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57화
이른 새벽,소나기가 몇은 순간 천 영은 눈을 떴다. 아직까지 해는 뜨 지 않은 모양이지만 잠이 확 달아났 다. 푹신한 침대에 푹 가라앉아있던 몸을 주섬주섬 일으켜 창문가에 다 가가 문을 열자 적막한 여명이 그를 반겨줬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비가 그쳤나.’
벌써 사흘이나 기다렸다. 객잔주 말 레프로스가 출발하자고 말한 당
일이 바로 오늘이다. 그녀는 오늘 아침 일찍 비가 그칠 것이라고 말했 고 그때 출발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기적처럼 말 레프로스의 말대 로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비가 그 쳤다.
천영은 서둘러 준비를 끝마치고 삐 걱거리는 계단을 타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밤새 사냥꾼들이 술을 마 신 흔적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지 만,그 누구도 소리를 내고 있지 않 아 고요한 공간. 그 공간 사이에 말 레프로스가 간편한 여행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나왔군.”
“저보다 일찍 나온 사람이 그렇게 말하시면 자랑하는 걸로밖에 안 들 립니다.”
“맞네. 나는 자랑하는 것을 좋아한 다. 그래서 밤새 불편한 점은 없었 는가?”
“……너무 좋아서 부담스러울 정도 였습니다.”
별과 호수의 객잔은 여느 도시에 있는 상급 여관보다도 꽤 괜찮은 시 설과 서비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천 영은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는 이 유만으로 VIP들이 머무는 방을 이
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완 전히 중국풍으로 꾸며져 지구의 향 수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기에 천영 은 이곳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만 살아생전 중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곳 점원들 역시 평범하지 않았 다. 짧은 반팔에 남색과 푸른색,흰 색으로 알록달록한 색상의 치파오를 입은 남자 점원들이나 무릎 아래까 지 내려오는 그러나 옆트임이 심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자 점원들 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풀풀 풍겼다. 그들의 역할은 평소에는 점 원으로 활동하면서 유사시엔 ‘호위’ 병력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이야
기였다. 사냥꾼들이 언제 어디서 행 패를 부리더라도 객잔의 방벽을 뚫 고 몬스터가 들어오더라도 금방 해 치울 수 있도록.
그런 그들이 천영을 깍듯하게 모시 며 요리조리 쫓아다니며 시종을 자 처하니 그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마 말 레프로스의 입김이 들어간 탓이겠지. 그녀는 천영에게 최대한 의 예우를 갖췄다. 천영 역시 말 레 프로스와 대화를 나눌 때면 원래의 말투는 갖다 버리고 존칭을 사용했 다.
“편히 쉬었다니 다행이군.”
말 레프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우아 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천 영은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가 그저 근처에 굴러다니던 낡은 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말 레프로스 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의자는 꽤나 분위기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름답지 않나? 이 풍경이.”
객잔의 문이 활짝 열린다. 그 밖으 로 보이는 풍경에 천영은 살짝 감탄 했다. 새벽 하늘이 서서히 걷히고 안개가 갈라지며 그 사이를 관통하 는 어스름한 빛무리. 그것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소나기가 그치면 항상 나타나는 놈들이 몇 있다. 보겠는가?”
천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손 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것 을 본 순간 천영은 적지 않게 놀랐 다.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무것 도 없던 풀밭 위에,거대한 나무가 과배기를 진 채로 땅 속에서 솟구쳐 올라와 다른 땅 속으로 틀어박혀 있 었다. 흡사 거대한 아치가 만들어진 것처럼. 게다가 그 과배기 진 나무 는 하나가 아니라 나발카 평원 여기 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여명의 굴레’로군요.”
‘호오,잘 아는군.”
여명의 굴레,나발카 평원에서 나 타나는 미스터리 중 하나. 새벽 사 이에 소나기가 내리다가 갑작스레 그치면 여명이 밝아올 때 저 거대한 식물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난다. 어 디에서 왔는지는 불명. 어떻게 왔는 지도 불명. 무엇을 마시고 저렇게 거대해졌는지도 불명. 목적도 불명. 다만 그들은 여명에 반짝 등장했다 가 다시 사라진다. 저건 식물처럼 보이지만 식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저것은 엄연히 살아 숨 쉬 는 생명체라고.
“후후, 저것들을 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나도 3년 만에 보는 군. 마치 자네를 환대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타난 게 놀랍지 않은가?”
천영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명 사이사이로 보이는 굴레를 보 고 있자니 괜히 감상에 젖었다. 그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저 멀리 사람의 형체를 가진 실루엣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천영이 그것을 발견하고 대략 1초 뒤,말 레프로스 도 그것을 발견했는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왔군/’
말 레프로스는 객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천영도 따라 나가며 누구냐
고 묻자 그녀는 그저 ‘내 보디가드.’ 라고 대답했다.
잠시 뒤 실루엣이 완전히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천영은 그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 록색의 단단한 피부,꽤나 정상적인 평상복을 입은 키가 4~5m쯤 되어 보이는 오우거 한 마리가 순박한 표 정으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 다.
“왔는가,돌쇠야.”
“예,마님.”
천영은 그 기묘한 조합에 순간 당
황할 뻔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 다.
“안녕하심까,저는 돌쇠라고 함다.”
“응…… 나는 서천영. 근데 너 좀 많이 큰데. 목 아프다.”
“하하하,키가 큰 게 제 유일한 장 점임 다.”
키가 어찌나 큰지 돌쇠가 천영의 근처에 다가오면 그는 목이 빠져라 위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자,출발하지.”
말 레프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훌쩍 점프하더니 돌쇠의 왼쪽 어깨에 올 라탔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러
운지 그것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로. 하지만 천영은 이족보행을 하는 누 군가에게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 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돌쇠는 빙 그레 미소 짓더니 오른손을 천영에 게 내밀었다.
“타십쇼.”
“그,그래……
돌쇠의 오른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자 순식간에 가슴팍으로 손을 올 렸다. 그 중심을 잡기 위해 돌쇠의 엄지손가락을 꽉 쥐었는데 워낙 크 기가 거대해서 천영의 작은 손으로 는 그것을 잡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천영은 허둥지둥 대다가
돌쇠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고선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뭔가 안심이 된다는 둣.
“가자,돌쇠야.”
“예.”
하지만 안심도 잠시 뿐,말 레프로 스가 출발하자고 말하자 천영은 눈 을 동그랗게 뜨고 돌쇠의 가슴팍에 착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투슝!
이만한 거구가 자리를 박차고 도약 하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지 며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천영이 드래곤 상태로 급가속을 해
도 이 정도의 속도는 나오지 않는 다. 어마어마한 각력을 이용해 하늘 높이 도약한 돌쇠는 나발카 평원 여 기저기에 나있는 과배기 진 나무를 밟고 재차 도약했다.
퉁,투슝! 쿵!
요란한 굉음이 반복되자 천영은 이 게 정말 오우거의 각력인지 의심스 러워졌다. 이곳에 와서는 마주쳐본 적이 없지만 천영은 넥스트를 플레 이하던 시절 오우거를 꽤나 많이 조 우한 경험이 있었다. 그것들은 어마 어마한 속도를 자랑하며 마치 원승 이처럼 나무를 타고 도약하거나 전 방에 있는 모든 것을 깨부수고 돌진
해오는 등의 흡사 전차를 연상케 하 는 사냥법을 자랑했는데 돌쇠는 그 런 넥스트의 오우거 따위와는 비교 도 되지 않는 괴력을 자랑했다.
“미,미친. 이 세계의 오우거는 이 게 평균입니까?”
“하하하, 당연히 그럴 리 없지 않 겠나! 내 돌쇠는 특별하다네.”
천영은 슬쩍 돌쇠의 레벨을 살피기 위해 정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보이 지 않았다. 몬스터에게서 풍기는 그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즉 돌쇠는 오우거이면서도 몬스터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 다.
그렇다고 해도 천영은 돌쇠에게서 풍겨지는 기운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으므로 알 수는 있었다. 이 오 우거와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려면 최소한 천영도 본체로 변신해서 싸 워야 승산이 조금 보일 것이라는 정 도라고.
‘이 세계는 정말 어마무시 하구만. 이런 괴물 같은 오우거가 있을 줄이 야.’
넥스터들 중에서도 하급 유사인종 으로 탈태를 해서 그 겉모습과 어울 리지 않게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이 들은 있었지만 그리픈에서 이런 오 우거를 보니 굉장히 신기했다.
뿌우우우_ 우우우우
“이보게,보이는가?”
돌쇠의 품에 안겨 한참을 어딘가로 달려가던 와중 괴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 레프로스의 말에 천영은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정말로 거대한 그 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푸 른색의, 초록빛의,얼룩덜룩한,고고 하게 그저 하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런 거대한 거북이가.
너무나도 거대하여 그 크기를 제대 로 식별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원근
법이 무너진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천 영은 그 생명체를 본 순간 중얼거렸 다.
“신의 사자로군요……
“하하하,신의 사자라. 재미있는 별 명이지.”
이 세상에 신이 실존하는지 아닌지 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교단에서는 저 생명체를 두고 ‘신의 사자’라 명 명하라 했고 그렇게 되어 속세에 관 심도 없는 저 거대한 생명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신의 사자가 되어 있 었다.
“오늘따라 좋은 구경을 많이 하는 군,천영. 자네는 정말로 행운을 불 러오는 모양이야. 이곳에서 지낸지 벌써 10년이 되었건만 나도 쉽사리 보기 힘든 것들을 자네는 하루 만에 다 보았지 않은가?”
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너 무나도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어버릴 것만 같은 거북이를 멍하니 바라보 고 있을 뿐이었다.
돌쇠는 말없이 평원을 질주했고 해 가 완전히 뜬 순간 어느덧 여명의 굴레는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정말 로 눈 깜짝할 사이에. 하지만 아무 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의미하단 것을 알기 때문 이다. 단지 천영은 돌쇠의 품에 안 긴 채 큐브를 만지작거렸다.
‘드래곤들은 이 세계의 모든 진실 의 끝을 보았다는 말이 있던데
수많은 서적들 속에서 등장했듯 에 니안이 설명했둣. 드래곤이라는 존 재는 한 세계의 구원자로서 또는 여 러 세계의 여행자로서 모든 진실을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드래곤 아이,용들이 가진 지혜의 눈. 하지만 천영은 그 무엇도 보이 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가슴을 막 막하게 만들었다.
“도착했군.”
나발카 평원에 햇살이 내리찍기 시 작했다. 축축한 들판은 다시 생기가 돋아났고 축 처진 생명체들이 활기 를 띄고 고개를 내밀었다.
천영은 돌쇠가 급정거를 하는 통에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크게 찧었다. 크으으. 하며 신음을 홀리며 고개를 들자 나무로 이루어진 어설픈 방벽 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늑 대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쓴 흑색 피 부의 누군가가 지팡이로 이쪽을 겨 누고 있었다.
천영은 그 캐스팅을 보는 순간 평
범한 마법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 었다.
‘주술인가? 직접 보는 건 처음인 데.’
그들 중에서 검을 등에 착용한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자가 물었다.
“누구냐.”
“별과 호수의 객잔주 말 레프로스 다. ‘어두운 밤의 멜퍼스’님을 만나 뵈러 왔다. 문을 열어라.”
그녀가 돌쇠의 어깨에서 뛰어내리 며 말하자 팔짱을 끼고 폼을 잡고 있던 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 하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이 가진 힘이 상당한 모 양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말 레프로스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천영 역 시 돌쇠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졸 졸 쫓아갔다.
허술했던 방벽과는 반대로 그 안쪽 은 꽤나 질서정연한 모습을 유지하 고 있었다. 목책으로 만든 건물들에 는 흑색의 피부에 흰색의 머리칼을 가진 키가 작은 부족민들이 생활하 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는 절벽의 위쪽까지 도 이어져 있었는데 줄을 타고 자유 자재로 이동하는 것을 보면서 천영
은 순간 ‘원숭이 같네.’라고 생각해 버렸다.
절벽의 위쪽에는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있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그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적으로 둘러져 있어 접근할 수 없어 보였 다.
앞서가는 부족민을 따라 어느 정도 걷자,높게 쌓인 제단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아니, 제단이 아니었다. 그저 높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 은 높은 건물에 살기를 원하는 모양 이었다.
말 레프로스가 그곳을 향해 성큼성
큼 걸어가자 천영도 따라서 올라갔 다. 돌쇠는 따라오지 않고 근처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오호라,이게 누군가.”
천영과 말 레프로스가 왔다는 소식 을 들었는지 건물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와서 반 겼다.
상당히 노쇠한 것처럼 보이는 외모 였지만 그럼에도 건장한 체격과 당 당한 기품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이 었다.
“오랜만이다,멜퍼스.”
“쯧. 풀네임을 부르라고 하지 않았
는가.”
“너무 길다.”
“어이가 없군.”
그제야 천영은 아까 전 ‘어두운 밤 의 멜퍼스’가 칭호 같은 것이 아닌 풀네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멜퍼스는 천영을 보고선 눈을 동그 랗게 떴다.
“허어,이것 참. 진귀한 손님을 데 려왔군 그래.”
“안녕하십니까,‘어두운 밤의 멜퍼 스’ 님. 저는 서천영이라고 합니다.”
“껄껄껄! 그래그래,어린 것이 예 의도 좋군.”
멜퍼스가 풀네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로 써먹으니 바로 이미지가 업 되는 것 을 느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목적이 뭔 가?”
“세례를 받기 위해 왔다.”
“……세례라고? 저 아이에게 말인 가?”
“그렇다.”
“흐음,느껴지는 기운은 범상치 않 으나 저렇게나 어린데 그 ‘시험’을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자네도 일 주일이나 걸린 시험인데 말이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다. 별과 호수 의 숲에 출입하기 위해선 반드시 받 아야만 하니까.”
멜퍼스는 흰색의 턱수염을 쓰다듬 으며 천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신성스럽고 청량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분명 범상치 않 은 정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 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순수한 기운 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살아생전 이 렇게나 순수하고 깨끗한 기운을 느 껴본 적이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시련’을 통과하고 만날 수 있는 신 선 가리카케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가리카케는 벌써 수 백 년 을 살아온 ‘영물’이다. 그렇기에 그 런 순수함을 될 수 있었지만 저 꼬 마처럼 어린 나이에 순수하다는 것 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탁한 기운에 물들지 않은 정말 로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존재라는 것.
“그래,뭐 좋다. 뭐든 들이 박아야 알 수 있겠지. 별과 호수의 숲에 가 고 싶다고 했나,자네?”
천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멜퍼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바위산이다. 내부에 들어가는 순간 시련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끝 까지 너의 지혜와 용기,임기응변과 무력을 모두 시험할 것이니 하나도 빠짐없이 통과해야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멜퍼스의 수락이 떨어지자 천영은 즉시 출발했고,단 둘이 남게 되자 말 레프로스가 운을 떼었다.
“이봐,멜퍼스. 자네는 어떻게 생각 하나?”
“무엇을 말인가?”
“저 아이가 시험을 얼마나 빨리 통 과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그녀의 말에 멜퍼스는 턱수염을 쓰 다듬었다.
“‘얼마나 빨리’ 이전에 통과할 수 있느냐,없느냐가 더 중요해 보이는 군.”
“쯧쯧. 그러니까 자네가 안 된다는 거야. 그런 썩어빠진 안목으로 족장 은 무슨 빨리 아들한테 족장 물려주 는 게 어떤가?”
“예끼,우리 부족에서 족장을 물려 주는 것은 즉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 서 그러는가!”
“죽으라고.”
말 레프로스의 농담을 들으며 멜퍼 스는 고민에 잠겼다. 천영이 과연 시련을 얼마나 빨리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생각에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 는군.”
“그럼 내기하지 않겠는가? 자네는 불합격 나는 합격으로.”
“그거 좋지.”
아직 멜퍼스는 천영이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른다. 말 레프로스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내 기를 걸었다. 멜퍼스는 당연히 흔쾌 히 수락했고 그들은 적지 않은 금전
을 주머니에서 꺼내 올려놓았다.
“이거 원,공짜로 돈 벌어 먹겠구 만.”
멜퍼스가 껄껄거리며 좋아하는 그 순간 바위산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으나 진동은 한 번,두 번,다섯 번,열 번. 몇 번이고 계속 울렸고 마치 지진처럼 땅이 요동쳤다. 시련을 통과하는 와 중에 저런 진동이 울린 적은 없었기 에 멜퍼스는 굉장히 당황했다.
“이게 무슨……
쿵,과아아아아!!
“엄매나.”
멜퍼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위산 을 살펴보려는 순간 웬 광선 같은 것이 바위를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층층이 쌓여있던 바위는 모 조리 무너져 내렸고 사람이 없는 절 벽 쪽으로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몇 백 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해오 던 바위산이 형편없이 박살나는 것 을 보며 멜퍼스는 눈동자를 동그랗 게 떴다.
“이거 참,이건 나도 예상 밖인걸.”
말 레프로스는 껄껄 웃으며 멜퍼스 가 준비해온 차를 홀짝였다. 어떤
식으로 시련을 통과할지 내심 궁금 하긴 했는데 저렇게 티가 나게 통과 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영은 지금 이 순간 ‘시련’이라는 것을 그저 때려 부수고 있었다. 용 기? 지혜? 임기응변? 무력? 다 모 르겠고 그냥 부수면서 올라가고 있 는 것이다.
“……저게 가능하다고?”
“뭐,시련의 첫 번째 문구는 자네 도 기억하지 않는가?”
‘너의 모든 능력을 이용해, 끝까지 을라 오거라.’
그것이 가리카케가 써놓은 시련의
문구였고 천영은 그 문구대로 행하 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나 굉음이 울리더니 마지막 순간 광선이 한 번 더 바위산 위쪽 수직으로 솟아오르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멜퍼스는 알 수 있었다. 천영 이 그 시련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통 과한 뒤 가리카케와 마주하고 있다 는 사실을.
“……이거 원,어이가 없군.”
멜퍼스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