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0화
‘몬스터인가? 말을 하는 비행종이 라니. 처음 보는 타입인데.’
락밴더는 욱신거리는 팔뚝의 고통 을 애써 참으며 식은땀을 살짝 홀렸 다. 간신히 힘을 끌어 모아 방어하 긴 했지만 자칫 늦었더라면 골로 갈 뻔했다. 그가 팔리 다리에르의 이전 두목이자 스승이나 다름없던 ‘강철 권’의 무공 ‘강철공(鋼鐵功)’을 어느 정도 전수 받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다른 자였더라면 저 정체불명의 에 너지 덩어리에 맞아 그대로 찢겨나 갔을 것이다.
천영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다. 그래도 나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팔뚝에 큰 화상을 입힐 정도가 전부라니. 락밴 더가 숨기고 있긴 하지만 어린 드래 곤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막아내면서 고작 화상에 뼈에 금이 간 정도의 피해밖에 입지 않은 것은 정말로 대 단한 일이다.
‘나름의 방어 대책이 있다는 건 가?’
다른 근거리 직업군만 봐도 특별한
스킬을 사용할 경우 강력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기는 했다. 아마 락밴 더도 그런 종류의 스킬을 사용했다 고 생각하며 천영은 표정을 굳혔다.
“크흐흐. 네놈은 정체가 뭐지?”
“아까까지 실컷 위협해놓고 금세 잊으셨나?”
“응? 설마 네가 방금 전의 그 꼬 맹이란 말이냐?”
“누구보고 꼬맹이래. 너 몇 살이
야?”
“올해로 서른이다.”
“……나보단 형이네. 하여튼 나 스 물일곱이다.”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을 날고 있는 천영의 모습을 보며 락밴더는 또다 시 탐욕에 물든 눈빛을 흘겼다. 그 는 자신이 거대 조직의 두목이 되었 을 때를 또다시 상상하고 만다. 제 왕의 옥좌 못지않게 화려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락밴더. 그리고 그 의자의 팔걸이에 가만히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는 날개가 달린 희귀 하고 고고한 생명체. 분명 자신의 위엄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라 생각 하며 락밴더는 저것을 반드시 포획 하자는 마음을 가졌다.
“그대로 날아서 이리로 오렴. 지금 이라도 얌전히 와준다면 아주 호화
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지.”
천영은 대답 대신 입을 쩍 벌렸다. 락밴더는 또다시 아까 전의 에너지 덩어리를 발사하나 싶어서 긴장했지 만 안타깝게도 천영으로서도 아직 드래곤 하트가 과부하인 상태인지라 다시 발사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 는 이제 숙련된 마법사로서 얼마든 지 락밴더를 괴롭힐 수 있었다.
화록!
입의 주변에 붉은 마법진이 생성되 더니 그곳에서 불꽃 구체가 6개나 튀어나왔다. 락밴더를 향해 신속하 게 쏘아진 그것은 그대로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 강렬한 열기를 뿜었으
나 락밴더는 그것들을 손등으로 모 조리 튕겨버렸다.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락밴더는 천 영을 직접 잡기 위해 창문 밖으로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말도 안 되 는 스피드로 순식간에 락밴더가 접 근해오자 천영이 기겁하여 열차의 천장쪽으로 날아올랐다.
“이 쪼끄만 게 귀찮게!”
락밴더 역시 천영을 잡기 위해 열 차의 천장으로 기어 올라갔다. 하지 만 천영은 그 빈틈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얼음의 송곳을 발사하거나 초록색의 채찍을 날려대면서 열차의 옆면을 미끄럽게 만드는 마법을 사
용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락밴더 를 괴롭혔으나 그는 초인적인 반응 속도와 대응력으로 그것들을 모조리 튕겨 내거나 벽면을 박차고 도약하 는 것으로 파훼해버렸다.
‘듣던 대로 괴물은 괴물이군.’
마침내 열차의 위에 올라선 락밴더 는 날갯짓을 하고 있는 천영과 눈을 마주했다. 비릿한 웃음을 지은 락밴 더는 돌연 자세를 낮춰 천영 쪽으로 돌진했다. 당연하게도 천영은 하늘 쪽으로 날아서 그것을 피했는데 락 밴더는 그 틈을 노려 품에서 송곳을 수십 개나 꺼내 던져버렸다.
“으옥?!”
활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와도 비 견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송곳들이 날아오자 천영은 잽싸게 날개를 모아 실드를 펼쳤지만 몇 개 가 날개에 적중하고 말았다. 큰 데 미지는 없지만 꽤나 따끔해서 날갯 짓을 할 때마다 아려왔다.
‘젠장! 뜬금없이 이게 무슨……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락 밴더는 하늘에서 송곳을 맞고 우왕 좌왕하는 천영을 향해 크게 도약하 여 팔을 쭉 내뻗었다.
‘잡히면 죽는다!’
고통을 애써 참고 하늘 높이 더
날아오르려 했지만,열차의 강한 풍 압에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덕분에 락밴더의 공격 범위 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열차와 멀 리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거의 두 칸 정도나 거리를 벌린 천영은 잽싸게 수많은 마법을 캐스 팅 했다.
락밴더는 천영이 날아가는 것을 본 즉시 쫓기 시작했는데 그의 앞길이 빙판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미끄러 운 바닥이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곳에서 뾰족한 고드름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무식하게 그것
들을 팔의 완력으로 모조리 부숴버 리며 돌진하자 열차의 창문 쪽에서 물로 이루어진 손바닥에 툭 튀어나 오더니 락밴더의 몸을 움켜쥐었다.
“이게 정말 귀찮게! 흐읍!”
펑!
마치 물 풍선이 터지듯 워터 핸드 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 만 천영은 낙담하지 않고 락밴더의 발밑에 역중력의 마법진을 완성시켰 다. 하지만 그 마법이 발동되기도 전에 락밴더는 발을 세차게 굴렀다.
마법진이 파괴되며 신체 내의 마나 가 역류하는 것을 느낀 천영은 잠깐 침음을 홀렸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크게 내상을 입을 정도로 마법진이 너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물질보다도 단단한 드래곤 하트를 보유한 천영이었기에 그런 충격쯤은 가볍게 극복해냈다.
“너 정말 신기하군. 그 정도의 리 바운드를 순식간에 떨쳐내질 않나. 애초에 몬스터가 마법을 쓰는 것 자 체가 놀랍단 말이지. 정체가 뭐냐?”
당연히도 대답할 의무는 없었기에 락밴더의 말을 무시한 천영은 다음 의 마법을, 또 다음의 마법을,그
다음의 마법까지 연산하고 계획하여 락밴더의 다음 행동반경까지 예측했 다.
‘정말 무식한 괴물이야.’
팔에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오토바이가 다가오고 있 다는 착각이 들 만큼 어마어마한 스 피드로 쫓아오질 않나,바위처럼 단 단한 방벽을 세웠는데도 가볍게 부 수고 들어오질 않나. 그 어떤 속박 마법도 락밴더의 몸을 1초 이상 묶 어둘 순 없었다. 좌표를 지정하여 공격하는 마법은 대부분이 1초 이상 의 선 딜레이를 거쳐야만 발동할 수 있었기에 락밴더에게 효과적인 공격
을 먹일 수 없었다.
‘제대로 타격을 먹이려면 드래곤 브레스밖엔 답이 없겠어.’
하지만 락밴더는 보이지 않는 사각 에서 드래곤 브레스를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아냈을 정도로 감이 뛰 어나다. 그런 락밴더에게 드래곤 브 레스를 먹이려면 단 하나의 방법밖 에 없었다. 그를 완벽하게 속이고 한 수 이상 앞서가는 것.
‘일단 쿨타임은 돌아왔고. 문제는 타이밍인데…….,
드래곤 브레스를 정확하게 먹일 타 이멍. 그것을 생각하던 천영은 문득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그 즉시 천 영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지어졌 다.
“크크,슬슬 지겹다고. 옹? 얼마나 더 할 거냐? 데리고 다니면서 이렇 게 매번 놀아줘야하는 애완동물이면 나도 좀 질리겠는데.”
락밴더는 그렇게 허세를 부리면서 도 땀을 뻘뻘 홀리고 있었다. 사용 하는 마법의 수준 자체는 락밴더에 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 만 저 날개! 저 약삭빠른 눈치! 조 금 접근했나 싶으면 하늘 높이 날아 가질 않나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 면 광역 마법을 사용해서 벗어나질
않나.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짜증나 게 만드는 전투법을 구사하고 있었 다.
“이거나 먹어라!”
락밴더는 품에서 구슬 덩어리를 집 어던졌다. 바닥에 내려앉아서 마법 진을 준비하고 있던 천영에게 중심 을 제대로 잡을 수 없도록 의도한 것이겠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그에 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하 늘로 천영이 다시 날아오르자 락밴 더는 허공에다가 모래를 한 줌 뿌렸 다.
물론 천영의 안구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 튼튼해서 고작 그 정도로 시야
가 가려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락밴더는 갑작스레 후추 가루를 눈에 뿌리거나 압정을 바닥 에 깔아버리거나 하는 등 갖은 방법 을 사용해가며 공격을 했다. 어째서 사람들이 락밴더를 보고 비열하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만약 락밴더가 이런 꼼수를 조금만 더 준 비해서 나이트 시험에 참여한다면 불명예스러울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나이트의 자격을 따낼 수는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천영은 락밴더가 그런 비열 한 꼼수를 부리는 것이 딱히 립지 않았다. 왜냐하면 락밴더의 저런 전
투 방식이 솔로 플레이 최악의 직업 마법사이자 솔로 플레이 유저였던 천영에게 있어서 아주 익숙했기 때 문이다.
‘조금만 더…… 곧 온다.’
대뜸,천영은 바닥에다가 날카로운 얼음 장판을 설치했다. 락밴더의 발 구르기 한 번이면 전부 깨부숴질 것 들인지라 마나만 아까울 뿐이지만 이 정도의 마나쯤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파앙!
마법이 완성되는 즉시 락밴더가 발 로 열차의 천장을 짓밟자 바닥이 조
금 구겨지면서 얼음이 모조리 깨졌 다. 하지만 그런 빈틈을 노려 천영 이 락밴더의 눈에다가 강한 섬광 마 법을 집어 던졌다. 순간적으로 시야 가 마비된 락밴더는 눈을 감고서도 익숙한 기의 흐름으로 다음의 마법 을 예측했다.
‘화염 계열인가? 머리를 노리는군!’
잽싸게 팔을 들어 안면을 가드한 락밴더는 다시 돌아온 시야를 의식 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불꽃 덩어리 가 꽤나 강했기에 그것을 막아내느 라 락밴더는 몸을 웅크린 상태였다.
휘이이이이잉.
다시 눈을 뜨고 천영을 바라본 락 밴더는 표정을 굳혔다. 강력한 에너 지 덩어리가 천영의 입가에 응집되 어 강렬한 빛을 뿜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발사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 작해야 0.3초도 안 될 것이다.
‘시야를 가리고 위장용으로 마법을 하나 던진 다음 잽싸게 장전했다는 건가!’
아까 전의 브레스는 기운을 느끼고 나서 가드를 펼치면 되었지만 이번 에는 페이크 마법에 속아 넘어가 가 드를 채 준비할 틈이 없었다. 그의
감각마저 속이고 장전한 브레스는 락밴더에게 위기의식을 주기엔 충분 했다. 하지만 락밴더는 0.3초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도 동물적인 판 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초인이었 다. 빠르게 천영의 필살기를 파악한 락밴더는 응크린 자세 그대로 다리 에 힘을 줘서 무릎을 쭉 펴고 하늘 로 도약했다. 그저 가드를 하기 위 해 취했던 자세를 도약하기 위한 자 세로 탈바꿈하는 완벽한 순발력!
락밴더의 예상대로 천영의 주둥이 는 여전히 그가 서있던 바닥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 앞으로 이동 하여 천영의 뒤쪽에 착지까지 하면
저 강력한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그 후딜레이를 이용해 승기를 완벽 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오버다. 멍청한 놈!’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락밴더는 허 공에서 자세를 바꿨다. 주먹을 아래 로,다리를 뒤쪽으로 몸을 앞으로 내던지기 위해,그런 빈틈이 발생하 는 순간 강력한 충격이 락밴더를 덮 쳤다.
퍼걱!
“커,흑……?!”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락 밴더는 열차가 자신을 두고 아직도
서서히 앞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터…… 널……?’
열차가 산을 통과할 경우 긴 터널 을 지나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의 높이는 열차에 딱 맞춰서 만 들어지기 때문에 누군가가 열차의 위에 올라타 있으면 무사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운도 지지리 도 없게도 락밴더가 점프를 한 순간 이 하필이면 터널로 진입을 하는 타 이밍이었고 열차가 달리는 속도 그 대로 터널의 벽에 몸을 부딪친 것이 다!
그 충격만 해도 아무리 괴물 같은
신체를 자랑하는 락밴더라지만 제대 로 된 방어 기술을 펼치지 못한 그 는 온몸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락 밴더가 자신이 터널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0.2초 후에 열 차 위에 을라탔다. 그 상태로 자신 에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하던 천영이 고개를 들어 입에서 여태까 지 모아뒀던 에너지를 쏘아 보내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말았다. 마치 락밴더가 점프할 것을 미리 알 고 있던 것처럼 잽싸게 고개를 들어 올린 것이다!
‘아,안 돼……!!,
지이잉,쿠쿠쿠쿵!!
터널의 벽에 반파되어 박살나고 움 푹 파이고 무너진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생명체 하나가 강력한 에너지 에 맨몸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두고 볼 것도 없이 즉사.
락밴더를 마침내 해치운 천영은 바 닥에 몸을 뉘였다.
‘되도록 죽이지 않고 제압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이런 생각이 마음 약한 소리 라는 것은 천영도 잘 알고 있었다. 드래곤 페이스라는 패시브 스킬에
더불어 리슬류 사건까지 겹치자 살 인에 대한 저항감은 사라진지 오래 였다. 드래곤 특유의 냉정한 판단력 이 없었더라도,그런 위기를 겪으면 저런 미치광이 싸이코를 만났을 때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 을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쿨럭! 젠장,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냐. 흐으……
마법을 딜레이 없이 연속으로 사용 한데다가 드래곤 브레스를 2번이나 사용해서 드래곤 하트에 조금 무리 가 왔다.
현재 천영은 레벨 80이라는 낮은 수준에 비해 너무나도 높은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용언이라는 권능 을 빌려 높은 수준의 마법을 어떻게 든 자신만의 공식으로 조합하여 인 간으로 치면 1개밖에 안 되는 써클 을 억지로 굴려 몇 개나 되는 복합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덜컹덜컹!
터널을 지나는 동안 열차 바퀴의 마찰소리가 귓가를 거세게 몰아쳤 다. 하지만 락밴더를 해치웠다는 마 음에 천영은 한시름 놓았다. 이대로 터널에서 벗어나면 다시 열차 안으 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마침내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가고 빛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몸에 입은 데미지는 딱히 없었다. 몇 번 후추 가루나 압정, 송곳 등에 노출 되긴 했지만 드래곤의 신체에 크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오히려 락밴더가 그런 비열한 수를 사용했 기 때문에 천영은 마음이 홀가분했 다.
비열함에도 우열이 있는 법. 천영 은 마법사로서 절대로 근거리를 내 주지 않고 날아서 도망 다니며 자잘 자잘하게 괴롭히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은 락밴더의 전투법에 있어서
완벽한 상위호환이었다.
“끄응,셀라임은 잘 하고 있으려 나.”
엉금엉금 기어서 열차의 아래쪽으 로 내려가려는데 뒤쪽에서 뭔가 묵 직한 소리가 들렸다.
홈칫.
불길한 마음에 잽싸게 고개를 돌린 천영은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하고 말 았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옷의 대 부분이 찢겨져 나간 락밴더가 악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열차의 위에 매달려 있던 것이다!
“저런 미친놈이……
락밴더는 부들거리는 팔로 열차 위 에서 어떻게든 몸을 가누며 이글거 리는 눈동자로 천영을 노려보았다.
“너…… 죽여 버리겠어……
하지만 살아있다 뿐이지 락밴더의 상태는 영 말이 아니었다. 천영은 락밴더가 거의 초주검이 된 상태라 는 것을 깨닫고선 날개를 펼쳐 그에 게 접근했다. 천영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락밴더는 화를 휘적거렸지만 문어가 움직이는 것처럼 흐느적거릴 뿐 아무런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군.”
천영은 살짝 하늘로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혹시 모르니 방심은 금 물이다. 락밴더가 닿을 수 없을 정 도의 거리가 되자마자 그는 날개를 접고 머리에다가 마나의 기운을 밀 집시켰다. 직후 상체를 락밴더에게 향한 다음 돌진!
“히,히이익……!!”
쿠궁!
정통으로 드래곤의 신체에 얻어맞 은 락밴더는 마침내 기절하고 말았 다. 솔직히 목숨이 위험한 마당에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날 린 일격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살아 있었다.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한 천영은 락밴더가 완전히 정신을 잃
은 것을 확인한 다음 그의 몸을 주 둥이로 붙잡고 열차의 내부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툭.
바닥에 락밴더를 내던진 다음 휴먼 폼을 사용한 천영은 인밴토리에서 쇠사슬을 가득 꺼내 락밴더의 몸을 구석구석 꼼꼼히 묶어버렸다. 말 그 대로 빈틈이 아예 없을 정도로 철저 하게.
“휴우.”
락밴더가 완벽하게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천영은 또다시 천장에 몸을 뉘였다.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조금
쉬고 싶을 정도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노을이 지고 있 었다.
결국 열차는 무사히 선로를 원래대 로 바꿔 타서 종점인 네오르네아가 아닌 록 제국의 대도시 ‘팔라타시 아’에 안전하게 멈출 수 있었다.
팔라타시아 역에는 이미 수많은 마 법 병단과 병사들이 잔뜩 집합해있 는 상태였다. 금색 별 마탑에서 파 견된 마법사 ‘헤이지’가 자신의 추
측에 의하면 납치된 열차는 선로를 다시 바꿔 이곳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르백은 헤이지가 어째서 그런 판 단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들이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
팔리 다리에르라는 집단을 잡는 데 에 1등 공신이었던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가 하는 말이었으니 일단은 그녀의 판단을 존중해 이곳으로 병 사를 이끌고 모인 것이었다. 물론 병사를 데려오는 와중에도 헤이지는 ‘딱히 병사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지만 그런 말까지는 차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저,정말 이곳으로 올 줄이야. 설 마 누가 철로를 다시 조작했단 말인 가?”
몰래 철로를 바꿨을 수도 있고 기 관사가 눈치껏 조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영웅이라면 무자비한 락밴더가 가만 뒀을 리는 없을 터. 이렇게 납치된 열차가 돌아온 것까 지는 좋았지만 벌써부터 피해자가 나왔다는 생각에 마르백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모두 전투 준비!”
마법 병단이 지팡이와 마법서에 손 을 얹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창과 검,총을 든 병사들이 선두에 나서서 열차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팔리 다리에르라는 집단에 속해 있 는 조직원들은 하나 같이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고 한 다. 고작해야 정식 훈련을 받았을 뿐 신체 능력은 평범한 인간일 뿐인 병사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괴물 같 은 존재들이라는 사실.
그것이 그들을 모두 긴장하게 만드 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헤이지는 ‘뭐, 이 정도면 인정해줄만 하겠네.’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성큼성큼 열차로 다가갔다.
“자,잠깐 자네 뭐하는 짓인가!”
마르백이 채 말리기도 전에 헤이지 는 열차에 다가갔다. 이윽고 완전히 열차가 정지하자 스르릉 하며 쇠가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몇몇 시 민들이 튀어나왔다. 잽싸게 그들의 팔뚝을 확인한 마르백이 외쳤다.
“모두 무기를 거둬라! 일반 시민이 다!”
튀어나온 사람들의 팔뚝에 팔리 다 리에르 특유의 척추 뼈 문신이 없는 것을 확인한 마르백은 당황하고 말 았다. 일반 시민들은 모두 팔리 다 리에르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던 것 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이 와중에도 팔리 다리에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헤이지를 따라 열차의 안쪽을 살펴 보러 갔던 병사 하나가 얼떨떨한 표 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그,그게…… 괴한들이 전부 체포
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부하의 말을 믿지 못한 마르백이 열차에 가까이 다가가 내부를 살폈 다. 그러자 정말로 팔뚝에 척추 뼈 문신을 한 우락부락한 체격의 괴한 들이 모두 쇠사슬에 의해 사지가 포 박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데없이 팔리 다리에르가 전부 제 압되어 있다니? 특이한 약물과 무공 으로 신체를 단련한 팔리 다리에르 의 조직원들은 절대로 쉽게 쓰러뜨 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데 21명이나 되는 인원이 전부 죽 이지도 않은 채 전부 살려서 완벽하 게 포박된 상태로 있는 것은 엄청난 강자가 나섰다는 이야기이기도 했 다.
“어머나 생각보다도 사건이 쉽게 해결됐네요. 제가 뭐랬어요? 병사는 데려올 필요 없다니까.”
“……자네가 말했던 ‘신참’이라는 친구가 해결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니깐요.”
마르백은 헤이지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말했던 ‘신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제야 생각해냈다. 열차에
‘신참’이 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라. 그런 말을 들어도 마르백이 안 심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결국 헤 이지는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이런 상황이 되자 마르백도 뒤늦게 이해하고 말았다.
“그 신참이라는 존재는…… 설마 금색 별 마탑의 일원이란 말이오?”
그는 떠올렸다. 얼마 전 자신에게 들어온 보고서에 섞여 있던 정보 중 하나를.
금색 별 마탑주가 직접 나서서 새 로운 인원을 받았다!
하지만 마르백은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분명 오 랫동안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지 않 고 있던 금색 별 마탑에 누군가가 새로 가입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긴 했지만 워낙 요새 넥스터에 이어 팔 리 다리에르의 존재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서 차마 신경을 쓸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금색 별 마탑의 마법 사는 어디에 있는 거지?’
괴한들을 누가 제압했는가? 당연하 게도 괴한을 제압한 사람은 바로 그 근처에 있기 마련. 마르백은 괴한의 주변에 서있는 두 명의 여인을 바라 보았다. 한쪽은 새하얀 사제복을 입
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한쪽은 갑옷이 섞인 장비를 입은 강렬한 인 상의 여인. 사제복을 입은 여인은 괴한들이 입은 심한 상처를 조금 치 유해주고 있었다. 반대로 강렬한 인 상의 여인은 괴한들을 검 끝으로 쿡 쿡 찌르며 괴롭히고 있었다.
마르백은 강렬한 인상의 여인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례합니다,혹시 당신이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서천영’이 맞습니 까?”
마르백이 그런 추측을 한 것은 누 가 봐도 당연했다. 열차에 타고 있 는 신원 불명의 인원 23명 중 2명
은 바로 이 여인들일 것이다. 하지 만 뒤쪽에 앉아있는 신비로운 분위 기의 여인은 마법사라기엔 너무 성 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기 때 문이다.
앞쪽에 앉아있는 여인 역시 육체파 를 추구하는 타입으로 보였지만 금 색 별 마탑에는 마검사 역시 존재했 기 때문에 새로운 ‘신참’이라는 추 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해주 었다.
하지만 마르백의 인사를 받은 셸라 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서천영 아닌데요. 제 이름은 셀라임이에요.”
“예? 그럼 뒤쪽에 계신 분이……
은색 머리의 여인 역시 다소곳한 포즈로 조금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시르엘이라고 해요.”
“그럼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마르백이 ‘서천영’이라는 마법사를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을 때 헤이지 가 열차 밖에서 말했다.
“경찰 아저씨가 찾는 마법사 나으 리는 여기에 있는 모양인데?”
“무슨……
헤이지의 말을 듣고서 마르백은 열
차 밖으로 다시 나갔다. 그 다음 헤 이지가 쳐다보던 열차의 천장 쪽을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뭔 가가 툭 떨어졌다. 움찔 몸을 떤 마 르벡은 한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며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새하얀 블 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10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꼬마아이가 검게 그 을린 무언가를 질질 끌고 있었다.
“어라? 누구세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 만.”
“흐음…… 혹시 경찰? 그럼 다행이 네요. 제가 깡패 하나 잡았거든요.”
“깡패라고?”
“네,깡패 대장 같은 놈인데 하여 튼 좀 받아가세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꼬마의 말을 듣고서 마르백은 아직까지 쇠사슬에 온몸이 칭칭 감겨있는 그 물체에 가 까이 다가갔다.
몸을 뒤집고 얼굴을 확인한 마르벡 은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락밴더 그 미치광이 범 죄자의 얼굴을 마르백이 모를 리는 없었다.
‘맙소사. 락밴더가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
마르백은 다시 꼬마의 모습을 살폈 다. 마법사 특유의 로브를 입지도 않았고 애초에 마법사라기엔 너무나 도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경찰로서 생활해온 마르백은 천영의 눈빛을 보고선 뭔가를 느낄 수 있었 다.
‘평범한 어린애가 아니야.’
그는 즉시 살짝 목례를 했다.
“당신이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서천영’이 맞습니까?”
“예? 맞는데요. 어떻게 알았어요?”
예상대로였다. 마르백은 신선하다 는 느낌을 살짝 받았다.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전부 괴 짜에 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었 다. 특이한 사람들. 하지만 마르백은 그런 금색 별 마탑의 어떤 마법사들 보다 특별한 존재를 만나버렸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어린데도 금색 별 마탑의 일원이라니. 굉장하군.’
천영에게 예의를 갖춘 마르백이 입 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팔 리 다리에르를 제압하고 열차를 무 사히 탈환한 공에 대해서는 반드시 적합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어…… 감사합니다.”
얼델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 인 천영은 마르백이 자신의 부하들 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자 열차의 문 을 쿵쿵 두드렸다. 그는 아직까지도 울상을 짓고 있는 팔리 다리에르에 게 으르렁거리고 있는 셸라임에게 소리쳤다.
“야,찐따 그만 괴롭히고 빨리 튀 어 나와. 우리 열차 다시 타야겠는 데.”
“으,싫다 진짜. 나 다음부터는 열 차 말고 다른 거 탈래.”
“뭐 택시라도 타시게? 잔말 말고
빨리 나오기나 해.”
셀라임과 안시르엘이 전투용 복장 을 해제하고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 로 열차 밖으로 나오자 천영 역시 힘 빠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일단 은 저녁이 되었으니 어디든 머물 곳 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때 천영 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붉은색 몸에 비해 사이즈가 조금 큰 듯한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몸매 가 드러나는 로브를 입은 여인이었 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천영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을 척 내밀었다.
“안녕,귀여운 뉴비야. 우리 악수
한 번 할래?” “예?”
뜬금없는 제안에 천영은 그녀의 팔 목을 살폈다. 살짝 오래되어 보이는 금색의 손목시계가 시야에 들어왔 다. 그 손목시계에는 금색 별 마탑 을 상징하는 특유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금색 별 마탑의 일원인가?’
그녀의 손을 붙잡자 헤이지는 천영 의 손을 마구마구 흔들었다.
“대박이야! 우리 신참 아니,뉴비 가 이렇게 귀엽게 생겼다니!”
“자, 잠깐만요. 뉴비라는 단어
“응,너희 넥스터들이 쓰는 단어라 지? 많이 공부하고 있다구!”
그렇게 말하며 해이지는 빙그레 웃 었다.
“너네,머물 곳 없지? 나 따라오지 않을래?”
그녀의 제안에 천영이 미심쩍은 표 정을 지었다.
“수상한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천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처음 보 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헤이지의 제안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유난히 호 들갑을 떨며 천영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오는 그녀에게는 묘하게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매력이 느 껴 졌다.
“그래서 저희 어디로 가요?”
“옹? 이제부터 정해야지.”
“뭐야. 집으로 데려가주는 거 아녔 어요?”
“아니,나 여기에 집 없는데. 괜찮 아,괜찮아. 대충 근처에 있는 마탑 은 전부 우리 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