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32화 (131/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32화

빙제 (氷帝).

자신을 그리 설명한 거인을 바라보 며 천영은 그저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천영 역 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높 이 날아올라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이제 보니 빙제는 은은한 미소를 머 금고 있었다. 첫 마디가 반갑지 않 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말이 반갑다 는 것이었지만 천영은 그가 자신을

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반갑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 미이지요?”

“그것은 내가 빙제로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세 계를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생명체 로서,저는 용이 찾아온다면 반가울 따름이지요.”

“그게 무슨……

빙제는 잠시 이마를 찌푸렸다. 천 영의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빙 제는 이윽고 뭔가를 깨달았는지 고 개를 끄덕였다.

“어린 용이시군요. 아직 본인에 대

해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입 니다.”

언제나 듣는 저 소리가 이제는 지 겨울 지경이었다. 에니안,파트라슈, 심지어는 다른 차원에서 만난 빙제 까지. 그들은 언제나 드래곤인 본인 보다도, 더욱 드래곤에 대해 잘 알 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 해주실 수 있습니 까?”

“홈……

빙제가 눈을 감았다. 그에 천영은 놀랐다.

‘눈꺼풀이 있었다니……!’

이윽고 빙제가 입을 열었다.

“용이란 차원을 건너다니며 세계를 구원하는 자들. 그들이 찾아온다면 세계는 반드시 구원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빙제로서 반겨야하 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지요.”

빙제가 고개를 저었다.

“용이 찾아온다는 것의 의미는 그 세계에 어떠한 위험요소가 있다는 의미. 사건이 터졌을 때 해결사가 오면 반갑기야 하겠지만 애초에 사

건 자체가 없는 편이 이곳을 다스리 는 왕으로서 마음이 더욱 편한 법이 지요.”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저희들의 세계는 위 험하지 않습니다. 왕이기에 잘 알 수 있지요. 솔직히 당신이 처음 이 곳에 찾아왔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만 그저 당신이 현재 잠깐 머물고 있는 차원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으 니 마음이 놓이더군요.”

빙제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희 차원 또한 300년 전 용에

의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든 얼음 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빛과 어둠이 터져 나왔으며 갑작스 레 중력이 발생하고 공기라는 것이 생성되었지요.”

빙제는 말로 더 형용할 수 없다는 듯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정말 끔찍했지요.”

그거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천 영은 그 말을 꾹 삼켰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용이 찾아와서 해결해주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용이란 언제나 세계를

구원하는 구원자들. 그렇기에 하나 의 생명체로서 저는 용을 반깁니 다.”

그제야 천영은 이 차원에 들어오기 직전 느꼈던 감각을 이해했다.

마치 옆집을 떠나는 것처럼 가벼운 나들이를 가는 것만 같은 느낌. 드 래곤에게 있어서 다른 차원으로 이 동하는 것은 고작 그 정도의 의미밖 에 되지 않았다.

“생명체라면 용을 반기는 것은 당 연합니다. 본능적으로 그리 느낄 수 밖에 없지요. 용을 적대하고 죽이기

위해 살의를 뿌리는 생명체는 이 모 든 차원을 통틀어서 그다지 많지 않 습니다. ‘욕심’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악의’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아니라면.”

그의 말에 천영은 욕심과 악의를 모두 가진 생명체를 생각했다.

“그런 존재는 아주 드물지요. …… 전 차원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곳에 분포되어 있는 생명체인 ‘인간’이 그에 해당되지요.”

인간은 전 차원을 통틀어 욕심과 악의를 모두 가진 아주 극소수의 생 명체임과 동시에 수많은 차원에 분 포되어있는 가장 많은 생명체이기도

했다. 확인사살을 당해버린 것 같은 느낌에 천영이 표정을 굳히자 빙제 가 껄껄 웃었다.

“현재 어린 용께서 머물고 계시는 차원에도 인간이 있는 모양이군요. 아직 어리실텐데 벌써부터 활동하고 다닌다니. 당신이 현재 머물고 있는 차원의 인간들이 당신을 많이 존경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질문에 천영은 잠시 침묵했다 가 답했다.

“……제가 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그 세상에 드래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자 빙제가 놀랐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천영은 그의 입 안쪽에 목구멍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빙제도 밥은 먹는 모양이다.

“어린 용이시여.”

“……네.”

“당신은 너무 어립니다.”

“네?”

빙제가 불현듯 꺼낸 그 말에 어안 이 벙벙해진 천영이 되묻자 그는 조

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용이란 자고로,그 차원의 모든 생명체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 용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일 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하지만 방금 악의를……

천영이 악의에 대해 말을 꺼내려 하자 빙제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인간이라 할지라도 용에게 악의를 드러내는 자는 아주 극소수 입니다. 악의 그 자체에 먹혀버린 자들.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생명 체는 용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용이란 그 위험을 감수해내면 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 습니다. 용의 존재만으로도 차원에 속해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문제였다. 용의 존재가 용의 임무가 그렇게나 무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용이시여 당신은 당당해지실 필요 가 있습니다. 차원을 건너다니며,세 계를 구원하는 구원자께서 고작 인 간이라는 자그마한 생명체의 악의를 두려워해 모습을 숨기는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부

끄러운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날개를 펴고 당당히 세상에 모습 을 드러내십시오. 그 누구도 당신을 적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용이란 차원 여행자임과 동시에 희망을 부 여하는 구원자들. 설령 그 어떠한 위협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당신을 더욱 견고하고 강하게 만들 어줄 뿐입니다.”

천영은 빙제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 다. 정말 용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것일까?

아니다. 생존법칙에 의거하면 당연

한 일이다. 드래곤은 희귀한 생명체 이고,인간은 그것을 욕심낸다. 만약 처음부터 천영이 본인이 드래곤이라 는 사실을 밝혀냈다면? 분명 수많은 사냥꾼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호기심,질투,욕심 등의 각양각색 의 감정을 가진 이들이 찾아왔을 것 이고 천영은 ‘드래곤 라이프’를 채 즐기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거나 노 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천영은 그 당 시로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본인을 숨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는 충분한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 금색 별 마

탑의 마법사이자,세계 최강은 아니 지만 어느 정도 강자의 반열에 위치 한 상태. 언제까지 숨기기만 할 것 인가?

빙제의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었 다. 용이 아닌 자가,용에게 용다움 을 설명하는 이 시츄에이션은 장르 를 따지자면 코미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천영은 빙제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용은 세 상에 모습을 드러내 ‘희망’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기둥이 되어줄 필요 가 있었다. 용이란 애초에 그런 존

재이다. 그것을 지금에서야,용이 아 닌 다른 생명체에게 듣고 나서야 깨 달을 수 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천영은 한참이나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빙제는 결코 천영이 고민 하는 도중 말을 걸거나 재촉하지 않 았다. 그저 하나의 어린 용이 깨달 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천영의 눈빛이 변했다.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빙제.”

“어린 용에게 주제넘은 참견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하하. 그럴 리가. 그리고 제 이름

은 용이 아니라 ‘서천영’입니다.”

그리 말하며 서천영은 빙제에게 본 론을 꺼냈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 함은?”

천영은 자신의 문제를 빙제에게 설 명했다. 아직 본인이 어린 용이라 차원의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만약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면 그것을 알려주길 바라 면서.

“저런……

빙제가 고개를 젓는다. 당연히도 차원 문이 존재할 리는 없다.

“당장 저희도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다만 당신은 ‘용’입니다. 단순 히 길을 잃었다 해서 이곳에 홀러 들어오지 않습니다. 용이 찾아가는 세계는 언제나 그 의미가 반드시 있 는 법.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찾 으십시오. 저도 알지 못하는 이 차 원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결국 빙제는 천영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는 의미였다. 단지 단서만 있을 뿐.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드래곤 서천영,당신과 대화해서 즐거웠습니다. 되도록 다시 보는 일 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다시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용이 이 세계에 찾아올만한 일,자 신들의 세계에 불화가 닥치지 않았 으면 좋겠다는 제왕의 걱정이다.

제왕과 드래곤의 작별인사. 빙제는 그리 말하고 쿨하게 떠나갔다. 차가 운 세계의 왕 아니랄까봐 등장도 퇴 장도 모두 시원(Cool)했다.

그렇게.

그리하여.

천영은 이곳을 방랑하기 시작했다.

헤매는 것이야 여태 해오던 것이었 기에 이래봐야 방법이 없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빙제현의 차원에 왕이 알지 못할 만한 하지만 위험할만한 일이 뭐가 있지?’

300년 전 난데없이 얼음이 녹기 시작해 모두가 위험했을 때 용이 불 현듯 등장해 그 일을 해결하고 사라 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평화로운 차원에서 발생하는 위험요소는 ‘얼 음이 녹는 것’ 정도로 추측할 수 있 었다. 그럼 용은 어떻게 녹아내리는

이 차원을 다시 꽁꽁 얼렸을까?

아무리 성룡이라 할지라도 이 세계 를 전부 얼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드래곤은 본질적인 원 인을 찾아내서 해결했다는 의미가 된다.

‘……잠깐. 차원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었다면?’

그리픈의 차원은 이 차가운 세계를 녹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 지만 그곳과 이곳의 온도차를 생각 해본다면? 최소 몇 백도 이상이나 온도차가 나는 두 세계가 연결된다 면 그리픈은 물론이요 빙제현 또한 위험할 것이다. 그것이 유지되고 점

차 시간이 지나면 한쪽은 녹아내리 고 한쪽은 얼어붙을 테니까. 비단 그리픈이 아니라 다른 어떤 차원과 도 연결되는 순간 빙제현은 위험할 것이다. 그리픈 또한 그랬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

만약 차원 게이트가 존재한다면 그 것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일일이 돌아다니며 찾기엔 이 세계가 너무 나도 넓었다.

-주인.

-주인은 드래곤이다. 명심해.

언제나 듣는 말. 당연하다고 생각 하여 당연히도 지나친 그 말. 천영 은 방금 전에 들었던 드래곤의 존재 의의를 또다시 상기해낸다.

‘차원 여행자들……

아직 어리지만 천영 역시 드래곤이 기에.

드래곤이니까,차원이 연결되는 힘 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문을 여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 미 열린 문을 감지하는 것 정도라 면.

‘가능할지도 몰라.’

눈을 감는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이제 와서는 거의 하지 않았던 네청 이 알려주었던 ‘명상’을 시작한다. 자세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편하게 몸에서 힘을 빼면 된다.

천영의 의식이 자신만의 심상세계 로 빨려 들어간다. 온통 검은색의 세계,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천영과 눈을 마주했다. 금색의 눈동자에 금 색의 뿔을 가진 검은 피부의 드래 곤.

마치 ‘네가 성인이 되면 이런 모습 일 거란다.’라며 친절하게도 알려주 는 것만 같은 그 드래곤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항상 이 심상세계에

들어오면 언제나 눈을 마주치고 있 던 드래곤이 고개를 돌리는 일은 참 이질적이었기에 천영 역시 시선을 따라서 돌렸다.

그곳에는 거무튀튀한데다가 기분 나쁜 이질적인 기운을 흘리는 무언 가가 있었다.

천영은 흘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 다.

“……저게 뭐야?”

그곳에는 검은색의 점 하나가 있었 다. 아주 자그마해서 언뜻 눈길만 주었다가는 아무것도 아니겠거니 싶 어서 스쳐 지나갈 정도로 작은 점.

하지만 천영은 틀림없이 그곳에서 빙제현의 날카롭고 차가운 냉기가 아닌 불쾌한 ‘어둠’의 감각을 느꼈 다.

‘어둠과 관련된 차원인 건가. 어째 서 연결된 거지?’

그것은 천영도 알지 못하고 이 행 위를 벌인 일곱 다리의 연결자들도 알지 못하는 사실.

동시에 두 개의 차원을 열어버리려 고 계획했기 때문일까 ‘삼대월식’이 시작되는 지금 이 순간. 서로 병렬 적으로 연결된 세 개의 차원이 서로 의 차원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 리픈과 연결된 다크룰 디멘션,그런

그리픈과 연결된 빙제현 차원. 빙제 현과 다크룰은 아무런 접점이 없음 에도 불구하고 그리픈 차원의 ‘삼대 월식’이 시작되어 차원 간의 틈이 약해진 덕분에 이렇게 다크룰으로 통하게 되었다.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 튼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단 말이지?”

천영은 심호흡을 했다. 단 하나의 가능성. 저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 고 또한 그리픈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하지만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시도한다.

-주인은 아직 차원 게이트를 열 수가 없다. 어떻게 하려고?

파트라슈의 질문에 천영은 굳이 뭘 또 그런 걸 묻냐며 이상한 얼굴을 했다. 아직도 날 몰라? 라는 의미를 내포한 한심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무력행사밖에는 안 남겠 지?”

-……주인,설마.

“그래,그 설마다.”

천영은 아주 깊은 숨을 들이쉬었 다. 현명해 보이는 별빛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누구보다 현명한 드래 곤은 그렇기에 가장 무식한 방법을 채택했다.

“시간은 충분해. 이 차원의 마나를 끌어 모아,내 마나까지 올 인해서, 드래곤 브레스를 때려 박는다.”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테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