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19화
리슬류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 했다. 인간들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서는 가장 먼저 저항력을 빼앗을 필 요가 있었다.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이란 즉,가 지고 있는 의지와 마찬가지. 그것을 빼앗는 방법은 간단하게도 쉴 새 없 이 지속적인 전투를 시키면 되는 것 이었다.
‘유갈레 타의 호르몬 향수. 챙겨오
길 잘했지. 크크크.’
그의 목에는 붉은빛을 띠고 있는 아름다운 보석이 장식 된 목걸이가 있었는데,그 속에는 모든 몬스터들 이 마약처럼 중독되는 향을 가진 냄 새를 풍길 수 있는 아티팩트가 내재 되어 있었다.
리슬류는 그것에 마나를 조금 불어 넣었다. 그러자 바로 그의 감각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고생들 하라고. 조만간 편 해질 테니까.’
이후로 이틀간 리슬류의 계략에 의
해 원정대는 정말 숨 쉴 틈도 없이 몬스터와 조우해야만 했다. 레벨 100대에서 200대 후반까지 강한 몬 스터들이 속속히 등장해서 원정대를 습격했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부상자가 속 출하고 있었다. 결국 네오발은 자신 의 판단에 이동 루트를 변경하려고 했지만 리슬류는 이곳의 지리에 대 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며 네오 발이 자신을 믿고 있는 점을 이용해 원정대를 더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 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천영이 사사건건 방해를 해오는 탓에 리슬류의 짜증
지수도 서서히 올라갔다.
“어라,여기는 제가 알기로 맹독 악어가 다수 서식하는 곳이라고 들 었는데…… 그건 알고 이쪽으로 가 자고 하시는 거죠?”
“그,그랬던가? 하하. 참 깜빡했군. 다른 길로 가세.”
또는.
“이 동굴에서 오늘 밤을 지내도록 하지.”
“흠 네오발 아저씨. 여기…… 이 자국 보이세요? 그레이 웜이 배설물 이예요. 여기 아무래도 그레이 웜의 둥지 같은데…… 괜찮을까요?”
이런 식으로 원정대가 이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틈을 파고들어 함정 에 빠트리려는 것을 천영이 죄다 참 견해서 방해를 해댔다. 덕분에 리슬 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던 네오발 도 조금씩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까지 되자 리슬류는 자 신이 어른이고 천영이 꼬맹이라는 점을 이용해 혼을 내려고 했지만 천 영 역시 잔머리에는 도가 튼 사람이 었다.
천영은 아주 어릴 적에 보았던, ‘제 이름은 탐정,함정이죠.’라는 명
대사를 날린 명탐정의 방법을 조금 따라 하기로 했다.
“어라? 아저씨,여기 바닥에 이상 한 꽃이 자라있어요! 리슬류 아저씨 가 한 번 보실래요?”
“히,히익! 그거 당장 내려놔! 맹 독 가시를 품은 식인 꽃이란 말이 다!”
“헉! 왜 이런 곳에 오자고 하신 거 예요! 저는 빨리 나갈래요!”
“젠장……
리슬류가 점점 곤혹스러워하는 것 을 보며 천영은 음흉한 표정으로 실 실 웃어댔다. 생각보다 어린 모습을
이용해먹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물론 천영이 장난만 치는 것은 아 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리슬류를 곤 란에 빠트리면서도 그의 속내가 뭔 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그를 관찰했다.
‘일단…… 마법사로 추정되긴 하는 데. 어느 종류의 마법을 배운 거지? 이쪽 관련해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르 는 부분이 많은데.’
잡다한 지식을 갖게 된 것에는 천 영이 이 그리픈에 사는 성인 남자들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지만 마법에 관해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꽤 있을 수밖에 없었
다양한 마법 서적을 접하긴 했지만 모두 마스터하진 못했고 마법이라는 것이 애초에 수많은 줄기로 퍼져있 기 때문에 모두 알아내는 것을 불가 능했다.
하지만 천영은 보통의 마법사가 아 닌 태어나면서부터 숨 쉬고 살아가 는 순간과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의 모든 것이 마법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마법의 종족’ 드래곤이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다양한 마법을 구사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뛰어난 마법 통찰력은 초고위급의 마법이 아닌 이상 보는 순간 파악할 수 있
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렇다면 사용하게 만들면 되지!’
얼마 뒤 흡혈 박쥐 무리가 습격을 해왔다. 보통의 경우엔 깊은 산맥에 자리를 잡고 동굴 밖으로 절대 나오 지 않는 몬스터였는데 이상하게도 멀리까지 날아와 원정대를 습격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는 생 각을 하면서도 천영은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박쥐를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 은 원거리 클래스가 광역 스킬로 쓸 어버리는 것이다. 단일 개체의 레벨 은 100도 되지 않아 약하지만 그 수가 많은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무서울 뿐인 몬스터. 그래도 레벨이 100가량이나 되기 때문에 단순 공 격력만 따지면 일반인이 물리면 즉 사다.
그런 위험한 흡혈 박쥐를 천영은 마법이 아닌 근접전으로 상대를 하 다가 실수를 한 척 리슬류를 향해 거대하고 덩치가 큰 준보스급의 박 쥐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아차! 아저씨 위험해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서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게 만드는 것은 덤. 거대한 흡혈 박쥐가 아무런 보호 장 비도 없이 원정대에게서 멀리 떨어 져 있는 리슬류를 향해 날아갔다.
네오발이 다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쫓아갔지만 소용없었다. 박쥐는 너 무나도 빠른 속도로 리슬류에게 접 근한 상태였고 누가 봐도 잠시 뒤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 실이 눈에 보였다.
‘젠장!!!’
결국 리슬류도 마법을 쓰지 않으면 방어력이 일반인 수준에 불과하다. 하는 수 없이 리슬류는 방어 마법을 선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터엉!
쮜에에에앵!
붉은색의 테두리에 특이한 마법 문
자가 새겨진 실드가 발동되어 그곳 에 부딪힌 흡혈 박쥐가 부딪히더니 두개골이 파괴되어 그대로 시체가 되어 뒹굴었다.
리슬류는 몸을 방어하기 위해 실드 를 펼쳤지만 이내 식은땀을 줄줄 흘 리고 말았다. 원정대원들이 알기로 는 리슬류는 그저 어부일 뿐이다. 그런데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아직 준비가 완전히 되지는 않았 어. 어떻게든 넘겨야……
안타깝게도 리슬류 혼자서 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크라 켄의 시체에서 힘을 뽑아내 광범위
저주 마법을 걸어야만 이들의 힘을 흡수할 수 있었기에 그는 최대한 상 황을 넘기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리슬류 씨,마법도 사용하실 줄 아는군요?”
“그래,내가 옛날이야기를 가끔 들 려주지 않았던가? 나름 제국에서 굴 러먹던 놈이라고. 뭐 지금이야 레덕 슨에 와서 낚시나 하고 있지만…… 이거 부끄럽지만 내 낚시 실력이 조 금 형편없는 것도 이제는 좀 이해 좀 해주겠나? 하하.”
“그렇…… 습니까.”
네오발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리슬류의 과거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상당히 중 요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모종의 이 유로 모든 일을 때려 치고 낚시나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리슬류의 낚시 실력이 다른 어부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것을 보고 고 개를 갸웃하던 네오발에게 대충 둘 러대던 변명이었지만 이렇게 써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리슬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 다. 네오발이 의심을 하는 모양이었 지만 상관없다. 오늘 밤만 지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거의 다 왔어. 망할 문어는 쓸데
없이 이동 속도만 빨라서는.’
아무래도 인간의 걸음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이동 속 도를 가진 크라켄이었기에 벌써 며 칠이나 추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로 이 앞에 있는 산의 정 상에 자리를 잡은 크라켄을 발견할 수 있었고 상당히 지친 원정대를 이 끌고 내일 크라켄이 있는 곳까지 가 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미 각 인이 새겨진 크라켄은 범위 내에 리 슬류가 들어오는 순간 저주를 발동 시킬 마력을 불어넣을 것이고,그렇 게 되면 게임 오버다.
‘……그 전에 저 꼬맹이부터 어떻
게든 해야겠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호기심 가득 한 어린아이 특유의 말투로 이것저 것 가볍게 던지는 질문들은 리슬류 에게 있어서 상당히 곤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내심 알고 있었다. 저 쓸데없이 감이 좋은 꼬맹이가 자신에 대해 뭔가를 눈치챔 사실을.
‘어린 나이에 대단한 눈썰미와 마 법 실력을 갖춘 것은 인정하지. 하 지만 네가 아직 너무 어린 것을 탓
그날 저녁 목적지를 목전에 둔 원 정대는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개 활지에 자리를 잡고 숙영을 했다. 크고 작은 텐트 몇 개가 세워지고 한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운 다음 불 침번이 돌아가며 경계를 한다.
천영은 내심 불침번에 자신이 속하 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군대 에 있을 때에도 스트레스 받아가며 꼬박꼬박 섰던 불침번이며 넥스트를 플레이할 때도 대규모의 원정에 참 여할 경우 젊은 남자라는 이유로 제 일 거지같은 타임의 근무를 설 수밖 에 없었던 천영이었지만 지금은 어
리다는 이유로 불침번에서 열외 되 었다.
늦은 새벽 쌀쌀한 바람이 어둠에 물든 나뭇가지를 춤추게 하는 시간. 천영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텐 트 밖으로 나왔다. 그는 하품을 쩍 쩍 하더니 모닥불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많이 급하니?”
“네,조금.”
빨리 갔다 오렴. 그 말과 함께 천 영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바위 를 건너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드래곤이지만 일단 유사인종과 비 슷한 생리 현상을 하긴 한다. 그렇 게 자주 하지도 않고 대변을 볼 필 요가 없는 편리한 신체라는 점이 약 간은 달랐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영이 지금 오줌이 마렵다는 이유 로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어떤 기운이 계속해서 몸 을 찌르는 감각에 의해 잠에서 깬 것이다.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천영 을 노리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 면 아니,네오발이라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속내 깊은 곳까지 숨겨가 며 살의를 뿜어댔지만 드래곤이 되 어 민감해진 천영은 알 수 있었다.
리슬류가 아주 작정하고 오늘 밤 무슨 짓을 저지를 것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이곳으로 유인을 했다. 천영은 이미 칼과 셀라임,안시르엘 에게 말을 해둔 상태였다. 자신이 이곳을 떠나고 10분 뒤에 찾아와달 라고. 그나마 신뢰할만한 사람이 이 셋밖에 없었기에 일단 그렇게 전하 기는 했지만 이들만 와도 충분히 리 슬류를 상대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의 경우에는 자신의 힘을 숨 기고 있지 않아 레벨의 확인이 가능 하지만 스스로의 힘을 갈무리할 줄 아는 인간의 경우 스스로 밝히지 않
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늠이라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천영은 리슬류가 단 한 번의 마법 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어떤 종류의 흑마법인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까 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레벨은 알 수 없지만 무지막지하게 괴물 같은 힘을 자랑하지는 않을 것 으로 추정되었다.
’해볼만 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야:
이곳에 리슬류를 유인해 방심하게 만든 다음 회심의 일격을 먹여 카운
터를 날린다. 이것이 천영의 계획.
‘나도 좀 남자답게 살고 싶단 말이 지.’
아무리 그래도 만랩을 찍었던 천영 이다. 누군가에게 계속 보호받는 듯 한 역할로 지내는 것도 질색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나서서 해결하자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스럭.
몇 분이 지나자 구석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숨길 생각이 전혀 없이 적나라하게 기척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지를 내리는 시능을 하던 천영은 고개를 슬쩍 들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곳을 쳐다보았 다. 리슬류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나무 옆에 서있었다.
“어라. 아저씨 안 주무세요? 아, 오줌 마려우셨나보네.”
“그래…… 그렇다고 치지. 내가 와 서 방해가 됐나? 보던 볼 일 계속 보지 그래.”
별로 마려운 것도 아닌데. 천영은 소변을 보는 시눙까지 할 필요는 없 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그냥 누가 보고 있으면 조 금 부담스러워서.”
그러자 리슬류는 마치 정답을 맞힌 아이처럼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왜?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네?”
뭔 개소리지? 천영이 굉장히 당황 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크게 뜨자 리 슬류는 그 반응마저도 예상했다는 둣 순식간에 그에게 다가오더니 바 로 면전에서 입을 열었다.
“크크크. 그 얼굴로 숨긴다고 될 것 같아? 정말 죽이기는 아까운 외 모란 말이지…… 역시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어.”
“저기 대체 무슨 소리를_ 지이엉.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살짝 뒤로 물 러나려는 순간 그의 발밑에 마법진 이 형성되더니 검은색의 줄기 같은 것이 솟구쳐 나왔다.
귀신같은 반응속도로 수인을 맺어 대응하려고 했지만 이미 천영의 약 점이 손이라는 사실을 파악해낸 리 슬류는 정말 빛살 같은 스피드로 그 양손을 구박해서 나무기둥에 처박았 다.
“커흑!”
양손을 위로 구박당한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자 리슬류가 비릿 한 웃음을 지으며 천영에게 다가왔 다.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푹 숙이 고 있던 천영의 볼을 우악스럽게 옴 켜쥐어 들어 올린 다음 자신과 시선 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꼬맹아,넌 참 눈치도 빠르고 머 리도 똑똑하고. 다 좋은데 너무 어 린 탓이었어.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 넣으면 내가 이렇게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니? 응? 너무 어른들의 세계를 모르고 있잖아. 그래, 넌 참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어딜 가든 네 재능에 사람들이 양손을 들고 찬사 를 하겠지. 근데 그래서 네가 어리
단 거야. 세상 보는 눈이 너무 좁거 든. 크크크.”
고통어린 신음을 내며 천영이 시선 을 계속해서 피하려 들자 그의 머리 카락을 쥔 리슬류는 그것을 자신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스읍…… 역시 여자가 틀림없군. 호르몬 냄새가 안 나는 건 이상하지 만…… 이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향 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건 정말 특이 해.”
“다,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잔뜩 겁먹었지만 그럼에도 주녹들 지 않는 어린아이를 연기하며 천영 이 억지로 눈을 치켜뜨자 리슬류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여기서 10년만 지나도 이 대륙에 널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미모를 가진 천재 대 마법사라…… 정말 부럽군. 누군 40 년을 죽어라 노력해도 마탑의 말단 으로 평생을 썩어가고 있었는데. 부 러워. 너무 부러워.”
“무슨……
퍽!
“커흑!”
천영이 입을 여는 순간 갑자기 분 노에 휩싸인 리슬류가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이 끔찍할 정도 로 천재적인 재능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이 동시에 충 족되어 당장이라도 오르가즘을 느낄 것만 같았다.
“걱정 말거라. 네 인생은…… 평생 나를 위해 봉사하도록 해줄 테니 까.”
“흐으..”
복부를 얻어맞은 충격으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기운 빠진 소리를
내며 기절한 척 하는 천영의 머리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관자놀이 쪽에 양손바닥을 각각 가 져다 대고 마법의 기운을 응집한다. 기억을 조작하는 마법은 사실상 거 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흑마법을 이 용해 뇌를 태워서 백치로 만드는 것 이라면 간단하다. 거기에 조금의 사 상만 추가하면 리슬류가 원하는 행 동만을 기계처럼 반복할 뿐인 노예 가 탄생된다.
아무리 천재 마법사라지만 양손이 봉인당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이 꼬맹이는 그저 힘없는 소녀일 뿐이다.
“이건 네가 아직 모르는 마법일 거 야. 네 뇌를 주무르는 것이긴 한 데…… 걱정 마. 아프지는 않으니 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슬류는 그 거 친 손으로 천영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오소소 돋는 소름에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저 손을 깨물어버릴 뻔했 다.
‘이 미친 페도 자식…… 지,진심 인 건가?’
음흉한 얼굴로 쓰러진 천영을 바라 보던 리슬류가 손에 마법진을 형성 했다. 천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
고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뇌를 조작하는 마법에 대해는 잘 모르지만 그런 세밀한 마법을 사용 하게 되면 반드시 큰 빈틈이 발생하 게 된다. 그 틈을 노리고 용언을 이 용해 강력한 카운터를 먹인다.
평범하게 일대일 승부를 하게 되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싸음이지만 약자로써 끝까지 마지막 한 수를 숨 기고 포식자가 방심하는 틈을 타 목 을 물어뜯어버리려는 작전.
‘이거야말로 진정한 남자가 보복을 하는 방법이지!’
보랏빛의 마법진이 허공에 결집되 고,주문을 외우기 위해 리슬류가 모든 마나를 양손에 집중하려는 그 순간 천영이 눈을 번쩍 뜨고서 반격 을 하기 위해 입을 열고 주문을 외 웠다…… 라는 느낌으로 반격을 하 려던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예상 외의 실루엣이 눈에 비춰졌기 때문 이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죽여버릴 거야.”
“이것 참…… 도와달라고 해서 와 봤더니.”
순서대로 네오발,셀라임,칼의 목
소리였다.
리슬류 역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하고 있었다. 바로 지척까지 이 들이 다가오는데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목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칼 의 검의 목젖에 드리우자 침을 꿀꺽 삼키며 행동을 멈췄다. 네오발의 날 카로운 발톱은 당장이라도 리슬류의 머리통을 뜯어버릴 것처럼,야생적 으로 변해있었다.
‘이 기가 막히고 멋지고 초 쿨한 타이밍이 왜 하필 등장하는 거냐
이제부터 천영의 지능적이고 계획 적이고 설계적인 반격이 시작되는
타이밍이었는데 멋진 역할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그는 다시 기절한 척을 하고선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불침번 교대를 하는 와중에 아직 이 아이가 안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서 급히 달려왔더만…… 리슬류 씨.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크윽…… 망할 자식. 커헉!”
네오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반격 을 하려던 리슬류는 그대로 셀라임 이 뒤통수를 후려쳐버리자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입에 거품을 물 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기절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일단은 속박하도록 합시다.” “그러지 뭐.”
칼이 네오발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 하고서는 인밴토리에서 밧줄을 꺼내 리슬류의 팔다리를 꽁꽁 묶었다. 그 다음에는 입에 청테이프를 감는다.
마법사는 수인이나 주문을 통해 마 법을 발현하기 때문에 손과 입을 봉 인하면 그 힘을 사용할 수 없다. 완 벽하게 구속한 다음 짐짝을 끌고 가 둣 리슬류를 질질 끌고 칼이 먼저 돌아가자 네오발은 천영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들었다.
‘으아악! 그만둬!’
당장이라도 눈을 떠서 소리를 지르 고 싶었지만 기절한 척을 하고 있었 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 일어나도 굉장히 당황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자는 척을 계속 하자 고 생각한 천영은 얌전히 네오발에 게 몸을 맡겼다.
‘내 멋진 역할 돌려줘……
마왕을 혼자 불러내서 물리치는 용 사가 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마 왕에게 납치당했다가 용사에게 구출 되는 공주님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이런 심정일까. 천영은 지금 굉장히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