은 이불 안에서 몸을 움직여 반대쪽으로 물러났다. 커다란 덩치가 누워 있어도 두세 명은 더 누울 자리가 남았다. 라파엘이 자신 옆의 이불을 들췄다.

“팀장님도 주무십시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상관에게 한 침대 쓰자는 거냐?”

“침대… 넓습니다.”

만취해도 바래질 않는 얼굴에 나른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 참. 한 점 한 점 심혈을 기울여 깎아낸 천사상 같은 외모에 알맹이가 강아지 해피라니.

단테는 침대에 풀썩 앉아나 보았다. 깔린 침구는 보드랍고, 매트리스는 엉덩이를 푹신하게 감쌌다. 그리고 옆자리에서 인어처럼 상체만 들어 올린 라파엘이 부스럭거리며 침대 헤드를 더듬었다.

“사실 여기……, 침대에서 불을 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딘가를 만지자 삑 소리가 나며 방의 불이 꺼졌다. 과연 VIP룸이었다.

“그리고 문도 잠글 수 있습니다.”

또 한 번 삑 소리가 나고 이번엔 문가에서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방의 하나뿐인 출입구가 봉쇄되었고, 창밖에서 들어온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실루엣만을 겨우 밝혀주었다.

“…….”

“…….”

문이 잠기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단테와 라파엘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둑한 방 안, 단둘이서 서로의 형체를 응시하는 부하와 상관 사이에서 은근한 긴장이…… 흐를 리가.

“우리 후배님이 상관을 침대로 끌어들인 뒤에 불 끄고 문 잠그는 파렴치한인 줄은 몰랐는데.”

“오, 오해십니다!”

본인도 이런 분위기가 될 줄은 몰랐는지 침대 저쪽 끝에서 커다란 덩치가 안절부절못했다. 단테의 입에서 또 한 번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짧은 침묵 사이에 라파엘이 몇 번이나 침을 꿀꺽 삼켰다.

“원격으로 문을 잠글 수가 있었군. 제국의 최첨단 기술이 깔린 참 좋은 방이네.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야, 라파엘 헤인스워즈.”

“예?”

목소리를 내리깔아 이름을 부르자, 커다란 상체가 놀라 벌떡 솟았다. 이불 덮인 두툼한 가슴이 위아래로 바쁘게 오르내렸다. 단테는 라파엘에게 손을 뻗었다.

라파엘의 볼이 옆으로 죽 늘어났다.

“상관 명령으로 자라 했는데 안 자? 명령 불복이냐?”

“아니, 저, 저, 그, 자려고, 자려고, 했습니다.”

“내가 잡아먹나.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아닙니다. 더, 더듬, 더듬지 않습니다!”

더듬더듬한 말로 말을 더듬지 않는다 대답을 하다니. 상관에 대한 기만이 몹시 괘씸했다. 단테는 볼을 놓아주고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라파엘도 끔뻑끔뻑 단테를 마주 보았다.

당연히 먼저 눈빛과 침묵을 못 이겨 패배한 건 라파엘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라파엘이 포복 자세로 머뭇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단테의 허벅지에 그의 머리가 툭, 어린아이 장난처럼 닿았다. 라파엘의 그림자가 다시 들썩였다.

“헉, 죄송……!”

“어디까지 가려고. 뒤로 굴러떨어지겠다.”

“그, 그.”

“도로 와.”

단테가 침대 위로 올라와 그의 팔을 당겼다. 라파엘이 슬금슬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휴.”

해피 닮은 녀석. 단테는 이불을 걷고 라파엘의 옆자리에 풀썩 누웠다. 우당탕 귀여운 짓을 보다 보니 왠지 급격히 피곤해졌다. 방 밖의 난장판으로 돌아갈 마음도 덩달아 사라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침대에서 잠이나 푹 자고, 내일 숙취에 시달리는 팀원들을 챙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헤인스워즈.”

휴가가 끝나면 떠나갈 해피를 조금만 더 놀린 뒤에 말이다.

“예, 부르셨습니까.”

“지금 애인 있냐?”

“……없…습니다.”

“지금은 없어 보이긴 했다. 그 전엔 몇 명이나 만나 봤어?”

“…….”

단테의 옆자리에 불룩 솟은 이불이 조금 부스럭거렸다.

“어, 없었습니다.”

“네가? 한 명도?”

“예…….”

‘라파엘 헤인스워즈’라는 조건을 갖고도 여태 연애 경험이 없다고? 왜?

단테는 잠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섧게 울던 해피를 떠올렸다.

“그, 그러면 팀장님은 만나시는 분 있으십니까?”

“나? 나도 지금은 딱히…….”

불시에 작전에 투입되고 파병을 나가는 일이 잦다 보니, 깊은 연애보다는 휴가 기간 중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만을 가진 지 좀 되었다. 연애다운 연애를 한 지도 어언…….

“생각해 보니 내가 누구한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네.”

“팀장님도 연애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그건 아니고.”

“아…….”

“왜 네가 실망을 해.”

“아닙니다. 실망 안 했습니다.”

또다시 부스럭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 사귀셨던 분들이랑 그, 어, 어디, 그러니까, 뭐를… 해보셨습니까.”

“뭘 묻고 싶은 건데?”

단테는 호기심 많은 어린애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호기심만 왕성해 삐약삐약 질문을 던지는 순진한 어린애.

“애인분과 진도… 키, 키스해 보셨습니까.”

“섹스도 해봤는데.”

충격을 받은 병아리가 파드득 날갯짓을 했다. 해피를 닮은 병아리는 다소 커서 침대가 통째로 출렁였다.

“섹, 어, 그, 성교요……!”

“넌 대체 스물네 살까지 어떻게 산 거냐.”

“저, 저도 압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 장하다 장해.”

단테가 라파엘의 머리를 휘적휘적 쓰다듬었다. 라파엘은 은근히 그의 손바닥에 머리를 붙였다.

“그러면 그, 섹스, 많이… 해보셨습니까.”

“헤인스워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기본적으로 담이 작고 행동도 조심스러운 녀석이 별 질문까지 다 던진다. 보아하니 뭘 알고 물어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구, 궁금합니다.”

“뭐가. 어떻게 하는 건지? 아니면 기분이 어떤지?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아니오, 그게 아니라.”

라파엘이 단테의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커다란 몸이 반 바퀴를 도니 거리가 훅 가까워졌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팀장님께서…….”

“응. 내가.”

단테까지 몸을 조금 돌리자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졌다. 상대방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침대는 널찍했지만 길쭉한 두 남자가 여유롭게 이리저리 누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단테의 허벅지에 무언가 뜨겁고… 묵직한 것이 닿았다.

“……?”

이게 과연 떠올린 그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단테는 잠시 그가 주머니에 데운 술병이라도 숨겨온 걸까 의심했다. 허벅지를 슬쩍 움직여봤다. 놀랍게도 그 무언가는 움찔 떠는 것과 동시에 크기를 더 키웠다.

“그, 어… 어어…….”

허어, 이게……, 강아지인 줄 알았더니 남자는 남자였다.

“저, 저…….”

라파엘의 목소리는 이제 협박을 당한 수준이었다. 아니, 하반신의 거대한 총기를 장전해 겨눈 건 본인인데, 왜 자기가 총구 앞에 선 것처럼 벌벌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닌 질문…이었습니다……. 그, 그럼… 팀장님. 피곤하시죠.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꿈…….”

라파엘은 꾸물꾸물 몸을 다시 돌려 이불을 귀 끝까지 추켜올렸다. 고작 저걸 도망이라고 친 것도 어설펐다. 단테는 뒷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자, 어쩔까.

생각이 끝나기도 전부터 손끝은 그의 등선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단테가 마신 술의 양은 라파엘의 배를 넘었다. 주량 차이가 있다곤 해도 그 역시 제법 취한 상태였다. 취기는 평소에도 넘실거리던 그의 장난기를 두 배로 키워주었다.

“소위는 졸리면 좆을 세우나?”

“…….”

“라파엘 헤인스워즈 소위.”

“……예, 팀장님.”

관등성명을 불리자 또 착실하게 돌아눕기는 한다. 희미하게 내려온 달빛에 비춰 보아도 얼굴이 온통 새빨개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단테는 침대를 치며 푸하하 신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허우대만 멀쩡한 새끼. 뭐 대단한 이야길 했다고 거길 세워. 섹스란 말이 그렇게 부끄러워?”

“아닙니다. 세, 섹스란 말 때문에 세운 거 아닙니다.”

팀장님이… 먼저, 연애 얘기……, 그리고 해, 해 봤다고 하시니까……. 라파엘은 몹시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발음이 뭉개져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팀장님이, 팀장님이’ 하는 건 들렸다.

웃음을 참느라 볼이 부풀어 손등에 괸 뺨이 꾹 눌렸다. 라파엘이 이불 안으로 숨긴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나 참, 진짜…….”

“예……?”

되묻는 라파엘의 목소리에 그새 긴장이 가득 묻어 있었다.

단테는 또 라파엘의 얼굴로 와락 손을 뻗었다.

“너 진짜 왜 이렇게 귀엽냐. 우리 막내 가면 이제 심심해서 누구 놀리고 살아, 어?”

“아, 티, 팀장니, 틈즈니!”

라파엘의 두 볼이 하얀 식빵 속살처럼 늘어났다.

덩치 큰 두 군인의 장난에 커다란 매트리스가 들썩였다. 그 과정에서 또 허벅지가 마주 닿았다. 히익! 조금 전보다 훨씬 크게 숨을 들이마신 라파엘이 화다닥 이불을 자기 앞으로 끌어모았다.

허벅지에 스친 감촉을 상기하며 단테는 눈을 끔뻑였다. 생각 좀 돌리라고 일부러 짓궂게 놀렸건만, 라파엘의 하반신은 조금 전보다도 더 단단하게 흥분해 있었다.

“……이렇게 건강한 줄 알았으면 수습이라고 훈련 빼주지 말 걸 그랬네…….”

“…….”

라파엘이 뭐라 웅얼거리며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저었다. 흰 이불 밖으로 머리카락만 살랑이는 모습이 미처 다 못 숨긴 강아지 꼬리 같았다.

라파엘은 이불 속에서 또 뭐라 혼자 웅얼거렸다. 대충 단테가 괴롭힌다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었다.

어휴…. 여러모로 신경도, 손도 많이 쓰이게 하는 후배님이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치고, 어떻게 해 줄까?”

“…….”

“뭐, 도와주기라도 해?”

“도, 도와주신다는 건…….”

이 상황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디겠는가. 단테는 턱짓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그 힌트마저 못 알아듣지는 않았다.

“……도와주실… 겁니까?”

“후배님이 다 내 탓이라는데, 사수가 되어서 어떻게 모른 척해.”

단테는 라파엘이 ‘아닙니다!’ 하며 욕실로 귀엽게 도망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욕실에서 새빨개진 얼굴로 나오면 한바탕 더 놀릴 생각이었다.

누워 있던 라파엘이 몸을 일으켰다.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라파엘의 어깨에서 이불이 흘러내렸다.

“예. 그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단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라파엘의 그림자가 더욱 몸집을 키웠다. 아직 누워 있는 단테의 위에 달빛이 모두 가려질 만큼 커다란 그늘이 졌다. 커다란 덩치와 낮게 내리깐 목소리가 더해지니 제법 위압감이 느껴졌다.

“……마냥 순하더니 까불 줄도 아네.”

그러나 라파엘보다 몇 년은 산전수전을 겪어보고, 또 그의 사수로 반년을 보낸 단테는 감상이 달랐다. 표정을 굳힌 라파엘을 보면서도 미숙함이 자꾸 눈에 보였다.

얼굴에 열기가 몰리다 못해 눈이 그렁그렁하고, 가슴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들썩였다. 거리가 가까워 북 같은 고동 소리가 다 들렸다.

단테가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가 바지 위로 라파엘의 묵직한 물건을 쥐었다.

“티, 팀장……!”

“다른 사람 손도 처음?”

라파엘은 아주 잠깐 틈을 둔 뒤에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단테는 거추장스러운 이불을 발로 걷어냈다. 손바닥 안에서 뜨겁게 달궈진 성기가 움틀거렸다.

그러나 라파엘은 단테의 얼굴 양옆을 짚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단테도 선배의 자존심상 ‘그냥 해본 소리였다’라며 물러나기 어려웠다.

손가락이 바지 앞섶을 더듬어 올라가 버클을 풀고 누워 있던 지퍼를 집었다. 직, 소리와 함께 바지가 열렸다.

“가르치면 제법 잘 받아먹던 편이었으니, 기대하겠어.”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으나 단테 베일리는 사수로서, 후배의 졸업 선물로 성교육 정도는 더 해줄 마음이 있었다.

그의 후배가 평소 순진한 눈빛과는 다소 다른 얼굴로 단테를 내려다봤다.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단테의 입술은 곧 허겁지겁 앞으로 다가온 라파엘의 입술에 덮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서툴고 조급하지만, 그래서 더 숨이 가쁜 키스였다. 딱 첫 키스다웠다.

* * *

제국군은 수백 년간 제국의 막강함을 상징했다. 높은 수준의 훈련으로 철저하게 길러진 정예병들의 자긍심은 드높았으며, 귀족 가문에서는 아직까지도 한 세대에 한 명 이상은 군인으로 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 자부심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고무시키기도 했지만, 한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대부분의 부대에서 병사 및 부사관 위에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가 선다. 그러나 사관학교라는 엘리트 집단 속에 있던 신임 장교는 실전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즉, 군에서 한참 굴러 이미 뼈가 굵은 병사들의 위에 ‘사관학교를 졸업했다’라는 이유로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상관이 부임하는 것이다.

웬만해선 부사관들이 신임 소위의 적응을 돕고, 소위는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배워나갔다. 그러나 어리숙한 소대장이 무시를 당하는 일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이 문제가 수면에 올랐을 때, 제국군이 고안한 제도가 바로 ‘사수 제도’였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 제도는, 사관학교 과정을 마친 생도를 선배 중대장 아래 배치시켜 6개월간 수습 과정을 가진 뒤 본대의 배정을 받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병아리 시절을 겪어본 대부분의 선배는 제게 온 후배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 노력했다.

단테 또한 처음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후배를 몹시 귀여워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예뻐해 줄 일이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엄청 크네.”

제 손이 작은 편이 아닌데도 한 손으로 감싸기 어려운 직경이었다. 이게 군용으로 지급된 속옷에 수납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너 동기들이 화장실이나 샤워장 같은 데서 놀리지 않았냐?”

“…….”

라파엘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같은 곳을 7기수 먼저 졸업한 선배는 그 나이대 사내놈들만 득시글 모아놓은 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읏……!”

귀두 바로 아래 굴곡을 쓰다듬자 라파엘이 신음소리를 냈다. 선단의 젖은 액체가 단테의 손에 묻어났다.

어둠 속에 적응이 되자 라파엘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쯤 벌어진 입술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그에 맞춰 너른 어깨가 들썩였다. 타고난 골격이 없으면 생길 수 없는 단단한 몸이 단테의 위에서 신음했다.

“팀장님, 아…….”

낮아진 목소리가 침대 위에 내리깔렸다. 몸에 잔뜩 들어온 술이 휘발되는지 단테는 갈증을 느꼈다. 반년간 작전지역에 나가 있던 금욕의 시간 동안 자신도 꽤나 쌓였었나 보다.

라파엘의 성기를 죽 훑자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숨이 내뱉어졌다. 손바닥 안에서 살갗이 스치는 소리는 점차 젖은 소리로 변했다.

“흣, 팀장님, 흐, 흐으.”

“하아…….”

라파엘의 팔이 점점 무너져 결국 단테의 품에 상체를 기댔다. 큼직한 흉통이 단테의 가슴을 꾹 눌렀다. 숨통이 압박되자 심장이 더욱 가쁘게 뛰었다.

“팀장님.”

“응.”

“팀장님도, 하아. 서셨습니다.”

“어……, 나도 그동안 쌓여서, 흣, 야……!”

라파엘이 단테가 그랬듯 옷 위로 고간을 쥐었다.

“저도, 읏,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가르치면 빠르게 받아먹는다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실천이었다. 다소 괘씸한 면도 있지만.

라파엘은 허락도 없이 단테의 바지 앞을 열고 속옷 밴드를 붙잡았다. 그제야 이 이상 벗겨도 되겠냐 묻는 눈빛으로 단테를 바라봤다. 사실 묻기보단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반년 만에 처음 보는 후배의 무척 불손한 시선이었다. 선배에 대한 존경 대신 흥분으로 인한 정욕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단테는 라파엘의 손을 밀어내고 스스로 속옷을 내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부딪쳤다.

곧 라파엘이 다시 단테의 입술을 덮으며 마주친 시선은 거둬졌다. 다만 젖은 소리와 신음이 더해졌다.

“잘하고, 있어, 하아…….”

두 개의 성기가 한 손에 쥐어져 빠르게 훑어졌다. 단단히 맞붙은 두 성기가 마찰하며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라파엘은 역시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후배였다. 단테가 요령을 알려주고 시범을 보이자 성기를 쥐고 그가 보여준 방법대로 해냈다. 라파엘의 상체에 꽉 짜여진 근육이 계속해 움틀거렸다.

“팀장님, 흐, 아, 팀장님…….”

“하아, 계속해. 읏.”

라파엘의 허리가 들썩였다. 겨우 페팅을 하는데도 라파엘의 눈가는 쾌감의 여파로 불그스름했다. 고운 얼굴이 어느새 흠뻑 젖어 있었다.

취기에, 충동적인 성적 접촉의 쾌감까지 더해진 단테의 얼굴도 점점 더 달아올랐다. 성적 긴장으로 사납게 날이 선 듯한 얼굴에 물기가 도니 몹시 자극적인 장면이었다.

“하아, 아……, 흣.”

“예민하네.”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뿐인데 반응이 컸다. 성기에 전해지는 맥동이 이러다 부풀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빨랐다.

단테는 라파엘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 성기를 모아 쥔 손등을 감쌌다. 그리고 손가락을 오므려 성기를 세게 잡도록 했다.

저릿한 압박감과 흥분이 찾아왔다. 흐윽! 하고 라파엘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

“팀장, 팀장님, 아……!”

혈관에서 빠르게 돌기 시작한 알코올이 다시 머리로 찾아왔다. 취기가 솟구치며 머리가 핑 회전했다. 성욕으로 흐려진 머릿속이 멍해졌다.

“흐읏, 흐.”

단테보다 더 만취한 라파엘은 흔들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테의 어깨 위에 뺨을 문질렀다. 낮은 신음과 단테를 찾는 부름이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들렸다.

“아, 아……, 팀장님, 흐…….”

“아읏……!”

“아아!”

사정은 라파엘이 더 빨랐다. 울컥 쏟아진 정액이 맞붙은 성기에 끈적하게 흘렀다. 단테의 어깨에 기대어진 머리털이 신음하며 좌우로 흔들렸다.

“팀장님, 아, 흐윽……, 하아, 하…….”

목소리만 들으면 꼭 단테가 라파엘을 겁탈한 모양새였다. 단테의 아랫배를 멋대로 온통 적셔놓았으면서 말이다. 단테는 라파엘의 턱을 붙잡아 들어 올리고, 그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아직 사정하지 못한 자신의 성기 끝을 라파엘의 배에 비벼 훑었다.

“괘씸하게, 상관보다 먼저 가기나 하고.”

“흐, 죄, 죄송합니다.”

라파엘이 두 팔로 단테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손바닥이 도장처럼 흔적을 남길 것 같았다.

단테도 사정감이 직전까지 몰려왔다. 흥분이 고조된 채 그는 라파엘의 입술 안쪽 살갗을 길게 핥았다.

“후, 조금만… 입 더 벌려, 읏. 키스해.”

라파엘이 단테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며 입 안으로 두툼한 혀를 밀어 넣었다. 라파엘의 체온으로 온몸이 후덥지근했다.

“아…….”

정말 오랜만에 피부에 직접 닿은 타인의 온기였다. 그가 부하라는 생각이 완전히 휘발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흐, 으읏, 아, 큭……!”

라파엘의 배 위에 단단히 새겨진 골 위로 정액이 뿌려졌다. 단테가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닿아 있는 몸이 땀에 미끄러졌다. 단테의 정액이 하얗게 튄 뱃가죽이 움틀거렸다.

“하아, 하…….”

“팀장님.”

숨을 고른 단테가 품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부활한, 아니, 더욱 커진 하반신의 대물저격총이었다.

단테는 손끝으로 굵은 총신을 두드렸다. 두툼한 물건이 단단해져선 잘 흔들리지도 않는다.

“하하……, 젊긴 젊네. 벌써 이렇게 벌떡 세우고.”

“아, 그렇게 만지시면, 팀장님, 흐읏.”

라파엘이 헐떡이며 단테를 찾았다. 막 사정한 단테보다 그의 호흡이 더 가빴다.

단테에게 와락 달려든 라파엘의 두 팔이 흉통을 숨 막히게 감쌌다. 꽁꽁 안긴 단테의 웃음이 라파엘의 어깨 위에 퍼졌다.

“팀장님, 저, 제발…….”

“누가 팀장님을 이렇게 애타게 찾아.”

“흐, 저요, 라파엘 헤인스워즈요. 팀장님.”

단테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라파엘은 단테를 눕히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타 강아지가 냄새를 맡듯 코와 뺨을 부볐다. 함께 흔들린 머리카락이 피부를 간질였다.

“팀장님. 저 이상합니다. 팀장님 사정하시는 거 보고 나니까, 몸이.”

라파엘은 단테에게 거의 파고들듯 머리를 들이밀고 몸을 조금이라도 더 밀착하려 끙끙댔다. 단테는 침대와 라파엘 사이에 완전히 갇혔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흐. 이상합니다. 살면서 이런 적이, 흣, 없는데.”

여지껏 정조를 지켜온 싱그러운 성기가 단테의 허벅지에 기둥을 붙이고 문질렀다.

“하, 아, 아아…….”

커다란 강아지는 생애 처음으로 불이 붙은 발정과 성욕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기름을 붓고 장작을 더해준 단테도 당혹스러운 수준이었다.

“잠깐만, 헤인스워즈. 진정해 봐.”

“팀장님 앞에서, 또, 흐… 사정하고 싶습니다. 흑, 머리도 이상하고…… 성기도 이상합니다. 자꾸, 너무 흥분되어서. 또 도와주십시오, 팀장님…….”

허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위아래로 들썩였다. 단테의 허벅지 사이, 고환과 회음부를 부푼 성기가 애타게 배회했다. 라파엘이 온몸으로 치대자, 물리적인 무게 차이가 있는 단테는 덜컹거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는 라파엘의 팔을 붙잡았다. 체급은 몰라도 힘은 7년이라는 경력 차가 있는 단테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움직임이 봉인당하자 라파엘이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팀장님.” 하는 서러운 부름과 함께 단테의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흐… 이상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흥분이, 아, 안 가라앉습니다.”

라파엘이 숫제 울먹이며 애원했다. 단테는 입술을 물었다.

“……하, 너 내가… 이런 모습에 약한 거 알고 이러는 거지?”

만약 그가 강제로 덮치려 들었다면 단테는 그대로 무릎으로 찍고 발로 걷어차 비키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여운 강아지처럼 애걸복걸하면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훌쩍훌쩍 우는 후배는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단테는 붙잡은 팔을 놓아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키스해. 헤인스워즈.”

“네, 흑…….”

적극적으로 뻗어온 혀가 질척하게 얽혔다. 라파엘의 가쁜 숨이 그대로 쏟아졌다. 괴롭게 부푼 성기가 고환과 허벅지 사이, 기둥 뒤, 회음부와 엉덩이 사이를 계속해 오갔다. 자극을 받은 단테의 성기도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하아, 야. 라파엘.”

“흣, 하, 한 번도 이름으로 안 불러주시다가 지금 그렇게 부르시면……!”

라파엘이 허리를 들썩이며 울먹거렸다. 성기는 꼿꼿하게 서 끄트머리에서 눈물을 닮은 액체를 뚝뚝 흘린 지 오래였다.

단테와 라파엘 둘 다 체력이라면 계단으로 호텔의 꼭대기 층까지 달려갔다 와도 멀쩡할 사람들이었다. 손장난만 주물거리다간 날이 새도록 열기가 식지 않을 것이다.

단테 역시 이런 깔짝깔짝한 쾌감으로는 만족이 불가능했다.

“팀장님…….”

끝까지 가야 할 것 같긴 한데.

단테는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며 일그러진 고운 얼굴을 보았다.

그 역시 남자와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헤인스워즈, 동…정이지?”

“……예? 어…….”

하긴,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이미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내려졌긴 했다.

“음.”

단테는 잠시 망설이다 결론을 내렸다.

동정인 놈한테 차마 첫 경험에 깔리기까지 하라고 시킬 수는 없었다…….

단테는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바짝 당겼다. 성기가 엉덩이 사이에 꾹 눌리자 라파엘이 “히잇”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예쁜 얼굴에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비명이었다.

충동의 원인은 꽤나 복합적이었다. 턱까지 차오른 취기이기도 했고, 긴 파병 기간 동안의 금욕, 동정남의 깨끗한 도화지 위에 먹이 묻은 손가락을 긋고 싶은 마음, 자신을 원하며 뜨거워진 체온이 주는 벅참 등이 뒤섞였다.

“하여간 귀여운 새끼. 어쩌다 이런 후배가 들어와선.”

어디 원하는 대로 해 봐라. 단테는 라파엘의 목에 한 팔을 감으며 다른 한 손으론 침대 옆 협탁 서랍을 더듬었다.

예상대로 포장에 싸인 콘돔이 잡혔다. 그는 씩 웃으며 이로 포장을 찢었다. 그리고 라파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써 봐. 거기. 이제 나도 궁금하네.”

“……예!”

라파엘의 손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다행히 콘돔 쓰는 법까지 성교육을 할 필요는 없었다.

라파엘은 또 한 번 미숙하고 격정적인 반응을 보인 뒤 단테의 두 허벅지를 잡았다. 라파엘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자 단테의 여유도 다소 덜어졌다. 단테는 긴장으로 입술을 슬쩍 물었다.

졸업 선물로 섹스 강습도 모자라 동정까지 떼 주다니. 이렇게 헌신적인 선배가 또 있을까.

단테가 마지막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있을 때 본 건 정욕에 물든 얼굴이었다. 예상했던 것만큼 귀엽고, 예상보다 남자다웠다.

콘돔 포장 안에 남은 젤을 처덕처덕 묻혀 적신 손이 낯선 곳을 급히 열었다.

“끅, 아윽……!”

처음으로 남자에게 뒤를 내어주는 경험은 예상보다 많이 아팠으며, 또한 조금 더 기분 좋았다. 두 가지 다 라파엘 헤인스워즈가 상대인 것이 원인이었다.

크긴, 무식하게… 크네……. 페팅을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길쭉한 키에 뒤지지 않는 비양심적인 크기였다. 그게 단테가 드문드문 끊어진 기억 속에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었다.

팀장님, 팀장님……, 흐, 단테, 팀장님.

밤이 지나는 동안 단테는 수백 번의 부름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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