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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12화 (111/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12화

27장 지옥불을 끄는 방법

휘오오오.

바람이 몰아치는 절벽의 끄트머리 에서 유텐은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멍하니 하 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새하 얀 백발을 휘날리며 백화연이 흑기

사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무런 표정변화 없이 차가운 느낌으 로,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가 슴을 가진 백화연의 모습을 지켜보 던 유텐은 문득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름다워…….,

새하얀 옷이 바람에 펄럭거리며 백 화연의 몸을 살짝 흔들었다. 하늘에 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그녀의 모 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텐은 문득 중얼거렸다.

“이, 이겼어……

마침내 흑기사가 쓰러졌다.

서천영의 계획대로였다. 5분만 버

티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5분이 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백화연 은 흑기사를 상대로 버텨내는 것에 성공했다.

유텐은 아직도 백화연이 싸우던 장 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새하얀 연 꽃과 검은색의 칼날이 충돌하며 발 생하는 섬광 그 여파로 인해 휘날리 던 폭풍.

위태로울 땐 언제든 노클텐이 난입 해서 틈을 메워주고 유렌의 신성 버 프가 그들의 상처와 움직임을 보충 해주었다.

그렇게 슬슬 백화연과 노클렌이 도 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싶은 찰나 기적처럼 5분이 지나자 흑기사의 움직임이 갑작스레 둔해지 기 시작했다.

속도도 느려지고,재생능력이 아예 사라졌으며 방어력이 약해지고,힘 이 줄어들었다.

이윽고 등장한 서천영이 하늘 위에 서 마법으로 서포트까지 해주니 속 수무책으로 흑기사가 쓰러지고 말았 다.

이 근방에 있는 수많은 모험가 파 티를 순식간에 학살해버린 그 괴물 같은 흑기사를 고작 5명이서 쓰러뜨 린 것이다!

사박. 사뿐.

서천영이 한복과 흑발을 자유롭게 휘날리며 흑기사의 머리를 짓밟으며 착지하자 유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머,멋있어…….,

이상한 일이다. 유렌의 나이는 20 대 초중반으로 서천영은 자신보다도 1〇살이나 어려 보였는데도 불구하 고 자신보다도 더욱 나이가 들어 보 이는 그런 중후한 멋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순간적이지만 유텐은 서천 영에게서 성숙한 청년을 볼 수 있었 다. ……비록 복장은 치마였지만.

‘남자였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걸까……

백화연과 서천영 둘 다 무심한 얼 굴로 새카맣고 새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지고 있는 그 모습은 그 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었 다. 심지어 절벽 너머로 노을까지 붉게 타오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시간이 및은 것만 같은 환상적인 행 위 예술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목숨 을 건 사투를 하던 노클텐과 유텐, 멜레인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자신 들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하다못해 사진기라도 있으 면 좋았을 것을.

이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백화연 이었다. 흑기사의 숨이 완전히 끊어 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서천 영에게 표정을 환하게 바꾸고선 한 달음에 달려갔다.

“어디 다친 덴 없지? 얼굴이 수척 한데…… 팔에 상처가 나있어.”

“괜찮아.”

혹여나 서천영이 다쳤을까 안절부 절 걱정하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누 나와 동생이지만 실제의 나이는 서 천영이 그녀보다 많았다. 서천영은 두껍게 말려있는 마법 스크롤을 바 닥에 퉁 내려찍었다.

“여기에 악귀의 주둥이를 봉인해놓 았어.”

“……그 커다란 주둥이가 고작 여 기에 들어갔다고?”

“보여줄까?”

“아니!”

노클텐이 손사래를 치며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마법 스크롤을 이리저 리 만지작댔다.

“여기 이 붉은색 리본은 뭐야? 예 쁘네.”

연하게 매듭지어져 있는 그것을 풀

둣말듯하며 말하자 천영은 근처의 바위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그거 결계각인이야. 풀면 악귀 의 주둥이가 튀어나와.”

“히이익! 그,그런 위험한 걸 이렇 게 허술하게 해놔도 돼?”

“괜찮아. 절대 안 풀리니까.”

어린 여자애들이나 쓸법한 아기자 기하고 깜찍한 리본에 그런 고등급 마법이 걸려있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던전을 봉인한 것까진 좋 은데…… 이제 어쩔 셈이야?”

유렌이 묻자 노클텐과 백화연이 검

을 쥐며 동시에 말했다.

“가자.”

“뚫어 버리자.”

“……기다려. 우리 다섯이서?”

멜레인이 잔뜩 지쳤다는 둣 말하자 노클렌과 백화연은 뭐가 문제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혈기왕성하구만…… 이래서 근거 리 클래스란.’

한숨을 내쉬며 멜레인이 고개를 저 었다.

“이렇게 봉인까지 했으니. 굳이 여 기서 공략할 필요는 없잖아. 도시나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원정대를 꾸 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녀의 말에 그제야 노클렌과 백화 연이 납득한 듯 검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표정은 영 아쉽다는 티를 팍 팍 내고 있었다.

“천영,네 생각은 어때?”

다리를 꼰 채로 팔짱을 끼고 고민 하던 천영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 다.

“음…… 이왕 만추의 기둥을 작동 되는 상태 그대로 얻은 김에 모조리 봉인해버리고 싶은데 말이야.”

“봉인? 그건 이미 했잖아.’

“아니,이 만추의 기둥은 그리픈 전역에 7개나 설치되어 있다고 했 어. 전부 사충계와 연결되어 있고.”

“그,그런……

흑기사 같은 끔찍한 괴수가 튀어나 오는 게이트가 7개나 더 있단 말인 가? 날벼락 같은 그 말에 동료들의 표정이 굳어지자 천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차원결계 관련 전문가를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털털털털.

일행을 태운 트럭마차가 울퉁불퉁 한 길을 달린다. 망토를 꼼지락대며 천영이 입을 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금색 별 마탑으로 이것을 가지고 귀환하는 건데……

문제가 있다면,금색 별 마탑에서 이곳으로 파견 나올 땐 마탑에서 준 비해준 탈것들을 연달아 탑승해가며 왔기 때문에 빠르게 도착했다는 것 이고,서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곳에서 마탑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2

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봉인은 그만큼 긴 효력이 없 어. 최소 일주일 이내에 터질 거야.”

“……급조된 봉인서라 어쩔 수 없 다는 건가.”

그렇지 뭐. 서천영이 긍정하자 유 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갑자기 터져 나오는 건 아니 겠지?”

“그럴 일은 없어. 누가 봉인했는 데.”

그러면서 가슴과 어깨를 쫙 펼치면 서 말하지만 솔직히 멋있다는 느낌 보다는 그저 귀엽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다. 백화연은 그런 천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살짝 눈썹을 찌 푸렸다.

“천영.”

“응.”

“……그 거적때기는 벗을 수 없 어?”

“별로……

천영은 현재 다 헤져가는 망토를 온몸에 뒤집어 쓴 상태였다. 그 이 유는 당연하게도 현재 입고 있는 옷 이 창피했기 때문. 천영은 남자이고, 여장을 특히나 싫어하는 부류였다. 한복은 마음에 든다지만 치마를 입

고 있는 것은 정말 정신력이 막대하 게 소모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갈아 입을 옷이 마땅히 없는 바람에,이 렇게 몸을 가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 다.

“예쁘기만 한데……

“그래서 싫은 거야. 나중에 어른 되면 다 흑역사라고 이런 거.”

언젠가 남성체를 선택하면 골격과 외모가 완전히 남자의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희망사항일 뿐이 지만,그때가 되면 키도 180은 가뿐 히 넘을 테고 어깨도 널찍한데다가 우직하고 강인한 인상의 상남자가 될 터인데 예전에 여장을 했었다는

이야기가 어디론가 홀러 들어가면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나중에 크면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해?”

“물론이지!”

천영은 자신만만하게 그리 말했지 만,나머지 4명은 그저 어색한 웃음 을 홀렸다.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성장하 진 않을 텐데……

유텐이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이 길로 가면 그 마법사 가 지금 지내는 곳이 나오는 거 맞 아?”

그 질문에 천영은 새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끼적이며 고개를 끄덕인 다.

“응,나 파견 나올 때,같이 출발 했거든. 임무가 끝나지 않았으면 아 직 있겠지.”

“그 임무가 뭔데?”

“뭐였더라. 지옥불 마수왕을 생포 하는 임무였을 걸.”

“지,지옥불 마수왕……? 설마 뮤 클?”

지옥불 마수왕 ‘뮤클’이라면 북서 쪽 근방에서 아주 유명한 존재였다. 산맥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지배하

에 두고서 몬스터들에게 지시해 근 방의 도시와 마을을 지속적으로 괴 롭히는 바람에 피해가 여간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 토벌대를 몇 번이나 보냈지만 지옥불 마수왕 뮤클이 머물고 있는 성에 도착하기 도 전에 호위 몬스터들에게 계속해 서 전멸을 맞이했다. 결국 왕국에서 도 답이 나오지 않아 방치하고 있었 다고 한다.

“그걸 생포한다고?”

“응,근데 아마 생포 안 했을 걸.”

“그럼?”

“죽였겠지. 그 형,귀차니즘이 장난 아니거든.”

그런 걸 당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 며 노클텐과 유텐, 멜레인은 새삼 이 서천영이라는 인물이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쉽네. 이번 일 끝나고 방문하려 고 했는데.”

“성이 남아있으면 구경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래,백화연도 포함이다.

트럭을 타고 한참을 달리는데,갑 작스레 운전자가 마차를 정차했다. 그러더니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식 은땀을 홀리며 말했다.

“여기부터는 난 다른 길로 돌아가 겠소.”

트럭 기사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는 일행은 차례로 내렸다. 운전기 사는 이 앞으로 가면 지옥불 마수왕 이 지배하고 있는 성이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있는 것이다.

트럭이 떠나가고 절벽길을 얼마간

걷자 저 멀리 지옥불 마수왕의 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을 어떻게 찾는 가,하는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 니었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지옥불 마수왕의 성은 멀리서부터도 그 존재감을 미친 듯이 과시하고 있 었다.

“불타네.”

“불탄다.”

“불타고 있어.”

마수왕의 성은 활활 불타고 있었 다. 그것도 기분 나쁜 새카만 색으 로. 저러다가는 흔적도 남지 않고 잿더미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

세히 보면 성은 불타고 있으면서도 무너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 영은 별빛색 눈동자로 그것을 지그 시 응시하더니 말했다.

“결계가 쳐져있어.”

“결계?”

“응,형이 아직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인데. 근처에 남아 있나 봐.”

마수왕의 성을 발견한 뒤, 천영은 지도를 잠깐 펼쳐보더니 방향을 꺾 었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걷다보 니,인간들이 세운 듯한 성벽이 눈 에 띄었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의 꼭대기에 는 꽤나 큰 규모의 도시 하나가 있 었다. 절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 어 자연 요새나 다름없는 곳. 아마 이곳은 몬스터들의 습격에도 별 문 제없이 공성전을 펼칠 수 있었을 것 이다.

“성은 저 멀리에 있는걸. 왜 도시 로 가는 거야?”

“성이 불타고 있잖아. 설마 그 형 이 저런데서 지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물 어야지.”

“아,그,그렇구나!”

유렌이 손백을 쳤다. 금색 별 마탑 의 마법사들은 워낙 상식을 초월하 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라,활활 불 타고 있는 저런 성에서도 뻔뻔하게 낮잠을 자더라도 정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도시로 들어서자 의외로 분위기가 활기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몬스 터들의 습격에 안절부절 했을 터이 지만,지금은 마수왕이 사라지고 없 다. 분위기가 업 된 것은 어떻게 보 면 당연할 것이다.

천영은 성큼성큼 걸어서 늙은 노인

한 명에게 다가갔다.

“바시락이라는 마법사를 아시나

요?”

“응? 모를 수야 없지. 껄껄껄.”

노인은 그렇게 웃으며 바시락이 지 내는 여관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여기에 형이 지내고 있대.”

“……이 도시에?”

“응.”

일단 눈에 띄는 곳 중,성에서 가 장 가까운 도시는 이곳밖에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천영이 향한 여관은 그 이름도 화

려하게도 ‘금색 별 다섯 개 호텔’이 었으나 생긴 것은 그저 초라하고 낡 은 여관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 장에게 돈을 주며 방을 잡은 뒤,동 전 하나를 더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에 ‘바시락’이라는 사람이 머 물지 않던가요?”

“그래,205호실에 가보게.”

여관주인은 비밀이고 뭐고 없이 간 단히 정보를 불었다. 씩 웃으며 고 개를 끄덕인 천영이 앞장서자 다른 일행들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뒤따랐다.

205호실 앞에 도착한 천영은 노크

조차 하지 않은 채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그러면서 안으로 냉큼 들어 갔다. 멜레인부터 시작해서 다른 일 행들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방 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라니. 게다가 마수왕을 단신으로 처치할 정도의 마법사라 면,얼마나 괴물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어,뭐야……

침대 위에 남자 한 명이 기절하듯 잠들어 있다가 소리가 들리자 부스 스한 머리를 꾹꾹 누르며 일어났다. 노클텐이 황당하다는 둣 눈을 동그 랗게 떴다.

“저 사람이 정말…… 금색 별 마탑 의 마법사?”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바시락. 그의 첫인상은 그저 동네 삼촌이었 다. 깎지 않아 거칠게 자란 수염과 엉망진창으로 자라있는 머리칼,대 충 아무거나 주워 입은 듯한 복장까 지. 설마 잘못 찾아왔겠거니 싶었지 만 천영은 그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활짝 웃었다.

“바지락 형,오랜만!”

“……바지락 아니고 바시락이다.”

“미안,햇갈리네. 바스락 형.”

“이게 진짜 죽을라고.”

바시락은 천영을 보자마자 귀찮다 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그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천영은 끙끙대며 그의 손을 간신히 떼어낸 다음 망토를 벗어서 구석에 다가 던져버렸다. 바시락은 그의 복 장을 보더니 표정을 와락 구겼다.

“야,사내새끼가 무슨 치마야?”

“그러게. 기구한 내 인생.”

“보기 더러우니까 빨리 벗어.”

“이거 벗으면 빤쓰밖에 안 남는 데?”

“……그건 더 보기 싫으니까,그냥

입고 있어라.”

그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반응 에 유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저기. 바시락 님은 천영이 남 자로 보이나요?”

“어엉? 그럼 저게 여자로 보인단 말이야?”

천영이 바시락이라는 마법사를 마 음에 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

그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내면 을 보고 판단한다. 차원을 건너서 관찰하고 결계를 꿰뚫어서 봐야만 하는 바시락은 대상을 관찰할 때 더 욱 깊은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시락의 눈으로 봤을 때 서천영은 비록 키가 작고 예쁘장 하게 생겼지만 어엿한 28세의 건장 한 청년이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듣자 백화연이 의 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말 던 천영은 의자를 구석에서 질질 끌 고 왔다. 딱 인원수에 알맞았다.

“그나저나 마수왕은 잡은 거야?”

“어,잡긴 했는데. 문제가 조금 있 어서……

바시락은 그렇게 말하며 천영의 뒤 에 있는 인원들을 슬쩍 쳐다봤다.

“근데,네 파티원들이냐?”

“그러냐.”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는 기본적으 로 혼자 활동하는 것을 즐겨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료는 오히려 방 해가 되는 경우가 잦았으니까. 하지 만 여러 가지 색의 개성을 가진 이 들이 모인 금색 별 마탑인 만큼 다 른 마법사가 뭘 어떻게 하고 다니든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바시락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통 성명을 했다. 묘한 눈빛으로 천영이 데려온 인원들을 쳐다보다가 백화연 에게서 시선을 딱 멈췄다. 그는 눈

을 가늘게 뜨고선 작게 말했다.

“이것 참 상처받은 귀여운 강아지 도 있네.”

“뭐?”

“됐고,다들 불편하게 서있지 말고 좀 앉아. 특히 거기 덩치,너. 시야 에 자꾸 어른거리면 신경 쓰이잖 아.”

잔뜩 귀찮다는 둣 손을 절레절레 젓자 노클텐이 뻘쯤한 표정을 지으 며 제일 구석에 있는 의자에 엉덩이 를 걸쳤다.

“나는 바시락이다. 편하게 불러. 그 렇게 부담이라는 단어를 얼굴에 쓰

고 싶으면 내가 펜으로 적어줘도 되 는데.”

“아, 아뇨……

그래,그들은 이미지를 정정했다.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마냥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의외로 친근감 있는 그 모습에 유텐부터 시작해서 통성명을 시작했다. 그들의 이름을 전부 머리 에 새겨 넣은 바시락은 졸린 눈으로 천영에게 물었다.

“근데 여긴 왜 찾아온 거냐.”

“나도 임무 수행 도중에 문제가 조 금 생겼거든.”

너도냐.”

“응,그나저나 목마른데, 마실 거 없어?”

“내꺼 탐내지 말고 네가 사와.”

“이 꼴로 돌아다니기 싫어.”

천영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구석을 뒤적거렸다. 선반의 높은 곳 에 익숙한 와인이 보인다. 드래곤 브레스였다.

천영은 의자를 질질 끌고 가서 그 것에 올라탄 다음 손을 높이 뻗었 다. 그리고 와인을 꺼내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바시락은 머리를 벅 벅 긁적이더니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 남자 의 목소리가 울렸다.

“바시락 님,제가 차를 하나 준비 해왔…… 앗,손님들이 계셨군요. 그 런 줄도 모르고.”

“아냐,상관없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수염을 얇게 기른 쥐 같은 인상의 중년이었 다. 그는 챙겨온 차를 어영부영 들 고 있다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 다. 그러면서 재빠른 눈치로 순식간 에 주변 인물들을 파악하다가,순간 무언가를 보고선 숨이 턱 막힌 둣, 넋이 나가버린 둣,눈을 크게 뜬다.

‘허억!’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런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무언가를 보았다는 얼 굴로 그 남자는 멍하니 천영을 쳐다 보았다. 와인을 꺼내기 위해 뒤꿈치 를 들고 손을 뻗고 있는 그 뒤태, 치마 아래로 드러난 희고 고운 각선 미 파르르 떨리는 짧은 팔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난 것만 같 은 그 표정까지도 전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며 파티원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저 반응이 정상이지.’

바시락은 넋을 잃은 듯한 그 남자 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듯거김,차 안 줄 거야?”

“아,네? 네,맵! 드리겠습니다.”

“그래.”

바시락의 부름에 듯거김이라는 이 름으로 불린 사내가 허겁지겁 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간신히 와 인을 꺼낸 천영은 그것을 품에 꼭 껴안고 테이블로 돌아와 다리를 꼬 고 앉았다. 몾거김의 시선이 본인도 모르게 그 매끈한 허벅지로 향한다.

그리고 자괴감에 휩싸인다.

‘크으윽,아무리 예쁘다지만. 저런 어린애한테……

듯거김은 애써 시선을 돌리려고 노 력하다가 문득 천영의 팔목에 시선 이 갔다. 코르크 마개를 손가락 하 나로 따고 있는 그 와중에 금색의 손목시계가 눈에 띈다.

‘오호,저 손목시계는……

시선을 느낀 천영이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보자 바시락이 말했 다.

“둣거김이라는 사람이야. 내가 이 마을에 머물 때부터 여러 가지로 도

와주겠다고 찾아온 사람이지.”

물론 바시락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 었다. 듯거김이 자신의 일에 마땅한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독거김? 돋거? 돌,둘? 두꺼김? 발음하기 어렵네.”

“……그건 그래.”

천영은 듯거김이라는 남자를 슬쩍 쳐다본 와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 이켰다. 그러면서 마법 스크롤을 품 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바시락은 그것을 보자마자 눈가를 찌푸렸다. 단번에 심상치 않은 기운 을 눈치챈 것이다.

“이 봉인서…… 안에 뭐가 들었 지?”

“던전.”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던 바시락이 되물었다.

“뭐가 들었다고?”

“던전. 악귀가 울부짖는 절벽에서 악귀의 주둥이만 그대로 떼어왔어.”

“……이런 미친놈을 다 봤나.”

품을 뒤지던 바시락이 담배를 한 개비 꺼내자 꽂거김이 달려들어 불 을 붙여줬다.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

며 바시락이 황당하다는 둣 입을 열 었다.

“그러니까. 너는 던전 하나를 그대 로 흠쳐왔고. 그것 좀 나한테 봐 달 라,이거냐?”

“맞아. 안에 ‘만추의 기둥’이 있을 거야. 그걸 열어서 기둥과 연쇄되어 있는 7개의 통로를 전부 찾아줘. 나 는 게이트를 열 줄 모르거든. 봉인 은 내가 전담할 테니까 걱정 마.”

“……진짜 넌 또라이야.”

“히 히.”

요새 그 소리를 조금 자주 듣는 것 같았다.

바시락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 다가,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은데,나 도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마수왕의 성?”

“그래,그 자식 그냥 죽여 버렸더 니 죽기 직전에 똥을 싸지르고 가더 라고. 지옥불을 자기 성에다가 그대 로 뒤덮어버렸어. 일단 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결계는 쳐놨는 데 그 덕분에 마나가 회복되지 않아 서 말이야. 불을 끌 정도의 힘이 없 어.”

그러니까,즉. 그거다.

“나보고 지옥불을 꺼달라고?”

“그래,그것만 해결되면 도와줄게.”

바시락의 그 말에 멜레인이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하,하지만…… 지옥불은 존재하 는 모든 물체를 태우기 전까진 꺼지 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저 큰 성에 전부 번져버렸는데…… 그 걸 대체 어떻게 끄죠?”

그래,보통 사람이면 그런 의문을 표하는 것이 당연했다.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 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바시락과 서천영은 눈을 동

그랗게 뜬 채로 오히려 저들이 이해 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뭐가 어려워?”

“가서 그냥 끄면 되지.”

“……그,그래요?”

멜레인이 깜빡 잊고 있던 사실. 그들은 정상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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