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6)

Episode 3. Darling♥

3-1.

제국을 뒤흔들었던 테러 사건은 용감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종결되었다. 완벽하게 테러범들을 진압한 SAG에는 지난달 모의 훈련 중계로 받았던 주목의 몇 배나 되는 관심이 쏠렸다. 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국과 국민에 헌신하는 군의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려 애썼다.

물론 그 딱딱한 조직이 노력해봤자, 정직한 구도로 찍은 현장 영상 위에 BGM으로 국가와 군가를 깔아놓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마지막에 워낙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어 그것만으로도 제법 훌륭한 영상이 뽑혔다.

덕분에 국방TV채널은 황제의 대관식 의전 영상 업로드 이후 오랜만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그 주역은 폭탄이 터진 역 안에서 임무를 마치고 생환해, 팀원들에게 영웅처럼 끌어안긴 SAG의 대위였다.

“어깨 탈구된 건 알고 계셨죠? 뼈 사진 보니 빠진 어깨 억지로 끼워 맞췄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시네요. 탈구도 습관성입니다. 긴급 상황 아니면 가급적 병원부터 오세요. 그리고 이쪽에 보시면 견갑골에도 금이 갔습니다. 몇 달 시간 두고 천천히 자연회복 해도 되긴 하겠지만, 저는 수술하고 충분히 재활해 완전회복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 자연회복이 가능하다면 우선 좀 두고 본 다음에…….”

“아니요.”

단테의 말을 안젤라가 냉정하게 잘렸다.

“이 사람 두고 보자, 하고는 어깨 멀쩡히 움직이는 것 같다며 훈련 뛰고 검진도 안 나올 사람입니다. 바로 수술실에 넣어버려 주십시오.”

“……내가 아무래도 보호자를 잘못 골랐지.”

“입원 절차에 부상 휴가까지 제가 다 밟아둘 테니까 팀장님은 제발 푹 좀 쉬세요. 의사 선생님, 그냥 지금 마취시켜 재우면 안 되겠습니까?”

“스스로 얌전히 자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그는 조금 전 현장에서의 모습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환자가 테러 해결의 주역임을 안 병원의 호의로 단테의 수술은 불과 몇 시간 뒤 바로 잡혔다.

세 시간여의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마취에서 깨어났을 땐 환자복 위로 환한 햇살이 드리운 한낮이었다. 막 눈을 뜬 단테의 얼굴을 커다란 손이 쓰다듬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환한 금발, 그다음으로는 걱정이 가득 담긴 연녹색 눈동자였다.

라파엘.

이름을 먼저 부르고 싶었지만, 아직 마취 기운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아 입술이 생각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괜찮으세요?”

“…….”

“팀장님…….”

먹먹하게 흐려진 예쁜 얼굴을 보며 단테는 생각했다.

아, 이렇게까지 눈을 뜨자마자 놀리고 싶을 수가 있는가……. 고작 세 시간, 살을 짼 것도 아니고 어깨 수술을 하고 나온 건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수술을 한 환자를 바라보듯한 얼굴을 마주하니 더욱 그랬다.

“누구…십니까? 여긴 어디죠?”

단테는 영화 속 위기의 최고조 장면처럼 물었다. 깜짝 놀란 라파엘이 떨리는 숨을 가득 삼켰다.

“여, 여긴 병실입니다. 당신은 테러 사건으로 큰 부상을 입고 여기로 옮겨졌어요. 그리고 저는.”

그가 단테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는… 당신과 결혼을 약속한 사람입니다.”

“사기 칠래?”

“앗, 팀장님!”

단테는 붙잡힌 손을 휙 빼냈다. 수술 두 번 했다간 눈 감은 사이 혼인서약서에 지장이 찍혀 있겠다.

괘씸한 계략이 들킨 라파엘은 평소처럼 쩔쩔매며 손을 휘젓는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뭐야, 장난인 거 알고 받아준 거야?”

“예. 어깨 수술을 하는데 누가 기억을 잃습니까.”

“……그렇긴 하지.”

마주 본 두 사람 사이에 쿡쿡 웃음이 퍼져나갔다.

라파엘이 몸을 일으켜 의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단테의 왼쪽 위에 있어, 침대의 오른쪽에 있던 라파엘의 몸이 얼굴 앞으로 가까워졌다.

모처럼 묘한 각도에서 올려다보니 긴 속눈썹과 도톰한 입술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은 스피커에서 무슨 일이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라파엘은 환자가 깨어났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의사의 답을 들은 후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단테는 뒤늦게 문득 라파엘의 옷차림이 군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늘 금요일 아냐? 너 왜 이 시간에 여기 있어?”

“반차 냈습니다. 오전에 부대 들러 업무 처리하고 바로 여기로 왔습니다.”

“뭐? 관할구역에서 일이 터졌는데 잘하는 짓이다. 지금 일 쌓여 있을 거 아니야.”

“오늘은 저 팀장님께 안 혼날 겁니다.”

라파엘의 눈썹이 조금 구부러지고, 그만큼 입술도 앞으로 나왔다.

“팀장님이 테러 진압하러 자진해서 오신 것과 같은 마음으로 휴가 내고 온 겁니다. 오전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면서도 팀장님 걱정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팀장님은, 오늘은 저 혼내시면 안 됩니다.”

“…….”

단테는 결국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음고생으로 치면 단테보다는 작전 내내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라파엘이 더했을 테니.

“걱정 많이 했어?”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하긴, 여태 퉁퉁 부어 있는 눈가만 봐도 짐작이 갔다. 서럽게 오열한 여파로 목소리에도 아직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곧 의사가 들어와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뼈가 전부 잘 맞춰졌다고 전했다. 분명 같은 의사인데 어쩐지 어제보다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라파엘은 그 옆에서 단테보다 더 신중하게 수술 경과 및 주의사항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후 염증반응을 봐야 해서 3일은 입원하셔야 합니다. 병실은 계속 이곳을 이용하실 예정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대답을 한 건 라파엘이었다.

“식사 후에 항생제 꼭 챙겨 드시고, 왼쪽 어깨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편히 쉬십시오.”

“예.”

이 대답 역시 라파엘이 했다.

의사가 나가고, 라파엘은 단테의 벗은 환자복 상의를 다시 입는 걸 도왔다. 단테는 그제야 라파엘에게 신경을 쓰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그런데, 뭐지. 여기.

“팀장님 몸이 지금 어떤 줄 아십니까. 여긴 칼에 맞고, 여긴 부러지고, 여긴 피멍, 여긴 화상…….”

“……여기 어디야?”

“기억상실 걸리신 척하는 장난도 두 번째는 재미없습니다.”

“아니…. 진짜로 여기 대체 어디야?”

“병실이지 않습니까. 아, 테네시의 세인트 대학병원입니다. 그래서 제가 빨리 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병실이라고?”

부상이 많은 직업을 가진 단테는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그가 아는 입원 병실과는 전혀 달랐다.

병실이라는 곳에 왜… 침대는 단테 자신이 누워 있는 것 하나밖에 없으며, 침대가 하나뿐인데도 공간은 이렇게까지 널찍, 아니, 광활한 것인가.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인테리어를 맞춰 디자인된 공간에선 병실다운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곳은 단테가 사는 관사보다 더 넓었다. 침대가 있는 쪽과 폴딩 도어로 구분된 건너편에는 널찍한 소파와 TV, 식사가 가능한 테이블과 의자 등이 우아한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입고 있는 환자복과 호출 인터폰 옆의 병원 로고가 아니었으면 라파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 대체 뭐야. VIP실…이라도 되는 거야?”

“테러로부터 제국을 수호하고 명예로운 부상을 입은 장병에게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돼.”

단테가 공적을 세운 건 맞지만, 그는 그래 봐야 일개 대위이다. 몹시 신경을 써줘서 군사병원 2인실 정도면 후한 조치였다.

“용감한 군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바친 것이기도 합니다.”

“누가?”

“VIP병동 입원비 정도는 거뜬할 정도로 돈이 많은 헤인스워즈 가의 1순위 상속자 두 명 중 한 사람입니다.”

“저라는 말을 길게도 한다. 감염병도, 거동이 불편한 상황도 아닌데 이거 낭비야. 당장 일반 병실로 옮겨.”

“싫습니다. 아니, 안 됩니다.”

“라파엘.”

“팀장님.”

라파엘이 고집스러운 눈을 했다.

“팀장님은, 저를 위해서 한 기수 위의 선배도 막아주시고, 테네시까지 와서 테러범과 직접 싸우셨는데 이 정도도 안 받아주실 겁니까.”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너는 정말로 힘들고 위험한 상황이었고, 나는 일반 병실을 쓰더라도 별다른 위해가 있는 건…… 미간 좀 펴라. 입술도 집어넣고.”

“…….”

“아니……, ……하아……. 정말로 부담 가는 금액은 아닌 거지?”

“당연합니다. 팀장님은 제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십니다. 조금도 부담되지 않습니다.”

“알긴 아는데, 솔직히 널 볼 때마다 매번 잊어버려.”

돈 많고 집안 좋은 사람이 다 오만하고 도도할 거라는 건 편견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라파엘은 지나치게 편견을 깨는 모습이지 않은가. 간혹 놀랄 정도의 씀씀이를 보며 ‘아, 맞다….’ 하고 스치듯 명문가 자제란 걸 깨닫지만, 그 외에는 까다롭게 구는 일조차 없어서 종종 잊곤 했다.

지금 이렇게 뺨을 감싸자 아무 저항 없이 냉큼 얼굴을 맡기는 것까지 포함해서.

“라파엘, 잠 못 잤지.”

“아……, 예.”

단테의 손끝이 눈 아래 거뭇한 부분을 문질렀다. 워낙 피부가 희고 곳곳에 분홍빛으로 생기가 도는 얼굴이라 이런 게 생기면 지나치게 눈에 잘 보였다.

“저 천국 보내주시기로 한 날 지난 거 아십니까? 그 천국이 아니라, 심장 멎어서 진짜 천국 갈 뻔했습니다.”

스물네 살 나이에 과부 되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라파엘이 또 입술을 비죽였다. 아직 가시지 않은 걱정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귀엽게 보여서…….

“그러게. 내 새끼 속이 바싹 다 탔을 텐데 사람 많아서 제대로 예뻐해 주지도 못했지?”

“마, 맞습니다!”

단테가 입꼬리를 위로 휘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 라파엘은 뾰로통한 척을 얼른 집어던지고 침대로 바짝 다가왔다.

“더 가까이 와야지.”

“팀장님…….”

단테의 베개 양옆을 짚은 라파엘의 얼굴이 물들기 시작했다. 단테의 손끝이 스치는 곳을 따라 뺨이 파르르 진동했다.

“팀장님, 저희 왔습니다!”

“좀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은 타이밍에 문이 열리고 팀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단테와 라파엘은 각자 방향으로 몸을 화닥닥 물렸다. 거침없이 들이닥친 열한 명의 시선이 병실 안 두 사람에게 닿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

“…….”

둘은 각기 침대와 간병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팀원들 또한 훈련받은 동체 시력과 상황 파악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병실에 남아 있는 미묘한 기운을 눈치 못 채기는 어려웠다.

어… 어어…? 어… 설마……?! 하는 멍한 소리 사이에서 안젤라만 어휴, 한숨을 쉬었고, 단테는 멋쩍게 뒷목을 문질렀다.

“……어……, 너희 짐작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일 거다…….”

단테와 라파엘의 연애를 아는 사람은 원래 세 명뿐이었다. 헤인스워즈 패밀리의 세 사람. 그리고 이제, 단테를 제외한 팀원 열한 명까지 총 열네 명이 되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 엎드려!”

“전투복 다 차려입고 머리 박아!”

곧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 *

“헤인스워즈. 아니, 이제 소위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사석에선 수습 때처럼 편히 말씀하십시오.”

“응. 그거 고맙네.”

주춤주춤 물러나 벽에 기댄 라파엘의 주변을 팀원들이 에워쌌다. 오른쪽을 막아선 제니스가 벽에 손을 텅, 짚었다. 그녀의 두 배는 될듯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우리 팀에는 규칙이 있어. 팀장이나 부팀장을 데려가고 싶다면 나머지 팀원과 11대 1로 싸워 이겨야 해.”

“예? 그, 그런 게 어디…….”

“이건 팀장님이 직접 세운 룰이야.”

“아……, 맨손…격투입니까?”

“아니. 가서 군장 차. 한 달간 서바이벌이다.”

“예, 예에?”

“남의 애인 그만 괴롭혀라.”

“괴롭히긴 누가 괴롭힙니까. 헤인스워즈, 너 같아도 팀장님이 다른 사람 사귄다고 데려오시면 이렇게 하겠어, 안 하겠어?”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는, 그, 해리스 부팀장님 애인 분은 응원해드릴 것 같습니다.”

이전에 단테의 험담을 하던 데릭슨을 상대할 때의 언변은 어딜 가고, 라파엘은 팀원들 앞에선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며 쩔쩔맸다. 평소에도 온순한 편이지만 그는 악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더 약했다.

라파엘이 선임들의 어깨 너머로 단테에게 낑낑 시선을 보냈다. 단테는 안젤라가 사 온 케이크를 먹으며 적당히 말리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헤인스워즈. 그래서 하늘 같은 선배님과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냐?”

“지, 지, 진도 말씀이십니까?”

“어린애 데리고 뭘 어디까지 나가. 손만 잡았지.”

짓궂은 질문을 듣고 온 얼굴을 당황으로 물들인 라파엘과 달리, 단테는 피식 여유롭게 웃었다. 팀원들의 수상하단 눈빛이 다시 라파엘에게로 향했다.

“진짜냐?”

“예? 예, 아, 그, 그렇습니다! 저희 손! 만 잡았습니다.”

라파엘은 삐걱삐걱 온몸으로 누구보다 강렬하게 단테의 말을 부정했다.

그 때, 다시 한번 병실 문이 열렸다. 이번엔 팀원들이 들어올 때보다 더 격한 소리가 났다.

“야, 단테! 살아 있냐! 엇, 팀원들 있었네. 안녕하세요.”

“뭐야 너.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뭐긴, 병문안이지. 아유, 다들 일어나지 마세요. 이런 데서 뭐 다른 팀 팀장한테까지 인사합니까.”

리온은 자신에게 인사하려는 팀원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러더니 신이 난 얼굴로 다가와 단테의 머리를 퍽 후려쳤다.

“뭘 빌빌거리고 있냐! 동기 중 제일 먼저 소령 달게 생겼는데 술부터 사야지. 이만하면 진급 심사 결과에 ‘앞으로 대령까지 진급 누락 없이 프리패스’라고 써 있겠다!”

“환자복 안 보이냐, 이 자식아. 아으…….”

오랜 시간 함께한 사관학교 동기간에 표현이 거친 건 새삼스러울 게 없었고, 툭 던지듯 내뱉은 말속의 축하도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단테가 맞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제 팀장님 때리지 마십시오! 왜 때리십니까!”

라파엘은 단테를 덥석 안고 품 안에 감췄다. 그리곤 조금 전 리온이 때린 부분을 안타깝게 쓰다듬었다.

“라파엘, 잠깐…….”

애틋한 연하 애인의 가슴에 코와 입이 파묻힌 채, 단테는 리온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음… 너네 뭐 하냐…고 물어봐도 되냐?”

그렇게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총 열다섯 명이 되었다.

“허, 이거 완전 도둑놈이네. 7살 연하 후배랑 사귀어? 나 참, 네가 데릭슨 에프런 욕할 때가 아니다.”

“…….”

이걸 드디어 라파엘의 편이 생겼다고 기뻐해야 할지, 한 줌도 없는 동기간의 의리를 통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됐고, 비밀 연애니까 좀 지켜주라. 알겠지?”

단테의 말에 전원 ‘퍽도…….’라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얼떨떨해하던 리온도 빠르게 수긍하고 분위기에 편승해 라파엘을 둘러싼 팀원들 사이를 비집고는 낄낄 웃었다.

“야, 헤인스워즈 넌 그동안 얼마나 울었길래 저놈을 넘어오게 했냐.”

“그런, 사실 없습…….”

“아니긴. 단테랑 사귀기까지 눈물 한 바가지는 쏟지 않았어? 저 성격에 사수 맡은 후배랑 연애하겠다고 마음 꺾기까지 얼마나 벽을 쳤겠냐.”

농담조로 꺼냈지만, 그로 인해 정말로 힘겨운 갈등을 겪었던 단테와 라파엘로선 마냥 웃기엔 씁쓸한 말이었다.

“분석 정확하네. 어쩌다 나쁜 선배 좋아하게 돼서 라파엘 눈에 눈물 마를 일이 없었지.”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팀장님 절대로 나쁜 선배 아닙니다.”

라파엘은 고개까지 휙휙 저으며 속상하다는 듯 단테의 말을 부정했다. 다만, 긴장 때문인지 조금 전부터 지나치게 감정이 치솟은 것 같긴 했다.

“저도 많이 미숙했고, 제, 제가, 좀 운 건 사실입니다만……, 저도 팀장님 많이 우시게 했으니까 괜찮습니다!”

“단테가 울어? ……아, 설마. ……그래.”

“아…….”

“…….”

분위기가 몹시 미묘하고 차분해졌다. 라파엘도 말실수를 깨닫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단테의 눈치를 살폈다. 단테가 이마를 짚은 손 아래로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라파엘.”

“예.”

“꼭대기 층까지 뛰어갔다 와. 1분 안으로 내 핸드폰에 옥상 사진이 도착한다.”

“……예?”

“그래, 나 많이 울렸으니까 간만에 너도 울어보자. 실시.”

“시, 실시!”

우당탕 소리와 함께 라파엘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발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단테는 “참, 맞다.” 하고 깨달았다.

“병원 복도에선 뛰면 안 되는데 깜빡했다.”

“여기 VIP병동이잖습니까. 이쪽 복도에 팀장님 병실밖에 없으니 상관없습니다. 아예 옥상에서 열 바퀴쯤 돌고 오라고 하죠.”

“머리 식히게 할 겸 그것도 나쁘지 않네.”

“…….”

역시나 이런 화제가 나와도 당혹스러워하는 건 라파엘뿐이었다. 단테처럼 태연하면 누가 놀릴 맛이 나겠는가. 물론 라파엘은 그 정반대였다.

안젤라는 신기한 표정으로 단테와 라파엘이 뛰쳐나간 문을 번갈아 보았다.

“행복한 연애 하시네요.”

그 라파엘과 그 단테가 알콩달콩한 사이라니. 라파엘은 종합적인 조건이야 훌륭하긴 하지만, 연애 상대로 매력적이냐 하면 모르겠고…. 단테 또한 다정한 사람이되, 좋은 연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그래서 둘이 도대체 어떤 그림일까 상상이 가질 않았는데, 막상 보니 팀에서 사수와 후배로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야, 생각해 보니 잘됐다. 이번에 일이 워낙 커져서 나도 잡음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들었는데, 헤인스워즈라는 백이 있으면 좋지. 데릭슨 같은 새끼들도 찍소리 못할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단테는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려고 라파엘 만나는 거 아니야. 쟤 병아리 같은 거 못 봤어? 백은 무슨.”

“달걀인지 병아리인지 다 큰 닭인지 뭐가 중요하냐. 출신이 헤인스워즈인데. 기왕 둘이 절절하게 영화 한 편도 뽑은 거, 감추지 말고 사귄다는 티 내고 다녀.”

“영화? 무슨 말이야?”

“아직 안 봤냐? 뉴스만 틀어도 나올 텐데. 너 작전 현장에 있던 모습 이것저것 다 찍혔어.”

“아…. 하긴 기자들 돌아다녔겠군. 그래 봐야 고작 자료 화면으로 나온 게 다일 텐데 뭘.”

테러 소식이 뉴스에 이어지는 며칠간 신나게 등장하긴 하겠다만, 곧 사그라들 것이다. 리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겨우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던데. 이따가 영상 한번 확인해봐라.”

“뭐기에…. 알았어.”

명령 완수 후 돌아온 라파엘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병실 문을 열었다. 때마침 리온이 단테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근데 너희 언제부터 사귀었냐? 오늘로 며칠 됐어?”

* * *

단테는 어깨에 보조기를 차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 함께 나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뒤 팀원들은 수술 직후라 술을 입에 댈 수 없는 단테를 놀리며 회식을 하러 갔고, 라파엘은―집에 돌아가 편히 쉬라는 말은 우선 씨알도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군복이라도 갈아입고 오라며 집으로 보냈다.

그 많던 인원과 더불어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던 라파엘이 사라지니 병실이 휑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왔다 간 흔적으로 어수선하기라도 하면 좀 덜하겠는데, 값비싼 병동답게 잠시 나갔다 오는 동안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결국 사치스러운 침대에 앉아 커다란 TV를 켜보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뉴스 채널을 틀자 역시나 전날의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 다뤄지는 중이었다.

―제도 기준 시각으로 정상회담 종료가 임박한 6시, 테러범들은 역 내에서 인질들을 붙잡고, 총을 난사하기 시작합니다.

<자료화면>이라는 표시와 함께 역 내부를 촬영한 CCTV 영상이 등장했다. 화면 속에 두 명의 괴한이 등장했다. 이어 둘은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총성과 비명이 들렸다.

영상이 끝나고 화면은 현장 지하철역에서 도망쳐 나온 생존자의 인터뷰로 넘어갔다.

―정말 끔찍했어요. 뒤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갔어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민이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이후 역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나, 빠르게 출동한 SAG 특수무장대의 활약 덕에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단테는 그 대목을 듣고 혀를 찼다. 사실 SAG의 대응에는 마티네즈가 저지른 큰 실수가 있었다. 사망자가 없어 공표하진 않고 군 내부에서의 징계만으로 넘어가게 된 모양이다만…….

정상회담장 경호가 갑자기 바뀐 것과도 얽혀 무언가 조사가 들어갔다곤 하는데, 솔직히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 후배를 다시는 좋게 보기 어려웠다. 자신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팀원들까지도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까.

―다음 뉴스 역시 전날의 테러 소동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 테러 발생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우리 군 장병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 지난 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영상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두 명의 앵커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다시 자료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배경은 늦은 밤, 역 앞, 각종 사이렌과 비상 조명이 만든 불빛 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

약 10초간의 짧은 영상이 지나갈 동안 단테는 입을 닫지 못했다.

―아주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저도 처음 보았을 땐 정말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흠. 뉴스 진행 15년 만에 ‘군 관계자에 따르면’ 뒤에 이렇게 로맨틱한 설명이 붙는 건 처음이군요.

옆의 보조 아나운서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지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제국군 사관학교 전통에 따라 사수와 후배로 만난 사이라고 합니다.

“…….”

뉴스는 친절하게도 부둥켜안은 라파엘과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송출해 주었다.

―수습 기간 이후에도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극적인 생환을 확인한 순간 군 장병 간의 감동적인 우정을 과시…….

“……이게 스캔들이지 뉴스야!”

비밀 연애라는 소박한 꿈이 전 제국적으로 망할 수도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 * *

어깨에 붙은 물리치료 기계가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며 멈췄다. 욱신욱신 뼈를 두드리던 기계의 자극도 함께 사라졌다. 다가온 의사가 기계를 떼어내며 가벼운 움직임을 몇 번 지시했다. 그런 뒤 어깨를 고정하는 보조기 착용을 도왔다.

얼마간 꼼짝없이 한쪽 팔을 못 쓰는 신세가 되겠거니 각오는 했지만,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갑갑하고 좀이 쑤셨다.

“최소 일주일은 이쪽 팔로 휴대폰도 드시면 안 됩니다.”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의사가 웃는 얼굴로 경고했다. 예……. 단테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치료실에서 나오니 그새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라파엘이 문 바로 앞에서 단테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눈이 마주치자마자 라파엘의 얼굴이 방긋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고 웃어야 할지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라파엘. 너…….”

“아, 저기. 대위님!”

물리치료실에 함께 있던 간호사가 밖으로 나오며 단테를 불렀다. 단테와 라파엘이 조금 상기된 얼굴의 간호사를 돌아봤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저 대위님 때문에 국방TV 구독했어요. 전에 인터뷰하셨을 때부터 진짜 잘생기셨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이 훨씬, 몇 배는 더 잘생기셨어요.”

“아… 하하… 예…….”

“그리고 선후배 사이 너무 보기 좋아요. 옆에 소위님과 같이 영상 자주 업로드해주세요.”

부상 얼른 나으시고요! 활기찬 응원을 남긴 간호사가 떠나가고, 라파엘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단테에게 가까이 왔다.

“국방TV요? 팀장님 그때 인터뷰 이후에 영상 또 찍으셨습니까? 군은 대체 왜 자꾸 팀장님 얼굴을 못 알려 안달입니까?”

“…….”

“물론 팀장님이 제국군 중에 제일 잘생기셨지만, 그건 저만 알아야 되는데!”

분한 얼굴로 두 주먹을 꽉 쥐기까지 하니 단테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 원인 제공을 네가 했어. 알아?”

“예? 아아아, 아, 아픕니다……!”

다친 어깨가 고정된 바람에 라파엘의 뺨은 한쪽만 꼬집어 늘릴 수 있었다. 두 손을 쓸 수 있었으면 부라타 치즈 같은 볼을 양쪽으로 죽 늘여줬을 것이다. 사귀기 전에도 앞뒤 안 보고 달려들며 우당탕 이런저런 해프닝을 벌였던 것 같은데, 사귀자마자 첫날부터 뉴스 출연이라니.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기도 했다.

뺨을 문지르는 라파엘을 데리고 병실로 돌아온 단테는 입고 있던 환자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나 나갔다 온다.”

겉옷을 걸치며 담뱃갑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라파엘이 쪼르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단테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라.”

졸졸 따라오는 라파엘을 이끌고 그는 병실을 나섰다.

밖에 나온 목적은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서였지만, 라파엘이 찰싹 붙어 있으니 담배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서 단테는 나온 김에 짧은 산책이나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일교차가 커지며 밤에는 기온이 초겨울 못지않게 쑥 내려갔다. 찬 공기를 실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겉옷을 입지 않고 안에 입은 티셔츠만 있었다면 쌀쌀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라파엘은 겉옷 대신 도톰한 베이지색 니트를, 그리고 아래는 검은색 슬랙스를 입었다.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차림새는 티셔츠와 청바지 위에 점퍼를 걸친 단테의 차림과 대조되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사실 두 사람은 성격도 취향도 차이가 컸다.

타인에 대한 책임을 중요시하고 가끔 그 무게에 짓눌리기도 하는 단테와, 온순하다가도 한 번 결심하면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직진하는 라파엘.

그리고 감정의 깊은 내면은 꺼내지 못하던 단테와, 늘 감정도 표현도 한없이 넘쳐나는 라파엘.

그런 둘이 끝내 이렇게 나란히 걷게 된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낙엽이 지는 계절이었다. 작년 이맘때 단테는 서류를 통해 라파엘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고, 사수 자리를 거절하러 가던 길에 그 당사자인 후배를 마주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어리버리한 얼굴로 콜라를 받아들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때의 자신에게 저 후배와 장차 사귀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 미쳤냐는 반응이 올 것이다. 그만큼 지난 반년은 단테 베일리의 생애에 가장 변화가 많은 시간이었다. 생각도, 감정도 모두.

‘그리고, 음…….’

단테는 라파엘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라파엘이 그를 돌아보며 사르르 웃었다. 예쁘게 휘어지는 연녹색 눈동자는 가을의 한복판에서 봄날 같은 미소를 그려냈다.

리온의 말이 맞았다. 이 정도로 쏟아지는 애정이 아니었다면 단테는 결코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라파엘은 이 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먼 길을 달려왔다. 간혹 조금 과하게 여겨지는 표현들까지 포함해, 그가 보여준 모든 것이 꽉 닫혀 있던 단테를 연 열쇠들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너 귀여워서.”

라파엘이 잇새로 혀를 살짝 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귀엽다고 하니 더 귀엽게 굴고 있다.

그러나 사실 단테는 조금 전부터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분위기는 좋지만 이래서야…… 사귀기 전과 별 변화가 없지 않은가.

라파엘에게 교제 대상은 자신이 처음이다. 그리고 첫 애인인 자신은 라파엘보다 훨씬 연상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내가 리드를 해야 하는데…….’

만나본 사람 중 연하가 없던 건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한참 어렸는데도 느물거리며 어른스러운 척을 제법 해냈건만, 라파엘은 첫 만남을 후배이자 부하로 시작해서 그런가 어쩐지 더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래도 사귀는 사이에 이렇게 걷는 건 아니지.

점퍼 소매 속 손이 꿈지럭거렸다. 단테는 각오를 다지듯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가을바람이 부는 날씨, 가로등이 밤을 밝힌 거리, 주고받는 다정한 시선. 이 모든 것을 함께하며 당연하다는 듯 곁에서 자신의 시간을 헌납하고 있는 라파엘에 대한 사랑스러움이 넘쳤다.

“…….”

그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라파엘의 손날을 감싸 돌아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주 닿은 손을 쥐었다.

라파엘의 팔이 크게 진동했다. 크게 뜬 눈이 단테를 보았다. 단테는 그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

그의 손이 세게 맞잡혔다.

“예.”

라파엘은 그러나 열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반대쪽 손등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다, 다음번엔 제가 먼저 잡아도 되겠습니까?”

“어. 뭐….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도 많다. 단테도 그를 따라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자신의 손을 꼭 쥔 손은 하얗고 가지런하지만, 저도 군인이라 증명하듯 겉으로 보는 것보다는 보드랍거나 말랑한 부분이 적었다.

둘은 손을 잡은 채 한동안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이르게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 느린 풀벌레 울음,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점가의 말소리가 대화의 공백을 메웠다.

다른 곳을 본 지 잠시도 되지 않아 도로 라파엘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라파엘은 수줍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단테는 엄지 손끝으로 보들보들한 손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아. 아까 슈스터 선배가 말씀하신 것 잠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리온이? 걔가 한 말 중에 어떤 거?”

“언제부터 사귀었냐 여쭤보신 것 말입니다. 저도 그걸 언제로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예정되었던 날은 사고 때문에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고, 그 이후에 팀원분들께 갑자기 알려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난 또 뭐라고. 사귀면 사귀는 거지, 우리가 100일, 1주년 챙길 것도 아닌데 굳이 중요……, 그래…. 넌 챙길 생각이었구나.”

순식간에 아래로 구부러진 눈썹을 보고 단테는 얼른 말을 정정해주었다. 하긴 라파엘 성격이면 몹시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혹시 고백 준비했던 거 있었어?”

“예. 꽃이랑 식사, 편지 준비해 두었는데 지금 드리긴 늦었죠.”

“꽃 하지 말라니까. 식사는 미안. 편지는 나중에라도 줘. 받고 싶어.”

“꽃 열 송이 미만으로 아홉 송이 칼같이 맞췄습니다. 그리고 편지는… 적을 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 다음에 다시 써 드리겠습니다.”

“왜. 상관없어. 궁금해.”

“날짜 지나서 드리는 것보다는 더 멋있게, 더 잘해서 드리고 싶습니다. 팀장님께는 뭐든지요.”

“…….”

또다시 제게 왈칵 쏟아진 애정은 구름이 가슴에 심어진 듯 간질거리면서도, 파란 하늘로 붕 떠오른 것처럼 청량하기도 했다. 맞잡은 손바닥의 포개어진 부분이 조금 더 따끈해졌다.

어둑한 거리를 걷던 중 단테의 눈에 한 가게가 들어왔다. 유리벽 너머로 보인 낯익은 무언가가 시선을 한 번 더 잡아챘다.

“라파엘. 잠시만.”

단테는 그의 손을 놓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풀내음과 꽃향기가 훅 다가왔다. 하루 장사를 마치고 남은 꽃을 정리하던 주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한데 오늘 영업은 끝나서요.”

“이 꽃. 포장 안 해주셔도 되니 한 송이만 팔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인은 정중한 부탁까지 거절하진 않았다.

단테는 값을 치르고 꽃잎이 풍성한 분홍색 꽃을 받았다. 언젠가 제도의 어느 카페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메시지와 함께 수십 송이나 받았던 그 꽃이었다.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꽃말이 열렬한 구애라는 건 잊히지 않았다.

가게를 나온 단테는 줄기를 짧게 부러뜨린 꽃을 라파엘의 귓가에 꽂아주었다. 와. 그의 입에서 감탄과 함께 웃음이 샜다.

“장난칠 생각이었는데 과하게 잘 어울리네.”

라파엘이 꽃을 만져보려 하다가 결국 손대지 못하고 주변 머리만 더듬었다.

“라파엘.”

“예, 팀장님.”

“결과적으론 수술에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지만, 역 안에서 작전 수행하면서 너 때문에 최대한 적게 다치고, 무사히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

많이 다쳐서 나가면 나보다 네가 더 서럽게 울 것 같았거든. 그 말을 들은 라파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치시면 그때는 두 배로 울지도 모릅니다.”

“그건 참아주고.”

단테는 항복하듯 두 손을 들었다. 어깨 앞에서 멈춘 손이 긴장을 삼키며 안으로 굽었다. 고동색 눈동자가 자신만을 가득 담고 있는 연녹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나는 사는 데 대단한 목표가 있진 않았어. 주어진 데서 큰 욕심 없이 적당히 살면 그만이라 생각해왔는데.”

라파엘은 겨우 이 정도 말로도 퍽 속상한 얼굴을 했다.

“네 옆에 있으면 계속 현재 이후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

“…….”

일그러졌던 미간이 금세 풀리고 눈꺼풀이 깜빡였다. 가을바람이 귓가에 꽂힌 꽃잎을 흔들었다. 놀란 눈으로 멈춰서 있는 라파엘에게 단테가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너는 내게 생각보다 더 벅차고 행복한 일이더라.”

단테에게도 라파엘만큼 달콤하지는 못하겠지만, 고대하던 날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몇 번이고 먼저 문을 두드려준 후배를 대신해 이번 고백만큼은 자신이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네가 준 것들을 내가 알아챌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아, 팀장님. 저…….”

라파엘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벌써부터 눈가에 감동이 넘실거렸다. 여기서 더 고백을 이어가면 저 눈물이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원했을 한 마디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디데이를 기다리며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해두었던 선물들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우리 사귀자. 날짜는 정 세고 싶다면 오늘부터 할까?”

“네……!”

“웃으라고 말한 거니까 울지 말고.”

“…….”

단테가 라파엘의 얼굴을 가린 손을 잡아 내렸다. 눈만 그렁그렁한 줄 알았더니 그 아래 코끝도, 입술도 감격에 겨워 울긋불긋 움찔움찔 난리가 났다.

“뚝. 울면 사귀기 싫어서 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 아닙,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라파엘은 얼굴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움직이다 끝내 가로등 불빛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귓가에 꽂힌 활짝 핀 꽃과 함께였다. 그러나 웃느라 눈가가 접히는 바람에 뺨으로 떨어진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함께 병원으로 돌아온 라파엘은 적극적으로 이곳에서 잘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침대는 세 사람이 누워도 넉넉할 정도로 널찍했고, 다음 날은 주말이니 단테도 라파엘이 자고 가겠거니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 것치고도 라파엘은 꽤나 능청스럽게 단테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병실을 배정받은 환자보다 먼저 누워 이리 오라 손짓하는 모습이 특히 그러했다. 단테는 못 이기는 척 라파엘이 들춘 이불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팀장님, 여기 침대에서 불을 끌 수 있습니다.”

라파엘이 침대 헤드의 버튼을 누르니 병실이 소등되었다.

불 꺼진 VIP실, 한 침대 위의 라파엘과 더불어 단테에게 기시감을 듬뿍 주는 상황이었다. 서로 술에 잔뜩 취해 연회장 옆의 게스트 룸으로 갔던 밤. 한 달간의 다사다난했던 휴가의 시작점과 몹시 닮았다.

“너 그 말 나한테 그대로 했던 거 기억나?”

“예? 저 팀장님 외에는 여기서 같이 잔 사람 없습니다.”

“역시 기억 못 하네. 사귀는 동안 애인 술자리 단속 빡세게 해야겠는데.”

“금지하시면 저는 당연히 아무 데도 안 나갑니다……. 그런데 정말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됐다. 자기나 하자.”

라파엘이 고개를 계속 기웃거렸지만, 단테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고 시야가 차단되자 다른 감각들이 조금 더 생생해졌다. 아무리 관리가 잘 된 VIP실이라도 완전히 숨기진 못한 약품 냄새가 느껴졌고, 체온이 고이기 시작한 이불에선 바삭바삭 소리가 났다.

그중에서도, 두 손으로 손바닥을 꾹꾹 눌리는 촉감이 가장 선명했다. 어찌나 만지작거리는지 손바닥이 뜨끈해질 지경이었다.

“라파엘. 안 자?”

손장난이 잠시 멈칫하더니 곧이어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저희 오늘부터 사귀는 사이지 않습니까.”

“응.”

“그럼 라파엘 말구우…….”

어이구, 또 애교 부리지. 또.

“알았어. 라피. 안 자?”

“잘 겁니다. 조금만 더 이따가요.”

단테는 몸을 옮겨 라파엘에게 바짝 밀착했다. 모로 누워 있던 라파엘의 품 안에 단테가 쑥 들어갔다.

“손 말고 다른 곳도 만지고 싶은 만큼 만져.”

“그러면… 저는 밤새 못 잘지도 모릅니다.”

말은 거사라도 치를 것처럼 하면서, 행동은 환자복 상의 위로 손목을 쓰다듬는 게 고작이었다.

“팀장님.”

“응.”

“안아도 되겠습니까?”

단테의 고개가 라파엘의 얼굴 쪽으로 돌아갔다.

“섹스하고 싶어?”

“예? 아, 아뇨. 그 뜻이 아니라. 팀장님 몸을 안아도, 아니, 팔로 감싸도 되겠냐는 의미였습니다.”

“그거야 허락 안 받고 해도 상관없고, 섹스도 괜찮아. 병원인 게 좀 걸리면 손이나 입으로 해줄 수 있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됩니다.”

“너 침대에서 손잡으면 서잖아.”

직접적인 표현에 몹시 약한 그가 섹스란 단어까지 들었으니 확실히 섰을 것이다.

“아, 안 섰…지는 않지만, 환자복 벗으실 때까진 참습니다. 의사가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라파엘은 그 말을 증명하듯 단테를 가만히 끌어안기만 했다. 한 팔이 단테의 베개 아래로 들어가고, 다른 한 팔은 가슴 위에 무게를 기대지 않도록 조심히 얹어졌다.

포근히 밀착한 자세에서는 아래의 열기 또한 더 잘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이 슬그머니 허리를 뒤로 물렸는데도 허벅지에 순간 닿은 감촉이 선명했다. 그러자 옆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났다.

“……지금, 뭘 하더라도 팀장님 어깨에 무리 안 가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테는 당분간 부상 휴가가 당당히 예정되어 있고, 좀 무리를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후 땅을 파고 자책할 라파엘을 떠올리며 마음을 접었다.

“그래. 그럼 며칠만 참아보자.”

“예.”

단테는 기특하다는 듯 라파엘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에게서 난 흐읏, 소리는 못들은 걸로 해주었다.

조금 뒤, 라파엘은 이번엔 손을 뻗어 단테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라파엘처럼 탐스러운 구석이 없는 짧은 머리카락인데도 그는 여러 번 기분 좋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팀장님. 저도 팀장님을 만나고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 팀장님 덕분입니다.”

“무슨 생각? 고민 같은 거면 전처럼 혼자 앓지 말고 털어놔.”

“고민…은 맞는데, 나쁜 고민 절대 아닙니다. 지금보다 나중에, 제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그 후로도 그간 만나지 못했던 며칠을 메우듯 대화가 이어졌다. 더 할 말이 없을 만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야 비로소 병실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단테는 라파엘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옆 사람의 가슴에서 들리는 두근거림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라피, 안 자지?”

“예.”

“섹스도 못 하고, 설레서 잠도 안 오고, 밤은 아직 긴데.”

단테가 상체를 조금 들어 올렸다.

“우리 뽀뽀나 할까.”

대답하듯 들려오는 심장소리의 변화로 라파엘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파엘은 꾹 눌러 참던 둑을 조금 열어주자마자 쏟아지듯 입술을 붙였다. 단테는 뺨에 쉴 새 없이 입맞춤을 받으며 간지럽게 어깨를 움츠렸다.

“라피, 그만. 어후, 닳겠어.”

입술이 얼얼해질 만큼 한참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덧 함께 누운 침대 위로 졸음이 다가왔다. 진통제를 포함한 여러 약물치료를 받은 단테가 먼저 항복해 잠들고, 라파엘이 조금 뒤에 잠들었다.

보통의 평화로운 연인의 모습이었다.

* * *

호화로운 병실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에 만난 의사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부위도 잘 아물었고, 염증반응도 없습니다. 퇴원 원하시면 수속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제도에서 이용하실 병원을 통해 연락 주시면 제가 그 병원 측에 수술 경과와 이후 재활 방법 전달해 두겠습니다.”

이런저런 주의사항까지 일러준 뒤, 의사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말했다.

“제국을 지킨 대위님의 부상을 치료하고, 회복에 도움을 드려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빨리 나았습니다.”

한 걸음 뒤의 라파엘은 박수갈채라도 칠듯한 뭉클함을 안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의사가 나가자 단테는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둔 짐들을 챙겼다. 단테와 이곳에 사흘을 함께 머문 라파엘 역시 이것저것 가방에 담을 것이 많았다.

“저 주세요. 팀장님.”

라파엘은 단테의 짐을 들고 가 너무나 자연스레 자신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테를 조수석에 태운 뒤 차를 출발시켰다. 너는 다음 날 출근도 할 테니 됐다고 거절할 틈도 없이, 차는 제도로 향하는 도로 위에 올라탔다.

이 고집과 막무가내를 누가 꺾나. 장난스러운 한탄 속엔 웃음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전방을 바라보는 라파엘의 옆모습도 미소를 지었다.

“피곤하지 않아?”

“아뇨.”

“어쨌든 사흘간 계속 집 아닌 병원에서 지냈잖아. 피곤하면 운전 내가 할게.”

“집에서 팀장님 걱정하던 때보단 훨씬 잘 먹고, 잘 잤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대로 라파엘에게선 정말로 피로의 기색 한 점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명한 하늘에 떠오른 이른 아침의 햇빛이 눈부셨다. 이 조수석에 여러 번 앉아본 단테는 자연스레 선글라스 보관함을 열고 선글라스의 다리를 펴서 라파엘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서로가 익숙해진 두 사람을 싣고 차는 두 시간여를 달려 제도에 들어섰다.

고속도로를 막 빠져나올 즈음, 라파엘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 발신인은 휴대폰과 연동된 차량 화면에도 떠올랐다. 단테가 저도 모르게 엇… 하고 신음할 만한 인물이었다.

라파엘이 받지 않자 신호음 또한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통화해.”

“이따 통화해도 괜찮, 긴 할 텐데……. 그럼 잠시만요.”

라파엘은 스피커 대신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았다.

“예, 아버지. 라파엘입니다.”

잠시 상대의 말을 듣는 라파엘의 손끝이 핸들 위를 톡톡톡 두드렸다. 이 와중에도 단테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손등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셔다드리는 길이었습니다. 예? ……아. 음, 여쭤는 보겠습니다만.”

라파엘의 시선이 단테에게 흘끔 향했다. 뭐지?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그런데…… 성격상 거절을 못 하시는 분이니 컨디션 살피고 제가 판단하겠습니다. 예.”

곧 통화가 종료되었다. 때마침 도로도 신호에 걸려 자동차가 멈춰 섰다. 라파엘이 단테에게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응. 뭔데?”

“부모님께서 저희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 하십니다.”

응…? 어디? 단테는 눈을 끔뻑였다.

“가고 싶으면 가시고, 아니면 편히 거절하십시오. 팀장님 막 퇴원하신 거 부모님도 다 아십니다.”

“…….”

아무리 그래도 단테는 제 직장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상관이자, 일곱 살 연하 애인의 부모님이 보낸 초대를 거절할 순 없었다.

막 퇴원한 단테는 편안한 트레이닝 팬츠와 라파엘에게 빌려 입은 후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대로 곧장 헤인스워즈 가로 가자는 말에 기함한 그는, 관사로 와서 정장을 꺼내 입고 헤어 왁스를 찾았다.

멀뚱멀뚱한 라파엘을 뒤에 두고 헤인스워즈 패밀리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으니 또 예전 생각이 절로 났다. 그때는 직속 부하가 어디서 맞고 왔다는 사실이 호승심이라도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은 오직 긴장뿐이었다.

“다치셨는데 뭐하러 불편하게 입으십니까. 부모님은 팀장님이 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신나셨습니다.”

“너 같으면 어린 애인 집에 찾아가는데 편하게 갈 수 있겠냐. 네 입장에서 일곱 살 어린 사람 만난다고 생각해봐.”

“다른 사람 안 만납니다. 팀장님만 만날 겁니다.”

“아니… 그러면 내가 너보다 일곱 살 어리다고라도 생각해 보라고.”

단테가 넥타이를 조이는 사이 잠시 고민하던 라파엘이 대답했다.

“음, 완전 귀여우실 것 같지만 그건 범죄입니다. 그러면 열일곱 살이니까.”

단테는 퍼뜩 라파엘을 돌아봤다.

“너보다 일곱 살 어리면 열일곱 살이야?”

“예.”

“……그럼 너 내가 처음 부팀장 달았을 때 고등학교 입학했어?”

“예……, 그렇습니다.”

“…….”

외출 준비를 이어가는 어깨가 훨씬 묵직해졌다. 병실에서 들었던 리온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도둑놈…. 도둑놈…. 7살 어린 후배 잡아먹은 도둑놈……. 긴장을 삼키는 목울대가 꿀꺽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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