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49화
3황자,호셈블은 땅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 다. 저게 정녕 인간들의 싸움이란 말인가. 도시의 크기에 비해 인간의 크기는 한없이 작고 코딱지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볍게 손을 휘저으 면 건물 하나가 날아가고 폭삭 무너 졌으며 땅이 갈라지고 대지가 진동 한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몰래 도망쳐 나온 것까지는 좋았 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가 없었다.
호셈블은 ‘용의 선물’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였고 또한 나갈 방 법을 찾고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멸망해버린 유적지 람테르필에서 가장 높은 건물.
그곳의 옥상에 자리잡은 호셈블은 멍하니 괴물 같은 인간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저게 정말 인간의 싸움이라고?”
검은색 머리칼을 휘날리는 자그마 한 소녀와 붉은 번개 모양의 특이한 사내의 싸움. 당연하지만 그 둘 다 인간이 아니다. 한쪽은 드래곤이며 한쪽은 원귀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호셈블은 덜덜 떨리는 심 장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모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모르는 이들이 강하다. 저들과 마주해서 좋 을 것은 없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 다. 속세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강 한 초월자들이 세계 곳곳에 숨어산 다고. 어쩌면 저들은 이 유적지에 살고 있던 주민일지도 모른다.
혹은 갑작스레 도시가 떠올라서 호
기심에 찾아왔던가.
‘위험해. 저쪽은 우회하는 편이 낫 겠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원정 대원들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선 한 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조작할 줄 안다는 것은 정 말 천만다행이었다. 호셈블은 덜덜 떨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어 계 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레 건물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으,으아악!?”
호셈블은 황급히 계단에 있던 기둥
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몸을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천장에 서 돌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지다 가 그의 몸을 가격한다. 결국 손을 놓치고 바닥과 벽을 데굴데굴 뒹굴 다가 어느 자그마한 방에 처박혔다.
쿵!!
“커흑!”
호셈블은 눈물을 찔끔 홀리며 바로 옆을 힐끗거렸다. 뻥 뚫려있는 창문 이 위태롭게 나있었다. 건물은 이제 더 이상 기울어지진 않았지만 고속 으로 마구마구 이동하고 있었다. 호 셈블은 슬쩍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이,이게 뭐야!”
그가 머물고 있던 건물이 고가도로 를 타고 마구 질주하더니 거대한 머 리처럼 생긴 무언가와 가볍게 결합 하였다.
두쿵,두쿵 소리와 함께 거대한 빌 딩 3개가 합체되었고,그것은 곧 골 렘의 몸통이 되었다.
그 몸통의 중심,옥상에.
호셈블이 홀로 세상이 떠나가라 비 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어어어어!”
천영은 2황자 일행을 찾아갔다. 웨 지스턴에 대해 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애써 신경 을 끈다. 2황자 러셀 리가 굳은 표 정으로 천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 여주었던 초월적인 힘은 아무리 제 국의 황자인 러셀 리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우르르르!
광! 광!
러셀 리와 그 일행을 찾은 천영은 무심하게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땄다. 그러고선 병째로 벌컥벌컥 들 이켰다. 제국의 황자로서 와인 또한 굉장히 공부했으며 식사 예절을 올 바르게 배운 러셀 리의 입장에서는 퍽 꼴불견이었으나 어찐지 그는 천 영의 그러한 모습마저도 멋있다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바로 직전에 그 런 힘을 보여줘서 콩깍지가 낀 모양 이었다.
와인을 한 번에 반이나 들이마신 천영은 거칠게 입가를 닦았다.
“후우. 동생 어디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예. 아무래도……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뒤흔들리 는 대지를 바라본다. 저곳에 동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다.
유적지의 모든 건물들이 서클을 이 루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거대한 골 렘 하나가 유적지 바깥으로 뚜벅뚜 벅 걸어 나가려 하고 있었다.
저런 것이 세상에 나갔다가는 필히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천영 또 한 골렘을 을려보았다.
“저런,저런 말도 안 되는 덩치의 골렘이 움직일 수가 있다니……
현존하는 그 어떤 동력으로도 저런 골렘을 움직일 수도 없다. 크기가 인간만한 골렘을 움직이는 것도 이 제는 마정석의 낭비도가 심해서 거 의 쓰이지 않는 판국인데 저런 크기 를 가진 골렘이라니. 분명 어마어마 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인데도 불구 하고 골렘의 움직임에는 전혀 어색 함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영이 저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주인,이마에 용의 큐브가 박혀 있어.
“나도 봤어.”
와인을 또 한 번 입에 들이부은 천영은 적당히 움직이지 않는 건물 을 찾아 그 옥상 위에 걸터앉았다. 2황자 일행 역시 천영을 따라 행동 하긴 했지만 영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천영은 그런 그 들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괜찮아. 저게 바깥으로 나갈 일은 없으니까.”
“예?”
“호,혹시 저걸 물리칠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 말에 천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런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 가? 본체로 변신해서 풀 마나를 장 전해 브레스를 날린다 해도 저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천영이 파괴할 필요도 없다. 이곳에는 천영보다 더욱 강한 또 다른 존재가 와있었으니까.
“보면 알아.”
“그게 무슨……
러셀 리가 의문을 표했고 그 순간.
땅 속에서 기다랗고 거대한 검은색 의 뱀이 솟구쳐 올라와 골렘의 몸을
칭칭 감았다.
백화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 을 뻘뻘 홀렸다. 골렘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 떻게든 골렘을 막아보기 위해 지척 까지 접근한 것은 좋았으나 저것과 화연의 체격차이는 정말 너무나도 압도적 이었다.
게다가 평범한 건물들이 조립된 것 치고는 보통의 방어력을 가진 게 아
닌 모양인지 굉장히 단단해졌다. 어 딘가에 숨어있는 동력원이 골렘의 몸체를 강화해주고 있는 모양이었 다.
그래서 일단 물러났다. 천영과 합 류하여,저것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 해내기 위해. 그녀는 굳게 믿고 있 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기상천외 한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건을 아 주 간단하고도 손쉽게 해결해버리는 천영의 두뇌와 능력을.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 다.
키가 50m를 가뿐히 넘는 거체를 감싸고 돌 정도로 기다란 흑색의 이
무기. 그것은 아주 손쉽게도 골렘의 팔다리를 제압하고선 입을 골렘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우드득,우드드드득!
쩌저적!
골렘의 몸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 다. 이무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움직이기에 가만히 붙잡 고 싶은 마음에 팔다리를 봉쇄했을 뿐이다. 근데 금이 가버렸다. 이무기 가 강한 게 아니었다. 골렘이 약했 다.
이것을 간단히 부숴버릴 생각은 없 었던 이무기,네청은 당황하였다.
‘이게 아닌데……
순간 깜짝 놀란 그녀는 힘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골렘의 한쪽 팔이 풀려나더니 마구마구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네청은 그것을 가만히 지 켜보다가 팔을 덥석 물어서 뜯어냈 다.
과드드득!!
그러자 골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사실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가 더 이상 없어 멈춘 것처럼 보일 뿐 이었다.
그 뒤로도 이무기는 한참이나 골렘 을 감싼 채 빙글빙글 돌며 거체를
기어 다녔다.
다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배를 뒤집 어 까보기도 하고 머리를 살짝 뜯었 다가 다시 붙여보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머리를 뜯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갖다 대니까 붙었다. 그것이 신기했던 네청은 머리를 몇 번이나 뗐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화연은 문득 골렘 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보던 괴롭힘 당하는 아이와 장난이라고 약 올리는 반의 일진을 보는 것만 같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네청은 진심으로 장난이었고 골렘은 겁을
지레 먹은 대신 분노에 휩싸여 소리 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다만 그 비명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 다.
-이 망할 자식아아아아!!
골렘의 머릿속 메인 보드를 관장하 고 있는 기관에 ‘정신체’ 하나가 깃 들어 있었다. 심영계에서 5인의 마 법사들이 강제로 꺼내온 거대한 힘 을 가진 기생동. 어지간한 차원 하 나는 이 기생몽 하나 만으로도 가볍 게 멸망해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아무런 힘도 쓰지 못 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오랜 시간 준비해온 마 법진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바로 지척에 있는 네청의 정신력에 간섭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생물이야!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 거냐고!
기생동이 정신체로 마구 발버둥을 치자 네청은 그것을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머리의 뚜껑을 열었다.
우지직!
말을 순화해서 열었다고 표현했지
만 굳이 묘사하자면…… 아무튼 그 렇다. 굳이 묘사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네청은 신기하다는 듯 눈빛을 반짝 반짝 빛냈다.
-오호라. 여기에 귀여운 벌레가 숨 어 있었구나.
-나,나는 벌레가 아니…… 으아아 악!
네청이 입을 벌려 기생동을 물었 다. 정신체이기에 물리타격에는 완 벽히 면역이어야 정상이건만 그것은 정말 너무나도 허무하게 네청의 입 에 물려져 나왔다. 이윽고 골렘이
바닥에 무너져 내려 무릎을 꿇은 채 가동을 중지해버렸다.
네청은 하늘 위에서 정신체 덩어리 를 우물우물 씹다가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기생몽의 크기는 어찌나 거대한지 네청의 인간 형태보다도 더 부피가 넓었으나 그냥 넓을 뿐이다. 네청이 검지와 엄지로 가볍게 쥐자 그림자 의 형태를 가진 기생몽은 옴짝달싹 도 할 수 없었다.
“후후,천영이 좋아하겠구나.”
천영은 이런 신기한 것들만 보면 그 귀여운 눈동자를 동글동글 뜨고
서 달려들곤 했다.
네청은 그런 천영의 모습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이런 신기한 무언 가를 선물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 다.
“자. 가자꾸나.”
-시,싫어어어어!
골렘의 시체 위,차원 하나쯤은 가 볍게 지배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진 기생몽 하나가 서럽게 절규하였다.
호셈블은 골렘의 시체 틈을 마구 파헤치며 올라갔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고 상처투성이였지만 꾹 참는 다. 목표로 했던 것이 바로 코앞에 있다. 그는 골렘의 머리 역할을 하 고 있는 건물을 아주 잘 알고 있었 다.
‘저기에 분명 용의 선물이 있었어.’
용의 선물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 으나 정체불명의 그림자 악마에게 습격당하고 마법사들과 늑대 인간에 게 쫓겨나는 바람에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적들은 없었다. 건물 위에서 모든 사태를 몰래몰래 지켜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크흐흐. 이래서 멍청한 놈들이 몸 굴리는 거고 나처럼 똑똑해야 이득 을 얻을 줄 아는 거지.’
그들이 실컷 싸워서 이겨놓으면 뭐 하나. 정작 실리를 챙기는 것은 본 인이 되었는데.
호셈블은 새파란 빛을 뿜어내는 용 의 큐브를 뚝 떼어내 양손바닥 위에 들어올렸다.
“오오……
영롱한 빛을 뿜어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마구마구 뒤흔들리 는 용의 선물은 꽤나 신비롭고 몽환 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이것만 들고 가면…… 나는 황제가 될 수 있다.
천영은 거의 와인 병 만한 크기의 크리스털 병에 담긴 기생몽을 쳐다 보았다. 소주병만한 크기에 담긴 정 신체도 고작 구슬만한 크기일 뿐이 었는데 네청이 구해온 것은 와인 병 을 가득 채우고도 온통 새카닿게 변 한 상태였다. 크기가 상당히 부족해 보였다.
네청의 예상대로 천영의 별빛 눈동 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굉장히 재미 있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처럼.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흐뭇한 표정으로 네청이 그리 말하 자 천영이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였 다. 2황자 일행과 백화연은 그들의 모습을 굉장히 이상한 시선으로 바 라보았다. 저렇게 보면 평범하게 언 니가 여동생에게 예쁘장한 목걸이 하나를 선물해준 것처럼 보인다. 하 지만 한 명은 이무기이고,한 명은 무려 드래곤이란다. 러셀 리는 고작
2황자 따위인 자신은 이곳에서 발언 권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네청 님. 혹시 용의 큐브는 못 보셨어요?”
“용의 큐브? 글쎄.”
-드래곤이 아닌 다른 존재는 용의 큐브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어. 그 것이 설령 이무기라 할지라도.
파트라슈의 말에 천영은 로드웰 아 카데미를 떠올렸다. 쟁쟁한 천재 마 법사들이 모인 그곳에서도 용의 큐 브를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들은 바로 눈앞에 용의 큐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저 기계를 갖다 대어 마나를 측정하니 비로소 엄청난 에너지가 발견되었다 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천영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만 3황자는 어디로 간 거지?’
천영은 갑작스레 발을 구르더니 하 늘 높이 날아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네청이 가져오지 않았으면 그 저 자신이 챙겨오면 될 뿐이라고 생 각했었는데. 썩 불안한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의 물건 벳 기를 좋아하는 천영이 자신의 물건
이 위험할 때 칼같이 드는 어떠한 직감이 었다.
골렘의 시체 위. 머리에 안착한 천 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없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천영에게만 느껴지는 그 거대하고도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힘을 가진 용 의 큐브가.
범인은 뻔했다.
“3황자……
뒤늦게 천영에게 달려온 러셀 리 일행을 가만히 내려 보던 그는 질문 을 던졌다.
“너희들 여기에 찾아온 이유는?”
그에 러셀 리는 망설이지 않고 자 초지종을 설명했다. 무려 ‘용’이 이 렇게 나타났는데 숨기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짓은 없었다.
“그러니까 ‘용의 유산’ 중 아무거 나를 구해가면 1순위로 황제가 될 수 있단 말이지?”
전혀 순화하지 않고 내뱉는 천영의 말에 러셀 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의 제국 마그 아티온은 용에 의해 탄생된 영웅에 의해 건국되었기 때문에 용의 선물 을 구해온 황족은 무조건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그렇다면……
천영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용’이 직접 찾아가면 어떻게 되지?”
용이 사라진 후,천 년이 지났다. 용에 의해 건국된 제국 마그아티온 은 아직까지도 용을 잊지 못해 용들 의 흔적인 그들의 유산이라고 가지 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직접 용이 나 타난다면? 용이 직접 나타나서 황제 를 지목한다면?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될 지는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