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19화
암살자들에게는 본디 이름이 없 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를 필요가 없었으며 명성 따위에 전혀 집착 할 필요가 없는 아니,그래서는 안 되는 클래스가 바로 암살자이기 때문.
하지만 그들이 암살자 생활을 해 온지 몇 십 년이 흘렀다. 슬슬 자 신들을 지칭할 만한 단어를 떠올 리기에 이르렸다.
그들은 언제나 최고이길 원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름은 한결 같 이 첫 번째를 나타내는 것들이었 다.
에이스,퍼스트,베스트,탑 등등 ‘최고’를 지칭하는 별명을 자신들 에게 붙였고 그들은 여전히 그 이 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봐,센터. 확실하게 할 수 있 겠어?
현재 7인의 암살자들은 천영을 생포하기 위해 도크멘 알렌드 크 루즈에 탑승한 채였다. 당연히 그 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전혀 드러
내지 않은 채 탑승했다.
-이 정도는 쉽지.
센터라고 불린 암살자가 허공에 서 응답한다. 그들은 일종의 텔레 파시,즉 ‘전음(傳音)’으로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들 의 통신망에 접속할 수는 없다.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대화 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 이 대륙에 서도 극소수만이 할 수 있다는 초 고난도의 기술을 7인 전원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타겟은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다른 암살자가 자신만만하게 말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 은 이미 오래 전,3인으로 7서클 의 마법사를 간신히 암살하는 것 에 성공한 전례가 있었다. 정말 오 랜 기간의 준비 시간과 하늘이 내 려준 천운이 따랐기에 가능한 일 이었지만 그 일 이후로 한 가지만 큼은 확실했다.
아무리 7개의 마나 서클을 대성 한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세상의 그림자에 숨어서 ‘은신’ 하나만을 몇 십 년 동안 수련한 그들의 기 척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들 은 심지어 초감각을 익히고 있는
나이트조차 암살하는 자들이 아니 던가?
게다가 이들의 은신술은 다른 암 살자들보다도 훨씬 더 특별했다. 그들은 그 무엇으로라도 위장이 가능했다. 어떤 암살자는 늙은 노 파로 변신해서 쳐다보지 않고도 대상을 완벽하게 주시할 수 있었 고 어떤 암살자는 땅 속에 스며들 기도 했다.
특히 센터라고 불린 암살자는 그 은신술이 더욱 뛰어났다. 그 암살 자가 물속에 뛰어들면 그냥 물과 한몸이 되고 허공에 둥실 떠있으 면 공기와 한몸이 된다. 이 세상
그 어떤 생명체가 공기에서 기척 을 느끼고 물에서 생명을 느낀단 말인가?
절대로 불가능했다.
여태껏 센터의 은신술을 알아차 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은신술과는 별개로 마법 사의 실드를 뚫으려면 기회가 정 말 드물다 이거지……
현재 마법사 서천영은 무방비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책을 읽는 중 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슬쩍 데려가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생포당
할 것처럼 약해보였지만 암살자들 은 서천영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암살자들 따위는 전면전 이 펼쳐지게 되면 몇 초도 되지 않아 순식간에 살해당할 정도로 강한 자들의 기운이었다.
‘근데 여태 그러지 않았던 암살 대상은 없었지.’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전면전은 자살행위다. 나이트와 전면전을 펼 치면 그들은 세 합 안에 목이 달 아날 것이고 마법사와 전면전을 펼치면 다섯 합 안에 산 채로 생 포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
신들보다 강한 자들을 여태껏 죽 일 수 있던 이유는 ‘선제 공격’의 특권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센터,네가 접근해서 녀석의 실 드를 네 쪽으로 돌려라. 우리는 뒤 쪽의 빈틈을 공략해 마나 분쇄 파 동 도약기를 장치한다. 무방비 상 태가 되면 바로 급소를 찔러. 한 번에 죽지는 않을 거야. 죽지만 않 으면,다시 되살릴 수 있도록 ‘약’ 도 준비해왔으니까.
암살보다 생포가 어려운 것은 당 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천 영을 암살한다는 생각으로 임무에 임했다. 죽여서 데려가면 아쉬운
것이고 살려서 데려가면 대박인 것. 하지만 그들은 서천영을 최대 한 살려서 데려가고 싶었다. 가까 이서 보니 알 수 있었다. 저 아이 는 정말 온몸을 만신창이로 만들 어서라도 차지하고 싶을 정도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을 지 니고 있었다.
-움직이겠다.
센터는 짧게 말한 뒤 허공에서 천영에게 접근했다. 그 어떤 감지 마법도 먹히지 않는다. 그 어떤 초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심지어는 센 터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 는 동료 암살자들도 센터의 위치
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센터가 비수를 꺼내든 다. 급소를 단번에 찌를 생각으로.
센터의 준비가 모두 끝나자 동료 암살자들 역시 눈을 시뻘겋게 뜨 고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침착하 게 대형을 유지했다.
계획대로만 하면 된다. 그들의 ‘암살 설계’는 그 무엇보다도 완벽 했으니까. 아무리 7서클의 마법사 라도,절대 당해낼 수 없을 것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센터가 천영의 바로 지척 까지 접근한 그 순간.
천영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더 니 주변을 획획 둘러보았다. 너무 나도 대담하고 뻔한 그 행동에 암 살자들은 순간 숨을 쉬는 것조차 멈추고 그 움직임을 주시했다. 암 살자 에이스는 그 행동을 보며 눈 이 새빨개졌다.
-설마 우리가 접근했다는 사실 을…… 알아차렸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의 은신술은 그 어떤 탐지에 도그어떤 초감각에도 걸려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래, 알아차렸을 리가 없어. 게다가 우리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저렇게 대놓고 쳐다볼 리가…….
거기까지 말한 에이스는 순간 모 든 생각이 정지했다.
만약 서천영은 진작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위치까 지 전부 파악했더라면?
-……설마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것 인가?
게다가 기껏 유인까지 했는데 아 직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아예 대놓고 주변을 살피며 ‘도발’ 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믿을 수 없다. 아니,믿고 싶지 않았다. 암살자들은 에이스의 말이 그저 그의 망상으로 끝나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어 떤 암살자들도 알 수 있는 한 가 지 사실은 이미 모두가 같은 생각 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이야. 섣부른 판단은 이르 다. 계획을 지속…….
에이스가 그렇게 명령을 내리려 는 순간 서천영의 그 작고 촉촉한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벌레들이 귀찮게 꼬이는군.”
-..H
그들은 무언으로 신호를 나누었 다.
후퇴하라!
들킨 순간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끝장이다.
대체 왜? 대체 어떻게? 대체 무 슨 수로? 그런 의문 따위는 집어 쳐라. 그저 도망쳐라. 그래야만 살 수 있을 터이니.
하지만 가장 지척에 있던 센터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쿠우우응!!
센터가 다급히 도약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그를 짓눌렀다. 그것은 그 어떤 마법적 기운도 섞여있지 않은,순수하게 ‘감정’의 파동이었 다. 그것은 그래, 공포였다.
단어 그대로의 ‘공포’가 마치 중 력처럼 센터를 짓눌렀다.
“나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러야 지?”
서천영의 말이 허공을 맴돈다. 그 말은 모든 암살자들의 가슴에 각 인되 었다.
-크,커허억…!!
동료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망연 자실한 얼굴로 센터를 지켜보았다. 모든 은신이 풀린 센터는 입에 게 거품을 문 채로 천영의 바로 앞에 나뒹구는 상태였다. 책을 덮지도 않은 천영은 무심하게 암살자 센 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첫 번째 암살 시도 실패다.
에이스는 치욕스럽다는 듯 작전 실패령을 떨어뜨렸다. 제대로 무언 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그 모든 것 을 간파 당했다. 수치스럽지만 상 대방이 너무 강했다. 그래,무려 금색 별 마탑의 서천영이다. 여태 껏 믿어왔던 센터의 은신술따위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 던 것이다.
천영이 깜빡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으니,현재 계절이 여름이라는 것.
그는 군대에서 있었던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떠올렸다. 나른한 주 말의 오후. 일과가 없기 때문에 침 상에서 좀 편안히 낮잠이라도 자 보겠다고 누워보면 귓가를 앵앵 울려대며 날아다니는 파리와 모기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가!
잠이 간신히 들 법 하면 귓가를 앵앵거리는 날갯짓으로 때려버리 고 또 간신히 잠들 새면 모기가 달라붙어서 피를 쪽쪽 빨아댄다.
천영은 지구에 있던 시절부터 벌 레가 무지하게 싫었다.
결국 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천 영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모기와 파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잡고 싶었지만 잡을 수 없다. 그의 짧은 팔을 휘둘러봐 야 저 얄미운 놈들은 갭싼 몸놀림 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하아…… 벌레들이 귀찮게 꼬이 는군.”
게다가 모기와 파리도 그 종류가 다양했다. 판타스틱한 세계답게 파 리와 모기의 회피술 또한 예사롭 지 않았다.
결국 천영은 극단의 판단을 내리 기에 이르렸다.
‘이 망할 모기들…… 드래곤의 무 서움을 보여주지.’
주변을 획획 둘러본 천영은 근처 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 자마자 즉시 마나의 파동에 힘을 주었다.
[드래곤 피에
쿠궁!!!
주변을 날아다니던 모든 생명체 들을 모조리 기절시킬 정도의 위 압감!
드래곤의 만물을 지배하는 ‘본능 적인 공포’가 이 공간을 잠식했다. 그리고 천영의 예상대로 하늘에서 모기와 파리가 후두둑 떨어져 내 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천 영이 음흉하게 웃어대자 파트라슈 가 울상을 지었다.
-어흑흑,주인. 드래곤의 권능을
“닥쳐. 나는 겁나 심각하니까. 나 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러야지?”
-벌레 따위한테 자존심 세우는 드래곤이 내 주인이라니…… 빨리 주인 갈아타고 싶어.
그렇게 아예 모기와 파리의 싹을 말리려고 드래곤 피어를 강화하는 순간 갑작스레 코앞에서 사람이 툭 떨어져 내렸다.
게거품을 문 채로 기절한 그 남 자는 검은색의 수상한 복장을 한 중년의 사내였다.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고 있는 그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던 천영 은 책을 슬쩍 덮고서는 식은땀을 뻘뻘 홀리기 시작했다.
“저,저분 설마 나 때문에 기절하 신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천영은 황망한 얼굴로 그 중년의 사내를 쳐다보다가 누가 볼 새라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 들쳐 업었
다.
“파트라슈,빨리 병원 찾아!”
-유람선에 병원이 어디 있어!
“그럼 보건실!”
-그건 학교에 있는 거잖아.
“아무튼!”
천영은 어떻게든 자신 때문에 기 절해버린 이 무고한 피해자를 치 료하기 위해 다급히 의료실을 찾 아 헤댔다.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켜보는 6쌍의 눈동자가 복수심을 이글이글 불태우고 있다 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드시 복수해주마. 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