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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48화 (47/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48화

드래곤이란 어떤 존재일까?

천영은 그리픈으로 넘어온 뒤 그런 의문을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물 었다.

이곳은 허구의 세상이 아닌 현실이 다. 데이터 덩어리로 이루어진 가짜 세계였던 넥스트와는 달리 진짜 세 계인 그리픈이기에 드래곤으로 탈태 한 천영 역시 ‘진짜 드래곤’이라는 것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드래곤,그들은 어 떤 존재일까?

안타깝게도 그리픈에는 드래곤에 대해 기록된 것이 너무나도 적었다. 대부분은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데다 가 대영옹의 서사시에 그들을 도와 주는 역할 정도로만 나오고 제대로 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넥스트 속 세상에서는 먼 과거에 드 래곤이 몇 번이나 세상에 등장했다 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세계는 허구인데다가 이제 와서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니 천영은 거 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드래곤이 마법의 종족인 이유는? 드래곤이 그토록이나 오래 살 수 있 는 이유는? 드래곤이 지상에서 제일 강한 이유는? 드래곤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천영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 무나도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가야만 했다. 그러 다보니 스스로의 능력을 너무 과소 평가하고,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퀴즈의 달인 루블랑의 수수께끼!]

[수수께끼의 방에 입장하였습니다.]

[루블랑은 모든 사물에 수수께끼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라!]

10명의 그룹 중에서 가장 앞장선 천영이 룸에 입장하는 순간 보인 것 은 거대한 공동을 가득 메우는 마법 진의 향연이었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그 장소는 학교 의 강당 정도의 크기였는데 바닥에 는 선이 직각으로 수십 갈래가 사방 으로 뻗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세워 진 낮은 기둥 위에는 네모난 박스나

구체 등등이 있었다.

“대체 저게 뭐지?”

“바닥에 저건…… 도로 표지선인

가?”

“으음,뭔가를 올려놓는 홈 같기도 한데.”

“그렇다기엔 길게 이어져 있는걸. 철로라도 표현한 걸까.”

뒤쪽에서 셀라임을 포함한 파티원 들이 속닥거리고 있었지만 천영은 그들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멍하니 공동을 쳐다보았다. 천영에 게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 었다.

‘이 느낌온-

천장과 벽,바닥에 그려진 수많은 마법진들. 그것들은 각각 무언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 었지만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서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천영의 시야에 들어오는 마 법진의 면적은 고작해야 30% 정도. 하지만 천영은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사방에 새겨진 마법진이 마치 입체 적으로 허공에 떠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그것들 은 입체적으로 둥둥 떠오르더니 스 스로가 분해되고 해체되어 마치 ‘알 기 쉽게 나를 봐주시오.’라는 느낌 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영,‘용의 눈’에 들어온 마법이 마치 스스로의 모습을 입체화하여 그에게 해석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천영의 눈 속에서 분해되고 해체되 고 조합되고 뒤섞이기를 반복하던 마법진은 마침내 감춰져 있던 다른 부분까지 허공에 둥둥 떠오르기 시 작했는데 그의 추측으로 그것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이 마법을 추리해서 만들어낸 허상’이

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드 래곤의 마법 추리’이다. 아마도 99%의 명중률을 자랑할 거의 완벽 한 추리.

‘……과연 이 룸은 그런 구조로 되 어 있는 건가.’

천영을 따라서 같이 수수께끼의 방 에 들어온 알렉트로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과거에 천영이 대단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넥스트라는 게임을 3년이 나 접었던 탓인지 레벨이 12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당한 천재라 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 수 있으나 과연 이 룸의 공략법을 혼자서 찾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 수밖에 없었다.

“형님,괜찮으쇼?”

알렉트로트가 그렇게 묻자 멍하니 공동을 바라보던 천영이 슬쩍 고개 를 들었다. 알렉트로트가 원체 덩치 가 큰 탓도 있었지만 천영의 키가 작은 탓에 그는 목이 빠져라 하늘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너,힘 세지?”

가만히 알렉트로트를 올려다보던 천영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알렉트로트는 기본적으로 덩치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였다. 거 기다가 야생적으로 보이는 새까만 피부까지 더해,남자로서 굉장히 강 해보이는 타입.

천영은 그의 두꺼운 팔뚝을 낚아채 고선 공동의 중앙까지 성큼성큼 걸 어갔다.

“혀,형님. 여긴 룸입니다. 그냥 막 들어가면 위험……

“닥치고 따라와.”

알렉트로트는 혹시나 뭔가가 튀어 나올까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천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중앙까지 걸어갔다. 공동의

중앙에 도착한 천영은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판 같은 것들을 겹겹이 쌓더니 알렉트로트에게 지시했다.

“저기 구석에 있는 투명한 상자 있 지?”

“예.”

“들고 있어.”

“……예?”

천영의 말에 알렉트로트는 질겁하 여 되물었다. 투명한 유리 상자로 보이는 저 물건은 척 봐도 각 면의 길이가 2m는 되어 보이는데 저런 걸 들고 있으라니.

“빨리 하라고.”

계속 재촉하자 하는 수 없이 알렉 트로트는 투명한 유리 상자를 들어 올렸다. 크기에 비해 무겁지는 않았 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무게가 나갔 기 때문에 알렉트로트는 팔에 힘을 빡 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팔 근육 이 돋아나는 것을 본 천영은 자신이 쌓아뒀던 판 조각 위에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 위로 올려서 짊어지라고 말했다.

“갈수록 힘든 일만 시키시네유

“마법사 하던가.”

지금 이 던전의 공략을 주도하는 사람은 마법사이다. 그리고 천영은 이 그룹의 유일한 마법사이다. 알렉 트로트는 이 룸을 대충 훑어봐도 뭐 가 뭔지 알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결국 조용히 천영의 말을 따를 수밖 에 없었다.

알렉트로트를 중앙에 세워둔 천영 은 다시 돌아와 셀라임의 옷자락을 잡고 이끌었다.

“따라오세요.”

그의 말에 셀라임을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 역시 천영을 따라서 움직 였다. 공동의 내부에 발을 딛는 순

간 천영이 경고를 했다.

“붉은 발판을 밟지 마세요. 바닥이 꺼지는 형태의 함정이 있거든요. 아 래에 뭐가 있을 진 모르겠네요. 노 란색은 안전하고,음. 초록색을 밟으 면 몬스터가 나오겠네요.”

“……여기 대부분이 초록색인데 요?”

“네,하나라도 밟으면 전부 뒤집히 면서 몬스터가 우르르 튀어나오는 구조에요.”

꿀꺽.

그 말에 누군가가 침을 소리 나게 삼켰다. 공동에는 초록색의 발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자칫하다간 몬 스터의 파도에 휩쓸릴 뻔했다는 사 실에 긴장감을 돌게 만들었다. 하지 만 정작 그 분위기를 만든 천영은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그들 을 이끌고 공동의 여기저기를 누비 고 다녔다.

“어 그래,그 박스. 셀라임 네가 그거 들고 저기 올라가있어.”

“네,그거요. 아니,그 옆에 있는 거요. 그 동그란 거. 아 그거 말고! 맞아요. 그거 저쪽으로 굴리세요.”

“옆에 버튼 있죠?”

“눌러요?”

“누르면 터져요.

“그 옆에 있는 홈에다가 맞는 조각 을 끼워 넣으세요.”

“자,이 화살 들고 있다가 제가 신 호하면 저 구멍에다가 쏘세요.”

“저는 직업이 검사인데요.”

“저도 꿈이 판검사에요.”

그렇게 천영은 공동을 누비고 다니 며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뭔가를 할 것을 지시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공동에 배치되어 있는 물건을 특정

장소로 옮기거나,들어서 올려놓거 나 굴려서 맞춰 넣는 것들이었는데 하필이면 천영의 덩치가 작은 탓에 그것들을 직접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10분에 걸쳐 파티원들에게 이 런저런 지시를 끝마친 천영은 그들 을 각자의 위치에 옮겨놓고선 알렉 트로트가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혀,형님 힘들어 죽겠습니다.”

“나도 알아.”

천영은 여기저기서 주워온 구슬을 꺼내들어 바닥에 굴렸다. 빛나는 선 에 연결 되어있는 작은 홈 4개에 각각 구슬이 아주 딱 들어맞게 박혔 는데 그것들이 웅웅 거리며 빛의 기

둥을 생성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솟 아오르더니 투명한 유리 상자를 받 치는 형태가 되었다.

“이제 놔.”

알렉트로트는 기다렸다는 둣이 손 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유 리 상자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허 공에 고정된 상태였다. 천영은 가만 히 그것을 지켜보더니 발판을 발로 질끈 지르밟았다.

그 순간 천장에 있던 수정에서 빛 이 쏘아져 나오더니 유리 상자에 명 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이 신호 라는 사실을 깨달은 파티원들은 들

고 있던 상자를 홈에다가 밀어 넣거 나,구슬을 박거나,화살을 쏘아내는 등 천영이 지시한 일을 모조리 수행 했다.

그 결과 유리 상자에 적중한 빛이 난반사를 하더니 공동에 새겨져 있 는 마법진의 여러 부분을 가려버렸 다.

마법진은 기이한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사소한 문자부터 시작해 서 본래는 ‘앞’을 가리키던 것이 ‘뒤’룰 가리키게 되었다던가,‘ON’ 을 의미하던 것이 ‘OFF를 의미하 게 되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마법진 을 구석구석 훌어갔다. 종내에는 특

정 구간의 마나를 완전히 차단해버 렸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덜커덩 기이한 소리를 내던 수정은 갑작스레 빛을 잃었다. 마치 전원이 전부 내려간 둣이. 빛을 잃은 마법 진은 그 힘이 서서히 사라져가 의미 를 완전히 지워버리게 되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유리 상자 역시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상자 가 멸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공동 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이윽고 불 과 몇 분 전에 들어왔던 출구가 열

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대로 끝?”

누군가의 허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 지자 알렉트로트는 정신을 번뜩 차 렸다. 그는 아직까지도 천장을 올려 다보고 있는 천영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요,형님?”

그 질문에 천영은 구석에서 굴러다 니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주사위 같 은 상자를 가리켰다.

“내 생각에는 이곳은 약간 부루마 블 같은 곳이야. 주사위도 있고 말 고 있고. 판도 이렇게나 크고. 머리 를 잘 써서 어떻게든 골인을 시키면

탈출할 수 있는 구조의 공간이야.”

“예?”

부루마블이라니. 그것도 발판을 잘 못 밟으면 몬스터가 등장했고 잘못 내딛으면 바닥으로 멸어지는 그런 끔찍한 구조. 하지만 천영은 부루마 블의 형식으로 이 방을 통과하지 않 았다.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썼는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저 이 룸 자체를 완전히 기능 정지를 시켜버 린 것이다.

결국 알렉트로트는 또다시 묻고 말 았다.

“형님은 어떻게 한 거유?”

“나는 그냥 이곳을 구성하고 있는 마법진의 설계를 해체했어.”

“……예?”

뭐라고 비유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천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그거지. 방 탈출 카페 놀러간 건축 학자가 그냥 방 구조 자체를 분해해서 탈출해버린 거야. 수수께끼나 함정은 그대로 무시하

가장 먼저 룸의 공략을 성공한 천 영의 그룹은 다시 중앙의 대기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 지만 천영이 너무 빨리 룸을 공략해 버린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파티원 들은 바닥에 드러누워서 잠을 청했 다. 너무 경계심도 없고 긴장이 풀 린 모습이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천영은 미리 챙겨왔던 과자를 으적 으적 씹으면서 책을 꺼내들었다. 미 스터리 큐브의 입체 마법을 연습하 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 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있을 때에만 연습하기로 했다. 눈에 띄게

사용하면 그다지 좋을 건 없다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

그렇게 대략 1시간쯤 기다리자 다 른 룸의 문이 열렸다. 어떤 그룹이 룸의 공략을 성공했다는 소리였다. 드디어 다른 파티가 나왔다는 생각 에 천영 역시 책을 덮고 고개를 들 었다.

그곳을 쳐다보자 의기양양한 표정 의 세이지가 상당히 지쳤지만 당당 한 걸음걸이로 나오다가 천영과 눈 을 마주치고선 뻣벳하게 굳어버렸 다.

‘이 중에서는 제일 먼저 공략한 건 가? 생각보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천영 은 뒤쪽에서 나오던 사람들을 발견 하고 말았다. 그가 깜짝 놀라기도 전에 안시르엘이 벌떡 일어나더니 세이지의 뒤쪽에서 힘겹게 기어 나 오는 사람들을 향해 뛰어 갔다.

“어쩌다가 이런……

“나,나 허벅지가 너무 아파.”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치명상을 입 은 사람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대부 분이 다친 상태였다. 어떤 사람은 화상을 크게 입어서 안시르엘이 무

리하게 신성력을 퍼부어야할 정도 로. 그곳에 속해있던 사제 역시 지 쳐있던 모양인지 안시르엘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체력을 회복하고 있 었다.

‘……원래 이곳의 룸은 다 저렇게 다치면서 공략을 하는 건가?’

천영은 워낙 야매로 룸을 돌파했기 때문에 다른 곳의 사정을 알 수 없 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10분이 흐르고 30분이 흐르자 서 서히 다른 그룹 역시 룸의 공략을 끝내고 각자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들 중 어떤 파티도 상처를 크게 입

은 곳은 없었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곳은 있을지언정 대다수가 목 숨 소중한 것을 알고 있기에 안정적 으로 공략하는 것을 추구했다는 의 미였다.

천영은 세이지를 향해 불안한 눈빛 을 보냈다. 저 정도로 파티원이 상 처를 입었다면 이유는 두 가지의 경 우밖에 없었다.

리더가 무리하게 파티원을 굴렸거 나 아니면 리더의 판단력이 쓰레기 거나.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다.

하여튼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넥

스트에서 그리픈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고레벨 넥스터가 넘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모두가 뛰어난 인 재들이다. 이런 곳에서 허무하기 죽 기라도 하면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 된다. 천영은 케일런을 조용히 불렀 다.

“케일런,저 세이지라는 여자 좀 네가 잘 봐줘.”

“……안 그래도 조금 불안해 보이 기는 하는군.”

케일런 역시 세이지의 그룹이 이상 하게 피해가 크다는 것을 마음에 두 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던전의 공략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각 층을 올라갈 때마다 룸은 점차 적어졌지만 그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룸 하나를 공략하는데 걸리는 시간 이 짧게는 卜2시간밖에 걸리지 않 던 것이 반나절씩 걸리기도 하였으 며 길게는 12시간이나 한 그룹이 룸에 갇혀있기도 했다.

사상자가 없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갈수록 마법사들이 서서히 지쳐갔 다.

무리하게 루블랑의 퀴즈를 마법적 으로 해석하여 최대한 사상자를 내

지 않고 안전하게 가려다가 스트레 스를 잔뜩 받아버린 탓이다.

그럴 때에 가장 빛이 나는 존재는 단연코 천영이었다. 천영은 언제나 안정적으로 자신이 맡은 룸을 단번 에 돌파해냈으며 심지어는 몇몇 룸 은 입구에 새겨진 문양만을 보자마 자 내부에 있을 함정을 추론해내고 선 힌트를 전해주기도 했다.

몇몇 룸을 공략할 때에는 함정이라 고는 전혀 없이 순수하게 몬스터만 잔뜩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 이 될 때면 천영은 마법사인 주제에 절대로 후방에 빠져있지 않고 선두 에 서서 근거리 딜러들과 함께 몬스

터들을 쥐어 패고 다녔다.

비록 레벨이 낮은 탓에 강력한 한 방을 선보일 수는 없었지만 날렵하 고 재빠른 천영은 자신의 방어력을 믿고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 고 다녔다. 덕분에 탱커들이 훨씬 더 쾌적한 사냥을 할 수가 있었다.

처음엔 천영의 실력에 대해 반신반 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천영이 정말로 케일런 등이 띄워줄 만큼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럴수록 세이지의 속은 점점 더 타들어만 갔다. 그녀 또한 천재에 가까운 존재였다. 남들이 수백 번을

계산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한 번 보는 즉시 풀어낸 적도 있었으며 새 로운 방식의 공식을 만들어낸 적도 있었다. 마법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여 사용할 정도로 아주 뛰어 난 인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스로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런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 을 수 없는 천영의 존재를 믿기가 힘들었다.

세이지는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냐,내가 조금만 더 하면……

그런 불안함을 알아챔 케일런은 세 이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곧 마지막 스테이지다. 너는 나와 같은 그룹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케일런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 이 목소리 톤으로 중명되는 것만 같 아서 세이지는 가슴이 아파왔지만 그와 동시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 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세이지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 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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