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6)

2-5.

단테는 라파엘의 손에 이끌려 아까의 호텔로 돌아왔다. 라파엘이 묵는 객실은 현관을 지나면 테이블과 소파가 있고, 그 안쪽에 침대와 협탁이 놓인 싱글룸이었다. 단테는 손목을 붙잡힌 채로 테이블을 지나치며 입 댄 흔적이 거의 없는 식사를 발견했다. 환한 실내등 아래서 본 라파엘의 얼굴은 얼핏 본 것보다 더욱 야위었다.

“라파, 읏, 너, 그동안 밥은…….”

그러나 질문이 채 다 완성되기 전에 라파엘이 다급히 입을 맞춰왔다. 단테의 몸이 주춤주춤 침대를 향해 밀려났다. 그래, 지금 밥이 중요하겠는가. 제국군의 강인한 의지로 둘 다 한 끼쯤 굶어도 상관없었다.

입을 섞으며 라파엘은 단테의 군복 단추를 쥐었다. 위에서부터 단추를 풀어 내려가는 손을 도와 단테는 아래에서부터 단추를 열어나갔다. 그리고 라파엘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군복 상의에서 어깨를 빼냈다. 그 모습이 의아해 단테의 얼굴을 확인한 라파엘은 눈에 띄게 달아오른 두 뺨을 발견했다.

“팀장님 이런 모습 처음입니다.”

단테가 라파엘의 얼굴을 흘끗 보고는 쑥스러움을 감춘 웃음을 지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니까.”

“평소라면 그러지 마시라고 말하겠지만……, 이번엔 제가 너무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래, 아니까 오늘은 네 마음껏……, 아읏.”

단테의 등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 위를 덮치듯 올라탄 라파엘이 단테의 군복 안 티셔츠를 허겁지겁 들춰 올렸다. 반쯤 꼿꼿해진 가슴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다가가려던 얼굴이 턱 붙잡혔다. 라파엘은 뭘 강탈당하기라도 한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아니… 나 너 찾느라 뛰어다니다 왔어. 급하면 박는 건 괜찮은데, 핥진 마.”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라파엘이 단테의 어깨를 잡아 누른 채 말했다.

“그럴 땐, 차라리 같이 씻고 하자고 말씀해주십시오. 급하면 박아라, 팀장님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거 싫습니다. 매번 팀장님이 뒤로 물러나주시는 것 같은…….”

“…….”

“팀장님이 저만큼 기분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라파엘의 두서없는 말이 어렴풋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뜨끔한 단테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씻고 할 여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라파엘은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도 훌렁 벗어 널찍한 침대 한쪽으로 던졌다. 2주 동안 확실히 살이 내렸다. 단테가 라파엘의 흰 상체로 손을 뻗었다. 굽힌 손마디에 가슴 위의 돌기가 닿자 라파엘이 흣, 하고 신음했다.

조금 더 다급한 손길로 그는 단테의 버클을 열어 바지를 풀고 속옷과 함께 끌어 내렸다. 단테를 실오라기 한 점 없이 만들고는 자신의 남은 옷가지도 벗어 침대 옆으로 던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서로의 맨몸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팀장님.”

“…….”

“정말로… 정말로 많이요.”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이 끝났음을 낱낱이 새기듯 라파엘은 단테의 몸을 두 손으로 더듬어 내렸다. 군살 한 점 없이 마르고 단단한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 위에서는 손끝이 조금 더 머물렀다.

“여기 멍 크게 들었습니다.”

“아.”

단테가 라파엘이 짚은 허리 부근을 내려다봤다.

“CQB(근거리 격투)훈련 계속하니까.”

라파엘이 두 손으로 단테의 얼룩덜룩한 몸 곳곳을 더 만지작거렸다. 단테가 라파엘의 손목을 잡아 어깨의 푸르스름한 멍으로 가져갔다.

“이건 네 생각하다 부딪힌 거야.”

“정말, 입니까……?”

“응.”

라파엘은 얼떨떨하면서도 조금은 감격한 것처럼 보였다. 상처에 대한 걱정과 단테의 마음에 대한 기쁨이 어우러져 이상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라파엘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어깨에 쪽쪽 입을 맞췄다. 단테의 작은 상처만 보아도 퍽 속상해하던 얼굴에 희미하지만 만족감이 걸렸다.

“아 참, 팀장님.”

“응?”

“포지션 얘기 진심이었습니다. 혹시 팀장님께서 삽입을 원하시면 바꿔드릴…….”

말을 꺼내놓고도 두렵긴 한지 말끝이 흐려졌다. 단테는 그 모습을 보고 또 속절없이 웃고 말았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단테가 죄책감을 느끼는 지금 상황을 십분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다.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고 이런저런 요구를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순한 강아지는 단테가 원하는 대로 양보를 하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으니…….

단테는 기특해해주는 대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러면 앉아서 다리 벌려 봐.”

“…….”

막상 바꿔보자는 말이 나오자 라파엘은 숨을 삼켰다. 하지만 순순히 단테의 위에서 물러나 무릎 사이를 슬금슬금 열었다. 단테가 열린 다리 사이로 쑥 다가가자 시선이 파르르 흔들렸다.

단테의 손끝이 허벅지 안쪽 근육의 갈라진 틈을 타고 미끄러져 중심으로 다가왔다. 손이 스친 곳이 간지러운지 라파엘이 허벅지를 움찔움찔 떨었다. 탄탄한 두 허벅지 사이엔 벌써 천장을 향해 꼿꼿이 선 성기가 우람하게 자리했다. 여전히 색은 꽃 같은 분홍빛이건만, 크기는 최소한 꽃나무 정도는 비유되어야 할 사이즈였다. 주인을 닮아 예쁜데 참… 마냥 예쁘다고만 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서 박히겠다고 하면 죄짓는 거지.’

그야말로 제국 최대의 자원 낭비였다. 제국의 녹을 받는 성실한 공무원 단테는 차마 그런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장난기가 떠오른 선배는 라파엘과 달리 능숙하게 생각과 정반대의 표정을 연기했다.

“다리 더 활짝 벌려야지. 내가 자세히 봐야 부드럽게 해줄 수 있잖아.”

무릎을 밀며 단테가 긴 곡선을 그린 입술을 핥았다. 라파엘이 설렘과 울먹임 어느 중간에 있는 신음을 훌쩍이며 허벅지 사이를 조금 더 떨어뜨렸다. 단테는 라파엘의 성기 기둥을 쥐었다.

“흐읏……!”

라파엘의 허리가 들썩였다. 따뜻하고, 잘 달아오르고, 또 잘 울고. 단테는 또 한 번 주인과 닮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귀두 끝 촉촉이 젖은 곳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러곤, 라파엘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원래 이렇게까지 하려던 생각은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든 라파엘을 예뻐해 주고 싶단 충동뿐이었다. 라파엘의 순진한 머릿속과 달리 살짝 찌든 어른의 머릿속은 이 방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허억……! 아, 흐, 아……!”

짙은 분홍빛 귀두와 붉은 혀가 마주 닿았다. 이어 성기 끝이 단테가 벌린 입 안으로 삼켜지기 시작했다.

“티, 팀장님, 흣, 아 마, 말도 안 돼. 팀장님, 흐아!”

단테의 이마에 닿은 아랫배가 당황으로 들썩였다. 단테의 어깨 양옆에 있는 허벅지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르작거렸다. 단테는 그 반응을 즐겁게 보며 벌린 입을 점점 더 내렸다.

선단과 그 아래 기둥 반 뼘을 머금었을 뿐인데 벌써 턱이 뻐근했다. 커다란 귀두가 입 안을 지나 좁아지기 시작한 목구멍을 누르자 숨이 막혔다. 딱 라파엘다운 풋내가 입 안 가득 느껴졌다.

‘반도 못 삼켰는데.’

눈앞에 남은 성기를 보고 있자니 호기롭던 용기가 쑥 가시고 허탈한 웃음만 났다. 물론 입이 한껏 벌어져 있으므로 웃음은 속으로만 지을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남자의 성기를 입에 담아본 것치고 놀랍도록 거부감이 없었다. 모양과 색이 예뻐서 그런가, 두꺼운 것이 목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도 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한 혀로 하는 애무는 단테가 생각해도 실력이 형편없었다. 다행히 라파엘은 단테의 서툰 펠라에도 몹시 격정적인 반응을 해주었다.

“아, 거기, 흐, 입 안, 뜨겁습니다. 팀장님 얼굴, 지금 너무 야합니다. 아……!”

단테는 성기를 뱉고 기둥을 길게 핥아 내려와 기둥 아래 음낭도 혀로 훑었다. 그 순간, 단테도 함께 흔들릴 만큼 라파엘의 몸이 덜컹 튀어 올랐다. 라파엘이 자신의 배와 부딪친 단테의 이마를 급히 쓰다듬었다.

“죄, 죄송합니다, 흐, 아, 저, 저 너무 흥분돼서.”

“됐으니 놔. 안 아팠어. 그렇게 펄떡일 정도로 좋아?”

“흣, 당연히, 무, 무서울 정도로 좋은데, 왜, 가, 갑자기 이런 걸, 해주시고, 흣.”

“좋다니 됐다. 받기나 해.”

단테는 다시 입을 벌려 라파엘의 것을 입에 담았다. 그새 완전히 발기한 성기를 입 안에 욱여넣고 이번엔 볼을 좁히며 성기를 짜내듯 빨았다. 라파엘이 폐에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숨을 격하게 들이마셨다.

그대로 혀끝으론 귀두 아래를 자극하며 고개를 앞뒤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같은 남자니까 기분 좋을 곳 정도는 얼추 예상해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라파엘은 단테가 예상한 것보다 더 격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흐아아, 아무래도 꿈인가 봐. 흐윽, 꾸, 꿈이면, 안 되는데. 아읏, 끅, 저, 노, 녹을 것, 아, 좋아요.”

라파엘은 몸을 섞을 때면 단테보다 더 느끼고 더 크게 신음하곤 했다. 하물며 지금은 단테의 입이 막혀 있으니 호텔 방 안은 라파엘의 신음소리만 가득 울렸다.

“팀장님, 아, 너무, 야해. 흣. 꿈이면, 어떡하지. 팀장님, 뜨거워요. 좋아, 흐윽……!”

입 안에서 성기가 입천장을 두드리며 크게 꺼덕였다. 성기가 더욱 커다랗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발갛게 물든 귀두 가운데 작은 구멍에 묽은 액체가 방울방울 맺혀 흘렀다. 단테는 성기 뿌리를 쥐고 기둥에 혀를 넓게 붙였다. 그 때였다.

“팀장니, 흐아……! 아, 흐아앗……!”

단테의 목 안에 툭, 묵직한 액체가 쏘아졌다. 놀라 입을 떼자 뺨으로 흰 정액이 튀었다. 성기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여러 번 맥동하며 정액을 뱉어냈다. 순식간에 단테의 입가와 뺨을 뒤덮은 액체가 턱을 타고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티, 팀장님…!”

라파엘은 급하게 시트를 들어 얼굴을 닦아주었다. 단테는 뺨에 묻은 정액을 손끝으로 쓸어서 눈앞에 들어보며 웃었다. 라파엘의 심장이 덜컹였다.

평소에도 단테는 몸을 섞을 때 라파엘보다 여유롭지만, 지금은 뭐랄까… 여유 이면에 숨기고 있던 무언가를 한 꺼풀 내려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된 여유를 차리지 않은 지금 모습이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단테가 여태 당황해 입을 뻐끔이는 라파엘을 보고 씨익 웃었다.

“꿈 아니야 바보야. 나 열 번도 안 빨았다. 섹스할 땐 그렇게 집요하면서 기껏 빨아주니 왜 이렇게 빨리 싸.”

눈썹을 휘며 짓궂게 묻자 라파엘이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티, 팀장님이, 이, 입으로 해주시니까 너무 흥분되고, 또 팀장님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서…….”

단테는 입가에 아직 묻은 정액을 마저 닦아냈다. 희고 불투명하며 입 안에서 느껴졌던 풋내가 났다.

“사정도 오랜만인가 보네.”

“그것도 팀장님을 못 만나서…….”

“자위도 안 했어?”

라파엘의 얼굴이 체리처럼 곱게 익었다. 그러더니 울먹이며 단테를 덥석 끌어안았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위도 못 하고 훌쩍훌쩍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라파엘의 모습이 그려졌다. 단테는 제게 엉겨오는 커다란 몸을 받아 안아줬다. 라파엘이 끙끙 몸을 들썩이며 단테의 손길을 더 보챘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그러니 마저 하자.”

라파엘이 단테의 얼굴 양옆을 감싸 당겼다. 닦아내고 삼켰다 해도 그의 정액이 조금은 남아 있을 텐데 라파엘은 아무 거리낌 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흣, 아…….”

“아, 하아, 응…….”

입 안에서 서툴게 사각형을 그리던 때가 선한데, 이제 라파엘은 제법 변칙적으로 입 안 곳곳을 탐색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단테의 벗은 몸을 적극적으로 만졌다.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나누는 키스는 단순히 입을 섞는 것보다 더 질척한 분위기를 풍겼다.

“흐읏, 으응.”

단테의 손이 지날 때마다 라파엘은 몸을 움찔움찔 진동시켰다.

“못 본 사이 예민해진 것 같은데? 여기 스칠 때마다 우네.”

“팀장님이 만지셔서 그렇습니다. 흣, 가, 가슴 너무 많이 만지지 마세요…….”

라파엘이 어깨를 접고 가슴 앞에 팔을 교차했다. 졸지에 퍽 파렴치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수줍은 자태와는 별개로 체력 좋은 군인이자 건강한 나이 스물네 살, 근 한 달간 자위도 못 했던 라파엘의 성기는 벌써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 있었다. 단테가 라파엘의 어깨 위로 팔을 감았다.

“이번엔 안에서 가야지.”

라파엘이 얼굴에 기대를 잔뜩 떠올렸다가 어, 어… 하며 우물쭈물했다.

“팀장님, 저, 제가, 아래에서…….”

라파엘은 망설였지만 곧 ‘저는 팀장님과 함께라면 뭐든 좋아요.’ 하는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굴에는 단테를 안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지지 못하고 넘실거렸다. 단테는 라파엘의 발그레한 뺨을 꼬집었다.

“안으로 느끼게 만든 장본인이 그러면 안 되지.”

라파엘이 단테를 끔뻑끔뻑 보았다. 단테는 목을 가다듬었다. 역시 이 말은 좀 민망하긴 했다.

“네 좆 맛있고, 그래서 포지션 불만 없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젤이랑 콘돔 가지고 와.”

“예!”

어디 출병이라도 갈 기세로 씩씩하게 대답한 라파엘은 침대 옆 협탁에서 곧장 단테가 명령한 걸 꺼냈다. 콘돔 포장을 이로 찢어 손에 씌우고 그 위에 젤을 바르는 모습을 보며 단테가 어이없이 웃었다.

“그게 왜 협탁에서 나와?”

“예전에 팀장님이 혹시나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흠, 그,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팀장님, 저 그럼…….”

라파엘이 지그시 단테의 어깨를 눌렀다. 이불 위에 도로 눕혀진 단테의 위로 라파엘이 올라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테를 팔과 다리 사이에 가둔 듯한 체위였다.

그가 고개 숙여 뺨에 쪽, 쪽 입을 맞췄다. 라파엘이 이 자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이렇게 마음껏 입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파엘은 단테의 얼굴 곳곳에 입술을 문지르며 그의 허벅지 사이를 벌렸다. 흥건히 묻은 젤이 먼저 입구에 문질러졌다.

“읏, 응…….”

엉덩이 사이에 차가운 액체가 닿자 단테가 어깨를 뒤척였다. 손끝이 조심스레 틈새를 열었다. 오래 몸을 섞지 않은 만큼 단테 스스로도 입구가 뻑뻑하다는 게 느껴졌다.

“팀장님, 표정, 읏, 이런 모습 아무 데서도, 보여주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그럴 일이, 하아, 있겠냐.”

“약속하신 겁니다. 저만, 제 앞에서만, 야한 표정 지으셔야 합니다.”

“알겠어. 알겠, 으니까… 아…….”

형형하게 뜬 눈과 반대로 안쪽을 열어가는 손가락은 신중했다. 내벽이 완전히 젖기를 기다렸다가 손가락을 안으로 더 넣고, 안쪽이 풀리길 기다렸다가 다음 손가락을 넣었다. 그렇게 단테가 아픈 겨를을 느끼지 못하게 천천히 안을 열어갔다.

이 속도가 조급한 건 오히려 단테였다. 얘는 이게 몇 번째 섹스인데 여태 심지 들어간 폭탄 옮기듯 조심히 굴까.

“그냥 해, 흐으.”

배 속 깊숙이 라파엘을 담고 그의 등에 두 팔을 감은 채 흔들릴 때의 쾌감을 알고 있으니 더욱 몸이 달았다.

“팀장님 너무 야해서, 하아, 저도 참기 힘든데, 제가 오늘 두세 번으로 못 끝낼 것 같아, 잘 풀어야 합니다.”

“그냥 박아. 섹스하다가 좀 다쳐도, 안 죽어.”

“팀장님 다치게 하면 제가 혀 깨물고 죽을 겁니다.”

“…….”

흥분을 참는 라파엘의 숨도 이미 거칠어졌으나 그는 기어코 어깨를 들썩이며 손가락을 늘렸다. 손가락이 젤로 젖은 안쪽 이곳저곳을 더듬을 때마다 단테의 허리가 들썩였다. 연상의 자존심으로 빨리 네 걸 넣어 달라 보채지는 못하고 입술만 문 채, 조금씩 자신의 아래가 흐물흐물하게 풀려가는 감각을 그대로 느껴야 했다.

한참 뒤, 흥건하게 젖은 소리와 함께 긴 손가락들이 주르륵 빠져나왔다. 허전해진 구멍이 뻐끔일 틈도 없이 라파엘이 다리 사이에 바짝 자리를 잡았다.

“이제, 하아. 넣겠습니다. 아프시면 꼭 말씀해주십시오.”

단테의 안은 그렇게 조심스레 만졌으면서 성기에 콘돔을 씌우는 손길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단테의 비부를 그대로 보고 있던 만큼 그 이상으로 인내한 라파엘은 이미 성기를 조금 전보다 더 묵직하게 부풀린 채였다.

“아윽…….”

곧 단테의 안으로 라파엘의 성기가 들어왔다. 단테는 라파엘의 목을 끌어안은 채 잇새로 신음을 흘렸다. 아래가 벌어지며 라파엘의 체온이 가까워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쾌감이 너무나 짙었다.

“흐, 팀장님, 읏, 아…! 너무, 조입니다, 흐읏.”

라파엘이 단테의 얼굴에 온통 입을 맞추며 안으로 진입했다.

아래를 풀어줄 때의 인내심은 이미 다 닳은 모양이다. 귀두가 입구를 통과하기 무섭게 라파엘이 허리를 쾅 찍어 눌렀다. 손가락과는 비교도 안 되는 넓이로 안이 벌어지며 단테가 몸서리쳤다.

“아, 오랜만이라, 흐읏.”

“팀자, 팀장님, 하아.”

몸이 부딪칠 때마다 단테의 몸이 뒤쪽으로 밀려났다. 라파엘은 단테가 밀려난 만큼 골반을 붙잡아 자신의 쪽으로 쑥 잡아당겼다.

‘하여간 힘도 좋아…….’

온몸이 덜컹덜컹 흔들리며 박히는 어지러운 감각 속에서도 단테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의 위로 가쁜 신음이 쏟아져 내렸다.

“하아, 하……!”

기분 좋다, 섹시하다, 멋있다, 야하다. 몸을 섞을 때면 온갖 감상을 쏟아내기 바빴던 라파엘은 오늘만큼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두 팔로 단테의 무릎 아래를 단단히 받치고 ‘팀장님’ 하는 부름과 함께 거친 신음만을 뱉으며 안을 짓찧었다.

“팀장님, 읏, 단테, 하아……, 단테.”

부름 중에는 평소라면 허락받지 못했을 호칭도 섞여 있었다.

정성껏 풀어주었어도 손가락이 닿지 못한 깊은 곳은 빠듯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라파엘의 거센 움직임에 안쪽도 금세 열렸다.

“라파, 흐, 읏…….”

“팀장님, 흐… 제가, 너무, 좋아합니다.”

“나도, 알고, 있… 어. 읏!”

모를 수가 없으며, 또한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테와 몸을 섞는 사람은 이전과 한결같이 다정한 섹스를 선사해 주었다. 수없이 받는 입맞춤도, 단단히 안긴 등허리도 모두 같은데 이전보다 더 벅차올랐다. 따뜻한 파도가 치는 바다가 가슴께에서 넘실거리는 기분이었다.

두터운 성기의 지름만큼 활짝 벌어진 내벽이 성기에 빠르게 마찰되었다. 라파엘이 끄트머리만 남기고 성기를 쭉 잡아 뽑았다가 거세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으읏……!”

라파엘은 그동안 쌓인 그리움과, 설움과, 그리고 정욕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시트를 그러쥔 단테의 손등에 뼈마디를 따라 움푹 굴곡이 졌다.

“라파엘…, 읏, 너무, 흐, 아, 거기.”

라파엘의 온 신경이 단테의 움직임, 목소리, 감촉에 쏠렸다. 그의 시야에 단테가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신음하는 광경이 선명히 담겼다. 탄탄한 상체가 라파엘의 움직임을 따라 움틀거렸다. 부푼 유두가 꼿꼿이 섰고 곧게 뻗은 목덜미가 붉었다.

무엇보다 가장 라파엘을 흥분시키는 건.

“아, 읏, 흐아…….”

늘 자신보다 어른스럽고 단단해 보였던 얼굴이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 단테가 쾌감에 흐려진 얼굴을 한 채, 라파엘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떨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강직함을 지키던 고동색 눈동자가 젖어 흔들렸다.

“아, 거기, 라파엘, 읏, 좋아…….”

라파엘의 머릿속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그는 두 팔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대로 안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흐윽!”

단테의 눈앞이 번쩍번쩍 튀었다. 라파엘과의 섹스는 원래 뭉근한 아픔과 쾌감이 함께 존재하긴 했지만, 이렇게 숨이 막히게 몰려 본 건 처음이었다. 배 속이 이상했다. 성적 흥분에 더해져서 간질간질하면서도 묵직한 무언가가 온 내장을 두드리는듯했다. 끝도 모르게 흥분이 치솟았다.

“라파, 흐윽, 라파엘, 아, 나, 거기, 아아!”

처음으로, 섹스 중 라파엘의 사정보다 단테의 사정이 빨랐다. 단테의 성기에서 솟은 액체가 아랫배로 투둑 떨어졌다. 내벽이 사정의 짙은 쾌감을 견디며 꽉 조여들었다.

“하으, 흐……!”

단테는 눈을 세게 감으며 주체가 안 되는 감각에 허덕였다. 찡그린 눈가에 고인 눈물이 툭 흘렀다. 처음 그걸 보고 단테가 아파서 울었다는 오해를 했던 라파엘도 이제는 그의 선배가 흥분하면 귀한 눈물을 보여준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차가웠던 한 달의 시간을 견딘 라파엘은 그 모습에 더욱 몸이 뜨거워졌다. 얼굴이 온통 흥분으로 뒤덮였다.

“단테, 너무, 너무 좋아요. 좋아해요.”

“잠까, 아, 잠깐만, 흣. 나 조금만, 쉬고… 하윽! 라파엘, 흐, 나, 방금, 아!”

막 사정해 가라앉은 단테의 성기가 허리의 덜컹임과 함께 흔들렸다. 라파엘은 단테가 여운을 다 가라앉힐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내벽을 찔렀다. 흥분에 겨워 더 서툴러진 동작은 단테의 안쪽 곳곳을 인정사정없이 짓뭉갰다.

“라파엘, 잠깐, 진정해 봐, 기다려, 나, 이상, 라파엘! 흐윽!”

사정 후 예민해진 곳을 마구잡이로 자극당하며 쾌감의 역치가 아득히 넘어갔다. 단테의 어깨와 팔다리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허벅지를 지나 발끝까지 쾌감으로 저릿할 정도였다.

단테는 자신의 뺨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다. 흥분에 겨워 눈물을 줄줄 떨굴 지경까지 온 건 난생처음이었다.

“흐아, 아아!”

괴로울 정도로 몰아붙여지는 쾌감이 막 사정한 성기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겨우 반쯤 단단해진 성기에서 물처럼 무언가가 줄줄 흘렀다. 라파엘이 어찌나 세게 몸을 붙이는지, 그가 허리를 물렸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골반뼈가 울리고 엉덩잇살이 철썩 부딪쳤다.

“팀장님, 단테, 하아, 좋아. 저, 너무, 팀장님. 하아, 팀장님……!”

“흑, 아! 라파엘, 흐, 하윽. 아! 아!”

라파엘은 흐물하게 풀린 내벽을 계속해 짓찧었다. 안쪽이 울릴 때마다 입에서 낯선 신음이 터졌다. 단테는 조금 전 펠라티오를 할 때 사정이 빠르다고 타박한 자신을 깊이 반성할 지경이었다. 지금 그는 차라리 빨리 안에 싸고 움직임을 멈춰달라고 빌고 싶었다.

“하아, 아, 흑! 거기, 너무, 흐아!”

사정 후 열기가 가라앉을 틈도 없이 거센 움직임을 받아내는 단테는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단테의 머리가 시트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단단한 팔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아! 라파엘, 제발, 흐! 아, 아아아!”

라파엘이 허리를 아래로 당기며 안쪽을 세게 짓찧었다. 실제로 침대가 울렸는지 환청인지는 모르겠지만 단테의 귓가에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허공에 떠 있는 발끝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군화 속에서 이리저리 상처 난 발가락이 안으로 꽉 말려 들어갔다.

단테의 안을 사정없이 짓쑤신 라파엘은 그로부터 한참 뒤, 가장 깊은 안쪽에서 성기를 크게 움틀거리며 사정했다.

“흣, 팀장님, 아……!”

안쪽이 꽉 조여들어 라파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테는 소리도 내지 못하며 허리를 꺾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크게 뜨여진 고동색 눈동자에서 순간 초점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윽고 라파엘은 막힌 둑이 터지듯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하……. ……헉, 티, 팀장님!”

사정을 마치고 나서야 라파엘도 이성이 돌아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니 축 늘어져 가슴만 겨우 할딱이는 단테의 모습이 보였다.

라파엘이 성기를 뽑아냈다. 새빨갛게 부었을 것이 분명한 안이 문질러지며 단테가 신음했다. 으, 흣……. 단테의 성기에선 아직도 묽은 액체가 흘렀다. 단테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마저 떨어뜨리며 폭풍처럼 몰아쳤던 쾌감의 잔재에 연달아 신음했다.

“팀장님, 흑, 괘, 괜찮으세요?”

라파엘이 쓰러진 주인의 주변을 도는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조금 전까지 오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도로 새끼강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단테는 섹스의 마지막에 찾아온 충격 때문에 뺨을 문지르는 라파엘을 토닥일 수가 없었다.

단테는 허공을 향해 황당하게 웃었다.

“……와, 이게, 하, 무슨…….”

하하, 말도 안 돼……. 단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래를 내려다봤다. 손댈 여유조차 없어 만져주지 못했던 성기 주변에 튄 액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뒤만을 쑤셔져, 사정하지 않고 갔다. 단테는 확 붉어진 얼굴을 손등으로 가렸다.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프, 아프십니까? 제, 제가 멈췄어야 했는데…….”

다행히 라파엘은 단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라파엘이 눈물 맺힌 단테의 눈가를 핥았다. 잠시간 더 멍하니 있던 단테는 겨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

얼굴에 몰린 열기가 가라앉질 않았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은 아무리 단테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가는 라파엘이라 해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라파엘은 평생 몰라야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못 참아서. 죄송해요…….”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죄송할 건 없고…….

사죄를 받기엔 단테의 배 위에 뿌려진 정액과 흥분으로 여태 벌름이는 아래를 설명할 말이 없었다. 굳이 미안하단 말을 들어야 한다면 건장한 제국 남성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일에 대해서일까……. 어느 쪽이든 이 강아지가 시무룩할 이유는 없었다. 단테는 후들거리는 팔을 뻗어 라파엘의 얼굴을 감싸 당겼다.

“라파엘.”

“예.”

“내가 싫단 말 했어, 안 했어.”

“아, 안 하셨습니다.”

“그럼 싫었던 거야, 좋았던 거야.”

“좋았던 거…입니까?”

“지금 내가 싫은데 억지로 섹스한 표정 같아?”

“아닙니다.”

“그럼 뭐겠어.”

“섹스한 거, 좋으셨습니다…….”

단테가 정답이라는 듯 뺨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라파엘은 수줍은 건지 감격한 건지 모를 미소를 띠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싫으면 나는 너 바로 멈췄어. 그러니 섹스할 때만큼은 적당히 눈치 봐서 밀어붙여도 돼. 이번처럼. 아니, 음, 이번보다는 좀 살살.”

“적당히 눈치 봐서 밀어붙인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고 시정하겠습니다.”

밀어붙인다. 밀어붙인다. 새로운 섹스 팁을 습득한 라파엘이 단테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배 맞출 때 빼곤 아직도 강아지 아니면 병아리다. 단테가 라파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귓바퀴, 귓불 할 것 없이 귀가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팀장님.”

라파엘이 단테의 가슴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팀장님 너무 좋습니다. 팀장님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섹시합니다. 팀장님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정맥이 있으면 큰일인데.”

라파엘은 벅찬 고백에 꼭 찬물을 끼얹는 단테를 뾰로통하게 흘겼다.

“그래 알았어. 고맙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세상에 너밖에 없다.”

“팀장님 멋있는 건 이미 여기저기 다 퍼져버렸지만 섹시한 건 저만 알 겁니다. 아까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죠?”

“그래……, 대체 어떻게 지켜야 되는 약속인진 모르겠지만.”

라파엘이 금세 배시시 웃으며 양 뺨, 콧등, 이마, 입술에 정신없이 입술을 가져왔다. 커다란 대형견 아래 깔려 온 얼굴을 핥아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팀장님 저도 뽀뽀해주시면 안 됩니까?”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한 사람에게 그…게 받고 싶어?”

단테야말로 키스, 섹스는 말로 해도 뽀뽀는 입 밖으로 꺼내질 못했다. 그리고 라파엘은 ‘해는 아침에 뜨지?’라는 질문을 받은 것보다 더 당연하게 “예.”하고 대답했다.

“……얼굴 가까이 해봐.”

라파엘이 단테의 앞으로 냉큼 뺨을 가져왔다. 단테는 라파엘의 턱을 붙잡고 머뭇거렸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지금… 뽀뽀나…….’

키스보다 이게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줄은 몰랐다. 단테는 눈을 딱 감고 라파엘의 뺨에 쪽 입을 붙였다. 입술이 흰 볼을 말랑하게 눌렀다가 떨어졌다.

“……만족해?”

말로 하는 대답은 굳이 필요 없었다. 라파엘은 해님 같은 표정을 짓고 저러다 목뼈가 나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은 웃으실 때나, 섹스할 때나, 화내실 때나, 부끄러워하실 때나 왜 다 멋있는 겁니까.”

취향 참……. 그래도 몇 번을 들으니 이제 좀 익숙해지긴 했다.

남자를 상대로 첫 바텀을 해본 사람의 흔한 딜레마는, 남자인 자신이 깔려 우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고민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매번 몸을 섞을 때마다 부끄러워질 정도로 쏟아지는 칭찬 덕에 단테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넌 왜 웃을 때나, 섹스할 때나, 화낸… 적은 없구나. 부끄러워할 때나 다 귀엽냐.”

라파엘이 입술을 움찔이더니 단테의 어깨 위에 머리를 폭 묻었다. 몽실몽실한 금색 머리카락 위로 단테의 눈에만 보이는 글씨가 둥둥 떠올랐다. 「나를 더 귀여워하세요.」 단테는 거부하지 못하고 머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선 지키자고 몇 번을 생각했는데, 너 이럴 때마다 지킬 수가 없다.”

“팀장님.”

라파엘이 고개를 들고, 단테의 얼굴 옆을 짚어 쑥 다가왔다.

“그 선, 제겐 다시는 지키지 마세요.”

채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연녹색 눈동자와 고동색 눈동자가 마주했다.

“공사 구분 잘 못했던 행동들 시정하겠습니다. 공적인 부분에서 팀장님이 신경 쓰시는 부분이 어딘지 이제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철저히 하겠습니다.”

라파엘이 단테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러니 사적인 영역에선 제게 하는 말과 행동, 어느 것도 고민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주십시오.”

“…….”

“제 선은 팀장님의 선보다 훨씬 안쪽에 있습니다. 팀장님은 아직 그 근처까지 오시지도 못하셨습니다.”

단테는 대답 대신 라파엘의 얼굴을 감싸 당겼다. 라파엘은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왔다. 라파엘의 얼굴을 옆으로 돌리게 한 단테는 조금 전 입을 맞췄던 반대편 뺨에 입술을 붙였다. 다음으로는 뒤통수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얼굴을 꽉 붙잡고 각도를 멋대로 휙휙 바꾸는 동작은 무드 없기가 유격 자세를 배울 때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입맞춤이 라파엘의 광대를 씰룩이게 했다.

“그렇게 좋아?”

라파엘이 냉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았고, 그리고, 여기도 팀장님 안에서 뽀뽀 받고 싶은데…….”

라파엘이 단테의 엉덩이에 성기를 슬그머니 문질렀다. 한 달 만에 만난 라파엘의 체력은 아직 건재했다. 그리고 단테도, 라파엘을 이 정도로 놓아주기는 아쉬울 만큼 그리움이 컸다.

“한 발 뺐으니, 나도 좀 여유롭게 즐겨볼까.”

단테의 얼굴에 평소 몸을 섞을 때와 같은 미소가 올라왔다. 이렇게 웃는 단테가 몸을 흔들며 자신을 리드할 때 어떤 쾌감이 느껴지는지 아는 라파엘도 오싹하게 몸을 떨었다.

단테가 라파엘의 목덜미 아래, 등이 시작하며 오목하게 파인 부분을 꾹 눌러 몸을 당겼다.

“더 해. 마음껏.”

라파엘의 아랫배에 단테가 다시 흥분한 증거가 닿았다. 침대 위의 콘돔을 찾는 손이 조급했다. 라파엘이 다시 콘돔을 씌우는 동안 단테는 그의 어깨를 물어 작은 흔적을 냈다.

단테도, 라파엘도 보다 적극적이었던 밤은 평소보다 격하면서도 다정하게 이어졌다.

* * *

“팀장님…….”

씻고 나와 물기가 조금 남은 단테의 머리카락에 입술이 쪽, 쪽 닿았다. 밤새도록, 심지어 욕실에서 몸을 씻을 때마저도 라파엘의 입술은 단테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온몸에 입을 맞춘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 있는데도 라파엘은 입맞춤을 계속했다. 넘치는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습은 사랑스러웠지만, 이제 단테도 좀… 꼬옥 안겨 있는 사지의 자유를 되찾고 싶었다.

“라파엘, 무거워. 좀 떨어져 봐.”

“…….”

라파엘이 말없이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작은 물방울이 단테의 얼굴로 튀었다. 머리카락과 함께 좌우로 움직이는 이마 한가운데가 살짝 불긋했다.

결국 단테는 그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안겼는지 안겨 있는지 모를 상태로 몸의 물기를 싹싹 닦여졌다. 욕실에서의 마지막 한 번만 없었어도 이 정도로 지치진 않았을 것이다. 좀 전에 욕실에서 있었던 마지막 섹스와 대화는 라파엘의 이마에 새겨진 딱밤의 원인이기도 했다.

‘흣, 라파엘, 아, 이제 그만. 씻기로 했잖아…….’

그러자 멈칫한 라파엘이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팀장님께서 섹스할 땐 적당히 눈치 봐서 밀어붙이라고 하셨습니다.’

‘야, 지금은 흣.’

‘이, 입은 그만이라고 하시는데 몸은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흣, 야, 너, 그 말, 또 이상한 거 검색해 봤… 아……!’

하여간 인터넷 속 무한한 정보가 어린애 여럿 망쳤다. 단테는 라파엘의 휴대폰을 해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터넷을 끊어놓겠다고 이를 갈았다.

아무튼 라파엘과 단테는 욕실에서 한 번씩 사정을 더 했고, 그 직후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욕실 벽을 울리며 라파엘은 이마를 움켜쥐고 울먹였다. 그러나 곧 벌떡 일어나 헤실헤실 웃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라파엘이 침대 위에 비틀비틀 널브러진 단테에게 물었다.

“물이랑…….”

“예.”

“물 좀.”

사실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침대에서 간접흡연을 시키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라 물만을 부탁했다. 그런데 라파엘은 그걸 또 어떻게 알고 물을 떠 오며 옷가지를 뒤적여 담배를 찾아왔다.

“이건 됐어. 침대에서 무슨…….”

“제가 보고 싶어 그럽니다.”

라파엘이 단테의 손에 직접 담배 개비를 쥐여주었다.

“팀장님 담배 피우실 때 섹시하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지금 베개에 기대계신 거 굉장히 섹시하신데 여기에 담배까지 피우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넌 진짜 성격도 특이하고 취향도 특이해.”

단테가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자 라파엘이 두 손으로 불을 켜 내밀었다. 단테의 입술에서 길게 연기가 뻗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라파엘이 얼굴을 붉혔다.

“오늘 둘 다 출근 안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출근하는 걸 아는 녀석이 온몸을 이렇게 씹어 놨어?”

“……으으응.”

라파엘이 모른 척 딴청을 피우며 단테의 허리 즈음에 기대 누웠다. 이게 느물거리며 넘어가는 못된 방법을 배워 와서는.

전에는 그나마 섞어 쓰는 것 같더니만 이제 아예 팀장님으로 호칭이 돌아왔다. 사실 팀장이나 선배나 별 차이 없을 호칭을 굳이 고쳐준 건, 새롭게 만날 그의 상관이 혹시라도 언짢아할까 봐서였다. 이제는 별 상관이 없어졌으니 뭐…….

“참, 라파엘.”

“예.”

“밀러가 다시 네게 못된 짓 할 일은 없을 거야.”

단테가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라파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법은 비밀인데, 그 인간이라면 꼼짝도 못 할걸. 혹시나 또 널 괴롭히면 혼자 참지 말고 바로 내게 말해.”

어……. 라파엘이 눈을 끔뻑이다 고개를 숙였다.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도 떳떳한 방법 쓴 건 아닌 데다가, 후배를 돕는 게 사수로서 당연한 일이니 죄송할 거 없어.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그 자식이잖아.”

“…….”

단테가 시무룩해진 뺨을 도로 위로 당겼다.

“그런데… 중대장님한테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방법은 비밀이라니까.”

밀러는 라파엘의 가족 다음으로 단테의 입에서 ‘내가 라파엘과 사귄다!’라는 선언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단테가 정확히 말하지 않은 부분들을 상당히 곡해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더 이상 라파엘을 치졸하게 괴롭히진 못할 것이다.

‘앞으론 제 후배에게 할 헛짓거리 제게 하십시오.’

‘장인어른이 아들에겐 엄하신데 제겐 상당히 관대하십니다.’

그땐 화가 나서 말이 먼저 뛰쳐나갔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얼굴이 후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말들이었다. 특히… 후자 쪽이. 라파엘에겐 평생 비밀이었다.

“그동안 속상했던 건 좀 풀렸어?”

라파엘은 밀러의 일이 아직 마음에 걸리는지 우물쭈물하다, 결국 주인을 되찾은 행복한 강아지처럼 웃고 말았다.

“팀장님과 있는 게 너무 좋아서 이제 다 잊어버렸습니다.”

“다행이네.”

라파엘이 몸을 일으키며 단테의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긴 밤 동안 몸을 섞은 만큼 깊지는 않은 입맞춤이었다. 라파엘의 입술에서 묻어난 달콤한 맛이 담배의 쌉싸름한 잔향을 거둬갔다.

“이런 맛이구나.”

“어떤 것 같아?”

“씁니다. 맛이 없고.”

쓴맛을 보고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는 환하게 눈을 접었다. 좋아 죽겠다는 표현은 이런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말랑하고, 부드럽고, 순진하고, 한결같이 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후배. 어느새 단테도 같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테가 협탁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라파엘은 여전히 양순한 강아지처럼 단테의 바로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계속 품에 눈이 가 있는 걸 보니 바라는 게 있어 보였다.

하늘은 이제 겨우 어슴푸레했다. 한두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이리 와.”

“예!”

라파엘은 단테가 벌려준 팔 안으로 얼른 몸을 들이밀었다. 라파엘이 품에 폭… 폭은 아니고, 퍼억 안겼다.

그렇게 좋을까.

단테는 그의 뺨을 늘여보고 코끝을 눌러보고 눈썹 결을 만져보았다. 라파엘은 단테가 뭘 하든 수줍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맡겼다.

“어떡하죠. 계속 더 좋아지기만 합니다. 팀장님이 너무 좋습니다.”

“…….”

단테는 라파엘보단 부족하지만,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사랑스러운 표현에 대한 작은 답을 주었다.

“나도.”

“와아, 대답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라파엘이 적극적으로 가슴 앞에 머리를 문질렀다. 백 번 좋아한다고 말한 끝에 겨우 ‘나도.’라는 답을 받은 라파엘은 구름에 감긴 것처럼 행복한 얼굴이었다.

“팀장님.”

“응.”

음… 라파엘이 설핏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단테의 입술을 쪽 훔쳤다.

“저희 사귈까요?”

처음 단테에게 고백했을 때와는 달리 라파엘은 웃고 있었다.

고백에 담긴 마음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배려가 더해졌다.

그는 상대방이 얼마든지 쉽게 거절할 수 있도록 농담처럼 고백을 던졌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 달라 매달리고 애원하던 모습은 이제 없었다. 라파엘은 상대에게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를 건넸다.

그 안에는 단테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리란 체념도 조금 담겨 있었다.

휴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라파엘은 키가 1cm 성장했다. 또한, 다른 성장 역시 아주 많이 이뤘다.

“…….”

예상대로 단테가 대답이 없자 그는 태연한 척 말을 물리려 했다.

“농담입…….”

“그럴까.”

그리고 단테는 아마도 라파엘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을 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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