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62화
설탕 두 스푼이 들어간 따뜻한 커피한잔 이무기 또한 그것에 마음의 안정을 얻는 듯하였다.
밀하레타는 아예 눈알이 빠질 것 처럼 온몸을 크게 떨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호수 깊은 곳에 잠들 어 있던 정체불명의 괴물,이무기 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자 좀 처럼 진정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 다. 다만 반대로 체일룬은 아무렇
지도 않은 무덤덤한 모습을 보여 줘서 조금 놀랐다.
“내가 오해를 하게 만들었구나.”
그녀의 이름은 ‘네청’이라고 한다. 용이 되기 위해 천 년 전부터 수 련해온 뱀이자 현재는 신선급 영 물인 이무기 중 하나. 이 세상에 정말 몇 안 되는 이무기라고 스스 로를 소개한 것으로 봐서 또 다른 이무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단지 ‘승천’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숭천…… 말입니까?”
“그래,승천이다. 이곳에 ‘드래곤
의 유물’로 추정되는 물건을 운 좋 게 발견하여 그것을 이용해 승천 이라는 것을 해볼 계획이었다. 하 도 용이 될 수 없어 답답한 마음 에 저지른 짓이기도 하지.”
천영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 세상에는 용,즉 ‘드래곤’이라는 생명체가 천 년 전까지만 해도 존 재했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드래곤이 알을 낳아서 후손을 번 식하는가? 모른다. 인간의 형태로 아이를 낳는가? 그것도 모른다. 그 렇다면 자연적으로 드래곤이라는
생명체가 태어나는가? 그것도 알 수 없다.
다만 드래곤이라는 존재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시련’같 은 것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대마 법사 에니안이 말했었다. 즉 드래 곤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던가 아니면 또 다른 종족에서 진화를 하게 된 종족이라는 뜻이다.
‘드래곤은 어쩌면…… 시련을 통 과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격 같 은 것일 수도 있단 건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천영은 고 작 3년 정도 퀘스트를 굴렸을 뿐
인데도 탈태에 성공했고,네청은 천 년이나 수행을 했는데도 용이 되지 못했다니.
-드래곤이란 그런 존재야. 본인 이 노력한다고 누구나 용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어디 드래곤이겠어? 선택 받은 거야,드래곤이라는 존 재는.
“……누구에게?”
-스스로에게.
천영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부 드럽고 촉촉했던 입술이 건조하게 갈라져 있었다. 네청 역시 씁쓸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벌이는 짓이 무리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네 생각에는 어떻느냐?”
“……전혀 소용없는 짓입니다.”
“역시 그렇구나……
애초에 승천이라는 것은 ‘용이 되 기 위해’하는 행위가 아닌 ‘용이 되는 것에 성공한’ 존재가 자연스 레 힘을 얻고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일종의 승리 퍼포먼스 같은 것 이란 소리이다. 그런 승리의 퍼포 먼스를 이기지 않고 흉내만 낸다 고 해서 본인이 승리하게 되는 것 은 아니다. 천 년이라는 세월 앞에
서 정신력이 무너져 내린 네청 또 한 그 사실은 알고 있을 터였다.
네청은 약간 힘이 없는 얼굴을 하였다. 긴 흑색의 생머리가 힘없 이 늘어지고 붉은색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멸렸다. 자신이 용이 되 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한 탄스러운 모양이었다.
“네가 참 부럽구나……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무 나도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기에 천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용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지만 그걸 어떻게 알려주란
말이야.’
천영은 입을 꾹 다물고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밀하례타는 이 대화의 주제조차 파악하지 못해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었는지 화장실을 가 겠다며 도망쳐버렸다.
체일룬은 자신의 짐덩이를 풀더 니 그곳에서 책을 몇권 꺼내서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이무기라…… 정말 보기 힘든 영 물 중 한 분을 뵙는군요. 영광입니 다.”
“고맙네.”
네청에게 향하는 체일룬의 태도
는 조금 순순해졌다. 호수를 범람 시키는 마법을 전부 거둬들인 탓 이 제일 컸을 것이다.
천영은 손에 들려있는 큐브를 가 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쉽게 얻어 버리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한 골 칫덩어리인 여자가 등장해버렸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짧 게는 1년에서 길게는 몇 천 년을 수련해야만 한다더군요. 과연 용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 다.”
체일룬의 그 말에 네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거의 천 년이나 수행을 했지만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더 구나.”
그런 네청과 천영을 조용히 번갈 아가며 보던 체일룬은 묵묵히 턱 을 쓰다듬었다.
“이무기라면 혹시 또 다른 알고 있는 용은 없습니까? 뭐 사촌이라 던가. 친척이라던가.”
“……그런 가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거 아쉽군요. 드래곤들이 죄다 천 년 전에 모습을 감춰버려서 네 청 님이라면 혹시 뭔가 알고 계시
지 않을까 싶었는데.”
드래곤들이 죄다 차원계를 떠돌 며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 체 일룬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다른 드래곤을 알고 있다면 같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있 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뭐 깨달음을 얻은 존재니까. 사 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 겨져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깨달 음이란 것을 얻은 적이 없어서 모 르겠군요.”
체일룬의 말을 들은 네청은 천영
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에 천영은 등에 식은땀을 뻘뻘 홀리 기 시작했지만 체일룬은 여전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보다 먼저 앞서간 존재가 있 다면…… 그런 자를 보고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좋은 말이군. 충고 고맙네.”
네청은 여전히 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네청은 자나 깨나 천영 을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천 영이 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 따라서 왼손으로 귀를 후빈다. 재 채기를 하면 본인 또한 재채기를 한다. 걷는 보폭이 좁은 것조차 따 라 해서 엉거주춤한 걸음걸이가 되었으며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고 껄렁껄렁 걷는 포즈까지 완 벽하게 재현해냈다. 하도 따라하기 에 왓김에 천영은 한국인들만이 할 수 있다는 왼손 젓가락질을 구 사했는데 네청은 그마저도 5분 정 도 연습하더니 완벽하게 마스터해 버렸다.
천영은 가끔 이곳의 작업부들이 족구를 하는 것에 참여하고는 했 다. 작고 조그만 신체로 이리저리 날뛰면서 공을 걷어차려는 것이 귀엽다며 아저씨들이 자주 껴주고 는 했다. 네청은 그러한 것마저도 따라하겠다고 족구에 기어이 참여 하고 말았다.
퉁,퍼엉!
그 와중에 힘 조절에 실패하여 공을 터트리길 세 번. 천영은 무시
무시한 얼굴로 네청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스스로 힘 조절을 못 하면 용이 될 수 없어요.”
그러자 네청은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몸 을 떨었다.
“그렇군…… 자신의 힘을 조절하 라…… 나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노력해보도록 하겠다.”
마치 엄청난 가르침을 받은 표정 으로 황홀한 표정을 짓는 네청을 보며 천영은 자신의 머리칼을 마 구마구 쥐어뜯었다.
“크아아악!”
천영은 즉시 체일룬의 멱살을 잡 고 짤랑짤랑 혼들었다. 그러자 그 것을 빤히 지켜보던 네청도 따라 서 체일룬의 등짝을 잡고 짤랑짤 랑 흔들었다. 졸지에 앞뒤로 먹살 이 잡힌 체일룬은 무덤덤한 표정 으로 말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렇다. 체일룬은 잘못이 없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천영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천영이 특별한 어떤 영물이라는 사실까지는 대충 예측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설마 드래곤이겠어?
하는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인간들의 단순한 추측이 고맙다고 생각했겠지만 차 라리 지금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 채고 이전의 그 발언을 철회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호수가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이틀쯤 지나자 밀하례타가 그렇 게 말했다. 천영은 호숫가에 쪼그
려 앉아 물속에 손을 담갔다. 확실 히 큐브의 영향이 없어지자마자 바로 수면이 내려갔다. 대신 밀하 레타의 밥줄 또한 사라지고 말았 다.
“마정석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그게 이런 폭탄 같은 것이었다니. 크홈 괜찮습니 다.”
여전히 뭔가 아쉽다는 얼굴이었 지만 그 마정석을 만들어내던 물 건의 소유자가 원래 네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욕심을 완전히 거두어들였다.
체일룬은 호수가 안정화 되자마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담아서 물 었는데,설마 저렇게 대답할 줄이 야.
-와우,용이랑 이무기의 조합이 라니. 이것 참 전례 없는 파티 멤 버구만.
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저 리 날뛰는 파트라슈조차 아직 제 대로 케어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부담이 되는 파티 멤버 까지 생기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네청이 천영보다 훨씬 강했다. 본체로 변신해서 싸 워도 분명 제대로 된 합을 나누기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담아서 물 었는데,설마 저렇게 대답할 줄이 야.
-와우,용이랑 이무기의 조합이 라니. 이것 참 전례 없는 파티 멤 버구만.
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저 리 날뛰는 파트라슈조차 아직 제 대로 케어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부담이 되는 파티 멤버 까지 생기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네청이 천영보다 훨씬 강했다. 본체로 변신해서 싸 워도 분명 제대로 된 합을 나누기
도 전에 싸움이 결판날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천영은 이제 드래곤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상태이 고 네청은 이무기로서 천 년이나 살아왔다. 배울 점이라면 오히려 천영이 네청에게 배워야할 판이다.
그런데도 네청은 꿋꿋하게 제자 가 되겠다고 하니 부담스러워서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야,어디냐.”
-음. 나는 대충 가야할 길을 느 낄 뿐이야. 지금은 자세히 안 느껴 지는 걸. 아무래도 이곳에서 서쪽
도 전에 싸움이 결판날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천영은 이제 드래곤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상태이 고 네청은 이무기로서 천 년이나 살아왔다. 배울 점이라면 오히려 천영이 네청에게 배워야할 판이다.
그런데도 네청은 꿋꿋하게 제자 가 되겠다고 하니 부담스러워서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야,어디냐.”
-음. 나는 대충 가야할 길을 느 낄 뿐이야. 지금은 자세히 안 느껴 지는 걸. 아무래도 이곳에서 서쪽
에 있는 어떤 도시에 가야만 하는 것 같아.
“서쪽에 있는 도시?”
-응,음…… 도시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하여튼 그곳 에 가면 도움이 조금 될 거야.
“뭐야 그게. 갑자기 도움 안 되 네. 쓸모없는 놈,밥값 해라.”
-밥도 안 주면서 밥값 하라니 너 무하다,주인.
천영이 파트라슈에게 잔소리를 하자 네청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곳이라면 내가 잘 알고 있다.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그
곳에서 살고 있었거든.”
“……네청 님이 친하게 지내던 사 람이 라면?”
“그 자도 영물이다.”
“또 영물인 건가……
왠지 모르게 요근래에 들어서 영물을 자주 만나는 것만 같은 느 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