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39화
‘감히 나를 얕봐?’
예런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팡이를 치켜들고 허공에 빙글빙 글 돌리자 순식간에 푸른빛의 마 법진 수십 개가 형성되었다.
그곳에 물방울이 응집되더니 1초 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전부 얼 어붙어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변형 되었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탄 력 마법까지 이용해 천영에게 그
것을 쏘아 보냈지만 그는 아예 마 법을 사용하지도 않고 경기장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그것을 피해 냈다.
몇몇 개의 고드름은 아예 자신이 직접 조종하여 교묘하게 맞출 수 있도록 했지만 귀신 같이 조종되 는 고드름을 파악한 천영은 숟가 락을 이용해 그것들을 모조리 쳐 내버렸다.
마법도 아니고 숟가락이다.
관중들과 고위급 마법사들이 탄 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렸다. 이쯤 되자 자존심 이 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창피하
기까지 했다. 화려하고 강력한 마 법을 마구잡이로 난사했는데 상대 방은 마법다운 마법조차 쓰지 않 고 그것들을 모두 간단하게 피해 내는 꼴이라니! 차라리 상대방이 전력으로 마법을 썼다면 이만큼이 나 창피하지 않을 텐데 놀림 당하 는 기분이라 예런은 이를 뿌득 갈 았다.
‘젠장! 죽여 버릴 거야!’
결국 화가 끝까지 차오른 예런은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 에 자제해왔던 마법까지 사용하기 로 결심했다. 손바닥을 쫙 펼치자 16개의 고드름이 피어올랐다.
얼음의 꽃.
그곳의 정중앙에 푸른빛의 에너 지가 응집되더니 그대로 천영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천영은 그 것을 아주 간단하게 고개를 젖히 는 것으로 피했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돌을 걷어차서 예런의 얼굴 을 향해 날려버렸다.
에텐의 몸은 위험할 정도로 빠르 게 날아온 돌멩이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재빠르지 못했다. 미리 몸 에 쳐두었던 실드가 반응하여 튕 겨냈지만 자존심에 타격을 받는 것은 튕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으아아!”
에텐이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 자 흙이 팔에 뭉쳐서 거대한 바위 의 손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그대 로 바닥에 쿵 찔러넣었다. 지상에 서 가시가 솟아오르더니 천영을 향해 쇄도했다.
획.
천영은 뒤로 껑충껑충 뛰다가 이 내 귀찮아졌는지 바닥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는데 그 직후 마법진이 그려지는 형상조차 스킵 되고 가 시가 전부 파괴되었다.
하지만 예런은 애초에 이 마법으
로 타격을 먹일 생각이 없었다. 가 시가 파괴된 즉시 아까부터 계속 해서 캐스팅하고 있던 주문을 끌 어올렸다. 양손이 화록 불타오르고 손바닥을 서로 마주대어 빙글 굴 리자 그곳에 사람 머리통만한 불 덩어리 아니, 태양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구체 가 형성되었다.
그 마법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저,저건 4클래스 마법이지만 공 식이 너무 복잡해서 5클래스 이상 의 마법사들만 쓸 수 있다고 들었 는데?”
“미친…… 진짜냐.”
“저건 절대 못 막겠는데?”
예런은 불덩어리를 가슴께에 끌 어당겼다. 이윽고 마법진이 붉게 빛나며 사라지자 투슝 소리와 함 께 천영을 향해 쏘아졌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공기조차 태 워버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지켜보던 천영은 이번 에도 역시 숟가락으로 그것을 쳐 내버렸다.
경기장 바깥 아주 멀리까지.
•홈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말 했다.
“대,대체 어떻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았다. 마 법을 숟가락으로 쳐낸다는 것은 수준급의 기를 다룰 수 있는 나이 트들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저 어린 소년은 체술이 아닌 마법 을 배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지 않는 가?
예런은 슬슬 뭔가 잘못되어 간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멈 출 수 없었다. 서천영과의 일대일
은 정해진 이벤트. 여기서 패배했 다가는 먼저 도발한 주제에 꼴사 납게 나가떨어졌다며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이대로 질 수는 없어!’
예런은 본격적으로 다중 캐스팅 을 시작했다. 지팡이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바닥에 마법 문자를 그 려대고 입으로는 또 다른 주문을 외웠다. 양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이 며 수인을 완성해간다.
천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짧게 감탄하다가 갑작스레 하늘에서 얼 음 소나기가 떨어지자 황급히 바 람으로 만들어진 우산을 숟가락
위에 만들어내 펼쳐 머리 위에 썼 다.
꾸지지직!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땅이 갈 라지며 뭔가가 솟아올라왔다.
‘거인의 주먹? 대단한데.’
천영은 땅속에서 솟아오른 거대 한 팔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붉 은색을 띄고 있는 저 손은 소환계 마법의 일종이었다. 그 거대한 팔 은 천영을 향해 무자비하게 주먹 질을 했지만 천영 역시 주먹에다 가 마법진을 형성해 맞부딪히자 충격파가 작게 발생하며 공격이
무효화되 었다.
“……잠깐 방금 그건 무슨 마법이 지?”
신체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 한 명이 이채를 홀렸다. 주먹에 마법 진을 두르고 휘두른다.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절대로 쉽 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동 적인 힘을 보정하고 근육의 과부 하를 견뎌내고 가속도까지 만들어 내는 어찌 보면 신체를 파괴하는 마법. 그런 마법을 천영이 간단하 게 사용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상은 인간의 신체 구조를 무시 하는 마격투술일 뿐이었지만 그들
이 알 리는 없었다.
거인의 팔이 사라지고,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내리치며, 불꽃의 비가 떨어지고,바닥이 갈라지며,회오 리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천영은 단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반쯤 감긴 눈이지만 그 어느 때보 다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마 치 놀이터에 놀러나온 또래의 꼬 마처럼 경기장을 살랑살랑 뛰어다 녔다. 쇄도하는 파괴적인 마법만 아니었다면 천사 하나가 뛰어노는 것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갈수록 예런은 지쳐가고 있었다. 벌써 마나의 절반을 사용해버렸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마법을 난 사했다. 천부적인 마나에 대한 축 복을 가지고 있던 예런이었으나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길 수 없을 것 같 은 상대. 게다가 상대방은 제대로 된 마법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 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서천영은 마법을 제대로 선보일 필요도 없이 예런을 제압할 수 있 는 실력자이다.
만약 서천영의 본래 실력을 끌어 내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하면 정말로 끝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극악의 상황이 닥치자 예런 은 오히려 가슴이 침착해졌다. 아 니,그는 오히려 천영이 이 정도나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약했으면 정말로 재미없었을 뻔했 으니까.
‘……이 참에 교수님들에게 이걸 보여드려야겠군.’
언젠가 발견되었던 ‘미스터리 큐 브’와 그곳에 적혀있는 수많은 마 법 문자들.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로드웰 아카데미의 날고 기는 인 재들이 도전했다가 얼마나 큰 피 해를 입었던가. 교수들은 많은 사 람들이 다치고 폭주를 하자 그것
을 금지시키기에 이르렸다. 심지어 자신을 약 올리고 있는 서천영조 차 미스터리 큐브에 적혀있는 문 자는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라고 말하며 당장 포기하라고 말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예런은 그것을 모조리 부 정할 생각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 고 말했던 것을 당당하게 성공하 고,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천영의 앞에서 뻔히 보여주는 것 이다!
그는 저 문자를 이해할 수는 없 었지만 최소한 이용해먹는 방법은 깨달았다. 밤을 새가며 문자를 연
구했고 끝끝내 마법진 안에 문자 를 박아 넣는 것에 성공했다. 비록 이전에 완성했던 것은 미완성인 채라 천영에게 격파 당했지만 이 번에는 정말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안 된다고 고 개를 저었고 교수들조차 포기했던 그 정체불명의 문자를 마법에 결 합시키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반응할 것 인가?
‘내가 저 문자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만 보여준다면……!’
예런의 발밑에 마나의 회오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분위기가 달라지자 천영 역시 표 정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여태까 지와는 다른 수상한 마나의 흐름 이었다.
“저건……
바닥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한 개가 아닌 11개의. 크기가 각 각 다르며, 심지어 그 안에 새겨진 마법의 구성물조차 다른 그 마법 진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 다.
난생 처음 보는 마법 문자가 하 나씩 섞여 들어갔다는 사실이.
“자,잠깐! 아카메쉬 교수,저 문
마법전을 지켜보던 아카메쉬가 낭패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학생의 신분에 불과했던 예런이 저렇게까지 저 문자를 연구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히 저 문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금지령을 내렸건만 예런은 그것을 아주 깔끔하게 무시하고 자신만의 연구소에서 저것을 공부하고 있었 던 것이다!
“대체 무슨 마법이오. 저게!”
“저런 건…… 태어나서 본 적도
없어!”
무려 11개의 마법진이 이질감조 차 하나 없이 ‘억지로’ 결합된 상 태였다. 각각 다른 의미와 해답을 내포하는 방정식이 강제로 짜 맞 춰지고 공식이 비틀리며 마나의 흐름 자체를 지배했다. 마치 이 세 상의 모든 마나는 이 마법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처럼.
마나를 괴물처럼 흡입하며 마법 진이 점점 강한 빛을 띠기 시작하 자 요원들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혹시나 위험한 마법이 튀어나올 때를 대비해서.
‘큰일이군. 저 마법은 리스크가
강한 대신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 단 말이다……
아카메쉬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빛을 떨었다. 그런 아카메쉬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마 법사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 내며 앞 다뤄 마법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대단해! 저,정말 획기적인 공식 이야!”
“대회가 끝나면 당장 저 문자에 대해 알아봐!”
“저것만 알아낼 수 있다면……
쿠구구궁!
땅이 뒤흔들리며 마법진이 점점 형태를 갖춰갔으며 하나하나 마법 문자가 새겨졌다. 마침내 마법의 형태가 완전히 갖춰지자 예런은 비식비식 웃음을 홀리며 양팔을 쫙 펼쳤다. 그 모습은 마치 공연을 시작하는 광대처럼 보이기도 했고, 학예회를 시작하는 어린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고,중대한 발표를 앞 둔 과학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만 만한 표정으로 말없이 생각했다.
자 보라,나의 마법을.
이변이 일어났다. 땅에서 거대한
성이 솟아올랐다. 아니,성이 아니 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보석이었 다. 아니,보석이 아니었다. 그것 은 하나의 산이었다. 아니,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꽃이었다. 분홍빛, 초록빛,아니,흰색을 띠고 있는 반투명한 아름다운 꽃. 흡사 연꽃 을 혹은 장미를 닮은 그것이 경기 장 전체에 활짝 펴지더니 이내 잎 을 닫기 시작했다.
“……대체 저 마법 하나에 얼마나 많은 ‘봉인’ 마법이 담겨있단 말인 가.”
어떤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고작
4클래스의 수준에 불과한 것들이 합쳐져 6클래스에 육박하는 수준 이 되었다. 저렇게나 많은 속박 계 열 마법이 하나로 묶여져서 발동 되는 것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 보 았다.
저 문자는 마법 학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개념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새로운 발견이 었다. 마법사들의 눈에 탐욕이 어 른거렸다.
저것을 독차지할 수만 있다면!
예런이 주먹을 꽉 쥐자 닫히던 잎에서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들 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천영은 여
전히 발을 떼지 않고 있었다. 가만 히 서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 꽃의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움직 임을 속박 당했을 수도 있었다. 그 런 것 따위는 어찌되었든 좋았다. 이 대결은 예런의 완벽한 승리였 다. 게임에서의 승리든,이미지 메 이킹에서의 승리든.
마침내 꽃이 완전히 닫혀버렸고 타원형의 반투명한 보석밖에 남지 않게 되자 예런은 치켜들었던 팔 을 내리고 관중석을 쳐다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VIP석을. 수많은 고위급 마법사 그리고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 헤이지가 있는 곳을.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어째서인 지 떨떠름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희에 가득 한 표정으로 마법을 지켜보던 그 들이 어째서인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라?”
쿨럭. 기침을 내뱉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예런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부들부들 떨었다. 덜덜 떨리는 팔 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살펴보자 마치 ‘금이 간 형태’처럼 핏줄이 솟아나 있었다. 양팔뿐만이 아니라 얼굴도,다리도,몸 전체가.
예런은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쳤 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중얼거리 며.
“이럴,리가. 이럴 리가…… 없는 데,이럴 리가 없는데.”
그의 이론은 완벽했다. 문자의 정 체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이용해먹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다른 멍청한 마법사들처럼 몸에 직접적인 충격이 오지 않도록 ‘각 인’을 극한까지 뽑아내서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되면 절대로 리스크가 오지 않을 터였을 텐데!
벌써 몇 번이나 시도해서 성공했 었다. 그러기에 완벽하다고 생각했 다.
예런은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떨 었다. 태어나서 이런 리바운드 현 상은 처음 본다. 온몸에 금이 간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꽤나 흉 측했기에 몇몇 관중들은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하,제,젠장…… 그래도 내,내 가 이겼……
예런이 억지로 미소를 짓자 그렇 게 승리를 확신하려는데 뭔가 위 화감이 들었다. 그는 서서히 고개
를 들었다. 꽤나 높이 자라있는 꽃 봉오리의 맨 위쪽을.
햇빛이 직사로 내리찍어 눈이 꽤 나 부셨지만 그럼에도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하,말도 안 돼……
털썩.
예런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꽃봉오리의 꼭대기에는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서천영이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그 는 오른손가락으로 숟가락을 빙글 빙글 돌리며 예런을 내려다보았다.
예런은 입을 억지로 열었다.
“대체 어떻게……
쿨럭.
피를 또 한 움큼 쏟아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영은 꽃봉오리 의 가파른 부분을 마치 미끄럼틀 을 타듯 쭉 내려왔다. 그 다음 터 덜터덜 예런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나 있던 금이 어느 정도 연해지기 시 작하더니 붉은 마법진에 이변이 생겼다.
지이이잉!!
“크으옥!”
순식간에 마나가 빠져나가는 느 낌에 예런이 신음을 토해냈지만 천영은 멈추지 않았다. 붉은색의 마법진 11개는 모두 억지로 결합 된 상태에서 서로 분리되기 시작 했다. 강제로 짜 맞춰진 방정식은 원래의 해답으로 돌아갔고 엉켜있 던 주문 또한 본래의 형태로 맞춰 졌다. 당연하게도 아름답게 빛나던 꽃봉오리는 바스라지기 시작했고 그 파편은 꽤나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냈다.
“……마법이 해제되고 있군.”
어떤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눈이 달려있으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마법을 대체 어떻게 해제한단 말인가?’
아직 정체도 채 밝혀지지 않은 마법 문자였다. 1년이 넘도록 로 드웰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연구를 해왔던 그런 문자였다. 해석은커녕 제대로 된 마법에 주입하는 것조 차 불가능한 그런 문자였으나 천 영은 아주 손쉽게 그것이 뒤섞인 마법을 해제해버리고 있었다.
보기에는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 운 장관이었으나 당사자인 예런은 끊임없이 몸을 꿈틀대며 비명을
질러 댔다.
“끄아아악!”
누가 가서 말려야 되는 게 아닐 까 싶을 정도로 힘껏 비명을 내지 르던 예런은 어느 순간 그 비명을 우뚝 멈췄다. 그러고선 멍한 눈으 로 팔을 축 늘어뜨렸다.
천영은 그런 예런을 향해 속삭였 다.
“이 마법은……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말에 예런의 눈빛이 다시 살 아났다. 그러고선 마법으로 반격하 기 위해 손을 내뻗었으나 자신의
마나홀이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천영 을 향해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 다.
“그럼 어떻게 하면 사용할 수 있 단 말이냐……
천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법 의 해제가 끝나자마자 손을 떼어 버린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 다. 그러고선 눈썹을 살짝 늘어뜨 렸다. 그것은 웃는 표정처럼 보이 기도 했다.
“미안,넌 평생 공부해도 사용할 수 없어.”
얄미울 정도로 믿기 힘든 말이었 다. 소리를 지르며 부정해야만 정 상이었다. 하지만 부정하려고 입을 여는 그 순간 예런은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을 짓누르는 느 낌을 받았다.
쿠웅.
심장이 압박되는 그 감각. 너는 절대로 이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 다고 마음속에 각인해버리는 듯한 느낌.
예런은 몸을 떨었다. 그것은 생리 적인 현상이었다. 왠지 몸이 속박 되어 움직이기가 버거웠다.
예런은 고개를 들어 천영을 쳐다 보았다. 어째서인지 그의 등 뒤에 ‘용의 형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예런은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천재라고 믿어왔던 자신의 재능 이 눈앞의 소년에 비하면 매우 하 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사실 을
메이지 서천영은 그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경기장은 발칵 뒤집혔다. 고위급 마법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들것에 실려 나가는 예런에게는 이미 관 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마법 체계를 발견했으나 실패해버 린 ‘실패자’였으며 서천영은 그것 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아는 ‘성공한 자’였다.
“당장 그 마법사를 찾아내!”
“아니,할아부지. 찾아내서 어쩌 실 건데유.”
“응? 그야…… 함께 일해 볼 생각 이 없냐고 물어봐야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유.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가 뭐가 아쉽다 고 우리 마탑에 들어오겠수?”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이었다. 금색 별 마탑 마법사들은 바다처럼 깊은 지식을 갖추고 또 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천재들이 모인 곳.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서천 영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매혹적 인 존재였다. 비단 마법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기업 과 클랜,국가에서 서천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로 뛰어다니고 있었 다.
“메이지 아카메쉬,대체 그 자의
정체가 뭐요?”
그 질문에 아카메쉬는 고개를 저 었다. 아카메쉬가 서천영과 개인적 인 친분을 살짝 맺고 있다는 사실 을 알아낸 마법사들은 그를 찾아 와서 질문공세를 펼쳤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제 로 서천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적었을 뿐더러 그와의 약속 때문에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아카메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감히 그런 자에게 제안을 시도하다니.’
천영,본인의 말대로 그는 영물이
었다. 비록 그 정체를 완벽하게 파 악할 수는 없었으나 아카메쉬는 천영의 정체가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 만큼은 알 수 있었다.
“부탁을 너무 잘 들어줘서 탈이구 먼.”
제자인 예런의 상태는 생각보다 도 훨씬 심각했다. 그는 실려 가는 내내 ‘나는 너무 저능아야,나는 너무 멍정해, 나는 재능이 없어, 나는……라며 중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아카메쉬는 자신의 건방진 부탁에 천영이 고작 그 정도로 끝 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예런이 자신의 자만심 을 모조리 지우고 재도약을 할 수 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움직이 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직까 지도 방금 전에 펼쳐진 마법의 여 파에 수많은 관중들이 발을 떼지 못하고 경기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웠던 작은 소년은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존 재가 되어버렸다. 아마 올해 벌어 진 마법전은 앞으로도 절대 잊히 지 않을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 다.
‘귀인이 왔다 갔군.’
아카메쉬는 그렇게 생각하며 경 기장을 내려갔다.
알렉트로트가 거친 입을 열었다.
“……형님, 아까의 꼬마가 정말 그 ‘서천영’이 맞는거요?”
그러자 금발머리를 하고 있는 미 남형의 사내,케일런이 고개를 끄 덕였다.
“저런 과격한 방식의 마법을 다루 는 수준급의 마법사에 금색 별 마
탑에 들어갈 정도의 넥스터라면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그럴 리가. 저런 꼬맹이가 서천 영이라굽쇼?”
알렉트로트가 케일런의 말을 부 정 하자 왼쪽에 앉아있던 회색 머 리의 여인,네란이 말을 끊었다.
“형님 말씀이 맞다. 서천영이라는 닉네임이 흔한 것도 아니고 심지 어 그 닉네임을 가진 넥스터 중에 서 금색 별 마탑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면…… 우리가 알던 그 서천영이 맞겠지.”
“하,하지만 저희가 알던 서천영
은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니면서 성격이 와일드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상남자가 아니었습니까?”
“그래,맞지.”
“근데 저 서천영은 너무…… 어립 니다요. 심지어 남자가 맞는지 의 심스러울 정도인데유.”
하지만 알렉트로트의 말에도 케 일런은 자신의 추측을 거둘 생각 이 없어보였다.
“우리가 보던 서천영의 모습은 항 상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고 했지.”
‘예,키가 최소한 180은 넘었을
법한 덩치였쥬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넥스트에 는 크기 조절이 가능한 갑옷이 매 우 흔해. 저런 작은 키를 가지고 있더라도 온몸을 가리고 있는 갑 주를 착용한 다음 키를 제멋대로 설정했으면 그런 덩치를 갖는 것 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알렉트로트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독한 솔로 플레이어 서천영과 순진무구해 보이는 인상의 꼬마 마법사 서천영의 이미지가 잘 들 어맞지 않았다. 하지만 케일런은
더 이상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에 등장한 소녀인지 혹은 소년인지 알 수가 없는 모습 을 하고 있는 천영을 보며 어떠한 확신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어,그때의 그 분위기,눈 빛 결정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스타일까지. 나는 전부 기억하고 있어.’
케일런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서천영의 얼굴을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하며 등을 돌렸다.
“근데 쫓아가지 않아도 되는 겁니 까,형님.”
네란의 질문에 케일런은 피식 웃 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았으니 그 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