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54화
40장 마법사의 비서,그녀들
이따금,레이븐에게 보고서가 날아 오고는 했다. 그것들이 오는 방식은 꽤나 다양했다. 결계가 펼쳐지더니 허공이 갈라지며 전송되기도 했고, 전서구가 허공을 관통해 편지를 툭 내뱉고 사라지기도 했다.
서천영의 보고서는 꽤나 평범한 방 식으로 날아온다.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그렇다는 이야기지,사실 천영 이 사용하는 공간이동 전서구도 다 른 마탑에 가면 신기한 물건 취급을 받는다.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들로부터 보고서를 일 정 시간에 모두 받아서 읽고 전 세 계의 근황을 파악하는 것도 레이븐 의업무 중 하나.
그는 천영의 보고서를 읽고서는 얼 굴을 찌푸렸다.
‘마검사,웨지스턴과 조우. 그러나
살려서 돌려보냈다……
레이븐은 즉시 요주의 인물이 기록 되어 있는 서류를 뒤적였다. 그곳에 서 웨지스턴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픈에 넘어온 넥스터들 중에서 도 단연코 독보적인 강함을 보유하 고 있던 자. 기이할 정도로 너무나 도 강한 것이 이상하다……. 흠.’
이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에는 넥스터에 대 해 알고 있던 것이 터무니없이 부족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븐은 금색 별의 마탑
주. 넥스터들보다 넥스터에 관한 정 보를 더욱 꿰차고 있었다.
‘분명,누군가를 죽였겠지. 친한 동 생인가? 아니면 여자친구? 혹은 부 모님? 드물지는 않은 사례지만, 어 지간히도 사랑했던 모양인데. 이 정 도로 강한 힘을 바로 얻는 것은 아 무리 그래도 힘들지.’
아니면,사랑했던 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이‘들’을 죽였을 수도 있 겠군……
하여튼 그 점은 중요치 않다. 다 만,걸리는 점은 서천영이 웨지스턴
을 살려서 보냈다는 점이다.
그가 알기로 서천영의 손속은 냉정 하기 그지없었다. 죽여야 할 악인은 반드시 죽이고,살려서 갱생이 가능 하다 싶은 놈들도 법적으로 제동을 걸어놓고 지켜보게 만든다.
절대 흐물흐물하게 넘어가는 사내 가 아니었다. 그런 서천영이 웨지스 턴을 놓아준 것에는 분명 어떠한 이 유가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제이나. 내가 말했던 건 은 조사 끝났나?”
“네.”
제이나가 손가락을 튕기자,바닥
정중앙에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거 기에 레이븐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 으로 허락 신호를 보내자 그 안에서 검은색 복장을 한 누군가가 튀어나 왔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곱 다 리의 연결자’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자는 ‘길르텐 펄 리쉬’라는 이름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추정 나이 는 알 수 없었으며,최소 300년 전 부터 살아온 기록이 있는……
“그만.”
레이븐은 ‘길르텐 펄 리쉬’라는 이 름을 듣자마자,정체불명의 사내의 말을 중단시켰다. 이런 경우는 흔히
있었기에 그는 묵묵히 따랐다. 레이 븐은 표정을 굳혔다.
‘역시. 아직 어디에 숨어서 활동하 고 있었군.’
기록은 비록 300년이라지만,그자 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자신의 스승인 에니안에 비 견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법사 였으니.
하지만 레이븐의 스승,에니안은 너무나도 오래 살았기에 자신이 머 무는 숲에서 항시 정기를 보충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길르텐은 바 깔세상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것으
로 추정된다.
‘생각보다도 골치 아픈 놈들이었 군.’
그냥저냥 평범한 집단이었다면 레 이븐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도 된다 지만,길르텐이 수장으로 있다면 이 야기는 다르다.
‘……어쩌면,스승님이 오셔야 할 수도 있겠는데.’
짧게 고민을 하는 동안,제이나와 정체불명의 사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탑주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분명 대륙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중대한 사안이라는 의
미니까.
“그 집단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나?”
“……없습니다. 거처를 워낙 자주 옮겨 다니는 데다가 이동할 경우 그 지대를 아예 소멸시켜버립니다.”
“골치 아프군.”
“그리고 일곱 다리의 연결자에 소 속된 자들이 반드시 하는 마크가 하 나 있었습니다.”
“마크?”
“예.”
사내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서 건네주었다. 6개의 작은 원이, 커다란 중심이 되는 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의 마법진이었다. 아 니,마법진이라기엔 그저 상징에 가 까운 것이었다. 마법 문자가 단 하 나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의 가 슴에 이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꽤나 쓸 만한 정보였다. 여태까지 는 일곱 다리의 연결자 소속의 마법 사들이 워낙 신출귀몰한 데다가 시 체를 남기지 않아 제대로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이런 정보를 알아냈다고 해서 그들을 식별하는 것이 쉬울 리
가 없었다. 사회에 숨어 있는 마법 사들을 색출해내려고 해도,다짜고 짜 그들의 가슴팍을 깔 수는 없으니 까. 심지어 마법사들 중에서는 여자 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용케도 이런 걸 알아왔군.”
“……예.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만추의 기둥’에 대해 조사하다가, 그들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흠.”
만추의 기둥은 이제 대륙 곳곳에서 조금씩 발견되고 있었다. 아직 언론 에는 노출되지 않았지만,이미 레이 븐이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만추의
기둥에 대한 정보를 뿌려놓은지라 대응책이 상당히 빨랐다.
게다가,얼마 전 백하란이 알아낸 ‘특수결계 봉인천구’라는 주문은 이 만추의 기둥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적당한 수준급의 마법사만 있으면, 만추의 기둥을 작동 불능 상태로 만 들 수가 있는 것.
서천영이 최초로 구해온 사충계와 통하는 만추의 기둥에다가 백하란의 연구 성과가 합쳐져,대륙 전역에 그것들이 퍼지기 시작하자 마치 예 방 접종을 미리 맞은 것처럼 쉽게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막 들어온 추가적인
정보가 있습니다.”
“말해봐.”
“현재,신문사 및 언론 업체가 어 떤 정보들을 받아들이느라 활동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들에게 가서 물어 본 결과 대규모 집단의 수장들이 암 살된 모양입니다. ‘그루필’의 클랜장 고노필과 ‘섹테9’그룹의 회장 안 팔리오치…… 및 3명입니다.”
“……공통점은?”
사내가 괜히 이야기를 꺼냈을 리가 없다. 레이븐이 묻자,그의 앞에 놓 여져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가슴팍에,저 문신이 새겨져 있었
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뻔했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들은 이미 사 회에다가 뿌리를 내려놓은 것인지 대기업이나 거대상단, 혹은 군대나 거물급 귀족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 으로 추정됩니다.”
“후……
대충 예상은 했다. 이미 팔리 다리 에르 및 흑마법사라 불리는 자들의 불법 길드가 일곱 다리의 연결자들 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 니까. 하지만,이렇게까지 발이 넓을
줄은 몰랐다.
‘이래서는,피•아를 구분하기도 어 렵겠는데.’
사회에 있는 거물급 인원들 중 누 가 일곱 다리의 연결자 소속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섣불리 그들의 가슴팍을 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지,잠깐. 암살당한 자들은 전 부 일곱 다리의 연결자의 마크가 있 었나?”
“그렇습니다.”
문득,든 의문.
“……그 암살자는,대체 어떻게 일
곱 다리의 연결자와 관련된 거물들 을 암살하고 있는 거지?”
정체도 알 수 없다. 목적도 알 수 없다. 다만,그자는 얼마 전부터 갑 작스레 나타나 일곱 다리의 연결자 들과 연관되어 사회에 숨어 있는 이 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적일까? 아니면 아군?’
하지만,그런 점 따위는 상관없다.
‘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한 정보 덩 어리야. 당장 알아내서,뭐라도 얻어 내야 한다.’
레이븐이 짧게 지시하자,검은 복 장의 사내가 마법진 속으로 사라졌
다.
“자아,자세 잡으시고. 준비됐습니 까? 된 걸로 알고,찍겠습니다.”
하나,둘,셋.
찰칵,소리와 함께 살짝 굳은 듯한 벨레인과 상쾌하게 웃고 있는 천영 의 사진이 찍혔다. 사진사는 오랜만 에 굉장한 모델을 찍을 수 있는 탓 인지 굉장히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백화연은 사진사의 주변을 얼쩡거리 며 카메라를 기준으로 해서 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굳이 기술이 필요가 없을 정도군요.”
사진사의 말대로,그냥 대충 어린 애한테 카메라를 쥐어주고 벨레인과 천영을 찍으라고 시켜도 굉장한 사 진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그들의 미모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 다.
자세 또한 굉장히 심플했다. 조금 은 단출하지만,용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벨레인과 그 의자의 주변을 맴돌며 사진사가 원 하는 자세를 취하는 천영. 의자에 기대기도 하고,벨레인에게 붙기도
하는 등 1시간가량의 촬영 시간을 가지자,원하는 컷이 나왔는지 간신 히 끝났다.
“대체 이걸 왜 찍는 건지……
촬영 내내 밝고 명랑한 표정을 유 지하던 천영은 그것이 끝나자마자 썩은 얼굴로 돌변해 버렸다. 벨레인 과 황제가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었 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황위를 물려 주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황녀 가 다음 황제가 될 것이라고 공표하 는 편이 좋기 때문이죠.”
무려 마그아티온의 다음 황제가 정
해진 것이다. 절대 평범하게 공표할 생각은 없다. 마그아티온에 있는 모 든 신문사에게 연락해,‘용이 이번 대의 황제를 선택했다’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 로,황녀 벨레인과 천영이 같이 찍 은 사진이 필요했다.
천영은 슬쩍 간이로 인상되어 나온 사진을 쳐다보았다. 사진을 찍을 때 만 해도 너무 품위도 없고 분위기가 괜히 퍼지는 샷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의외로 꽤나 무거운 사 진이 찍혀 있었다. 굳은 표정의 황 녀 벨레인과,사회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
인 용이 함께 찍혀 있는 사진만으로 도 아마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다.
‘이걸로 얼굴은 무지하게 팔려 버 리겠군.’
당분간은 아닐지라도,이제 몇 달 만 지나도 천영의 얼굴을 모르는 사 람은 없을 것이다.
촬영이 해산되고,황제가 가볍게 티타임이나 가지자고 하는 요청을 거절한 천영은 자신이 머무는 방으 로 돌아왔다.
이곳은 원래 황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제 10황궁 ‘로그닉스’라는 곳 이었지만,천영만큼은 예외였다. 황
제는 천영이 언제든 마그아티온 제 국에 올 경우 지낼 수 있도록 아예 비어 있던 황궁 하나를 통째로 넘겨 주었다.
이제 천영은 마그아티온 제국이 멸 망할 때까지,집 걱정은 하지 않아 도 된다. 물론,금색 별 마탑을 비 롯해 전 세계 각지에 그의 땅과 집 이 굉장히 많아져서 집 걱정을 하게 될 날이 올 일은 없겠지만.
쇼파에 몸을 푹 뉜 천영은 굉장히 피곤하다는 둣 하품을 쩍쩍 했다. 네청은 주전자 3개를 꺼내오더니, 찬장에 들어 있던 고급스러운 찻가 루를 모조리 꺼내와서 접시 위에 풀
어버렸다. 그러더니 그것을 들고 향 을 음미하다가,주전자에 모조리 쏟 아버 렸다.
‘뭘 하시는 걸까……
백화연은 약간 질린다는 표정으로 네청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워 낙 상식 밖의 존재인지라,평범한 인간일 뿐인 백화연은 감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정보다 오래 나와 있었네. 슬슬 돌아가야겠지.”
천영은 손바닥 위로 굴러다니는 용 의 큐브를 만지작댔다. 여전히,정체 룰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용의 물
건이라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 일한 용인 천영이 이해할 수 없다 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백화연은 천영의 손바닥 위로 굴러 다니는 큐브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 했다.
“그거,뭔가. 검처럼 생겼어.”
“응? 이게?”
뜬금없는 화연의 말에 천영이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그냥 네모…… 어라.”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춘다. 정말이
었다. 용의 큐브에서,문득 검의 형 상이 보였다. 싸우기 위한 검이 아 닌,과거 지휘관들이 사용했던 것만 같은 장식용 검. 그런 느낌이 강하 게 나는 검이 용의 큐브에서 보였 다. 단순히 용의 큐브 내부에 검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 라,그냥 그 자체가 검이 된 것처 럼.
“……이럴 수가.”
그것은 갑작스레 보인 것이 아니 다. 애초부터,보이고 있었다. 하지 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이는 바람 에 천영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백화연의 말에,간신히 깨달았을 정
도로 그는 언제나 용의 큐브를 꿰뚫 어보고 있었다.
‘검……? 어째서?’
멍하니 용의 큐브를 바라보던 천영 은 화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어떻게 본 거야?”
드래곤인 천영이야 그렇다 쳐도, 화연은 어째서 볼 수 있었단 말인 가. 그런 의문을 품음과 동시에 화 연에게서 또 다른 뭔가가 비춰져 보 였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굉장히 포근하고 우직하며 날렵한 아우라가 어른거린다. 그것은 사실 눈으로 보 이지는 않았지만,그럼에도 보였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천영이 당황하고 있는 그 모습을, 파트라슈와 네청은 말없이 지켜보았 다. 그녀들은 어쩐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이윽고,파트라슈가 침묵을 깼다.
-안 그래도 주인에게 말하려고 했 는데. 잘 됐어.
“뭐가?”
-그 큐브는 굳이 주인이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여기에 남겨 두고 가도 좋아.
자신의 손에 들린 큐브를 바라본 다. 그렇게나 찾던 물건이다. 이 물 건이 있다는 소식 하나만을 쫓아 유 적지를 반쯤 파괴시켰고, 본인 몰래 이것을 갖고 도망친 3황자를 쫓아 이곳까지 찾아왔다.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여정. 그렇게 해서 간신히 구한 물건이었건만. 천 영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큐브의 주인은……. 이곳에 있는 모양이군.’
왜 만나는 사람마다 이 모양인 걸 까. 반대로 생각하면,천영이 만나는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천영은 처음 가졌던 그 포부를 완전 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 에 존재하는 모든 큐브를 자신이 독 차지해,오릇이 존재하는 영웅이 되 겠다는 꿈을. 그런 꿈을 펼치기에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재들 이 있었다.
그는 백화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그저 보이는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천영은 알 수 있었 다. 화연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사 실을.
천영은 피식 웃었다.
“네 것도 곧 찾아줄게.”
“응.”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화연은 그저 천영이 뭔가를 준다고 하니 기 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는 기껏 되찾은 큐브를 황 궁에 놓고 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