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13화
책을 완전히 읽는 데에는 꼬박 날 밤을 새야만 했다. 상당한 속독을 자랑하고 있던 천영이었지만 거의 15시간 넘도록 책을 읽기만 했다.
밥을 먹는 것도 까먹고 잠을 청하 는 것조차 잊은 채로 설계도를 읽는 데에 열중하자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스킬 : 마격투를 습득 하였습니 다!]
[레벨 업!]
스킬을 습득했다는 메시지와 동시 에 레벨이 올랐다. 그동안 몇 번의 메시지가 떴던 것 같지만 신경도 쓰 지 않고 책을 읽었기에 레벨은 확인 하지 못했다.
천영은 상태창을 불러내기 위해 손 을 들었다가 묘한 위화감에 들어 자 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전보 다도 훨씬 더 굵고 잔근육이 붙은
손이 시야에 들어온다. 심지어 팔의 길이도 길어져서 훨씬 더 자유자재 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본다. 몸을 움직 일 때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 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천영의 몸집은 이전보다 조금 더 커져있었 다.
예전에는 정말로 자그마해서 몸 전 체의 크기가 손바닥보다 조금 크고 팔뚝보다 작은 정도였다면 지금은 사람의 머리보다 조금 더 크고 상체 보다 살짝 작은 정도였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폐허가 된 도 시의 집을 뒤적거려 거울의 파편이
남아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 자신 의 모습을 비춰보자 이마에 금색의 뿔이 돋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 다.
눈동자는 더욱 더 찬란한 금색으로 빛이 나고 있었고 등에는 새하얀 줄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는 정 말 조그만 도마뱀 같은 느낌이었지 만 이제는 어엿한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밤새 책을 읽어 서인지 눈이 좀 많이 침침하고 눈가 에 다크 서클이 드리운 느낌이 들었 다.
[상태창]
이름 : 서천영 Lv. 50 클래스 : -직업 : 一 세력 : _
종족 : 드래곤 나이 : 50(27)
성별 : 無
칭호 : 위대한 여행자
HP : 3049/3049 MP :
13923/13923
힘 : 217 체력 : 141 민첩 : 176
지력 : 438 정신력 : 1000 잔여 스벳 : -상세정보 ▼
어린 드래곤의 신체는 피부가 나무 처럼 단단하며,이빨과 발톱이 바위 처럼 튼튼합니다.
드래곤의 레벨은 나이와 동일합니 다.
성체가 되지 못한 어린 드래곤은 경험치를 얻는 것으로 나이(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레벨을 임의로 올리는 과정은 나이 를 강제로 먹는 행위와 똑같기 때문 에 보통보다 많은 경험치를 요구합 니다.
성체가 될 경우 더 이상 경험치를 통해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드래곤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 습니다.
성체가 될 경우 성별을 임의로 정 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의 스탯은 성장을 할 때마다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드래곤은 클래스를 가질 수 없으나 해당 클래스의 스킬을 배울 수는 있
습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드래곤의 특성상 독서를 할 경우 많은 경험치를 습득 할 수 있습니다. 상태창을 켜자 뒤 늦게 자신의 레벨이 50을 달성했다 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천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드 디어 이 불편한 드래곤의 신체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드래곤이 되었다지만 천영에게 있어 서 더 편한 신체는 역시나 인간의 모습이었다.
열 개의 손가락을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고,자유롭고 유연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으며,인간들의 사회에
서 멀쩡하게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신체가.
천영은 당장에라도 휴먼 폼을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여태껏 실 컷 읽었던 마격투술을 사용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른손에 마나를 끌어모은다. 그대 로 마법진을 응집시키는 상상을 하 자 기묘한 문자가 새겨진 도형이 오 른 주먹의 손등 위에 펼쳐지며 제대 로 된 힘을 발휘했다.
단순히 펀치력을 중가시키는 마법 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천영은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천영은 주먹을 내질렀 다. 근육의 한계를 초월해서 빠르게 내질러지는 펀치의 위력은 상당했으 나 그와 별개로 천영의 몸이 중심을 잃고 자빠졌다.
털썩!
“으컥!”
품위 있고 세련된 드래곤의 모습이 라기엔 너무나도 비참한 자세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천영은 자신이 사용 할 수 있는 마격투술을 몇 번이고 시도해봤다.
발차기,정권 지르기,손에 불꽃을 두르고 발사하기,눈에서 레이저
빔!
퍽,풀썩,털썩,콰쾅!
하지만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질 뿐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았 다. 분명 마격투술에는 문제가 없었 다.
드래곤의 우월한 신체는 근육에 큰 무리가 가지 않고 스킬이 사용되긴 했다. 하지만 마격투술을 익혔던 토 우대장군 역시 인간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근육에 무리가 가 지 않는다지만 인간이 아닌 형태를 하고 있는 드래곤이 사용하기엔 여 러모로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고 제 대로 스킬이 발동되지도 않았다.
“젠장!”
이렇게 되면 기껏 마격투술을 익힌 의미가 없어진다. 이런 경우가 간혹 있긴 했다. 스킬을 습득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에 기껏 익혀놨더니 막상 본인의 신체와 조건이 맞지 않 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를. 다른 사람들이 그런 재수 없는 상황 에 걸린 것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 을 하긴 했지만 설마 본인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지,잠깐. 휴먼 폼을 쓰면 되 는 일 아닌가?’
천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인간의 몸을 갖게 되는 휴먼 폼이지 만,드래곤인 천영의 인간 형태가 평범한 인간의 구조와 같을 리가 없 었다.
다른 생명체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마격투술을 드래곤의 휴먼 폼의 상 태로는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는 판단이 들었다. 그는 한줄기 희 망을 품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휴먼 폼 스킬이,반짝반짝 빛나며 활성화 되어있었다.
“휴먼 폼.”
짤막하게 주문을 외우자 드래곤의
신체가 모래 파편처럼 변해 사라지 며 서서히 그 크기를 조금씩 키워나 가 몸을 재조립했다.
성인 남자의 상체보다 조금 더 커 다랬던 신체는 그보다 조금 더 커졌 고,피부색 또한 평범하게 희고 고 운 사람의 색을 갖게 되었다.
머리카락은 태어나서 한 번도 자르 지 않은 것처럼 약간 곱슬진 긴 머 리가 허리 아래까지 풍성하게 내려 왔고 짧은 팔다리는 훨씬 길어져 평 범한 인체 비율을 갖게 되었다.
[휴먼 폼을 사용함에 따라 종족 특
성과 스킬이 일부 제한됩니다.]
[힘 스뱃이 대폭 줄어들고,민첩 스텟이 소폭 중가합니다.]
[방어력이 대폭 낮아집니다.] [추위와 더위를 타게 됩니다.]
[스킬 : 드래곤 브레스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스킬 : 드래곤 피어의 위력이 감 소됩니다.]
[날개를 이용한 비행을 할 수 없습 니다.]
[드래곤 종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출력 되었지만 천 영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순 간적으로 몰아친 추위에 몸을 감싸 야만 했기 때문.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는 한기 가 실려 있었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의 신체에 그 한기가 벳속까지 스 며들었다.
몸을 오들오들 떨며 양팔로 몸을 감싼 다음 잽싸게 건물 안쪽으로 숨 었다. 천장이 대부분 무너지긴 했지
만 그래도 바람을 막기엔 제격이었 다.
으드드드드 w
덜덜덜.
천영은 찢어진 천으로 몸을 급하게 감싼 다음 인벤토리를 열었다. 뭐라 도 몸에 걸칠 생각이었는데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예전에 항상 착용하고 다니던 갑옷은 반쯤 망가 진 지 오래였고 대부분의 장비는 돈 을 마련하기 위해 팔아치웠다.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한참이나 인 벤토리를 뒤적이던 천영은 간신히 초보자 시절에 사용하던 옷을 발견
했다. 상당히 낡은 청회색의 반팔 셔츠에 검은색의 반바지였지만 그래 도 지금 당장은 입을 옷이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잽싸게 꺼내서 몸에 걸쳤다.
“..‘?,’
직후 드는 위화감. 상의가 생각보 다도 훨씬 컸다. 하의는 아직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벅지를 절반 이상이나 가릴 정도로 내려왔고,본 래 반팔이던 소매는 팔목 바로 위쪽 까지 올 정도로 길었다. 애써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바지를 입으려고 했지만 너무 헐렁해서 계속 흘러내 렸다. 결국 바지를 내려놓은 그는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먼저 손바닥, 가슴,다리 그리고 기다란 흑색의 머리카락을.
“……뭐야 이게?”
신체가 너무 작았다. 드래곤 상태 일 때에 비하면 분명히 조금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작았다. 혹시 뭔가 잘못됐나 싶어서 몸을 여기저기 더 듬으며 재차 확인을 해봤지만 아무 리 봐도 몸이 작아져있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어리다는 표현이 적절 했다.
“왜……?”
그런 의문을 품으며 천영은 깨진
거울 조각을 가져왔다. 그것을 벽에 세우고 본인의 모습을 확인해본다. 천영은 휴먼 폼이 했을 경우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자주 상상을 하곤 했다. 조각마냥 섹시한 근육,듬직한 등 근육,널찍한 어깨,빛나는 외모 를 자랑하는 미남자.
하지만 그런 꽃미남은커녕 웬 어린 애가 하나 서있었다. 거울 속 그 소 년의 나이는 대략 초등학생 저학년 으로 추정될 정도로 어려 보였는데 심지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고유의 특징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중성 적인 생김새가 되었다.
천영은 슬쩍 자신의 흑색 머리카락 을 뒤로 모아서 단발의 형태로 만들 었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치워서 보 면 앞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잘생긴 소년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 들었지만 연하고 순한 이목구비 에 약간 반곱슬끼가 있는 긴 생머리 가 더해지자 소녀 같다는 느낌이 더 욱 강하게 들었다.
금가루를 녹여 만든 구슬을 박아놓 은 것만 같은 눈동자에 큼직한 눈동 자와 쌍커풀. 분홍빛이 도는 작은 입술에 새하얀 우유빛깔 피부까지. 상당히 예쁘장한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인상이 더해져서 마치 숲속의
요정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하하.”
이게 뭐야. 천영은 헛웃음을 홀렸 다. 그동안 휴먼 폼에 대해서는 수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자신이 변 한 종족에 따라 인간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 바뀌는 경우는 꽤나 있다고 한다.
거인족으로 탈태에 성공했던 남자 는 원래 탈태를 하기 전에는 근육이 하나도 없는 멸치남이었는데 탈태를 한 이후에는 휴먼 폼의 상태가 근육 질의 남자로 변하기도 했고 순수한 인상의 여자가 남자 뱀파이어의 심 장을 먹고 탈태를 하자 상남자형의
보이쉬한 여성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습이 많이 바 뀐 경우는 처음 봤다. 아무리 종족 탈태로 인해 모습이 많이 바뀌어도 기본적으로 본래의 모습이 남게 된 다. 그런데 거울을 보라 천영의 본 래 모습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 았다.
그는 이런 어린 모습이 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설마 내가 드래곤의 나이로 따지 면 어린애라서?’
그런 이유라면 아주 살짝 납득이 되긴 한다. 하지만 어린 모습이라는
것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 니다.
사회에서는 어린아이보다 성인의 발언권이 더 강했으니. 게다가 생김 새 또한 어떠한가. 차가운 도시를 등지고 홀로 악마를 쓸어버리고 납 치된 공주님에게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피스를 날릴 것만 같은 상남 자의 그런 모습을 바래왔건만 악마 는커녕 개미 하나 제대로 밟아 죽이 는 것도 못할 것 같은 여린 모습이 되었다.
물론 못생긴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 만 그래도 뭔가 약해 보인다는 점이 가슴이 아파왔다. 천영은 슬쩍 자신
의 사타구니를 확인했다.
“……없네.”
드래곤은 중성 혹은 무성이다. 성 체가 되기 전까지는 성별을 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남자의 심벌이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럼에도 그 상실 감은 남자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의 것이라기 도 애매하고 차라리 여자의 것에 가 까운 생식기가 있었다. 왜 드래곤이 무성인지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말 하는 듯한 느낌으로. 언젠가 성장하 게 되면 남자의 성별을 정하면 된다
지만 지금 당장 허전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천영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었다. 이미 이런 모습이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마음대로 성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성체 드래곤들이 ‘폴리모프’라는 종족을 마음대로 바꿔서 변신할 수 있는 마 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외모는 종족에 맞게 한 가지의 모습 으로 변형되는 것이어서 외모를 마 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다.
정말 초고도의 마법사들은 외모를 환영으로 조금씩 어떻게든 수정한다 고는 하지만,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또 없어 보이고.
‘옷도 이런 것밖에 없고. 죽겠네. 진짜.’
천영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 습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거울 속 어린 소년의 눈가에는 다크 서클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피로가 쌓여있는 모양이다. 그는 슬쩍 기둥에 등을 기댄 다음 머리에 다가 작게 흠집을 내서 표시했다. 그 다음 높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자 생각보다도 작은 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벨 업을 하면 다시 자랄 수는
있겠지……
그래도 레벨 업을 하면 드래곤으로 써 나이를 먹게 되고 키 또한 자란 다. 계속 이런 모습으로 지내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 천영에게 조금 의 희망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