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53화
천영은 자신의 앞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야채 없는 야채 호빵을 먹고 있는 황자들을 쳐다보았다. 이것은 황제가 되기 위한 마지막 시련.
먹성 테스트였다.
물론 큰 의미가 없는 그냥 헛짓거 리였다. 마땅한 테스트를 생각해내 지 못했기에 그냥 이런 거라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의 테스트였 던 농구 이후로 그들은 일절의 질문
도 하지 않았다. 천영이니까 그저 뭔가의 뜻이 있겠거니 싶었던 것이 다.
하지만 황제와 그를 따르는 수행원 들은 달랐다.
황제는 뒤쪽에 서서 황자들의 테스 트를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 다. 그러면서 천영이 황자들에게 내 리는 시련을 해석하곤 한다.
“흠. 순간 암기 테스트라. 과연…… 황제에게는 꼭 필요하지.”
“오호. 진품 명품을 가리는 안목은 황제에게 중요해.”
“저럴수가. 글씨를 저렇게나 예쁘
게 쓰다니. 물론 중요하고 말고.”
……사실 천영이 한 뻘짓 중에서 안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황 제의 눈에도 역시 콩깍지가 씌어졌 다. 결국 대부분의 테스트는 서기관 과 황제에 의해 어떻게든 해석되어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기록되었 다.
하다못해 하도 심심했던 천영이 장 난으로 낸 문제까지도 기록되었다.
“하루에 순수익 30만 원을 버는 할아버지가 계셔. 할아버지는 자신 의 손자에게 언제나 0.1%의 수익을 떼어서 용돈으로 주시지. 하지만 할 아버지의 장사가 일주일 차가 되던
날,순수익이 27만원으로 떨어졌어. 그러다 사흘이 지나자 다시 순수익 이 33만원으로 올랐고 마침내 이주 일이 되었을 때의 순수익은 35만원 이 되었지. 이때 손자가 받은 용돈 의 총 합계는?”
별것도 없이 말을 늘어놓기만 하는 암산 퀴즈였다. 그들은 문제를 듣는 내내 계산을 하고 있었기에,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외쳤다.
“43,10이”
하지만 천영은 땡을 쳤다.
“틀렸어. 정답은 53,100원이다. 마 지막에 손수익이 올라 기분이 좋아
진 할아버지는 만 원을 더 얹어주셨 어.”
“그,그럴 수가……r
황제와 서기관은 이 퀴즈 또한 ‘민 심을 헤아려 백성들의 마음을 파악 하는 것도 황제의 덕목.’이라는 해 석을 써넣은 뒤 기록하였다.
“율레닌,마지막 ‘먹성 테스트’까지 모두 기록됐으면 그것들을 모두 정 리해 보고서를 올려라.”
“예,폐하.”
“이 황제 테스트는 대대손손 이어 져 황제의 자질을 테스트할 때에는 반드시 쓰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서천영이 생각없이 낸 테스 트는 뼈와 살이 붙여져서 기록되어 점차 황제가 되기 위한 자들이 공부 해야하는 과목에 추가되고 말았다. 당연히도 그것들은 모두 조금씩 황 제 교육에 맞게 변형되었다.
쓸모없는 것 같은 의미 없는 테스 트에도 전부 그럴듯한 의미 부여가 되니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큰일났군…….
그 장면을 지켜보던 파트라슈는 안 색이 창백해졌다. 미래의 황제가 될 인물들이 천영에 의해 철저하게 골
탕먹고 있는 꼬라지를 보며 말려야 할지 말아야할지 당췌 알 수가 없었 다. 그러나 이미 말리기에는 늦었다 고 생각해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무려 사흘이나 걸린 테스트가 종료되었다.
테스트가 모두 끝나고 일주일 뒤.
황녀 벨레인은 황제의 부름을 받아 그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그곳으로 향하는 그녀의 표정은 복 잡 미묘했다. 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으면서 어째서 자신만을 이곳으 로 부르는 것일까.
서천영은 테스트 이후로 황궁 구석 에 틀어박혀 단 한 번도 모습을 내 비추지 않았다. 그 점에 황자들을 미치게 했다.
또한 다른 점에서 황녀 벨레인 역 시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살면 서 단 한 번도 황제라는 자리에 대 해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자리는 애초부터 여자에게는 맞지 않게 설계된 곳이다. 자신과는 관련 이 없으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천영은 황제 테스트를 할 때 그녀까지 불러왔던 것이다.
분명 천영의 테스트는 조금 특이했 다. 어떤 테스트는 대체 왜 하는 것 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이상 했지만 어떤 테스트는 벨레인이 보 기에도 황제의 자격을 갖춘 자라면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 었다.
그런 식으로 천영이 내준 테스트에 는 파트라슈의 입김이 조금씩 들어 가 정말로 황제의 면모를 볼 수 있 는 부분도 섞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폐하. 황녀 벨레인께서 오셨습니 다.”
“들어오라 하거라.”
황제의 집무실을 지키고 있던 기사 가 그 말을 전해 듣고서 문을 열었 다. 내부로 들어간 밸레인은 아직까 지도 업무를 보고 있는 황제에게 예 를 갖추었다.
“됐다. 저기에 앉도록 해라.”
“예.”
갈색 빛의 묵직한 소파에 앉자 시 녀 2명이 나타나 차를 따라주고선
사라졌다.
황제는 서류뭉치들을 뒤집어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있는 작은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그의 앞에는 차가 놓여 있지 않았다.
“벨레인.”
“예.”
황제는 어쩐지 굉장히 생각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다. 애초에 이 부탁을 한 것은 다름아닌 본인이다. 그러니 황제는 천영의 말을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영 의 선택은 결국 황녀 밸레인에게 기 울어졌다.
그는 ‘마그록시온’이라 불리는 상 자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벨레인 역시 그것을 쳐다본다. 그 안에는 황제의 상징이자 천 년 전 용이 직 접 선물해준 왕관 ‘마리온’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쓰는 순간 이 제국 의 황제가 된다.
“너는 마리온을 쓸 준비가 되었느 냐?”
황제가 저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뻔했다.
‘……나를 선택하신 건가.’
아무리 황제라 해도 저런 질문을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자격이 갖춰진 자에게만 하는 질문. 그러나 역대의 모든 황제들이 하지 않았던 질문.
계승권에 의해 물려받는 것이 아닌 선택에 의해 물려받는 최초의 사례 였기에 황제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이다.
그렇기에.
벨레인은 대답한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황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 았다. 황제는 그 말에 홈 하고 고민 을 하더니 이유를 물었다.
“왜 준비가 되지 않았지?”
“저는 황제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 을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살아생 전 제가 끼고 살았던 것은 전술 교 본이며 적을 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무기를 다루는 연습을 해왔 고,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 공부했으며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 하는 외교 역시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신이 황제가 되면 마그아티 온의 기둥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벨레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분 명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분명 황녀 벨 레인은 몬스터 토벌 작전이나 대규 모 테러리스트 집단과 교전을 할 때 언제나 선두에 앞장서서 지휘를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장수이자 비상한 전략가였다. 그런 그녀는 황제가 아 닌, 기사에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밸레인이 스스 로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황제는 알고 있었다. 벨레인이 전 술교본 못지않게 경제학을 완벽하게 독파했으며 정치인이나 외교관이 오
면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서서 그들 을 대접하며 웅변술을 배우고 기록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벌써부터 벨레인이 성사해낸 타국 과의 거래가 수십 건이 넘어갔고 그 녀의 전술과 협상 능력에 의해 황폐 화된 땅을 완벽하게 되살리는 것 또 한 가능했다.
‘너는 네가 황제가 될 자격이 있는 지가 의심스러운 것이로군.’
황제와 황녀가 눈을 마주친다. 그 들의 또렷한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 딪혔다. 황제는 벨레인의 눈에 깃든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여자는 황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이 당연한 세계였고 벨레인 또한 그것 을 받아들인 채 황제라는 직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 자신에게 갑작스레 황제가 되 라니. 그녀는 자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결국에는 황제를 떠보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황제가 될 자격이 있 는 겁니까?’
황제는 웃었다. 그녀의 고민을 완 벽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고작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나 든든하게
자라주어 황궁에서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뛰어난 인물이 된 듬직한 자신의 딸은.
‘여전히 귀엽구나.’
아비의 눈에는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벨레인.”
“……예.”
벨레인의 목소리가 약간 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그아티온을 건국하신 영웅 리오 폰드 3세의 이야기를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황
족으로 태어나……
“그래,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 겠지.”
하지만 이라며 황제는 근처에 있던 서랍의 자물쇠를 열더니 낡은 책 하 나를 꺼내들었다. 비록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레 이븐의 스승 에니안이 가지고 있던 ‘사가’와 굉장히 흡사한 책이었다.
“그 누구도 모르던 사실도 하나 있 었다. 애초에 리오폰드 3세는,반쪽 짜리 황제였다.
“그,그 말씀은……
“그래.”
마그아티온의 시조 영웅,리오폰드 3세는.
사생아였다.
“허나,당시 그가 황제가 되지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역사를 기록하던 사관(史官) 또한 그의 비밀을 적어 넣을 수가 없어 그 내용만 쏙 빼놓 을 정도로 충성도가 깊었다고 하 지.”
그 이유를 알겠느냐?
황제가 그리 묻자 벨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가 오릇이 황제였기 때문이지.”
사생아여도 상관없다. 용에게 선택 받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낸 리오 폰드 3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 제로 기록되었다.
“여자여도 상관없다. 너 또한 용에 게 선택받지 않았느냐?”
그 말에 벨레인이 눈을 크게 떴다. 결국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천영은 자신을 선택했고 황제는 그 의 판단을 존중하여 벨레인을 황제 로 내세우겠다는 큰 결심을 한 것이 다.
분명 쉽지 않은 판단이었을 것이 다. 여자가 황제가 된다면 다른 국
가의 눈초리가 들어올 수도 있었으 며 백성들의 민심이 흔들리는 경우 도 발생할 수도 있다. 여자가 된 황 제를 정말 믿을 수 있겠냐며 난동을 피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아주 만약이지만 그녀를 무시하여 마그아 티온을 얕잡아보고 분쟁을 일으키려 는 국가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벨레인에게 그런 시련 이 닥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태풍이 한바탕 몰아쳐야, 사람들은 그곳에 여전히 뻣뻣이 자 리하고 있는 소나무가 얼마나 단단 하고 위대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황제는 다시 물었다.
“너는 마리온을 쓸 준비가 되었느 냐?”
벨레인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여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 지만……
그녀는 한 차례 삼킨 뒤,재차 말 을 이었다.
“……이제부터 노력해보겠습니다.”
“아주 좋군.”
황제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웃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