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56화
“죄송하지만 남은 표가 2장뿐입니 다.”
그 말에 천영은 대수롭지 않은 얼 굴로 뒤돌았다.
“그냥 가자. 저녁 거 타면 되지 뭐.”
평일이라 기차표가 적다. 심지어는 기차가 자주 다니지도 않는 외진 곳 이라 더욱 심했다.
급하게 갈 필요까지는 없었으므로
천영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화연은 그런 천영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더니 다시 뒤로 빙 글 돌려 버렸다.
“이거 타자.”
“왜?”
“타고 싶어.”
“……근데 좌석이 2개뿐이라잖아.”
“괜찮아. 나한테 방법이 있어.”
결국 화연의 어처구니없는 설득에 천영은 속는 셈 치고 기차표를 구입 했다.
이윽고,기차에 탑승하자 화연은
자신이 먼저 창문가에 가서 털썩 주 저 앉았다.
그러고선 팔을 뻗어 천영을 끌어당 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 고 네청이 화연의 옆자리에 앉는 것 으로 모두 앉았다.
천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이거 어린애들이나 앉힐 때 쓰는 방법이잖아……
“괜찮아.”
화연은 천영이 혹시라도 도망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그의 양 겨드 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다음 가 슴과 배를 꽉 붙잡았다.
결국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천영 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등을 기대었 다.
이렇게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 있 음에도 불구하고,화연보다 앉은키 가 훨씬 작았다.
‘젠장……. 내 체면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꿈틀거 렸지만 그녀는 더욱 꽉 붙들 뿐이었 다.
하지만,이내 천영도 적응해 버렸 다. 은근 그녀에게 기댄 채로 있는 것이 편했다.
그렇게 천영이 얌전해지자 이번엔
화연이 손을 가만두질 못했다.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며 자꾸 이상한 머리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 것.
이제는 거의 체념한 상태나 다름없 었기에,반쯤 포기한 채 넘겨주었다.
“천영, 이렇게 그냥 떠나 버려도 상관없어?”
“뭐 어때. 나머진 저들 알아서 하 라지.”
다음 대의 황제까지 정해지고 목표 였던 용의 큐브의 처분도 해두었으 니 천영이 더 이상 그곳에 남아 있 을 이유는 없었다.
황제가 정해진 뒤의 일 따위는 천 영의 관심 밖이었다.
황태자는 아예 죽을상 짓고 병상에 앓아누웠다는 모양이고, 3황자한테 줄을 서던 귀족들도 전부 등을 돌렸 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분은 벨레인 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지 천영이 책 임질 필요는 없었다.
-주인.
“응.”
-이제 큐브도 얼마 안 남았다.
“그래?”
-응,너무 멀리 있어서 잘 느껴지 진 않지만 3개 정도 남아 있어.
“오.”
천영은 무심코 다행이라고 생각했 지만 파트라슈는 이런 일이 정말 의 례적이라고 말했다.
-큐브가 8개나 있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야.
“안 좋은 거야?”
-그런 건 아니야.
큐브가 많을수록 영웅이 많아질 확 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큐브는 그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을
뿐이다.
영웅이 될 재목이 타락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아무리 봐도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세상을 구하는 영 웅이 되기도 했다.
용의 큐브는 그저 그런 영웅을 도 와주는 서포트 아이템에 불과했다. 그것이 꼭 영웅을 결정짓지는 않는 다.
“어쨌든,좋다는 의미네.”
-그렇지. 영웅이 나타날 가능성이 그만큼이나 높다는 거니까.
큐브가 하나뿐이어도 10명의 영웅 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천영처
럼 큐브가 8개씩이나 존재해도 영웅 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것들은 어디까지나 길을 인도하 는 표지판일 뿐이지,목표 지점이 아니다.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표지판이 많을수록 목표 지 점에 도착하는 것 역시 쉬워진다. 파트라슈는 그 점을 강조하고 있었 다.
“나머지를 당장 못 찾더라도,벌써 꽤나 많이 모았으니까.”
지금까지 모은 큐브의 개수는 총 6개.
하지만 그중에서 2개가 합쳐져 막 상 보유하고 있는 것은 5개가 전부 였다.
합쳐진 큐브를 포함해 4개는 교단 에서 보관하고 있고,남은 1개는 마 그아티온에서 보관하고 있다.
천영도 슬슬 그리픈을 돌아다니며 큐브를 찾아야 하는 일이 막바지라 고 생각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근데,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
“뭔데.”
-남은 큐브들은 굳이 찾지 않아도 언젠가는 주인의 곁으로 올 것 같 아.
“뭔 소리야 그게?”
-여태까지는 주인이 용으로서 내 뿜는 기운이 너무나도 약해서 직접 찾아다녀야 했지만 이제는 달라. 주 인에게서 ‘용의 품격’이 조금씩 느 껴져.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남은 큐 브들 역시 반응할 거야. 그것들은 운명에 의해 어떻게든 주인과 만나 게 되어 있어.
“흠……
천영은 뭐 그런 게 다 있냐며 고 개를 갸웃했다.
“내가 직접 찾는 것도 상관은 없다 는 소리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찾은 김에 전부 찾으련다.”
만약 성룡이 되면 이렇게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천영 스스로 도 완벽하게 큐브를 느끼고,그것들 을 끌어모을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정도의 수준은 아 니었기에,이렇게 파트라슈가 느끼 는 미약한 기운에 의지하여 돌아다 니는 수밖에 없었다.
“천영,그나저나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문득 화연이 물었다.
“‘룰 렌 평원’이라는 곳이야.”
그러자 네청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 다. 그녀는 어쩐지 즐겁다는 얼굴이 었다.
“룰 렌 평원이라. 정말 오랜만에 가 보는구나.”
“가 보셨어요?”
“내가 안 가 본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건 그렇네요……
네청은 어찐지 추억을 회상하는 듯 한 표정이었다.
계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고향이요?”
“그래,내게 처음으로 ‘이성’이 생 겨났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서 보냈단다.”
네청의 원래 정체는 한낮 뱀에 불 과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수행을 거듭한 그녀는 마침내 이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영물,곧 신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현재에 와서는 용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었을 정도이다.
그런 그녀가 고향처럼 지냈던 곳이 라고 하니 썩 궁금해졌다.
“그곳은 어떤 곳이죠?”
“후후.”
네청이 빙그레 웃었다.
“아주 재미있는 친구들이 모여 있 는 곳이지.”
루이스틴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제 이나는 가장 먼저 별 5개짜리 특급 호텔을 잡았다.
관광이라도 좀 할 생각이었던 로서 진 역시 그녀를 따랐다.
이 도시는 도저히 관광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40층에 위치한 호텔에 들 어가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은 꽤나 아름답고 몽환적이었 다.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이 모두 가려 지고,빌딩에서 새어 나오는 인공조 명들이 온 세상을 어지러이 비추고 있었다.
“이 도시도 꽤 아름답네요……
“후후,그렇죠? 여긴 제일 높은 곳 에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해요.”
안 그래도 고위급 거물 인사들과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판에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낮은 층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었다.
이곳에 미리 와본 적이 있던 제이 나의 판단은 아주 옳았다. 덕분에 로서진은 평생 기억에 길이길이 남 을 야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 다.
“저 돔에서 발표회를 하는 건가 요?”
“네.”
도시의 동쪽에는 마치 작은 성처럼 보이는 마법대학교가 있었다.
마법박사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 이 모이는 곳이니만큼,그 시설 또 한 굉장할 것이다.
“저도 마법대학 가고 싶었는데, 형 편이 좋지 못해서 포기했거든요.”
“마찬가지예요. 돈도 없고,배우고 는 싶은데 미래도 희미하고.”
비록,그녀들은 마법을 배우고 싶 었지만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들은 마법대학을 나오지는 못했지만,그곳에 당당히 입장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 다.
마법사는 아니지만,무려 발표회에
입지를 단단히 굳힌 상태로.
많은 수의 마법대학생과 교수들 또 한 모일 것이다.
그리고,이번엔 그들이 그녀들을 보기 위해 모인다.
“느낌이 묘하네요.”
“저도 항상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이나는 발표회가 처음이 아니다. 워낙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들이 발 표회를 꺼려 하는지라 제이나가 항 상 나서서 발표회에 참여했기 때문 이다.
하지만 그녀는 매년 새로운 느낌이 든다고 한다.
“저는 매년 발표회에 참여하고는 있지만,그래도 목표가 하나 있어 요.”
“목표요?”
“네,언젠가는 제가 직접 작성한 논문을 이곳에서 발표하는 거죠.”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했던 논문은 모두 다른 마법사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제이나도 마법사였던 만큼, 이 발표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 함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이것을 목표로 삼는다. 언젠가 발표회에 당당히 자 신의 마법을 발표할 수 있기를.
“……그에 비하면,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들은 이 발표회를 꺼려 하는 데 말이죠. 참,사람 일이란.”
“그렇죠. 얄미워 죽겠어요.”
물론 그 대상에는 레이븐과 서천영 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마법은 단 하나만 공개되어 도 발표회는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 분명한데,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귀찮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 얄밉기 그지없었다.
“이번 발표회에는 꽤 사람이 많이 모였네요.”
창밖을 내다보며 로서진이 그렇게 말했다. 제이나 역시 수긍했다. 여태 까지는 정말로 마법사들만 득시글하 게 몰려들었던 발표회이다. 하지만 올해의 발표회에는 수많은 기업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메이지 서천영의 마법 이 공개된다고 하니 궁금할 수밖에
요.”
사실 천영이 공개하는 마법은 기업 의 입장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 을 것이다.
그저 몇백 년 동안 수수께끼에 휩 싸여 있던 마법공식의 비밀을 하나
밝혀낸 것이 전부였으니.
하지만 그들은 마법으로 인해 얻는 이점보다는 어떻게든 서천영과의 접 점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이 자리에는 천영이 없다.
“국회의원들도 보이네요. 저 아저 씨 말발 엄청 세기로 유명한데.”
수많은 유명인사가 보이자 로서진 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갑 질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제이나에게 는 별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저 아저씨들 전부 헛걸음한 건데 말이죠.”
“……그건 그래요.”
로서진은 서천영을 떠올렸다. 이곳 에 모인 모든 유명인이 서천영 하나 만을 위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참 알궂은 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사적인 이유’로 원할 때에는 절대 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인사를 나누기만 해 도 엄청난 인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데, 천영은 절대로 그런 인맥을 만들지 않았다.
‘역시,드래곤이니까…… 그런 걸
까.’
그녀는 아직 천영에 대해 뭘 몰라 도 너무 몰랐다.
로서진의 머릿속에서 서천영의 일 종의 신선이었다.
속세의 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 고,운명을 따라 오롯이 자신이 할 일만을 찾아서 하는 신선.
로서진과 제이나는 한참이나 호텔 40층에서 야경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 호텔의 41층,아니, 옥 상.
그곳에 걸터앉은 채 웨지스턴은 멍 한 눈빛으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악취가 지독하군.”
그는 정치인들을 보며 얼굴을 찌뿌 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