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72화 (71/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72화

백하란의 하루는 여전히 스텔라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늘 같은 시 간에 같은 자리에 착석해서 ‘저주’ 와 관련 된 서적을 읽는다. 그것은 똑같다. 그는 공부를 하면 된다. 원정대의 출발도 벌써 내일 모레 이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백하란 은 자리를 비우고 눈꽃 마녀의 사 막을 갔다 와야만 한다. 그 전에 최대한 이곳에서 많은 책을 읽어

두는 편이 그에게 좋을 것이다.

그럴 지언데 백하란은 전혀 집중 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 상태였지만 글자가 머 릿속에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단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 다.

그저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 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흑색의 머리칼을 가진 10대 초중반의 꼬 마 마법사.

본 적도 없다,이름도 모른다. 그 저 갑작스레 나타난 그 아이는 백

하란의 저주를 풀어주더니 흘연히 사라졌다. 그 뒤로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그 정체불명의 아이는 그 뒤로 백하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가슴을 초조 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누나의 저주도……

답지 않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 며 한 시간,두 시간. 그렇게 기다 리지만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들만 부지런히 돌아다닐 뿐 도서관에는 그가 원하는 인물은 결국 저녁까 지 등장하지 않았다.

7시.

도서관의 문이 닫히자 백하란은 힘없이 거리를 걸었다. 현재 스텔 라아우렘에는 원정을 나가기 위한 인원들이 몰려 온데다가 그들을 보조하기 위해 각 길드와 마탑 등 에서 지원을 나와 있는 상태였기 에,저녁이지만 거리는 꽤나 시끌 벅적 했다.

백하란은 그런 사람들의 틈을 지 나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 음을 빨리 했다. 슬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다 갑자기.

발견했다. 어두운 밤하늘 달빛 아 래에서 흑단 같은 머리칼을 휘날 리며 책을 읽고 있는 그 아이를. 높디높은 건물의 옥상에 걸터앉아 서 다리를 꼰 채로 책을 읽고 있 었다.

백하란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즉 시 달려가려고 했으나 갑작스레 10명이 넘는 인파가 우르르 몰려 오는 바람에 엉거주춤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백하란은 황급히 사람들을 헤치 고 나가 건물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지만,이내 포기했 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검은색의 한 복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책을 읽고 있던 그 아이는,잠깐 시선을 땐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백하란의 현재 레벨은 350이다. 그리픈으로 넘어온 넥스터들 중에 서도 최상위권을 달린다고 볼 수 있겠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처음 그리픈 으로 넘어오게 된 백하란은 몬스 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떨어지고 말았고 살아남기 위해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한 결과 다른 넥 스터들과는 다른 우월한 속도로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백하란이 6클래스를 터득하게 된 것은 레벨 330 때이다. 즉 레벨과 는 무관하게 성취,깨달음,지식, 거기에 충분한 마나 써클까지 받 쳐준다면 더욱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백하란은 그러한 사실을 넥스터

들 중에서도 조금 일찍 깨달은 편 이었고 덕분에 넥스트에서 무명으 로 활동했던 그의 이름은 순식간 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가 갑작스레 ‘눈꽃 마녀의 사 막’으로 향하는 원정대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 다.

총 인원 천오백 명,넥스터만 팔 백 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 원정대. 본래라면 그곳에서 말단 원정 대 원으로 들어갔어야 정상이건만 백 하란은 6클래스를 이룩한 마법사 라는 이유로 원하는 물건을 무조 건적으로 받겠다는 조건을 걸고

원정대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백하란은 이른 아침부터 원정대 장인 루몬의 호출을 받아 적당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루몬은 백하란에게 이번에 레이 드할 보스 몬스터 ‘유령 선장 가오 레쉬’에 대해 설명해주거나 분위기 나 기본적인 공략법 등등을 전해 주고 있었다.

“이번 원정에 6클래스의 마법사 가 세 명이나 참가하는데 그 중 넥스트 출신의 마법사는 백하란 님 뿐이거든요. 하핫,기 좀 팍팍 살려주시죠!”

원정대장 루몬은 덩치가 크고 근 육질을 가진데다가 성격 또한 상 당히 호쾌하여 백하란과는 정반대 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니 다. 대낮부터 루몬이 술병을 까고 있자 백하란은 그것에 호응하여 조금씩 반주를 해줄 정도로 루몬 에게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백하란 님. 그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여기 스텔라아우렘 에 그 소문의 천재 마법사 서천영 이 와있다던데 말이죠.”

“서천영?”

서천영이라면 당연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백하란이 넥스트에 서 무명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던 이름이지 않는가. 남들은 ‘서천영’이라는 그 아이디 를 모를지라도 백하란 만큼은 똑 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눈부 신 마법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으 니까.

“그 서천영이 와있단 말입니까?”

“네,듣자하니 상당히 어리다고 하더군요. 대략 열둘에서 열셋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애라고.”

백하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루 몬이 웃음을 터뜨렸다.

“반응을 보니,넥스트 시절의 서 천영을 알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하긴,일부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서천영이라는 존재가 꽤나 유명했 다나 뭐라나…… 저는 처음 들어보 지만 말이죠.”

“그 이야기는 넥스트의 서천영과 금색 별 마탑의 그 천재 서천영이 동일 인물이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전번의 ‘루블랑의 신전’ 공략에 성공한 넥 스터들한테 물어보니 동일 인물이

맞답니다.”

“하지만 서천영은 성인 남자에다 가 나이도 20대 중반이 넘는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루몬은 자줏빛 술 을 조금 삼키며 말했다.

“그게 말이죠,소문이 엄청 많거 든요. 서천영은 원래부터 어린 여 자애였는데 갑옷으로 정체를 숨기 고 다닌 것이라는 소문도 있고. 무 슨 저주를 받아서 저런 모습이 됐 다는 말도 있고. 탈태를 했다는 이 야기도 있고. 하여튼 자세한 이야 기는 모릅니다. 워낙 모습을 드러 내지 않고 신출귀몰한 사람이다

보니까요.”

“서천영……

열둘에서 열셋쯤 되어 보이는 어 린 마법사라. 그 말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인물.

‘설마,내 저주를 풀어준 그 꼬마 가 서천영……?’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대단한 마법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 문이 갑작스레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외모에 비해 어린 나이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 었다. 지금 백하란 또한 외모는 십 대 중후반이지만 나이는 이십대

중반이지 않은가?

“아이구,시간이 벌써 이러네. 저 는 오전에 마탑 관계자 분들과 만 나봐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루몬이 서둘러 일어나서 나간다. 백하란 역시 오전에는 딱히 할 일 이 없기에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문득 이제 와서 도서 관에 가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하 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하란은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골목길의 계 단을 타고, 건물을 밟고 올라선다. 건물의 옥상과 옥상 사이를 지나 쳐 조금씩,조금씩 더 오르다 보니 마침내 금색 별 마탑의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빌딩의 옥상이 나 타난다.

그곳에 백하란이 찾던 사람이 있 었다.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서천 영. 검은색 머리카락을 뒤로 올려 묶고 새하얀 다리를 꼰 채로 공책 에다가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공 책의 아래쪽에는 아주 오래 된 고 대의 서적이 있었다.

백하란은 홀린 듯이 서천영에게 다가갔다. 그는 백하란이 바로 지 척에 다가오자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속성을 하나 의 마법에 섞는 걸 어떻게 생각

해?”

정말 뜬금없고,의중을 알 수도 없고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지만 백하란은 대답 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자 서천영은 펜으로 공책에 다가 무언가를 직직 그었다. 백하

란은 그것을 슬쩍 엿보았다.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아파오는 아주 근사하고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마법사 지. 넌 너무 의욕이 없어.”

서천영은 그렇게 말하며 기지개 를 폈다. 백하란은 그제야 공책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의 완벽한 형 태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도대체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그림이었다. 하지

만 서천영은 그 마법에 대해 자부 심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기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백하란은 모르겠지만 서천영은 벌써 이 독 특한 마법만 반 년 가까이 연구하 고 있었다.

“짜샤,뭘 그렇게 서 있어. 다리 안 아프냐?”

백하란은 그 말을 듣고서야 서천 영에게 몇 발자국 더 접근했다.

‘……정말 작군.’

언제나 단단하고 든든한 갑옷을 입은 채로 제일 선두에 서서 화려 한 마법으로 전투를 장식하던 그

서천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로 이 서천영은 작았다. 머리도 작 고,손도 작고,키도 작고. 너무 약해보였다. 백하란 역시 어리다지 만,키가 170은 넘을 정도로 꽤 큰 편이었는데 서천영은 그런 백 하란의 허리까지밖에 안 올 것 같 았다.

백하란은 서천영의 옆에 털썩 앉 으며 물었다.

“서천영,‘레이디 케이지의 저주’ 를 기억하십니까?”

그러자 서천영이 몸을 움찔 떨었 다.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맺힌 다.

“그,그걸 어떻게…… 너 누구야?”

“……아닙니다.”

레이디 케이지의 저주. 사람들에 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 은 NPC들이 하마터면 죽을 뻔한 위험천만한 퀘스트였다.

백하란은 당시 어리바리한 초보 마법사였고,그의 실수로 인해 퀘 스트를 망칠 뻔 했으나 한 마법사 에 의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 되었다. 갑옷을 입고 언제나 당당 하던 마법사 서천영에 의해.

하지만 서천영은 어째선지 그 퀘 스트를 끝마치자마자 사람들에게

이 퀘스트에 대해 밝히지 말아달 라고 부탁한 다음 홀연히 사라지 고 말았다. 이 엄청난 위업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 엄청 난 찬사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서천영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 던 것처럼.

당시 그런 서천영의 모습에 큰 영감을 받았던 백하란은 보상 따 위는 전혀 바라지 않고 말없이 등 을 돌려 떠나가던 그 뒷모습을 아 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미,미친. 그때 빼돌린 아이템 돌 려달라는 건 아니겠지?’

당시 땅에 파묻혀 있던 드래곤의

뼈다귀와 일부 마법 아이템을 몰 래 빼돌렸던 서천영은 괜히 발이 저렸으나 다행이도 백하란은 그러 한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서천영의 반응을 보며 곰곰 이 생각하던 백하란은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천영,묻고 싶은 것이 있습

짜악!

백하란이 서천영에게 질문을 하 려는 순간 그는 등짝에 강렬한 충 격을 느꼈다. 자그마한 손바닥으로 가해지는 일격! 서천영은 이를 드

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짜샤,자꾸 서천영이라고 부를 래? 너 몇 살이냐?”

“……스물넷.”

“형이라고 불러. 내가 너보다 4살 은 더 많으니까.”

“..?,,

백하란은, 서천영을 내려다보았 다. 어깨까지 구부린 채로 앉아 있 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천영 은 그보다도 한참이나 작았다.

명백하게 못 믿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백하란을 보며 서천영은 피 식 웃었다. 딱히 설명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다. 저런 부류는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들 납득하게 된다.

“……아니,그보다도. 남자가 맞았 습니까?”

“어엉? 뒤질래? 그럼 내가 여자겠 냐? 어딜 봐서.”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백하 란이 입을 쩍 벌리고 있자 서천영 은 등짝 스매시를 한 번 더 날리 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백하란이 그 냉정하고 쿨하고 기 계적이던 백하란이 양팔로 가드를 하며 몸을 웅크렸다.

“아,아닙니다. 저는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하마터면 내 오른손을 주체하지 못할 뻔했어.”

그러면서도 백하란은 흘깃 서천 영을 흠쳐보았다. 기다란 속눈썹, 자그마한 입술, 선명한 쌍꺼풀 등 등. 어느 면으로 보나 여자처럼 보 였다.

‘……자세히 보면 조금 남자처럼 생기기도 한 것 같고.’

워낙에 햇갈리게 생겼는데 머리 카락까지 장발이니 여자로 오인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왜 찾아왔어?”

“……얼마 전 제 저주를 한 번에 풀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응,그랬지.”

서천영은 공책을 접고 이번엔 굉 장히 오래된 서적을 꺼냈다. 그곳 에는 웬만한 전문가들도 혀를 내 두를 정도로 복잡한 고대 문자가 써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읽는지 이 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제 저주를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만진 것으로 해제하실 정도라 면……

그 말에 서천영은 혀로 입술을 할았다.

‘아닌데…….,

그날 백하란의 앞좌석에 앉은 서 천영은 거의 하루 종일 12시간이 넘도록 그 저주를 해석했다. 그러 고 나서야 간신히 해제할 수 있었 던 것인데 어째서인지 백하란은 서천영이 눈으로 본 것만으로 해 석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왠 지 오해가 계속 쌓이는 것 같았지 만 서천영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제 누나의 저주도 혹시 풀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에 서천영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서천영도 꽤나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백하란이 금색 별 마탑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거절하는가? 아무리 넥스터라도 심지어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서천영 조차 마음을 돌릴 정도로 엄청난 제의 인 것인데 거절할 정도라면 분명 히 뭔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 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저주였군.’

서천영은 고갯짓을 했다. 더 이야 기 해보라는 뜻으로.

“누나는 저보다도 더 지독한 저주 에 걸려 있습니다. ‘방랑자의 외로 움’이라는 이름의 저주로 일주일 동안 일정 거리를 이동하지 않으

면……

그 뒷말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냥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무언가가 찾아오겠지. 팔다리가 녹아내린다 거나 눈이 함몰된다거나 하는 정 도는 애교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저주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아주 끔찍한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백하란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 다.

“방랑자의 외로움에 걸리게 되면, 팔다리의 근육이 봉해집니다. 스스 로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가 없도 록…… 그 상태에서 영원히,영원 히 떠돌아야만 합니다.”

“……지독하구만.”

한숨을 내쉰다. 백하란은 금색 별 마탑을 바라본다.

“금색 별 마탑주 레이븐님께서 도 와주셔서 저주를 연장하여 이곳에 서는 한 달이 넘도록 머물 수 있 게 되었지만 그 뿐입니다. 곧 떠나

야 합니다.”

백하란이 이야기를 마친다. 서천 영은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조용 히 이야기를 듣다가,입을 열었다.

“그 저주,누가 걸었는데?”

“……‘눈꽃 마녀 설린’입니다.”

“설린?”

“눈꽃 마녀의 사막에 머물고 있는 마녀 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막에다 가 ‘눈꽃 마녀’라는 이름을 붙여놓 은 장본인인 마녀는 진작 죽고 사 라진지 오래이다. 그런데 또 다른 눈꽃 마녀라니.

‘제자거나,후손이라거나. 그런 거 겠지.’

백하란의 말을 들어보면 그랬다. 백하란과 누나가 속해 있는 8명의 파티는 우연히 눈꽃 마녀의 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눈꽃 마녀가 오 래 전 죽음을 맞이했단 사실을 알 고 있던 그들은 그곳에 들어가 쓸 만한 물건을 가져오자고 말했고 백하란의 누나는 그것을 극구 반 대했다고 한다. 너무 위험하다면 서.

결과적으로 동료들은 대부분 죽 임을 당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눈 꽃 마녀 설린에 의해. 마지막에 백

하란은 간신히 날개를 펼쳐 누나 와 몇몇 동료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저주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것 참,진부한 스토리구만.”

“……죄송합니다.”

“아니,뭐 죄송할 것까지야. 여긴 군대가 아니야.”

볼을 긁적이던 서천영은 곤란하 단 표정을 지었다. 방랑자의 외로 움이라는 이름의 저주는 아무리 서천영이라고 쉽사리 해제할 수 있는 종류의 저주가 아니었다. 레 이븐 조차 해석하지 못할 정도이

니,말 다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가 문득,든 생각.

‘……잠깐,눈꽃 마녀의 사막에 있 는 또 다른 히든 피스잖아?’

서천영은 용의 큐브를 상기해냈 다. 무작정 눈꽃 마녀의 사막으로 향하는 보스 레이드에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더 용의 큐브가 있을 만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 는가?

‘이거 참,꿩 먹고 알 먹고구만.’

그렇다면 간단했다.

“백하란.”

“저주를 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뭔지 알아?”

“……시전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서천 영이 상큼하고 천진난만한 웃음꽃 을 피웠다.

“지금 죽이고 올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