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6)

외전. Good Night Message

총성 소리가 연달아 훈련장을 울렸다. 발사된 총알은 군인들의 앞에 있는 목표물에 정확히 박혔다. 라파엘은 옆자리의 선배를 따라 자세를 움직여 보았지만, 표적에 나타난 결과는 여전히 민망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전부터 연이어 훈련을 받고 난 뒤라 체력과 함께 집중력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선별된 특수부대원들의 실력과 훈련 강도는 사관학교에서 겪었던 것과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ODA-133의 새 막내이자 수습인 라파엘의 자리는 훈련장 가장 끝쪽이었다. 정식으로 특수군 훈련을 받지 않은 그의 위험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옆자리에는 그를 보호하듯 사수인 선배가 서 있었다.

특수부대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졸업생은 고학년 형들이 모여 있는 놀이터에 따라간 세 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 자신이 그런 데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역시 한 번씩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다른 이들보다 한참 목표물을 앞으로 옮겨 조준해도 정확도가 훨씬 낮게 나오는 부분을 포함해서.

다시 목표물을 노려보는데, 허리 아래쪽에 꾹 와 닿은 손길이 있었다. 총성으로부터 귀를 보호하기 위한 헤드폰 위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옆을 돌아보기 전 라파엘은 짧게 숨을 마셨다. 시야 조금 아래에 불쑥 가까워진 입가가 보였다.

자세.

입 모양을 과장해 말한 그는 라파엘의 가슴 앞을 밀어 허리를 세우게 했다. 라파엘은 얼른 헤드셋을 귀에서 내렸다. 그의 사수가 “빼진 않아도 되는데.” 하며 웃었다.

“몸을 앞으로 푹 숙인다고 가까워지는 거 아니다. 바로 서.”

“……예.”

균형을 다시 잡아준 다음으론 총신을 쥔 팔에 손이 닿았다.

“네 팔 길이면 반 뼘 앞쪽 잡아도 되겠다. 거기서. 그래. 손목에 힘줘서 제대로 잡아.”

그가 라파엘의 손등 위를 쥐어 손을 더 꽉 오므리게 했다. 라파엘은 흠칫 숨을 마셨다. 처음 든 감상은 손이 거칠거칠하다는 것이었고, 그다음으로 든 감상은 자신의 손등이 뜨거워졌다는 것이었다.

“쏴 봐.”

탕, 라파엘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잘했어. 좋아졌다. 조금만 더 힘내.”

칭찬을 받을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등허리를 뿌듯하게 두드려주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라파엘은 그가 가르쳐준 내용을 복기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총신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대로 다시 목표물을 노려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라파엘 헤인스워즈가 수습을 나와 만난 사수는 7기수 위의 단테 베일리 대위였다.

아버지가 억지로 특수부대에 배정시켜버렸을 땐 앞으로 몹시 힘든 반년이 펼쳐지리라 예상했었다. 현장에 투입되는 팀 중에서 미숙한 졸업생을 반길 곳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전팀에 하달된 모든 훈련은 일개 졸업생이 따라가기엔 버거웠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적어도 ‘사람으로 인한 힘듦’은 한 번도 겪지 않았다.

팀원들 모두가 좋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단테가 선배로서 라파엘을 받쳐준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지난 3개월간 몸이 피로해도 마음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버틸 만했다.

라파엘은 슬쩍 시선을 돌려 옆자리를 보았다. 짧은 갈색 앞머리 아래 눈동자가 스코프를 날카롭게 집중했다. 다물린 입술이 타이밍을 재듯 달싹이고, 탕! 총알이 발사되었다. 라파엘은 조금 전 흔들렸던 심장이 이제는 쿵, 쿵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는 단테 베일리를 선배로, 그리고 상관으로서 존경한다.

수습 기간이 한 달쯤 지났을 때라면 여기까지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뒤에 한 문장이 더 생겨났다.

라파엘 헤인스워즈는 단테 베일리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품었다.

저런 선배 아래 있는 라파엘로서는 불가항력인 일이었다. 태어나 처음 가진 이 감정을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 * *

척박한 지역에 위치한 훈련장의 숙소 건물 내부는 오랜 세월이 물씬 느껴졌다. 이제는 잘 보기 어려운 밋밋한 나무문도 마찬가지였다. 잠금쇠 없이 단순히 손잡이 역할만을 하는 문고리는 녹이 슬어 얼룩덜룩했다. 라파엘은 그걸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 다시 몸을 꼿꼿이 세웠다.

후우, 하……. 숨을 크게 마셔 긴장을 좀 덜어냈다. 결심한 듯 두 손을 꽉 쥐었다가, 깜짝 놀라 손을 펴며 살짝 구김이 진 서류 봉투를 문질렀다. 다행히 크게 표가 나지 않았다.

‘사수들 이거 진짜 귀찮아하더라.’

‘그 사람들 입장에선 실적에 별 도움도 안 되는데 까다롭기만 한 일이니 당연하지만…….’

‘나한텐 심지어 알아서 대충 채워서 가라고 했어.’

사수에게 받아와야 하는 과제가 하달된 이후, 동기들의 대화방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시무시한 후기들이 올라왔다. 물론 웬만해선 자신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성의껏 작성해 주지만, 바쁜 시기에 늘어난 일을 귀찮아하는 사수도 부지기수였다.

단테 베일리 대위는 동기들이 수습을 간 다른 선배들보다 훨씬 바빴다. 매번 현장에 직접 나가는 그는 훈련을 지휘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참여해야 했다. 하필 과제가 나온 시기와 전지훈련 시기가 겹쳐 부탁을 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단테가 동기들이 토로한 나쁜 사례처럼 나오진 않을 거란 걸 안다. 이 불안은 단지 라파엘이 그를 지나치게 동경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방해가 되고 싶지 않고, 이런 걸로 일을 더하고 싶지 않다. 타지에서 미숙한 졸업생을 돌보는 것만으로 이미 힘들 텐데.

하지만 아예 말을 꺼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손이 결국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헉, 한 번 숨을 들이마신 뒤에 대답을 꺼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 소위입니다. 팀장님.”

들어오라는 허락은 바로 들리지 않았다. 대신 성큼성큼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우리 막내, 어쩐 일이야?”

열린 문틈으로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단테의 얼굴에 보인 반가움에 라파엘은 조금 안도했다. 이내 가슴 한쪽이 따끔해졌다.

“팀장님, 바쁘지 않으십니까?”

“왜? 당장 급하게 할 일은 없긴 해.”

“그러시면,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아, 물론 귀찮지 않으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뭔데 그래.”

단테의 앞에 라파엘이 조심스레 가지고 온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내용물을 꺼낸 단테가 라파엘이 보는 앞에서 한 장씩 넘겨보았다.

「제1사관학교 87기 육군 졸업생 수습과정 중간 현황 (사수용)」

“……으음.”

“…….”

그가 보는 종이 뭉치가 꼭, 유치원생이 삐뚤삐뚤 적어온 알림장 같았다. 제가 들고 있을 때는 중요한 서류 같았는데 어른스러운 그의 앞에 서니 그렇게나 차이가 많이 나 보였다.

“이거 언제까지 줘야 하냐? 제출 기한이 언제야?”

“이, 이달 말일까지입니다.”

“그럼 제도까지 보내는 시간 감안해 넉넉잡아 다음 주쯤… 까진 줘야겠네.”

단테는 종이 뭉치를 도로 서류 봉투 안에 넣었다.

“해서 제때 줄게. 그런데 알다시피 난 졸업하고 7년 차에 사수 처음 맡는 거야. 이상하게 쓸지도 모른다?”

“아, 괜찮습니다.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별걸 다 고마워한다.”

단테의 어깨가 으쓱였다. 역시 귀찮아하거나 싫은 기색을 보일지도 모른단 건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걱정이었다.

“기껏 왔는데 잠깐 들어왔다 갈래?”

권유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번쩍였다. 머리로 생각하기 앞서 몸이 저절로 “예!”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단테가 빙긋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 한창 팀장 방엔 뭐 있나 궁금할 때지.”

“…….”

아마 그가 말한 호기심과, 자신이 품은 호기심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라파엘은 단테가 열어준 문 안으로 삐걱삐걱 들어갔다. 주로 팀장과 부팀장, 지휘 부사관의 회의 장소로 쓰이는 방에는 옛날식으로 다리가 짧은 테이블과 소파, 철제 의자 한 개, 그리고 벽 쪽엔 간이 개수대와 조리대가 있었다.

라파엘은 막상 안에 들어서서는 몇 발자국 떼지 못하고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그 때, 어깨에 단테의 손바닥이 얹어졌다. 두 손은 굳은 어깨를 아래로 쑥 끌어 내렸다.

“긴장 풀어. 안 잡아먹는다.”

“…….”

“편히 앉아.”

장난스레 웃는 얼굴, 훈련 때와 또 다른 털털한 목소리. 단테에겐 정말 별것이 아니란 걸 아는데도 자존심을 잃은 심장은 요동쳤다.

“차 타줄까? 한 종류밖에 없긴 하지만.”

“예, 아,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하겠습니다.”

“됐네요. 앉아나 계시죠, 후배님.”

“…….”

그가 자신을 어리숙한 후배로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두근거린 채로는 분명히 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 테니까.

* * *

“헤인스워즈, 어디 다녀와?”

라파엘이 부름을 듣고 자리에 멈춰 섰다. 계단 아래에서 이쪽을 향하고 있는 안젤라가 보였다. 그녀는 경례를 하려는 라파엘에게 됐다고 손짓했다.

“팀장님 뵙고 왔습니다.”

들려온 대답에 계단을 마저 올라온 안젤라가 의아하게 물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었어?”

“일은 아니고… 수습 중간 평가 써주시는 거 부탁드리고 왔습니다.”

“중간 평가?”

어… 아. 아하. 별안간 안젤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서 불렀구나.” 혼잣말한 그녀가 다시 라파엘을 보았다.

“선배가 지금 뭐 좀 물어보자고 나 호출했거든. 자긴 졸업한 지 7년 지나서 모르겠으니, 4년 차인 네가 좀 와서 봐달라 하시더라. 뭔데 오랜만에 저렇게 우왕좌왕하나 했더니.”

“아…….”

“좋겠네, 그런 사수 만나서. 선배 성격에 좋은 말만 꽉꽉 채워 보내줄걸.”

“가, 감사합니다.”

라파엘의 두 손이 꼼지락거렸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으며 겨우 가라앉힌 귓가가 다시 발긋해졌다. 저 기분이 뭔지 아는 안젤라는 드물게 한마디를 얹어 보태주었다.

“선배가 너 내심 진짜 예뻐해. 우리 회의할 때마다 매번 험한 곳 따라와서 묵묵히 버티는 거 대견하다고 칭찬하고, 이것저것 신경도 많이 써줘. 원래 작전 팀에 수습 받는 거 되게 회의적이셨는데, 너 데리고 온 건 후회 안 하신다더라.”

“팀장님께서, 저를요…….”

“그래. 그러니 남은 시간 잘 버티고, 많이 배우다 가. 알겠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안젤라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라파엘은 혀로 마른 입천장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입 안에 전해지는 양 볼의 열기가 뜨뜻했다.

안젤라가 가고 난 후에도 라파엘은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도망치듯 몸을 돌렸다.

최초로 받아들인 수습, 유달리 귀여워하는 후배. 단테와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에 어떤 특별한 의미들이 부여됐다. 심장이 주체가 되지 않을 만큼 진동했다.

더 잘하고 싶다.

아니, 할 수 있다면 단테 베일리 대위의 기억에 자신을 아주아주 오래도록 남기고 싶다. 설령 이후에 다른 후배의 사수를 맡더라도 자신을 떠올렸으면 좋겠고, 라파엘 헤인스워즈가 가장 좋은 후배였다고 회상했으면 좋겠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도 그와의 관계 속 특별함이 사라지지 않기를 가장 바랐다.

군에서 생긴 최초의 욕심이었다. 그리고 충동이었다.

* * *

무모함과 마음이 앞서나간 행동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

용기와 만용은 명확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라파엘이 있는 곳은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현장이었다.

현장 깊숙이 들어간 투입조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조는 공기가 바위로 채워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거기서 얌전히 대기해.

팀장은 짓씹듯 한마디를 남기고 통신을 종료했다. 그리고 모두가 흘끔이는 시선 끝에는 실수의 무게를 인지한 라파엘이 새파랗게 질려 서 있었다.

“혼날 거 혼나면 괜찮아. 훈련 중 실수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묻지, 징계까지 안 가.”

“…….”

“……팀장님도 손 올리시는 분 아니니 너무 그렇게 떨지 마라.”

뭐라 답을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의 떨림은 전혀 멎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자책조차 떠올릴 틈이 없었다.

잠시 뒤 여러 개의 군홧발 소리가 다가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건 단테였다. 뚜벅, 뚜벅. 그 발소리가 어떤 두려운 사건의 전주곡처럼 들렸다.

단테의 얼굴을 본 라파엘의 시선은 더욱 흔들렸다.

“티, 팀장…….”

“라파엘 헤인스워즈. 따라 나와.”

“……예.”

그의 뒷모습을 따라 발을 옮기자마자 시야가 부옇게 변했다. 두려움 뒤로 숨어 있던 자책감이 단테의 얼굴을 보자마자 완전히 터져 나왔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이 한심한 적은 처음이었다.

단테는 라파엘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훈련장 뒤편, 외진 자리에 도착해 두 사람은 다시 마주 섰다.

단체 훈련이 끝난 오후, 하루 종일 훈련장을 덥히던 해도 어느덧 저물어갔다. 라파엘을 바라보는 단테의 부은 한쪽 뺨에도 노을이 걸려 조금 더 붉어 보였다.

누가 봐도 윗사람으로부터 받은 질책의 흔적이었다.

팀장님, 저, 저 때문에……. 말은 입 안에 담겼지만,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헤인스워즈.”

“예, 팀장님.”

“내가 지난 세 달간 가르쳤던 내용엔 오늘 같은 행동이 없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팀장님. 정말로…….”

그리고 지금 라파엘에게 들려주는 딱딱한 목소리 역시 지난 세 달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수습 기간 동안 라파엘은 단테가 폭력을 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함부로 손을 올릴 리 없단 걸 충분히 알고 있지만, 오늘은 차라리 분이 풀릴 때까지 자신을 쳤으면 좋겠다. 붉은 뺨을 볼수록 그 상처보다 더 큰 멍이 가슴에 퍽퍽 맺혔다.

“몇 달 지내고 익숙해지니까 긴장이 풀려? 다른 사람들 다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나?”

“아닙니다…….”

“어디 수습이 겁도 없이 작전 진행 중에 돌발행동을 해!”

묵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목소리를 듣자 코끝이 욱신거렸다. 라파엘은 입술 안쪽 볼을 꾹 물었다. 절대 울면 안 된다. 지금은 결코 울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

“너 바로 전까지 막내였던 하사도 특수교육관 반년, 다른 공수부대에서 1년 있다가 온 사람이야. 왜 내가 계속 훈련에서 널 뺐다고 생각해?”

“제가, 경험이 없어서입니다…….”

“막 졸업한 네가 아무거나 만지다 팔다리 한 짝씩 날아갈 만한 일들 여기선 수십 개도 더 댈 수 있어.”

“…….”

“아까 같은 상황에서 상대가 훈련 중인 다른 중대가 아니라 실제 적이었다면 목이 날아갔을 거고!”

“…….”

……하.

분기 찬 한숨과 함께 단테의 말이 멈췄다. 겁에 질린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던 시선도 눈을 찌푸리며 거둬졌다. 이 순간 라파엘이 먹먹한 목 안에서 꺼낼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라파엘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야 아래 주먹을 세게 쥔 단테의 손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단테가 눈가를 꾹 눌렀다. 그의 얼굴에 지금 상황에 대한 피로감이 짙게 어렸다.

“고개 들어.”

라파엘은 마지막으로 볼 안쪽을 짠맛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깨문 뒤에 사수를 마주 보았다. 단테는 라파엘을 노려보고 있진 않았지만, 얼굴에 그가 좋아하던 미소는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

“예.”

“내일 중으로 진술서 제출하고, 일주일간 훈련 끝나고 밤에 식당 들어가.”

예. 대답과 함께 들었던 고개가 조금 떨어졌다. 라파엘의 눈앞에 있던 몸이 등을 돌리고, 그를 혼자 놔둔 채 사라졌다.

라파엘은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 아무 소리도 새 나가지 않도록 입을 꽉 물고, 안 되겠다 싶자 두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이 이상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버둥거림이었다.

잠시 뒤 밭은 숨을 뱉어냈을 때도 우는 대신 한 행동은 두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세게 치는 것이었다.

벌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언질을 미리 받은 식당에는 저녁 식사를 마친 그릇과 식기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라파엘은 터덜터덜 개수대 앞으로 갔다. 먹고 남은 음식물의 눅눅한 냄새가 났다.

설거지를 아예 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몹시 적었고, 무엇보다 이 정도로 많은 양은 처음이었다.

수도꼭지를 타고 서늘한 물이 쏟아졌다. 라파엘은 그릇 하나에 거품을 뽀득뽀득 묻히고 물로 씻어낸 뒤 한쪽에 두었다. 그리고 다음 그릇을 집었다.

“…….”

물소리로 울음소리를 가리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쏟아지는 물 앞에 서니 내내 꾹 참았던 눈물이 다시 코끝을 두드렸다.

“흐, 끅……, 흐윽.”

반들반들해진 접시를 옆에 내려놓고 또 새 그릇을 가져왔다. 요령 없이 힘주어 구석구석 닦는 덕에 그릇은 티끌 하나 없이, 평소보다 훨씬 깨끗하게 닦여갔다.

다정하던 선배가 표정을 굳히고 무섭게 다그친 것도 서럽다면 서러웠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단테의 얼굴에 남아 있던 흔적이었다.

“흐어, 흐…, ……끄흑, 흐.”

몸의 힘듦이 잘못된 선택에 대한 벌이라면, 참담해진 심정은 단테가 뺨을 맞게 한 데 대한 벌이었다.

라파엘 헤인스워즈는 단테 베일리를 좋아한다. 존경심과, 어느 순간 커버린 연심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땅에서 싹을 내민 감정을 어찌해야 하나 알기도 전에 바보 같은 실수로 인해 스스로 짓밟아버리고 말았다.

대부분 ‘헤인스워.’, 그리고 간혹 ‘우리 막내’ 혹은 ‘후배님’. 그렇게 부르며 웃던 단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를 실망시키기 전의 관계를 되찾을 수 있을까. 도저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벌이 혼자 뒷정리를 하는 일이어서 다행이었다. 불이 꺼져 텅 빈 식당 너머까지는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품은 애정은 많이 괴로웠다. 실수에 대한 자책 위로 그의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 붉은 한쪽 뺨 등 오늘 있었던 후회스러운 일들이 바위처럼 쌓였다.

마지막 냄비를 헹궈낸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조리대를 닦고 바닥 정리까지 마치니 복도의 불빛도 최소한만 남기고 소등되어 있었다.

조리실을 나온 라파엘은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식당 의자를 빼고 앉았다. 식탁에 내려놓은 팔 위로 이마가 힘없이 떨어졌다. 돌아가 침대에 누우면 찾아올 다음 날 아침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깨가 또다시 한심하게 흔들렸다.

대체 왜 그랬을까. 왜.

자책하며 쏟아내던 울음은 ‘울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쓰라린 교훈을 상기하며 멈출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늦었을 테고, 내일 훈련을 위해서라도 돌아가야 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단 한 점의 실수도 없어야 했다. 라파엘은 아픈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젖은 시야로 끔뻑끔뻑 바라본 앞에는 아까까지 없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 울었냐?”

“티, 팀자,”

화들짝 놀란 두 발이 바닥을 박찼고, 의자는 끼익 소리와 함께 기울었다. 라파엘도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우당탕 꽤 큰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바닥에 부딪혔다. 단테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왜 그래? 괜찮아?”

“팀장님, 어, 왜, 여기 계십니까……?”

“온 지 한참 됐는데 네가 우느라 못 들은 거지. 바닥에 멀뚱멀뚱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예.”

의자를 세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단테는 마주 본 자리에서 턱을 괴고 그를 보았다. 아, 오늘 있었던 일을 상기한 라파엘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단테에게서 짧은 바람 소리가 났다.

“머릿속은 좀 식혔어?”

“……예.”

“이거 완전 애네. 온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고.”

“…….”

“맨날 웃던 사수한테 혼난 게 그렇게 서럽냐?”

“아, 아닙니다. 팀장님이 혼내셔서 운 거… 아닙니다…….”

“그럼 뭐가 그렇게 속상한데?”

“…….”

위로 뜬 라파엘의 시선이 단테의 뺨을 향했다. 이제는 불긋했던 기운이 거의 다 가라앉았다. 아까도 그랬지만 단테는 딱히 아픈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라파엘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입을 열어 침울한 대답을 꺼냈다.

“팀장님… 저 때문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어? 아, 이거?”

단테가 손으로 뺨을 짚었다.

“야, 이건…. 이걸로 문제 안 삼고 넘어가 주겠단 뜻이잖아.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니까.”

훈련 중 실수는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묻는다. 그 말은 기록되지 않은 벌로 실수를 질책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단테의 얼굴이, 사고를 친 팀의 책임자에게 대대장이 준 벌이었다.

“혹시 너…. 이상하단 의미로 묻는 건 아닌데, 한 번도 누가 맞은 모습 본 적 없어?”

“……아닙니다.”

사관학교를 나왔고, 자라온 환경이 환경인 만큼 그런 형태의 질책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뭘.” 단테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책임자는 사사건건 불려가. 나 대대장님 앞으로 끌려가게 만든 사람이 너 하나만 있는 거 아니다. 이건 됐으니 오늘 훈련에서 네가 잘못한 거. 그거나 반성해.”

“…….”

“어쭈. 내가 보는 앞에서 또 울게?”

“울지 않습니다.”

일반 군대보다 더 위험한 현장을 나가는 SAG에선 뺨 한 대 정도는 별거 아니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정말로 대대장이 억하심정을 담아 쳤다면 몇 시간 만에 사라질 상처가 아니라, 훨씬 큰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단테의 말대로 유한 처벌 쪽에 속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라파엘은 단테에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라파엘에게 단테는 ‘통상적인 분위기이니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라’는 말을 적용시키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소중하게…….

이걸, 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순 없지만.

“팀장님은.”

라파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잘생기셨잖습니까.”

“어?”

“잘생기셨는데, 얼굴, 다치시면 안 됩니다.”

“…….”

단테의 말문이 처음으로 막혔다. 머쓱한 기류가 흘렀다.

“아……, 팀장이 잘생긴 얼굴 얻어맞고 온 게 그렇게 서러웠어?”

“……예.”

하하. 어이없단 웃음이 들렸다. 철제 의자가 뒤로 밀리고, 단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쭉 뻗은 팔이 라파엘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화도 못 내게 하네. 거짓말도 성의껏 해라.”

“거짓말 아닙…….”

“순해 빠져선.”

라파엘은 슬그머니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단테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난 정말 괜찮으니 너나 남은 기간 잘 버텨. 워낙 잘하던 녀석이라 더 표가 난 거잖아.”

“예.”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팀원들이 너 그동안 잘해온 거 잊어버리지 않아. 그러니까 오늘 실수도 금방 지울 수 있을 거다.”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얼굴 앞으로 다가온 어떤 온기가 멀어진 기분이었다. 그 손은 어깨를 두드리고 어둠 속 신기루처럼 물러났다.

“이제 그만 일어나. 시간 많이 늦었다.”

조리실 쪽으로 다가간 단테는 라파엘이 조금 전까지 쓸고 닦은 곳의 불을 껐다. 조명이 꺼지기 전, 평소보다 배는 정갈하게 놓인 그릇들을 보고 단테는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이제 식당에 남은 조명은 복도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 불빛뿐이었다. 라파엘도 의자를 넣고 밖으로 나가는 단테를 뒤따랐다.

“내일부턴 그릇 열 개에서 스무 개 정도 한 번에 거품 칠하고 한 번에 씻어내고, 나머지도 똑같이 하고 그래. 시간 훨씬 절약될 거다.”

“아, 알겠습니다.”

“수고 많았다. 그래도 며칠 더 굴러.”

“예…….”

라파엘은 그와 방향이 갈라지는 복도 앞에 멈춰 섰다. 바깥 풍경이 다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옆에 나 있었다.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엔 외진 훈련장에 찾아온 별들이 쏟아질 듯 걸려 있었다. 빛공해로 가득한 도시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라파엘은 바깥 풍경보단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단테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밤보단 환한 낮이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적막한 새벽의 복도에 서 있는 그 모습이 불현듯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나 간다.”

그 바람에 헤어지는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 안녕히 주무세요, 팀장님!”

몇 걸음을 옮기다 말고 우렁찬 굿나잇 메시지를 전달받은 단테가 피식 웃었다.

“귀엽게 굴긴.”

“…….”

“너도 잘 자. 내일 보자.”

라파엘은 어둑한 복도를 지나 혼자 걸었다. 이어 간단히 몸을 씻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옆 침대의 하사가 인기척을 듣고 부스스 고개만 들었다.

“이제 끝났어?”

“예. 깨워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고생했네. 여태 벌 받고 내일 어쩌냐.”

“괜찮습니다.”

“그래, 일단 얼른 자.”

다른 사람들을 깨우지 않게 조심조심 옷을 벗어 내려놓은 라파엘은 마찬가지로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딱딱한 철제 프레임 위에 반 뼘도 되지 않는 매트리스를 올린 침대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푸석한 솜 사이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훈련을 받고, 실수로 인해 초조해하고, 몇 시간 동안 벌도 받은 몸은 이미 지쳐 체력의 한계가 왔다.

그러나 라파엘은 잠이 들지 못했다. 노곤하게 풀린 근육과 달리 심장은 단테를 식당에서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라파엘은 그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모포를 가슴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돌돌 뭉친 이불에 한숨을 내려놓았다.

‘너무, 좋아…….’

단테 베일리가 좋다. 날이 갈수록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했다.

불현듯 눈가에 눈물이 툭 고였다.

‘너무 좋아. 어떡해…….’

상관이자 까마득한 선배인 그에게 품은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숨이 가쁜 감정이었다.

라파엘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숨기듯 눈꺼풀을 닫았다.

단테를 단지 귀여운 후배로서 만나는 기쁘고도 괴로운 하루가 내일 또 찾아올 것이다.

* * *

라파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사고를 친 날 또 다른 사고를 칠 녀석은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돌아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를 다그칠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단테의 방에선 조금 전 그가 라파엘을 혼냈던 위치가 내려다보였다. 아직 거기에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 1층 복도를 걸었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한 칸씩 건너 켜진 복도 조명이 스산했다. 그러고 보니, 헤인스워즈가 겁도 꽤 많지 않았었나. 야간 산행을 할 때 토끼 눈을 하고 있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단테의 입술이 웃음을 참는 건지, 불만스레 비죽이는 건지 모르게 움찔거렸다.

식당 앞에 도착한 단테는 팔짱을 꼈다. 그럼 그렇지. 다 괜한 걱정이었다. 라파엘은 여전히 개수대 앞에 서 있었다. 접시 하나를 깨끗하게 닦아낸 그는 다음 접시를 가져와 세제를 묻히고 닦아냈다. 그 뒤엔 또 다른 것을 가져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단테는 라파엘이 늦은 이유를 바로 알았다. 저 많은 양을 하나씩 설거지하고 있으니 한참 걸리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성실한 라파엘은 어느새 고지를 앞두고 있었다. 돌아갈까 망설이던 단테는 그냥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기왕 내려온 김에 기분을 좀 풀어주고 갈 생각이었다. 라파엘이라면 며칠은 더 의기소침할 게 분명하니까.

설거지를 마친 라파엘은 조리대의 물기를 치우고 이번엔 바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적당히 보이는 곳만 훔치고 마는데, 그는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쓸고 닦았다. 다음 날 조리실을 쓰는 인원들이 오면 눈이 휘둥그레질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조리실 안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인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주 잠시 보던 휴대폰은 도로 주머니로 들어갔다.

“쟤는 요령이란 걸 모르나.”

자정 넘은 시간에 훌쩍거리면서도 청소를 완벽히 마쳐가는 걸 두고 정신력이 강하다 해야 할지, 약하다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라파엘이 힘없이 조리실에서 나왔다. 터덜터덜 걸어 나온 라파엘은 지쳤는지 식당 의자에 풀썩 앉았다. 단테는 벽에서 등을 뗐다. 마주 앉아 대화하기 알맞은 상황이 되었다.

조용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둑한 조명에 반쯤 가려진 라파엘이 보였다. 푸르스름한 불빛이 그린 그의 그림자가 길쭉했다.

거기에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걸맞은 한 맺힌 곡소리가 더해졌다.

“……라파엘 헤인스워즈… 흐, 멍청한 새끼, 난, 바보야…. 끅…….”

“…….”

어이구.

반성하라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착실하게 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단테는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라파엘은 그가 다가오는 기척도 못 느끼고 여전히 테이블이 통곡의 벽이라도 되는 양 붙잡고 흐느꼈다. 심지어는 단테가 황당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아도 몰랐다.

“흐으으…….”

조금 뒤 진이 다 빠졌는지 울음을 잠시 멈췄다. 그렇게 1분 정도 숨을 고르다가.

“흐흑, 끅… 흐으윽……. 라파엘, 왜 그랬허어…….”

또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단테는 커다란 물방울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큼지막한 등이 둥글게 솟아 들썩이는 모습이 그걸 닮았다. 쿡쿡 찌르면 섧게 울며 자신을 닮은 물방울을 뚝뚝 흘릴 것 같다.

단테의 눈썹과 입술이 또 어이없이 곡선을 그렸다. 하…….

얜 뭔데 이렇게 어이없이 귀엽냐.

여기 앉아서만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마음 풀어주는 겸, 혹시나 같은 일이 또 없도록 타이르려 했는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겠다.

이래서야 수습 마치고 소대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총사령관의 아들이니 심한 부조리를 당할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군인치고는 너무 부드러운 성정이었다.

귀여움, 걱정, 안쓰러움, 기특함. 다양한 감정이 허락도 안 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뛰쳐나왔다. 그게 라파엘에게 남아 있던 작은 화마저 싸그리 녹여버렸다.

적지 않은 군 생활을 했지만, 단테는 이런 유형의 사람은 정말 처음 만나봤다. 수습기간만 잘 데리고 있자 생각한 후배에게 꽤 마음을 뺏겨, 이제 남은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쉬워져 버렸다.

단테는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때, 라파엘이 고개를 들었다. 분홍색으로 물든 눈가 안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봤다.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졌다.

아. 단테는 황급히 그의 머리로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다 울었냐?”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묻는 목소리가 조금은 떨렸던 것도 같다.

다행히 라파엘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단테 역시 순간 크게 뛰었던 고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로맨틱 캡틴 달링 3권 완결

@정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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