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05화 (104/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05 화

악귀가 울부짖는 절벽에는 총 세 개의 베이스캠프가 있다고 한다. 그 베이스캠프는 전부 던전을 둘러싸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정작 던전 넘어서까지 베이스캠프를 만들 수는 없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결 국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였다.

천영의 목적지는 우선 첫 번째 베 이스캠프였다. 그곳에는 이름은 없 지만 지도에는 ‘"라고 마킹이 되어

있었다. 숲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베이스캠프로 가 는 것 또한 꽤나 강한 모험가 파티 여야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 곳까지 도달하기 전에 죽는 모험가 들도 상당히 많다고.

거의 사흘내리는 쉴 새 없이 걸어 야 도착할만한 거리.

천영은 숲의 초입을 걸으며 생각했 다.

‘이곳에 오기 전에,흑기사라는 정 체불명의 존재에게 당했다는 파티가 조금 있었어.’

‘정체가 뭐지?’

‘던전이 갑자기 터져 나온 이유가 뭘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없을 수가 없 어.’

‘역시 팔리 다리에르와 관련이 있 나?’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힘으로 던 전을 열어버린 거지?’

‘흑기사와 던전은 무슨 연관이 있 나?’

천영이 발을 내딛으면 걷기 힘들도 록 꼬여있던 뿌리가 풀려나가고 그 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나뭇가지 가 알아서 길을 비킨다. 자연 그 자

체의 사랑을 받는 드래곤이기 때문 에 가능한 일. 덕분에 걷는 것이 힘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천영의 짧 은 보폭으로는 빠른 이동이 불가능 했다.

도시와 가까웠던 초입에서 지나 조 금씩 안으로 진입하자 가끔가다 몬 스터가 등장하긴 했다. 몬스터 도감 으로만 접해봤던 위험 지역의 몬스 터들.

숲의 나무는 하늘을 전부 가릴 둣 높게 솟아있었지만 비행 몬스터들 역시 활개를 치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보호색으로 위장한 벌레형 몬스터들이 몰래 천영을 잡

아먹기 위해 몸을 정지시킨 채 대기 하고 있었다.

땅 속에는 거대한 두더지 같은 것 들이 무리로 몰려다니며 그를 납치 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천영이 눈을 부라 리기만 해도 기절해버린다. 레벨이 상당히 올랐기 때문에 드래곤 피어 에 마나를 가득 담아서 홀리기만 해 도 겁을 지레 먹고 접근하지 않기 때문. 처음에는 경험치라도 포식할 겸 일일이 마법을 쏟아 부으며 사냥 했지만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아예 내쫓으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애초에 경험치를 별로 주지도 않

이제는 정말 경험치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저 몬스터들도 최소 200대 에 300대쯤은 될 법한 강한 생명체 들일지언데 아무리 잡아도 티끌만큼 도 오르지 않다니. 드래곤이라는 종 족은 불합리한 강함을 가져버린 대 가로 인위적으로 성장하기가 너무나 도 어려웠다.

-주인,이 구역에서 힘깨나 쓴다는 놈들이 슬슬 반응한 모양이다.

“그런 것 같네.”

여태까지는 (천영의 기준으로)조무 래기들만 나타났다면 숲의 중심부까

지 들어서자 이제는 단독으로 행동 하는 강한 몬스터들의 기운이 풍겨 왔다. 천영조차도 방심하면 위험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이 었다.

아무리 천영이라지만 마법사인 이 상 혼자 행동하는 것이 슬슬 위험해 질 시기. 하지만 백하란이나 하성이 없더라도 천영이 도시에서 파티를 구하지 않고 혼자 나온 이유는 당연 히 하나뿐이다.

‘오랜만인데.’

자세를 낮추고 힘을 집중시키자 옷 이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순 식간에 알몸이 된다. 그런 상태로 1

초의 찰나가 지나자 갑작스레 그의 몸이 서서히 몸집이 거대해진다. 남 색의 매끄러운 피부에 흰색의 줄무 늬,찬란한 금빛의 뿔과 금색의 눈 동자. 거의 7〜8m는 될 법한 거체 의 드래곤이 쿵 하고 바닥에 착지했 다.

‘……변신 선 딜레이는 언제 쯤 없 어지려나.’

1초라는 빈틈 이후 몸이 거대해지 기까지 또다시 2〜3초. 그 사이의 천영은 너무나도 무방비했다. 심지 어 변신 직전에 모든 옷이 벗겨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소녀 도 아니고 대체 뭐냐며 불평을 해보

지만 성룡이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모양이다.

“스읍.”

숨을 들이킨다.

직후 나무를 타고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근육질의 몬스터가 쿵! 하고 천영의 앞에 착지했다. 인간과 는 판이하게 다른 ‘근육 농도 100%’로 이루어진 완벽한 보디를 가진 몬스터가 쉬익 하고 숨을 내뿜 더니 ‘우워어어어어!’ 하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의 파장이 얼마나 거 센지 나뭇가지가 잘려나가고 모래가 휘날리며 근처에 있던 바위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포스! 그 몬 스터는 눈을 시뻘겋게 뜬 다음 주먹 을 천영에게 뻗었다. 이 다음 너를 죽이겠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포즈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몬 스터들이 전율한다. 이 구역의 지배 자가 직접 천영을 죽이기 위해 나섰 으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면서.

“쿠워어어!”

선전포고가 끝난 직후 몬스터는 가 슴을 쿵광쿵광 두드리더니 이제 싸 울 준비가 끝났다며 안광을 부릅뜨 는 순간!

피슝,콰아아앙!

번쩍이는 레이저가 스쳐 지나더니 싸움이 끝나버렸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 이 구역의 지배자가 있던 곳을 보며 다 른 몬스터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최 소한의 지성을 가지고 있던 몬스터 들은 저들의 언어로 속닥였다.

‘나 갑자기 똥마려워서 먼저 가볼 게.’

‘아 맞다,나 집에 먹다 남겨둔 고

기 좀 냉동 보관 해야 해서•, ‘갑자기 볼 일이 생각났네.’

이틀이 지났다.

천영은 거침없이 숲을 질주했다. 너무 나무 높이로 날아가는 것은 좋 지 않다. 주변을 지나던 모험가들에 게 모습을 보였다가는 나중에 꽤나 귀찮아진다. 괜히 신문에 ‘특보! 드 래곤 목격담!’ 같은 것이 떴다가는 이곳에 사람들이 무지하게 몰릴지도 모른다.

-주인,왼쪽에서 벌떼가 온다!

“확인했어.”

-아래쪽에서 독지네 수백 마리가 나무를 타고 오고 있어.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냐,전부 죽일래.”

-저건…… 오우거인가? 맙소사 엄 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어! 부딪히 면 최소 중상…….

“내가 더 단단해!”

-앞쪽에 화염승이가 10마리나 접 근하고 있어! 맙소사 손에 불바나나 가 들려있는데?

“그건 또 뭐야?”

-먹으면 무진장 매워서 불바나나!

천영은 오는 몬스터는 마다하지 않 고 모조리 해치웠다. 피부에 마나를 두르고, 주먹에 오러를 감싸고,입으 로는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며 가끔 벌떼처럼 몰려오는 것들은 브레스 확산을 이용해 단번에 해치운다.

현재 그의 레벨은 240. 여타의 평 범한 종족이라면 이 숲에서 목숨을 보존하는 것조차 힘들지언데 천영은 이곳의 모든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이상하게 많은데.

“그러게.”

천영이라고 무적은 아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피부에는 조금씩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브레스를 너무 자주 사용한 탓에 마나는 벌써 절반 이하 로 떨어졌고 체력 또한 과도하게 움 직인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 다.

그래도 질주를 멈출 수는 없었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안다. 자 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또 한 안다. 이게 미친 짓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천영은 이 모든 것

에서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 하지만 드래곤이 되고 나서 서서히 바뀌어버린 그의 감정 은 이렇게 숲을 거침없이 활보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 다.

-주인,힘들 것 같으면 말해.

“넣어둬.”

모조리 박살낸다. 브레스를 내뿜고, 발톱으로 주둥이를 찢고,이빨로 목 을 따버리며,날개를 날카롭게 펼쳐 나무를 무너뜨리고,초고속으로 돌 진하여 적을 낚아챈 다음 땅에다가 그대로 내리꽂는다.

풍비박산(風飛霜散).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천영의 공격 에 얼굴을 비추자마자 즉사해버리는 몬스터도 꽤나 생겨났다. 그리고 지 레 겁먹고 도망쳐버리는 놈들도 생 겨났다.

천영은 도망치는 몬스터도 끝까지 따라가 모조리 죽이면서 전진했다.

말 그대로 숲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처럼.

그들에게 각인시킨다. 드래곤에게 덤빈 대가를. 드래곤의 공포를. 드래 곤의 힘을.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천영은 거대한 나무 위에 착지한 다 음 숨을 고르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몬스 터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널려있었 다. 아마 그가 지나온 길은 더 이상 몬스터가 나오지 않고 당분간은 안 전할 것이리라. 몬스터들 또한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아서 시체가 많은 장 소는 지레 겁먹고 접근할 생각을 하 지 않으니까.

“베이스캠프까지는 얼마나 남았 지?”

-음,그게…… 사실 조금 옆으로 돌아서 지나쳐온 모양이다. 거기까

지 되돌아가려면 앞으로 반나절쯤 더 가야한다.

“후우.”

길을 잘못 들었다는 말을 들어도 사실 딱히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베이스캠프로 가려는 것도 정보를 얻기 위함일 뿐이었지 안전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더 깊은 곳으로 가면 모를까. 아 직까지는 안전해.’

천영은 기운을 사방으로 뻗어낸 다 음 아무것도 없단 것을 확인하자마 자 휴먼 폼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레 허공에서 옷이 나타나 입혀졌다. 그

리고 나무줄기 위에 발을 내딛는 순 간 갑자기 통증을 느꼈다. 드래곤 상태 입었던 데미지가 고스란히 옮 겨왔다.

“으윽,아파 죽겠네.”

자고 일어나면 대부분이 치유된다 지만 그래도 당장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피가 새어나오는 부위는 전 부 붕대로 감고,얄은 부위는 약을 발라서 밴드를 붙인다. 대충 정비가 끝나자 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 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바닥 에 부딪히기 직전 발에다가 발판을 하나 생성해 그것을 밟고 사뿐히 착 지 했다.

“이 근처에 호수가 있던 것 같은 데……

그렇게 조금씩 전진하자 하늘을 날 아다니던 파트라슈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오,앞에 커다란 폭포가 있어!

“진짜?”

그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등 뒤 로 넘겼다. 마침 찝찝했는데 잘 됐 다고 생각하며.

“목욕이나 해야지.”

백화연은 비틀거리며 숲을 거닐었 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그녀 의 뒤로는 수많은 시체의 산이 쌓여 있었다. 모두 겁 없이 그녀에게 덤 빈 대가로 죽임을 당한 몬스터,괴 수,이종족들. 그것들에 비해 상대적 으로 작고 약해보이는 백화연은 몬 스터들의 눈에는 그저 음식으로밖에 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주변의 몬 스터가 아예 씨가 말랐는지 더 이상 나타나지도 않을 무렵 백화연은 나 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서서 히 숨을 고르며 검을 끌어안았다.

‘피곤해……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챙길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 잔 상 처가 나있었다. 치료제를 찾아보았 지만 가지고 있던 것은 대부분 사용 한 뒤였다. 얕은 상처에 사용하기엔 수량이 너무 적었다. 근처에 베이스 캠프가 있단 것을 기억한 그녀는 거 기까지 갈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 했다.

‘쉴 곳이 필요해.’

백화연이 몬스터들과 이렇게나 조 우한 이유는 이 근처가 모종의 이유 때문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거처를

잃고 밀려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장소가 이렇게 몬스터로 끓어 넘치진 않는다.

벌써 1년째이다. 백화연은 이 그리 픈이라는 차원에 떨어진 이후로 단 하루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 하고 매일매일 전투적인 삶을 살아 왔다.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묻는다 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정보를 얻고 필사적으 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쥐뿔만큼이라 도 희망이 있는 곳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찾아간다. 이제는 그것만이 백화연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꽤나 지쳤다.

그녀는 본디 목숨을 건 전투와 생 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세계에 서 살아왔다.

백화연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지구에 두고 왔다.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픈, 이 세계는 스스로가 살아있 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왜?’

사실 지구에도 남은 것은 별로 없 었다. 이미 퇴직 당했을 직장과 빚 만 가득한 월셋집,아끼는 옷 몇 벌 과 노트북 하나. ……그리고 이제는 연락조차 안 되는 친구들. 그래도

그런 것들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그런 것들이라도,그녀에게는 목표 가 되었다.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오로지 그 목표만을 바 라보고 움직였다.

하지만 일 년이나 생각할 틈조차 없이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근처에 쉴 곳이 있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백화연은 조심스 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숲을 전전한 기간이 꽤나 길었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 또한 금방 찾을 수 있 었다.

다시 일어나 검을 집어넣고 한참을 걷는다. 더 이상 이 구역에는 몬스 터가 없다. 비틀대며 걷던 그녀는 공복이 심해지자 인밴토리에서 굵직 한 빵 덩어리 하나를 꺼내 으적으적 먹으며 걸었다. 맛도 없고 먹기도 힘들지만 영양분을 보충하기엔 충분 하리라.

쏴아아아.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에 백화연은 귀를 종긋 세웠다. 틀림없는 폭포

소리였다. 근처에 물이 있다는 사실. 물이 거의 떨어져가던 와중에 꽤나 희소식이었다. 백화연은 폭포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를 치우고 풀숲을 헤치고 바위를 건너 마침내 호숫가에 도착한 백화연은 짧게 탄 성을 내뱉었다.

그래,폭포는 그 자체로 상당히 아 름다웠다. 이미 해가 모습을 감춘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찬란한 빛이 호수를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백화 연은 호수를 보고 ‘구멍이 뚫렸네.’ 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새하얗고 새파란 구멍이 뚫려있었 다. 아니,그것은 달이었다.

보름달이 두 개나 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이곳이 밝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백화연은 이 잔혹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광경 에 감탄하며 호숫가로 서서히 접근 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 는 뒤늦게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수의 표면 위에 요정이 춤추고 있었다.

그것은 검은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 었다. 마치 밤하늘처럼 새카만 색을 가진 그 요정의 머리칼에는 은하수 같은 은빛의 브릿지가 한 줄기 새겨 져 있었다.

백화연은 멍한 눈동자로 그것을 응 시했다. 아무것도 입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사심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 로 신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찰랑.

마치 시간이 느리게 가는 둣 했다. 요정이 손을 흔들면 물줄기가 일어 나 하늘 위로 솟구친다. 그러자 형 형색색의 불꽃이 깜빡이며 요정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작고 새하얀 발 바닥이 호수의 표면을 내딛으면 빛 나는 파장이 되어 호수 전체를 간질 였고 그것은 파도가 있는 곳까지 나 아가다가 사라진다.

불꽃이 그 요정의 몸을 빙글빙글 돌 때마다 잔상이 일어난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불꽃이 따라서 이동한 다. 물길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회오리친다.

손끝에서 반짝이며 무언가가 빛난 다. 마치 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 럼 요정의 몸을 감싸며 빙글빙글 작 은 파도처럼 움직였다.

만약 저 상태로 시간이 멈춘다면

이 세상에서 저것보다도 아름다운 조각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적일 정 도로 화려한 광경이었다.

요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형형색 색의 불꽃과 물꽃의 향연.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호수의 표면 에는 그 요정의 그림자만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아……

백화연은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리픈에서 목표를 찾지 못 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살아갈 이유 따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화연이 쌓아왔던 커리 어,인맥부터 시작해 대학 졸업증이 나 운전 면허증까지. 사소한 것들 전부 지구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들 이었다.

지구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했 다. 이런 거짓된 세계 따위 아무 가 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 살아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었는 데.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름다워.”

천영이 다급하게 파트라슈에게 소 리 쳤다.

“사,살려줘!”

[Lv. 289 도깨비 불]

[주의! 그들은 어리고 약한 아이를 꾀어내 자신들의 거처로 데려가 괴 롭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도깨비 불. 처음 보는 몬스터이지 만 천영은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가

면서 퇴치법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방금 전까지 계속해서 싸우던 탓에 마나가 바닥나서 제대로 된 마 법도 사용하기 힘들다.

"크아악!"

목욕을 하겠답시고 옷을 전부 벗어 던진 것이 악수(惡手)였다. 그의 장 비에는 꽤나 강력한 보호 마법이 걸 려있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면역력과 방어력만 높고 공격 무효화 스킬만 한가득인 도깨비 불을 상대하기엔 아주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도 없으니 아주 죽을 지경이었 다.

-주,주인! 내가 엄청난 것을 알아

“뭔데! 빨리 말해봐!”

파트라슈는 눈을 부릅뜨고서 굉장 한 표정으로 외쳤다.

-불은 물에 약해!

“죽여 버린다,너!”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영은 있는 마 나 없는 마나를 쥐어짜내 물줄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위대한 금 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서천영이 일으 킨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약하 고 볼품없었다.

“살려줘어어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