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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51화 (50/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51 화

13장 용의 약속에 관하여

중립 구역 투르칸. 소속 국가와 종 교가 없는 도시. 국가라는 테두리에 둘러싸이기 싫었던 수많은 클랜과 용병 집단,해결사들이 투르칸으로 몰려들었다. 덕분에 이곳은 어지간 한 국가의 수도보다도 훨씬 더 거대

한 도시가 되었다. 성벽이 없는 것 을 ‘자유 도시’의 상징이라고 생각 해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는 고층 빌딩이 자리하고 있었다.

웡 클랜 역시 투르칸에 자리를 잡 은 클랜 중 하나였다. 반 년 전,그 리픈으로 넘어오게 된 넥스터들이 대다수인 클랜이기에 그 크기는 아 직 작았지만 서서히 그리픈 주민을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많은 넥스터 들이 케일런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투르칸까지 찾아와 가입하기를 원하 기도 했다.

이혜림은 웡 클랜에 가입하게 되었 다. 아직까지 마탑을 선택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마땅한 신분증도 없 던 차였다. 그리고 딱히 몸담을 만 한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 다.

“아저씨는?”

이혜림이 케일런에게 묻자 그는 고 개를 저었다.

“웡 클랜의 클랜장 자리까지 그냥 넘겨주겠다고 말했는데 자기는 완장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거절했다.”

던전의 공략이 끝난 후,케일런은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다. 어째서인

지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넋을 놓아 버린 세이지를 특수 병원에 입원시 켜야만 하기도 했으며 던전 공략 성 공 기념으로 다 같이 파티를 벌이자 고 하는 통에 자금까지 풀어서 지원 해야만 했다.

‘루블랑의 신전’의 공략이 성공되 었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상인협회 와 마탑협회 등등 이곳저곳에서 찾 아와 혹시 그곳에서 나온 물건을 거 래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 통에 그들 을 전부 만나느라 진이 다 빠질 지 경이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빠짐없이 하는 것 이 있었다. 서천영에게 웡 클랜의

가입을 권유하는 것. 하지만 서천영 은 그 제안을 끝끝내 거절했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

케일런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그 렇게 말했다. 그는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서천영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창 넥스트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시절에도 케일런은 자신이 서 천영보다 잔재주나 컨트롤이 부족하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천영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바로 위에다 가 두고 그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우고 싶었지만 천영은 언제나 한 곳에 머무는 것을 지극히 꺼려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것을 좋아했다.

케일런은 서류 뭉치를 만지작대면 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나저나,기껏 정착할 클랜도 생 겼으면서 또 떠난다고?”

“응.”

보통 넥스터가 클랜에 가입하는 이 유는 단 하나다. 안정적인 직장 그 리고 머물 수 있는 거주지가 되기

때문. 클랜에 들어오는 임무 중 대 부분이 타지를 나가야만 하는 경우 가 많지만 그래도 돌아올 장소가 있 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클랜에 가 입한다. 하지만 이혜림은 웡 클랜에 가입 했으면서도,이곳에 머물 생각 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여긴 참 넓은 곳이지. 많은 걸 보고,듣고,느끼고 와라.”

이런 경우에는 클랜에 머물고 있어 봐야 클랜에게 득이 되는 게 없어서 내보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케일 런은 자신의 클랜원들에게 이런 점 에 있어서 관대했다. 현재 이혜림 뿐만이 아니라 몇몇의 클랜원들은

떠돌아다니기를 원했고 케일런은 그 것을 모두 수락해준 상태이다.

이혜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 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 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낡고 오래됐지만 그렇기에 손님이 많고 북적거리는 숙소였다. 서천영 은 ‘검은 갈퀴 고래 여관’의 3층에 있는 제일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다 고 한다.

이혜림은 걸을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나무 계단을 천천히 올 라가 복도로 돌아서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살짝 부딪쳤다.

“어머,죄송…… 언니?”

혜림과 어깨를 부딪친 사람은 다름 아닌 셀라임이었다. 그녀는 간편한 여행복을 입은 상태였는데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이미 끝마친 것으로 보 였다. 뒤쪽에 서있던 안시르엘 역시 활동하기 편한 사제복이었으므로 서 천영과 함께 떠다는 것인가 싶었지 만 그녀들 역시 아직 그를 찾고 있 는 모양이었다.

“같이 떠나는 게 아니야?”

“응,할 일이 생겼거든.”

혜림은 그 점이 조금 의외라고 생 각했으나 파티가 깨지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였으므로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함께 파 티를 했던 이유가 끝이 난 모양이라 고 생각하면서.

3층 복도의 제일 구석에 있는 곳 을 찾아가자 서천영이 머물고 있는 ‘311호’가 보였다. 셀라임은 성큼성 큼 그곳으로 걸어가 문을 광광광 두 드렸지만 안쪽에서 별 반응이 없었 다. 혜림은 혹시 자리를 비웠나 싶 어서 다시 내려가 숙소 주인에게 행 방을 물으려고 했는데 셀라임이 다

짜고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어제 술판 벌이더니 아직 자빠져 서 자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자 잠겨 있지도 않았는지 문이 활짝 열렸다. 방 안은 끔찍한 지옥 이었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이불 과 가구들,반쯤 뒤집어진 테이블, 굴러다니는 와인 병,마지막으로 주 변의 쓰레기들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누가 사람이고 누가 쓰레기인지 구 분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늘어져 있는 서천영까지.

서천영은 침대 위에다가 한쪽 발과 한쪽 팔을 걸친 상태로 몸을 아래쪽 에다가 질질 늘어뜨린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한쪽 손은 의 자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검은색 의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친 상태 였고 입고 있는 성인 남자용 티셔츠 는 말려 올라가 배꼽이 노출되어있 는 상태였다.

예쁘고 깜찍한 외모를 가진 아이가 잠을 청하는 모습이라고 전혀 상상 할 수 없는 광경에 그녀들은 입을 쩍 벌리고 놀랐으나 이내 평범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봐 자는 것 도 요란하네.”

사람은 절대 생김새대로 놀지 않는 다. 서천영은 특히나 그 점이 너무

심했다. 이혜림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걷어낸 다음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를 시켰다. 안시르 엘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고 셀라임은 쓰러진 가구를 정리했다. 그 와중에 서천영이 꼬옥 붙잡고 있는 의자를 떼어내기 위해 애를 쓴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워낙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청소 를 하니 서천영이 잠에서 깬 것은 당연한 일. 그는 부스스한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퀭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다 두통이

심해졌는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 았다.

“흔 ᄋ 으.”

몌、— —I

“얼마나 마신 거야 대체.”

“한 병밖에 안 마셨어……

그 말에 안시르엘은 자신이 치운 와인병의 숫자를 기억해냈다. 독한 것으로만 3병,약한 것으로 2병. 그 것도 방에만 있던 것이니 아래층에 서 다른 사람들과 술판을 벌일 때에 는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이다.

‘드래곤이라도 술에 취하는 걸까.’

안시르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열려있는 창문 쪽으로 뭐가 팔랑 팔랑 날아다니는 것이 시야에 들어 왔다. 새하얀 나비 같은 것이 날아 다니면서 안쪽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안시르엘이 그것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그것은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서천영의 머리로 직행했 다.

툭!

“끄어어억!”

고작 종이 비행기가 부딪힌 정도의 소리밖에 나지 않았는데도 서천영은 죽겠다며 엄살을 피우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안시르엘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비가 아닌 편지였다. 그것도 스스 로 하늘을 날 줄 아는.

‘금색 별 마탑?’

안시르엘은 서천영에게 그것을 건 네줬다.

“오빠,편지 왔어.”

하지만 서천영은 편지를 받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지 바닥을 엉금 엉금 기어서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 다.

“수,숙취 해소제 좀……

“하아.”

결국 아래층까지 다시 내려갔다 와 서 숙취 해소제를 하나 건네주자 서 천영은 그것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거지같은 맛에 도중에 한 번 오바이트를 할 뻔 했으나 간 신히 참아냈다. 그것을 마시고 나서 도 숙취가 심한 것인지 서천영은 머 리를 부여잡고 뒹굴다가 구석에 틀 어박히더니 사이즈가 큰 스냅백을 꺼내 머리에 푹 늘러썼다.

“뜬금없이 그건 왜 쓰는 거야

..?”

“머리 아파서

그렇게 해서 서천영이 제정신을 차 리는 데에 소비한 시간은 거의 30 분이나 되었다.

“뭐야,너네 다 윙 클랜에 가입 했 다면서 떠나려고?”

“응.”

“이혜림은 그렇다 치고 너넨 왜?”

식당가로 내려와 해장국을 홀짝이 며 서천영이 그렇게 묻자 셀라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들어 보니까,여긴 ‘나이트’라는 직업이 있더라고. 오빠도 알고 있겠

지만 이 나이트가 상당히 되기 어려 운 대신 한 번 자격증을 따놓으면 혜택이 어마어마하거든? 그래서 뭐, 옛날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여기저 기 떠돌아다니면서 레벨도 좀 올리 고 해서 나이트 자격 좀 따보려고.”

천영은 그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 다. 셀라임은 성기사라는 클래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클래스일 뿐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나이트는,자 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직업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웡 클랜에 가입했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높은 곳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안시르엘쪽으로 시선을 돌리

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빠도 알다시피 이 세계의 성직 자들은 신을 믿거든. 우리랑은 다르 게.”

넥스터 성직자들은 신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믿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의 신념을 믿는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픈의 성직자와는 근본적으로 다 른 그들은 아직까지도 이곳에서 제 대로 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신을 믿지 않는 주제에 성직 자라니 말도 안 된다면서 종교들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꽤나 떠들썩한 모양이다.

“그래서 응,순회라도 돌아볼까. 그

런 생각이야.” “그렇구만.”

해장국을 세 그릇이나 해치운 다음 커피를 홀짝거리며 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녀들도 각자의 목 표가 있고,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 난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뭐,셋이 같이 다니면 되겠 네.”

이혜림은 견문을 쌓기 위해,셀라 임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안시르엘 은 자신들이 성직자라는 사실을 세 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셋 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천영 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셀라임은 그 점을 깜빡했다면서 혜림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했다.

“흐음,우리 파티의 마법사가 바뀌 었네,결국.”

“나보다야 낫겠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게.”

이대로 떠나면 언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작별인사 같 은 겉치레 인사는 하지 않았다. 서 천영은 그저 동네 슈퍼마켓에 가는 동생을 보내는 것처럼 ‘갔다 와.’라

고 말했고 이혜림은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그녀들이 떠난 다음,한참이나 조 용히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던 천영 은 그것을 반쯤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입고 나온 코트를 여미고 밖 으로 나가자 거리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슬슬 봄이 다가오는 시기에,이 눈은 정말로 마지막 눈 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천영은 그 눈을 사박사박 밟으며 사념에 잠겼 다.

조용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지 만 이 느낌이 오히려 익숙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서천영은 멍하니 늦은 오후의 거리 를 거닐다가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 혀 있던 편지를 꺼냈다. 금색 별 마 탑에서 레이븐이 직접 보낸 편지였 다.

[메이지 서천영,그 책의 이름을 해석해보니 고대의 정령사들이 쓰던 단어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옛날 사람들이 정령을 다루 는 법을 서술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 다.]

그는 얼마 전 루블랑의 신전에서 얻은 책의 제목을 레이븐에게 알렸 다. 웬만한 단어는 보는 순간 해석 이 되는 드래곤의 두뇌를 가졌음에 도 난생 처음 보는 문자가 써져 있 었기 때문.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천영은 언어 학자가 아니었고 모르 는 말을 알아볼 수는 없었기에 레이 븐에게 도움을 청하자 며칠도 지나 지 않아 해석문이 돌아왔다.

[정령과 계약 맺는 법이 적혀있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단어의 해석법이 적힌 코드를 몇 개 적어서 보냈습니다. 내용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천영은 그 코드를 읽어내려 눈 속 에 각인시킨 다음 책을 펼쳐들었다. 책에는 묘하게 친숙한 느낌이 있었 다. 마치 이 책에 내가 원하던 내용 이 있을 것이라고 강렬하게 본능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지만 천영은 책 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 아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책을 다시 집어넣고 편지를 마저 읽었다.

[……그리고 메이지 서천영이 영상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미스터리 큐 브’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아무 래도 저희 스승님을 한 번 찾아가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스승?”

그 부분을 읽은 천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8클래스의 마법사,레이븐 이 스승으로 두고 있는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듣기로 는 9클래스를 달성한 자라고 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상태라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

현자,대마법사,인간을 초월한 자, 마법사들의 왕. 다양한 호칭이 따라 붙는 그 사람은 천영으로서도 한 번 쯤은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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