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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28화 (127/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28화

무풍사막. 단어 의미 그대로,바람 이 절대 불지 않는 이 사막의 또 다른 이름은 ‘살아 움직이는 사막’ 이다.

사막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지형이 뒤바뀐다. 어젯밤에는 틀림없이 있 었던 거대한 모래산이 다음날 아침 이면 감쪽같이 사라져 있기도 했고 또 다른 산이 생겨있기도 한다. 하 지만 그것의 원리는 바람이 불기 때 문이다.

건조하면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 는 사막의 바람이 모래를 음직이기 때문.

하지만 무풍사막은 바람이 한 점도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형이 항 상 뒤바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 다. 무풍사막의 모래는 전부 살아있 는 것이 아니냐고.

천영이 뜬금없이 그런 지식을 생각 해낸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 다. 그런 상황이 닥치다보니 그냥 생각나게 되었다.

신성대회의가 시작되기 하루 전.

적막한 무풍사막에는 모든 생명체

가 죽어버린 둣 아무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고요하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 모래사막의 높은 모래산이 갈라지더니 작은 팔이 튀 어나왔다. 그 다음은 머리,그 다음 은 몸통. 간신히 모래 속에서 빠져 나온 천영은 객켁 대며 입 속에 들 어간 모래를 내뱉은 다음 물을 꺼내 입을 행궜다.

“크윽,하성…… 죽여 버릴 거 야……

하성은 제대로 모래산이 없던 평지 에다가 좌표를 생성했을 터이다. 하 지만 하성은 그 당시 너무 급했다.

그렇기에 당연한 사실 하나를 간과 했다. 모래사막의 지형이 언제 어떻 게 뒤바절지 모른다는 사실을.

하필이면 천영이 텔레포트를 해서 도착한 장소가 모래산으로 변해버린 장소였고 그는 마법 시전과 동시에 온몸에 모래가 뒤덮이자 정말 이대 로 가다가는 질식사를 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모래를 파헤치고 나왔다.

“허억,허억……

모래산의 정상에서 몸을 대자로 뉘 인 천영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았 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량한 날씨. 그러나 햇볕이 너무 강해서

눈이 따갑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진을 전부 빼버렸다. 가만히 누워있 던 천영은 뭔가 기척을 느껴 몸을 뒤집었다. 모래 속으로 손을 집어넣 고 마치 주머니를 뒤적거리듯 살살 헤집으니 단단한 무언가가 잡혔다.

천영은 그것을 잡아 당겼다.

“으악?!”

쿠구구궁!!

그러자 모래산이 벗겨지며 그 안에 들어있던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것 은 붉은 갑주를 입은 전갈이었다. 뾰족하고 치명적인 뿔을 가진 모래

언덕만한 크기의 전갈. 그것과 눈이 마주진 천영은 그 신체 차이가 있음 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기는커녕 그 것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쿵!

그 가녀리고 연약한 발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몇 미터나 몸체가 밀려나며 배가 뒤집 힌 전갈은 바동대다가 모래 속으로 숨어버렸다. 전갈은 본능적으로 느 낀 것이다. 드래곤의 공포를. 천영에 게서 새어나오는 힘을.

“별 시답잖은 게 다 짜증나게 하고 있어.”

사제복에는 상당히 여러 기능이 있 었지만, 안타깝게도 더위를 막아주 는 기능은 그리 탁월하지 못한 모양 이다. 분명 통풍도 잘 되고 날씨에 따라 스스로 시원해지는 기능까지 달려있다고 그랬는데 그건 어디까지 나 평범한 내륙에서만 통했고 무풍 사막처럼 살인적인 더위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날씨가 더우면 땀이 나고,땀이 나 면 짜증이 난다. 그 당연한 이치를 몸소 체험하며 천영은 모래산을 다 시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간신히 꼭 대기에 오른 천영은 주변을 둘러보 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문득 그림

자가 드리운 사실을 깨달았다.

“응?”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니,웬 모래 덩어리가 천영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퍼서서석!

또다시 모래에 삼켜진 천영의 자그 마한 신체는 아예 파묻혀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모래산의 옆구리로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온 천영은 다시 하늘 을 올려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없었 던 모래 덩어리가 하늘 위를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뭐야?”

주변을 살펴보니 모래산의 꼭대기 에 있는 모래 덩어리들이 하늘로 둥 실 떠올라 뭉쳐져 마치 구름처럼 떠 다닌다.

-모래 구름이군.

“……책에서 본 적 있긴 한데 실제 로 보니 아주……

기분이 더럽군.

입 안에까지 들어간 모래를 뱉어내 며 천영은 옷을 털었다. 모래 구름 은 이곳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일정 높이 위에 있는 모

래 덩어리들은 어느 순간 하늘 위로 떠오르고 다른 장소로 옮겨진다. 그 리고 하필이면 지금이 그 시간인 모 양이다.

모래 구름을 피하며 천천히 걸어가 다 보니 이번엔 마치 솜사탕처럼 작 게 뭉쳐진 모래 덩어리가 천영의 주 변을 얼씬거렸다. 이건 책에서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 샌드리아 (Sandary) 들이야.

“샌드,리어? 샌드아리? 발음이 힘 드네.”

-정령어라서 그래. 음,그래. 이것 들은 모래의 정령이라고 봐도 무방

하겠지. 어쨌든 자연 그 상태의 존 재들이니까. 저것들이 이 사막을 움 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보면 돼.

“흐음……

마치 애교를 부리듯 천영에게 다가 와 볼을 비벼대는 모래 솜사탕을 보 며 그는 이맛살을 구겼다. 부드럽긴 하지만, 볼에 닿을 때마다 모래가 묻는다.

-주인이 좋아서 그러는 거야.

“난 싫어.”

손을 획획 저어 그것들을 쫓아내보 아도 잠시 물러날 뿐 계속해서 들러 붙으려고 한다. 꼬라지가 꼭 유니콘

과도 비슷했다. 비록 지성체는 아닌 것 같았지만.

파리 쫓듯 팔을 획획 휘두르던 천 영은 결국 짜증지수가 폭발했는지 파트라슈에게 말했다.

“야,넌 얘네랑 말할 수 있어?”

_ 응.

“그럼 좀 꺼지라고 해봐. 빡치니 까.”

-너무하네.

“너무하긴.”

결국 파트라슈가 으름장을 놓자 샌 드리아들이 물러났다. 확실히 드래

곤의 정령답게 파트라슈는 어딜 가 도 높은 계급에 축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쾌적한 걸음을 할 수 있게 된 천영은 하성이 알려준 장소로 천 천히 발걸음을 했다. 그 와중에 드 는 생각은 단 하나.

‘하성 이 새끼,단단히도 졸았나보 네.’

텔레포트의 좌표와 만추의 기둥이 어찌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드래곤 의 시력으로도 간신히 그 기운을 포 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나 타 차원의 기운에 오염될까봐 겁을 집 어먹은 하성은 아주 멀리까지 도망 친 상태에서 스크롤의 마법을 사용

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만추의 기 둥은 모래에 파묻혀있지 않았다.

아니,다시 말하자면 만추의 기둥 주변에는 모래가 쌓이지 않았다. 마 치 모래 알갱이가 피해가는 것처럼.

만추의 기둥으로 직진하던 천영은 불현듯,걸음을 주춤했다.

-주인.

“응.”

천영은 다시 태연자약하게 걷기 시 작했다. 평범하게 만추의 기둥을 향 해 걷는 그 모습에 파트라슈는 의아 함을 느꼈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언뜻 보면 평범하게 걷는다고 생각 될 수도 있는 그 모습에서 파트라슈 는 특이점을 몇 발견할 수 있었다.

걸음의 보폭에 특정한 리듬이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폭이 줄어들 었다가 늘어나기도 하고 손가락을 갑자기 꺾거나 눈을 깜빡이는 타이 멍이 엇갈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평범하게 걷는 모양새였다. 파트라 슈 또한 그렇게 생각할 뻔했지만 그 녀는 천영과 연결되어있는 수호 정 령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정령조차도 간신히 눈치첼 수 있을 정도로 천영의 마나가 아주 미세하 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영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만 추의 기둥으로 직행하지 않고 여유 롭게 꼬불꼬불 커브를 돌거나 만추 의 기둥 주변을 멀리 돌기도 했다. 그렇게 보는 이가 답답할 정도로 한 참이나 돌아서 걷던 천영은 마침내 만추의 기둥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시원한데.”

만추의 기둥에 가까이 근접하자 천 영은 시원하고 청량한 감각이 도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찜질방 문 열고 막 나왔을 때랑 비슷하네.’

무풍사막의 살인적인 더위 속, 만 추의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함은 오아시스보다도 더욱 소중했다.

천영은 조심스레 조금씩 천천히 접 근했다. 확실히 다가갈수록 시원하 다기보다는 이제 슬슬 추워졌다. 거 기서 더 가까이 붙으니 춥다보다 동 상에 걸릴 정도로 날카로운 냉기가 뿜어졌다.

-이 정도로 기운이 흘러나온다

M--.

“늦은 건 아니지만 아슬아슬했어. 봉인을 해야겠지.”

게이트가 딱 열리기 직전에 찾아온

모양이다. 타이밍을 잘 맞춰서 다행 이라고 생각한 천영은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직 아무것도 나오 지 않았다면 간단했다. 결계천석을 이용해 기둥을 뽑아내거나 아니면 아예 봉인진을 발동시켜서 게이트를 막으면 된다.

“……물론 그 전에 친구들이랑 밀 담 좀 해야겠지만.”

천영의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래 아래에서 7개의 그림자가 솟아 올라 하늘에 둥실 떴다. 개성이라곤 쥐뿔만큼도 없이 죄다 검은색 로브 로 통일한 그 마법사들을 보며 천영 은 입을 쩍 벌렸다.

“검은 옷 입고 덥지도 않나? 저 아저씨들.”

지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천영조 차도 더워 죽을 것 같은데. 그들이 얼마나 더울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 다.

하지만 천영의 그런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마법사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과연 빙제현 차원의 게이트가 아 무리 엑스트라 작품이라고는 해도 점검하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 는군요.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서 천영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래? 싸인 해줄까?”

그러자 검은 로브의 마법사는 고개 를 젓는다.

“후후,싸인 보다 더욱 좋은 걸 받 아갈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 뭐가 좋은데?”

검은 로브의 마법사가 입술만을 드 러낸 채 씩 웃는다.

“당신의 육체. 영혼을 갈기갈기 찢 은 다음,육신은 인형으로 만들어 저희들이 영원히 가지고 놀도록 하 지요.”

그의 말에 천영이 기겁하여 소름끼 친다는 둣 양팔을 부여잡고 으슬으 슬 떨었다.

“아무리 나라도 내 앞에서 나를 본 떠 만든 피규어를 갖고 놀겠다는 건 조금 기분이 묘한데.”

명백히 표정에다가 ‘너. 기분 나 빠.’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천영을 보며 마법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러다 갑자기 정색하며 웃음을 뚝 그친다.

“어쨌든 여태 저희들의 소중한 만 추의 기둥을 몰래 뽑아간 대가를 치

르셔야겠습니다.”

“흐음,이게 너희 꺼구나.”

마법사들은 하늘에서 각각 이형마 법을 캐스팅했다. 세간에서는 ‘흑마 법’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사실 ‘흑’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이계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 가장 잘 알려진 흑마법은 그것들 중에서 도 가장 질이 떨어지고 흔한 종류에 불과했다.

그들의 손에서 특이한 문양의 마법 진이 피어올랐다. 도저히 그리픈의 마법체계라고는 볼 수 없는 상식 밖 의 공식과 마법 문양이 펼쳐지자 천 영이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빛냈

다.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도 그들의 마법 공세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매우 뛰어 난 배틀 메이지였다. 상대가 설령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고 해도 이 렇게 멤버가 모두 모인 이상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검은 로브의 마법사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시원했다.

빙제현 차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선선히 불어 와서 시원했다.

‘……뭐지?’

이곳은 무풍사막. 절대로 바람이 불지 않는 장소.

그런데 바람이 분다. 마나의 유동 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세밀 한 움직임으로.

천영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살랑살 랑 흔들리고,옷자락이 펄럭인다.

바람이 분 다음에야 마법사는 이 바람의 흐름이 ‘마나’로 인한 작용 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마법사가 마법의 흐름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패착 요인이나 다름없었다.

7인의 마법사가 위기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만추의 기둥을 중심으로 작은 토네 이도가 발생하는가 싶어 서둘러 실 드를 발동시켰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애초에 천영은 실드 따위로 먹히는 마법을 준비하지 않 았다.

천영의 오른손에 검은색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그것을 만추의 기둥에 착 붙이는 순간 구체에서 7개의 방 향으로 무언가가 뻗어나갔다. 마치 검은 벼락처럼도 보이고 검은 줄기

처럼도 보였으며 검은 뱀처럼도 보 이는 그것들은 단 0.5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 안에 7인의 마법사를 모 두 붙잡은 다음 기둥으로 끌고 데려 왔다.

주우우욱!

쿵!

“으으옥!”

“크윽!”

털썩,철푸덕!

마법사들이 만추의 기둥에 다닥다 닥 달라붙는 것까지 확인한 천영은 수인을 맺어 마법 하나를 발동시켰 다. 그러자 4개의 작은 기둥이 퉁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 에게서 작은 실이 뽑혀져 나와 7인 의 마법사를 간단히 속박한다.

천영의 마법에 속박된 채 마법사 중 한명이 중얼거렸다.

“이,이런 수준 높은 마법을 캐스 팅조차 하지 않고 사용하다니……

대체 언제? 어떻게?

그런 의문이 든다. 천영은 마법을 시전하려는 징조조차 보이지 않았 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수인이라고 생각하여 그에 맞게 대응할 터였고, 입술을 달싹이면 그것을 틀어막을 계획이었다. 마법전에서 마법을 먼

저 장전한 마법사가 유리한 것은 당 연한 이치일 터.

아무리 이계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 법사라고 할지라도 주문과 수인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그럴지 언데 천영은 수인,주문 그 딴 것들은 전부 무시한 채 이런 대 규모 마법을 발생시켰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의심스러 운 행동을 하긴 했었다.’

만추의 기둥까지 도달하기 전,천 영이 보여주었던 특이한 걸음걸이, 눈의 깜빡임, 그 리듬까지. 숨죽인 채 천영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이기

에,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손이 아닌 전신으로 마

나의 배열을 완성시켰다고?’

손이란 참으로 편리하다. 수인을 맺기 위한,여러 가지의 문자와 단 어,공식,마나의 배열을 손가락을 배배 꼬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 니까. 하지만 그런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계약’에 전신을 사용하는 것 은 참으로 비효율적이었다. 모양도 제한되어있고 상당히 많은 움직임을 거쳐야만 했으니까.

그러니까,즉.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법한 짓을

이렇게 간단히 벌이다니……

마법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했 다. 천영의 간단한 기교와 속임수 하나에 완벽하게. 제대로 된 마법전 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패배했지만 분한 마음보다는 천영의 강함에 경 외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천영은 사제복의 주머니에 손을 꽂 아 넣은 채 마법사들에게 다가가 쪼 그려 앉았다.

“아저씨들 누구야?”

물론 이렇게 묻는다고 순순히 대답 할 리는 없겠지. 천영은 여차하면 고문까지 할 생각이었다. 만추의 기

둥은 분명히 대륙에 나쁜 영향을 끼 치는 해악이었고 그것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놈들이 그다지 착한 편으 로 생각되지는 않았으니까.

그의 머릿속에서 전기 고문, 물고 문,단순 폭력 등등이 떠돌아다닐 때 마법사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후후후. 저희들은 ‘일곱 다리 의 연결자’ 소속의 마법사들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만추의 기둥 역시 우리들의 작품이지요.”

그에 당황한 것은 천영이었다.

“그거 그렇게 막 쉽게 말해도 되는 거야? 막 겁나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 거 아니었어?”

천영은 새삼 영화를 너무 봤나 싶 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당연히 여태까지는 비밀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숨길 필 요가 없으니까.”

“……뭐?”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여태까지는 자신들을 꽁꼼 숨겨왔다. 하지만 이 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자신 들의 그룹 ‘일곱 다리의 연결자’라 는 클랜을 내세워 뭔가를 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 이 하는 무엇인가가 과연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뭘 계획하고 있는 거야?”

“흐음. 궁금하십니까?”

자신이 속박되어있는 상태에서도 오히려 갑의 행세를 하는 그 싸가지 에 천영은 마법사의 머리통을 손바 닥으로 후려쳤다.

퍽!

“콕!”

하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천영은 모래를 한 움큼 집자 마법 사들이 홈칫 몸을 떨었다. 그의 흉

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보건대 분명 현자급에 달한 마법사의 두뇌 를 풀가동시켜 어떠한 고문을 하려 는 것이 틀림없었다. 리더 마법사 또한 굳은 얼굴로 천영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크크크.”

천영은 모래알맹이를 고르고 골라, 마법사의 바지 안쪽에다가 홀려 넣 었다.

“이제 넌 하루 종일 존나 껍찝할 거야.”

자기가 생각해도 상당히 끔찍한 것 같았는지 천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 다.

마법사는 치욕스러운 둣 이를 악 물었지만,그래도 음침한 웃음을 홀 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늦었습니다. 사흘 뒤,삼대월 식이 시작됩니다.”

삼대월식. 그 날에는 온갖 잡귀가 하늘로 사라지고 성스러운 기운에 의해 망령들이 정화되며 불행한 이 에게는 축복을 내려주는 특별한 날 이라고 한다. 당연히도 모두 미신이

다. 하지만 그런 미신이 괜히 붙었 을 리는 없다. 천영은 삼대월식을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지만 분명 어떤 특별한 마나의 흐름이 있을 것 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사흘 뒤면…… 신성대회의 다음날 인데.’

일곱 다리의 연결자라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이 그룹이 뭐를 꾀하고 있 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작 사흘 가지 고는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천영에게 이 렇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겠지.

얼굴을 굳힌 천영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 마법사들에

게서는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필요 성을 느꼈다. 손에 파직거리는 전류 를 머금은 채 천영이 입을 열려는 순간,갑자기 마법사들이 고개를 번 쩍 들고 주위를 허둥지둥 살폈다.

“무,뭐야 이거.”

“잠깐,잠깐만……

“풀어줘! 빨리,빨리 풀라고!”

마법사들은 그토록 가리던 후드가 뒤로 넘어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 은 채 바동바동 거리고 있었다. 천 영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을 묶 고 있는 만추의 기둥에서 냉기가 더 욱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쩌적,쩌저적! “으,끄록……

“꺼어어……!”

정말 갑작스레 냉기의 칼날이 새어 나와 마법사들을 모조리 얼려버렸 다. 눈을 까뒤집은 채 괴성을 지르 던 마법사들은 침을 뚝뚝 홀리던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천영은 사제복 소매로 얼굴을 가린 다음 뒤로 물러났다. 만추의 기둥 주변에 ‘공간 균열’이 발생하고 있 었다. 전에 본 적 있던 것이었다.

‘설마 내부에서 괴수라도 나오려는 건가……?’

하지만 괴수가 나오기는커녕 균열 에서는 푸른색의 얼어붙은 송곳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왔다. 쩌적 소 리와 함께 공간 그 자체를 얼려버리 며 고드름은 그 목표물조차 정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산개했다.

‘젠장. 전조도 없이 균열이 열린다

고?’

설마 갑작스레 균열이 발생할 줄은 몰랐던 천영은 급히 드래곤 폼을 사 용했다. 바람의 숲에서 보았던 균열 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것은 공간 자체가 금이 가는 것처럼 그 크기가 계속 커지고 있었고 어디까지 여파 가 미칠지 알 수도 없었다.

결국,봉인하는 수밖에 없다. “……거지같네,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균열이 커지 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점점 거대 해지고 있었고,그 여파로 벌써 반 경 1km가 얼어붙었다. 드래곤 폼으 로 잽싸게 변신하지 않았으면 천영 도 얼어붙을 뻔했다. 어린 드래곤의 신체이지만 마법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닌 단순 자연 냉기와 열기에 대해 서는 거의 면역이다. 그런 드래곤의 신체로도 덜덜 떨리는 추위가 느껴 질 정도이다.

‘체감 영하 100도는 되는 것 같

농담 같지만 정말 그 정도의 한파 가 들이닥쳤다. 어느 새 모래 구름 은 전부 꽁꽁 얼어붙었고 살구색의 모래사막은 푸른색 서리로 뒤덮이고 있었다.

천영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수밖 에 없었다.

“……진짜 다음부터는 이딴 짓 절 대로 안 할 거야.”

-주인,설마……?

“내가 직접 들어간다.”

무풍사막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가 면 수많은 부족과 거대 국가가 서식

하고 있다. 천영에게 원래 그런 사 명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드래곤이 된 이후로 어찐지 그런 감정들이 강 해졌다. 어쩐지 천영은 저기에 들어 가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냥,그런 느낌이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살인적인 한 기가 몰아치는 저 차원을 보면서 천 영은 그저…….

‘옆집으로 놀러가는 듯한,익숙한 이 느낌은 대체 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결단은 신속했고 행동은 더욱 빨랐 다.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천영은 그대 로 균열 속으로 돌진했고 이윽고 꽁 꽁 얼어붙은 사막은 잠잠해졌다.

균열이 서서히 닫히더니 이윽고 완 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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