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40화
36장 천공의 도시 람테르필
“반갑습니다. ‘셜론’이라고 합니 다.”
천영이 원정 대장을 처음 본 감성 은 이러했다.
‘뭐 이런 뻔뻔하게 정신나간 놈이 다 있지?’
원정 대장과 악수를 나누며 천영은 원정대의 이름을 재차 확인했다. 잘 못 본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렇 게 적혀 있었다.
‘일확천금 원정대.’
암만 아이올피아 지방의 탐험가들 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몰려든다지만 그 심정을 원정대의 이름으로 바꿔 버릴 줄은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으 면서도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게다 가 이런 작명 센스를 가진 원정 대 장이라면 조금 유쾌할 법도 한데 그 런 점 하나 없이 그냥 무뚝뚝한 성 격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서천영이라니 직접 서류를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할 뻔했습니 다.”
일확천금 원정 대장 셜론이 천영을 보며 그리 말했다. 그럴 법도 하다. 아무리 드래곤의 등장이라는 사상초 유의 사태에 대해 신문에 실렸다고 는 해도 중앙 대륙이 아닌 지방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아니,정확히는 드래곤의 등장까지 는 알지만 서천영의 얼굴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중앙 대륙의 신문에도 서천영의 사 진이 막 뚜렷한 편은 아니었다. 오 히려 굉장히 흐릿한데다가 달밤을
등진 채 고드름 위에 서있던 사진이 찍힌 바람에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신문에 서천영의 사 진이 제대로 등장한 사례도 몇 번 없었고 간혹 나오는 사진도 대부분 이 흐릿했기 때문에 지방까지 가서 얼굴을 알아봐달라고 하는 것은 조 금 무리한 부탁이리라.
‘차라리 이 편이 편하긴 하지만.’
오히려 천영은 이 그리픈 대륙이 정보 전달력에 있어서 지구보다 훨 씬 뒤떨어지는 것에 감사했다.
원정대는 총 50명가량으로 구성되 어 있었다. 아무래도 오지를 탐사하 는 것인 만큼 많은 인원은 필요 없
을 것이라는 2황자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 현재 그들은 데리고 온 병력 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그아 티온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을 잃었 는지는 모른다. 즉 굉장한 위험부담 이 발생한다는 의미.
하지만 이곳에 참여한 원정 대원들 은 그 누구도 그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탐험선은 1시간 뒤에 출발합니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적다보니 가뭄에 단비라도 오는 기분이군요.”
셜론은 천영이 부탁한 대로 그를 평범한 마법사처럼 대하긴 했지만
말투가 미묘하게 딱딱한 것이 부담 이 살짝 있긴 한 모양이다. 평범한 그리픈의 주민인 셜론에게 있어 ‘용’이라는 존재는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고 있어도 잘 실감이 나지 않 은 모양이었다. 어쩐지 뻣뻣한 셜론 을 보며 천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은 볼거리도 많으니 천천히 쉬었다 와주십시오.”
셜론이 사라지자 주변을 둘러보던 네청이 입을 열었다.
“장사꾼들이 많구나.”
원정대가 집결한 장소는 탐사용 비 행정의 선착장이었다. 여타의 비행
정과는 달리 크기가 작고,선체가 육중하고 튼튼했으며 대포처럼 생긴 마법 방어 장치가 눈에 띄도록 구비 되어 있었다.
“저들은 ‘벼락 장사꾼’이라고 해서 이렇게 가끔 원정대가 모이면 필요 한 물건을 잔뜩 들고와서 한몫 챙기 려는 장사꾼들이에요.”
“벼락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나?”
“별 이유는 없고…… 장사가 잘 되 는 경우 돈 많은 탐험가들이 물건을 왕창 구입할 때가 있는데 그 날을 ‘벼락 맞았다.’라고 표현하거든요. 최소한 한 달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번다나 뭐라나. 그 래서 저들끼리 그런 별명을 붙였다 네요.”
천영의 설명에 네청이 신기하다는 둣 장사꾼들에게 다가갔다. 부글부 글 끓고 있는 불길한 보라색의 액체 포션이나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약 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을 깎아 만든 지팡이 등등 정말 다양한 물건 을 파는 사람이 사방에 가득했다. 일확천금 원정대를 대상으로 모인 장사꾼들이지만 이 장사꾼들을 목적 으로 몰려든 평범한 탐험가나 용병 들도 꽤나 있었다.
평상시엔 한산했던 선착장에 난데
없이 인파가 몰아닥치자 선원들만 죽을 상이었다.
“이건…… 뭐지?”
네청이 슬쩍 집은 물건에 장사곧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아이고,아가씨. 잘 고르셨습니다 요. 그 물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신체 부위를 따지지 않고 모양을 언 제 어느 때나 변형시켜서 사용할 수 있는 ‘초합성 특수 변형 만능 안마 기’라고 하지요! 이거 하나만 있으 면 힘들게 팔목을 주무를 필요도 없 고, 어깨를 툭툭 칠 필요도 없지요. 어떤 부위든 반드시 시원하게 풀어 주는 만능 안마기!”
“오호라.”
그녀가 눈을 빛내자 장사꾼이 입꼬 리를 귀에 걸쳤다. ‘걸려들었다.’라 는 느낌이었다.
“아이고 손님,많이 피로해 보이시 는데. 혹시 평소에 허리가 아프신가 요? 어깨가 결리신가요? 손목의 통 증이 심하신가요? 그렇다면……
“나는 아픈 곳이 없네만.”
“……이 안마기를 ……네? 없으시 다구요?”
네청은 안마기를 가져다가 어깨에 툭툭 치거나 팔목에 대어보는 둥 사 용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깨가 아플 이유가 있느냐? 허리 가 아픈 것은 뜬금없이 왜 묻는 것 이지?”
“아니, 그 저게……
네청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것 이었다. 천영이 다급히 말했다.
“그 만성 통증이라고 해서…… 손 목에 항상 따끔한 통증이 있거나, 허리가 뻐근하거나,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안마기를……
“왜 아픈 것이지? 다친 부위에 안 마기를 대체 왜 쓴단 말이더냐.”
장사꾼과 천영은 할 말을 잃었다. 장사꾼은 모르겠지만 천영은 네청이 본래 이무기였으며 인간의 신체로 생활한 기간이 굉장히 적다는 사실 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인간들의 만성 통증에 대해 아리송해 하는 것 도 이해는 갔다.
따지고 보면 천영도 현재 그런 만 성 통증 따위는 없지 않던가. 천 년 을 수행한 이무기인 네청에게 그런 고질병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네청을 데리고 허겁지겁 장사 꾼에게서 벗어난 천영은 한숨을 내
쉬었다.
‘출발까지 대략 1시간 정도 남긴 했는데……
과연 네청을 가만히 놔둬도 될지 의문이었다. 여러 면에서 참으로 만 능이고 굉장한 네청이지만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는 수 없이 남은 시간 동안 네 청과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따로 마법 물품이나 서적,이 지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마법 재료들을 구해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중으로 미 뤄야할 둣싶었다.
장비를 손질하기 위해 대장간에 갔
다가 돌아온 백화연은 천영이 네청 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장사꾼들의 물건을 하나하나 소개시켜주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얼굴을 찌뿌린다.
‘또 머리 묶었네.’
워낙 중성적인 생김새라 머리를 묶 으면 완전히 소년티를 내는 모습으 로 변모하게 된다. 백화연은 아직까 지 여동생 같은 느낌의 긴 생머리가 더욱 마음에 들었으므로 천영이 머 리를 묶는 족족 풀어헤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천영은 울상을 지으며 풀려버린 머리끈을 허망하게 바라보 곤 했는데 그 모습마저도 화연을 미 치게 만들었다.
“이건 갈릭슈라는 버섯으로 만든 망치에요.”
“호오. 갈릭슈로 망치를 만들었단 말이더냐. 과거의 갈릭슈에는 치명 적인 독이 포함되어 있어,만지는 것들을 모조리 굳혀버리곤 했지.”
“독을 품고 있는 품종이 사라진지 는 300년이 넘었어요. 전쟁통에 인 간들이 재배지를 전부 불태웠거든 요. 살아남기 위해 일부 갈릭슈는 타인을 굳히는 대신 본인이 굳어지 는 걸 택했는데 그게 꽤나 단단하거 든요. 힘이 장사인 사람이 이 망치 를 들고 강철검을 내려치면 아주 간 단히……
네청에게 설명을 하던 천영은 마나 의 파동에 아주 미세한 기척이 감지 되자마자 고개를 획 돌렸다. 즉시 양손을 들어 뒷머리를 보호한다. 동 그랗게 말려 올라간 그 머리 모양 은,여전히 머리 묶기의 초보자인 천영이 하기엔 너무나도 힘들고 고 된 것이다. 한번 풀렸다간 또 10분 동안 개고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내 머리 만지려고 했지.”
“……아니야.”
확실히 파트라슈가 가르쳐준 마나 파동이 도움이 되긴 되었다. 습관적 으로 항시 발동하고 있으니 무려 나
이트의 기사가 기척을 죽이고 움직 이는 것조차 캐치할 수 있게 되었 다. 간신히 머리가 풀리는 것에 방 어를 성공한 천영이 이번만 봐달라 며 고개를 젓자 백화연이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천영은 백화연에 네청까지 데리고 장사꾼들의 신기한 물건을 구경시켜주었다. 1시간 내내 할 일 이 없었으므로 시간이나 때울 겸.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어떤 늙은 노파가 천영에게 손짓을 했다.
“꼬마야,이리로 와보렴.”
«..
벼락 장사꾼들은 손님을 꼬시기 위 해 물건을 들고 침을 튀겨가며 설명 하곤 했다. 마치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대결이라도 하겠다는 마냥 소 리를 꽥꽥 질러대는 통에,이곳은 꽤나 시끄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늙 은 노파는 장사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얌전히 앉아서 장사를 할 뿐 이었다.
“흐음,꼬마야. 이름이 뭐니?”
“서천영.”
“이번에 또 뒈지러 가는 멍청한 탐 험가놈들 구경하러 나왔더만 너도 설마 원정대에 참여하는 것이더냐?”
“일단은 그렇게 됐네요.”
천영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던 노 파는 턱을 쓰다듬었다.
“네 외모는 쓸데없이 눈에 띄어.”
“알긴 아는데……
“법 따위 신경도 안 쓰고 남의 눈 치도 안 보는 야만인들의 틈에서 주 목받는 외모는 썩 좋지 않단다.”
그리 말하며 노파는 새하얀 가면 하나를 집었다.
“거,뒤에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여. 예쁘장하게 생긴 처자들이 어쩌다 탐험가들 틈이 섞여 있는진 모르겠
지만 얼굴 좀 가리고 다니는 게 어 떻소?”
노파는 나름 그들을 걱정해서 한 말일 것이다. 고정 관념일 뿐이지만 젊은 여성이라고 하면 연약할 것 같 은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백화연은 나이트급 검사이며,네청 은 천 년 묵은 이무기였고,천영은 어린 드래곤이다.
원정 대원들 또한 아주 쟁쟁한 강 자들만 모였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당할 만큼 천영 일행이 약하지는 않 았다.
그런 이유로 가면을 살 필요는 없 다.
하지만 호기심이라는 게 생겼다. 새하얀 가면의 눈가에는 붉은색의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입가는 텅 비어있었다. 별 무늬도 없고 밋 밋했는데도 꽤나 아름답게 생긴 그 가면에 천영은 문득 수집욕이 생겼 다.
그것을 냉큼 집어 들고 가면을 착 용한 다음 백화연과 네청에게 고개 를 돌렸다.
“어때? 잘 어울려?”
그러자 둘 다 고개를 황급히 내저 었다.
“안 어울려.”
“빨리 벗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왜지.”
그들은 아무래도 천영이 얼굴을 가 리는 게 굉장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목적지인 람테르필 숲은 지구의 아 마존과도 비슷한 곳이었다. 난데없 이 스콜이 오거나,진흙으로 위장한 죽음의 늪지대가 펼쳐져 있거나,거 대한 아나콘다가 나무에 몸을 숨긴 채 기어 다니거나,크기가 30m가
넘는 거대한 대왕 악어라든지. 하나 같이 죄다 신기한 것들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탐험선을 타고 창공을 바로 돌파할 수는 없다고 한다.
람테르필 숲의 하늘을 지배하는 ‘진저귀’ 때문. 크기가 굉장히 작고, 힘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그 압도적인 물량이 문제였다.
하늘을 뒤덮을 둣 떼거지로 몰려와 생명체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그 기 괴한 몬스터들은 사실상 거대한 모 기형태의 몬스터에 가까웠다. 심지 어는 동족이 한 마리라도 죽으면 이 숲에 잠들어있는 대부분의 진저귀들 이 깨어나서 달려드는 통에 그들을
물리칠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차라 리 피해가는 편이 나았다.
그러므로 탐험선은 나무의 위쪽이 아닌 나무와 나무 사이를 파헤치고 지나간다. 절벽을 가로질러 계곡을 위태롭게 건너며 숲의 나무들을 박 살내며 전진하는 탐험선의 승객들은 한 시도 쉴 새가 없었다.
탐험선의 거체가 튼튼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봐,빨리 거기 잘라!”
“이런 썩을. 너무 질기잖아! 마법 사 없어? 선저에 ‘오왕무의 팔’이 달려들었어!”
“커팅기 가져오라고! 프로펠러가 뜯겨 나가겠어!”
“기관실에서는? 뭐라고 안 해?”
“젠장,격벽이……
선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사 방에 그득한 나무 넝쿨이 탐험선에 꼬여들면,그것을 마법 커팅기로 잘 라 내거나 아니면 선원들이 직접 단 검으로 썰어내기도 했다.
이 숲의 지배자인 ‘대왕 오우거릴 라’는 덩치가 거의 3m가 넘을 정도 로 거대한 주제에 튼튼한 나무를 이 리저리 타고 다니면서 공격을 하거 나 바위를 집어던져서 굉장히 골치
가 아팠다. 오우거의 힘과,원숭이의 특성을 모두 가진 몬스터의 존재는 꽤나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정글에 서식하는 나무 중에 는 ‘오왕무의 팔’이라는 이름의 식 물형태의 몬스터가 있었다. 비록 자 리에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거대한 나무의 팔을 휘둘러 상대방을 강력 한 힘으로 옭아맨다. 아무리 탐험선 이라도 오왕무의 팔 5그루에 걸리 면,그대로 작살날 정도로 위험한 것들이었다.
덜커덩!
오왕무의 팔이 오른쪽에서 튀어나 와 탐험선을 붙잡았고 조타실 위에
오우거릴라가 쿵 소리를 내며 내려 앉는다.
탐험가들의 직업은 대부분이 마법 은 그저 보조로 조금 배웠을 뿐,단 검을 쓰거나 활을 쓰는 직업군이었 다. 뭔가 사냥을 하기도 힘들고 싸 움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대신 그들 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방에게 서 도망치는 법이나,쫓아내는 법,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는 법 등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생존력이 월등 히 강했다.
그들은 각자 오우거릴라를 내쫓는 방법을 사용해 그들을 탐험선 아래 로 떨어뜨렸다. 오우거릴라들이 싫
어하는 향을 뿌리든가 눈을 멀게 하 는 섬광탄을 뿌리든가 아니면 아예 무력을 이용해 사냥하는 이들도 있 었다. 탐험가들이 모인 장소이긴 했 지만 강한 힘을 가진 이들 역시 굉 장히 많았다.
물론 몬스터가 한 종류만 있을 리 는 없다. 탐험선이 바닥에 닿을라치 면 악어들이 주둥이를 내뻗기도 했 으며 굵직한 아나콘다가 갑작스레 기습하기도 했고 날개깃털이 날카로 운 칼날로 이루어진 새가 날아와 공 격하기도 했다.
정말 정신없이 전진하는 탐험선의 위에서 천영 역시 마법을 사방에 흩
뿌리며 그것들을 내쫓고 있었다.
이 몬스터들은 깊은 숲속의 지배자 나 다름없는 놈들이라 그런지 고작 200레벨 중후반대에 불과한 천영의 드래곤 피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레벨을 굳이 매기자면 제일 낮은 몬 스터들도 200대는 가뿐히 넘었고 조금 강하고 거대한 놈들은 300대 초중반을 넘어섰다. 300레벨의 준나 이트급 전사 하나가 와야 한 마리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정도라는 의 미.
그런 놈들이 수두룩하게 몰려 있으 니,기가 질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 다.
‘그냥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탐험선 을 밀어버릴까?’
이제 사람이 있고 없고는 그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귀찮아지는 것 을 피하기 위해 드래곤이라는 사실 을 숨기고 있는 것인데 그보다도 더 한 귀찮은 상황이 발생했으니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탐험선은 마나를 동력으로 해서 움직인다. 즉 마법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천영은 다급히 셜론을 찾아갔다.
“여기 동력실이 어딤니까?”
“……제 2갑판에 있는 해치를 열고 들어가면 됩니다.”
즉시 뒤쪽 갑판으로 뛰어오른 천영 은 해치를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좁은 계단을 타고 이리저리 배회하니 동 력실이 나타났다.
그곳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어린 아이만한 새파란 구슬이 응응 대며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마정석. 모든 비행선의 원동력.
동력실을 지키고 있던 선원으로 보 이는 마법사가 깜짝 놀란 둣 천영을 쳐다보았다.
“무,무슨 일이십니까! 돌아가십시
오!”
“아,좀. 비켜봐.”
마법사는 뻘뻘대며 마정석을 관리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빛을 잃은 마법진이 눈에 띄었다.
그 마정석의 주변에는 새하얀 마법 문자가 촘촘히 새겨져 있었는데,어 찌나 과부화가 되었는지 마나 회로 가 타버릴 지경이었다.
천영은 그것을 슬쩍 훌어보는 것만 으로도 전부 해석하는 것이 가능했 다. 그의 눈앞에 마치 마나의 경로 와 마법진의 궤적이 흩날리고 재결
합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이 완성되 었다. 이것은 천 년 이상이나 마법 을 수련한 네청조차 하지 못하는 드 래곤만의 특권. 마법 그 자체를 해 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드 래곤의 눈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 다.
조용히 마정석에 손을 가져다 댄 다. 짧게 수인을 맺어 마나를 불어 넣자 마법진의 모양이 변형되기 시 작했다. 뒤에 서있던 선원은 그러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다가 마법진을 쳐다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마법진이 가장 효율적이 고 인상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어!’
원래는 5개의 포인트에 각각 마나 의 실을 이어 문자를 새겨 넣는 방 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천영은 그 경 로를 모조리 비틀어 아예 새로운 길 을 개척했다. 기존의 길을 갈아엎으 며 마법진을 의지만으로 새로 그려 넣고,마법 문자를 아예 천영 표 ‘언령’으로 바꿔버렸다. 용언을 새겨 버리면 나중에 마법사들이 관리하기 골치 아풀 테니 아예 세간에 내어놓 은 마법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마침내 이 탐험선의 동력을 유지해 주던 마법진을 완전히 고친 천영은 짜증난다는 듯 마정석을 퍽 하고 걷 어찼다.
“뭐 하시는_
뭘 하긴.
“말 안 듣는 기계는 걷어차야 말을 잘 듣거든.”
직후 비행선의 후미에서 불꽃이 터 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조 차 되지 않는 기동성을 얻은 이 탐 험선의 속도를 만끽하며 천영은 지 구에 있을 적 보았던 만화를 떠올렸 다.
“좋았어. 이 탐험선의 이름은 이제 부터 ‘고잉 천영 호’다.”
“네,네에?”
그렇게 고잉 천영 호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이 탐험선은 급발 진하여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