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66화
예런은 폐허를 거닐었다.
과거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고 있었을 어떤 도시.
역사책을 보지 않는 예런이기에 이 곳이 어디인지,어떤 나라였는지,왕 이 현명했는지,어떤 인종이 살았는 지,언제 멸망했는지,왜 멸망했는 지.
아무것도 모른다.
상관없었다. 예런은 그저 이곳에 오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찾아온 것이다.
이곳은 저주받은 도시. 사람들이 이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하여 접근하지 않는 장소였다.
예런은 고개를 들었다. 모든 것이 썩고,무너져 내린 곳에도 가장 높 은 장소는 존재했다. 어떻게든 버티 고,버텨낸 거대한 탑. 예런은 그곳 을 짓밟고 을라갔다.
염력에 의해 돌조각이 자연스레 길 을 형성하여 그의 앞길에 계단을 형
성하였다.
예런은 그것을 밟고 천천히 올라가 꼭대기에 도달한 다음,이번에는 의 자를 하나 만들었다. 느낌만 보자면 제국의 황제가 앉는 용좌와도 비숫 했지만 굉장히 초라하다는 점이 달 랐다.
까악- 까악!
푸드덕!
붉은 노을 저편으로 검은 날개를 가진 새 몇 마리가 날아올라 사라진 다. 예런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신호 였다. 저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 다는 증거였으니까.
“좋아.”
그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힘이 넘쳐흘렀다. 물론 그것 뿐이라면 기 분이 딱히 좋을 일은 아니다. 하지 만 손목에 새겨진 문신이 예런의 기 분을 끝임 없이 상승시켰다.
‘키 코드.’
예런은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는 모든 차원 게이트를 한 번씩 찾아갔 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원 에너지를 비롯해 ‘키 코드’를 흡수해왔다. 차 원 에너지는 단순히 이계의 힘을 받 아들이는 마법사가 강해지는 것이라 지만,키 코드는 달랐다. 차원의 문
을 열 때 필요한 일종의 특수한 힘 이었다.
‘……금색 별 마탑이라. 정말 무서 운 곳이군.’
레이븐이 일곱 다리의 연결자의 기 지를 습격했을 때,예런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예런은 그 누구보다도 눈치가 빠르고 또한 충 성심이 전혀 없는 마법사였다. 그는 레이븐이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채자 마자 잽싸게 줄행랑을 쳤다. 이 세 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 던 쿨론 무이시막스가 무력하게 죽 어가는 모습을 보며.
‘하지만 상관없다.’
예런은 폐허의 의자에다가 등을 기 대었다. 좋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이곳은 예런만의 작은 왕 국이 되어줄 터다.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뻗자 구름이 십자(十) 형태로 갈라지며 은은한 푸른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열려라.”
길르텐은 자신의 가면을 만지작대
며 솔렝 오르앙의 말을 전해 들었 다.
-아무래도 예런이 키 코드 몇 개 를 가지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남쪽 에 위치한 폐허에서 신호가 잡힙니 다.
“그렇군.”
짧게 고민해보았지만 사실 고민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대로 놔두거라.”
-그는 배신자입니다. 그대로 놔뒀 다가는 기강이…….
“상관없다. 이제 계획은 막바지이 다. 고작 저 정도에 흔들리는 것들
이 내 아래에 있다면 차라리 지금 쳐내는 것이 낫다.”
-알겠습니다.
솔랭 오르앙은 자신의 의견을 잠시 피력해보았을 뿐,길르텐에게 절대 복종을 하였다.
그녀의 판단에 한치의 불만도 없으 며 길르텐의 모든 말은 이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가슴 깊숙이 새겨 넣었다. 비록 이 자리에 얼굴 을 비출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솔렝 오르앙은 자신의 분수를 아는 남자였다.
“그나저나 소차원 ‘스피루나’는 어
떻게 되었는가?”
소차원,스피루나.
통상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통할 수 없는 절대자의 차원.
매우 작은 세계이지만 그곳에는 거 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살고 있었 다.
‘드래곤 슬레이어,마스터 스피루 나.’
차원과 차원을 건너다니며 여행하 는 절대적인 존재인 드래곤을 사냥 하는 자가 갇혀있는 세계.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을 가져 드래곤조차 사 냥하고 다닐 정도로 그는 강력했지
만 까마득한 과거 어떤 드래곤에 의 해 그 존재는 소차원에 봉인 당했 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 오로지 드래 곤 슬레이어 단 혼자만이 사는 세 계. 그렇기 때문에 차원 자체에도 드래곤 슬레이어의 이름을 본따 스 피루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문제없습니다.
솔렝 오르앙은 자신만만하게 대답 하였다.
-말씀주신대로,‘용의 유물’의 힘을 사용하니 손쉽게 열 수 있었습니다.
“그래,남용하지는 말거라. 그건 매
우 위험한 물건이다.”
-알겠습니다.
길르텐은 안심할 수 없었다. 솔렝 오르앙은 그녀의 말에 절대적인 충 성심을 가지고 있어 저 힘을 쉽게 건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하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오로지 ‘힘’ 하나만을 바라 본 채 길르텐에 몰려든 마법사들. 용의 유물이 가진 엄청난 힘을 아주 살짝 맛보았으니 지금쯤 군침을 삼 키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천영에 게 당한 자신의 부하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값싸게 먹힌다.
그녀는 서천영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는지 모른다.
솔렝 오르앙은 굉장히 강력한 마법 사 중 한 명이었기에 그를 보낸다면 해결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르텐 은 도박을 하지 않았다. 솔랭 오르 앙이 혹시라도 아주 만약에라도 서 천영에게 패배하면 그녀의 충실한 사냥개 한 마리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멍청하게 자신의 부하들을 한 명씩 보내 암살 시도를 하여 괜 히 서천영의 날을 서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 드래곤이라
는 존재가 고작 인간따위에게 손쉽 게 죽는 존재이던가? 그들은 선택받 은 존재들. 아무리 목숨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그러니 용을 잡을 때에는…… 전 문가를 사용해야겠지.’
길르텐은 힘없이 손을 쥐락펴락을 반복했다.
‘후후.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으 면 좋으련만.’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이미 그녀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지 금쯤은 그저 전설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길르텐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 대가로 수많 은 것들을 바쳐왔고,또한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길르텐,그녀는 아직 죽을 수 없었 다. 반드시 그의 얼굴을 보고 죽어 야만 했다.
‘내 마지막 소원이야. 그 계획을 방해한다면…… 아무리 레가로스와 같은 용이라고 해도 용서치는 않 아.’
손을 과악 말아 쥔다. 그녀의 눈동 자가 시리도록 빛났다.
‘드래곤 슬레이어 스피루나. 너를
위한 선물이다,서천영.’
“자네가 보기에 내가 뭘 낚기 위해 이러고 있을 것 같나?”
론두가 그리 묻자,천영은 빈 낚시 통을 확인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낚시꾼이 대체 뭘 낚고 싶어하 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설마. 막 세계를 낚겠다느니 그런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
죠?”
만약 그렇다면 정말 소름이다. 하 지만 다행이도 론두는 그런 거창한 꿈을 꾸지는 않는 모양인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낚시꾼이 세계를 낚아서 뭣에 쓰 겠나? 나는 낚시꾼으로서 가장 위대 한 업적을 낚고 싶을 뿐이라네.”
“흠. 그것 또한 헛소리인 것은 똑 같아 보이는데요.”
“아니지. 나는 정말로 물고기를 낚 고 싶은 거야.”
그때 론두의 낚싯대에 신호가 왔 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꽤나 큰 놈이었다.
천영은 호숫가에 발을 살짝 내렸 다. 바위가 워낙 높아서 이곳에서 호수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지만 드 래곤의 시력으로는 문제없었다.
“오,월척이네요.”
“허허. 자네는 정말 낚시꾼의 기질 이 훌륭한데 말이야. 고작 이것만 보고도 그걸 알 수가 있나?”
론두의 낚싯대가 움직이는 것만 보 면 그저 큰 놈이 걸렸게니 싶어 월 척이라 딱히 말하지 않았다. 어지간 한 물고기한테 월척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아까우니까. 하지만 천영은
호수의 물을 관통해서 보았기 때문 에 알 수 있었다. 낚인 물고기는 최 소한 사람 덩치의 두 배는 되는 크 기였다.
하지만 그런 괴물과도 같은 물고기 가 낚였음에도 불구하고 론두는 그 저 한 손으로 낚싯대를 가볍게 휘둘 렀다. 그 다음 위로 휘이 당기자, 미끼를 문 물고기가 호수 위로 튀어 나왔다.
론두는 낚싯대를 빙글빙글 돌리더 니 물고기를 그대로 호수 저 멀리 폭포로 날려버렸다.
“더 자라서 오거라,이놈아.”
“어,저걸 그냥 보내요? 엄청난 놈 인데?”
“저건 아직 새끼야. 더 자라면 집 채만큼이나 거대해지지. 그때 잡는 게 좋아.”
당연하지만 집채만한 크기의 물고 기를 잡을 정도의 능력이면 낚시꾼 말고 어디 가서 쌈박질로 돈 버는게 차라리 더 잘 벌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의 물고기는 가볍게 잡을 능력이 되었고 그저 그렇겠거 니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버렸 다.
네청과 백화연 역시 호숫가에 쪼그
려 앉아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아이들이 평화롭게 잘 지내는구 나. 낚시꾼,그대의 심성이 마음에 드네.”
“하하. 어여쁜 아낙네께서 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론두의 겸손에 네청이 부드럽게 미 소 지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 다. 론두가 더 자라면 잡겠다는 핑 계를 대면서 물고기를 그저 잡지 않 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렇듯 낚시바구니가 언제나 텅 비어있었 다. 잡은 것들을 계속 놓아주기 때 문이다.
“대체 왜 낚시를 하는 거죠?”
천영의 질문에 주제가 원점으로 돌 아갔다.
“아까 내가 말했지? 낚시꾼으로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낚고 싶다고. 그건 헛소리가 아니야. 이곳 룰 렌 평야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 거든. 아주 거대한,정말로 엄청나게 거대한 상어가 살고 있다고. 나는 그걸 낚으러 여기까지 찾아왔어.”
“……상어요? 바다도 아닌데?”
“그래.”
슬쩍 호숫가를 살핀다.
“얼마나 거대한데요?”
“글쎄다. 이 호수보다는 크지 않을 까?”
“……호수보다 큰 물고기가 호수에 살 리가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근데 룰 렌 평야 에서 이곳이 가장 거대한 호수거
드 ”
물고기가 이 호수보다 크다는 말은 반쯤 과장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 은 정말로 엄청나게 규모가 넓고 거 대했기 때문이다. 폭포 아래까지 따 지면,그 크기를 한 눈으로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래,과장 조금 보태서 론두는 이 호수만한 크기의 물고기를 잡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커다란 물고기 라면,이 호수에서 살고 있다고 쳐 도 금방 보여야 정상일 텐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뭐,목격담이라던가,전해져 내려 오는 전설이라던가. 그런 거 없어
요?”
“있고말고. 아까 네가 물었던 질문 과 이어지지.”
천영의 질문. 용의 유물에 관한 이 야기 였다.
“듣자하니 그 물고기는 신수(神獸) 야. 범상찮은 놈인 건 확실하지. 전 설도 있어. 아주 먼 옛날,용이 이 곳에 찾아와서 물건 하나를 그 신수 에게 맡기고 사라졌다더군. 이름도 없고,정체도 모르지만 기록에 의하 면 별명이 하나 있긴 하더군.”
“별명이요?”
“드래곤 블랙 샤크. 용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어와 비슷한 외형에,거대한 몸체까지. 딱 그런 이름이 붙을 만 해.”
론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보여주지.”
론두를 따라 호숫가를 지나,파도 가 내리치는 절벽을 기어서 내려갔 다. 그 다음 폭포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니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인공적인 듯 보이지만 인조적으로 깎여져 있었다.
천영은 단번에 벽에 새겨져 있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네청이 놀랍 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이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새겨진 글자들이구나. 본 적이 있어.
룰 렌 평야에 살던 부족민들이 사용 했었지.”
“천 년도 더 전에 새겨진 그림
..?”
천 년 전에도 문자 체계는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이곳 룰 렌 평야 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러지 못 했던 모양인지 모든 기록을 그림으 로 남겨두었다.
그림 속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 들과 함께 수많은 동물들이 어우러 져 지내고 있었다.
새의 형상을 한 인간도 있었고 거 대한 늑대도 있었다. 산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곰이 산 의 정상 위에 자신의 팔을 얹어놓은 채 포효하는 그림도 있었고 태양을 삼키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괴조의 그림 또한 있었다.
벽을 살살 쓰다듬으며 천영은 안쪽 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가 어쩐지 텅 비어있는 벽을 발견했 다.
다른 벽들은 전부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벽만 유독 텅 비어있었 다.
“자세히 보거라.”
그에 천영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
났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왔다. 테두 리가 너무 커다래서 가까이서는 보 이지 않았던 것이다. 벽 한 면을 한 꺼번에 채워넣을 정도로 거대하게 표현된 검은 날개를 가진 상어의 형 상을.
“이게……
검은 상어의 주둥이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물려져 있다고 표 시되어 있었다. 척 보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사라진 전설의 신수 가 용의 큐브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 다.