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09화
[어서 와 M언어는 처음이지?]
[이것이 M언어다. 렉도슨과 함께 매우는 실용 마법!]
[절차지향 원리로 이해하는 마법 언어.]
[스스로 마법 단위를 프로그래밍 해보자!]
천영은 테이블 위에 쌓여져 있는
마법 서적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리 며 눈을 조용히 감았다. 조금 더 복 잡하고 심화 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 마법들은 모두 넥스트에서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천영에게 있어서 익숙하면 익숙했 지 결코 낯선 것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점이 그를 심란하게 만들 었다.
“고작 게임에서 쓰이던 마법과 이 세계의 마법이 비슷한 이유가 뭐 지?,’
그런 원초적인 질문에 침대 위에 누워서 빈둥거리던 셀라임이 대답한 다.
“글쎄. 아마도 이 세계를 만든 신 이 넥스트를 개발했지 않았을까?”
“하긴 옛날부터 넥스트를 만든 넥 스트 주식회사의 정체가 불투명해서 혹시 신이 아니냐는 농담이 돌긴 했 었는데……
셀라임은 말을 더 이어갔다.
“이 넥스트라는 게임을 만들어서 우리를 이 세계로 넘겨온 신에게는 세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같아. 뭐,그냥 추 측일 뿐이지만. 그래서 어떤 방법을 통해 넥스트라는 게임을 지구에 만 들었고 일부 유저들을 뽑아 여기로
넘겨온 거지. 이유는 모르겠고. 나도 모르니까 묻지마.”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좋았다.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도 솔직히 확신은 없다. 어 째서 유저들이 이곳으로 건너와야만 했는지 이유를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 것들을 시시콜콜 따질 시간에 몬스터를 한 마리라도 더 사냥해서 강해지는 자가 곧 살아남는 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것을 안 넥스터 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강 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 니까.
천영도 마찬가지로 이런 지루하고
재미없이 짝이 없는 서적을 읽는 이 유는 본인의 강함과 직결되기 때문 이었다. 마법 서적처럼 직접적인 지 식이 연관이 있는 책을 읽을수록 경 험치가 더 많이 오르기도 했고 이 세계의 기술에 대해 이해하기 쉽기 도 했다.
‘극악의 직업 마법사는 더 인기가 많겠구만.’
경험치 바를 슬쩍 확인해본다. 며 칠 내내 안시르엘의 도움을 받아 책 을 빌려서 보고 있었지만 슬슬 경험 치가 잘 오르지 않았다. 마의 50레 벨. 모든 초보자들이 겪는 난항. 거 기에 특히나 마법사 유저들은 더욱
그 정도가 심했는데 다른 게임과는 달리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선행 조 건들이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공식을 암기하고 있어야 만 했고 마법진이 필요한 마법이면 마법진을 외우고 주문이 필요한 마 법이면 주문을 외워야만 했기 때문 이다.
초반에는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적은데 그마저도 스킬 발동률이 심 각하게 저조하니 마법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경험치가 특히나 오르지 않는데다 가 캐릭터가 상상 이상으로 약하고
스킬을 사용하기 힘들고 쓸데없이 머리만 아플 뿐이라 마법사 유저는 정말 극소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 저가 적었다. 천영은 그다지 좋지 못한 머리를 애처롭게 굴려가며 간 신히 적응을 한 케이스였다.
‘사냥을 병행해야 하나?’
현재 천영의 레벨은 25.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냥을 해가며 성장한 결 과물이었다. 효율적인 사냥에 있어 서 베테랑에 가까운 천영이 거의 한 달 가까이 쉬지 않고 사냥과 독서를 겸했지만 아직도 25인 부분은 조금 문제가 있었다. 이전의 천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개처럼 굴러서
한 달 만에 이정도 레벨은 거뜬하게 달성했었으니까.
물론 드래곤의 25레벨은 인간의 25레벨과는 차원이 달랐다. 스텟상 으로만 따지고 들면 인간들의 8~90 레벨은 가볍게 따라잡을 정도로 어 마어마했으니까. 그야말로 무식한 스랫에 괴물 같은 마나통.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대신에 그 모든 패 널티를 씹어 먹을 강력한 신체와 능 력.
모든 몬스터들에게 레벨이 매겨지 는 기준이 ‘인간 종족’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70레벨이 넘 는 몬스터 정도는 이제 거뜬하게 사
냥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너는 사냥하러 안 가?”
“오빠 책 읽는 거 구경하고 있지.”
“뭐하러?”
“귀엽게 생겼잖아.”
“……재차 말하는데 나 27살이라 니까. 다리털 숭숭 나있는 아저씨였 어.”
“흐흐, 그거랑은 별개로 지금 귀엽 게 생겼으니까 괜찮아.”
“그러시던가.”
그렇게 천영은 불편한 시선을 받으 며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셀라임,안시르엘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점은 이 둘은 이곳에 와서 특 별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상당히 바쁘게 옴직인다는 것이었 다.
또 다른 넥스터들이 이 레덕슨 항 구에 상당히 많이 정착했는지 그들 과 함께 사냥을 나간다며 항상 어디 론가 홀연히 사라지기 일쑤였고 안 시르엘 또한 셀라임과 세트나 마찬 가지였기에 둘은 언제나 호텔방을
비우고 사라졌다.
덕분에 천영은 조용히 마음을 놓고 책을 읽을 공간이 생겨서 좋을 따름 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조금 심심할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호텔로 돌아온 셀라임과 안시르엘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웠다. 그것을 눈치 챈 천영이 책을 슬쩍 덮고 시계를 보았다. 밤 12시가 지나있었다.
“많이 늦었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
어?”
“웅……
안시르엘이 힘없이 의자에 털썩 앉
더니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셀라임 은 조금 충격을 먹은 모습으로 침대 에 걸터앉고선 얼굴을 양 손으로 틀 어 막았다.
이 묘한 분위기에,천영은 차마 말 을 걸 수가 없었다. 침묵. 그것이 30분이 넘도록 지속되고,마침내 셀 라임이 고개를 들어 천영과 눈을 마 주했다.
“며칠 전부터 같이 사냥을 하던 언 니가 있었거든.”
“죽었어.”
“……어?”
정말 전조도 없이 전개도 없이 발 단도 없이 너무나도 갑작스레 터무 니없는 말을 꺼내는 바람에 천영은 순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 단 말이야. 우리는 게임 시스템을 가지고 이곳에 왔잖아? 혹시 죽으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근데 그게 아니었어.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너무,너무나도 끔찍 했어. 그건 나는 정말로……
이윽고 셀라임이 횡설수설하기 시
작한다. 천영은 자신보다도 어리고 마음 또한 연약한 저 아이의 둥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이 작고 악마 같 은 손이 원망스러웠다.
의외로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스킬 드래곤 페이스는 이런 충격이 오는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도 차갑 게 머리를 식히고 냉정한 판단을 해 주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는 살짝 날갯짓을 해서 셀라임의 옆에 앉았다. 쓸데없는 말은 할 필 요가 없다. 셀라임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뒤로 셀라임은 며칠이나 방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나 싶더니 금
방 또 기운을 차려서 팔팔하게 움직 이기 시작했다. 이런 일로 기운이 빠져서 행동력이 저지당하면 천하의 셀라임이 아니네 어쩌네 하면서 억 지로 기운찬 말을 내뱉는 것을 보면 아직 후유증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도 활동력이 생겼다 는 점에서 천영은 마음이 놓였다.
셀라임이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그녀를 위로해주던 안 시르엘 역시 상당히 안심한 표정이 었다.
“오빠,오늘 뭐해?”
“데이트라도 신청하게?”
“뚜둔,안타깝게도 오늘 내가 바빠 서 오빠가 신청하는 데이트를 거절 하려고 미리 철벽친거야.”
“그거 아쉽게 됐네.”
셀라임은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한 다. 아까부터 흘깃거리는 것을 보면 약속 시간이 상당히 다가온 모양이 다.
“나랑 엘링이는 잠깐 나갔다 올 거 야. 바다로 사전 조사 좀 하러 가봐 야 하거든.”
“바다는 왜? 낚시라도 하게?”
“물론! 하지만 낚는 것은 물고기 따위가 아니라 괴물 문어야. 흐흐흐,
간만에 문어맛 좀 보겠네.”
“문어라면…… 크라켄? 그 역겹게 생긴 걸 먹겠다고……?”
“응응. 금방 다녀올게! 만약 낚으 면 오빠도 한입 줄 테니까 우리 없 다고 울면 안 돼.”
“꺼져.”
셀라임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 나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슬쩍 빗 어 내리며 기지개를 폈다.
천영은 슬쩍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현재 셀라임의 옷차림은 짧 은 핫팬츠에 거의 흘러내리다시피 하는 얇은 나시가 전부였다.
아무리 천영이 남자의 모습이 아니 라지만 너무 무방비했다. 그리고 그 건 은연중에 천영의 자존심이 상하 는 일이기도 했다.
천영을 남자로써 보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천영의 가음 한편 이 쿡쿡 쑤셔왔다.
‘으득,내가 휴먼 폼을 배워서 원 래 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천영은 얼마 전에 드래곤 사전을 읽으며 알아낸 정보가 있다. 드래곤 이 인간의 형상을 취하게 될 경우 인간이 가진 미美라는 것의 한계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드래곤은 남자의 모습을 하기도 했 고 여자의 모습을 하기도 했다. 딱 히 성별이라는 것에 구애를 받지 않 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에 라라 성별 하나를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드래곤들의 공통점은 정 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 답다는 것.
오죽하면 드래곤이 인간 형상을 한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본 학자가 그 아름다움을 서술하기 위해 대략 3,000자 내외로 그 묘사를 풀어서 썼을까.
그렇기에 천영은 내심 기대하고 있
었다. 이전의 자신은 솔직히 아름답 다는 말은커녕 잘생기지도 않았다. 아니,사실 조금 못생겼다. 덕분에 ‘얼굴이 못생겼으면 몸이라도 잘생 겼어야지!’라는 일념 하게 근육을 키우겠다고 운동을 죽어라 해서 몸 의 근육은 꽤 봐줄만 했지만 하여튼 여자들한테 인기 있을만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데 드래곤의 인간 모 습이 아름답다고 모든 책을 둘러봐 도 극찬을 해대고 있으니 기대가 안 될 수가 없는 것.
‘분명 초 섹시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위태로운 크리티 컬한 미남이 될 수 있을 거야.’
천영은 음흉한 웃음을 홀렸다. 그 렇게 되면 이 아름다운 여인 두 명 의 파티 중간에 당당히 서서 양손의 꽃을 몸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툭.
책을 덮는다. 목을 살짝 빼 올리고 날개를 쫙 펼쳤다. 가볍게 기지개를 편 다음 창문가로 슬쩍 날아갔다. 셀라임은 대충 씻더니 ‘금방 다녀올 거川라며 허겁지겁 사라져버렸다.
천영도 따라가겠다고 하고 싶었지 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다. 같 이 가봐야 민폐밖에 되지 않을 것이 다. 게다가 넥스트에서는 고레벨 유
저들이 저레벨 유저들을 데리고 다 니며 대신 몬스터를 잡아주고 경험 치를 올리는 행위,일명 ‘쩔’이라는 것조차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버 스를 얻어 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셀라임과 안시르엘에게 도움이 될 정도로 성장은 스스로의 힘만으 로 해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창밖을 내다보자 이곳의 주민들과 넥스터들이 분주하게 어딘가로 향하 고 있었다. 바다로 사전 조사를 간 다고 말한 것과는 별개로 꽤나 힘 쓰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부럽구만.”
천영도 몸이 근질거렸다. 애초에
그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이나 읽 고 있는 학자형 타입이 아니라 무식 하게 몸으로 치고 박고 싸우는 타입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