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60화
15장 이무기가 용에게 물었다
이른 아침 천영은 객잔의 홀에 앉아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다. 여전 히 바닥을 때리는 소나기 소리가 정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천둥 번 개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 점이 그 의 명상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었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했 다. 갈 것인가,말 것인가. 도전하 느냐,마느냐.
천영에게는 자신감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미 호되게 당한 기억 때문인지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 터 가슴이 아려왔다. 속이 뜨거워 지고,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안 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벌써 부터 지려고 하다니. 사나이답지 않았다. 남들이 아는 서천영은 절 대 이렇지 않다. 단 한 번도 천영
은 이것에게서 등을 돌린 적이 없 었다. 패배 따위 생각해본 적도 없 다. 천영은 스스로가 그것에게 졌 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 만 인정해야만 했다. 천영은 처참 하게 패배했고,도망치고 말았다.
천영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손 에 들려있는 와인 병이 부르르 떨 린다. 술기운 없이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그 는 와인 병을 냅다 입에다가 꽂아 넣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직까지 도 약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좋아. 다시 한번,가는 거야.’
그가 눈을 번쩍 뜨고 시선을 점 원에게 돌리자 그 점원은 침을 꿀 꺽 삼켰다. 그녀는 서천영이 객잔 주가 극진히 모시고 있는 WIP급 손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발카 평원 전역에 그 손길을 뻗 치고 있는 말 레프로스의 특별 손 님. 또한 그가 얼마 전 단신으로 천둥대괴조를 처치한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저 어린 외견으로 보건대 절대로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조차도 간단 히 알 수 있는 진실이다.
‘대체 무슨 고민을 하기에……
그런 대단한 존재가 하는 고민이 다. 마치 세상에 큰 위기를 가져올 무언가와 큰 대결을 앞 둔 것 같 은 비장한 표정에 점원은 절로 침 을 꿀꺽 삼켰다. 드르륵 의자를 소 리 나도록 질질 끌며 일어난 천영 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긴장감은 고조되고,식은땀은 뺨을 타고 흐 르며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천영의 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린다. 그것이 점원의 가슴을 진 정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저 대단한 마법사를 불안 하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그리도
그를 두렵게 만들었는가.
침을 꿀꺽 삼킨다. 천영의 입이 살짝 떼어졌다. 그는 천천히 주머 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점원은 그것에 집중했다. 대체 무엇을 꺼 내려는 것이냐. 어디 와보거라. 나 는 두렵지 않다. 천영이 손을 내밀 자 점원은 덜덜 떠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그것을 받았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두근!
점원은 그것을 받는 순간 알아버 렸다. 이 무게,이 두께,이 감 촉…… 그리고 이 개수.
틀림없었다. 천영이 점원에게 건 네준 이것은…….
“……주문은 ‘받아라! 핏빛 지옥 불 스파게티 3연타!’로 해주세요.”
1골드 8실버 20쿠퍼. 스파게티의 값이었다.
굳이 사족을 덧붙일 필요 없이 이야기 하자면 천영은 또다시 패 배하고 말았다. 그는 정말 서럽게 도 울었다. 어찌나 눈물폭풍을 홀
려대는지 이제 막 깨어난 사냥꾼 10명 정도가 당황하며 달려들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부지런히 애 를 썼을 정도로.
“으흑, 흑……
말 레프로스는 뺨에다가 별무늬 스티커를 붙인 채 실연당한 소녀 처럼 훌쩍거리는 천영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비록 만난 지 얼마 되 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영에게는 나름의 이미지가 있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눈부시게 강 하며 자신감 넘치고 정이 많은 마
하지만 지금 보라. 언제나 당당한 눈빛을 지닌 채 어깨를 꼿꼿이 세 우고 다니는 마법사 서천영은 어 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지금은 매운 음식을 다 먹지 못해 분해하는 꼬 맹이만 남아있을 뿐이다.
“젠장,크홉,다 먹을 수 있었는 데……
그 부분이 분했던 거냐고 순간 지적을 할 뻔했지만 말 레프로스 는 꾹 눌러 참았다. 그녀는 절대로 쓸데없는 말을 내뱉지 않는다. 하 지만 천영을 앞에 두고 있으면 저 도 모르게 성격이 누그러지게 된
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괜히 천영을 근처에 두고 있으면 마음 이 녹아내린다. 알 수 없는 일이 다.
“……오늘 바로 출발한다고 들었 네. 스파게티를 포장해 가겠나?”
-홈,내가 봤을 때 주인의 헛바 닥 수준은 거의 종잇장인데 그냥 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넌 조용히 해 파트라슈.”
천영이 으르렁대며 파트라슈에게 쏘아붙였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 힌 채라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파트라슈는 금색의 찰랑이는 머리
칼을 손으로 휘날리며 기세등등하 게 말했다.
-홋,나도 먹어봤는데 아무것도 아니더만. 나는 저런 것쯤 문제없 어. 주인이 나약한 탓이다.
“애초에 너는 맛을 못 느끼잖
천영과 파트라슈가 티격대격 하 는 것을 지켜보던 말 레프로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떨 땐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위대한 존재 처럼 느껴지다가 어쩔 땐 그저 동 네 꼬마처럼 보이기도 하는 저 서 천영이라는 소년이 너무나도 신기 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어디인가? 돌쇠 를 데려가겠는가?”
“아뇨,굳이 돌쇠를 고생시킬 필 요는 없죠.”
“돌쇠가 아쉬워하겠군.”
“하하……
그 짧은 사이 돌쇠는 천영에게 정이 든 모양이었다. 사냥꾼들 또 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천영과 직 접 마주하고 대화한 일은 별로 없 었지만 자신들이 목숨 걸고 싸우 려고 했던 천둥대괴조를 대뜸 처 리해준 은인이니 마음이 가는 것 은 당연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천
영은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 순 없었다.
“야,우리 다음에 어디로 가야된 다고?”
-밀하레타의 호수. 여기서 북쪽 으로 가면 돼.
파트라슈가 말하길 밀하레타의 호수라는 곳에 다음의 큐브가 있 다는 모양이다. 확실히 정령을 얻 고 보니 목적지가 확실해져서 좋 긴 좋았다. 파트라슈의 말을 들은 말 레프로스는 흠,하고 고민을 하 다 입을 열었다.
“그곳에 가는 이유는?”
“제가 찾는 물건이 있어서요.”
“그렇군. 밀하레타의 호수라…… 거긴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법 사라고 해서 함부로 출입할 수 있 는 곳이 아니다.”
“그런가요?”
밀하레타의 호수가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게도 ‘밀하례 타’라는 사람의 소유지이기 때문이 다.
대부호의 소유지.
그런 특별한 장소는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고 해서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갈 수는 없
“하지만 뭐 내 추천서를 써주도록 하지. 그 자와는 별로 연락하고 싶 지 않지만 우리 객잔의 사냥꾼들 을 위해 힘써준 게 고마워서 주는 거라네.”
“감사합니다.”
말 레프로스는 즉시 만년필을 하 나 꺼내더니 종이를 꺼내 스르록 글을 써내려갔다. 대략 10분 정도 추천서를 써준 말 레프로스가 마 법 각인이 되어있는 편지 봉투를 천영에게 건네주었다.
“부디 건투를 빌도록 하지. 도움
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오게나. 왠지 모르게 자네와는 가깝게 지 내고 싶군.”
천영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 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오는 사람 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나발카 평원을 횡단하는 법은 간 단했다. 본체로 변신해 하늘을 주 파하는 것.
비록 이곳까지 올 때는 비행 몬 스터가 두려워 알케론 시티부터
천천히 걸어왔다지만, 170레벨이 되고 드래곤으로서 한층 더 성장 한 천영은 레벨 단위가 아닌 그 자체로서 뭔가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다른 마법사들처럼 ‘클래스’단위로 마법적인 성취를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 발카 평원의 비행 생명체에게 죽 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잡기 힘든 비행 몬스 터는 상당히 많았지만 모든 생명 체보다 우위에 서있는 드래곤답게 그 비행 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그 어떤 몬스터가 쫓아와도 싸울 필 요 없이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 테
그리고 천영이 이렇게 당당히 드 래곤의 모습을 취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제는 슬슬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들켜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다.
이 세계는 넓다. 강자 또한 많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이라는 사실 을 숨기고 살았지만 슬슬 천영의 레벨이 복구되어 가면서 이전의 강함 아니,그 이상을 되찾은 상태 였다.
천영은 300레벨 시절보다 현재가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다. 스벳상으로도,드래곤의 우월 한 신체 능력상으로도,마법 실력 또한.
‘그렇다고 해서 막 정체를 드러내 진 않을 테지만.’
천영은 슬쩍 눈을 아래로 내렸다. 딱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소나기 가 그친 덕분에 날아가는 내내 천 영은 지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 발카 평원에는 정말 신기한 생명 체가 가득했다. 온몸이 털로 이루 어진 키가 100m쯤 되는 동그란 몬스터라던가, 점액질로 이루어진 몬스터라던가,다리 대신 날개가 달린 거미도 보았고 절벽 위에서
포효하는 목이 기다란 괴수 또한 보았다.
-흐음,이곳이 이렇게 변하다니. 세상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왜. 옛날엔 어땠는데?”
-글쎄…… 적어도 이렇게 아름다 운 모습은 아니었다. 내 기억 속 나발카 평원은 그야말로 지옥도 그 자체였거든.
“그러냐.”
지금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에 천영은 그러냐며 넘어갔다.
-그나저나 주인, ‘영웅’은 언제 찾으러 갈 거야?
파트라슈는 의외로 순순히 의 의견을 굽혔다. 평상시엔 을 놀리다가도 드래곤으로서
영웅이라. 천영은 그 웃기는 단어 가 파트라슈의 입에서 나오자 피 식 웃었다.
“안 찾아. 정 급하면 지들이 찾아 오겠지. 내가 영웅 할 거야.”
-뭐? 그건 근무 태만이다.
“뭔 개소리야. 내가 하기 싫다는 데.”
-흠……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하긴 그래. 주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신 영 정 자천 결
을 내릴 때가 되면 그저 의견을 존중한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파트라슈와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이 낯설 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비행했을까. 천영은 저 멀리 도넛 형태의 바위 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쪽에 거 대한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그 거 대한 바위산의 주변에는 인공적인 돌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내부에 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영은 그것을 발견하자마 자 밀하레타의 호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째 사진이랑은 많이 다른데?’
세상을 글로 배운 천영은 책 속 에서 보았던 이미지랑 실제 호수 의 이미지가 다르단 것에 조금 놀 랐지만 그 뿐이었다. 10년이면 강 산이 변한다는데,호수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천영은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멸 어진 장소에 착지한 다음 휴먼 폼 을 사용했다. 다시 소년의 모습으 로 돌아오자마자 천영은 추천서를 꺼내들고 천천히 밀하례타의 호수 주변에 쳐져있는 돌벽에 접근했다. 돌벽의 바깥쪽에 있는 경비실에는 무기조차 들지 않은 경비원이 꾸
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기요?”
“음,응?”
졸고 있던 경비원은 천영이 유리 창을 두드리자 그제야 깨어나며 침을 닦았다.
“크홈흠,커홈. 누구쇼?”
뒤늦게 천영을 발견한 경비원이 헛기침을 해대며 묻자 돌벽을 가 리키며 말했다.
“안에 좀 들어가고 싶은데요.”
“그건 안 된다. 이곳은 허락 받은 자만이 출입이 가능하다.”
예상대로였다. 경비원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개인 사유지라 이거지.’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 도 허락받지 않으면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곳. 천영은 추천서를 내밀었다.
“여기요. 추천서 받아왔어요.”
“추천서?”
천영에게서 추천서를 받아든 경 비원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것 을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어깨를 으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밀하레타 님께 보여드 려야겠군.”
“예? 본인이 여기 계십니까?”
이곳은 밀하레타라는 대부호의 사유지이다. 하지만 사유지일 뿐 본인이 이곳에 머문 적은 거의 없 다고 하기에 밀하레타와 만날 것 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렇지 뭐 얼마 전부터 이곳에 눌러앉아 계시거든.”
그렇게 말하며 경비원은 문을 열 고 돌벽 내부로 들어갔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경비원이 아까 전 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한 채로
다시 등장했다. 왠지 모르게,자세 와 말투가 공손해졌다.
“밀하례타 님께서 허락하셨습니 다. 들어가시죠.”
게다가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뻔히 보이는 그 태세전환에 천영 은 그저 피식 웃었다. 이런 꼬맹이 모습으로 변한 뒤 너무 흔하게 겪 은 일이라 이제는 웃기지도 않았 다.
경비원의 안내를 받아 돌벽의 안 으로 들어가자 그 호수라는 것이 쉽게 시야에 들어왔다. 구멍이 송 송 뚫린 거대한 도넛 형태의 바위 산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수.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색을 띄고 있는 호수 를 보며 천영은 의문점을 떠올렸 다.
‘호수가 저렇게 높았나?’
사진에 비해 호수의 수면이 훨씬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경비원이 기다란 다리로 훌쩍훌쩍 앞서가는 바람에 천영은 짧은 다리로 허둥 지둥 쫓아가느라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이런 장소에 어울리 지 않게도 3층짜리 주택 같은 장 소였다. 이곳에는 꽤나 많은 사람 들이 작업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
고 있었는데 그들의 거주지가 작 고 낮은 집인 것에 비해 이 주택 만 유독 화려한 것을 보면 별장 용도로 지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돈 많은 것들은 하여튼.’
주택 안으로 들어간 다음 계단을 타고 3층까지 올라가자 돌로 이루 어진 문이 나타났다. 그곳에 다가 가 경비원이 똑똑 노크를 하자 안 쪽에서 중년 남자의 음성이 울렸 다.
“들어오시게.”
천영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산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착각했다. 산이 아니라 뱃살이었 다. 그는 쇼파에 몸을 반쯤 뉘여 놓은 채 땀을 살짝 홀리며 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 참 레프로스 님이 직접 소 개해준 마법사라니 난데없이 반가 운 손님이 와서 기쁘구려. 나는 ‘밀하례타 알 카이원’라고 하오.”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서천영 입니다.”
어쩐지 정도 이상으로 밀하례타 는 진심으로 천영을 반겼다. 마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밀하레타가 악수를 건네자 천영은 그것을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사소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챘다.
밀하례타는 지금 천영의 존재 때 문에 마음속에서 뭔가가 심히 흔 들리는 모양이었다.
“허허,이곳에 방문하신 이유에 대해 여줘 봐도 되겠습니까?”
천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말했 다.
“밀하례타의 호수에서 찾고 싶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 즉시 밀하례타가 정말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눈썹을 작게 들 썩였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영은 밀하레타 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천영은 밀하레타가 뭔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 한 이후부터 ‘혹시 이에 대해 아는 부분이 있습니까?’등의 예의상의 말은 아예 삼갔다. 지금부터는 밀 하레타 혼자만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뭔가 알고는 있지만 숨기고 싶은 이유도 같이 있겠지. 하지만 나한 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뭔가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단 거고.’
호수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천영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 다. 단순히 비가 많이 와서 수위가 을라갔다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비록 사진으로밖 에 보지 못했다지만 그런 점을 감 안하더라도 호수의 상태는 뭔가 불안정했다.
그렇게 밀하레타와 천영은 한참 이나 대화의 맥이 끊어진 상태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결국 먼저 입 을 연 것은 결국 밀하례타였다.
“실례지만 이 자리에 한 명을 더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흔쾌히 수락하자 밀하레타는 자 리에서 일어나 바깥쪽으로 나가더 니 누군가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그 뒤로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외 안경을 쓴 30대 초반의 남자가 접 대실에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메이지 서천 영. 저는 회색 바위 마탑 소속의 마법사 ‘체일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천영은 체일룬과 악수를 나눴다. 밀하례타는 두툼한 뱃살을 출렁거 리며 말했다.
“이분께서는 호수의 이변을 감지 하자마자 이곳에 자원하여 무보수 로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무보수요?”
그 점에 대해서는 꽤나 놀랐다. 밀하레타가 직접 무보수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그 스스 로도 그 점이 썩 마음에 걸린다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체일룬은 정말 본인이 원해서 무보수로 일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호수의 이변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죠?”
체일룬은 외안경을 슬쩍 올리며
말했다.
“메이지 서천영께서 찾는 물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그것은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 잠 들어 있을 겁니다.”
“……그렇다는 뜻은?”
천영이 되묻자 밀하례타가 대답 했다.
“메이지 체일룬이 오기 전 저희는 호수의 밑바닥에서 그것을 한 번 발견했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고른 다.
“온갖 마법 언어가 적혀 있는 정
체불명의 ‘큐브’같은 물건을…… 말 입니다.”
큐브,그 얘기를 듣는 순간 천영 은 표정을 굳혔다. 밀하레타는 덧 붙여서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물건을 잡으려는 순간,‘그것’이 나 타났습니다.”
검은색의 비늘,기다란 몸체,소 름끼치는 붉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거대한 뱀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