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42화
37장 용은 악몽을 꾸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원정대장 셜론이 미리 지정해준 집결 장소로 모이게 된다. 비록 같이 활동하지는 않지만 무슨 위험 요소가 있을지 모르는 오지에 서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어 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비록 율법도 없이 온 세계 를 떠돌던 방랑자들이지만 같은 ‘탐 험가’로서 서로를 존중해주기도 했 다.
그렇다. 탐험가들끼리는 그러했다.
천영 일행은 어딜 보나 탐험가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탐험가 몇몇이 가까이 다가와 서 껄렁대기도 했다.
“아가씨,혹시 마법사야? 아까 보 니까 대단하던데. 우리랑 같이 다닐 생각 없어?”
피부가 까무잡잡한 근육질의 사내 가 네청의 옆에 들러붙더니 입을 실
룩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차분하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네청이 이 파티 의 리더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 지만 이 파티의 결정권은 어디까지 나 천영에게 있었다.
네청은 그 사내가 집적대는 상황에 도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그저 싱글 벙글 웃고만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인간 세상의 모든 경험은 재미있고 신기한 일로 가득했다. 심지어 20〜30년 남짓 살아온 인간 남자가 자신의 외모를 보고 작업을 거는 꼴 이라니. 이렇게나 재미있는 일도 없 다.
네청이 계속 웃고만 있으니 그에 오해한 사내가 더욱 들러붙으려 하 자 결국 천영이 끼어들었다.
“저기요 아저씨,다른데 좀 가세요. 저희끼리 활동할 테니까.”
“응? 아,너 그때 그 마법사 꼬마 잖아?”
탐험선 위에서 전투를 했을 때 천 영 또한 네청과 마찬가지로 화려하 고 광범위한 마법을 보여주었기 때 문에 원정 대원들의 뇌리에는 그에 대한 인상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젊은 여인 둘과 어린 소년 하나가 그 외모에 맞지 않게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 다.
‘흠? 남자애가 아니던가?’
분명 아까 낮에 보았을 땐 틀림없 이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노을이 진 지금 은은한 햇살을 받으며 얌전히 앉아있는 천영의 모습은 소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햇빛이 그의 왼쪽 얼굴을 비추면 남자,오른쪽 얼굴을 비추면 여자처럼 보이게 되 는 아주 기묘하고 신비로운 마력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머리카락을 늘어놓은 상태라 그의 오해가 더욱 깊어졌다.
그러니 여자 밝히기를 좋아하는 이
사내가 반응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 했다.
“하하! 너도 우리랑 함께 가지 않 을래?”
“아니 그러니까 우린……
빠각!
“..?,,
천영이 어떻게든 남자를 내쫓기 위 해 애쓰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백 화연이 혼자 바위 덩어리를 만지작 대다가 그것을 반으로 조개버렸다. 천 년이 넘도록 보존되어왔던 그 단 단한 바위는 탐험가들도 굉장히 단 단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인데 그걸
그냥 만지작대다가 쪼개버리다니. 백화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신 기하다는 둣.
그러더니 다른 돌덩어리를 하나 더 집어 든다.
빠가각!
퍼석
이번에도 역시 돌덩이가 반으로 쪼 개졌다. 별 다른 힘을 준 모션도 없 다. 그냥 만지다 보니 쪼개졌다. 나 이트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로 강력했다.
상당히 예쁘게 쪼개진 돌조각을 보
며 백화연은 천영에게 그것을 내밀 었다.
“이것 봐. 벽돌처럼 생겼어.”
“그,그래……
천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한 다 음 사내를 다시 돌아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 다. 백화연을 보며 무슨 귀신 보듯 쳐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그녀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 은 모양이었다.
탐험가들은 각자 모닥불을 피운 뒤 식기구를 꺼냈다. 이곳에 넥스터는 따로 없었다. 그렇기에 각자가 매고
다니는 ‘공간 확장 배낭’에 챙기고 다닐 수 있을만한 필수품만 가지고 다닌다. 여담이지만 저 공간 확장 배낭은 원래 이론만 가능했고 실제 로는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었지만 서천영이 발표한 ‘언령’에 의해 개 발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자자,다들 식사부터 합시다. 불침 번을 세워야할 텐데 제가 날짜별로 정리한 표를 조금 있다가 보여드리 겠습니다.”
서천영 역시 인벤토리에서 대충 끼 니거리를 때우다가 문득 주변을 둘 러보았다. 원정 대원들은 반합 같은 물건을 꺼내서 임의로 스프 같은 것
을 끓여먹거나,밥 덩어리에 간장 등 소스를 뿌려먹고는 했다.
이곳에 얼마나 체류할지 알 수 없 는 일인데 너무 초라하고 영양가도 없어보였다. 분명 그들은 생존에 가 장 적합한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먹 을 수 있으면서도 열량이 높은 음식 을 선호하겠지만 천영은 그렇지 않 았다.
넥스터. 생존과는 연이 멀었고 게 임 속에서라도 맛난 음식 좀 먹으며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요리를 배웠던 천영은 어딜 가도 항상 요리를 즐기 곤 했다. 그런데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원정 대원들이 저 맛도 없는
것들을 먹겠답시며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으니 괜스레 답답해졌다.
결국 천영은 캠프의 중심으로 가서 인벤토리에 처박아뒀던 간이 요리 도구 세트를 전부 꺼내들었다.
“응?”
“엉?”
“앵?”
뜬금없이 허공에서 물건이 튀어나 왔지만 이제 넥스터의 존재도 익숙 해진 차라 그것에 대해 놀라는 사람 은 없었다. 다만 거기서 튀어나온 물건이 요리 도구라는 점이 그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각자 요리 재료 가져오세요.”
“응? 그건 왜……
“가져오라면 가져와요.”
결국 천영을 믿고 있는 셜론이 먼 저 익히지 않은 고기와 야채 등등을 건네주었다.
천영은 그것을 획 낚아채고서는 싸 구려 고기 덩어리를 아주 먹음직스 러운 바비큐로 진화시켜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창조의 장면에 두 눈 을 휘둥그레 뜬 원정 대원들은 너도 나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 재 료들을 건네주었다.
천영은 그들의 재료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반납시키고 본인이 가지 고 있던 재료를 이용해서 요리를 만 들어주었다.
국물이 먹고 싶다는 사람,면이 먹 고 싶다는 사람,고기가 좋다는 사 람,채식주의자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었고 천영은 그들 모두에게 입맛을 완벽하게 맞춰줄 수 있었다. 몇몇 탐험가들은 어이가 없는 이 상 황에도 감격에 취했다.
“나,탐험가로 살면서 처음이야.”
“뭐가?”
“야영지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거……
천영의 요리 실력은 분명 일류는 아니었다. 다만 밤에 먹는 컵라면이 맛있듯 야영지에서 천영이 해주는 음식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간단하게 라면 스프를 이용해 만든 국물을 맛본 어떤 원정대원은 눈물 을 질질 홀리며 감격에 취했다.
“이,이런 국물이 이 세상에 존재 한다니……
그 맛에 취한 원정대원은 천영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나와 결혼해줘! 이 음식을 매일 맛보고 싶어!”
그리고 천영이 아닌 백화연에게 걷 어차인 그 사내는 다음 날까지 일어 나지 못했다.
탐험의 기본은 지도를 완성해나가 는 것.
일확천금 원정대는 이 도시의 지도 를 천천히 완성해나가며 모든 구역 을 파악할 계획이었다.
탐험 닷새 차. 지도가 10%쯤 완성 되었다.
그렇다 고작 10%다. 이 도시는 생 각보다도 훨씬 넓었으며 구조가 꽤 복잡했고 지하수로나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치는 공중 다리 등등으 로 인해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 더욱 복잡해졌다.
문제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모두 한 자리에 집결해 야만 한다. 스스로가 안전하다는 것 을 어쨌든 동료나 다름없는 원정대 원들에게 알려야만 하는 의무나 마 찬가지이므로 집결은 절대 빠져선 안 된다.
하지만 닷새 차 저녁이 되는 날.
“……오늘은 두명이 오지 않았 군.”
탐험을 시작한지 이틀이 되었을 때 부터 한 명씩 베이스캠프로 돌아오 지 않고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사라진 인원은 총 네 명. 그 중 한 명은 꽤나 떠들썩하고 유 쾌한 남자였기에 그가 없어지자 분 위기가 살짝 가라앉아버렸다.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지?”
“유드논이 말도 없이 어디로 사라 졌을 리는 없어!”
“그러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야. 약 속 잘 지키기로는 기가 막힌 놈이
왜 약속 시간 2시간이 넘도록 안 오냐 이 말이지.”
하늘이 까매진지는 오래였고 찾으 러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을 찾기 위해 떠돌 것이냐? 그럴 사람 또한 없다. 사라진 사람은 같은 그룹의 인원 몫 이다. 어디까지나 서로의 이익을 위 해 모인 이들이었기에 당연한 이치 이다. 그들은 서로 원하는 것을 찾 기만을 바랄 뿐이며 만약 본인이 아 닌 다른 사람이 찾을 경우 인정해주 고 포기하는 것 또한 도리였다.
천영은 이미 어두워진 유적지를 멍 하니 응시했다. 마나의 파동을 더욱
넓게 광범위하게 펼친다. 감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도시를 전 부 덮을 정도로 넓게 펼치지 못한다 는 것이 아쉬웠다.
“네청 님,뭔가 느껴지시는 건 없 습니까?”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네청이 입 을 열었다.
“비생물이 조금 느껴지는구나.”
“비생물이요?”
“그래.”
살아있지 못한 것. 네청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 은 너무나도 광범위했다. 당장 밟고
있는 바위 또한 무생물이 아니던가.
“그건 무생물이고 내가 말한 것은 비생물이다. 그것들은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은 것들.”
“……언데드 인가요?”
“비슷하다만 약간 다르다. 자세한 것은 나도 느끼지 못하겠구나. 워낙 거대한 기운에 의해 가려져 있어.”
“거대한 기운……
가면 갈수록 이 도시 굉장히 수상 했다. 아무 생명체도 없다. 몬스터도 없고 생존자도 없다. 심지어 2황자 일행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 다.
‘가만 2황자 일행은 왜 내 감각에 감지되지 않는 거지?’
천영은 지도를 그리지 않는다. 그 저 도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자 신의 감각에 걸리는 무언가를 탐색 할 뿐이었다.
아직 모든 구역을 돌아본 것은 아 니었지만 분명 그의 감각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용이 내뿜는 마나의 파동은 꽤나 노골적이라 무 엇이든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들이 어떠한 사유에 의해 겁을 집어 먹고 숨어있단 건가.’
숨어있다고 쳐도 이상한 것이 그의
감각에 2황자 일행이 잡히지 않는 것은 분명 이상했다.
‘아니면 이미 죽었다던가.’
네청이 말한 ‘비생물’이 과연 무엇 일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를 못하는 것은 그녀 역 시 마찬가지였는지 멍하니 도시의 중앙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구역을 들어 가 봐야겠는데.’
여태까진 위험하다 판단되어 미루 고 있던 구역이 몇 군데 있긴 했다.
원정대장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사람들을 모아서 말했다.
“아무래도 위험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의 정체를 밝혀낼 때까지 전원 한꺼번에 행동하는 것 이 어떻겠습니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셜론에게 그 정도까지의 권한은 없었다. 다만 민주적으로.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야만 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원정 대원들 은 슬쩍 손을 들었다. 손을 들면 찬 성,가만히 있으면 반대.
“고작 4명이 사라졌을 뿐이야. 10 년 전이었으면 이 정도는 위험 요소 조차 되지 못했다고.”
“이 정도로 겁을 지레 먹고 이 인 원수로 이 넓은 곳을 한꺼번에 돌아 다니는 것은 시간낭비다.”
“흠,반대하겠소. 나는 혼자가 좋거
드 ”
투표 결과,결국 반대로 끝이 났 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위기 감지 센서 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강 한 이들조차 실종되게 만든다는 사 실을 직시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럼 위험조차 무릅쓰고 이곳을 탐험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사소한 장애물 따위 얼마든지 뛰어넘는다.
그들은 탐험가이고 위협이 도사리지 않는 탐험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그들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개별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하 지요.”
원정대장 셜론이 결론을 내리자 몇 몇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정대 원들은 그 말이 만족스럽다는 둣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홀러 다음 날이 되었고.
이번에는 서천영이 실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