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40화
10장 응? 뭐라고? 닥치고 입어
소녀의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 다. 상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부 족한 것 없이 자라났기 때문에 아름 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자신이 두 눈으로 본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의 존재를 안 이후부
터 소녀의 취미는 사진 촬영이 되었 다.
아버지가 사다주신 값비싼 카메라 를 들고 여행을 다니며 소녀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찍는다. 하지만 그 것들은 대부분이 풍경에 한정되었 다.
그녀는 절대로 아무거나 찍지 않는 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부유도로부 터 쏟아져 내려오는 대규모 폭포의 장관을 보았을 때의 짜릿함을 카메 라 속에 담았고 끝없이 펼쳐진 낭떠 러지도 담았으며 하늘을 뒤덮을 정 도로 높이 솟아오른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은 빙결지옥도 담았다.
소녀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절대 하찮고 아 름답지 않은 것은 찍지 않을 것. 그 렇기에 소녀는 평소에는 카메라를 자신의 캐리어에 담아두고 절대로 꺼내지 않는다. 평범한 도시에는 그 녀가 찍을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열차에 탑승하여 자 신의 좌석을 찾기 위해 좁은 복도를 지나다니던 도중 아주 우연히 그 소 년을 발견한 순간 캐리어 속에 카메 라를 꽁꽁 감춰둔 다음 꽉 잠가버린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그녀는 진정 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가.’
첫인상은 잠에 빠져있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뒤쪽으로 짧게 틀어 올 리고 모자를 쓴 바람에 전체적인 이 미지가 남자 쪽으로 상당히 비틀렸 다. 남장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로 남자인 것인지 소년은 흰색의 로 브를 뒤쪽에 내던져 놓은 채 정신없 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런 소년의 옆에는 은발을 길게 늘어 뜨린 또 다른 아름다운 여인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년은 그 여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였는데 햇살이 창문을 관통 하여 은은하게 빛나는 그 찰랑거리 는 머릿결을 본 소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즉시 캐리어의 자물쇠를 열 고 안에 들어있는 카메라를 꺼내 조 립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사진사도 몇 분은 족히 걸릴 작업이었으나 지 금 당장 저 한 폭의 그림 혹은 조 각 같은 저 사람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조립은 순식간에 완 성되 었다.
카메라를 꺼낸 소녀는 애써 숨을 고르고 침착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이렇게 잠든 상대방을 찍는
행위가 무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 었다.
그녀 스스로가 절대 사람을 찍지 않는다는 프라이드를 언제부턴가 확 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지하고 있었 다.
그러나 저 소년은 반드시 찍어야만 했다. 그녀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넌 평생 후 회할 것이라고.
마침내 카메라의 조준이 완료되었 고 원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 다. 소년이 많이 피곤했는지 눈썹을 비틀며 입을 살짝 벌렸기 때문이었
아름다운 조각상에 표정이 그려지 는 그 찰나의 순간. 소녀는 카메라 의 셔터를 눌렀고! 그것을 포착한 누군가가 소녀의 카메라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
“죄송합니다만 저 분을 찍으시려는 것이라면 막을 수밖에 없겠군요.”
중절모를 쓴 젊은 사내였다. 모자 로 얼굴을 대부분 가린 그는 갈색의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몸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격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야 말았다. 얼 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녀는 황급히 카메라를 품속에 감추고 캐리어를 잡아끌며 뒤쪽으로 도망치고 말았 다.
그런 소녀를 가만히 지켜보던 중절 모의 남자는 모자를 한 번 고쳐 쓰 더니 아직까지도 잠들어 있는 소년, 서천영에게 다가갔다. 그는 약간 당 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깊게 잠드신 모양인데…… 깨워야 하려나.’
남자가 그렇게 고민하기 시작한지 30초가 지났을 무렵 누군가가 나타 났다. 고양이상의 활기 발랄한 미녀, 셀라임이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들고 천영과 안시르엘이 잠들어있는 좌석으로 돌아온 것이다.
“응? 누구시죠?”
“아,혹시 메이지 서천영과 아시는 분이십니까?”
“천영 오빠랑은 같은 파티에요.”
“파티……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 시 메이지 서천영을 깨워주실 수 있 으십니까? 전할 편지가 있어서 말이
죠
“그거라면 그냥 저한테 주세요. 오 빠 지금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 서 지금 간신히 잠든 거라서요.”
하지만 아무리 천영의 파티원이라 는 말을 들었어도 넥스터가 아닌 남 자는 그 말을 100%로 신뢰할 수 없었다. 남자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셀라임 역시 그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누가 보낸 편지인데요?”
“비밀입니다.”
“그래요? 근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그것 또한,비밀입니다.”
셀라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 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의심스럽다 고 생각했다. 대낮에 움직이는 열차 에 타고 있는 천영을 정확한 시간에 쫓아서 편지를 건네주겠다고 찾아온 남자라니. 여태 천영이 여자로 오해 받으며 남자들에게 곤혹을 겪은 사 실을 잘 알고 있는 셀라임은 적당히 이 수상한 남자를 물려야겠다고 생 각했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덥석 집어 문 다음 한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착용하고 있는 흰색의 애검이 있었다.
‘곤란한데.’
셀라임이 명백하게 자신을 적대하 고 있자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서천영의 파티원이라면 감 히 피해를 끼칠 수는 없었으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하나 남 자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셀라임 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옆쪽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 다. 남자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천 영이 반쯤 감긴 눈동자로 이쪽을 주 시하고 있었다. 방금 전 셀라임과 작게 말씨름을 하는 바람에 깬 모양 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례를 용서해 달라
는 말이 먼저 나갔겠지만 남자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편지를 그에게 건 네주었다.
“메이지 서천영,당신에게 온 편지 입니다.”
“응……?,’
잠이 덜 깬 상태로 서천영은 멍청 한 소리를 내며 눈을 비볐다. 그러 면서도 남자가 건네주는 편지를 향 해 손을 뻗었다.
마법 문자가 각인된 편지를 받아들 자 마자 천영은 또다시 잠에 빠져들 고 말았다. 하지만 목적을 완수한 남자는 더 이상 이 자리에 남아 있
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지고 말았다.
“뭐야 저 남자는……
셀라임만이 홀로 서서 어이없다는 눈빛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전화 하십시오.]
[From. 메이지 레이븐]
그것이 편지의 내용이었으며.
-하하하하! 아주 화려하게 데뷔식 을 했더군요. 과연 제가 직접 스카 웃을 한 보람이 있는 마법사답습니 다.
“뭐가 화려한 데뷔라는 겁니까
그것이 전화의 내용이었다.
레이븐은 천영을 놀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감탄한 것인지 통화 를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웃어 재끼고 있었다.
-그나저나 거기는 대체 어떻게 빠 져나오신 겁니까? 그 마탑 양반들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천영은 그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상 황을 생각하니 또다시 머리가 지끈 거렸다. 무슨 도둑이라도 된 것 마 냥 도망 다녀야만 하는 그 상황은 정말로 끔찍했다.
도시 전체를 뒤지고 있는 국가에서 파견된 에이전트들 용병 집단에 클 랜,마탑의 유명한 길드에 마치 무 기처럼 품에 카메라를 꼭 껴안고 돌 아다니는 기자들까지.
다행이도 헤이지가 열차표를 급하 게 구해주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 여 몰래 천영을 출발시켜서 망정이 었지 하마터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뻔했다.
-헤이지가 그런 쪽으로는 발이 참 빠르죠.
이후로 레이븐은 별 잡다한 이야기 를 꺼냈다. 자신이 처음 헤이지를 만났을 때는 어땠다느니,그땐 너무 어려서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다느니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라 천영은 귀 찮다는 듯 대충대충 대답을 흘렸다.
-그나저나 예런에 관해 전해드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예런이 왜요?”
레이븐의 말투는 아까 전보다 훨씬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어젯밤 메이지 천영이 그곳을 떠
난 이후 예런은 근처에 있는 병원으 로 이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송 도 중 갑자기 의사들이 모두 잠들어버 리고 예런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 니다.
“……납치인가요?”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현재 마 법 조사단이 파견 나가있는 상태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타 인의 마법이 아닌 예런의 마법 같다 고 합니다.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에 깨어나 서 어디론가 도망쳤다는 건가……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을까?
-예런이 왜 금색 별 마탑에서 튕 겨진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레이븐은 아주 살짝이지만 다시 목 소리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천재인 줄 알고 있더군요. 뭐 그런 자신감은 좋았습니다만 그것에 오염 되어 열정조차 잠식된 상태였습니 다. 전공 교수의 과목을 한 달만 강 의 받으면 그 교수를 뛰어넘을 지식 을 가지고 있고 남들은 몇 년을 수 련해야 간신히 하나 완성한다는 써 클을 본인은 23세의 젊은 나이에 4 개나 갖고 있으니 말 다했죠. 정말 천부적인 재능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자만심을 제어하는 재능은 갖지 못한 모양입니다.
간단히 말해 예런이 금색 별 마탑 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저 너무 오만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저는 그런 마법사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예런을 향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하더군 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저는 예런 을 포함해 정말 말도 안 되는 마법 실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봤고 그들 의 대부분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 습니다. 예런은 그렇게 될 것이 뻔 히 보이는 젊은이였지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사라져감으로써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아 더 이상은 받아들 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천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 다. 그저 조용히 숨소리만을 내며 레이븐이 호흡을 가다듬기를 기다렸 다.
-예런은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 다. 하늘 아래 자신보다 뛰어난 마 법사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터인데 메이지 천영을 만나서 그것 이 깨져버렸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들은 천영은 잠시 생 각했다. 레이븐이 이 이야기를 자신
에게 하는 이유.
“뭐 예런이 뜬금없이 복수하러 찾 아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만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 마법 사가 한 번 타락하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이 무서운 존재가 되니까요.
그렇게 대화가 동결되었고,천영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찐지 뻐근 한 어깨를 우두둑 풀며 공중전화 박 스에서 나오자 콧잔등에 차가운 무 언가가 떨어졌다. 천영은 고개를 들 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참 나. 크리스마스(그레잇 데이)에 나 이렇게 펑펑 쏟아질 것이지.”
천영은 흰색의 로브를 여미고선 걸 음을 옮겼다.
예술의 도시,로그마티아에는 조금 특이한 광경이 펼쳐지곤 한다. 눈이 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허름한 옷 차림의 주민들이 급하게 뛰쳐나와 미친 짓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느 관점에서 보자면 ‘미친 짓’이 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적인 영감을 받아들이기 위한 행위’라고 포장해서 표현할 수도 있 었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비를 맞으 며 구름을 쳐다보는가 하면 낙뢰가 치는 밤에 지붕에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이도 있었다. 눈이 내리면 물감을 들고 나와 바닥에 흩 뿌리는 자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미친 짓을 ‘예술적인 영감을 받아들 이기 위한 행위’라고 표현하는 사람 은 생각이 깊은 예술가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도시에는 대 부분이 예술가가 거주하고 있기 때 문에 그러한 짓을 지적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 이유로 천영의 관점에서 ‘미 친 짓’으로 보이는 행위를 하고 있 는 수많은 남녀가 앞뒤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뛰어 다니기 시작하자 짜중이 솟구쳤다.
“여기 원래 이런 미친 도시야?”
그 질문에 셸라임이 구석에 있는 의자에 다리를 끌어안고 쪼그려 앉 은 상태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나도 몰라아……
안시르엘은 거의 울상을 지은 상태 로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 이고 있었다. 천영과 셀라임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워낙에 많은 인파가 몰려다녀서 제 대로 다가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천영은 스스로 그 인파 사이 로 뛰어들어 안시르엘의 허리춤을 팔로 껴안은 다음 가볍게 도약하여 지붕에 안착하는 것으로 그녀를 구 출해냈다.
“사람들의 눈빛이 전부 맛탱이가 가있어……
“응,지금 너도 그래.”
그들을 쫓아 셀라임 역시 지붕 위 로 올라오자 천영은 지붕에 쌓인 눈 을 툭툭 털어내고 주저앉았다.
“그래서 여기에 있다던 네가 말한 ‘특별한 장인’은 어디 있는데?”
“글쎄.”
“……글쎄? 죽을래?”
“나도 아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 해 알아낸 거야. 어디에 사는지 정 확한 주소는 당연히 모르지.”
“이름은?”
“박하나. 한국인이라고 들었어.”
“그건 좀 다행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이 상황이 다행이란 말은 아니니까 좋아하지 말라고.”
그녀의 무책임한 대화에 천영은 일 부러 들리라는 둣 ‘아이고오 내가 어쩌다 이런 미친년을 따라왔을까.’ 하며 중얼거렸지만 셀라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만지작대고 있 었다.
“……그래서 내가 신년 계획을 세 웠는데 말이야.”
“뭐? 네가 계획을 다 세워?”
천영은 귀를 쫑긋거렸다. 지붕의 바로 아래쪽에서 남자 두 명이서 오 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지붕 까지 들려왔다.
“자,이거야. 여자 친구와 함께 갈
여행지를 선정해봤어.”
“오오,대단해.”
“우선 락 펠톰에 가볼 거야. 바위 산의 꼭대기에 솟아나는 물을 함께 마시면 영원히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했거든.”
“그 다음은?”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아야겠 지? 사랑의 화원을 갈 거야. 어렸을 때부터 몇 번이나 가보긴 했지만 연 인과 함께한다면 정말 꿈만 같을 거 야.”
“대단해,대단해.”
남자는 줄줄이 자신의 계획을 옮었
다. 그 내용이 꽤나 재미있었고 계 획이 상당히 치밀하고 빈틈없이 짜 여 있어서 천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맹세의 계곡에 가서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맺을 거 야.”
“와,정말 대단한데?”
친구의 칭찬에 남자는 살짝 부끄럽 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마지막 계획을 이야기했다.
“응,내 계획은 완벽해. 이제 여자 친구만 생기면 돼.”
남자의 친구로 추정되는 자가 말을 잃었다. 천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 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천영은 몰래 엿듣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은 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런 걸 진지하게 들은 내가 바보 지.’
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자 리에서 일어났다. 아직까지도 미친 짓(예술적인 영감을 받아들이기 위 한 행위)을 하고 있는 수많은 인파 가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졌기 때문 이었다.
슬슬 제대로 찾아볼까 하며 셀라임
과 안시르엘을 일으키려는데 아래쪽 에서 또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근데 너,애초에 여행 가려면 직 장은 때려 쳐야 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때려 치려고.”
“왜? 이번에 새로 들어온 그 대장 장이 엄청 대단하다며? 여자라고 들 었는데. 대쉬는 해봤어?”
“대단하지. 그 성격이 말이야. 뭐? 대쉬를 하라고? 그대로 대쉬 당해서 갈비뼈 작살나고 죽어버릴 걸? 그냥 미친년이야. 깡패인 줄 알았다니 까?”
“푸하핫! 소문 들어보니까 확실히
깡패 같긴 하더라. 이름이 뭐라고? 박하나였나? 바다 건너 동양풍의 이 름인데 말이지.”
거기까지 대화를 들은 천영은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셀라임과 안시 르엘의 머리를 콱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녀들은 울상을 지으며 뭐하는 짓 이냐는 눈빛을 보내는 것에 아랑곳 않으며 천영은 천천히 기어서 지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아…… 그런 정신 나간 여자 말 고 하늘에서 예쁘고 참한 여자 친구 하나 안 떨어지나……
남자는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그 순간 천영이 창문 안 쪽으로 가볍게 점프해서 뛰어 들어 가자 그 인기척에 근육질의 남자 두 명이 시선을 돌렸다. 천영은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아저씨들. 지나가는 길에 길 좀 물어보……
“제임스! 네 소원이 이뤄졌어!”
“맙소사……
감격하는 제임스와 놀란 눈을 짓고 있는 그의 친구를 보며 천영은 식은 땀을 삐질삐질 홀렸다. 아까의 대화 를 들었을 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
지만 이 남자들도 제정신은 아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