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92화
수북이 쌓여있는 수 백 장의 서류 들 그리고 그 사이를 방황하듯 헤엄 치며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 마법사 한명.
푸석푸석한 머리칼에 짙게 드리운 다크 써클,제대로 갈아입지 못해 온통 구겨진 복장까지 보면 어디 백 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무 려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이다.
레이븐은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쩍
쩍 하며 쓸데없는 서류들을 걸러냈 다.
“해유르 해수욕장에다가 뭐? 이걸 설치해달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 서. 뭐야 이건 또. 왜 자꾸 우리한 테 경호를 원하는 거야? 바빠 뒤지 겠는데.”
딱히 누군가에게 대답을 바라고 중 얼거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옆에서 묵묵하게 일하고 있는 제이나는 대 답하지 않았다.
완전 푹 퍼진 상태인 레이븐과는 다르게 제이나는 깔끔하고 단정한 복장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흐아암,졸려. 지금이 몇 시지?”
시각은 어느새 오후3시. 점심도 먹 지 못했는데 순식간에 지나가버렸 다. 레이븐은 어깨를 뚜둑 풀며 서 류를 살피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 을 열었다.
“제이나,만툰 씨가 보낸 서류 확 인해봤어?”
“예,지금은 보류해뒀습니다.”
“갈 사람이 그렇게 없나? 또 내가 가야해?”
제이나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레이 본은 혼자 궁시렁 대다가 뭔가 생각 났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 었다.
“그러고 보니 서천영은? 지금 임무 수행도 안 하고 있잖아.”
“떠났습니다. 사흘 전에.”
“뭐어? 어디로?”
“사립 루클렌 마법 학교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거기에 그 물건이 있다고 했던가.”
찜찜 입맛을 다신 레이븐은 하는
수 없이 이 서류들만 정리하고 본인 이 일처리를 빠르게 끝내자고 생각 했다. 벌서 밀린 서류의 양만 해도 상당하다.
이렇게 한창 바쁜 와중에,갑작스 레 노크 소리가 울렸다.
“마탑주 님,잠시 실례해도 되겠습 니까?”
“어,들어와.”
문이 열리며 정갈한 정장에 구두를 신은 셀리시티에나가 들어왔다. 그 녀는 들어온 즉시 용건을 말했다.
“‘큐벅’ 클랜의 클랜장께서 찾아오 셨습니다.”
“응? 그래? 로키진 님은 지금 자 리를 비우셨나?”
“아닙니다. 큐빅 클랜의 클랜장 님 과 같은 용무로 찾아온 ‘피파라오’ 기업의 사장님과 이야기 중입니다.”
“뭐?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는데?”
그에 셀리시티에나가 살짝 힘들다 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메이지 서천영의 마법과 관련해서 긴히 나늘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 다.”
“……서천영? 사흘 전에 떠났는 데.”
“예,그래도 상관 없답니다. 귀환하 기 전에 미리 이야기를 나눠두고 싶 다고 급하게 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급한 사안이야?”
“제 판단으로는…… 그분들은 엄청 급해보였습니다. 남이 채가기 전에 서둘러 먹이를 포식하려는 사냥꾼처 럼.”
레이븐은 턱을 쓰다듬었다. 서천영 이 대체 뭔짓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손님 몇 명 쯤이야 간부들을 시켜서 돌려막으면 된다. 본디 마탑주라는 직책은 그리 쉽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그럼 다른 사람들 보내지 왜 나를 찾아왔어?”
레이븐의 말에 셀리시티에나가 식 은땀을 홀렸다.
“그게…… 다른 간부들 역시 면담 을 진행중입니다만 순번이 밀리고 또 밀려 더 이상 진행이 힘들어서 마탑주 님을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몇 명 정도나 왔는데?”
“제가 올라오기 전에는 스무 명이 었는데 막 도착하기 시작한 사람들 도 있다고 했습니다.”
제이나가 지나가듯 툭 내뱉었다.
“또 어디서 사고쳤나보군.”
레이븐은 이마를 양손으로 부여잡 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바 빠 죽겠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마탑주라는 직책은 쉽게 움 직이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주 요 인사들을 쉽사리 문전박대할 수 있는 직책은 아니다.
결국 드럽게 바빠 죽겠는 와중에 단 한 사람이 벌인 일 때문에 그들 을 모두 면담해야만 한다는 의미였 다.
레이븐은 이를 으득 갈았다.
“서천영,대체 어디서 뭔 짓을 하 고 다니는 거야!”
후비적.
“누가 날 욕하는 것 같은데.”
천영이 머리를 흔들자,뒤에서 그 의 머리카락을 손보고 있던 메이크 업 아티스트 두 명이 소리를 질렀 다.
“머리 움직이지 마세요!”
“가만히 좀 계세요!”
현재 천영은 커다란 거울이 달린 꽤나 큰 규모의 방에 단 혼자 앉아 서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관 리를 받고 있었다. 그녀들이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학교 측에서 서천영 이 벌인 일 때문에 학교에 수많은 인사들이 찾아오게 되자 이사장이 기뻐 날뛰며 그를 배려해주기 시작 한 것이다. 그래,배려다. 하지만 천 영에게는 전혀 배려가 아니었다.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귀찮아 죽겠는데.’
천영은 자신의 관리를 그닥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런 몸이 되 기 이전에는 운동도 조금 하는 편이 었고 적당히 머리카락은 짧게 면도 는 매일매일.
화장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로션 하나만. 딱 이 정도였기 때문에 현 재 이런 몸을 갖게 되었음에도 똑같 은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천 영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이렇게 예쁜 머리카락을 그냥 막 산발로 휘날리다니……
“머리는 뭘로 감으세요? 린스는 쓰 세요?”
“……비누로 감는데? 린스를 왜 써 요?”
“꺄아악! 안 돼요! 세수는 뭘로 하 세요?”
“그것도 비누로. 오이 비누 최고.”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도 천영은 자 신의 몸 관리를 하지 않는단 이유로 타인에게 잔뜩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녀들은 억센 손길과 말투로 천영 의 기를 팍팍 죽인 다음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머리카락을 빗거나 화장품을 살짝 터치해주거나 하는 식으로 그의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
게 바꿔주고 있었다.
“남자가 무슨 화장이야……
“어머 요샌 남자도 화장 한다구 요?”
그 말에 천영은 거울을 통해 뒤에 서 대기하고 있던 맥골라스에게 물 었다.
“메이지 맥골라스도 화장을 합니 까?”
“예,하지만 메이지 천영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질문을 한 내가 바보지. 그는 한숨
을 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맥골라 스 머치팽과 체일룬은 어째서인지 어제의 강의가 끝난 뒤 엄청나게 반 짝거리는 눈으로 마치 신을 영접한 것만 같은 느낌으로 천영을 바라보 곤 했다.
“그나저나 오늘 수업은 뭐 하 지……
머리카락을 예쁘게 빗은 그녀들이 그것을 깔끔하게 닿아 을리려다가 천영이 제지하는 바람에 멈췄다. 그 는 여장을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설명했던 것을 수업하면 되지 않습니까?”
“응? 아,그거. 효율적인 마법 사 용?”
“……그 엄청난 마법을 그런 문장 으로 표현하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 각합니다.”
체일룬이 그렇게 말하자 천영은 입 술을 살짝 깨물었다.
“으음,그럼 ‘언령言靈’은 어때?”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말에 힘이 깃들다,라는 의미야.”
“좋은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천영은 씩 웃었다.
“좋았어,이름도 정했겠다. 오늘 수 업은 이걸로 진행해야지.”
그 즉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화 들짝 놀라며 천영의 볼을 꼬집었다.
“그렇게 웃는 거 금지.”
“끅,뭐,뭐예요.”
“그 눈웃음에 지금까지 몇 명이나 홀렸을지 생각은 해본 적 있어요?”
“……네?”
“하여튼 금지예요.”
“네……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천영 은 하여튼 알겠다며 대답했다.
“남자치고는 허리가 엄청 잘록하네
요.”
그 질문에는 파트라슈가 천영에게 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그야 뭐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 모두 섞여있어서 그렇겠지.
천영에게 예복도 하나 맞춰주려는 것인지 그녀는 적당히 사이즈를 눈 대중으로 보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몸매 관리를 상당히 잘 하시는 것 같은데 평소에 운동은 어떻게 하세 요? 엄청 힘들 것 같은데.”
“……숨 쉬기 운동?”
그러자 그녀들이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완전 없애버리고 싶다.”
다음 수업은 야외에서 진행될 것이 라고 이사장에게 전달하자 어째서인 지 곤란한 표정으로 땀을 뻘뻘 홀리 고 있던 그는 천영에게 연신 고맙다 며 인사를 건넸다.
그게 왜 고마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천영은 자신이 이야기한
장소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 갔다.
그곳은 루클랜 마법 학교의 뒤편에 있는 널따란 공터였는데 호수도 껴 있고 나무도 많이 자라있는 데다가 마법 생체 공학으로 인해 특이한 모 습을 취하게 된 식물들도 상당히 많 았다.
천영은 호수의 나무다리를 건너 약 속한 장소로 도착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이번에도 숨기지 못했다.
바글바글했다. 어제도 수천 명이나 강의를 들으러 찾아왔기에 조금 놀 랐는데 이번에는 정말 만 명 가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퍼져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천영을 쳐다보 고 있었다.
“우와,나 그냥 도망칠래.”
“아,안 됩니다!”
이번에는 맥골라스와 체일룬 뿐만 이 아니라 교수 2명 역시 천영을 보조하기 위해 쫓아왔다. 이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을 예상한 이사장이 붙 여준 것이다.
“이거 무슨 연예인이 위문 공연하 러 온 것도 아니고……
사실 반쯤은 맞을지도 몰랐다.
어째서 이사장이 천영에게 유명 메 이크업 아티스트를 둘이나 붙였겠는 가. 최대한 천영을 예쁘고 멋있게 꾸민 다음 수많은 학생(관중)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결국 반쯤 포기한 채 천영은 그들 사이의 정중앙으로 나가 소리 증폭 마법을 살짝 사용해 가볍게 인사했 다. 구석구석 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푸하하,내 평생 이런 드래곤은 처음 본다. 크하하하핫!
“닥쳐 좀.”
왠지 죽을 것 같은 눈을 한 채로
천영은 발을 톡톡 굴렀다. 그러자 위이이잉! 하며 마나가 공명하는 소 리가 울려 퍼지더니 지름 l〇m의 거 대한 마법진이 삽시간에 완성되었 다.
이 정도 크기의 마법진이라면 수준 급 마법사가 여럿 달려 들어야할 터 인데 고작 발을 구르는 행위로 완성 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 다.
“들어가기에 앞서.”
천영은 누군가를 찾았다.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그는 이윽고 찾던 얼 굴을 발견했는지 환하게 미소 지었 다.
“메이지 룬,숙제는 해오셨습니 까?”
그러자 수 천 개의 눈동자가 룬 필리오를 향한다. 룬 필리오는 최대 한 구석에 숨어 있었지만 드래곤의 눈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는 이를 뿌득 갈더니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런 숙제를 안 해오시다니.”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제가 다 큰 마법사를 처벌을 할 것도 아니고 라 는 말을 끝마치자 왠지 사람들이 숨 죽여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수업은 ‘효율적인 마법 사용
실전편’입니다.”
하아 한숨을 내쉬지만 그럼에도 자 신이 개발한 마법이 많은 이들이 기 대하고 있단 사실이 썩 기분이 좋아 서 천영은 사람들의 심장 상태를 전 혀 신경 쓰지 않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이 마법의 이름은 ‘언령’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캐이시였다. 흔한 이름답지 않게 분위기가 조금 우중 충했다. 친구도 별로 없어보였고 얼
굴도 항상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 녀서 오죽하면 같은 반 학생도 얼굴 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천영은 캐이시라는 학생을 주목하 고 있었다. 그녀는 여러모로 상당히 인상이 깊었다. 파트라슈를 통해 이 름을 전해들은 다음 수업을 진행하 는 내내 캐이시를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기습적으로 질문을 툭 내 던졌다.
“캐이시 학생, 디버깅 함수의 Alooc 마킹에 ‘이’에 접합될 때 나 타나는 오류 세 가지를 뭐라고 생각 하나요?”
“첫 째는 주문의 굴곡,두 번째는
마나의 주파수의 반발,세 번째는 문장의 부조화입니다.”
“캐이시 학생,‘말타 쿠라이젠’은 마나 오버로딩에 대한 공식을 세상 에 내놓으면서 ‘내가 창조해낸 괴물 은 더 이상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령에 오버로딩을 접합시켜 완벽하 게 통제가 가능한 방법을 찾아냈습 니다. 이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시겠 습니까?”
“우선,SpRp(13. 0.2)를 통해 마나 가 반발하는 부분을 깨뜨린 다음 그 속에 언령을 집어넣어 메워낸 다
“캐이시 학생,제가 지금 말 하는 공식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그것은……
캐이시는 천영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천영 뿐만이 아니라 이 장소에 나와 있는 수많은 마법사들 이 깜짝 놀랄 정도로.
학생들은 캐이시를 보며 ‘재가 저 렇게 똑똑했었나?’라는 반응을 보였 다. 그 모습을 일일이 캐치해낸 천 영은 빙고라고 생각했다.
‘범인을 찾았으니 우선 더 알아봐 야겠지.’
수업을 끝마친 다음 숙소로 돌아가 면서 천영은 캐이시에게서 용의 큐 브를 받아낼 방법을 수십 가지나 생 각했다. 절대 쉽사리 넘겨주지는 않 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본인의 비밀을 숨기려고 할 것이고 자신만 이 가지고 있는 마법 비기,즉 용의 큐브를 끝까지 감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디 인간이 사용해 서는 안 되는 물건. 천영은 어떻게 든 여차하면 강제적인 방법을 통해 서라도 그것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랬었다.
캐이시가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녀는 어째서인지 울먹이는 눈으 로 천영을 내려다보았다.
‘학생 여자애가 나를 내려다보는 처지라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천영은 살 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캐이시 학생 아닙니까? 무슨 일로 저를……
캐이시는 당장이라고 터져 나올 것 만 같은 눈물을 애써 삼킨 채 팔목 까지 가리고 있던 옷소매를 걷어냈 다. 어쩐지 계절과 맞지 않는 옷이 라고 생각한 천영은 그 손목을 쳐다 보았다. 그 다음 눈을 크게 뜨고 말
았다.
“이,건……
그녀의 팔목은 ‘마치 금이 간 것처 럼’ 실핏줄이 돋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