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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48화 (147/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48화

39장 네청의 장난감

백화연은 칼끝에 묻은 핏방울을 뚝 뚝 떨어뜨렸다. 무너진 폐허 안쪽에 은색 털을 가진 늑대 인간이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백화연 또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는 여유가 있었다.

루즈벅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녀 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덩치가 서 서히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은 색의 털조차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 리고 나타난 의외의 모습에 백화연 이 살짝 놀랐다.

은색의 털과는 정반대인 흑색의 피 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무나도 당연하게 그가 백인일 것이 라고 생각했었기에. 하지만 그 뿐 더 이상의 반응은 해주지 않았다.

마무리를 짓지 위해 백화연은 검을 고쳐 쥐고 루즈벅에게 다가갔다. 마 법사 5인 중 4명은 완벽하게 사살 한 뒤였다.

그녀는 이 자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완벽하게 안식으로 보내버 리고 돌아간다. 후환 따위 남길 생 각은 없었다.

“흐흐흐.”

문득 루즈벅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젠 내가 뭘 위해 강해지려고 했 는지도 모르겠군.”

강해지기 위해서 죽였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살아 남기 위해 퍽 대단한 대기업에게 빌 붙어서 살았다. 그렇게 해서 루즈빅 은 자신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려고 했고, 강해지기 위해 살인을 했기에.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벽 을 만나버린 탓이었다. 주제를 파악 하지 못한 대가는 여태까지 루즈빅 의 유일한 소망인 ‘생존’의 탑을 아 주 간단히도 무너뜨려버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원하던 모든 것이 바스 라진다.

허망한 눈으로 루즈빅은 백화연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목을 벨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죽이기 직전인 여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썩 마음에 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똑같은 살인자의 눈이 틀림 없는데도 그 눈에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선(善)’이 가득 배어있단 말인 가. 그 아이러니함이 루즈벅을 자극 했다.

“좋은 걸 하나 알려주지.”

“..‘?,’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 백화연 은 검을 치켜들었다. 루즈벅도 딱히 자신의 목숨에 대해 미련은 없었으 므로 끝끝내 말을 이어갔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 그들의 발은 너희들의 상상보다도 넓어. 잡초를 제거하듯 하나씩 쳐냈다가는 결국 너희들이 패배하고 만다. 뿌리를 찾 아 제거해. 그게 제일 간단하다.”

움찔.

그 말에 백화연이 손을 잠시 멈추 었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라는 단어 가 나왔음에도 검을 내려칠 정도로 백화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야기 를 더 들을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 만 마무리의 순서가 잘못되었다.

백화연은 루즈벅이 더욱 위험하다 고 판단하여 그의 목숨부터 제거하

려 했고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마 법사 하나가 이 상황을 응시하고 있 었다.

그 마법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나를 쥐어짜 마법을 하나 완성했 다. 그것이 향하는 목표물은 백화연 이 아니었다. 은색의 점액으로 이루 어진 화살이 루즈벅의 심장을 가볍 게 꿰뚫었다.

툭!

심장이 꿰뚫려버린 루즈벅은 비명 한 번 내지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백화연은 새삼 놀라지 도 않았다. 싸늘한 눈으로 마법사를 노려보자 그는 피식피식 웃음을 터

“이봐,우리를 막을 필요가 없다고. 우리 모두에게 다 좋은 일 하자고 그러는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 들의 멍청한 대가리로는 보스의 깊 은 뜻을 이해할 수 없거든.”

그런 말을 남긴 뒤 마법사는 혀를 깨물어서 자결하고 말았다.

백화연은 씁쓸하고 찜찜한 마무리 에 표정을 굳혔다. 아직까지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건물을 폴짝폴짝 뛰어올라 높은 건물에서 람테르필의

중앙을 응시한다.

그곳에 거대한 로봇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거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우르르르르!!

한참 웨지스턴을 신나게 두들기고 있는데 갑작스레 유적지 전체가 진 동하기 시작했다.

천영은 슬쩍 람테르필의 중앙을 쳐 다보았다. 고가도로의 위를 수많은 건물이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

고 그것들은 모두 한 데에 모여 거 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

그 모습은 흡사 몇 십 년 전에 유 행했던 변신 로봇과도 비슷한 생김 새였다. 대체 얼마나 더 지구를 닮 으려고 한단 말인가. 물론 지구에 저런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없었지 만.

“챗,좀만 더 패려고 했는데.”

아직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아예 여기서 죽여 놓을까?’

이 정도로 심각한 싸이코는 여태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아

가라 헬스장의 인원들과 함께 쓰레 기 인간들을 정리하고 다니던 요하 엔은 이런 정신병자들을 상당히 많 이 접해봤다고 한다. 그때 요하엔은 말했다.

‘그 병신들을 어떻게 처리했냐고? 내가 우리 집 앞마당 빨래걸이에 매 달아놓고 매일같이 쥐어 패봤는데 견적도 안 나오더라.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게 정답이야.’

죽이는 게 정답이라.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천영은 거침없이 지팡이 의 뒷부분을 들었다. 마석이 박혀있 는 윗부분보다는 상대적으로 뾰족하 겠지만 그 부위도 뭉툭하다면 뭉툭

했다. 하지만 천영은 이것으로 웨지 스턴의 심장을 가볍게 찌를 생각이 었지만. 여전히 살인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절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었다.

웨지스턴은 구제불능의 싸이코였고 그가 어떤 마음을 먹든 죄가 씻어지 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천영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신의 심장에 지팡이가 드리우자 웨지스턴의 표정이 풀어졌 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체념도 아니었다. 사실 체 념과 비슷하긴 했다. 마치 모든 것 을 포기하고. 드디어 이렇게 되었다

는 듯이. 드디어 죽는다는 둣.

썩 감성적인 표정이었으나 천영은 그 재수 없는 면상이 마음에 안 들 어서 지팡이로 한 번 후려쳤다.

퍽!

“커헉!”

웨지스턴이 바닥에 자빠지자 천영 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프지? 이래도 여기가 게임이야? 응?”

우드득!

“끄아아악!”

천영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웨지스

턴의 무릎 뼈가 아작 나버렸다. 어 지간한 상급 사제가 나서지 않는 이 상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할 정도로. 하지만 이 정도로 부족하다.

천영은 셜론과 원정대의 시체를 생 각할수록 분노가 들끓었다. 비록 같 이 지낸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모두 천영을 좋아하고 아껴주었다.

밤마다 무슨 일 없었냐고 걱정도 해주었으며 요리에 관해 늦은 밤에 난데없는 토론을 나누기도 했고 이 번에 일확천금을 얻게 되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시답잖고 사사롭고 알맹이도 없는 대화였지만.

천영은 그런 대화가 무척이나 마음 에 들었다.

그랬던 것이다. 천영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웨지스턴이 무참히, 모조리 살해해버렸다.

-주인. ……정신 차려.

“뭐?”

천영이 이를 악물고 웨지스턴을 노 려보고 있자 파트라슈가 굳은 얼굴 로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더 진행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돼.

“……그게 무슨 개소리야. 헛소리 할 거면 그냥 닥치고 있……

-지금 주인의 얼굴을 한번 봐.

갑작스레 천영의 눈앞에 거울이 나 타났다. 파트라슈의 마법으로 손바 닥만한 유리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천영의 얼굴이 비춰졌다. 언 제나 아름답고 상큼하고 화사할 것 이 분명했던 천영의 얼굴이 마치 악 귀처럼 일그러져있었다.

-……여기서 더 분노에 잠식됐다 가는 더 이상 드래곤으로 살 수 없 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주인은 드래곤이다.

그 말은 언제나 항상 파트라슈가 천영에게 하던 말이었다. 이제 천영 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 람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파트라 슈는 천영에게 그 말을 반복했다. 마치 그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려는 둣이.

-드래곤은…… 드래곤은 그래선 안 돼.

“……그럼 나더러 내 동료들 죽인 개새끼들 살려서 보내라고?”

-적어도 진정하라는 이야기지. 죽 이는 건 그때 가서도 늦지 않아.

그리고 라며 덧붙인 파트라슈는 웨 지스턴을 쳐다보았다. 그리픈의 생 명체가 가진 업과 재능,영웅의 자 질 등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파 트라슈는 몇 만 년이나 같은 일을 행해왔기에 드래곤이 된지 고작 1년 밖에 안 되는 천영보다도 통찰력이 높았다.

-저 녀석,주인이 말했던 그 세계. ‘게임’이라는 것과 현실을 전혀 착 각하고 있지 않아.

“……뭐라고?”

웨지스턴을 쳐다본다. 그는 흐느끼 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콧물을 줄

줄 홀리며. 무언가가 고통스럽다는 둣. 천영이 그를 인정사정없이 쥐어 팬 덕분에 스스로를 감싸고 있던 ‘정신 승리’의 방벽이 깨졌다. 결국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된 그의 얼굴이.

그랬다. 웨지스턴은 진작 알고 있 었다. 셀라임도 의문이 들었고 천영 도 순간적으로 들었던 의문 중 하 나.

웨지스턴은 어떻게 저리도 강한지 그리고 어째서 고통에 대해 낯설어 하는지.

천영은 웨지스턴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만물을 이해하고 꿰뚫

어보는 용의 혜안이 웨지스턴의 과 거를 헤댔다. 비록 실제로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웨지스턴의 눈 속에 깃든 깊 은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덮는 마치 바다 같은 ‘절망’ 이 보였다. 어째서 여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웨지스턴은 그것을 꽁꽁 숨기고 있 었다.

문득 보이고 말았다.

웨지스턴은 원귀이다.

원귀는 피눈물을 홀리고 있었다.

온 사방이 그 피눈물에 흥건할 정도

로.

“너…… 이 씨,발…… 대체 얼마 나……

그제야 웨지스턴이 정신병자가 되 어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웨지 스턴은 여태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마치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 인 것처럼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싸이코인 것처럼.

이곳이 현실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그는 이곳이 게임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이곳에서 저지른 크나큰 잘못이 그 저 ‘게임 속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

닝’으로 남을 테니까.

속이고 속여. 자신마저도 속을 때 가 되자 웨지스턴은 그리픈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사실을 굳건히 믿었 다. 서천영에게 속절없이 깨져 그 정신 숭리가 무너지게 된 지금까지.

천영이 크게 당황하여 동공을 흔들 자 파트라슈가 조용히 말했다.

-보내줘.

“그럴 수는 없……

-보내줘,주인. 저 마검사는 아직 여기서 죽을 때가 아니야.

죽을 때가 아니야. 그 말뜻을 이해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천영은 웨 지스턴을 쉽사리 놓아줄 수가 없었 다. 웨지스턴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 다. 뉘우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잘못을 저지르 는 매 순간마다 뉘우치고 있기 때문 이었다.

"하하,NPC잖아? 괜히 졸았네! 모 두 죽여 놓지 뭐.’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당신들을 죽여서 죄송합니다.

‘흐음. 신기하네. 핏방울까지 그래 픽 구현이 된 건가? 머리통을 날려

볼까?’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고통을 줘 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끝내드렸습니다.

‘넥스터잖아? 죽이면 뭐 어때? 경 험치 다운 조금에다가 로그아웃 되 고.’

사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악질이다. 혼자서 저지르고 혼자서 뉘우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면 인륜과 법 이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의 정신 승리를 위해 여태까지 얼마나 무수히 많은 생명을 짓밟아 왔을까. 상상만 해도 지독했다.

“나는……

결국 천영은 끝내 선택하지 못했 다.

운명일까,우연일까.

람테르필의 중앙에서 일어난 고대 한 골렘이 바닥을 쿵 하고 내려찍 자,

유적지의 땅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천영과 바로 앞에 주저앉아있던 웨 지스턴을 완벽하게 가르는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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