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094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알록달록 한 색상의 구체 다섯 개가 허공을 회전한다. 네모난 장치 위에 달린 뾰족한 기계가 그 구체들의 정중앙 아래를 쏘아대고 있었고 그 중심의 바닥에는 하얀색의 양탄자가 깔려있 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마법 장치의 중심엔 캐이시가 둥둥 떠 있었다. 천영은 붉은색의 큐브에 드래곤의 기운이 완벽하게 흡수되는 것을 보
며 마지막 마법 장치를 모두 정지시 켰다.
그러자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몇 명이 수치를 체크하더니 고개를 끄 덕인다.
“완벽하게…… 치유되었습니다.“
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로 완벽한 장비를 사용했는데 완치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정말 그리픈 에서 최고로 뛰어난 장비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더욱 진보된 장비를 선택했다. 그 결과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캐이시를 완치할 수 있었다. 천영이 손가락을 까딱여 염력으로 캐이시를 끌고온 다음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 다음 근처에 있는 침대 에 데려가 눕히니 그녀가 눈을 떴 다.
“몸은 좀 어때?”
“……훨씬 괜찮아요.”
그녀의 몸에 나있던 ‘균열’은 완벽 하게 사라진지 오래였고 몸속까지 퍼져있던 잔여 기운 역시 모조리 빨 아들였으니 괜찮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며칠 전과 비교해 훨씬 팔팔해지고 안색 또한 밝아진 모습을 보며 천영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네.”
백하란은 마법 장비의 뒷정리를 하 며 천영에게 슬쩍 물었다.
“결국 이건 무슨 병이었던 겁니 까?”
“드래곤의 마법을 남용한 대가라고 보면 돼.”
“……그렇군요.”
천영의 정체를 일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백하란은 조용히 납득했다. 하 지만 그 정체는 신뢰할 수 있는 자 에게만 알려줄 수 있는 것. 다른 의 사들이 다가와 천영에게 묻자 조금 곤란했다.
“메이지 서천영,혹시 이 병에 대
해 기록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안 하면 안 되나요?”
“네? 그,으흠,안 하셔도 되긴 합 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 였기에 하는 수 없이 천영은 펜을 들어 이 병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주 었다.
병의 증세에 대해서는 이미 그들이 기록해놓은 상태. 그 병명을 적으려 던 천영은 결국 ‘용의 각인’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것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먼 과거,드래곤이 남긴 유물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저 도 드래곤의 유물을 본 것은 스승님 께 배운 이후로 처음이지만요.”
천영이 제일 잘 하는 구라 중 하 나 괜히 스승을 들먹이기. 사실 그 에게 스승은 딱히 없다. 그래서 넥 스트에 있던 NPC 선조 드래곤의 이름을 대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 하곤 했다. 다른 넥스터들은 그 선 조 드래곤을 만나본적도 없으니 아 무도 천영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 을 모른다.
“호오,스승님이 상당히 대단하신 분이던 모양입니다.”
“그렇죠. 드래곤에게 이것저것 배 우신 분이니까.”
뻔뻔하게 거짓말을 친 다음,치료 방법을 적으려던 천영은 결국 ‘용 언’을 그곳에 각인시켰다. 인간이 해석하려 들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닌 용언 자체에 암호를 걸어 감히 들여다볼 수 없도록.
“……혹시 뭐라고 적으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병은 아무에게나 발생하 지 않고 아무나 치료할 수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오로지 저와 같은 마 법을 배운 자들만이 치료할 수 있
죠. 그래서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 도록 기록했습니다.”
“그렇군요……
의사들은 어쨌든 자신들이 치료하 지 못한 병을 마법으로 해결한 천영 의 말이니 납득하긴 했지만 그래도 영 궁금한 듯 했다. 하지만 천영은 그 이상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굳 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드 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천영이니까,뭔가 엄청난 치료 방 법을 기록했거니 하는 듯한 눈치였 다.
-주인,그래서 뭐라고 기록했나?
“별거 없어. 용언으로 ‘화이팅!’이 라고 적어놨다.”
“후대 드래곤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다. 천영은 이 치료방법을 서 술해놓기가 상당히 귀찮았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천영의 이 ‘마 법 강의’라고 불릴만한 것은 정말 역대급으로 완벽하게 끝마쳤다고 볼 수 있었다. 이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성공적이었으며,그야말로 역사적이었고,그야말로……등등 의 수식어가 붙게 된다.
총 4번에 걸친 천영의 마지막 강 의 시간엔 총 2만 명의 마법사#이 찾아왔다. 그것도 사실 이사장이 많 은 수의 인원을 되돌려 보낸 것이라 고 한다. 마법사가 아닌 자들조차 찾아와 서천영을 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여간 고역이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천영은 이제 아무래 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수업 잘 들었습니다,교수님.”
“메이지 서천영,아주 훌륭한 강의 였소.”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수많은 마법 사들이 찾아와 천영에게 악수를 청 했다. 그들 또한 유명한 교수들이건 만 천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한 한 존경심이 담겨있었다.
비록 어렸을 때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천영이지만 그래도 학교를 다닐 때에는 수많은 인터넷 강의와 오로 지 주입식 교육만을 위한 선생님들 의 품에서 10대를 보냈던 천영이기 에 ‘수업’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진 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 보고서 누군가를 가르 칠 수 있다면 누구나 선생님을 하겠 지만 천영은 드래곤이다.
드래곤만이 가질 수 있는 지식과 두뇌 회전 속도 그리고 지구에서 살 던 시절의 경험까지 합해지니 꼭 수 업 내용이 ‘언령’이 아니었다고 해 도 아마 마법사들은 천영의 수업을 굉장히 좋아했을 것이다.
“교수님.”
이사장과의 인사도 모두 끝내고 돌 아가려고 하자 캐이시가 찾아왔다. 이제 그녀는 체력이 조금 약할 뿐인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머리 묶으니까 예쁘네.”
“교수님도 머리 묶으니까 예뻐요.”
“……멋있다고 해줄 수는 없니?”
“에…… 하지만 예쁜걸요.”
“그,그래……
천영 역시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틀 어 올린 상태였는데 어째서인지 멋 있다보단 아름답다는 단어가 더욱 잘 어울리는 외모가 되었다.
“손 줘봐.”
캐이시가 손을 천영에게 내밀자 그 는 마나를 조심스레 불어넣었다. 이 래저래 스캔까지 한 다음 마법을 사 용해보라고 하자 캐이시가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캐스팅 속도로 2서클의 마법을 완성하였다.
-과연,기운을 모두 흡수했다곤 하
지만 드래곤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7>—.
교수들의 말에 의하면 캐이시는 원 래도 뛰어나긴 했지만 눈에 확 띄는 인재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 금 이 순간 캐이시는 천영의 눈으로 봐도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떨어 지지 않는 천재급의 마법사가 되었 다.
‘이거 원,용의 큐브를 만지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그건 아니다 주인. 이건 주인이 저 여자에게 축복을 내려줬기 때문 이 가능한 거다.
‘축복?’
천영이 고개를 갸웃하자 파트라슈 가 뭘 모르는 척을 하냐며 웃었다.
-그거 했잖아 그거.
‘아,키스?’
-그래 그거.
“흐음.”
캐이시는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천 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 니 외모도 더 화사해지고 머릿결도 좋아지고 피부도 완전 꿀 피부였다. 만나기 전보다 훨씬 예뻐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이 드래곤의
키스 덕분이라면,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는데.”
“농담이야 인마. 뭘 정색 빨고 그 래.”
-농담이었어? 크흠,난 벌써 사업 구상까지 끝냈는데…….
그 드래곤에 그 정령이었다.
“다음부터는 이상한 물건 있으면 함부로 만지지 말고. 알겠지?”
“네,네……
딱히 잔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 애당초 목적이었던 용의 큐브를 직 접 가져다주기까지 한 장본인이었으 니 별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교수님,그 감사합니다……
“그으,래……
얼굴을 살포시 붉히며 인사를 하는 그 모습은 영락없이 순정만화의 여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인 천 영을 올려보면서 말했으면 더없이 완벽했을 구도인데 하필이면 키가 작아 캐이시가 그를 내려 보는 구도 가 되었다. 그것이 퍽 아쉬웠던 천 영은 입맛을 찜찜 다시며 다음에 보
자고 말한 뒤 돌아섰다.
캐이시는 멍하니 천영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꽤 많았으나 할 수가 없었다. 왠지 가슴이 진정되질 않아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마음은 존경심 일까,애정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일까. 확실한 건 알 수 없었지만 그 녀는 천영을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 히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캐이시도,천영도 모르겠지만 그것 은 ‘용의 키스’로 인해 무언가가 연 결된 탓일 것이다.
“휴우……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지.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캐이시는 애초에 외톨이였고 저런 서천영 같 은 존재에게 마음을 표현하기엔 남 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캐이시는 또다시 소심하고 존재감 이 없는 평범한 소녀로 돌아갈 터였 다.
“캐이시,캐이시!”
“아,응?”
천영이 사라지자 캐이시 역시 돌아 가려는데 여학생 무리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불렀다. 왠지 생기 가 넘치고 발랄한 분위기의 무리였 다.
“너 교수님이랑 친해? 무슨 이야기 했어? 우리도 알려줘!”
“부럽다,부럽다.”
“아,그게……
그녀들은 캐이시에게 달라붙어서 존경을 표했다. 서천영과 일대일로 대화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캐이 시는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 이 되어있었다.
캐이시는 씩 웃으며 왠지 기분이 좋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사실 말이지……
금색 별 마탑의 꼭대기 층 바로 아래에는 대 회의장이 있다. 사방이 마법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일대를 완벽하게 관찰할 수 있는 장소. 이 곳에는 마탑주와 주요 간부진까지 해서 기본적으로 13명이 참여하며 때에 따라서 마법사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현재 이 회의장에는 총 20명의 인 원이 잔뜩 초췌해진 몰골이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살아있는 눈빛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제국에서 대평야의 사용을 허락했 다고요? 허,그렇담 그곳에 연구소 를 건설해도 되겠습니다.”
“루플럭 광산의 채굴권을 넘겨받았 습니다.”
“다이젠 클랜에서 손을 잡자고 먼 저 권유했습니다.”
“드워프 마이스터들이 대거 찾아왔 습니다. 자신들의 기술과 무구를 주 는 대신,마법 아티팩트에 꼭 메이 지 서천영의 마법을 사용하고 싶다 고……
그들은 거의 일주일간 서천영이 친
사고 덕분에 행복한 회의를 하고 있 었다.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회사 와 국가,클랜에서 금색 별 마탑에 게 선물 공세를 해댔고 그들을 한 명씩 만나본 간부진 및 마법사들이 현재 이곳에 모여 총결산을 하는 중 이었다. 거를 건 거르고,받을 건 받는다.
레이븐 역시 피곤에 찌든 표정이지 만 빛나는 눈으로 냉정하게 판단하 며 서기관에게 지시해 하나하나 정 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금색 별 마탑에 전 세계적 인 그룹들이 몰려든 이유는 간단하 게도 서천영이 공개한 마법의 ‘완전
판’을 받기 위해서. 단지 그것뿐이 었다.
이 회의는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으하암……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서천영이 하품을 쩍쩍 내뱉고 있을 때 레이븐이 다른 안건을 제시했다.
“북쪽에서 자라고 있는 ‘붉은 설녀 의 화환’의 재배권을 주겠다고 합니 다만 이건 양날의 검입니다.”
“사실상 그쪽에서도 처치곤란인 걸 줬거든요.”
“하지만 우리도 필요 없는 건 아니 지 않습니까?”
“당장 제가 개발하고 있는 아티팩 트 19가지에만 해도 저것이 들어갑 니다.”
“그래도 거긴 너무 위험지역이 라……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정 치적인 문제와 마법적인 문제 및 위 험 요소 등등을 판단하여 서로의 의 견이 엇갈리는 순간 천영이 손을 번 쩍 들었다.
“저어……
천영이 처음으로 손을 들자 19쌍
의 눈동자가 그를 주목했다. 레이븐 이 말하라며 고개를 까딱이자 그는 부끄러운 둣이 배시시 웃으로 수줍 게 말했다.
“화장실 가도 되나요?”
침묵.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천영 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진짜 급한데……
결국 천영은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처음엔 죽일 둣이 노려보던 그들도 천영이 진짜 불쌍 한 표정을 짓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려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역시 외모지상주의 였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긴 싫었기에 휴게실로 올라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데 제이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천영을 보자마자 마침 잘 만났다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 계셨군요.”
“제이나 누님 안녕.”
제이나 역시 커피를 하나 뽑더니 천영의 맞은편에 앉아서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 다.
“메이지 천영,혹시 ‘요하엔’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리고 그 이름을 듣는 즉시 천영 은 사례가 들렸다.
“객,쿨력! 크흡…… 요,요하엔이 라구요?”
“네,메이지 서천영을 꼭 만나보고 싶다며 찾아온 ‘넥스터’였습니다. ‘나이아가라 헬스장’이라는 이름의 작은 클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
다.”
“딸꾹.”
요하엔,모를 리가 없다. 그녀와 동료로서 꽤 긴 시간 동안 넥스트에 서 함께했던 과거가 있었으니까.
‘미,미친. 요하엔 그 미친 마녀도 그리픈으로 넘어왔었다고?’
워낙에 넓은 세계다보니 넥스터들 끼리도 서로의 소식을 모르는 경우 는 허다했다. 하지만 천영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이름은 이미 전 세계 적으로 널리 퍼져버렸고 그로 인해 서천영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연락을 해와도 이상할 것은 없었
다.
서천영은 창백해진 얼굴로 침을 꿀 꺽 삼켰다.
“도,도망쳐야겠어.”
다 마신 종이컵을 구긴 다음 쓰레 기통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 다. 애초에 이렇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요하엔에게는 큰 빚을 진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 만 제이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천 영의 그 반응을 보고선 재미있다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아무래도 메이지 서천영의 과거를 아는 분들인가 보군요.”
“……그렇다면 그렇겠지만. 하여튼 난 못 만나. 안 만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천영이 휴게실 밖으 로 도망치려는 순간 제이나가 안타 깝다는 둣이 말했다.
“근데 이미 여기에 와있는데……
우뚝.
천영은 휴게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고양이에게 몰린 생쥐마냥 몸이 굳 었다. 옆쪽에 있던 사무실에서 이제 막 나오는 일단의 무리도 멈춰 선 다. 어마어마한 몸을 가진 인원들 그중에서도 키가 170cm는 가뿐히 넘을 것 같은 사나운 인상의 여자가
천영과 눈을 마주쳤다. “너 혹시……
그녀의 눈빛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감정. 당혹,의심 그리고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본 천영은 슬쩍 뒷걸음 질을 쳤다. 즉시 도주하려는 순간 요하엔이 급가속하여 천영의 목덜미 를 낚아챘다.
“으아아악!”
“찾았다, 요 귀염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