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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43화 (142/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43화

텅 빈 회색 도시,그 위에 펼쳐진 건물의 숲. 빌딩 사이로 나있는 고 가도로를 거닐며 천영은 이 도시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각이 꽤나 어 색했다. 분명 처음 와보는 데다가 천 년 전에 멸망해버린 도시인데 어 째선지 21세기의 도시가 자꾸만 떠 올랐다. 물론 21세기 도시에서는 흔 히 볼 수 있는 유흥가나 상가 빛을 내뿜는 간판이나 자동차 같은 것이

없긴 했지만.

‘이 고가도로는 왜 만들어진 거 지?,

추측상 자동차를 만들 정도의 과학 기술은 없던 것 같다. 하지만 고가 도로는 존재했다. 지구의 도시라면 고가도로가 그저 자동차가 쉽게 다 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 각했을 터인데 더욱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천 년 전에도 고가도로가 필요할 정도의 이동수단이 존재한 모양이다.

조용히 걷고 있던 백화연이 입을 열었다.

“천영,1시간 남았어.”

오전,오후 내내 도시를 탐색하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만 한다. 약 속 시간은 저녁 6시. 정확히 1시간 이 남은 참이었다.

오늘의 탐색은 하루 종일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갈 뿐 여기저기 돌아 다니지는 않았다.

여태 도시의 중심부를 가지 않은 이유. 그것은 천영의 감각이 그곳을 볼 때마다 날카롭게 곤두섰기 때문 이다. 매우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저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그런 신호가 수신되었다.

‘확실히 뭔가 기분이 미묘한 곳이 야.’

도시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돔 형태 의 건축물이 있었다. 마치 축구 경 기장처럼 생긴 저 건물에도 역시 푸 른 식물들이 잔뜩 자라있었는데 작 은 정글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건 축물이었다.

천영은 네청에게 말했다.

“돌아가요. 제가 태워드릴게요.”

갈 때는 천천히 무언가를 탐색하며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걸어갔지만 돌아갈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

다. 천영은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돌 아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네청은 천영의 말에 대답하 지 않았다. 멍하니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돔 형태의 건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청님?”

그녀는 잠시 뒤 숨을 내쉬더니 천 영과 눈을 마주했다.

“나는 저곳에 볼 일이 생겼다. 먼 저 돌아가도록 해라.”

“어…… 그래도……

네청에게 위험하다고 말을 하려던 천영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 세

상에 과연 네청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하는 수 없이 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따라갈지 말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네청은 혼자 가겠다는 눈빛이 었다. 굳이 고집을 피울 생각은 없 었기에 천영은 백화연과 함께 돌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에 무언가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여태까지는 계속해서 흩뿌리고 있던 마나 파동에 전혀 감지되지 않던 생 명체의 신호가 갑작스레 나타난 것.

천영은 즉시 그 신호를 이해하고 분석했다.

‘여태까지 누군가가 고위급 마법으 로 차폐막을 친 상태였군.’

이 장소에서 이런 마법으로 차폐막 을 칠 만한 그룹이라면 2황자 일행 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차폐막이 사라 진 거지?’

천영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아주 멀리에 있는 드높은 빌딩을 주시했 다. 가까운 거리라면 모를까,최소 5km는 떨어진 곳에 있는 저 건물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멀 리 떨어져 있었다. 천영의 마나 파 동은 아직 너무나도 미숙하여 저렇

게나 멀리 떨어진 장소라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천영보다도 수준이 낮은 차폐막을 감지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이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만약 그들이 차폐막을 설치하지 않았더라면 천영 은 여전히 그들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생명 신호도 그곳으로 기운을 집중시켰기에 망정이지 하마 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차폐막이 깨지면서 나오는 마나 신호가 오히려 내 감각을 건드렸 군.’

그는 백화연을 쳐다보았다.

“나도 저 건물에 가봐야겠어. 화연 도 같이 갈래?”

하지만 백화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내려앉 은 눈으로 반대쪽을 쳐다보고 있었 다.

천영의 마나 파동이 아무리 뛰어나 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감지해내는 기술일 뿐이다. 파트라슈는 이전번의 암살 자들이 또 다시 천영을 찾아올 것에 대비해 마나 파동. 즉 레이더 기술 을 연습시켰지만 그것도 아주 숙련 된 초인급의 존재가 찾아오면 어린 드래곤인 천영이 감지하는 것은 불

가능했다.

천영이 마나 레이더로 감지하지 못 하는 것. 하지만 초인이기에 그저 ‘느낌’만으로 무언가를 알아버린 백 화연 역시 갈 곳이 생겼다.

“나도 잠깐 저쪽에 갔다 올게.”

“그래.”

각자 어디서 만나자는 등의 이야기 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 어디 서든 서로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각각 있었으니까.

‘약속 시간에 못 맞춰 가겠지만 사 람의 걸음으로 이곳에 오려면 하루 종일 걸어야해.’

지금 빨리 일을 처리하는 편이 낫 다고 생각한 천영 일행은 각각 무언 가를 느낀 장소로 흩어졌다.

‘호셈블,일단 너라도 돌아가거라. 여긴 너무 위험해.’

3황자 호셈블은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다. 왜 그때 형의 말을 듣지 않 았을까. 왜 꾸역꾸역 남아서 이곳에 있는 것을 택했을까. 사실 ‘악마’가 나타났다고는 해도 남은 병사들과 함께 유적지를 서둘러 빠져나갔다면

모두들 어떻게든 살 수 있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2황자 러셀 리는 유 적지에 잠들어 있는 ‘용의 선물’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것을 바로 코앞 에서 놓쳤는데 여태까지 고생한 대 가가 바로 그곳에 있는데. 돌아갈 수 없다는 이유로는 납득이 되지 않 았다.

새삼 호셈블은 러셀 리가 어떤 남 자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가망이 없었다. 도저히 그들을 뚫 고 용의 선물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 능해보였다. 하지만 러셀 리는 이런 분야에서 머리가 굉장히 좋은 편이 었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을 해결할

때 비상한 대책을 강구하기도 했으 며 어떤 복잡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 은 2황자 러셀 리를 찾았다.

그런 러셀 리다. 2황자가 이 유적 지에 남는 것을 택했기에.

호셈블도 남았다.

틀림없이 러셀 리라면 용의 선물을 탈취해올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 있 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러셀 리가 그것을 탈취해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 궁리만을 생각 하며 안이하게 있었다.

하지만 호셈블은 잠깐 깜빡하고 잊 은 것이 있었다. 러셸 리가 이곳까

지 찾아온 이유는 순전히 그의 ‘정 의감’ 하나 때문이라는 것을.

러셸 리는 황제가 될 생각이었다. 부패하고,멍청하고,욕심만 많고, 배가 두툼하게 불어터진 황태자를 대신하여 황제가 될 방법이라고 하 면 단 하나밖에 없다.

용의 선물을 구해오는 것. 역사상 용의 선물을 구해왔다는 사례는 거 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먼 과거에는 아주 간혹 있었다고 한다. 용의 가 호를 받아 건국된 마그아티온 제국 의 특성상 용의 선물을 가져오면 계 승권이 1순위가 되고 러셀 리는 그 점을 생각하여 이곳까지 찾아온 것

쓰레기 같은 황태자를 대신하여 본 인이 황제가 되기 위해.

러셸 리는 권력욕이 없다. 딱히 힘 을 취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단 지 이 나라를 위한 그 단순한 정의 감 하나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다. 그런 러셀 리가 방법이 없다한 들 용의 선물을 포기할 리는 없었 다.

그걸 깜빡하고 욕심을 부리며 남은 대가는 잔혹했다.

“호셈블! 정신 차려라! 어서 일어 나서 뒤로 달려!”

“혀,형님……

러셀 리가 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 는 검을 든 채로 쓰러진 호셈블에게 소리쳤다. 호셈블은 덜덜 떨리는 눈 동자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해가 멸어진 이곳은 원래부터 그림자로 그득한 장소였다. 그러니 까 그 그림자는 그림자조차도 집어 삼키는 그림자였다. 또한 그 그림자 는 어떠한 마법,물리 공격도 통하 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것은 그림 자였다.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조종하는

그림자 악마.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던 나이트도 정신을 조종당했다. 그 나이트를 해 치우기 위해 또 다른 기사 한명이 희생되었다. 병사들은 꼭두각시처럼 넋을 잃은 채 아군이었던 자에게 공 격을 하였고 차마 자신의 동료를 공 격할 수 없었던 병사 몇몇이 또 죽 어나갔다.

그림자에 잠식된 병사는 기이할 정 도로 그 힘이 강해져 마그아티온 황 제 검법을 배운 러셀 리조차도 상대 하기에 벅찼다. 하물며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호셈블이 그것에 노출되 면 어떠할까. 칼침을 맞아 죽기 전

에 정신이 갉아 먹혀 죽을 것이 뻔 했다.

‘정신을 침식하는 악마라니 지독하 군.’

상대방의 정신을 조종하는 마법이 나 생명체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 다. 그 어떤 문헌에도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의 기억,정 신,영혼을 조종한다니. 그것이 가당 키나 한단 말인가. 정신을 아예 파 괴하여 백치로 만드는 마법은 있을 지라도 그 기억을 일일이 까뒤집어 해석하고 읽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 하다.

그런데 눈앞의 그림자는 그것을 아

주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당했군……

마법 병단의 마지막 마법사이자 5 클래스의 마법사로서 든든한 군이 었던 사내가 흐느적 흐느적 일어나 더니 러셀 리를 영혼 없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지 독하게도 일그러져 도대체 인간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가능할지 의 문까지 들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심 장에서부터 인간을 혐오하는 것만 같은 그 얼굴에 러셀 리는 침을 꿀 끽 삼켰다.

그의 그림자가 새카닿게 변해 있었 다. 정신을 완전히 잠식한 ‘악마’는

때로 선택을 한다. 자신이 포식한 대상을 그대로 즉사시켜버리든가 혹 은 그 능력이 자신의 마음에 들 경 우 조종한다든가.

게다가 악마의 조종은 그저 조종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상의 마음, 기억,경험,지식,감정 그 모든 것 들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 말 그대로 대상에게 잠식하는 순간 ‘대상의 인생’을 완전히 자신 의 것으로 해버린다는 의미.

저 악마가 한 대상에게 얼마나 오 래 머물 수 있는지는 몰라도 만약 그 기한이 무한하다면 이 그리픈은 저 악마 단 하나의 개체에 의해 위

험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저런 악마를 가만 놔둘 수는 없다.

그것이 정의감을 가진 러셀 리의 본능적인 판단이었고.

대체 무슨 수로 저런 악마를 이기 겠는가?

그것이 적과 자신의 실력차이를 아 는 러셀 리의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이길 수 없다. 지금은 그저 도망쳐 서 목숨이라도 구제받는 것이 형편 에 나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살아남기는 이미 글 러버린 모양이다.

‘……하다못해 동생이라도 살려야 겠지.’

러셀 리는 미끼가 될 생각이었다. 그는 품속에서 알약을 하나 꺼냈다. 내장부터 모든 신체기관을 녹여버리 는 끔찍한 독약. 물론 러셀 리는 이 것을 다른 이에게 먹일 생각은 없었 다. 또한 악마에게 조종당하는 5클 래스의 마법사에게 알약을 먹일 능 력도 없다.

그는 그림자에게 잠식당하는 순간 이것을 스스로 먹을 생각이다. 대상 에게 완전히 기생하는 저 그림자가 러셀 리 본인의 육신을 차지하게 되 면 악마가 마그아티온 제국의 2황자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악마가 제국의 황족의 육신을 차지 하게 되어 당당히 대륙을 활보했다 가는 무슨 혼란을 초래할지 모른다.

애초에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니 아 무것도 넘겨주지 않는다.

러셀 리는 그렇게 결심했다.

어둠만큼이나 짙고 기분 나쁜 그림 자가 온몸에 넘실거리는 마법사가 러셀 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 손바닥에서 5클래스의 마법진이 순 식간에 그려졌다. 마법 대책이 되어 있지 않다면 어지간한 성벽조차도 간단하게 무너뜨린다는 5클래스의

마법이 러셀 리에게 작렬하면 틀림 없이 그대로 죽어버리겠지.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호셈 블이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어 벌써 멀리 도망친 것이 보였다.

‘좋아,이대로 달려들어서 시간을 끈다. 멀리서 상대해봐야 마법사를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 어.’

하지만 달라붙으면 그림자에게 잠 식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미 리 알약을 입에 넣어두고 접근한다. 호셈블, 비록 욕심 많고 겁쟁이인 동생이지만 그래도 혈육이다. 러셀 리는 그런 동생이 자신을 왜 따라왔

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얼른 가라.’

러셸 리가 마법을 완성한 마법사에 게 달려드는 순간.

펄럭 하며. 검은색의 천 자락이 그 의 시야를 가렸다.

아주 작고 아담한 체구를 가진 소 년이었다. 그는 러셀 리에게 등진 채,마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러셀 리는 움찔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저 소년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도 바람에 의해 옷자락이 휘날린 덕분 에 알았다. 아까부터 눈앞에 있었던

것 같은데,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언제부터……?’

아니,그보다 중요한 것은.

“도망쳐! 저 녀석은 상대방의 정신 을 갉아 먹는 악마다!”

저 그림자에게 대응할 수 있는 존 재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초인급으 로 수련한 나이트라도 정신을 직접 잠식하는 악마의 공격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정신을 극도로 단련했을 5클래스의 마법사마저 쥐도 새도 모 르게 악마에게 당했다. 하물며 갑작 스레 나타난 저 정체불명의 소년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러셀 리보다도 ‘악마’가 반 응하는 것이 더욱 빨랐다.

악마는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의 기 억을 흡수한 덕분에 잘 알고 있었 다. 눈앞에 있는 저 자그마한 소년 의 신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여 태까지 먹어치웠던 인간들과는 ‘삶 의 질’이 아예 다른 인생을 보낼 수 있단 사실을.

-저 녀석의 몸을 차지하면 평생 동안 꿈만 같은 인생을 보낼 수도 있겠군.

악마의 눈에 소년의 손목에서 반짝 이는 금색의 손목시계가 보였다. 아

름다운 외모 하며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라니.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 랑받을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들 의 위에 당당히 서서 아우를 수 있 을 것이다.

그렇기에 악마는 달려든다.

소년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악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마를 보며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는 악마가 달려들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응조차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러셀 리가 눈을 부릅떴다. 소년의 흑색 머리카락에 은색의 브릿지가

휘날렸다. 그는 그 머리카락을 어디 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 다.

“이게 무슨 악마야. 기생충이지.”

그 순간 그림자가 천영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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